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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VESTMENT - “벤처캐피털은 주인공 아니라 조연이다”

INVESTMENT - “벤처캐피털은 주인공 아니라 조연이다”

실리콘밸리서 개발자로 시작해 벤처캐피털 창업한 윤필구 빅 베이신 캐피털 대표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주최 ‘글로벌 스타트업& 커리어 비전’에서 강연 중인 윤필구 빅베이신캐피털 대표.



윤필구(40) 빅 베이신 캐피털 대표의 이력은 독특하다. 스타트업과 대기업을 모두 경험했고, 개발자로 이력을 시작해 벤처 캐피털리스트(VC)로 전업했다. 서울대 전기공학부 학사, 미 카네기멜론대 석사 학위 취득 후 신생 기술업체에서 개발자로 일을 하다가 와튼스쿨 경영전문대학원(MBA)을 마치고 VC가 됐다. 인텔 캐피털, 월든 인터네셔널 등 대기업을 거쳐 2013년엔 벤처캐피털을 직접 창업했다. 바로 빅 베이신 캐피털이다. “VC 업무를 백지 상태부터 실리콘밸리에서 배워” 실리콘밸리 VC의 생태를 잘 아는 윤 대표에게 VC에 관해 들어보았다.

왜 개발자에서 VC로 업종을 전환했나?

석사 졸업 후 모교 교수가 창업한 반도체 캐드 스타트업에서 개발자로 일을 시작했다. 일을 하다 보니 개발이 아니라 현장에서 뛰는 일이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회사 내에서 애플리케이션 엔지니어(AE)로 직무를 바꿨다. AE는 고객을 직접 만나고 그들의 요구를 분석해 개발팀에 전달하는 역할이다. 그 일을 하면서 관심이 기술에서 사업으로 자연스럽게 전환됐고, 이력에 변화를 주고 싶어서 MBA에 입학했다. 기술과 경영을 접목시킨 일을 하고 싶었다. 졸업 후 VC업체인 인텔 캐피털에서 일했는데 일이 나와 잘 맞았다.

개발자 출신 VC가 흔한가?

미국에선 VC들의 출신배경이 다양한 편이다. 다른 사업이 성공해서 VC가 되기도 하고, VC 업체 사원부터 시작해 성장하는 경우도 있다. VC라는 일 자체가 금융업이라기보다 서비스업에 가깝다. 무엇보다 관련 산업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신생업체를 도와줄 역량이나 업계 인맥도 있어야 한다. 한국은 그동안 은행권이나 증권사 등 금융쪽에서 VC가 많이 나왔는데 요새 미국식으로 변하는 추세다.

월든 인터내셔널은 자산규모 2조 달러에 25년 역사를 지닌 대형 VC업체다. 안정적인 직장을 떠나 홀로서기를 시작한 이유가 궁금하다.

VC로서 첫 직장이 인텔 캐피털이었는데 이땐 미국 기업하고만 일을 했다. 월든은 중국, 대만, 한국 등 아시아쪽에 투자를 많이 한 덕분에 월든에서 일하면서 한국을 자주 오갔다. 한국에서 많은 기회를 발견했고, 한국 사업체와 인맥도 생겼다. 그러다 보니 한국 투자를 더 공격적으로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월든도 한국에 투자를 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주요 시장이 아니다 보니 공격적으로 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2010년 월든에 입사한 윤 대표는 2013년 겨울 회사를 나와 빅 베이신 캐피털을 창업했다. 월든에서 한국 투자 일을 하면서 좋은 성과를 내기도 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좋은 기회를 놓친 적이 더 많았다고 윤 대표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돌이켰다. 펀드 레이징이 제대로 될지 안 될지조차 불투명했음에도 “바닥부터 만들어 나간다는 일이 정말 매력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에” 윤 대표는 창업을 결심했다.

빅 베이신 캐피털의 투자 전략은 무엇인가?

기본 철학은 기회주의(opportunistic)다. 나쁜 의미의 기회주의는 아니다. 투자 기회를 VC가 나서서 만들려고 하지 말고 좋은 기회를 포착하는 데 주력하자는 뜻이다. VC가 투자 기회를 만들긴 어렵다. 예전에 미국에서 최고급 VC들이 그런 시도를 했지만 거의 다 실패했다. 회사를 만들고, 없는 시장을 개척하는 일은 사업가의 몫이지 VC의 몫이 아니다. VC는 항상 시장을 주시하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떤 기회가 생기는지 지켜봐야 한다. 좋은 기회가 있을 때 좋은 사업가를 최대한 도와주는 게 VC의 일이다. VC는 주인공이 아니라 조연이다.

투자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일은?

한국의 투자 환경, 창업 환경을 선진국 모델로 바꾸는 것이다. 나는 VC 업무를 백지 상태부터 실리콘밸리에서 배웠다. 국내 투자환경은 실리콘밸리와 차이가 많았지만 최근 크게 좋아졌다. 앞으로 실리콘밸리 모델을 한국에 적용하고 싶다. 회사 설립부터 이사회 구성, 투자 조건을 실리콘밸리 식으로 만들겠다.

내 펀드에서 하는 중요한 일 중 하나가 해외투자 유치를 모색하는 거다. 우선 내 펀드가 한국 업체에 투자하고, 후속 투자를 미국이나 중국, 일본에서 받아오는 다리 역할을 하고자 한다. 내 펀드에 투자하는 사람들을 보면 한국 시장에 관심이 많고 향후 본인이 직접 투자하러 들어올 계획인 경우가 적지 않다.

윤필구 빅 베이신 캐피털 대표는 실리콘밸리 개발자에서 벤처투자자로 전업했다.



