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실리주의 외교 교과서
친절한 실리주의 외교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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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바 유키 니가타현립대학 교수의 신저 ‘한국화하는 일본, 일본화하는 한국’은 이 문제를 일본인의 시각에서 접근한 책이다. 바꿔 말하면, ‘한국은 왜 저럴까’라는 일본인의 의문에 일본인의 관점으로 답하고 있다. 이 책에서 아사바 교수는 한국이라는 나라의 특성과 한국인의 성향, 독도와 위안부 문제 등 갈등 요소, 한일 양국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조목조목 짚었다.
국제정치를 다루는 책으로선 드물게 존댓말을 사용하며 쉽고 친절하게 설명하는 아사바 교수의 어투와 달리 이 책은 무서울 정도로 냉정하고 실리주의적이다. 아사바 교수는 가치판단을 철저히 배제한다. 그가 유일하게 고려하는 사항은 어떤 주장, 어떤 행동이 과연 국익에 도움이 되느냐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아사바 교수가 제시하는 도구는 ‘게임’과 ‘규칙’이다. 아사바 교수는 국제정치를 스포츠 경기에 비유한다. 야구, 축구 등 각 스포츠마다 각각의 규칙이 있듯이 국제정치에도 규칙이 있다. 냉전 종식, 패권국의 몰락 등 거대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게임이 바뀌고, 게임이 바뀌면 규칙도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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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바 교수는 역대 총리들의 사과문과 아시아여성기금 등을 들면서 “일본인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전혀 사과하지 않았다거나 아무런 성의도 표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도 오늘날 위안부 문제는 “한국과 일본 양국 간 외교문제가 아니라 ‘전쟁 중 여성의 인권문제’라는 국제적·보편적 문제”로 떠올랐다.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을 거쳐 형성된 국제사회의 게임판에선 ‘인권을 존중한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규칙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사바 교수는 “일본 정부는 포괄적인 사죄의 뜻을 국제사회에 분명히 제시하고 두 번 다시 전쟁범죄나 인권침해를 일으키지 않겠다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과해서 안 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진정성’을 좋아하는 한국인의 마음엔 들지 않을 듯한 사과다. 아사바 교수가 이렇게까지 주장하는 이유는 문제가 “자존심이 아니라 외교전략”에 있기 때문이다. 그는 “강제연행이 없었다거나 어떤 증거가 조작됐다거나 하는 주장은 국제사회에선 쟁점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아사바가 보기에 일부 일본인들이 한사코 그런 주장을 하는 이유는 그저 “고개를 숙이면 지는 것”이라는 자존심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이 그런 주장을 하면 할수록 국제사회는 전쟁범죄를 일으켰던 일본과 오늘날의 일본을 연결 짓고, 일본을 더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일본 입장에선 막심한 손해다. “좋고 나쁨,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이득인지 손해인지를 놓고 따져 볼 문제입니다.”
포괄적인 한일관계도 그렇다. 사실 한국과 일본이 갈등하는 원인은 역사 문제가 아니라고 아사바 교수는 주장한다. 역사 문제는 오래 전부터 끊이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어쨌든 지금에 비하면 한일관계는 훨씬 양호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금과 동일한 기조로 운영했던 제1차 아베 내각 때도 그랬다. 지금에 와서 한일 갈등이 심화된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한국과 일본이 서로 다른 곳에 베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거의 필연적이라고 보고 미일관계에 온 힘을 쏟는 반면, 한국은 양국이 공존하는 신형대국관계가 가능하며 또한 바람직하다고 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은 일본의 필요성을 잘 느끼지 못한다. 기존의 한·미·일 동맹보다 중국과 미국 사이를 오가는 한·미·중 외교가 자국에 더 이득이라고 판단한다. 한·미·일 동맹을 중국에 대항할 안보 체제로 여기는 일본이 보기엔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한국처럼 중국과 가까워지기엔 미국의 눈치도 있고,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영토 분쟁도 있다. 서로 입장이 달라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분열을 일으키는 일본이 달갑지 않다. 일본은 중국으로 점점 치우치는 한국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중국의 성장으로 동아시아 정세의 게임판이 바뀌면서 양국의 규칙도 달라진 것이다. 역사 문제는 그 달라진 규칙이 부딪히면서 드러난 징후에 불과하다.
이 책이 나온 배경은 일본에서 급속도로 번져가는 ‘혐한론’이다. “일본 서점의 신간 코너에 가면 한국, 중국을 비난하는 내용의 책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음을 보게 된다”고 아사바 교수가 서두에 밝히듯이 일본에선 한국 비판이 크게 유행하고 있다. 이런 책의 대부분은 한국의 부정적인 면을 침소봉대하거나 왜곡함으로써 한국의 실상을 가려버린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잘못에 대해선 함구하거나 일본 찬양 일색이어서 일본인 스스로를 돌아보지도 못하게 만든다. 이런 환경에서 감정에 휩쓸리지 말고 폭넓은 시각에서 “스스로의 머리로 생각하라”고 설파하는 아사바 교수의 책은 그래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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