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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연준 통화정책의 새 기류 - 목소리 커지는 ‘초과 부양론’

美 연준 통화정책의 새 기류 - 목소리 커지는 ‘초과 부양론’



올 초까지만 해도 전 세계의 최대 화두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의 ‘출구전략’이었다. 양적완화 정책을 줄여 없애고 곧 이어 금리인상에도 착수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신흥국 금융시장이 휘청거리는 등의 커다란 파장도 나타났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미국의 출구전략은 애초에 생각했던 것과는 상당히 다른 구도로 전개되고 있다.

부양정책을 줄여 없애 나가려는 구상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경제의 상승속도를 늦추려는 생각은 전혀 없어 보인다. 최근 들어서는 좀 더 공격적인 부양정책 주장이 연준 내부에서 힘을 얻고 있다. 인플레이션 오버슈팅, 즉 경기 과열을 유도하자는 것이다. 몸이 확실하게 달아 올라 땀을 흘리는 걸 확인하자는 것이 연준 내부 ‘초과 부양론’의 주장이다.

물가의 오버슈팅을 처음 제기한 사람은 윌리엄 더들리 뉴욕 연준 총재다. 뉴욕 연준의 총재는 미국 통화정책 결정기구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부의장으로, 다른 지역 연준 총재와는 달리 투표권을 항상 행사하는 연준의 서열 3위다. 자리의 무게가 남다른 더들리 총재는 5월 연설에서 “2%의 물가상승률 목표는 상한선이 아니다”며 “미국은 물가가 2%를 밑돌았던 기간만큼 2%를 약간 웃도는 시기를 보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 연준은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아닌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를 인플레이션의 기준 지표로 삼고 있다. 4월 미국의 물가상승률은 1.6%였다. 2012년 4월 이후 25개월째 목표치를 밑돌고 있다. FOMC 위원들의 전망에 따르면, 미국의 물가는 오는 2016년 말이나 돼야 2% 부근에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 더들리 총재 주장대로라면 미국은 물가는 오는 2021년까지 5년 가까이 2%를 넘는 다소 과열된 상태를 지속하게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2021년까지 다소 과열된 상태 유지 전망더들리 총재가 운을 떼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맞장구가 나왔다. 바로 다음날 나라야나 코처라코타 미니애폴리스 연준 총재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그 역시 “2018년부터 수년 간 다소 높은 인플레이션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코처라코타 총재는 한 술 더 떠 “물가상승률이 아닌 물가수준을 목표로 삼자”고 까지 주장했다. 코처라코타 총재가 주장한 ‘물가수준 목표제’는 지금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도입해 쓰고 있는 ‘물가상승률 목표제’와 본질적으로 다른 제도다.

물가상승률 2%를 목표로 삼는 현행 제도 아래서는 특정 연도의 상승률이 낮게 나오더라도 머지 않은 시기에 목표 상승률에 도달하면 문제시되지 않는다. 그러나 해마다 특정 수준의 물가 목표를 설정하게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올해 목표인 ‘물가지수 100’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 내년 목표치 102.5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더 높은 상승률을 유도해야만 한다. 이 제도는 2003년 벤 버냉키 당시 연준 이사가 일본의 디플레이션 퇴치법으로 권고한 매우 강력한 통화 증발 정책이다.

‘물가 오버슈팅’ 주장은 연준 내부의 중도파 진영에서도 나오고 있다. 존 윌리엄스 샌프란시스코 연준 총재는 5월 말 논문에서 “금융위기로 인해 발생한 장기 실업자가 여전히 많은 상황에서는 물가가 목표치를 웃돌도록 추구하는 것이 최적의 통화정책”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목소리들은 나름의 근거를 갖고 있다. 2012년 1월 연준이 공식 수립해 발표한 통화정책 수행전략에 기반한 것이다. ‘균형 잡힌 접근법(balanced approach)’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전략에 따르면, 연준은 물가안정과 완전고용 두 가지 책무가 상충할 경우 좀 더 심각한 문제에 정책대응을 집중한다는 원칙을 설정해 두고 있다.

관건은 ‘완전고용’의 개념이다. FOMC 위원들은 실업률 5.2~5.6% 수준이 장기적인 균형상태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반드시 ‘완전고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옐런 의장과 연준 부양론자들의 입장에서는 그렇다. 3월 말 옐런 의장은 장기간의 실업으로 고통 받고 있거나, 취업을 했어도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거나, 파트타임 일자리 밖에 얻지 못한 세 명의 실제 사례를 들면서 부양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옐런 의장은 이 연설을 통해 이 세 명 모두가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는 때가 ‘완전고용’ 상태임을 간접적으로 강조했다. 저금리 정책을 계속 밀어 붙이고, 그래서 경제가 가열돼 일자리가 더 많아지면 가능한 일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4월 미국의 고용지표는 옐런 의장을 곤혹스럽게 하기에 충분했다. 한 달 동안 취업자 수가 30만명 가까이 급증했는데도 무려 80만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경제활동을 포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장기간 실업상태에 있던 노동자들이 체념한 끝에 고용시장을 이탈한 것이다.

미국 경제계 일각에서는 ‘이들 노동자들은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서 경제를 부양해 봐야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기가 어렵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경기를 계속 부양하게 되면 고용창출 효과보다는 인플레이션 부작용만 커질 것이라는 게 이들의 우려다. 연준 내부의 매파적 인사들 역시 이런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

경제회복세가 강화되는데도 이런 양상이 지속된다면 연준 내부의 논쟁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일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광범위하게 존재하는데도 실제 경제에서는 거의 활용되지 못하는 이러한 상황은 미국 경제의 장기적인 전망에도 매우 부정적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잠재 성장률이 대폭 저하된 원인이기도 하다. 성장 속도를 높이고자 해도 ‘쓸만한’ 노동력이 부족하다면 미국 경제는 과거보다 훨씬 더딘 저성장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고용시장의 구조적 변화는 미국의 자연실업률에도 이미 반영돼 있다. 자연실업률이란 인플레이션을 자극하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 실업률의 최저 한계다. 미국 의회예산국(CBO) 추산에 따르면, 금융위기 이전에만 해도 미국의 단기 자연실업률은 5.0%로 낮았다. 하지만 지금은 5.8%로까지 높아져 있다. ‘쓸만한’ 노동력이 많지 않기 때문에 실업률을 그 이하로 낮추려고 한다면 부작용이 생길 뿐이라는 뜻이다.



연준의 고민 ‘자연실업률 높고 물가도 꿈틀’이런 가운데 미국의 물가가 최근 들어 살아나기 시작했다. 소비자물가(CPI) 상승률이 2.0%로 올라섰고, 연준의 기준지표인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상승률은 1.6%로 높아져 목표치 2.0%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 고용회복세가 제한적으로만 이뤄지는 가운데 물가가 더 빨리 오르게 된다면 미국의 경제에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가 있다. 소비자들의 실질 구매력이 떨어지는 한편으로 기업들 역시 원가 상승 압박에 시달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가 되면 인플레이션은 실업을 야기하는 부메랑이 된다.

미국 연준 내부의 논의는 우리나라 통화·환율·경제정책에도 큰 의미를 갖는다. 연준이 ‘초과 부양’을 위해 저금리를 오래 끌고 간다면, 우리나라는 필요한 경우에도 금리를 인상하기 어렵다. 원화 가치가 더 절상돼 대외 경쟁력과 수출 기업의 수익성이 악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연준 내부의 논란이 본격화되는 경우에는 글로벌 금융시장이 불안해지면서 우리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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