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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부격차가 경제성장 저해할까?

빈부격차가 경제성장 저해할까?

빌 게이츠는 자산규모 817억 달러로 지구 전체 자산의 절반 가까이를 소유하는 상상 초월 1% 부자 중 첫손가락에 꼽힌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이자 회장인 빌 게이츠가 자산규모 817억 달러로 세계 최고의 부자다. 지구 전체 자산의 절반 가까이를 소유하는 상상을 초월하는 1% 부자 중 첫손가락에 꼽힌다.

불만 있다고?

1960년대 스타일 사회정의의 옹호자, 생활임금(living wage, 일정한 생활수준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저임금) 캠페인의 대중주의적 대변자, 빈곤 퇴치를 위해 힘쓰는 비영리단체들(U2 싱어 보노가 공동 창설한 단체 ‘원’을 생각하면 된다)의 인도주의적 후원자, 또는 대중선동적인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자라면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최근에는 대형 금융기관 또는 기업도 문제로 여기는 듯하다.

전 세계 20억 명이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살아간다고 세계은행은 추산한다. 이들과 초부유층 간의 격차확대는 과거 이상주의적인 박애주의자와 희한한 부호로 겁나는 방정식을 만드는 무명 학자들의 관심사였다. 하지만 예전에는 눈길 한번 주지 않았을 법한 사람들이 갈수록 이 문제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월스트리트 은행들, 최소 하나 이상의 금융평가 기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구미 경제정책 입안자들이 빈부격차에 관심을 보이는 건 도덕적 또는 윤리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다. 1930년대의 대공황 이후 최대의 금융위기 뒤에 이어지는 경기 회복세가 영 더디다. 그런 상황에서 소득과 자산격차가 금융위기를 악화시키고 경기회복을 지연시키느냐를 두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근년 들어 특히 미국에서 초부유층 엘리트 계급의 부상은 물론 뉴스거리도 아니다. (스위스 대형 은행 크레디 스위스에 따르면 미국에는 세계 백만장자의 41% 즉 1420만 명의 백만장자가 있다.) 진짜 뉴스거리는 최근의 금융시장 붕괴에 관련된 은행과 금융기관들이 그와 같은 현상에 보이는 관심이다. “자산분포의 변화는 요즘 가장 널리 논란이 되는 주제 중 하나다.” 크레디 스위스 은행이 지난 10월 연례 글로벌 자산 보고서에서 썼다.

크레디 스위스는 보고서에서 그 문제 한 가지만 집중적으로 다뤘다. 2000~2007년 글로벌 빈부격차가 대체로 완화됐다(중국과 인도 제외). 하지만 2007~2008년 모기지와 신용 붕괴 이후 그 추세가 반전됐다.

“2007년 이전 대다수 국가에선 격차에 거의 변화가 없거나 약간의 감소를 나타냈다. 하지만 2007년 이후 빈부격차가 확대되는 경향을 보였다.” 글로벌 자산은 지난 6월 263조 달러로 최고를 기록했다고 덧붙였다. 이전 12개월 대비 8.3% 증가한 규모다. 그 파이 중 가장 큰 몫을 북미 주로 미국이 차지했다. 개인들의 보유 자산이 91조 달러를 웃돈다. 세계 총 자산 중 3분의 1 남짓한 규모다. 입이 딱 벌어지는 통계가 하나 있다. 2013년 미국 부자들의 자산이 12조9000억 달러나 새로 늘어났다. 2007년 금융시장 붕괴 중 날려버린 금액(12조3000억 달러)을 벌충하고도 남는 규모다.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어떻게 그런 부가 창출될까? 주택소유자, 저소득 근로자와 실업자 수백만 명의 앞날을 막막하게 만든 금융위기가 어떻게 선택 받은 소수에게는 황금을 안겨 줄까? 그리고 빈곤문제연구소(Institute for Research on Poverty)의 소장을 지낸 경제학자 티머시 스미딩의 말마따나 “자본은 승리하지만 노동은 예외”라면 그것은 미래의 경제성장에 무엇을 의미할까?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전 저리금리가 저비용 모기지를 부채질했다. 이것이 훗날 부실채권 위기를 낳으면서 중산계급 재산의 핵심을 이루는 집값의 폭락을 초래했다.
경제학자들은 예산정책, 세금감면, 저임금, 세계화 덕분에 우리 모두가 구입하는 값싼 전자제품, 부실한 교육, 인구동태 등 갖가지 요인을 거론한다. 예산정책 분야에서 한 가지 유력한 범인은 모기지 사태에 대한 FRB의 대응이라고 크레디 스위스는 간접적이면서도 분명하게 지적한다.

