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기업으로 가는 길 ‘코치(COACH)’-원활한 세대교체(Alternation of generations) - 세금 부담 탓에 기업 팔아서야
장수기업으로 가는 길 ‘코치(COACH)’-원활한 세대교체(Alternation of generations) - 세금 부담 탓에 기업 팔아서야
장수기업은 가업화 경향이 있다. 창업자의 자손은 물론 혈통과 무관한 전문경영인, 오랫동안 사주와 함께한 직원, 2대 주주 등이 경영권을 승계하기도 한다. 이 중 대부분은 가업기업이다. 사업이 가문의 일이 될 때 명확한 책임감을 가진 후계가 확정되고 사업이 안정성을 가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할아버지에서 아버지로,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가부장적 세대 교체가 국내외를 막론하고 흔한 편이다.
최근엔 딸이나 사위, 며느리 등이 경영권을 이어받는 경우도 있다. 자손이 없거나 자손이 가업 승계를 거부하는 기업은 직계 외에 방계가 가업을 잇기도 한다. 단, 어떤 경우에도 장수기업이 3세대 이상을 넘기려면 1회 이상은 재산이나 경영권을 상속해야 한다.
기업 상속에서 현실적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세금이다. 그런데 고율의 상속세나 증여세를 모두 내고 나면 물려줄 경영권마저 위태로울 수 있다. 실제로 상속세 부담 탓에 기업을 매각한 경우도 적지 않다. 종묘 중견기업 농우바이오는 지난 9월 16일 상속세 납부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농협 계열사에 회사를 팔았다. 설립자 고희선 회장이 2013년 8월 갑자기 별세하자 유족들에게 가업상속세 1000억원이 책정됐다. 농우바이오는 영농법인 이어서 세금 공제 한도가 5억원에 불과했다. 상속재산가액에 들어있는 주식으로 세금을 내기도 어려웠다. 상장주식이기 때문에 물납으로 상속세를 낼 수 없기 때문이다. 농우바이오의 상속세율은 기업 전 자산의 65%에 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세금 때문에 경영권을 잃기도 한다. 손톱깎이 1위 업체인 쓰리세븐은 2008년 중외홀딩스에 팔렸다. 그 해 창업주인 김형주 회장이 세상을 떠나면서 유족들이 상속세 150억원을 마련하지 못해 회사 지분을 매각한 것이다. 1년이 지난 뒤 유족들이 재원을 마련해 회사를 되찾긴 했지만 바이오 분야 자회사인 크레아젠 지분까지는 회수하지 못했다. 세금 마련 때문에 시간을 허비한 탓에 자회사를 잃은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상속세제가 변해야 기업이 영속성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한상의는 “특히 최대주주 주식에 대한 할증 과세가 65%에 달해 과세 부담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라며 “그럼에도 세제 지원은 선진국보다 불리해 원활한 가업승계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사업을 가업으로 결정하면 2세대로 넘어갈 때부터 상속세로 기업 자산이 크게 준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후계자가 가업을 받을 메리트가 떨어지거나 경영권을 잃을 수 있어 기업의 영속성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 한 중견기업 대표는 상속을 준비하면서 세율을 곰곰이 따져봤다. 기업이 중소기업이었을 때는 별 문제가 없었다. 규모가 작은 기업에 대한 상속세는 거의 면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의 0.1%에 속하는 중견·대기업이 되면서부터는 얘기가 달라졌다. 실상속세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걸로 나왔기 때문이다. 명목상 상속세를 넘어 다양한 세목에 따라 할증 세율을 적용 받아야 했다. 중견기업만 돼도 대부분 세목에서 최고세율을 내야 한다. 소득세 38%에 지방세·의료보험료와 사회기부금 등을 합하면 수익의 반절을 내야 한다. 이에 더해 상속자가 기업을 승계하려면 30% 할증까지 붙는다. 최고세율 50%에 15% 할증으로 기업 자산의 65%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이 중견기업 대표는 “아무리 기업 경영을 잘해 수익을 내도 이 만한 세금은 현금으로 내기 어렵다”며 “양도소득세를 내기 위해 경영 중인 회사 주식을 팔아야 세금을 낼 수 있는데, 그러면 기업 경영은 거기서 끝난다”고 말한다. 세무전문가를 통해 세금을 계산한 결과 한국의 0.1%에 속하는 기업은 평생 번 돈의 80~90%를 세금으로 내야 승계가 가능하다. 세제 때문에 한국에서는 장수기업, 가업승계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정부는 세법 개정을 통해 가업승계를 지원해왔다. 상속세율은 유지하는 대신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면 세금을 일부 공제해 주는 방식이다. 대신 정부가 정한 선에 고용을 유지하는 등의 조건을 지켜야 한다. 2007년 이전에도 관련 공제는 있었다. 하지만 공제 대상이 매출 1억원 이하에 불과했다. 소기업이나 자영업 등 상속세 과세가 어려운 기업을 대상으로 했다. 2008년 이후 정부는 ‘가업승계 주식에 대한 증여세 과세특례 제도’를 도입했다. 관련 세제는 매년 지속적으로 완화되고 공제 대상은 확대되고 있다. 현재 중소기업의 경우 가업을 상속할 때 내는 세금을 공제하고 있다. 가업상속공제라고 한다. 가업승계를 목적으로 주식을 증여하면 증여재산가액의 일부를 공제한다. 상속과 세가액에서 가업상속재산가액을 빼주는 개념이다. 남은 금액에 대해서는 10%의 저율로 과세한다. 한도를 초과하는 증여 주식은 10~50%의 일반세율을 적용한다.
