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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승민 기자의 센터링 경제학⑫ 잘 나가는 협동조합 ‘FC바르셀로나’] 20만 조합원이 주인인 세계 최강의 구단

[함승민 기자의 센터링 경제학⑫ 잘 나가는 협동조합 ‘FC바르셀로나’] 20만 조합원이 주인인 세계 최강의 구단

지난 번 시·도민 구단에 대해 살펴봤다. ‘시·도민이 소유하고 운영한다’고 정의하지만 실제로는 지자체에 예속된 현실에 대한 내용이다. 그렇다면 해외 구단 중에서는 기업이나 지자체가 운영하지 않는 구단이 있을까. 형태는 다소 다르지만, 당연히 있다. 가장 유명한 게 2014-2015 시즌 유럽 챔피언 FC바르셀로나다. 이 구단은 일종의 협동조합이다. 협동조합은 우리나라에도 대안적 경제 공동체로 주목을 모았지만, 아직 뿌리를 내리진 못했다.
FC바르셀로나 팬들이 2014 - 2015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자축하고 있다.
FC바르셀로나(바르사·스페인)가 또 한 번 천하를 제패했다. 바르사는 6월 7일 베를린 올림피아스타디온에서 열린 2014-2015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이탈리아 챔피언 유벤투스를 꺾고 정상에 올랐다. 바르사는 2009년에 이어 6년 만에 두 번째 트레블(한 시즌 동안 자국 정규리그, 리그컵, 축구협회(FA)컵, 대륙별 챔피언스리그 중 3개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을 달성했다. 한 팀이 2번의 트레블을 이룬 건 유럽 최초다.

바르사는 21세기 들어 가장 잘 나가는 프로축구단 이다. 2005-2006시즌부터 10년 동안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무려 4차례 올라 모두 우승을 차지했다. 같은 기간 4회 결승 진출과 우승 기록은 바르사가 유일하다. 바이에른 뮌헨(독일)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잉글랜드)가 3차례 결승에 진출해 1번 우승했을 뿐이다. 바르사는 요한크루이프 감독이 지휘하던 1991-1992시즌 삼프도리아(이탈리아)를 제압하고 처음으로 유럽 정상에 올랐고 2005-2006시즌 아스널(잉글랜드), 2008-09시즌과 2010-11시즌 맨유를 제물로 삼아 잇따라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기록했다. 자국 정규리그인 프리메라리가(라 리가)에서도 절대 강자다. 바르사는 최근 10년 동안 라 리가에서 6번 우승, 3번 준우승했다.
 석유재벌 소유의 구단 물리쳐
FC바르셀로나의 홈 구장인 ‘캄프 누’의 관중석에 ‘클럽 그 이상(MES QUE UN CLUB)’이라는 슬로건이 적혀있다.
바르사의 업적은 트로피가 전부가 아니다. 구단의 시스템과 축구 전술사에 미치는 영향력도 크다. 최고의 시설과 시스템을 통해 리오넬 메시, 차비 에르난데스, 안드레 이니에스타 등 최고 수준의 선수를 유소년 시절부터 길러냈다. 어린 시절부터 팀워크를 맞춘 이들의 ‘티키타카(짧은 패스와 강한 압박을 통해 점유율을 높이는 전술)’는 전 세계 축구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그 덕에 바르사는 홈 구장 ‘캄프 누’ 관중석에 적힌 그들의 슬로건대로 ‘클럽 그 이상(MES QUE UN CLUB)’이 됐다.

‘클럽 그 이상’이라는 슬로건은 바르사 서포터들에게는 또 다른 의미도 있다. 바르사는 약 20만명의 서포터로 구성된 ‘협동조합’이다. 단순히 내가 ‘지지하는 축구 클럽’이 아니라 법적으로도 실제 주인이라는 얘기다. 챔피언스리그에서 바르사가 맨체스터 시티(맨시티)와 파리 생제르망(PSG)를 꺾고 우승했음을 생각하면, 구단주 대결에서 협동조합이 석유 재벌인 셰이크만수르(맨시티의 구단주)와 셰이크 타밈 빈 하마드 알타리 카타르 국왕(PSG의 구단주)을 이긴 셈이다.

협동조합은 ‘공동으로 소유되고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사업체를 통해 공통의 경제·사회·문화적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자율적인 조직(국제협동조합연맹)’을 말한다. 우리나라 협동조합기본법은 ‘재화 또는 용역의 구매·생산·판매·제공 등을 협동으로 영위함으로써 조합원의 권익을 향상하고 지역사회에 공헌하고자 하는 사업조직’으로 규정한다. 크게 소비자·생산자·직원 협동조합으로 구분된다.

