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10대 기업 DNA, 창업주의 기업가정신을 찾아서 [5] 롯데그룹
한국 10대 기업 DNA, 창업주의 기업가정신을 찾아서 [5] 롯데그룹
포브스코리아와 한국경영사학회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특별기획 ‘한국 10대 기업 핵심 DNA, 창업자들의 기업가정신을 찾아서’의 8월호는 재계 5위 롯데그룹이다. 특히 창업주 신격호 총괄회장의 기업가 정신과 함께 7월 15일부터 한국 롯데그룹과 일본 롯데의 수장이 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경영 철학을 집중 조명했다. 지난 7월 15일 서울 소공동 롯데타운의 백화점 매장.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사태가 진정되면서 매장 직원들의 표정이 한결 밝아 보였다. 9~11층 면세점의 명품 매장에 자취를 감췄던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들의 발길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샤넬과 에르메스 등 명품 매장마다 “뚜오샤오 치엔?”을 외치며 가격을 묻던 4~5월 같지는 않았지만 소비심리가 살아나고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로 보기에 충분했다. 입구에서 관광객을 안내하던 매장 직원은 “중국 고객들이 늘고 있어 다행이다”며 애써 밝게 웃었다.
롯데그룹은 소공동 롯데호텔과 잠실 롯데월드타워& 몰(잠실 제2롯데월드의 공식명칭) 등 국내 7곳과 해외 5곳을 포함 총 12곳에서 면세점을 운영하고 있다. 백화점과 면세점은 그룹 주력사업의 기함(旗艦)인 만큼 다른 그룹사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국내 백화점 업계 1위인 롯데백화점 임직원들이 비상경영을 선언하고 새벽 같이 일어나 매일 오전 7시에 회의를 갖고 내수 부진을 타개하기 위한 묘책을 짜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된다고 믿고 열심히 하면 이뤄지기 마련이다.” 롯데그룹 임직원들이라면 입사 이후 흔히 듣게 되는 말이다.
롯데백화점은 지금 경기침체에 따른 내수 부진으로 위기의 터널 한가운데를 통과하고 있다. 기업가정신은 평상시보다는 위기극복의 과정에서 나타난다. 바로 며칠 전인 7월 10일, 롯데그룹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서울시내 신규 면세점 경쟁에서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그룹의 임직원들은 크게 개의치 않는 눈치다. 그룹 관계자는 “면세점 사업은 초기 투자비용이 만만치 않고, 고객들을 응대하는 오랜 노하우와 고도의 서비스 정신이 필요한 사업”이라며 시장 진입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면세점 업종에서 쌓은 롯데의 관록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은근한 자신감이 느껴졌다. 현재 롯데그룹을 이끌어가는 수장은 신동빈(60) 회장이다. 7월 15일 일본 롯데홀딩스의 대표이사로 선임돼 명실공히 한국과 일본 롯데의 ‘원톱’이 됐다. 재계와 언론은 그룹의 총수인 신격호(93) 총괄회장의 허락하에 실질적인 그룹경영의 키를 신동빈 회장이 쥐게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신동빈 회장은 현재 롯데그룹 위기돌파의 선두에 있다. 앞서 롯데백화점의 임원들이 비상경영체제로 돌입한 것도 신 회장이 7월 초 사장단 회의에서 “변화의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선제적 대응 능력을 키워 달라”고 주문한 뒤 나온 실행파일 중 하나다.
경영학자들에 따르면, 위기가 왔을 때 정면 돌파하는 것은 롯데그룹 창업주 일가에게 공통으로 나타나는 기업가정신이다. 신격호 회장은 사업을 벌여서 실패한 게 하나도 없는 기업가라고 한다. 그 비결이 뭘까?
롯데그룹 기업가정신을 연구한 민승기(71) 박사는 다음과 같은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1961년 신 총괄회장은 일본가정에서 손님 접대용 센베이 과자가 초콜릿으로 대체될 기미가 보이자 초콜릿 생산을 결단한다. 초콜릿 산업은 과자 사업 중에서는 중공업이라고 일컬어진다. 그만큼 제조방법이 까다롭다. 신 총괄회장은 유럽에서 최고의 기술자와 시설을 들여와 초콜릿 시장에 뛰어든다. 그런데 초콜릿이 생각처럼 잘 팔리지 않았다. 오히려 재고만 가득 쌓였다. 그러자 신 총괄회장이 혼자서 한 달간 배낭 하나 메고 일본의 초콜릿 매장을 다 돌아다닌 끝에 그 원인을 찾아냈다. 문제는 의외로 간단했다. 신 회장이 가게마다 찾아가서 롯데 초콜릿을 달라고 했는데, 롯데 초콜릿을 내놓는 가게가 없더라는 것. 있어도 다른 제품 뒤에 가려져 있었다고 한다. 생산은 잘되고 있는데, 판매 파트에서 적극적인 공략이 부족했던 것이다.
