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C - 말레이시아에 첫 전기로 수출
SAC - 말레이시아에 첫 전기로 수출
4월 25일 오후 5시, 인천국제공항에서 한형기(61) SAC 대표를 만났다. SAC는 1998년 한 대표가 창업한 합금철 제조 설비 회사다. 합금철은 철강 생산에 있어 불순물을 걸러 내고 강도를 높이는 데 필요한 원료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합금철의 80%가 SAC의 설비로 만들어진다. 주요 수요처는 동부메탈과 심팩이다.
창업 당시 자본금 1억원으로 시작한 회사는 지난해 약 1000억원을 벌었다. 2012년 3월엔 일본계 다국적기업인 AML이 말레이시아 빈툴루에 건설하는 합금철 제조 공장의 전기로 설비 수주를 따냈다. 수주액이 SAC의 한 해 매출액을 뛰어넘는 약 1300억원이다. SAC는 2012년 말부터 공사를 시작했다. 이곳이 SAC의 합금철 제조 기술력을 해외에서 평가받는 무대인 셈이다.
포브스코리아는 현장을 방문하는 한 대표를 3박 4일간 동행했다. 평소 그는 수행 비서없이 홀로 다닌다. 이날은 스님 한 분이 곁에 있었다. SAC 본사가 있는 충청남도 아산시 인근 절인 천왕사의 일로 스님이다. 인명 사고없이 공사가 끝날수 있도록 안전기원제를 지내기 위해서다. 말레이시아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빈툴루는 직항 노선이 없다. 그날 밤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에 머물고 다음날 아침 빈툴루행 비행기로 갈아탔다.
약 1시간 후 빈툴루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엔 SAC 말레이시아 법인장인 배동오 이사를 비롯해 3명의 직원이 마중나왔다. 빈툴루는 말레이시아 사라왁 주에 있는 해안도시다. 공항에서 자동차로 30분가량 달리면 조그만 가게들이 모여있는 거리가 나온다. 차가 멈춘 곳은 빈툴루 시내의 한 식당이다. 메뉴판엔 김치찌개, 육개장, 돌솥비빔밥 등 한국 음식이 즐비하다. SAC가 공사를 맡은 이후 빈툴루에 처음 생긴 한국 식당이다.
식당을 운영하는 김진회 사장은 “대규모 공사로 한국 사람이 많이 온다는 소식에 쿠왈라룸프에 이어 이곳에 2호점을 냈다”고 들려줬다. “요즘 아침, 점심으로 SAC 사무실에 100인분 이상의 도시락을 배달하고 있어요. 현지인에게도 입소문이 나면서 식당을 찾는 손님이 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인기 좋은 돌솥비빔밥을 시키고 나니 정신이 아득해진다. 30도를 웃도는 날씨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주르륵 흐른다. 천장에서 쉴새없이 도는 선풍기 바람이 미지근하다고 느낄 정도다. 밥 두어술 뜨고 공장으로 이동했다. 빈툴루 시내에서 자동차로 1시간가량 걸린다. 오롯이 직선으로 뚫린 도로 주변엔 팜나무가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배 이사는 “빈툴루에서 브루나이 공화국까지 팜나무가 심어져있다”고 들려줬다. “팜나무는 말레이시아의 주요 자원입니다. 팜오일은 식용유, 바이오 디젤 등으로 가공이 가능해요. 석유를 대체할 수 있는 친환경 연료가 될 수 있어 말레이시아 정부가 장려하는 에너지원입니다.”
팜나무가 점차 드물게 보이기 시작하더니 드넓은 땅이 펼쳐졌다. 과거 보루네오 섬의 정글을 밀고 만든 사말라주 산업단지다. 사막의 신기루처럼 곳곳에 대규모 공장 단지가 들어섰다. 먼저 눈에 띈 곳은 세계적인 태양광용 폴리실리콘 생산업체 일본의 도쿠야마 공장이다.