“2007년까지 줄어들던 격차가 2007년 이후 갑자기 확대 추세로 돌아섰다. 이는 가계자산에서 금융자산의 상대적인 중요성이 같은 변화 패턴을 보인 것과 관련됐을 가능성이 크다.”

쉽게 말해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전 저리금리가 저비용 주택담보대출(모기지)을 부채질했다. 이것이 훗날 부실채권 위기를 낳으면서 중산계급 재산의 핵심을 이루는 비금융자산(즉 주택) 가치의 폭락을 초래했다.

반면 현금·주식·채권과 기타 투자자산(다시 말해 초부유층 자산의 핵심을 이루는 금융 자산)은 반등해 기존의 부잣집 재산을 한층 더 불려놓았다.

크레디 스위스는 격차를 키우는 ‘변화’를 지목했다. 이 같은 ‘변화’는 2008년 금융시장 붕괴 이후 주가 상승으로 나타났다. 주가상승은 국민세금 7000억 달러를 퍼부은 월스트리트 구제금융과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로 알려진 FRB의 대규모 채권매입 프로그램(최근 종료)의 산물이라고 간주하는 시각이 갈수록 힘을 얻는다. 이 같은 정책을 통해 4조5000억 달러가 경제에 투입됐다.

크레디 스위스뿐이 아니다. 재닛 옐런 FRB 의장은 10월 17일 보스턴에서 ‘소비자 금융 조사에 기초한 불평등과 기회에 관한 전망’이라는 제목으로 연설을 했다. 빈부격차에 관한 FRB 답지 않은 일련의 논평으로 관측통들을 아연 긴장케 했다. ”미국의 격차 규모와 계속 확대되는 추세가 크게 걱정스럽다”며 옐런이 덧붙였다. “이 같은 추세가 미국 역사에 뿌리를 둔 가치와 호응하는지 따져봐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미국인들은 전통적으로 기회균등에 높은 가치를 부여해 왔다.”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주요 개발은행과 기관들은 2011년 이후 격차확대 규모에 관해 경종을 울려왔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12년 국정연설에서 그 문제를 주요 테마로 삼았다.

최신 데이터는 계속 놀라운 결과를 보여준다. 개발 관련 비영리단체 옥스팜 인터내셔널은 10월 29일 ‘평등화, 극도의 격차를 끝내야 할 때’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금융위기 이후 세계 억만장자 수가 1645명으로 갑절 이상 늘었다고 밝혔다. 게이츠를 포함해 그런 억만장자가 지금은 35억 명 다시 말해 세계 인구 절반만큼의 재산을 소유한다며 옥스팜은 덧붙였다. “빈부 격차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좌파 성향의 이상주의자만 걱정이 많은 게 아니다. 잉글랜드 은행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앤드류 핼데인은 옥스팜 보고서 추천 글에서 우려를 나타냈다. “극도의 격차가 금융 시스템의 안정과 경제성장을 지속적이고 심각하게 해친다는 증거가 늘어나고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조셉 스티글리츠도 자신의 추천서에서 같은 의견을 피력했다. “오늘날 세계 상당지역에서 목격되는 극도의 소득과 자산 격차는 우리의 경제, 사회 그리고 정치를 해친다.”

신용평가 업체 스탠더드&푸어스는 지난 8월 ‘미국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는 격차확대, 그리고 그와 같은 경제흐름을 바꿀 만한 방법’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로 월스트리트를 놀라게 했다.