민 박사의 말이다. “회장이 한 달간 행방불명됐으니 회사는 난리가 났겠죠. 어느날 신 회장이 임원들 앞에 나타나서 ‘걱정하지 마라’ 그러더랍니다.” 신 회장은 어떤 해결방법을 찾았을까? 신 회장은 매장 근처의 동네 아주머니들을 하루 4시간씩 파트타임으로 고용하도록했다. 그리고는 일반 마트나 가게마다 다니면서 롯데 초콜렛을 가게에 잘 진열해주도록 매장 주인을 적극적으로 공략하는 역할을 맡겼다. 대대적인 홍보도 병행했다. 초콜릿 기술을 전해준 스위스의 초콜릿 기술자를 일본에 모셔다가 CF 광고를 찍고 인기 배우를 내세워 적극적인 홍보를 병행했다. 그런 노력 끝에 매장에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던 롯데 초콜릿이 일본인들이 너도나도 찾는 최고 상품이 됐다. 이후 초콜릿 사업은 롯데가 종합식품으로 부상하는 밑거름이 된다. 캔디, 비스킷, 아이스크림, 청량음료 부문에도 진출해 성공을 거둔 것이다. “매사를 그런 열성과 노력으로 했기 때문에 신격호 회장의 사업은 하나도 실패한 게 없다”는 것이 민승기 박사의 분석이다.
경영수완이 아버지 못지않은 신동빈 회장도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는 적극적인 파이터 스타일이다. 내수경기 침체 등으로 거의 모든 기업이 투자와 고용을 줄이고 있는 상황에서 신 회장은 2018년까지 매출을 두 배로 늘리고 아시아 톱10 기업에 오르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이에 따라 롯데그룹은 올해 사상 최대 규모인 7조5000억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투자액 5조7000억원보다 30% 이상 늘어난 수치다. 올해 채용 인원도 지난해보다 늘어난 1만5800명으로 정했다. 신동빈 회장은 사석에서 “고용을 줄여 이윤을 지키려는 것은 기업의 존재가치를 부정하는 행위”라며 더 많은 일자리 창출을 약속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만들어내는 역발상의 도전정신이 두 부자의 공통점임을 알 수 있다. 구순을 훌쩍 넘긴 신격호(辛格浩) 총괄회장은 창업 1세대로는 드물게 지금까지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식민지시대에 일본에 유학해 한국과 일본 양국에 걸쳐 식품·유통·관광·석유화학 분야의 대기업을 일궈낸 자수 성가형 기업가로 꼽힌다. 1942년 일본 시모노세키와 부산을 오가던 관부 연락선을 타고 도일(渡日)해 신문과 우유배달 등으로 고학생활을 하며 문학도의 꿈을 불태우던 청년이 평생에 걸쳐 노력해 롯데그룹을 자산규모 재계 5위의 대기업으로 성장시킨 것이다.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이른바 ‘셔틀경영’을 해오던 신 총괄회장은 2011년 3월 일본 대지진 이후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한국에서 머무르고 있지만 지금도 가끔 혼자서 일본을 다녀올 만큼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날마다 집무실에서 하루에 1개 회사씩 계열사 보고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어! 지난번 보고 때와 다르네!” 하면서 각종 경영 수치들을 정확하게 기억하며 질문을 쏟아낼 때는 보고에 들어간 계열사 대표들이 당황하기 일쑤라고 한다.
