Travel - 중국 공산당이 사랑한 국주(國酒)
Travel - 중국 공산당이 사랑한 국주(國酒)
중국 서남부에 자리 잡은 구이저우(貴州)성. 성도인 구이양(貴陽)에서 서북부로 216㎞, 험난한 산을 넘고 돌아 5시간을 달려서 도착한 해발 423m의 한 오지마을 입구에는 커다란 입간판이 찾는 이를 맞이한다. ‘중국 제1의 술 고장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歡迎光臨中國酒都第一村).’ 전체 주민이 4만9000명에 불과한 산골마을 답지 않게 자부심이 넘치는 문구다. 이곳이 유명한 중국 술 마오타이(茅臺)의 고향 마오타이진이다.
구이저우는 중국에서 가장 가난한 성이다. 2012년 구이저우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만8700위안(약 327만원)으로 중국 최하위다. 상하이(7만3297위안)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마오타이진은 다르다. 주민 1인당 GDP는 2만1800위안에 달해 구이양을 제외하고 구이저우에서 가장 높다. 지역내총생산(GRDP)도 224억 위안(약 3조9200억원)으로 구이저우 향진 마을 중 최고다.
중국 찾는 세계 정상들이 즐겨마오타이진이 구이저우에서 가장 잘 살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국주(國酒)’라 불리는 마오타이주(酒)가 생산되기 때문이다. 마오타이주의 명성은 한국뿐만 아니라 서구에서도 자자하다. 스코틀랜드 위스키, 코냑 브랜디와 더불어 세계 3대 증류주 중 하나로 꼽힌다.
중국을 찾는 세계 정상들이 연회자리에서 중국 지도자들과 건배하며 맛보는 술도 바로 마오타이주다. 마오타이주가 수 천종의 술을 뒤로 하고 중국을 대표하게 된 데는 오랜 양조 역사와 중국 공산당과의 깊은 인연에서 비롯됐다. 마오타이진에서 술이 제조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2세기경이다. 이후 명말·청초 한족 이주민이 마오타이진으로 대량 유입되면서 민간 술도가가 우후죽순 등했다.
19세기 초 이미 20여개의 이름난 양조장이 성업했다. 1840년 한해 생산량이 170여t에 달했다. 당시의 모습은 한 싯구를 통해 잘 대변된다. ‘바람이 불면 그 향기 온 동네를 취하게 하고(風來隔壁千家醉) 비가 그친 후 술병을 열면 십리까지 퍼진다(雨過開甁十里芳)’.
1935년 홍군(紅軍, 인민해방군의 전신)과의 만남은 마오타이주가 국주라는 지위에 오른 계기가 됐다. 홍군은 마오타이진을 가로지르는 츠쉐이허(赤水河)에서 4차례에 걸친 도강작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부상당한 병사들을 마오타이주로 소독하고 치료했다. 도강을 성공적으로 마친 뒤 홍군은 주민들이 건네준 마오타이주를 마시며 승리를 자축했다. 당시 추억을 잊지 못했던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는 1949년 10월 1일 사회주의정권 수립 기념연회에서 마실 술로 마오타이주를 지정했다.
마오타이주가 세계인의 이목을 끌게 된 것은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방중을 통해서다. 당시 중국 정부는 만찬석상의 음식과 술 준비에 심혈을 기울였다. 만찬 자리를 빛낸 주역은 단연 마오타이주였다. 저우 총리와 닉슨 대통령이 화기애애하게 마오타이주로 함께 건배하는 모습은 TV를 통해 전 세계에 방영됐다. 그 뒤 마오타이주는 중국을 찾는 외국 지도자들에게 대접하는 연회주로 자리매김했다.
마오타이주를 생산하는 대표 기업은 구이저우성 정부가 운영하는 마오타이술공장(酒廠)그룹이다. 3㎢에 달하는 넓은 공장 안에는 2만명의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마오타이진에서 술 제조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6만명에 달한다. 상주 주민을 제외하고 2만명의 유동 인구를 더할 때 약 85%의 주민이 술로 밥벌이를 하는 셈이다.
2012년 마오타이술공장그룹의 총판매액은 352억 위안(약 6조1600억원), 총생산량은 3억3000t을 기록했다. 세금 115억 위안(약 2조125억원)을 뺀 영업이익은 130억 위안(약 2조2750억원)에 달한다. 대외 수출액도 1억5000만 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마오타이진의 술회사는 마오타이술공장그룹만 있는 건 아니다. 500여개의 크고 작은 양조장과 술도가가 성업 중이다. 2008년 250개이던 술 관련 회사는 2배로 늘었다. 도심 4.2㎢에 마오타이술공장을 비롯해 100여개의 양조장이 모여 있다.
과밀화가 웬만한 대도시를 능가하면서 마오타이진은 몸살을 앓고 있다. 양조장과 민가에서 무분별하게 버리는 오·폐수는 중국 최고의 수질을 자랑했던 츠쉐이허를 오염시키고 있다. 마오타이진의 지질 성분은 7000만년 전에 형성된 주사(朱砂)로 이뤄져 미생물의 번식에 유리하다.
여기에 산으로 사방이 둘러싸인 채 가운데만 패인 지형은 바람이 잘 통하지 않아 술이 발효하는데 최적의 환경을 갖췄다. 하지만 급속한 도시화로 술 제조에 필요한 수수·밀 등 원료를 재배할 경작지가 사라지고 토질 오염도 심각해지고 있다. 마오타이주가 최고의 명주로 이름을 떨칠 수 있었던 ‘깨끗한 물, 양질의 토양, 적당한 기온’이라는 공식이 깨지고 있는 것이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마오타이진 정부는 2010년 11월 1만여명의 주민을 2015년까지 신도시로 강제 이주토록 했다. 주민들의 강력한 반발로 이주 계획은 철회됐지만, 지역사회에 큰 상처와 분쟁을 남겼다. 2011년 5월에는 ‘바이주의 거리’를 조성한다며 도심 번화가인 환마오난루(環矛南路) 상가 100여개를 경찰·청관(城管, 도시단속요원) 등을 동원해 강제 철거하려다 물의를 빚기도 했다.
수질·토양 오염으로 양조장 몸살더 큰 위기는 2012년 11월부터 들이닥쳤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취임 일성으로 강력한 반부패 전쟁을 외쳤다. 그 첫 대상이 당정과 군부의 삼공소비(三公消費, 관용차·접대비·출장비) 제재였다. 접대비에서 가장 큰 비중은 마오타이주를 마시는 술값이다. 공산당·군대·공안·세관·국유기업 등에만 특별 공급되는 특‘ 공주(特供酒)’의 대명사가 마오타이주기 때문이다. 900~1500위안(약 15만8000원~26만3000원)인 마오타이주는 일반인에게도 선물과 뇌물용으로 인기 만점이다.
매서운 사정 한파는 마오타이주에게 큰 타격을 주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 마오타이술공장그룹의 총판 매액은 개혁·개방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했다. 주가는 2012년 7월 최고가인 266위안을 찍었지만 올해 들어서는 절반에 못 미치는 110위안대까지 떨어졌다. 마오타이진 주민들은 “중국이 무너지지 않는 한, 국주도 무너지지 않는다(中國不倒, 國酒不倒)”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전례 없는 반부패운동 속에서 마오타이주가 명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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