모든 기업가가 이 제도를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상속을 하려는 오너(피상속인)는 업력의 50% 이상, 10년 이상, 상속을 시작하기 전 10년 중엔 5년 이상을 대표이사로 재직해야 한다. 상속인(배우자도 가능)은 18세 이상, 상속 시작 전 2년 이상 가업에 종사, 상속과세표준 신고 기한까지 임원으로 취임하고 신고기간 2년 이내에 대표이사로 취임해야 한다. 자녀 상속인은 1명이 가업 전부를 상속받아야 한다.
공제를 받는 기업 규모는 2008년 이후 지속적으로 확대돼 왔다. 2014년까지는 20년 이상 경영한 사람이 상속하면 500억원까지 상속세를 공제받을 수 있다. 공제 혜택이 있는 대신 의무도 져야 한다. 가업용 자산을 20% 이상 처분(상속 이후 5년 내엔 10%)해서는 안 된다. 상속인은 가업에만 종사해야 하고, 지분이 줄어들어서도 안 된다. 평균 정규직 근로자 수가 80%에 미달해서도 안 되고 상속 개시 후 10년 간 평균 정규직 근로자수가 유지돼야 한다. 중견기업은 정규직 근로자 수가 20% 이상 늘어야 한다.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공제받은 상속세를 다시 내야 한다. 세법에서는 이 의무를 ‘사후관리’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재계에선 공제 확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해외 선진국 세법처럼 상속세를 줄이거나 세제를 단순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상속세법을 그대로 두고 정부가 사후관리라며 각종 의무를 지우는 게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대한상의는 “최근 주요국에서는 상속·증여세 제도가 갖는 부의 집중 완화 기능에 대한 회의론이 일고 있다”며 “상속세 자체를 폐지하거나 세제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의 가업상속공제에 대해서도 대한상의는 “공제 한도 설정, 업력 및 업종 제한 등으로 의도한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한상의는 가업승계 주식에 대한 증여세 납세유예제도 도입, 업력과 무관하게 공제 한도 적용, 가업승계 지원 업종 제한 완화, 상속세 과세 방식 변경, 최대주주 주식에 대한 할증 평가 방식 재고 등을 요구하고 있다. 실제 외국의 경우엔 상속세제가 우리보다 단순하다. 일본은 가업승계 주식을 증여하면 승계자가 5년 간 대표이사로 재직하고 고용의 80%를 유지하면 증여세를 상속 시점까지 납세 유예한다. 실제 상속을 할 때는 증여세를 면제하고 80%의 가업 상속 공제를 적용해 상속세를 부과한다. 독일과 영국은 상속과 증여를 구분하지 않는다. 독일은 상속과 증여 구분 없이 5~7년 간 가업을 영위하고 고용의 80~100%를 유지하면 가업승계 자산의 85~100%를 상속세나 증여세 과세가액에서 공제한다. 실제 독일에 기술력 높은 장수기업이 많은 이유도 자유로운 상속세 제도에서 찾을 수 있다. 기업 규모와 상관없이 상속 후 고용을 7년 간만 유지하면 조건 없이 상속세를 100% 면제해준다. 5년 만에 기업이 망하거나 고용을 80%만 유지하면 상속세 중 85%를 면제해준다.
프랑스 상속세제 역시 기업 부담을 줄이고 있다. 르 고엑스(LE GOUEIX) 프랑소아 꽁땅 회장은 “프랑스에서는 상속을 받을 경우 10년 이상 미리 준비하는 게 보통인데 정부가 제도적으로 도와준다”며 “한꺼번에 과도한 상속세가 나오지 않도록 10~12년에 걸쳐 나눠내는 경우도 있고, 회사의 재산을 기부채납하는 조건으로 감면하는 제도도 있다”고 말했다.
영국은 별도의 고용유지 의무가 없다. 가업 상속과 증여에 대해 동일하게 승계 자산별로 50%~100%를 공제한다. 영국의 화이트차펠 벨 파운드리의 앨런 휴즈 대표는 가족기업을 승계할때는 약 24%의 세금을 내야 하지만 자녀가 세금 때문에 비즈니스를 팔아야 하는 경우에는 면제 또는 유예해준다”며 “중소기업에게만 적용되는 정책인데, 물론 이런 방식으로 상속 받은 뒤 사업을 청산하게 되면 다시 세금을 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국과 달리 가업승계에 대한 요건도 단순하다. 과거 업력 요건등의 규정이 없다. 독일과 일본에는 업력 요건이 없다. 영국은 2년 간만 가업을 영위하면 된다. 한국은 피상속자가 10년 이상 가업을 영위해야 한다. 장수기업이 많은 유럽이나 일본은 업력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고 있다. 이미 업력이 100년을 넘긴 기업이 수천개가 넘기 때문이다. 또 이들 선진국은 장수기업보다 새로운 창업이 적어서 늘 걱정이다. 업력에 제한을 두면 연령이 많은 기업가가 새로운 사업을 창업하는데 부담이 될 수 있다.
