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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되는 한·중·일 환율전쟁 위험] 일본에 치이고 중국 눈치도 봐야

[고조되는 한·중·일 환율전쟁 위험] 일본에 치이고 중국 눈치도 봐야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왼쪽)와 저우샤오촨 중국 인민은행장.
일본에 사카키바라 에이스케와 구로다 하루히코가 있었다. 두 사람은 지난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 일본 재무성에서 달러-엔 환율을 인위적으로 끌어 올렸던 환율전쟁의 선봉장이었다. 구로다는 지금 일본은행의 총재로서 새로운 형태의 환율전쟁을 주도 중이다. 한국에는 김용덕 국제업무정책관(차관보)과 권태신 국제금융국장이 있었다. 두 사람 역시 2000년대 초 우리 정부(재정경제부) 환율응전의 주포(主砲)로서 구로다에 맞섰던 콤비다. 권태신은 지금 한국경제연구원의 원장으로 있다. 그런 권태신 원장이 최근 ‘초(超)엔저의 전망과 파장 및 대응 과제’라는 세미나에서 연설을 했다. ‘초(超)엔저’라는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그는 “미국이 금리를 올릴 경우 엔화 약세가 향후 2~3년간 지속돼 엔-원 환율 하락이 이어지고 우리 수출과 경제에 큰 타격이 될 것”이라면서 “그런데도 우리 통화외환 당국은 이렇다 할 전향적인 대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권 원장은 “잘못하면 엔-원 환율 하락 이후 나타났던 지난 1997년과 2008년의 위기가 재연될 것”이라고 말했다. 권 원장의 환율 우려는, 전경련 산하 연구원 원장의 발언으로는 뉴스 가치가 떨어진다. 그러나 10여년 전 환율전쟁에 직접 참여했던 장수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 함부로 흘려 들을 수가 없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지난 3년간 우리나라의 달러 대비 실질실효환율은 18% 비싸졌다. 이와 달리 같은 기간 동안 일본의 실질실효환율은 30%나 평가절하됐다. 권 원장이 말했듯이 엔화가 이런 식으로 급격하게 떨어졌던 지난 1990년대 중반과 2000년대 후반 우리나라는 외환위기(원화가치 폭락)를 맞았다.
 엔저는 중국 경제에도 골칫거리
지난 2002년 일본의 환율전쟁은 한국뿐 아니라 중국에게도 큰 위협이었다. 그래서 중국이 ‘동반 평가절하’를 강력히 경고해 일본의 도발은 일단락됐다. 당시 자국통화 평가절하의 바통은 미국이 이어받았고, 달러 위안화 환율을 고정해 놓았던 중국은 약 3년간 덩달아 덕을 봤다.

이번의 엔화 평가절하는 중국 경제에 더욱 큰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3년간 엔화가 30% 떨어지는 동안 중국 위안화의 실질실효환율은 20%나 절상됐다. 13년 전과 같은 경고가 중국에서 나오고도 남을 정도다. 그러나 중국은 침묵 중이다. 어쩌면 손발이 묶여 있는지도 모른다. 국제 결제통화, 세계 3대 준비통화가 되기 위한 대장정에 나서 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누가 일본을 주저 앉힐 수 있을까? 반년 동안 120엔선에서 멈춰서 있던 달러-엔 환율이 5월 하순부터 다시 뛰어 오르고 있다. 125엔선을 향하면서 12년 6개월 만에 최고치로 치닫던 5월 29일, 아소 다로 일본 재무상이 구두개입에 나섰다. “최근 며칠간의 달러-엔 움직임은 난폭했다”면서 “시장을 면밀히 주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 드레스덴에서 선진 7개국 재무장관들이 환율정책을 비롯한 핵심 이슈를 논의하던 중 나온 발언이다. 그러나 아소 장관은 달러-엔 환율이 올라가는(엔화 가치가 떨어지는) 방향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는 않았다. 몇 시간 뒤 아마리 아키라 일본 경제재생상은 “지난 2년여 동안 환율은 과도한 엔화 강세를 시정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왔다”며 “그럼 지금은 과도한 엔화 약세인가라고 한다면, 과도한 엔 약세까지 간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엔화가 더 떨어져도(달러-엔 환율이 더 올라도) 좋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기를 원한다는 속내이기도 하다. 단지 속도가 난폭하지 않기만을 바란다는 의미다.

엔화가 휴지기에 있던 지난 6개월은 유로화의 활동기(평가절하기)였다. 그에 앞선 2개월은 제2차 양적완화를 앞세운 일본 엔화의 활동기였으며, 유로화의 휴지기였다. 그리고 그 전 약 8개월여 간의 엔화 휴지기는 유로화의 활동기였다. 엔화와 유로화는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이렇게 번갈아 가며 평가절하를 거듭하고 있다. 엔화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지금도 유로화는 휴지기에 돌입해 있다. 그리고 그 타이밍에 우리나라에서 ‘超엔고’ 경고발언이 나왔다.

