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RROR IN PARIS | 관용의 역설
TERROR IN PARIS | 관용의 역설
파리의 테러 공격 후 프랑스는 범국가적으로 톨레랑스(관용, tolerance)과 표현의 자유(freedom of expression)를 지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일부 프랑스인은 그에 대한 반발로 바로 그런 가치가 손상될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프랑스는 유럽에서 무슬림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다. 급진 이슬람주의 테러리스트들이 1월 7일 파리의 잡지사 샤를리 엡도 사무실, 이틀 뒤인 9일 유대인 슈퍼마켓을 공격한 뒤 프랑스인 수백만 명은 11일 프랑스 역사상 최대 규모의 시위행진을 벌였다. 그러나 오래 전부터 존재하던 반무슬림 담론이 프랑스 정치에 더 깊이 파고들면서 그런 연대감이 사라질지 모른다고 우려하는 사람이 많다.
박사 과정 학생인 아리안 르보(26)는 “일부는 인종차별적인 메시지를 전하려고 이번 사태를 이용한다”고 말했다. “무슬림은 프랑스 인구의 약 8%를 차지한다. 그중 일부는 이슬람 사원에 갔다가 공격당한다.” 샤를리 엡도와 유대인 슈퍼마켓 테러 이후 반무슬림 폭력사태가 빈발하는 사태를 지적한 이야기다. 프랑스 무슬림협회에 따르면 지난주 무슬림에 대한 공격이 최소 50건이나 발생했다.
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 대표는 파리 테러 직후 이민 규제를 재차 촉구했다. 지난해 봄 프랑스의 유럽의회 선거에서 FN이 1위를 기록하면서 르펜의 지지도가 치솟았다. 현재 그녀의 지지도는 올랑드 대통령의 두 배다. 또 그녀는 테러 공격 직후 사형제도를 부활하라고 촉구했다.
대학생 아르투르 부아텐(22)은 “불행하게도 심각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겁먹고 테러리스트와 무슬림을 혼동하면서 특정 유형의 이민자를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정책이 바뀌지 않기를 바라지만 현실적으론 이민을 엄격히 규제하는 쪽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
FN은 지난해 유럽의회 선거에서 프랑스인 4분의 1의 지지를 받았지만 르펜은 지난 11일 세계와 프랑스 지도자들이 참석한 행진에는 초청받지 못했다. 그런데도 그녀가 그 행진을 정치적 이득을 위해 이용했다고 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르펜의 반무슬림 노선을 지지하지 않는 프랑스인도 테러 공격 후 프랑스가 공공 공간에서 종교를 다루는 방식(기본적으로 종교를 못 본 척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파리 교외에 사는 심리학자 마리 에덴은 이렇게 설명했다. “젊은이들이 특정 종교에 급진적으로 빠져들거나 프랑스 또는 해외에서 교화 프로그램에 참가하지 않도록 잘 가르쳐야 한다. 이건 교육의 문제다.”
프랑스의 ‘공화국 가치’로 알려진 ‘자유(liberté), 평등(egalité), 박애(fraternité)’와 표현의 자유를 잘 받아들이지 못할 사람이 프랑스로 이주하는 문제도 제기됐다. ‘특정 부류의 사람은 프랑스에 와서는 안 된다’는 르펜의 메시지가 바로 그런 정서를 부추긴다.
에덴은 “이민이 큰 문제”라고 말했다. “내가 일하는 곳은 가난한 구역이다. 공화국과 프랑스의 가치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 많이 이주해오는 것을 우리가 도와주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들은 자신만의 세계를 고집하고 우리가 다가가려고 하면 거부한다.”
물론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 11일 행진에 참여한 한 가족은 거의 반 세기 전 이집트에서 파리로 이민했다. ‘이집트는 테러에 반대한다’는 표지판을 든 그들은 프랑스에선 괴롭힘당할 걱정 없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이민자보다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급진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합류했다가 귀국한 프랑스인이 더 걱정이라는 시각도 있다.
화가인 토마스 부장케(24)는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 파리에서 테러를 일으킨 3명은 전부 프랑스인이었다. 그들은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게다가 그들은 문화가 풍요롭고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파리에서 모든 것을 누리며 성장했다. 그런데도 결국 테러리스트가 됐다.” 그럼에도 그는 중동의 전쟁터에서 성전을 벌이고 돌아오는 프랑스인을 무조건 추방하거나 탄압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반대한다. “그들이 왜 그곳에 가서 성전에 참여했는지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프랑스인 수백만 명이 개선문에서 나시옹 광장까지 파리 거리를 가득 메운 시위행진은 프랑스에선 전례 없는 일이었다. 파리에서 시위는 잦지만 하나의 목적 아래 뭉치거나 그토록 평화롭게 진행되는 시위는 거의 없다. 또 그렇게 대규모 시위도 없었다.