공제 한도 설정에도 선진국과 한국은 차이를 보인다. 한국은 매출 규모에 따라 정액으로 한도를 설정한다. 하지만 선진국은 정률로 한도를 정한다. 중소기업, 중견기업, 대기업 등에 따라 세제를 구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업승계를 지원하는 업종을 정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난다. 한국은 열거주의 방식이다. 보안시스템 서비스업, 사업시설 유지관리 서비스업, 택배업 등 법에서 열거하지 않은 서비스 업종은 가업승계 지원을 받을 수 없다. 이와 달리 독일과 영국은 지원 업종에 제한이 없다. 일본은 자산관리회사 등 일부 업종을 특정해 지원을 배제한다. 나머지는 모두 지원하는 포괄주의 방식이다.
장수기업이 많은 일본 교토에서 세무를 상담하는 주규식 세리사(세무사)는 “일본은 2008년과 2013년 각각 사업승계 관련 세제를 개정해 중소기업이 상속에 부담을 느끼지 않고 가업을 물려줄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일정한 요건만 충족하면 경영 후계자에게 비상장 주식을 증여해도 바로 증여세를 과세하지 않고 있다. 그 후 후계자가 주식을 상속받으면 주식에 대한 상속세의 80%를 납세 유예하거나 면제 받을 수 있다. 주로 중소기업이 원활하게 사업을 승계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장수기업이 흔한 일본이 세제를 고쳐가면서 가업승계를 지원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기업 영속성이 과거에 비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가장 큰 이유는 고령화, 낮아진 출산율이나 자녀와의 연령 차이 등 세제 외적 요인이다. 독신 가정이 늘고, 출산율이 낮아지면서 기업을 물려줄 자녀가 없는 경우가 흔해졌다. 자녀가 있다고 해도 상속은 부담된다. 가업 잇기를 부담스러워 하는 자녀에게 상속세까지 물어가며 기업을 물려주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초혼 연령이 늦어지면서 자녀와 부모사이 연령차가 생기는 것도 가업승계의 난점이 되고 있다. 실제 일본 기업 상당수가 자녀 승계에 문제가 일어난다고 한다. 후계자가 30대 정도로 어린 나이에 승진하면 서열의식이 강한 일본에서 아버지뻘 나이의 이사들과 관계를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또 은퇴 시점이 늦어지면서 80세를 넘긴 사장도 왕성하게 활동해 승계를 서두르지 않는다. 일본의 한 장수기업 후계자는 “일반적으로 30대 후반이나 40대 정도에 사장이 바뀌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그러지 못한 경우가 흔하다”면서 “요즘 일본 기업인들이 관심을 쏟는 부분은 사업승계보다 자산승계”라고 말했다. 회사 승계는 전문경영인에게 맡길 수 있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산은 오너 가족들이 해결하기 어렵고 분쟁이 잦아 늘 문제가 발생한다. 일본도 상속세율이 높은 편이어서 승계 과정에서 자산이 크게 줄 수 있다. 이 때문에 유명한 기업의 후계자가 가업을 거부하는 일이 잦다. 가업상속공제 대상 기업(중견기업)을 확대하는 법안이 12월 2일 국회 표결 결과 부결됐다. 가업상속공제 확대 법안(상속세 및 증여세법개정안)은 국회 선진화법에 따라 자동 부의된 예산부수법안이다. 여야가 막판까지 합의에 이르지 못하다 본회의 투표 결과 재적의원 255명 중 찬성 94표, 반대 123표, 기권 38표로 통과되지 못했다.
가업상속공제 확대 법안은 2015년 1월 1일 발효 예정이었다. 가업상속공제 공제 대상을 확대하고 요건은 완화하는 내용의 법안이었다. 공제 대상 기업을 현행 매출 3000억원 미만에서 5000억원 미만으로 확대하는 내용이 골자다. 이럴 경우 중소기업뿐 아니라 중견기업도 가업상속공제를 받을 수 있다.
피상속자 요건 완화도 포함돼 있었다. ‘10년 이상 경영’은 ‘5년 이상’으로, ‘특수관계자 포함 지분 비율 50% 이상’은 ‘피상속인 지분비율 25% 이상’으로 요건이 각각 완화될 수 있었다. 피상속인이 가업에 종사해야 하는 요건은 없어지고 1명이 전부 상속받는 것도 다른 자녀등이 다른 기업을 상속받거나 공동 상속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그럼에도 의무는 줄었다. 사후관리기간이 10년에서 7년으로 줄었다. 업종도 유관 계열 내에서는 전환할 수 있도록 했다. 매년 80% 이상 10년 평균 100% 고용을 유지해야 하는 규정은 7년 평균 100%로 바뀌었다. 이 때문에 기업상속공제 확대 법안은 중견기업인들로부터 지대한 관심을 받아왔다.
