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방위산업체 ‘일자리 지키기’ 치열한 로비전

방위산업체 ‘일자리 지키기’ 치열한 로비전

미 국방부 “탱크는 이미 충분” vs 의회 “생산라인 가동 중단 곤란”
미 육군의 상징 M1 에이브람스.



미국의 군사력을 상징하던 전차의 생산이 축소되고 있어 방위산업체들에 비상이 걸렸다. 방위산업체들은 정치권을 상대로 생산라인 방어를 위한 로비를 벌이는 반면, 정작 미 육군은 ‘전차 역할 축소론’을 주장해 워싱턴DC에서 때아닌 전차 논쟁이 한창이다.

미국인들은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하는 미 육군의 상징으로 M1 에이브람스 전차와 브래들리 전투차량(장갑차)을 서슴지 않고 꼽는다. 1990년 걸프전과 2003년 이라크전에 실전 투입된 M1 에이브람스 전차는 러시아와 중국의 전차로 무장한 이라크 탱크부대를 압도적인 공격력으로 거의 괴멸시켰다. 생존율이 뛰어난 M1 에이브람스 전차는 이들 전쟁에서 거의 파괴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미 육군뿐만 아니라 최첨단 무기와 불패 신화를 지닌 미군의 상징으로 부각됐다.

주한미군도 운용하는 브래들리 장갑차는 엄밀히 말하면 전차는 아니지만 대전차 무기를 장착한 미 육군의 대표적인 전투차량이다. 보병 운송과 공격용 기갑무기로 활용되는 브래들리는 이라크와의 두 차례 전쟁에서 적군 전차를 대거 파괴하고 시가전에서 효과적인 전투력을 보인 미군의 대표적 장갑차다.

크고 작은 전쟁으로 이들 전차와 장갑차에 대한 펜타곤(미 국방부)의 수요가 증가하던 2000년대까지는 방위산업체들의 전성기였다. 하지만 2007년 이후 미국 경제가 불황을 겪으면서 연방정부 차원에서 국방비를 포함한 예산을 줄이면서 방위산업체들에 불똥이 떨어졌다.



탱크보다 드론·잠수함이 더욱 요긴전차 생산을 줄이자고 주장하는 쪽은 탱크부대를 운용하는 미육군이다. 전차가 여전히 육군 군사력의 핵심 역할을 하지만 호경기 시절 수준의 전차 생산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게 육군의 주장이다. 육군에는 5000대 가량의 브래들리 장갑차가 부대에 배치되지도 않고 할 일 없이 업그레이드만 기다리고 있다. 그만큼 과거에 충분한 물량을 구매했기 때문에 더 이상 장갑차를 추가 구매할 필요성이 없다고 육군은 판단한다.

펜타곤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펜타곤은 “현대전에서는 군사력의 신속한 배치가 중요하며 드론(무인공격기)이나 잠수함, 장거리 폭격기가 전차보다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펜타곤은 이런 신형 무기의 도입을 위해 전차 비중을 줄이는 식으로 무기체계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펜타곤의 하이디 슈 육군성 조달담당 차관보는 최근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주식회사 사장의 책임은 주주를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하는 것처럼 납세자인 국민에게 가장 좋은 일을 해야 하는 게 육군의 책임”이라며 제한된 예산상황에서 전차예산 축소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레이몬드 이디어노 육군참모총장도 2012년 연방의회에서 단도직입적으로 “우리 전차군단의 탱크는 배치된 지 평균 2년 반 정도 됐으며 상태가 좋다”며 “더 이상 전차가 추가 생산될 필요가 없다”고 보고했다.

펜타곤이 전차 구매량을 지속적으로 줄이려고 하자 미 방위 산업계가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브래들리 장갑차를 생산하는 BAE 시스템즈의 생산라인도 축소되고 있다. 미 동부의 워싱턴 DC와 뉴욕주 중간 지점의 펜실베이니아주 요크에 있는 BAE 시스템즈의 브래들리 장갑차 생산공장 가운데 일부는 문을 닫았고 인력도 감원하고 있다.

브래들리 장갑차 생산공장의 앨리스 코너 생산담당 중역은 “이곳에서 35년 동안이나 일한 직원이 퇴직을 앞두고 해고되는 등 슬픈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며 “언젠가 다시 생산라인을 재가동해야 할 텐데 숙련된 기술이 녹스는 걸 보니 마음이 불편하다”고 말했다.

지난 수 십년 동안 요크 군수공장에서는 브래들리 장갑차 외에도 M88A2 헤라클레스 구난전차와 M106A6 팔라딘 155mm 자주포 전차도 생산했다. 1950년대 군용지프 차량 등을 수리하던 군수회사 BMY(보웬 맥롤린 요크)는 1960년대 들어 자주포 등을 본격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BMY는 이후 유나이티드 디펜스로 확대 개편됐다가 1997년 칼라일 그룹에 인수됐다. 최종적으로 2005년 BAE 시스템즈가 유나이티드 디펜스를 구입, 전차와 장갑차를 본격적으로 생산하고 있다.

BAE 시스템즈는 최근 들어 브래들리 장갑차를 새로 생산하지 못하고 과거에 만들 물량을 정비만 하고 있다. 요크 토박이로 1979년부터 요크 군수공장에서 일한 멜 네이스 주니어 생산담당 매니저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출동했다가 파손된 장갑차가 줄지어 들어왔던 2008년이 가장 바빴던 한 해였다”며 “일손이 모자라 600명의 인력을 더 고용해야 했다”고 회상했다.

M1 에이브람스를 생산하는 미 오하이오주의 제너럴다이내믹스 공장.





