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BUKCHON | 북촌 문화 만드는 화수분

BUKCHON | 북촌 문화 만드는 화수분

이윤신 이도 회장은 북촌 문화의 한가운데 서 있다. 그는 도자기 공예를 시작으로 아카데미, 갤러리, 하우스콘서트 등으로 영역을 넓혔다. 2012년 가업을 이은 서울 가산동 아울렛 ‘W몰’에도 예술경영을 접목시키고 있다.
이도아르쎄는 북촌의 ‘문화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이윤신 대표는 북촌의 정통성을 지키고자 한다.



서울 종로구 북촌마을로 가는 보편적인 길은 서울지하철 3호선 안국역에서 헌법재판소를 지나는 경로. 지리적으로 중심에 해당하는 헌법재판소 삼거리와 정독도서관 입구주변은 북촌마을에서도 가장 번화한 곳으로 꼽힌다. 도로변 작은 소품매장과 카페엔 관광객이 붐비고 사이사이 골목으론 한옥을 찾는 발길이 분주하다.

하지만 북촌마니아들은 이곳을 피해 가회동주민센터 윗길을 택한다. 북촌미술관과 백인제 가옥, 한옥문화원, 김영사출판사, 안국선원이 이어지는 길이다. 매장의 번잡함 대신 갤러리와 문화원이 자리해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수공예기업 이도가 운영하는 복합문화공간 이도아르쎄는 이 길의 끝자락, 삼청동으로 이어지는 언덕길 초입에 서 있다.

지하 2층부터 지상 3층까지 5개층에 그릇 제작 아카데미와 카페, 도예숍, 갤러리 등이 들어섰다. 이윤신(56) 이도 대표는 “이도아르쎄는 북촌이 갖는 전통적이면서도 자유로운 분위기와 맞는 곳”이라며 “도자기를 바탕으로 우리 민족이 간직한 풍류와 해학, 따뜻함을 나누는 북촌의 대표 문화 공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가 북촌에 둥지를 튼 것은 2010년의 일이다. 홍익대 미술학과와 산업미술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일본 교토시립예술대 대학원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다. 30대 초반의 그가 선택한 길은 생활자기였다. 당시 우리나라는 급속한 산업화의 영향으로 스테인리스와 플라스틱 식기가 식탁을 점령하던 때.

일본의 작은 라면집에서도, 선술집에서도 도자기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매료됐던 이 대표는 ‘생활자기 수준을 끌어 올리는 주인공이 되자’고 마음먹었다. “내가 추구하는 도자기는 예술작품이 아니라 생활소품에 가깝다. 무엇을 담느냐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도자기를 통해 밥상머리 교육, 식구라는 개념을 살리고 싶었다.”

국립현대미술관 큐레이터로 활동하던 그는 1990년 이도를 세우고 본격적으로 그릇만들기에 뛰어들었다. 박여숙화랑, 서미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 정도로 작가로서도 인정받았다. 2004년 인사동 쌈지길에 작은 매장을 내며 직접 유통에 뛰어들었지만 1년 만에 문을 닫았다. 인사동 거리가 예스러움을 잃고 상업화됐기 때문이란다. 이후 소격동에서 한옥 한 채를 빌려 매장을 운영하다가 2010년 북촌으로 터전을 옮겼다.

그는 “인사동과 지척인 동네를 염두에 두고 발품을 팔아 찾은 곳이 바로 이곳 가회동”이라며 “내가 하고자 하는 일과 이 동네가 아주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단순한 판매가 아닌 콘텐트가 있는 문화공간을 만들고 싶었는데 소격동 한옥은 규모가 너무 작았다. 하지만 한옥이 주는 편안함과 도자기와의 어울림을 놓치고 싶진 않았고, 그래서 한옥이 많은 이곳을 택하게 된 것 같다.”

당시만 해도 북촌마을은 서울 강남에 사는 부자들이 세컨드 하우스로 한옥을 한두 채 마련해 두던 곳이었다. 이도아르쎄처럼 문화 콘텐트를 생산하는 곳은커녕 변변한 소품매장 하나 없었다. 북촌으로 오는 관광객도 헌법재판소 삼거리 정도에서 다시 발길을 돌리곤 했다.

이도아르쎄는 럭셔리한 외관과 달리 소박한 내부가 특징이다. 손으로 직접 빚어 저마다 다양한 모습을 지닌 도자기들이 아기자기하면서도 편안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대표는 “도자기는 대량생산이 아닌 손으로 빚어내는 것에 큰 가치가 있다”며 “만드는 과정을 통해 도자기의 진정한 아름다움, 옛것의 소중함을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아카데미 개설은 이같은 이유에서다. 그는 “아카데미 도예클래스는 몇 개월을 기다려야 수강할 수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아카데미에서 배출한 수강생이 늘자 이들의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또한 열악한 환경에서 작업하는 수공예 작가들이 마음 편히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자신과의 약속도 지키고 싶었다. 3층의 갤러리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지하 1층의 이도 카페 역시 단순히 음료를 파는 곳이 아니다. 머그, 접시 등 이도에서 만든 도자기 작품을 손님들에게 선보이는 장이다.