연계 법안에는 특례도 포함돼 있었다. ‘명문장수기업 인증’이다. 상속세 공제액을 기존 세제보다 확대해 받는 제도다. 기업이 중소기업청으로부터 명문장수기업 인증을 받으면 최고 공제 한도 500억원의 2배인 1000억원으로 한도가 늘어난다. 그럼에도 사후관리 요건은 일반 중소기업과 동일하다. 상속 개시 전 사전증여특례 한도도 일반 100억원에서 200억원으로 확대될 수 있었다.
명문장수기업이 되려면 업력이 30년이 넘는 등 가업 요건을 만족시키는 장수기업(40점)이어야 한다. 재무적 안정성이나 고용 확대, 지속적 성장세 등 경제적으로 기여(30점)하는 한편 사회적 책임(CSR)으로 사회에도 기여(30점)하는 등 명문기업이라야 한다.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면 추가가점 6점을 더 받을 수 있다. 총 100점 만점에 85점 이상이면 명문장수기업이 될 수 있다. 가업상속공제 확대 법안은 중견기업을 가업화할 수 있는 방법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법안이 부결되면서 중견기업 276곳(2012년 기준)이 상속세 감면 혜택을 못 받게 됐다. 부결된 법안은 같은 회기 내 다시 발의할 수 없다. 명문 장수기업센터를 운영 중인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윤성철 사업본부장은 “쟁점이 된 매출 상한 기준(3000억원→5000억원)이 문제가 된 것이지 나머지 가업승계 원활화를 위한 내용까지 의원들이 반대한 것은 아니다”라며 “시간이 좀 더 걸릴 수는 있겠지만 장수기업을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을 다시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은 세계 최대 장수기업 국가다. 일본 제국데이터뱅크 2013년 통계에 따르면 업력 100년을 넘긴 일본 기업은 2만2000여개가 넘는다. 유럽 전체 100년 기업이 6000여개인 것과 비교하면 월등히 많다.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으로 손꼽히는 목조건축회사 콩고구미가 578년에 창업했고, 서기 1000년 이전 창업한 회사 7개사가 일본에 있다.
일본 안에서도 장수기업 비중이 가장 큰 지역은 교토다. 교토 기업의 3.93%가 업력 100년을 넘겼다. 교토에서 버스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오사카는 과거 경제 중심지답게 기업 집적도가 일본에서 가장 높다. 교토시와 맞붙은 시가현과 나고야에도 업력이 긴 제조업이 집적돼 있다. 도쿄 상권은 상대적으로 근래 만들어 졌지만 업력 100년을 넘긴 장수 유통기업들이 풍부하다.
장수기업이 몰린 지역은 5대 경제 상권과 궤를 같이 한다. 교토, 오사카, 오미(시가현), 나고야, 도쿄 긴자다. 이들 지역은 14세기 이후 일본의 정치 거점 역할을 하면서 경제 기반을 마련했다. 이에 따라 각종 기업이 이 지역에 집중 설립됐다.
1583년 일본을 처음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기존 수도인 교토 인근 오사카에 성을 축조했다. 약 7조원에 달하는 황금을 쌓아놓고 성 축조를 독려해 오사카를 경제 중심지로 만들었다. 상공인 우대정책에 따라 유능한 상인과 직공들이 오사카에 몰려 당시로서는 신생 기업들이 대거 설립됐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자 1600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도요토미 일가를 몰아내고 새로운 권력으로 부상했다. 도쿠가와는 오사카 옆 교토로 자리를 옮기는 한편, 에도(도쿄)에 성을 지을 것을 명령했다. 도쿠가와는 도요토미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려 교토와 가까운 시가현을 경제 중심지로 개발했다. 또 고향인 나고야를 제조업 중심지로 부상시켰다. 에도로 자리를 옮기면서부터는 교토·오사카·시가·나고야의 제품들이 지금의 도쿄로 밀려들기 시작했다. 도쿄 긴자는 육로와 해로로 물류가 들어오는 길목이다. 긴자에 오래된 포목점이 현재의 백화점으로 성장하게 된 배경이다.
도쿠가와 이후 일본은 정치 중심지를 여러 차례 바꿨다. 하지만 기업들이 제자리를 지키면서 제조·상업의 중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수도를 이동하기 전 쌀을 중심으로 한 물류 수송로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일본 전역에서 잡아 올린 생선 대부분이 긴자 쯔끼지 시장에 들어왔다가 일본 곳곳으로 다시 흘러 들어갈 정도다. 이처럼 일본은 어느 지역에서 기업을 하든 경제 중심지까지 제품이 곧바로 전달될 수 있다. 기업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정치적 영향력에 무관하게 생산에 전념할 수 있다. 일본에 장수기업이 많은 이유다.
