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종혁의 ‘술로 만나는 중국·중국인’ ⑪ 신장 위구르자치구 투루판 와인 - 낮고 덥고 건조한 땅에서 ‘명 품 포도주’ 솟다
- 모종혁의 ‘술로 만나는 중국·중국인’ ⑪ 신장 위구르자치구 투루판 와인 - 낮고 덥고 건조한 땅에서 ‘명 품 포도주’ 솟다

여름의 사막은 황량하고 뜨겁다. 강렬하게 쏟아지는 뙤약볕 아래 사막 위를 걷다 보면 발아래 짓밟히는 모래가 천근 쇳덩어리처럼 육중하다. 신장 위구르자치구 중앙에 위치한 타클라마칸 사막을 걷는 느낌이 딱 이렇다. 타클라마칸은 위구르어로 ‘들어가면 살아나올 수 없는 땅’이다. 이름에 걸맞을 만큼 거대한 모래 바다다.
타클라마칸 사막 최북단에는 오아시스 도시 투루판이 자리 잡고 있다. 투루판은 위구르어로 ‘팬 땅’이란 뜻이다. 면적 5만㎢ 중 80%인 4만㎢의 고도가 해면보다 낮기 때문이다. 여름 기온이 40~50℃를 오르내리고 지표면은 최고 83℃까지 올라가는 불의 땅. 연평균 강수량은 18.2㎜에 불과하고 증발량은 강수량의 180배인 3000㎜에 달하는 건조한 땅이다.
이처럼 투루판은 중국에서 가장 낮고, 가장 덥고, 가장 건조하다. 이런 혹독한 자연환경을 지녔지만, 투루판은 투르크어로 ‘풍요한 땅’이라고도 불렸다. 그 이유는 척박한 자연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고대 투루판인들이 건설한 인공 지하수로 ‘카레즈’에서 비롯됐다. 카레즈는 페르시아어 ‘지하수’에서 유래했다. 1년 내내 만년설로 뒤덮여 있는 톈산산맥에서 흘러내린 물은 카레즈를 통해 투루판까지 이어져 내려온다.
2000여 년 전부터 건설되기 시작한 카레즈는 투루판인들이 삽과 곡괭이로 한 삽 한 삽 지하땅굴을 파서 완공한 대역사다. 이렇게 만들어진 지하수로는 총연장이 5000㎞에 달한다. 베이징에서 저장성 항저우에 이르는 대운하(3200㎞)보다 더 길다. 카레즈 덕분에 투루판은 뜨겁고 건조한 기후를 이겨내고 톈산산맥에서 흘러온 물을 받아냈다. 모래와 강풍의 위협을 극복하고 질 좋은 물을 확보해 옥토로 변모했다.
카레즈의 축복으로 투루판은 ‘과일의 여왕’ 포도의 재배가 가능했다. 투루판은 1년 중 300일 이상이 맑은 날이고 강렬한 햇볕이 작열한다. 서리가 내리지 않는 날도 200~240일에 달해 포도의 성장과 발육에 알맞다. 현재 투루판 일대에서 재배되는 포도 품종은 550여 종에 이르고, 포도나무의 평균수명은 150년에 달한다. 2012년 현재 재배 총 면적은 45만묘(1묘=243㎡)를 넘어섰고, 총생산량은 83만t으로 중국 포도 생산량의 10%를 차지한다.
중국인들은 투루판 포도를 떠올리면 도심에서 동북쪽으로 6㎞에 있는 포도계곡을 연상한다. 포도계곡은 길이 8㎞, 폭 2㎞에 달하는 포도농원으로, 오늘날 관광객을 위한 테마파크로 변질됐다. 이에 반해 시내에서 동쪽으로 50여㎞ 떨어진 투루판시 산산현 루커친은 전형적인 포도 재배촌이자 위구르인 마을이다. 루커친 주민 3만여명 중 공무원과 공안으로 일하는 한족을 제외하고 95% 이상이 위구르인이다.
