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진 전문기자의 ‘Car Talk’ | 미국에서 픽업 트럭이 인기인 이유] ‘배달(配達)의 민족’과 거리 멀어 필수품
[김태진 전문기자의 ‘Car Talk’ | 미국에서 픽업 트럭이 인기인 이유] ‘배달(配達)의 민족’과 거리 멀어 필수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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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여름 미국 시카고에 할리-데이비슨 투어 출장을 갔을 때다. 산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평야 지대인 시카고의 외곽 주택가 도로에는 승용차보다 픽업이 더 많이 굴러다녔다. 투어 도중 시내에서 두 시간 거리인 야영장에 잠시 들렀다. 띄엄띄엄 텐트를 친 풍경은 난민촌을 연상케 하는 한국의 캠핑장과 사뭇 달랐다. 대부분 뚜껑이 없는 적재함을 단 픽업에 바비큐 그릴 같은 각종 장비와 커다란 개 한 마리를 싣고 왔다. 픽업이 생활 수단인 미국의 전형적인 나들이 풍경이다.
한국의 캠핑족이라면 승용차나 중소형 SUV의 좁은 짐칸에 각종 용품을 차곡차곡 실어야 하는 고통을 겪어 봤을 게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픽업이 어울릴 수 있을까. 픽업은 우리에게 매우 낯설다. 국산차 80여개 모델 가운데 픽업은 딱 한 차종만 명맥을 유지한다. 미국은 픽업의 천국으로 통한다. 웬만한 중산층 가정에 픽업 한 대는 필수다. 북미 자동차 시장에서 픽업 판매가 호조를 보이면서 현대자동차·폴크스바겐 같은 세계 주요 브랜드가 새롭게 이 시장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다. 픽업은 알토란 같은 수익을 남겨주는 황금 모델이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인기 차종이라고 해서 국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해치백·왜건·픽업은 한국의 3대 비인기 차종이다. 해치백은 수입차인 폴크스바겐 골프가 그나마 좀 팔릴 뿐, 국산 해치백은 수입차보다 판매가 뒤질 정도로 바닥이다. 왜건은 전형적인 비(非)인기차다. 수입차를 포함해도 겨우 서너 개뿐인데다 판매 역시 미미하다. 현재 국산 왜건은 현대차 i40가 유일하다. 픽업은 수입차 모델에 아예 빠져있다. 2000년대 초 수입차 브랜드에서 미국 픽업인 닷지 다코타와 포드 익스플로러 스포츠를 시판한 경우가 있었지만 이나마 잠시 팔리다가 자취를 감췄다. 다행인 점은 국산 픽업은 계속해서 나온다. 쌍용 코란도 스포츠가 무쏘 스포츠를 이어 명맥을 유지한다. 코란도 스포츠는 국내에서 화물차로 분류돼 혜택이 많다. 세금이 저렴하고 적재공간 활용도가 높아 꾸준히 팔린다. 지난해 판매량은 2만8292대로 국산 SUV 중에서 5위를 기록했다.
한국의 3대 비인기 차종 해치백·왜건·픽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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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타 캠리가 미국 자동차 시장의 베스트셀러라는 기사가 종종 뜨지만, 이는 승용차 부문만 따로 떼어 계산한 것이다. 전체 시장은 늘 픽업이 1위다. 올해 4월 판매를 보면 포드 F-시리즈가 6만2827대로 독보적인 1위다. 다음은 쉐보레 실버라도가 4만5978대, 닷지 램이 3만7921대로 3위다. 그 다음이 도요타 캠리(3만4066대)로 F- 시리즈 판매의 50% 수준이다. F-시리즈는 4월까지 누적 판매량만 24만대에 이른다. 미국 시장에서 베스트셀링카 1위를 내 준 적이 없다. 1948년 처음 나와 12번의 모델 체인지를 거치면서 미국인에게 가장 친숙한 자동차가 됐다.
미국에서 픽업이 인기를 끄는 가장 큰 이유는 실용성이다. 미국인의 생활 속에서 짐 실을 일이 꽤 많다. 미국은 배달 문화가 발달해 있지 않다. 가구나 전자제품을 사도 무료로 배달해주지 않는다. 추가로 비용을 지불하든가 직접 날라야 한다. 인건비가 비싸 배달료도 만만치 않다. 큰 짐도 직접 실어 나르는 문화가 발달해 이런 용도로 픽업만큼 좋은 차도 없다. DIY 문화 발달도 픽업이 인기를 끄는 이유다. 미국에는 DIY용 가구나 건축재료를 파는 거대한 마트가 많다. 웬만한 집수리는 직접 재료를 사다가 손수 한다. 길고 큰 재료들을 실어 나르려면 적재함이 개방된 픽업이 유리하다. 물론 한국보다 폭이 50㎝ 이상 넓어 3m에 달하는 넉넉한 주차장도 픽업 주차에 편리하다.
미국의 레저 문화에도 픽업이 안성맞춤이다. 미국인들은 여가 시간에 가족과 시간을 많이 보낸다. 레저와 캠핑을 즐긴다. 다섯 명이 탈 수 있고, 많은 짐을 실을 수 있는 픽업이야말로 캠핑과 레저에 잘 맞는다. 캠핑 트레일러나 요트 등 무게가 나가는 것들을 끌고 다니기에도 적합하다. 필자의 미국인 친구의 아들은 이삿짐을 본인의 픽업 트럭에 싣고 미국 북동부 시카고에서 서부 지역인 로스앤젤레스까지 5000㎞ 이상을 달린 경우도 있다.
미국인들은 픽업을 짐차로 여기지 않는다. SUV 같은 다목적 차의 한 종류로 본다. 꼭 짐을 실을 때에만 픽업을 타지 않고, 출퇴근 등 일상적인 용도로도 쓴다. 미국 픽업은 대부분 가솔린 엔진을 얹는다. 차를 탈 때의 느낌도 승용차와 별반 다르지 않다. 배기량도 3.0L 이상의 대형 엔진에다 기름도 많이 먹지만, 기름값이 싸기 때문에 유지비 부담이 덜하다.
그래서 미국 자동차 메이커는 픽업 생산에 적극적이다. 시장 수요가 꾸준하기 때문이다. 전체 수익의 절반 정도를 픽업으로 벌어들인다. 개발과 생산이 승용차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월하고 모델 교체기간도 길어 생산비가 적게 든다. 2008년 금융위기 때 미국 빅3 가운데 포드가 도산하지 않았던 이유가 F-시리즈 덕분이었다.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은 새로운 시장 발굴에 안간힘을 쓴다.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틈새 모델 같은 새로운 차종을 개발하든가, 자신들이 만들지는 않지만 타사의 주력 모델인 차종에 도전하는 것이다. 미국 브랜드의 전유물인 픽업은 대표적인 미개척 분야다. 시장이 북미 지역으로 한정된데다 미국 브랜드가 픽업 시장의 80% 이상을 점유할 만큼 파워가 강하기 때문이다. 일본 브랜드는 1990년대부터 픽업을 내놨지만 소형 분야에서만 선전한다. 그것도 미국 브랜드가 대형에 집중하면서 소형 시장을 소홀히 했기 때문에 운 좋게 파고든 결과다.
짐차가 아닌 다목적 SUV로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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