역사적 배경에 따라 기업하는 사람들의 인식도 달라졌다. 업력이 100년을 넘긴 ‘백년기업’을 연구하고 있는 오사카 산업창조관 야마노 치에 프로듀서는 “일본인들은 선조의 가업을 자신이 잇는 것을 임무로 본다”며 “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성장한 기업은 믿을 수 있다고 보고 후계자가 있는 기업에 대해 큰 신뢰를 나타낸다”고 설명했다. 은행 대출을 받을 때도 후계자가 정해져 있으면 신용도를 높여준다. 작은 기업이라도 그 기업이 해당 산업과 지역의 분업 측면에서 나눠 맡은 역할이 무엇인가를 따진다고 한다. 분업화되지 않거나 후계자가 없으면 10년을 못 버틸 거라 예상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본의 경영자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사망하면 상속이 어렵기 때문에 늘 후계자를 염두에 둔다. 야마노씨는 “일본은 실적과 신뢰를 까다롭게 따지기 때문에 창업과 폐업이 잦은 경영자는 믿지 않는다”며 “장수기업의 제품은 신뢰가 높아 소비자들이 가격이 비싸도 사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야마노씨는 일본 장수기업의 특징을 ‘계승’ ‘97%에 달하는 가족승계’ ‘외자 도입에 부정적’ ‘성장보다 안정을 위해 비상장’ ‘승계 시점에 신상품 출시’라고 꼽았다. 그리고 대부분의 장수기업이 창업자 의도를 문서화하는 것을 중시하고, 이를 전승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설명했다.
일본의 장수기업은 제품 중에 성공하는 것만 골라 생산해 리스크를 피한다. 새로운 상품에 대한 선택과 집중은 경영권이 넘어갔을 때 주로 시도한다. 하지만 이런 성향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새로운 블루오션에 대한 도전을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야마노씨는 “블루오션이라 해도 자신의 분야가 아니면 외면하는 것이 일본 장수기업의 문제”라며 “그런 면에서 자신의 사업을 크게 키우고 싶어하는 한국 기업인 들에게 배울 것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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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엔 딸이나 사위, 며느리 등이 경영권을 이어받는 경우도 있다. 자손이 없거나 자손이 가업 승계를 거부하는 기업은 직계 외에 방계가 가업을 잇기도 한다. 단, 어떤 경우에도 장수기업이 3세대 이상을 넘기려면 1회 이상은 재산이나 경영권을 상속해야 한다.
기업 상속에서 현실적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세금이다. 그런데 고율의 상속세나 증여세를 모두 내고 나면 물려줄 경영권마저 위태로울 수 있다. 실제로 상속세 부담 탓에 기업을 매각한 경우도 적지 않다. 종묘 중견기업 농우바이오는 지난 9월 16일 상속세 납부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농협 계열사에 회사를 팔았다. 설립자 고희선 회장이 2013년 8월 갑자기 별세하자 유족들에게 가업상속세 1000억원이 책정됐다. 농우바이오는 영농법인 이어서 세금 공제 한도가 5억원에 불과했다. 상속재산가액에 들어있는 주식으로 세금을 내기도 어려웠다. 상장주식이기 때문에 물납으로 상속세를 낼 수 없기 때문이다. 농우바이오의 상속세율은 기업 전 자산의 65%에 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평생 번 돈 80~90% 세금으로 내야”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상속세제가 변해야 기업이 영속성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한상의는 “특히 최대주주 주식에 대한 할증 과세가 65%에 달해 과세 부담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라며 “그럼에도 세제 지원은 선진국보다 불리해 원활한 가업승계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사업을 가업으로 결정하면 2세대로 넘어갈 때부터 상속세로 기업 자산이 크게 준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후계자가 가업을 받을 메리트가 떨어지거나 경영권을 잃을 수 있어 기업의 영속성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 한 중견기업 대표는 상속을 준비하면서 세율을 곰곰이 따져봤다. 기업이 중소기업이었을 때는 별 문제가 없었다. 규모가 작은 기업에 대한 상속세는 거의 면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의 0.1%에 속하는 중견·대기업이 되면서부터는 얘기가 달라졌다. 실상속세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걸로 나왔기 때문이다. 명목상 상속세를 넘어 다양한 세목에 따라 할증 세율을 적용 받아야 했다. 중견기업만 돼도 대부분 세목에서 최고세율을 내야 한다. 소득세 38%에 지방세·의료보험료와 사회기부금 등을 합하면 수익의 반절을 내야 한다. 이에 더해 상속자가 기업을 승계하려면 30% 할증까지 붙는다. 최고세율 50%에 15% 할증으로 기업 자산의 65%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이 중견기업 대표는 “아무리 기업 경영을 잘해 수익을 내도 이 만한 세금은 현금으로 내기 어렵다”며 “양도소득세를 내기 위해 경영 중인 회사 주식을 팔아야 세금을 낼 수 있는데, 그러면 기업 경영은 거기서 끝난다”고 말한다. 세무전문가를 통해 세금을 계산한 결과 한국의 0.1%에 속하는 기업은 평생 번 돈의 80~90%를 세금으로 내야 승계가 가능하다. 세제 때문에 한국에서는 장수기업, 가업승계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정부는 세법 개정을 통해 가업승계를 지원해왔다. 상속세율은 유지하는 대신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면 세금을 일부 공제해 주는 방식이다. 대신 정부가 정한 선에 고용을 유지하는 등의 조건을 지켜야 한다. 2007년 이전에도 관련 공제는 있었다. 하지만 공제 대상이 매출 1억원 이하에 불과했다. 소기업이나 자영업 등 상속세 과세가 어려운 기업을 대상으로 했다. 2008년 이후 정부는 ‘가업승계 주식에 대한 증여세 과세특례 제도’를 도입했다. 관련 세제는 매년 지속적으로 완화되고 공제 대상은 확대되고 있다.
