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ELLING - 궁지에 몰린 독립 서점의 반격
BOOKSELLING - 궁지에 몰린 독립 서점의 반격
‘트레인스포팅(Trainspotting)’의 저자 어빈 웰시는 자기 서점의 창문 포스터로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 형제들’과 윌리엄 버로스의 ‘막다른 길(The Place of Dead Roads)’을 선택했다. 판타지 소설가 테리 프래체트의 서점 내러티비아는 닐 게이먼의 ‘신들의 전쟁(American Gods)’과 린 트러스의 구두점 찬가 ‘먹고, 쏘고, 튄다(Eats, Shoots and Leaves)’를 전시하고 있다. 몇 집 아래에는 영국 베스트셀러 ‘서른 번째 생일 선물(Man and Boy)’의 저자 토니 파슨스의 서점이 있다. 존르카레와 마리오 푸조의 작품들로 진열장이 가득 채워졌다. 도서판매의 신시가지 ‘작가의 거리(Author Street)’ 풍경이다.
이들 중 실제로 존재하는 서점은 하나도 없다. 모두 최근 개설된 영국 웹사이트 myindependentbookshop.co.uk에 속해 있다. 누구든지 자신이 좋아하는 도서 목록을 게시할 수 있다. 자신의 추천도서를 어떤 독자가 구입하면 자신이 선호하는 오프라인 서점에 정가의 일정비율이 배분된다.
이 사이트를 개설한 펭귄 랜덤 하우스는 아마존과 경쟁할 생각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마존의 고질라 같은 시장 지배를 혐오하는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시애틀을 본거지로 하는 그 공룡 도서판매 업체와 전통 서점 간의 전쟁(현재 아마존이 해치트 북 그룹과 벌이는 가격전쟁은 말할 필요도 없다)에서 myindependentbookshop은 사기를 북돋우는 지원사격이다.
“사이트의 아이디어가 마음에 든다.” 런던 노팅힐 거리에 있는 서점 겸 문학 에이전시 루티엔스&루빈스타인의 공동사장 펠리시티 루빈스타인이 말했다. “아마존과 그 알고리즘은 개인적이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누구나 신뢰하는 사람들의 추천도서 목록 제공이 독립 서점의 매력이라는 사실을 그들이 간파했기 때문이다.”
루티엔스&루빈스타인은 미래가 인쇄 잉크보다 더 새까맸던 5년 전 문을 열었다. 현재 영국에 남은 독립 서점은 1000개도 안 된다(반면 미국의 숫자는 1만1000개에 가깝다). 그런 환경에서 그들의 성공은 거의 기적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런던의 첼시에선 더 기이한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킹스 로드 한 귀퉁이에 박혀 있는 존 샌도 (북스)사가 최근 매장 공간을 3분의 1 늘려 확장했다. 1957년 창업해 극작가 톰 스토파드경과 가수 엘튼 존 경 등이 단골로 찾는 서점이다.
“이웃 매장 부지를 인수할 기회가 있었다.” 서점의 공동사장 자니 드 팰비가 설명했다. “분명 불합리한 일은 아닌 듯했다. 거절했다면 실제로 사망선고를 받은 듯 끔찍한 기분이 들었을 법하다.”
드 팰비에 따르면 수많은 독립 서점의 실종으로 인해 사람들이 아직 남아 있는 서점들을 더 중시하게 됐다. “일부 고객을 잃었을지 모르지만 전체적으로 매출은 더 늘었다. 그것도 바로 아마존 때문이다. 실체적인 공간의 느낌, 기분 좋은 외출 공간으로서 서점의 기능이 사람들에게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사람들이 이 곳을 찾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서점의 시대는 끝났다는 사고방식이 자기 책방과 같은 매장에 가장 큰 위험이라고 그는 말한다. 말이 씨가 되어 현실화될 위험성이 있다는 의미다. “물론 아마존, 높은 임대료, 금리 등으로 인해 서점들이 분명 압박을 받고 있다. 그러나 서점에 들어와 ‘이런 책방이 아직도 존재한다고는 생각도 못했다’고 말하는 사람 숫자가 정말 놀랄 정도로 많다. 그들은 서점을 찾지도 않는다. 곧장 온라인으로 향한다.”
영국 서점협회와 출판사협회가 지난 가을 ‘책들은 내 가방(Books Are My Bag)’ 캠페인에 착수한 것도 이 같은 사고방식에 맞서기 위해서였다. 이 캠페인은 국제적인 광고 대행사 M&C 사치가 기획했으며 독립 서점뿐 아니라 서점 체인까지 아울렀다. 슬로건이 새겨진 가방을 들고 다니는 유명인사들의 사진을 활용했다. 배우 빌 나이와 데미안 루이스(‘홈랜드’) 그리고 스타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 같은 유명인들이 참여했다.