한국과 실리콘밸리를 잇는 ‘가교 역할’은 윤 대표가 빅 베이신 캐피털을 창업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윤 대표는 다른 인터뷰에서 “실리콘밸리에서 한국 신생업체에 투자해 성공한 사례를 만들고자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두 지역을 보다 가깝게 하려는 윤 대표의 노력은 빅 베이신 캐피털 창업 이전에도 있었다. 그는 2012년 5월 온라인 매체 테크니들을 창간했다.

해외 언론의 IT 관련 기사를 한글로 요약해 전달하는 큐레이션 매체다. 영어 원문 기사를 매일 챙겨 읽기 부담스러운 한국 업계 관계자들은 물론 IT에 관심이 많은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일간 페이지뷰는 2014년 5월 1일 기준 1만~1만5000건 정도다.

한국 신생업체의 경우 사업 초기부터 글로벌 시장을 노리는 편이 나은가?

창업자나 경영진이 해외 사업 경험이 없다면 해외시장 진출은 위험요소가 많아 권하지 않는다. 기술집약적인 B2B 산업, 예컨대 반도체 같은 경우는 성공할 수도 있다. 그런 분야는 핸드폰, 자동차, TV 등 제품으로 말을 한다. 우리 대기업들이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 하지만 스타트업 대부분은 서비스업이다. 현지인의 생활양식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에서 회사를 다녀봤거나 사업을 해본 경험이 없다면 한국에서 먼저 사업을 시작하는 편이 낫다.

한국 창업시장은 미국과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가?

실리콘밸리 신생업체의 가장 큰 특징은 독창적인 모델이 많다는 것이다. 남하고 똑같은 것을 싫어해서 그런지, 독창적이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어서 그런지는 모르겠다. 특이한 모델은 그만큼 위험부담이 크지만, 그런 리스크를 떠안고 추진하는 것이 실리콘밸리의 특징이다. 그만큼 실패를 많이 하지만 그중에서도 크게 성공하는 사례가 나온다. 대표적인 기업이 에어비엔비다. 처음엔 자기 집을 남에게 빌려준다는 발상을 모두가 이상하다고 여겼지만 지금은 공유경제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모델로 자리잡았다.

반면 한국 창업시장은 위험 감수를 꺼린다. 대기업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나는 문제다. 뭔가를 혁신하겠다고 프로젝트를 많이 하는데 주로 외국 대기업 벤치마킹이다. 검증된 모델을 편애하는 경향이 있다. 창업자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한국은 개발자들이 똑똑하고 인력이 우수한 데 비해 인건비가 미국보다 훨씬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다. 미국에서는 실력 있는 개발자를 고용하려면 연봉 1억 이상은 줘야 하는데 한국 개발자 연봉은 그 정도가 아니다. 큰 돈 없이 뭔가를 만들어보기가 좋은 환경이다.

지금까지 투자한 신생업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업체나 일화가 있다면?

아무래도 한국에서 큰 성공을 거뒀던 선데이토즈가 기억에 남는다. 처음 선데이토즈에 투자를 결정한 건 월든에서 일하던 2010년 가을이었다. 월든은 컴투스, 엔도어스 등 한국 게임회사 투자에 성공한 전력이 있었고 당시 소셜게임 업체 징가가 아주 주목받을 때였기에 전략적으로 소셜게임 투자를 결정했다. 앱스토어 차트를 펼쳐놓고 1위부터 20위 업체에 연락을 하고 대부분 만나봤다.

그중에서 선데이토즈가 가장 유망하다고 판단했다. 소셜게임 수명은 보통 3~6개월로 짧은 편인데 선데이토즈는 1년 넘게 사용자를 붙잡는 능력이 있었다. 큰 돈을 벌지는 못하더라도 그 수치를 오래 유지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당시 선데이토즈는 모바일게임이 아니라 PC용 소셜게임을 개발하는 업체였다. 싸이월드 앱스토어를 통해 게임을 유통했는데, 나름 선전했지만 싸이월드 자체 이용자가 점점 줄어드는 상황이었다.

2011년 해킹 사건이 터지면서 사태가 더욱 심각해졌다. 당시 선데이토즈측과 회의를 많이 가지면서 모바일 시장으로 옮겨가기로 결정했다. 전망은 아주 불투명했다. 구글플레이나 애플 앱스토어에 올릴 계획이었는데 마침 카카오톡이 게임 서비스를 런칭하면서 선데이토즈를 불렀다. 거기에 ‘애니팡’을 내놓은 것이 큰 성공으로 이어졌다.

‘애니팡’ 신화로 유명한 선데이토즈는 윤 대표의 가장 성공적인 투자 중 하나다. 2012년 7월 카카오톡을 통해 발매될 당시엔 전망이 그리 밝지 않았지만 출시 한 달만에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만 1000만 다운로드를 기록하며 매출 1위를 달성했다. 이에 힘입어 선데이토즈는 2013년 11월 코스닥에 상장하고 ‘애니팡’의 후속작 ‘애니팡2’로 또 한 번 큰 성공을 거두는 등 승승장구했다. 한편 ‘애니팡2’ 표절 의혹, 상장 과정 중 보호예수 규정위반 등 각종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윤 대표는 관련 논란에 대해 “선데이토즈에 투자한 주체는 월든이고, 논란이 불거진 건 내가 월든을 나온 다음의 일이라 언급하기가 곤란하다”며 답하지 않았다.

창업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하나 한다면?

고민하는 단계에서 아이디어가 새어나갈까 걱정하지 말고 최대한 관계자를 많이 만나 검증받아야 한다. 혼자만 안고 있거나 주변 사람들하고만 얘기하면 시야가 좁아진다. 관련 산업 종사자, 예상 고객, 투자자, 동업자 후보군을 최대한 많이 만나서 검증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면 지식이 넓어지고 새로운 기회를 발견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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