상속세율 놔두고 공제 혜택 늘려봐야…
모든 기업가가 이 제도를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상속을 하려는 오너(피상속인)는 업력의 50% 이상, 10년 이상, 상속을 시작하기 전 10년 중엔 5년 이상을 대표이사로 재직해야 한다. 상속인(배우자도 가능)은 18세 이상, 상속 시작 전 2년 이상 가업에 종사, 상속과세표준 신고 기한까지 임원으로 취임하고 신고기간 2년 이내에 대표이사로 취임해야 한다. 자녀 상속인은 1명이 가업 전부를 상속받아야 한다.
공제를 받는 기업 규모는 2008년 이후 지속적으로 확대돼 왔다. 2014년까지는 20년 이상 경영한 사람이 상속하면 500억원까지 상속세를 공제받을 수 있다. 공제 혜택이 있는 대신 의무도 져야 한다. 가업용 자산을 20% 이상 처분(상속 이후 5년 내엔 10%)해서는 안 된다. 상속인은 가업에만 종사해야 하고, 지분이 줄어들어서도 안 된다. 평균 정규직 근로자 수가 80%에 미달해서도 안 되고 상속 개시 후 10년 간 평균 정규직 근로자수가 유지돼야 한다. 중견기업은 정규직 근로자 수가 20% 이상 늘어야 한다.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공제받은 상속세를 다시 내야 한다. 세법에서는 이 의무를 ‘사후관리’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재계에선 공제 확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해외 선진국 세법처럼 상속세를 줄이거나 세제를 단순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상속세법을 그대로 두고 정부가 사후관리라며 각종 의무를 지우는 게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대한상의는 “최근 주요국에서는 상속·증여세 제도가 갖는 부의 집중 완화 기능에 대한 회의론이 일고 있다”며 “상속세 자체를 폐지하거나 세제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의 가업상속공제에 대해서도 대한상의는 “공제 한도 설정, 업력 및 업종 제한 등으로 의도한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한상의는 가업승계 주식에 대한 증여세 납세유예제도 도입, 업력과 무관하게 공제 한도 적용, 가업승계 지원 업종 제한 완화, 상속세 과세 방식 변경, 최대주주 주식에 대한 할증 평가 방식 재고 등을 요구하고 있다.
독일·영국은 상속과 증여 구분하지 않아
프랑스 상속세제 역시 기업 부담을 줄이고 있다. 르 고엑스(LE GOUEIX) 프랑소아 꽁땅 회장은 “프랑스에서는 상속을 받을 경우 10년 이상 미리 준비하는 게 보통인데 정부가 제도적으로 도와준다”며 “한꺼번에 과도한 상속세가 나오지 않도록 10~12년에 걸쳐 나눠내는 경우도 있고, 회사의 재산을 기부채납하는 조건으로 감면하는 제도도 있다”고 말했다.
영국은 별도의 고용유지 의무가 없다. 가업 상속과 증여에 대해 동일하게 승계 자산별로 50%~100%를 공제한다. 영국의 화이트차펠 벨 파운드리의 앨런 휴즈 대표는 가족기업을 승계할때는 약 24%의 세금을 내야 하지만 자녀가 세금 때문에 비즈니스를 팔아야 하는 경우에는 면제 또는 유예해준다”며 “중소기업에게만 적용되는 정책인데, 물론 이런 방식으로 상속 받은 뒤 사업을 청산하게 되면 다시 세금을 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日, 가업 상속 거부 많아 걱정
공제 한도 설정에도 선진국과 한국은 차이를 보인다. 한국은 매출 규모에 따라 정액으로 한도를 설정한다. 하지만 선진국은 정률로 한도를 정한다. 중소기업, 중견기업, 대기업 등에 따라 세제를 구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업승계를 지원하는 업종을 정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난다. 한국은 열거주의 방식이다. 보안시스템 서비스업, 사업시설 유지관리 서비스업, 택배업 등 법에서 열거하지 않은 서비스 업종은 가업승계 지원을 받을 수 없다. 이와 달리 독일과 영국은 지원 업종에 제한이 없다. 일본은 자산관리회사 등 일부 업종을 특정해 지원을 배제한다. 나머지는 모두 지원하는 포괄주의 방식이다.