레퓌블리크 광장의 카페에 앉아 있던 부장케와 그의 친구 아르투르 랑보(22)는 바로 그런 연대감을 자랑스러워하며 혹시나 그런 연대감이 사라질까 걱정했다. 그날 처음 “자유란 매일 매일 노력해야 하는 가치”라는 사실을 깨달은 그들은 와인 잔을 부딪치며 건배했다. “자유를 위하여!”
- 번역 이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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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 과정 학생인 아리안 르보(26)는 “일부는 인종차별적인 메시지를 전하려고 이번 사태를 이용한다”고 말했다. “무슬림은 프랑스 인구의 약 8%를 차지한다. 그중 일부는 이슬람 사원에 갔다가 공격당한다.” 샤를리 엡도와 유대인 슈퍼마켓 테러 이후 반무슬림 폭력사태가 빈발하는 사태를 지적한 이야기다. 프랑스 무슬림협회에 따르면 지난주 무슬림에 대한 공격이 최소 50건이나 발생했다.
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 대표는 파리 테러 직후 이민 규제를 재차 촉구했다. 지난해 봄 프랑스의 유럽의회 선거에서 FN이 1위를 기록하면서 르펜의 지지도가 치솟았다. 현재 그녀의 지지도는 올랑드 대통령의 두 배다. 또 그녀는 테러 공격 직후 사형제도를 부활하라고 촉구했다.
대학생 아르투르 부아텐(22)은 “불행하게도 심각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겁먹고 테러리스트와 무슬림을 혼동하면서 특정 유형의 이민자를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정책이 바뀌지 않기를 바라지만 현실적으론 이민을 엄격히 규제하는 쪽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
FN은 지난해 유럽의회 선거에서 프랑스인 4분의 1의 지지를 받았지만 르펜은 지난 11일 세계와 프랑스 지도자들이 참석한 행진에는 초청받지 못했다. 그런데도 그녀가 그 행진을 정치적 이득을 위해 이용했다고 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르펜의 반무슬림 노선을 지지하지 않는 프랑스인도 테러 공격 후 프랑스가 공공 공간에서 종교를 다루는 방식(기본적으로 종교를 못 본 척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파리 교외에 사는 심리학자 마리 에덴은 이렇게 설명했다. “젊은이들이 특정 종교에 급진적으로 빠져들거나 프랑스 또는 해외에서 교화 프로그램에 참가하지 않도록 잘 가르쳐야 한다. 이건 교육의 문제다.”
프랑스의 ‘공화국 가치’로 알려진 ‘자유(liberté), 평등(egalité), 박애(fraternité)’와 표현의 자유를 잘 받아들이지 못할 사람이 프랑스로 이주하는 문제도 제기됐다. ‘특정 부류의 사람은 프랑스에 와서는 안 된다’는 르펜의 메시지가 바로 그런 정서를 부추긴다.
에덴은 “이민이 큰 문제”라고 말했다. “내가 일하는 곳은 가난한 구역이다. 공화국과 프랑스의 가치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 많이 이주해오는 것을 우리가 도와주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들은 자신만의 세계를 고집하고 우리가 다가가려고 하면 거부한다.”
물론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 11일 행진에 참여한 한 가족은 거의 반 세기 전 이집트에서 파리로 이민했다. ‘이집트는 테러에 반대한다’는 표지판을 든 그들은 프랑스에선 괴롭힘당할 걱정 없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이민자보다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급진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합류했다가 귀국한 프랑스인이 더 걱정이라는 시각도 있다.
화가인 토마스 부장케(24)는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 파리에서 테러를 일으킨 3명은 전부 프랑스인이었다. 그들은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게다가 그들은 문화가 풍요롭고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파리에서 모든 것을 누리며 성장했다. 그런데도 결국 테러리스트가 됐다.” 그럼에도 그는 중동의 전쟁터에서 성전을 벌이고 돌아오는 프랑스인을 무조건 추방하거나 탄압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반대한다. “그들이 왜 그곳에 가서 성전에 참여했는지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프랑스인 수백만 명이 개선문에서 나시옹 광장까지 파리 거리를 가득 메운 시위행진은 프랑스에선 전례 없는 일이었다. 파리에서 시위는 잦지만 하나의 목적 아래 뭉치거나 그토록 평화롭게 진행되는 시위는 거의 없다. 또 그렇게 대규모 시위도 없었다.
레퓌블리크 광장의 카페에 앉아 있던 부장케와 그의 친구 아르투르 랑보(22)는 바로 그런 연대감을 자랑스러워하며 혹시나 그런 연대감이 사라질까 걱정했다. 그날 처음 “자유란 매일 매일 노력해야 하는 가치”라는 사실을 깨달은 그들은 와인 잔을 부딪치며 건배했다. “자유를 위하여!”
- 번역 이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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