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전쟁, 다시 포화 속으로 - 떨고 있는 원화 달러·엔·유로·위안화에 사면초가
환율전쟁, 다시 포화 속으로 - 떨고 있는 원화 달러·엔·유로·위안화에 사면초가
국제 금융시장이 다시 요동치고 있다. 9월 들어 달러가 강세로 급반전하면서 잠잠하던 환율전쟁이 다시 포화 속으로 빠져드는 양상이다. 주요국이 각자도생에 골몰하면서 모든 상황은 한국 경제에 불리하게 돌아간다. 우리나라의 주요 무역국 환율(달러·엔·유로·위안)이 동시에, 그것도 빠른 속도로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환율 쇼크로 내년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가 예상보다 큰 폭으로 감소 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신(新)환율전쟁 양상과 파장을 취재했다. 최근 시중의 환율 공포는 과한 것일까. 역사는 그렇지않다고 말한다. 한국 경제는 약(弱)달러·엔고(高) 때 잘 먹고 잘 살았다. 강(强)달러·엔저(低) 시기에는 치명타를 입었다. 2001년 이후 이어진 달러 약세-엔 강세기 때 한국 경제는 연평균 15%씩 수출이 늘었다. 1985~1995년 달러 약세기에도 경제가 급성장했다. 이와 달리 과거 두 차례 겪은 외환·금융위기는 미국의 금리 인상, 그에 따른 엔저가 결정타였다. 1994년 미국이 기준금리를 3%나 올린 여파로 원화 대비 엔화는 1997년 초까지 30% 넘게 하락했다. 우리나라는 경상수지 적자가 확대되면서 외환위기를 맞았다. 2004~2005년엔 미 연방준비제도 (Fed)가 기준금리를 4.25%나 올렸다. 엔화 가치는 이때부터 2007년까지 원화 대비 45% 넘게 하락했다. 한국 경상수지는 이듬해 적자로 전환됐고, 외화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지금 상황은 어떤가. 기축통화지위를 잃을 것이라는 조롱을 받던 달러는 ‘수퍼 달러’로 변신했다. 강달러 반전에 주요국 통화는 삽시간에 약세로 돌아섰다. 전문가들은 달러가 이미 중장기 강세 국면에 진입한 것으로 본다.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 주요 선진국과 신흥국은 이번 기회에 자국 통화 가치를 더 내려 수출이라도 늘려 보자는 심산이다. 미국 정부는 강달러를 용인하면서도, 다른 나라의 통화 절하 시도엔 사사건건 경고를 보낸다. 지난 10월 15일 미국 재무부가 미 의회에 제출한 경제·환율 정책 보고서에서 “한국 당국이 외환시장에 심하게(heavily) 개입한다”고 밝힌 것이 한 예다. 미국은 EU와 중국에도 같은 경고를 보냈다. 잠잠하던 외환시장이 다시 전쟁터로 변하고 있다. 엔저는 더 심각하다. 2012년 중순 이후 엔화 가치는 원화 대비 60% 가까이 떨어졌다. 앞으로 더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달러· 엔도 모자로 위안·유로화 움직임도 한국을 압박한다. 달러 강세에 그나마 맞섰던 위안화 가치가 하락할 조짐을 보인다. 유로화 역시 유로존의 디플레이션 우려 속에 가치가 뚝뚝 떨어지고 있다. 특히 두 곳은 과거에 비해 우리나라의 수출입 비중이 크게 늘어난 지역이다. 이번 환율 쇼크가 예전보다 더 충격적일 수 있다는 얘기다.
문제의 발단은 달러다. 올 1분기 경기 위축 조짐에 약세·안정세를 보였던 달러는 이후 개선된 미국 경기지표가 속속 발표되면서 올 하반기 강세로 전환됐다. 내년 기준금리 인상 기대감과 유로존·일본의 추가 양적완화 전망은 달러 가치를 더 밀어 올리는 지렛대였다. 강달러 기조는 이어질까. 최근 달러 가치는 방향을 종잡을 수 없이 등락을 반복한다. 하지만 달러가 중기적으로 강세 국면에 진입했다는 데 이견은 거의 없다. 미국 경제가 상대적으로 좋고, 환율 변동의 여러 요인이 강달러를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전문가는 내년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을 기정 사실로 본다. 최문박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금리 인상을 앞둔 시점에서는 실제 인상 시점에 비해 시중 금리와 달러 가치가 먼저 오르게 된다”며 “넓은 의미에서 (미국)금리 인상 과정이 이미 시작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단기 금리인 미국 2년 만기 국채수익률은 지난해 말 이후, 1년 만기는 올 6월 이후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의 재도약도 달러 강세에 힘을 싣는다. 과거 데이터를 보면 미국 경제가 다른 나라보다 잘 나갈 땐 달러가 장기적인 강세를 보였다. 유로존과 일본의 경기 부진이 길게 이어지고, 신흥국 역시 저성장에 진입했다는 전망이 압도적이기 때문에 달러 강세는 불가피해 보인다.