장수기업이 많은 일본 교토에서 세무를 상담하는 주규식 세리사(세무사)는 “일본은 2008년과 2013년 각각 사업승계 관련 세제를 개정해 중소기업이 상속에 부담을 느끼지 않고 가업을 물려줄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일정한 요건만 충족하면 경영 후계자에게 비상장 주식을 증여해도 바로 증여세를 과세하지 않고 있다. 그 후 후계자가 주식을 상속받으면 주식에 대한 상속세의 80%를 납세 유예하거나 면제 받을 수 있다. 주로 중소기업이 원활하게 사업을 승계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장수기업이 흔한 일본이 세제를 고쳐가면서 가업승계를 지원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기업 영속성이 과거에 비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가장 큰 이유는 고령화, 낮아진 출산율이나 자녀와의 연령 차이 등 세제 외적 요인이다. 독신 가정이 늘고, 출산율이 낮아지면서 기업을 물려줄 자녀가 없는 경우가 흔해졌다. 자녀가 있다고 해도 상속은 부담된다. 가업 잇기를 부담스러워 하는 자녀에게 상속세까지 물어가며 기업을 물려주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초혼 연령이 늦어지면서 자녀와 부모사이 연령차가 생기는 것도 가업승계의 난점이 되고 있다. 실제 일본 기업 상당수가 자녀 승계에 문제가 일어난다고 한다. 후계자가 30대 정도로 어린 나이에 승진하면 서열의식이 강한 일본에서 아버지뻘 나이의 이사들과 관계를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또 은퇴 시점이 늦어지면서 80세를 넘긴 사장도 왕성하게 활동해 승계를 서두르지 않는다. 일본의 한 장수기업 후계자는 “일반적으로 30대 후반이나 40대 정도에 사장이 바뀌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그러지 못한 경우가 흔하다”면서 “요즘 일본 기업인들이 관심을 쏟는 부분은 사업승계보다 자산승계”라고 말했다. 회사 승계는 전문경영인에게 맡길 수 있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산은 오너 가족들이 해결하기 어렵고 분쟁이 잦아 늘 문제가 발생한다. 일본도 상속세율이 높은 편이어서 승계 과정에서 자산이 크게 줄 수 있다. 이 때문에 유명한 기업의 후계자가 가업을 거부하는 일이 잦다.
상속세 공제 대상 확대안 국회서 부결 - 중견기업 승계 더 기다려야?
가업상속공제 확대 법안은 2015년 1월 1일 발효 예정이었다. 가업상속공제 공제 대상을 확대하고 요건은 완화하는 내용의 법안이었다. 공제 대상 기업을 현행 매출 3000억원 미만에서 5000억원 미만으로 확대하는 내용이 골자다. 이럴 경우 중소기업뿐 아니라 중견기업도 가업상속공제를 받을 수 있다.
피상속자 요건 완화도 포함돼 있었다. ‘10년 이상 경영’은 ‘5년 이상’으로, ‘특수관계자 포함 지분 비율 50% 이상’은 ‘피상속인 지분비율 25% 이상’으로 요건이 각각 완화될 수 있었다. 피상속인이 가업에 종사해야 하는 요건은 없어지고 1명이 전부 상속받는 것도 다른 자녀등이 다른 기업을 상속받거나 공동 상속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그럼에도 의무는 줄었다. 사후관리기간이 10년에서 7년으로 줄었다. 업종도 유관 계열 내에서는 전환할 수 있도록 했다. 매년 80% 이상 10년 평균 100% 고용을 유지해야 하는 규정은 7년 평균 100%로 바뀌었다. 이 때문에 기업상속공제 확대 법안은 중견기업인들로부터 지대한 관심을 받아왔다.
연계 법안에는 특례도 포함돼 있었다. ‘명문장수기업 인증’이다. 상속세 공제액을 기존 세제보다 확대해 받는 제도다. 기업이 중소기업청으로부터 명문장수기업 인증을 받으면 최고 공제 한도 500억원의 2배인 1000억원으로 한도가 늘어난다. 그럼에도 사후관리 요건은 일반 중소기업과 동일하다. 상속 개시 전 사전증여특례 한도도 일반 100억원에서 200억원으로 확대될 수 있었다.
명문장수기업이 되려면 업력이 30년이 넘는 등 가업 요건을 만족시키는 장수기업(40점)이어야 한다. 재무적 안정성이나 고용 확대, 지속적 성장세 등 경제적으로 기여(30점)하는 한편 사회적 책임(CSR)으로 사회에도 기여(30점)하는 등 명문기업이라야 한다.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면 추가가점 6점을 더 받을 수 있다. 총 100점 만점에 85점 이상이면 명문장수기업이 될 수 있다. 가업상속공제 확대 법안은 중견기업을 가업화할 수 있는 방법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법안이 부결되면서 중견기업 276곳(2012년 기준)이 상속세 감면 혜택을 못 받게 됐다. 부결된 법안은 같은 회기 내 다시 발의할 수 없다. 명문 장수기업센터를 운영 중인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윤성철 사업본부장은 “쟁점이 된 매출 상한 기준(3000억원→5000억원)이 문제가 된 것이지 나머지 가업승계 원활화를 위한 내용까지 의원들이 반대한 것은 아니다”라며 “시간이 좀 더 걸릴 수는 있겠지만 장수기업을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을 다시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장수기업은? - 경제 중심 변해도 가업은 한 자리에서 꿋꿋하게
일본 안에서도 장수기업 비중이 가장 큰 지역은 교토다. 교토 기업의 3.93%가 업력 100년을 넘겼다. 교토에서 버스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오사카는 과거 경제 중심지답게 기업 집적도가 일본에서 가장 높다. 교토시와 맞붙은 시가현과 나고야에도 업력이 긴 제조업이 집적돼 있다. 도쿄 상권은 상대적으로 근래 만들어 졌지만 업력 100년을 넘긴 장수 유통기업들이 풍부하다.