이러한 교대식 평가절하 과정에서 미국 달러화는 대폭 평가 절상됐다. 그래서 미국의 수출 경제는 눈에 띄게 침체됐으며 무역수지는 기록적으로 악화됐다. 1분기 성장률은 마이너스로 곤두박질쳤다. 그래도 미국이 둘 중 하나에 대해 추가적인 평가 절하를 좀 더 허용할 수 있는 입장이라면, 미국은 아마 엔화의 손을 들어 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유로존, 특히 독일은 일본과 달리 대규모의 경상흑자를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전략적 고려 요소도 있다.
 일본으로선 내수보다 수출 살리는 게 유리
최근 일본 엔화와 중국 위안화 가치 사이의 급격한 괴리(divergence) 현상을 보면 지난 1985년 플라자합의를 전후로한 달러와 엔화의 전개 양상이 떠오른다. 1980년대 초, 미국은 달러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금리를 올렸다. 달러가 급격히 반등했고 엔화는 큰 혜택을 받았다. 그러나 1985년 ‘플라자합의’가 도출된 뒤로 엔화는 폭등했으며, 달러는 폭락했다. 통화가치의 폭등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은 대대적으로 돈을 풀어 내수를 부양해 거품을 야기했고, 결국에는 20여년간의 디플레이션에 빠져들었다. 이와 달리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플라자합의를 계기로 빠른 속도로 확대돼 갔다. 지금 중국은 30년 전 일본의 모습과 겹쳐진다. 그렇다면 지금의 일본은 30년 전의 미국이다.

일본의 아베노믹스, 대대적인 돈 풀기는 전형적인 수출산업 지원정책이다.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되살려 소비를 진작시킨다는 명분을 댔지만, 실제로는 소비세를 인상하는 역주행을 했다. 수출 중심의 회복세를 굳히기 위한 것이었다. 일본 경제의 잠재 공급능력은 이미 한계에 도달해 있기 때문에 수출과 내수를 동시에 부양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일본 경제의 수출 비중을 높이기 위해서는 내수를 제한해 수출제품 생산능력을 확보해야 한다. 일본의 입장에서 본다면, 과도하게 높아진 소비의 비중을 더 키우기보다는, 엔고 체질화 과정에서 과도하게 낮아진 수출의 비중을 되살려 해외 시장을 빼앗아 오는 게 ‘경제재생’에 효과적일 것이다.
 IMF ‘위안화가 저평가됐다고 보기 어렵다’
엔화의 평가절하는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이중의 중요성이 있다. 일본 경제를 재생하고 중국 경제를 견제해 역내의 균형(?)을 도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구도를 계속 몰고 가려면 달러화가 너무 강해질 위험이 있다. 중국의 실효환율이 계속 절상되도록 하려면 위안화가 몸을 묶어 놓은 달러화가 계속 올라야 할 것이며, 엔화의 실효환율이 계속 절하되려면 역시 달러가 계속 절상돼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 과정에서 유로화의 역할이 긴요하다. 달러-엔의 ‘질서 정연한 평가절하’에도 달러의 전반적인 실효환율이 더 이상 절상되지 않도록 하려면, 유로화는 더 이상 떨어져서는 곤란하다. 그러면 중국 위안화가 더 이상 절상되지 않더라도 엔화와 위안의 격차는 계속 확대될 수 있다. 무역시장에서 일본에 대한 중국의 경쟁력 상실은 심화될 수 있다.

이러한 환경은 우리에게 이중 삼중의 위험을 가한다. 일본 엔화와 정반대로 절상되고 있는 원화가치는 수출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우리 경제에 막중한 부담이다. 이런 사정은 우리보다 중국이 더욱 심각하다. 그래서 중국은 어쩌면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다. 중국 경제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그 선택 여하에 관계 없이 커다란 충격을 받을 수 있다.

첫째, 중국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위안화의 평가절하를 선택하는 시나리오가 있을 수 있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중국의 위안화가 더 이상 저평가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중국이 변동환율제를 도입하는 방식으로 평가절하에 나선다면 위안화를 국제화하려는 계획의 차질을 줄이면서도 수출산업의 침체를 막는 이점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 우리 원화는 위안화에 대해서까지 빠르게 절상되는 충격을 받게 된다. 급격한 절상은 급격한 절하로 귀결된다. 지난 2005년 우리나라 원화가치가 대폭 오른(달러-원 환율 급락) 한 배경에는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상이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이 추세는 2007년 말부터 급반전했다.

둘째, 중국이 계속해서 위안화의 평가절상을 받아들인다면 20~30년 전 일본 경제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 최근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중국의 주식시장이 그 위험을 말해주고 있다. 최근 단 1년 사이에 상하이종합지수는 2.5배나 올랐다. 건설투자 거품에 이은 이런 현상은 급격한 평가절상으로 인한 수출 침체와 더불어 중국 경제의 안정성을 이중으로 위협할 수 있다.

지난 1997년 우리나라 외환위기의 중요한 원인이었던 1995년부터의 엔화 평가절하는 중국이 위안화를 대대적으로 평가 절하한지 약 1년 뒤에 단행된 것이었다. 현재 우리 수출의 4분의 1은 중국 시장 한 곳에 의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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