문제는 원화다. 달러 강세 속에 주요 선진국과 신흥국 통화는 일제히 약세로 돌아섰다. 전망 역시 강달러로 모인다. 그런데 유독원·달러 환율 전망은 극과 극이다. 최근 외국계 투자 은행(IB) 40곳이 내놓은 원·달러 환율 전망치를 보면 절반은 원화 강세, 절반은 원화 약세를 점쳤다. 모건스탠리·바클레이스·HSBC 등은 4분기 환율 전망치를 달러당 1050~1070원으로 제시해 환율 상승(원화 약세)에 베팅했다. 이와 달리 ABN암로·스탠더드앤차타드·소시에테제네랄 등은 환율이 하락(원화 강세)할 것으로 봤다. 전망치는 1015~ 1030원이다. 올 6~9월 러시아(-14%)·브라질(-9.5%)·일본(-7.5%)·유로(-7.4%)·영국(-5.1%) 등 주요국 통화는 달러 대비 대폭 절하됐지만, 원화 (-3.9%)는 상대적으로 절하폭이 작았다. 이런 추세는 계속될 전망이다. 만약 달러 강세 기조 속에서 원화가 소폭 절상되고, 다른 나라 통화들이 달러 대비 약세를 보이면 원화 강세는 더 확대된다. 수출에 악영향은 불가피하다. 엔화는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양적 완화 정책을 종료하고 기준 금리 인상 시기를 재는 미국과 달리 일본은 추가 양적 완화를 고민하는 처지다. 달러 대비 엔화 가치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재정환율인원·엔 환율 하락(원화 강세)은 피할 수 없다. 일각에서는 내년 엔화 대비 원화 가치가 10% 이상 절상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놓는다. 실제로 6~9월엔·달러 환율 상승폭은 원·달러 상승폭보다 2배가량 컸다. 엔화 가치가 원화보다 2배 가까이 떨어졌다는 얘기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상무는 “다소 극단적인 전망이지만 원·엔 환율은 800원대 수준까지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10월 16일 기준 원·엔 환율은 100엔당 1000.28원이다
그나마 지금까지는 엔저 쇼크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었다. 대일본 수출은 많이 감소했지만, 일본에서 부품을 수입하는 기업들은 엔저 혜택도 봤다. 일본과 수출 경합을 하는 제3국에서도 엔저 영향은 그리 크지 않았다. 이유가 있다. 일본 기업들은 엔저로 가격 경쟁력이 개선(달러 표시 수출가격 하락)됐지만, 수출 물량이 큰 폭으로 늘지는 않았다. 또한 일본 기업들은 채산성을 중시하면서 수출 가격 인하에는 다소 소극적이었다. 우리 기업들 역시 수익은 다소 떨어지더라도 달러 표시 수출 가격을 조정하면서 수출 물량을 유지할 수 있었다. 환율 변동이 무역수지에 영향을 미치는데 시차가 있다는 점도 작용했다.
하지만 엔저가 지속되면 진짜 쇼크가 올 수 있다. 내년이 분기점이 될 것 같다. 일본 기업들이 엔저 강화·장기화를 확신하며 수출 가격을 대폭 내리면 우리 기업들은 직격탄을 맞게 된다. 더욱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우리나라와 일본의 수출경합도는 최고 수준에 올라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우리 수출 상위 100대 품목과 일본 100대 품목 중 55개가 중복된다.