장수기업이 몰린 지역은 5대 경제 상권과 궤를 같이 한다. 교토, 오사카, 오미(시가현), 나고야, 도쿄 긴자다. 이들 지역은 14세기 이후 일본의 정치 거점 역할을 하면서 경제 기반을 마련했다. 이에 따라 각종 기업이 이 지역에 집중 설립됐다.
1583년 일본을 처음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기존 수도인 교토 인근 오사카에 성을 축조했다. 약 7조원에 달하는 황금을 쌓아놓고 성 축조를 독려해 오사카를 경제 중심지로 만들었다. 상공인 우대정책에 따라 유능한 상인과 직공들이 오사카에 몰려 당시로서는 신생 기업들이 대거 설립됐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자 1600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도요토미 일가를 몰아내고 새로운 권력으로 부상했다. 도쿠가와는 오사카 옆 교토로 자리를 옮기는 한편, 에도(도쿄)에 성을 지을 것을 명령했다. 도쿠가와는 도요토미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려 교토와 가까운 시가현을 경제 중심지로 개발했다. 또 고향인 나고야를 제조업 중심지로 부상시켰다. 에도로 자리를 옮기면서부터는 교토·오사카·시가·나고야의 제품들이 지금의 도쿄로 밀려들기 시작했다. 도쿄 긴자는 육로와 해로로 물류가 들어오는 길목이다. 긴자에 오래된 포목점이 현재의 백화점으로 성장하게 된 배경이다.
도쿠가와 이후 일본은 정치 중심지를 여러 차례 바꿨다. 하지만 기업들이 제자리를 지키면서 제조·상업의 중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수도를 이동하기 전 쌀을 중심으로 한 물류 수송로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일본 전역에서 잡아 올린 생선 대부분이 긴자 쯔끼지 시장에 들어왔다가 일본 곳곳으로 다시 흘러 들어갈 정도다. 이처럼 일본은 어느 지역에서 기업을 하든 경제 중심지까지 제품이 곧바로 전달될 수 있다. 기업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정치적 영향력에 무관하게 생산에 전념할 수 있다. 일본에 장수기업이 많은 이유다.
역사적 배경에 따라 기업하는 사람들의 인식도 달라졌다. 업력이 100년을 넘긴 ‘백년기업’을 연구하고 있는 오사카 산업창조관 야마노 치에 프로듀서는 “일본인들은 선조의 가업을 자신이 잇는 것을 임무로 본다”며 “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성장한 기업은 믿을 수 있다고 보고 후계자가 있는 기업에 대해 큰 신뢰를 나타낸다”고 설명했다. 은행 대출을 받을 때도 후계자가 정해져 있으면 신용도를 높여준다. 작은 기업이라도 그 기업이 해당 산업과 지역의 분업 측면에서 나눠 맡은 역할이 무엇인가를 따진다고 한다. 분업화되지 않거나 후계자가 없으면 10년을 못 버틸 거라 예상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본의 경영자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사망하면 상속이 어렵기 때문에 늘 후계자를 염두에 둔다. 야마노씨는 “일본은 실적과 신뢰를 까다롭게 따지기 때문에 창업과 폐업이 잦은 경영자는 믿지 않는다”며 “장수기업의 제품은 신뢰가 높아 소비자들이 가격이 비싸도 사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야마노씨는 일본 장수기업의 특징을 ‘계승’ ‘97%에 달하는 가족승계’ ‘외자 도입에 부정적’ ‘성장보다 안정을 위해 비상장’ ‘승계 시점에 신상품 출시’라고 꼽았다. 그리고 대부분의 장수기업이 창업자 의도를 문서화하는 것을 중시하고, 이를 전승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설명했다.
일본의 장수기업은 제품 중에 성공하는 것만 골라 생산해 리스크를 피한다. 새로운 상품에 대한 선택과 집중은 경영권이 넘어갔을 때 주로 시도한다. 하지만 이런 성향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새로운 블루오션에 대한 도전을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야마노씨는 “블루오션이라 해도 자신의 분야가 아니면 외면하는 것이 일본 장수기업의 문제”라며 “그런 면에서 자신의 사업을 크게 키우고 싶어하는 한국 기업인 들에게 배울 것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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