오늘날 루커친 주민들에게 포도는 생명줄이나 다름 없다. 2012년 현재 루커친 주민의 평균 소득은 7650위안(약 130만원)으로 신장 농민의 평균소득보다 10% 가량 높다. 특히 중계상인으로 활동하는 32명 주민의 평균소득은 4만8천위안(약 811만원)에 달한다. 이는 투루판 도시민 평균소득(1만7587위안)보다 3배 가까이 높은 수준이다.
루커친을 풍성하게 하는 것은 물론 포도만이 아니다. 루커친은 투루판 무캄의 본고장이다. 무캄은 노래·음악·춤 등이 함께 어우러진 위구르인의 종합예술이다. 무캄은 신장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슐레만 아부티 루쿠친 무캄전승센터 부주임은 “7세기경 유목하던 위구르인이 신장에 정주하면서 종교의식과 일상노동 과정에서 불리고 춤추어진 것이 무캄의 시초”라고 밝혔다. 위구르인이 톈산산맥을 넘어 신장 서부지방에 처음 정착한 곳이 바로 루커친이다. 무캄에서 불리는 노래는 위구르인의 신화·역사·문화·감정·애환 등이 담겨져 있다.
루커친의 대표적인 예술인 투얼슨 쓰마이는 “무캄은 다양한 역사적 전통 위에서 꽃핀 위구르인의 민족문화와 정서를 표현한 서사 시가”라고 말했다. 무캄 예술인은 어떠한 악보나 문서 없이 오직 구전으로 내려져 온 내용을 암기하고 공연한다. 2005년 유네스코는 이런 무캄의 가치를 높이 평가해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지정했다.
최근 들어 투루판은 무캄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내놓을 또 다른 명품을 준비하고 있다. 바로 포도주다. 투루판 포도주는 이미 당나라 때 장안에 들어와 판매됐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유명했다. 왕한은 ‘량주사’에서 ‘맛난 포도주를 야광 잔에 가득 따라 놓으니 (葡萄美酒夜光杯) 말 위에서 비파를 뜯으며 잔 비우길 재촉하네 (欲飮琵琶馬上催) 술에 취해 사막에 쓰러져도 그대 비웃질 마소 (醉臥沙場君莫笑)’라고 읊기도 했다.
그러나 신장 전체가 이슬람화되면서 오랫동안 명맥이 끊겼다. 1976년 투루판 포도주공장이 문을 열면서 부흥의 전기를 마련했다. 2002년 홍콩 증시에 성공적으로 상장했고 2003년에는 이름을 누란포도주업으로 바꿨다. 2007년에는 민영화 작업을 마무리하고 중국 전역에 판매망을 구축했다. 지금은 중국을 대표하는 6대 포도주기업 중 하나로 성장했다. 유럽의 선진양조시설과 기술을 도입해 한해 5000t 이상의 포도주를 생산하고 있다.
위구르인을 비롯한 신장 내 대다수 소수민족은 술을 마시지 않는 무슬림이다. 이 때문에 누란포도주업은 신장 내 판매 실적이 지지부진하다. 하지만 뛰어난 품질의 포도와 최적의 저장조건을 바탕으로 최고의 포도주를 생산하여 판매량이 급증하고 있다. 중국 와인 애호가들은 “누란포도주의 맛이 중국 포도주 중 가장 빼어나다”고 평가하고 있다.
중국은 이미 세계 최대의 와인 소비국이다. 작년 홍콩을 포함해 1억5500박스(약 18억6500만병)의 레드와인을 소비해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제쳤다. 중국 내와인 열풍에 힘입어 투루판에서 포도주를 생산하는 기업은 2012년 말 14개로 늘어났다. 카레즈의 맑은 물과 맛 좋고 당도 높은 포도로 생산되는 투루판 포도주. 중국을 넘어 세계인의 식탁 위에 오를 날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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