중복되는 품목이 우리나라 총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4% 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외국계 투자은행의 전망대로 달러 대비 엔화 가치가 5.4% 절하되고, 이에 따라 엔화 대비 원화가 5.3% 절상(엔화 가치 하락)되면, 우리나라 경상수지는 68억 달러 축소될 전망이다. 강삼모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엔저가 지속되면 국내 기업은 수출 가격을 내려 수출은 유지하겠지만 원화 표시 순이익이 대폭 낮아지면서 국내 경기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로화 움직임 역시 한국에 부정적이다. 최근 유로·달러 환율은 2012년 8월 이래 최저인 유로당 1.27~1.30달러 안팎에서 거래된다. 전망은 더 어둡다. 독일 도이체방크가 얼마 전 내놓은 유로화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에 유로화 가치는 달러와 1:1 등가가 되는 패리티(parity)까지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 전망이 맞는다면 달러 대비 유로화 가치가 지금보다 20% 넘게 하락한다는 얘기다. 골드먼삭스 역시 ‘최근 유로 약세는 장기적 추세의 시작’이라며 향후 6개월 환율을 유로당 1.25달러, 내년 말은 1.15달러로 전망했다. 미국과 유로존의 금리 차이나, 경제 여건을 볼 때 그리 과도한 전망은 아니라는 게 국내 전문가들의 반응이다. LG경제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내년에도 유로화가 달러 대비 약세를 보이면서, 유로화 대비 원화 가치는 큰 폭으로 절상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유로화 약세의 영향은 유로존에 그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디플레이션 우려를 낳고 있는 유로존 경기는 유로화를 쓰지 않는 다른 유럽 국가의 경상수지 악화로 이어져 유럽 대륙 전체의 통화 절하 경쟁을 야기할 수 있다. 독일의 경기 침체와 유럽중앙은행의 추가 양적완화 역시 유로화 약세 압력을 부추기는 주요 요인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 무역에서 EU와 EU 미가입국을 포함한 대유럽이 차지하는 비중은 15%로 미국 (10%)·일본(8%)보다 높다. 대EU 무역적자가 확대되는 가운데, 유로화가 가치가 더 떨어지면 우리나라 무역수지는 급속히 악화할 수 있다.
2005년 변동환율제 도입 이후 마냥 오를 것만 같았던 위안화 가치도 심상치가 않다. 국제무역연구원에 따르면 2005~2013년 위안·달러 환율은 매년 평균 3%씩 하락(위안화 가치 절상)했다. 하지만 올 상반기 위안·달러 환율은 큰 폭으로 올랐다(위안화 가치 절하). 중국 경제가 둔화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지난 3월 중국 인민은행이 1%로 유지해 오던 1일 환율 변동폭을 2%로 확대한 것도 위안화 가치 하락세를 키웠다. 물론, 최근 위안화 가치가 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반전됐지만 장기적으로는 위안화 가치 하락을 전망하는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실제로 세계 주요 투자은행들은 위안화 가치가 소폭 절하될 것으로 전망한다. 향후 중국 경기가 더 둔화되고, 부동산 침체와 같은 잠재적 리스크가 현실화되면 위안화 가치는 더 하락할 수 있다.
이는 한국 경제에 가장 위험한 시나리오다. 위안화가 절하되면 세계 시장에서 중국과 경합하는 조선·휴대전화·디스플레 이산업 등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 특히 대중국 수출은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수출이 줄고 채산성도 악화될 수 있다. 무역 협회에 따르면 올 1~7월 원화 대비 위안화 가치가 9.3% 절하되면서 대중국 수출이 크게 줄었다. 달러·엔도 모자라, 유로·위안화 대비 원화 강세가 심화되면 한국 경제는 빠져나갈 구멍이 없어진다. 달러 외에는 우리가 직접 거래할 수 있는 통화도 없어 정책 대응도 어렵다. 이미 환율 쇼크는 한국 경제를 짓누르고 있다. 한국은행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 우리나라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2.6% 늘었다. 하지만 원화로 환산하면 2.6% 감소다. 9월 기준으로 하면 정부가 발표한 수출 증가율은 2.9%지만, 원화 기준으로는 3% 줄었다.