그에 공감하는 유명인과 저명한 작가들이 서점에 투자하고 있다. 모델 릴리 콜은 클레어 드 루엔의 후원자가 됐다. 런던 웨스트 엔드에 있는 미술 및 사진 도서 전문서점이다. 한편 미국에선 소설가 앤 패체트가 테네시주 내슈빌에 파나서스 북스 서점을 열면서 전국적으로 언론매체의 관심을 끌었다. “아마존이 죄다 결정하지는 못한다”고 그녀가 단언한다. “사람들이 그런 결정을 할 수 있다. 돈을 어디서 어떻게 쓸지는 소비자 몫이다. 서점이 제공하는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은 서점에서 책을 구입하면 된다.”
몇몇 국가에선 정부가 서점을 보호한다. 프랑스의 ‘출판물 다양성(bibliodiversity)’ 정책은 도서의 할인율을 제한한다. 한편 독일에선 출판사가 정한 가격에만 도서를 판매할 수 있다. 하지만 루빈스타인은 자신의 서점 같은 곳이 “정겹지만 자선을 필요로 하는 한물간 대상”으로 간주돼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사람들이 우리를 출판산업에 필수 불가결한 더 나은 대안으로 생각해야 한다.”
아마존과 대형 체인들은 초대형 베스트셀러에 전적으로 초점을 맞춘다며 그녀가 덧붙였다. 그렇기 때문에 “독립 서점들이 사라질 경우 특정한 유형의 책들을 출판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진다. 소설가 힐러리 맨틀의 중세물 같은 책을 펴낼 만한 플랫폼이 없어지게 된다. 이는 ‘울프 홀(Wolf Hall)’ 같은 작품이 등장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루빈스타인이 전적으로 아마존에 비판적인 건 아니다. “어떤 책이든 다음 날 배달 받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아마존은 작은 풀이 새싹을 틔울 만한 환경은 아니다. 씨앗의 발아를 돕는 종묘장이 있어야 한다. 독립 서점들이 그런 역할을 한다.”
myindependentbookshop.co.uk에 관해 그녀가 꺼림칙하게 여기는 문제는 “원클릭(쇼핑)의 이점을 부각시킨다”는 점이다. 루티엔스&루빈스타인은 대중과 직접적인 소통을 선호한다. 서점에서 작가와의 대화를 기획하거나 5x15 같은 행사를 통해 도서를 판매하는 식이다. A S 바이어트, 처크 팔라니크 등의 다양한 작가 5명이 각각 15분씩 강연하는 행사다. 사업 다각화도 루티엔스&루빈스타인에 효과적이었다. “우리는 파리에서 들여온 멋진 독서용 안경과 미국인 미술가의 그림책들도 판매한다. 유명한 소설의 첫 행을 새겨 넣은 컵과 쟁반도 직접 디자인했다”고 루빈스타인이 말했다.
“독립 서점들은 책을 판매하는 다른 개체들과 차별화되는 능력에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고객들을 신뢰해야 한다”며 그녀가 말을 이었다. “사람들은 멍청하지 않다. 책을 좋아하고 서점 방문을 좋아한다면 그들이 살아 남도록 후원할 필요가 있으며 약간 더 비싼 값을 치를 만한 가치가 있음을 판단할 수 있다. 어디서 방목한 소를 판매하는지 이력을 공개하는 저 길 아래쪽 정육점에서 고기를 구입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강남 월세가 94만원인데...서울 최고가는 '이곳' 입이 쩍
2지난해 이자도 못내는 '한계기업' 상장사 467곳, 이유 살펴보니
3미국투자이민 도심 공공 프로젝트가 가장 안전...국민이주(주), 27~28일 설명회
4토요타코리아, 역동적 스타일로 재탄생 ‘2025년형 캠리’ 출시
5“다들 해외여행 간다더니만”…카드 해외사용액 역대 최대 기록
6"네트워크도 AI로 전환한다"...KT, AI 오퍼레이터 도입
7컴투스홀딩스 신작 ‘가이더스 제로’, 스팀 얼리 액세스 돌입
8'식물성 대체식품' 이노하스, 배우 정일우와 'Merry Giftmas' 바자회 연다
9삼성, 이번엔 진짜 ‘엔비디아 왕국’ 입성할까?...주요점은 ‘결합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