BAE 시스템즈·제너럴다이내믹스 공장 문닫을 위기한창 잘나가던 BA E 시스템즈는 육군의 미래전투시스템(Future Combat Systems)에 참여하며 차세대 전투차량 생산 임무도 맡았다. 펜타곤은 차세대 전투차량 프로그램에 870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었다. BAE 시스템즈는 800만 달러가 나가는 대형 고속 금속절삭기계도 설치하는 등 대대적인 선투자에 나섰다. 나이든 직원들의 은퇴에 대비해 젊은이들을 대량으로 고용, 근로자 평균나이가 44세로 내려갈 정도였다.

하지만 경기침체의 직격탄을 맞은 연방정부가 예산 삭감에 들어가자 육군은 2009년 미래전투시스템을 포기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BAE 시스템즈는 이로 인해 타격을 입었다. 수 차례에 걸친 감원을 통해 직원의 절반을 내보내야 했다. 신규 인력부터 감원하느라 직원의 평균나이가 54세로 올라갔다. BAE 시스템즈는 브래들리 공장에 대한 재정지원을 확보하지 못하거나 다른 기업이나 해외 정부의 발주를 받지 못할 경우 2015년 요크 군수 공장의 생산라인 가동을 중단할 계획이다.

미 육군의 주력 탱크인 M1 에이브람스를 생산하는 제너럴다이내믹스도 BAE 시스템즈와 비슷한 상황이다. 오하이오주의 리마에 있는 제너럴다이내믹스 군수공장도 펜타곤의 발주 물량이 크게 감소하면서 생산라인을 크게 축소했다. 제너럴다이내믹스도 2004년부터 1550만 달러를 들여 생산설비를 대폭 증설했지만 미래전투시스템이 갑자기 취소되면서 큰 피해를 보고 있다. M1 에이브람스 전차를 한창 생산할 때는 직원이 1220명이었지만 현재는 500명 정도로 급감했다.

BAE 시스템즈의 브래들리 장갑차.
전차와 장갑차를 생산하는 방위산업체들의 타격이 심하자 연방의회가 나서면서 펜타곤과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미 육군이 발주물량을 급격히 줄이자 연방의회 의원들이 강력히 반대하고 나선 때문이다. 연방의회는 2013회계연도 국방예산안에서 제너럴다이내믹스와 BAE 시스템즈의 생산라인을 유지하기 위해 M1 에이브람스 전차와 브래들리 장갑차에 각각 1억8100만 달러와 1억4000만 달러의 국방예산을 추가 배정했다. 국방예산의 전반적인 삭감 분위기 속에서 육군이 요청한 예산보다 더 많은 예산을 연방의회가 배정하는 진풍경이 벌어진 것이다.



연방의회는 예산 추가 배정 진풍경연방의원들은 미군의 전차와 장갑차 전력을 갑자기 줄이면 전투력을 유지하기 어렵다며 오히려 펜타곤이 요청하지도 않은 예산을 얹어놓은 것이다. 연방의회는 차후 이들 전차와 장갑차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될 텐데 생산라인이 줄어들면 향후 더 많은 예산이 투입돼야 하는 걸 방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의회감시단체와 반전단체들은 연방의회의 이 같은 국방예산 배정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제너럴다이내믹스와 BAE시스템즈의 군수공장이 있는 지역의 의원들을 중심으로 지역구 챙기기 관행이 작용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방위산업체들의 적극적인 로비에 부담을 느낀 정치인들이 비상식적인 예산 배정에 나섰다고 비판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BAE 시스템즈는 50개주 가운데 44개주의 586개 지역에 있는 부품 하청업체 관계자들과 함께 연방의회를 방문, 의원들에게 브래들리 장갑차 생산라인의 활성화를 강력히 요구했다. 육군이 전략적 중장기 계획에 따라 브래들리 장갑차와 M1 에이브람스 전차의 발주물량을 감소를 결정했지만 이와 같은 로비 때문에 국방예산 분배권을 가진 의회가 펜타곤의 방침에 역행하는 예산배정을 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연방정부 감시프로젝트의 공공정책 디렉터인 안젤라 캔터버리는 “방위산업체들이 이윤과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불안감을 조성하는 전술을 사용하고 있다”며 “아까운 예산을 국가안보 전략에 맞지도 않는 프로그램에 투입하는 것은 우리를 덜 안전하게 하는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합병 앞둔 SK이노베이션...이르면 내일 계열사 CEO 인사

2노태문 삼성전자 사장 "갤럭시 S24 판매 호조...매출 성장 예상"

3드디어 움직인 쿠팡이츠...배달업계 상생안 도출 기대감

4JW중외제약 계열사 JW신약, 의약품 56개 품목 3개월 판매 정지

5기후변화로 사막에 비가..."사하라 남부 계절적 폭우 심해져"

6"배당금 토해라"...홈센타홀딩스 배당 무효에 주주 분노

7취임 이후 첫 만남...유상임 장관 11월 이통 3사 CEO 만나

8'티메프' 피해 기업 금융지원 확대...소진공 지원 한도 최대 5억

9아기 울음소리 커질까...혼인 증가 덕 8월 출생 2만명

실시간 뉴스

1합병 앞둔 SK이노베이션...이르면 내일 계열사 CEO 인사

2노태문 삼성전자 사장 "갤럭시 S24 판매 호조...매출 성장 예상"

3드디어 움직인 쿠팡이츠...배달업계 상생안 도출 기대감

4JW중외제약 계열사 JW신약, 의약품 56개 품목 3개월 판매 정지

5기후변화로 사막에 비가..."사하라 남부 계절적 폭우 심해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