지난해에도 공식 수출 증가율은 2.1%지만 원화로 바꾸면 마이너스(-0.7%)였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치인 2.0%로 내리면서 정부의 경기 부양에 동참했지만, 환율이 상승(원화가치 하락)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최근 원·달러 환율 움직임을 ‘비정상(고환율)의 정상화(적정환율)’ 과정으로 보기도 한다. 그동안의 수출 잔치는 고환율에 기댄 신기루였다는 냉소도 번진다. 그렇다 해도, 네 겹(미국·일본·EU·중국) 샌드위치에 낀 환율 리스크를 방치할 수도 없다. 시장의 아우성 속에 외환당국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지금 상황은 어떤가. 기축통화지위를 잃을 것이라는 조롱을 받던 달러는 ‘수퍼 달러’로 변신했다. 강달러 반전에 주요국 통화는 삽시간에 약세로 돌아섰다. 전문가들은 달러가 이미 중장기 강세 국면에 진입한 것으로 본다.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 주요 선진국과 신흥국은 이번 기회에 자국 통화 가치를 더 내려 수출이라도 늘려 보자는 심산이다. 미국 정부는 강달러를 용인하면서도, 다른 나라의 통화 절하 시도엔 사사건건 경고를 보낸다. 지난 10월 15일 미국 재무부가 미 의회에 제출한 경제·환율 정책 보고서에서 “한국 당국이 외환시장에 심하게(heavily) 개입한다”고 밝힌 것이 한 예다. 미국은 EU와 중국에도 같은 경고를 보냈다. 잠잠하던 외환시장이 다시 전쟁터로 변하고 있다.
위안화 가치까지 하락 조짐
문제의 발단은 달러다. 올 1분기 경기 위축 조짐에 약세·안정세를 보였던 달러는 이후 개선된 미국 경기지표가 속속 발표되면서 올 하반기 강세로 전환됐다. 내년 기준금리 인상 기대감과 유로존·일본의 추가 양적완화 전망은 달러 가치를 더 밀어 올리는 지렛대였다. 강달러 기조는 이어질까. 최근 달러 가치는 방향을 종잡을 수 없이 등락을 반복한다. 하지만 달러가 중기적으로 강세 국면에 진입했다는 데 이견은 거의 없다. 미국 경제가 상대적으로 좋고, 환율 변동의 여러 요인이 강달러를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장기적으로 달러 강세 불가피
문제는 원화다. 달러 강세 속에 주요 선진국과 신흥국 통화는 일제히 약세로 돌아섰다. 전망 역시 강달러로 모인다. 그런데 유독원·달러 환율 전망은 극과 극이다. 최근 외국계 투자 은행(IB) 40곳이 내놓은 원·달러 환율 전망치를 보면 절반은 원화 강세, 절반은 원화 약세를 점쳤다. 모건스탠리·바클레이스·HSBC 등은 4분기 환율 전망치를 달러당 1050~1070원으로 제시해 환율 상승(원화 약세)에 베팅했다. 이와 달리 ABN암로·스탠더드앤차타드·소시에테제네랄 등은 환율이 하락(원화 강세)할 것으로 봤다. 전망치는 1015~ 1030원이다. 올 6~9월 러시아(-14%)·브라질(-9.5%)·일본(-7.5%)·유로(-7.4%)·영국(-5.1%) 등 주요국 통화는 달러 대비 대폭 절하됐지만, 원화 (-3.9%)는 상대적으로 절하폭이 작았다. 이런 추세는 계속될 전망이다. 만약 달러 강세 기조 속에서 원화가 소폭 절상되고, 다른 나라 통화들이 달러 대비 약세를 보이면 원화 강세는 더 확대된다. 수출에 악영향은 불가피하다.
엔저 쇼크, 내년이 분기점
그나마 지금까지는 엔저 쇼크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었다. 대일본 수출은 많이 감소했지만, 일본에서 부품을 수입하는 기업들은 엔저 혜택도 봤다. 일본과 수출 경합을 하는 제3국에서도 엔저 영향은 그리 크지 않았다. 이유가 있다. 일본 기업들은 엔저로 가격 경쟁력이 개선(달러 표시 수출가격 하락)됐지만, 수출 물량이 큰 폭으로 늘지는 않았다. 또한 일본 기업들은 채산성을 중시하면서 수출 가격 인하에는 다소 소극적이었다. 우리 기업들 역시 수익은 다소 떨어지더라도 달러 표시 수출 가격을 조정하면서 수출 물량을 유지할 수 있었다. 환율 변동이 무역수지에 영향을 미치는데 시차가 있다는 점도 작용했다.
하지만 엔저가 지속되면 진짜 쇼크가 올 수 있다. 내년이 분기점이 될 것 같다. 일본 기업들이 엔저 강화·장기화를 확신하며 수출 가격을 대폭 내리면 우리 기업들은 직격탄을 맞게 된다. 더욱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우리나라와 일본의 수출경합도는 최고 수준에 올라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우리 수출 상위 100대 품목과 일본 100대 품목 중 55개가 중복된다.