그 뒤로는 알루미늄 공장인 프레스 메탈 간판이 보인다. 해외 기업 뿐 아니라 동부제철과 아세아시멘트가 2012년 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두 곳 모두 태양광 원재료인 메탈실리콘을 생산하는 공장을 세울 계획이었다. 국내외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공장 부지만 닦아놓은 상태다.
빈툴루 사말라주 산업단지에 몰리는 외국 기업국내외 기업이 말레이시아 정글까지 진출하는 이유는 뭘 까. 한 대표는 “말레이시아 정부가 ‘재생가능에너지 특구(SCORE)’ 장기 프로젝트를 추진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바닷가에 가깝다는 지리적인 위치를 활용해 에너지 집약산업, 중공업 산업 등을 키우며 외국기업의 투자 유치를 이끌고 있습니다. 산업단지에서 15분가량 떨어진 곳에 항구를 짓고 있어 원료 조달이 편리하며 제품 운송비를 줄일 수 있다는 게 강점입니다. 전기 사용량이 높은 기업에 저렴하게 전기를 공급하고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고요.”
도쿠야마 맞은편에 SAC가 1년 반동안 공사 중인 AML의 합금철 제조 공장이 있다. 182만㎡(약 55만 평) 대지엔 철근구조물이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있었다. 구조물 안엔 6개의 대형 전기로가 보였다. 공장 주변엔 10여 대의 대형 크레인이 바쁘게 움직이며 물건을 운반했다. 포장되지 않은 길을 따라 안으로 더 들어가자 회색 조립식 건물이 눈에 띄었다. SAC 말레이시아 법인의 임시 사무소다.
한 대표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30여 명의 SAC 직원이 반갑게 맞았다. 한 대표는 직원들과 안부 인사를 나눈 후 곧바로 현장 나갈 채비를 했다. 기자에게도 안전 장비가 주어졌다. 안전모와 안전조끼를 챙기고, 두꺼운 가죽의 안전화까지 신어야 했다. 푹푹 찌는 날씨에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
한 대표는 빠른 걸음으로 공장 주변을 둘러보고, 전기로 공사가 한창인 공장 3층으로 올라갔다. 철근과 나무로 만든 나선형 계단은 좁고 가파르다. 용기를 내 올라갔지만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3층에 오르자 공장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멀리 원료배합설비가 보였다. 배 이사는 “합금철을 만들려면 먼저 원료인 광석을 원료배합설비에서 잘 섞어 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음으로 원료가 전기로로 이동해 두 종류의 이상의 원소가 섞인 합금철로 바뀝니다. 특히 망간계 합금철은 철강 생산과정에서 산소, 유황 등 불순물을 걸러낼 뿐 아니라 철을 보다 단단하게 만들어서 제강업계에서 인기가 좋습니다. 이곳에선 실리콘 성분이 함유된 실리콘 망간과 페로 실리콘 두 종류의 합금철을 제조합니다. 이 때 전기로에서 발생하는 각종 유해 물질을 회수해 없애주는 설비가 구불구불한 형태의 집진기예요. 이 정도 규모면 연간 25만t의 합금철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동일산업이나 심팩과 비슷한 규모라고 할 수 있지요.”
한 대표는 공장을 둘러본 후 한동안 말이 없었다. 한참 후에야 그는 “이번 공사가 SAC가 한 단계 성장할 중요한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말레이시아 프로젝트는 한 대표에게도 새로운 도전이다. 그는 국내 1세대 공업로 엔지니어다. 1976년 현대양행에 입사한 이후 한일로 공업을 거쳐 1983년 삼천리 M&C 상무를 맡았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 무리하게 사업을 해온 대기업은 물론, 중견기업까지 줄줄이 쓰러졌다.
삼천리그룹의 자회사인 삼천리M&C도 기계공업 사업부문을 청산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함께 일한 직원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며 참담한 심정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무엇보다 그동안 쌓아온 공업로 기술이 사라진다는 점이 어깨를 짓눌렀다. 며칠을 고민 끝에 그는 창업을 결심했다.