최근 이도의 프로그램 중 가장 주목받는 것은 하우스콘서트다. 콘서트는 미술 작품이 전시된 갤러리에서 진행된다. 처음엔 전시회 개막 기념행사로 공연했던 것이 지인들의 찬사와 응원으로 짝수 달 둘째 주 목요일로 아예 정례화됐다. 하우스콘서트의 정회원은 20명 남짓. 언론사 논설위원, 로스쿨 부원장, 병원장, 중소기업 대표, 법조인, 경찰서장 등으로 이들이 지인을 초대해 40명 정도의 소규모 콘서트가 열린다. 얼마 전에는 최태지 전 국립발레단장이 와서 콘서트를 즐겼다.

지난 6월 공연엔 표현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듣는 오페라 가수 이윤경이 모차르트, 베르디, 슈베르트의 가곡과 한국 가곡 등 9곡을 열창했다. 30여 명의 관객은 노래 한 곡이 끝날 때마다 공연자로부터 노래에 얽힌 사연을 들으며 고개를 끄떡였다. 공연을 마친 후엔 공연자와 와인잔을 기울인다. 이 대표는 “가끔 회원들이 자신의 연주나 노래실력을 선보이기도 한다. 자신의 예술세계와 인생에 자극 받고 돌아가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하우스콘서트는 이 대표 사비를 털어 진행하고 있다. 늘 비용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고 있지만 ‘비즈니스 마인드’는 버린 지 오래라고 한다. 그는 “하우스콘서트의 확대를 고민 중”이라고 했다. 더 많은 사람에게 경험의 공간을 만들어 주고 싶은 까닭이다.

이 회장은 2012년 1월 ‘가업’을 물려받아 서울 가산동 패션타운의 ‘W몰’ 대표로 취임했다. 취임 직후 VIP 마케팅에 집중했다. VIP라운지, 키즈 카페를 마련했고 유아 휴게실, 층별 향기 마케팅, 옥상 테마공원 등 기존 아울렛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편의시설을 갖췄다. 아울렛 최초로 기획한 문화센터도 주목 받았다. ‘이도 아카데미’ 도예교실도 운영 중이다.

그 결과 1년 만에 VIP 고객 수가 전년보다 10% 늘었고, 매출 규모는 37.8% 증가했다. 특히 전체 매출에서 VIP 고객이 차지하는 비중은 2배나 뛰었다. 이 대표는 “고객과 감성적으로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며 “직원 서비스 교육, 편안한 공간 등으로 차별화된 감동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W몰은 뭔가 다르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



상업화 욕망 비껴가는 북촌 희망그릇 만든 지 25년. 생활자기 한 우물을 파는 사이 이도는 대표적인 생활자기 브랜드로 성장했다. 지나치지 않은 장식과 맑지만 가볍지 않은 색상, 수공예에서만 느낄 수 있는 비정형 곡선의 미가 소비자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한 점당 2만~3만원 수준의 그릇은 특히 젊은 층에게 인기가 많아 혼수용품이나 기념일 선물로도 많이 나간다. ‘이도’는 아직 낯선 이름이지만 ‘이윤신의 그릇’ ‘이윤신의 도자’는 브랜드 파워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

이 대표는 이도가 북촌의 문화 흐름에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촌에는 작지만 개성이 강한 갤러리나 매장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이들이 하나둘 모여 북촌의 문화를 만들 것이다. 우리 이도가 북촌의 문화와 예술 교류의 근거지가 되고 싶다.”

그는 북촌의 상업화를 걱정했다. 안국역에서 정독도서관 사이의 상업시설이 갈수록 북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는 늘 필요한 것 이상의 것을 욕망한다. 그 과잉된 욕망을 버리는 것이 중요하다”며 “손님과 시선을 맞출 수 있는 작은 카페면 족한 동네가 대형 프랜차이즈업체의 각축장이 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롯데 뒤흔든 ‘위기설 지라시’…작성·유포자 잡힐까

2박서진, 병역 면제 논란…우울·수면 장애에 가정사까지?

3홍준표 "기업 살아야 한국이 산다...투자하는 기업엔 얼마든지 특혜를 줘도 상관 없어"

4미국투자이민 새 기준 국민이주㈜, VIP 미국영주권 세미나 개최…예비 신청자 기대감 모아

5컴투스 ‘스타시드’, 출시 하루만에 태국 구글 인기 게임 1위

6지씨셀 떠난 제임스 박 대표...롯데바이오로직스로

7S&P "내년 한국 기업 신용도 둔화 가능성 높아"

8자본시장법으로 '주주 충실 의무' 보장한다…정부안, 여당 협의 후 국회 제출 계획

9김준수 협박해 8억 갈취한 30대 여성 BJ, 끝내…

실시간 뉴스

1롯데 뒤흔든 ‘위기설 지라시’…작성·유포자 잡힐까

2박서진, 병역 면제 논란…우울·수면 장애에 가정사까지?

3홍준표 "기업 살아야 한국이 산다...투자하는 기업엔 얼마든지 특혜를 줘도 상관 없어"

4미국투자이민 새 기준 국민이주㈜, VIP 미국영주권 세미나 개최…예비 신청자 기대감 모아

5컴투스 ‘스타시드’, 출시 하루만에 태국 구글 인기 게임 1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