정의나 법적인 규정은 말이 다소 어렵지만, 주식회사와 비교해서 보면 이해가 쉽다. 주식회사가 주주(투자자) 소유인 반면, 협동조합은 출자금을 낸 조합원의 공동소유다. 여기서 조합원은 이용자인 동시에 주인이다. 이론적으로는 투자자 소유기업(Investor-owned firm)인 주식회사와 대비해 이용자 소유기업(User-owned firm)이라고 한다. 의결권도 주식회사와 달리 균등분배 된다. 주식회사는 ‘1주 1표’다. 투자 지분에 따라 권리가 차별된다. 협동조합은 ‘1인 1표’다. 납입금과는 관계 없이 모든 조합원이 똑같이 한 표씩 행사한다.
 투자 금액 상관없이 누구나 ‘한 표’
바르사의 경우를 보자. 연 회비 177유로(약 22만원) 이상을 내면 전 세계 누구나 바르사의 조합원이자 주인이 될 수 있다. 1년 넘게 활동을 하고 18세 이상인 조합원은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총회에 참석할 수 있다. 여기서 연간 보고서, 장기 계획, 예산 등을 직접 결정한다. 회원들은 6년 마다 열리는 클럽 회장 선거에 참여해 똑같은 ‘한 표’를 행사할 수 있고, 직접 회장이나 이사로 출마할 수도 있다. 기업이나 개인이 구단주로 있는 클럽에는 없는 권리다. 구단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소비자(서포터)가 동시에 구단의 주인인 셈이다.

또 주식회사 같은 상법상 영리회사의 목적이 이윤 극대화라면, 협동조합은 조합원의 이익을 추구한다. 이윤이 직접적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적자만 안 내면 되는 ‘원가 경영’을 기본으로 한다. 이익을 배분하는 방식도 주식회사와 다르다. 주식회사는 이익을 최대한 많이 남겨 지분에 따라 주주에게 배당하는 게 목표다. 이와 달리 협동조합은 남은 이익을 내부 유보금으로 적립해 향후 조합의 발전을 위해 쓰거나, 이익만큼 판매 가격을 인하하는 방식 등으로 조합원 이익으로 돌린다.
 레알 마드리드, 선키스트, MEC 등도 협동조합
바르사도 구단 운영에서 생긴 이익을 조합원에게 배당하진 않는다. 대신 적립금을 쌓고 유·무형의 인프라 개선에 쓴다. 덕분에 관중들은 최고 수준의 경기장에서 경기를 관람한다. 유소년 시설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여기서 메시 같은 걸출한 선수가 배출된 것이다. 또한 바르사는 협동조합답게 상업화를 경계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바르사는 축구단의 가장 큰 수익모델 중 하나인 유니폼 로고에 기업 스폰서를 받지 않았다. 유엔아동기금(UNICEF)의 로고를 유니폼에 노출하는 대가를 받지 않았고, 오히려 구단 수입의 0.7%를 기부했다. 지금은 재정난으로 113년 전통을 깨고 처음으로 카타르재단의 상업적인 로고를 사용하고 있지만, 영리기업의 스폰서를 받지 않으면서 사회적기업의 가치를 유지했다. 협동조합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해외에는 바르사처럼 대기업 부럽지 않은 협동조합이 많다. 바르사의 최대 라이벌이자 지난 시즌 ‘라 데시마(챔피언스리그 10회 우승)’를 달성한 레알 마드리드나 포르투갈의 명문구단 벤피카도 협동조합이다. 네덜란드 라보은행, 금융·유통·교육·공업 분야에 240여 자회사를 둔 스페인 몬드라곤, 오렌지의 대명사 선키스트, 세계적인 통신사 AP, 세계적인 산악장비 업체인 캐나다의 MEC, 포춘 선정 세계 500대 기업에 들어가는 스위스 미그로가 모두 협동조합이다.

협동조합의 장점은 조합원의 연합을 통해 나오는 규모의 경제, 전문화 등이다. 예를 들어 산악인이 모여 만든 MEC는 질 좋은 등산 장비에 최소한의 이윤만 붙여 싸게 공급한다. 불특정 다수의 소비자를 겨냥하지 않는 대신 조합원(산악인)의 요구를 충족시킨 제품을 만들어 조합원에게만 판매한다. 유행을 좇지 않고, 장비 무게를 줄이거나 신체와 밀착하는 외투를 개발한다. 싸고 좋은 품질의 제품을 원하는 이들이 늘면서 조합원 수가 증가했고, 지금은 연 매출 3000억원을 넘는 조합으로 성장했다.