1998년 전 재산 1억원으로 삼천리공업로(현 SAC)를 세웠다. 일자리를 잃은 직원들도 불러들였다. 남의 공장에서 더부살이하며 기술 개발에만 매달렸다. 대기업과 가격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선 틈새 기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2년 연구 끝에 국내에서 처음으로 합금철 제조 설비를 개발했다. 이 기술을 처음 알아본 곳이 동부메탈이었다.
동부메탈은 해외 유명기업과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은 기술과 30~40% 저렴한 가격에 놀랐다. 수차례 기술 검토와 회의를 거쳐 250억원 상당의 설비를 맡겼다. 동부메탈에 성공적으로 납품한 후 심팩·동일산업 등 대기업의 수주가 이어졌다. 창업 이후 평균 50억~60억원을 기록했던 매출은 2003년 100억원대로 훌쩍 뛰었다. 이후 본격적으로 해외수출이 이뤄지면서 10년 후 매출은 1000억원대로 늘었다.
공업로 기술 지키려고 창업 결심한 대표의 어깨가 무거운 데는 이유가 있다. 현재 이곳엔 고운전기, 백두산기 등 10여 개 중소기업이 SAC의 협력업체로 참여했다. 모두가 10년 넘게 SAC와 함께 일해온 기업들이다. 이곳 현장 사무소도 함께 쓴다.
이상수 고운전기 기술본부 부장은 “공장 건설의 기본인 전기를 깔기 위해 2012년말 1차 선발대로 참여했다”고 했다. 그래도 말레이시아에 머문 지 1년이 훌쩍 넘었다. “가족이 가장 보고 싶어요. 힘들 때도 많지만 보람도 있습니다. 이번이 고운전기의 첫 해외 진출이에요. 전기 제어전문업체는 뛰어난 기술이 있어도 본체가 있어야만 제 기능을 할 수 있습니다. SAC가 큰 규모의 사업을 진행하면서 우리에게도 기회가 온 겁니다. 이번 해외 수주로 한 해 매출액에 맞먹는 130억원을 벌게 됐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대기업도 SAC의 협력사로 이번 공사에 참여한다는 점이다. 제철 플랜트 건설에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포스코 건설이다. 포스코 건설의 중국 법인은 이번 사업에서 토목과 건축 분야를 담당한다. 한 대표를 도와줄 구원투수기도 하다. 그는 “초기에 AML측은 전기로 설비를 제외한 토목과 건축을 말레이시아 현지기업에 맡겼다”고 얘기했다. “사실 건물 뼈대가 올라가야 전기로 설비 공사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현지 건설사가 늑장을 부리다보니 공사 일정이 크게 지연된 겁니다. AML과 오랜 협의 끝에 말레이시아 현지 건설사를 빼고 포스코 건설로 대체했습니다.”
중소기업 이끌고 EPC사업 진행AML측은 이번 합금철 제조 공장이 완공된 후 성과가 좋으면 인근에 4개의 전기로를 추가 건설할 계획이다. 2차 공사 금액만 1500억원이다. 이 경우 1차 프로젝트를 진행한 SAC가 EPC사업을 맡을 가능성이 크다. 이날 저녁 AML을 이끄는 히로타카 스즈키 회장이 빈툴루에 도착했다. 그 역시 한 달에 한 번은 현장을 방문한다.
27일 하루 동안은 스즈키 회장을 중심으로 AML과 SAC간의 임원 회의가 이어졌다. 그 중간에 한 대표의 소개로 스즈키 회장과의 인터뷰를 진행했다(110쪽 참조). 그는 세계 합금철 제조업계에서 주목받는 인물이다. 33세에 1200달러로 창업해 AML을 세계적인 합금철 제조회사로 키웠다. 이번 프로젝트가 마무리돼 제품이 생산되는 2016년께 예상 매출액은 10억 달러에 이른다.