중복되는 품목이 우리나라 총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4% 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외국계 투자은행의 전망대로 달러 대비 엔화 가치가 5.4% 절하되고, 이에 따라 엔화 대비 원화가 5.3% 절상(엔화 가치 하락)되면, 우리나라 경상수지는 68억 달러 축소될 전망이다. 강삼모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엔저가 지속되면 국내 기업은 수출 가격을 내려 수출은 유지하겠지만 원화 표시 순이익이 대폭 낮아지면서 국내 경기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로화 움직임 역시 한국에 부정적이다. 최근 유로·달러 환율은 2012년 8월 이래 최저인 유로당 1.27~1.30달러 안팎에서 거래된다. 전망은 더 어둡다. 독일 도이체방크가 얼마 전 내놓은 유로화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에 유로화 가치는 달러와 1:1 등가가 되는 패리티(parity)까지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 전망이 맞는다면 달러 대비 유로화 가치가 지금보다 20% 넘게 하락한다는 얘기다. 골드먼삭스 역시 ‘최근 유로 약세는 장기적 추세의 시작’이라며 향후 6개월 환율을 유로당 1.25달러, 내년 말은 1.15달러로 전망했다. 미국과 유로존의 금리 차이나, 경제 여건을 볼 때 그리 과도한 전망은 아니라는 게 국내 전문가들의 반응이다. LG경제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내년에도 유로화가 달러 대비 약세를 보이면서, 유로화 대비 원화 가치는 큰 폭으로 절상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유로화 약세의 영향은 유로존에 그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디플레이션 우려를 낳고 있는 유로존 경기는 유로화를 쓰지 않는 다른 유럽 국가의 경상수지 악화로 이어져 유럽 대륙 전체의 통화 절하 경쟁을 야기할 수 있다. 독일의 경기 침체와 유럽중앙은행의 추가 양적완화 역시 유로화 약세 압력을 부추기는 주요 요인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 무역에서 EU와 EU 미가입국을 포함한 대유럽이 차지하는 비중은 15%로 미국 (10%)·일본(8%)보다 높다. 대EU 무역적자가 확대되는 가운데, 유로화가 가치가 더 떨어지면 우리나라 무역수지는 급속히 악화할 수 있다.
2005년 변동환율제 도입 이후 마냥 오를 것만 같았던 위안화 가치도 심상치가 않다. 국제무역연구원에 따르면 2005~2013년 위안·달러 환율은 매년 평균 3%씩 하락(위안화 가치 절상)했다. 하지만 올 상반기 위안·달러 환율은 큰 폭으로 올랐다(위안화 가치 절하). 중국 경제가 둔화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지난 3월 중국 인민은행이 1%로 유지해 오던 1일 환율 변동폭을 2%로 확대한 것도 위안화 가치 하락세를 키웠다. 물론, 최근 위안화 가치가 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반전됐지만 장기적으로는 위안화 가치 하락을 전망하는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실제로 세계 주요 투자은행들은 위안화 가치가 소폭 절하될 것으로 전망한다. 향후 중국 경기가 더 둔화되고, 부동산 침체와 같은 잠재적 리스크가 현실화되면 위안화 가치는 더 하락할 수 있다.
이는 한국 경제에 가장 위험한 시나리오다. 위안화가 절하되면 세계 시장에서 중국과 경합하는 조선·휴대전화·디스플레 이산업 등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 특히 대중국 수출은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수출이 줄고 채산성도 악화될 수 있다. 무역 협회에 따르면 올 1~7월 원화 대비 위안화 가치가 9.3% 절하되면서 대중국 수출이 크게 줄었다.
대중국 수출 크게 줄어
지난해에도 공식 수출 증가율은 2.1%지만 원화로 바꾸면 마이너스(-0.7%)였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치인 2.0%로 내리면서 정부의 경기 부양에 동참했지만, 환율이 상승(원화가치 하락)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최근 원·달러 환율 움직임을 ‘비정상(고환율)의 정상화(적정환율)’ 과정으로 보기도 한다. 그동안의 수출 잔치는 고환율에 기댄 신기루였다는 냉소도 번진다. 그렇다 해도, 네 겹(미국·일본·EU·중국) 샌드위치에 낀 환율 리스크를 방치할 수도 없다. 시장의 아우성 속에 외환당국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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