협동조합의 민주적인 지배구조가 현재 발생하는 다양한 경제·사회적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최근의 경제위기가 이익 극대화가 목표인 기업의 맹점에서 주로 비롯된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협동조합 모델은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일자리 창출과 고용 안정에 기여해 소득 불평등을 개선할 수도 있다는 기대도 있다. 이에 더해 경제위기에 강한 생존력을 보여줌으로써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기업모델로 여겨진다.

이런 점에 주목해 금융위기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협동조합 설립이 추진되기 시작했다. 특히 2012년 12월 협동조합 기본법이 시행되면서 급물살을 탔다. 기존에는 개별 협동조합특별법에 따라 8개의 협동조합만 있었다. 그러다 기본법이 시행되면서 거의 모든 규제가 풀렸다. 5명만 뜻을 모으면 어떤 형태의 조합이든 만들 수 있도록 하고, 출자금 제한도 없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기본법 시행 후 1년 동안 전국에서 3057개의 협동조합이 생겼다. 월 평균 255개의 협동조합이 만들어진 셈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5월까지 총 7188개의 협동조합이 설립됐다.

하지만 협동조합은 장점만큼 불편한 점도 많은 모델이다. 무엇보다 자금력의 한계로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사회적인 목적을 갖더라도 협동조합은 엄연한 사업체다. 일단은 냉정한 시장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그런데 조합원이 많지 않을 경우 협동조합은 자본금 부족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조합원의 가입·탈퇴가 자유로워 자본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다. 비영리라는 특성상 투자나 대출을 받는 것도 어렵다. 어설픈 생각으로 시작해 수익모델조차 없으면 문제는 더 커진다. 아무리 상업성을 최소화한 바르사라도 중계권이나 입장료 수익 없이 조합원 납입금만으로는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막 발걸음을 뗀 국내 협동조합은 특히 이런 약점이 두드러지는 모습이다. 실제로 우후죽순 설립된 협동조합 가운데 대다수가 사실상 폐업상태다. 2013년 7월 실시된 기획재정부의 협동조합 실태조사 결과 당시 설립된 3148개의 협동조합 중 54%만이 사업을 진행하는 데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는 해산 절차도 밟지 않고 방치되고 있다는 얘기다. 김성오 한국협동조합 창업경영지원센터 이사장은 “약 10%의 협동조합만 실제로 운영되고 있다”고 전했다. 일부 지역의 통계와 컨설팅 활동을 통해 파악한 추정치다. 기획재정부의 공식 통계는 올해 7월에 나올 예정이다.

국내에선 유럽 등 선진국과 달리 협동조합에 대한 인식이 확립되지 않은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협동조합이 무엇이고 일반 영리법인과 어떻게 다른지 모르고 무작정 설립하다 보니 수익 모델을 구축하지 못한 채 설립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또 정부 지원에 대한 오해로 섣불리 시작된 경우도 많다. 정부는 초기부터 협동조합에 대해서 간접 지원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직접적인 재정·세제 지원은 없다는 얘기다. 사회적 기업과 혼동해 정부 지원을 기대하고 시작한 많은 협동조합이 제대로 운영되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다.
 국내 협동조합 반 이상 폐업 상태
전문가들은 “협동조합의 정착을 위해선 교육과 자금조달 체계가 갖춰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기획재정부 실태조사에 다르면 협동조합 설립 전 교육을 받은 기업의 비율은 58.6%에 그친다. 수익모델과 정체성을 갖추지 않은 협동조합이 우후죽순 생긴 이유다. 한창용 산업연구원 연구원은 “교육·훈련 및 정보제공의 구현에는 정부의 적극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협동조합 간의 협동도 필요하다. 협동조합 중 연대 활동 등의 모임이 전혀 없는 협동조합이 58.6%다. 김성오 이사장은 “협동조합 간 협동은 국제협동조합연맹의 협동조합 원칙 중 하나”라며 “네트워크 형성을 통해 정보·노하우를 공유하고, 농협·신협 등 선배 협동조합이 부족한 자금조달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협동조합 스스로도 철저하게 사업계획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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