빈툴루에서 머무는 마지막 날인 28일은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마치 하늘에 구멍이 뚫린것 마냥 세차게 쏟아졌다. 공장 내 배수구에 물이 넘치면서 역류했다. 폭우가 쏟아지면 곳곳에 물 웅덩이가 생겨 위험하다. 오후에 안전기원제 행사를 계획한 한 대표는 근심스런 표정으로 창문만 바라봤다. 걱정과 달리 점심 무렵에 비가 잦아들면서 해가 얼굴을 내밀었다.
오후 3시부터 공장 1층에서 안전기원제가 열렸다. 상 위엔 한국 제사상에서나 볼 수 있는 떡과 과일, 대추, 밤 등이 준비됐다. 한식당을 운영하는 김진회 사장이 쿠왈라룸푸까지 가서 공수해온 물품이다. 단, 말레이시아가 이슬람 국가임을 감안해 돼지머리는 준비하지 않았다.
이날은 SAC 직원을 비롯해 공사에 참여한 업체 근로자 200여 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한 대표는 정성스럽게 향불을 피우고 무사고·무재해를 기도했다. 안전기원제 행사를 처음 본 외국인 근로자들은 신기해하며 사진을 찍었다. 한 대표는 “공사할 때마다 안전기원제를 올린다”고 했다. “행사를 한 뒤로 한 번도 사고가 없었습니다. 직원들에게 안전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인식시킬 수 있고요. 아무쪼록 사고없이 공사가 마무리되길 바랍니다.”
SAC는 해외 진출과 함께 성장했다. 1999년 베트남에 처음 공업로를 수출한 이후 매년 수출 비중이 늘었다. 최근엔 전체 매출액의 90%가 수출이다. 그만큼 해외에서도 SAC의 기술력을 인정한다. 한 대표는 2005년부터는 친환경 에너지 기술 개발에 주력했다. 합금철을 제조하는 과정에서 환경오염 물질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는 “미래를 위해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설비 기술이 필요하다”고 얘기했다.
2008년에는 2년 5개월 연구 끝에 자동차에 쓰이는 저압가스침탄로를 개발했다. 공기오염의 주범인 이산화탄소 발생량을 줄여주는 장치다. 폐기물을 재활용하는 기술도 개발했다. 합금철 제조 설비 기술을 응용해 정수장과 폐수처리장에서 버린 슬러지(침전물)를 각각 도자기 재료와 화력발전소 연료로 만든다. 이 기술은 특허로 등록했다. 요즘엔 폐기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냄새를 없애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이 연구 활동에 미국의 델라웨어대와 한국의 공주대가 공동으로 참여한다.
한 대표는 마케팅 활동도 열심이다. 그의 일정표를 보면 해외 출장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5월 중순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리는 세계망간협회 총회에 참석한다. 합금철 제조 관련 기업들의 대표가 한자리에 모이는 행사다. 한 대표에겐 회사를 알릴 좋은 기회다. 한 대표는 “앞으로 중소기업의 힘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SAC는 매출규모는 크지 않지만 합금철 제조 설비 기술력으로는 세계 10위권에 꼽힙니다. 특히 말레이시아 프로젝트를 성공하면 EPC사업 능력까지 증명할 수 있습니다. 세계 유명 제철기업의 전기로 수주 입찰에서도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고요. 내년 5월 완공을 목표로 말레이시아 합금철 제조 공장 건설에 모든 힘을 쏟을 계획입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元’ 하나 잘못 보고”…中 여성, ‘1박 5만원’ 제주도 숙소에 1100만원 냈다
2'40세' 솔비, 결정사서 들은 말 충격 "2세 생각은…"
3"나 말고 딴 남자를"…前 여친 갈비뼈 부러뜨려
4다채로운 신작 출시로 반등 노리는 카카오게임즈
5"강제로 입맞춤" 신인 걸그룹 멤버에 대표가 성추행
6‘찬 바람 불면 배당주’라던데…배당수익률 가장 높을 기업은
7수험생도 학부모도 고생한 수능…마음 트고 다독이길
8‘동양의 하와이’中 하이난 싼야…휴양·레저 도시서 ‘완전체’ 마이스 도시로 변신
9불황엔 미니스커트? 확 바뀐 2024년 인기 패션 아이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