보고서는 “극단적인 수준의 소득격차는 장기간에 걸쳐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 미국은 그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결론 지었다. S&P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사회정책 영역까지 언급했다.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더 양질의 교육을 더 보편적으로 제공해야 국내총생산이 확대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저학력 근로자 대상으로 단 1년만 교육을 추가해도 5년 이내에 5250억 달러의 추가 다시 말해 2.4% 증가에 상당하는 효과를 초래한다는 의미다.

소득격차는 “시장경제의 자연스러운 일부이며 경제를 발전시키는 힘이다.” S&P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이자 이 보고서 기획자 중 한 명인 베스 앤 보비노가 뉴스위크에 말했다. “하지만 그것이 도를 넘어 장기적 성장을 저해할 수 있는 한계점이 있는가?”

모건 스탠리는 2008년 후반 10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은 월스트리트 은행이다. 1년도 안돼 빌린 돈을 모두 상환했다. 9월 22일 ‘격차와 소비’라는 제목의 ‘미국 경제’ 조사보고서에서 그 문제를 다뤘다.

“소득격차는 금융위기로 노출된 뒤 더 악화됐다. 이는 경기회복에서 상이한 개인소비 지출행태를 설명한다.” 보고서의 작성자인 엘런 젠트너와 폴라 캠벨이 썼다. “그 요인 그리고 그 환경을 공평하게 만드는 변수에 대한 이해가 향후의 지출 패턴을 예상하는 데 도움이 된다.”

크레디 스위스와 마찬가지로 모건 스탠리도 집값 폭락을 빈부격차 확대 요인으로 지목했다. 금융자산(부유층이 압도적으로 많이 보유한 주식과 기타 투자)이 회복되는 동안 비금융자산(주택) 가치를 끌어내렸다는 지적이다. “위기 이후 금융자산 가치의 반등이 격차를 한층 더 심화시켰다”며 보고서 작성자들은 덧붙였다. “주주 지분의 놀라운 가치상승은 상위 10% 소득계층에만 혜택을 가져다 줬다. 상당수 가정은 소외당했다."

최근 종료된 FRB의 경기부양 프로그램에 대한 모건스탠리의 비판에서 기가 막힌 지적이 나왔다. “FRB는 대규모 양적완화 프로그램을 통해 장기자산을 대거 매입했다. 투자자들이 고정자산을 버리고 증권과 기타 더 위험한 투자로 쏠리도록 했다. 실제로 금융자산을 소유한 소비자들(즉 기존의 부자들)은 전례 없는 자산증가의 혜택을 봤다.”

크레디 스위스, 모건스탠리, S&P의 보고서와 옐런의 연설문을 관통하는 공통분모는 토마 피케티다. 논란을 불러일으킨 베스트셀러 ‘21세기 자본(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의 저자인 프랑스 경제학자다. 그 책은 수세기의 글로벌 조세 데이터를 동원해 최근 수십 년 사이 초부유층 엘리트의 부상을 분석했다. 피케티의 주장은 (주식 등에 대한) 투자수익률이 경제성장을 능가할 때 부자의 자산이 불어나며 부자 숫자도 늘어나지만 나머지는 소외 당한다는 것이다. 그와 같은 격차가 정치적·사회적으로 깊은 분열을 초래할 수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러나 은행과 금융분야 기업들이 빈부격차에 보이는 새로운 관심은 자본주의 자체에서 연유할지도 모른다.

오스트리아 경제학자 에른스트 페르와 독일 경제학자 클라우스 슈미트는 널리 읽힌 1999년 학술논문에서 ‘불공평 기피(inequity aversion)’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사람들이 불공평한 상황을 싫어하는 것은 단순히 도덕적 태도가 아니라 근본적인 취향이라고 그들은 주장한다. “많은 사람들이” 공평하다고 간주되는 상황을 구축하기 위해 기꺼이 자원을 포기하려 한다.” 취리히대 경제학과장인 페르가 뉴스위크에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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