2010년 청림출판에서 출간한 임종원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의 저서 『롯데와 신격호, 도전하는 열정에는 국경이 없다』의 한 대목에는 ‘계수 관리로 경영의 이면까지 꿰뚫는’ 신격호 회장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신격호 회장은 늘 작은 수첩을 가지고 다니며 수시로 메모를 한다. 수첩에는 깨알 같은 글씨들과 수치가 적혀 있다. 임원진의 보고를 받을 때에도 늘 수첩을 먼저 챙긴다. 현장의 목소리나 직원들의 보고 내용은 인내심을 갖고 끝까지 들으며 핵심 내용을 기록한다. 그가 한국과 일본 롯데를 오가면서 가장 중시하는 것이 각 계열사의 브리핑이다. 그의 방문 일정은 브리핑에서 시작한다. 이때 모든 계열사의 경영 현황에 대해 주요 내용과 계수들을 적어가며 이를 기억한다. 이후 이러한 계수 변화에 대해 철저하게 분석하는 것이다.
어떤 상품의 매출액 또는 영업이익 등이 줄었다면, 그 원인이 무엇인지 그 뿌리까지 확인해 들어간다. 이와는 반대로 어떤 상품의 매출액이 크게 올라갔다면, 다른 상품이었으면 어땠을지, 또 그 이유는 무엇인지까지 확인한다. 예를 들어 백화점 매장에서 판매하는 사과의 당도가 경쟁사 백화점보다 낮다면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매입 과수원에서부터 매입절차, 유통과정까지 파고들어가 문제점을 찾은 후 이를 해결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확실한 계수 관리에 근거하여 이루어진다. 청년과 같은 열정 뒤에는 엄격한 자기관리, 철저한 사업 구상과 메모를 통한 철저한 분석이 있었기에 오늘의 롯데가 있을 수 있었다.”
계수에 밝다는 것은 사업가로서 장점이 아닐 수 없다. 신 총괄회장의 기업가로서 출발은 1940년대 초반, 일본에서 껌 사업으로 돈을 벌던 때부터 시작됐다. 이 무렵에도 청년 신격호의 사업 감각은 타고났다고 할 정도로 뛰어났다고 한다. 하나의 사례를 들어보자. 그는 어른들을 위한 추잉껌이 아니라 어린이를 겨냥했다. 풍선껌을 작은 대나무 대롱 끝에 대고 불 수 있도록 풍선껌과 대나무 대롱을 함께 포장했다. 당시에는 변변한 장난감이 없던 터라 롯데의 풍선껌은 그야말로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껌이라는 상품 자체가 식품이라기보다는 심심한 입을 즐겁게 해주는 장난감이라는 제품의 핵심가치를 간파한 것이다. 이벤트와 미디어로 소비자의 눈길을 끌어당긴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껌 포장 안에 추첨권을 놓고 당첨된 사람에게 1천만 엔을 준다는 광고를 내놓기도 했다. 결과는 롯데 껌을 사기 위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상점 앞에 길게 줄을 서게 만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기발한 마케팅 기법을 고안해내고 자신 있게 밀어붙인 사람은 바로 신 총괄회장 본인이었다. 신 총괄회장의 천재적 마케팅 감각은 경영학 강의와 교재에서 도움을 받았다기보다는 그의 타고난 감수성과 창의성에서 나온 것이다. 1948년, 신 총괄회장이 자본금 100만 엔과 종업원 10명으로 법인사업체를 만들 때 대문호 괴테의 명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여주인공 이름에서 롯데라는 이름을 따왔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얘기다. 신격호 회장을 대표하는 기업가정신은 기업을 일으켜 국가와 사회에 일익을 담당한다는 기업보국(企業報國)이다. 이 정신은 창업 초부터 지금까지 퇴색되지 않고 있다. 신 총괄회장은 일본에서 사업을 일으켰지만 조국을 잊지 않았다. “소생의 기업 이념은 품질 본위와 노사협조로 기업을 통하여 사회와 국가에 봉사하는 것입니다.” 신 회장이 1967년 한국 롯데제과 설립 당시 했던 인사말이다. 그의 꿈은 조국 대한민국에 기업을 설립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1965년 한·일 수교 이후 한국에 대한 투자의 길이 열리자, 1967년 롯데제과를 설립해 한국에 투자를 시작했다.
롯데제과를 기반으로 탄생한 한국의 롯데그룹은 1970년대에 롯데칠성음료와 롯데삼강으로 국내 최대 식품기업으로 발전했으며 롯데호텔과 롯데쇼핑을 설립해 국내 유통·관광 산업의 현대화 토대를 구축했다. 신 총괄회장은 이후 호남석유화학(현 롯데케미칼)과 롯데건설 등으로 국가 기간산업에도 본격 진출해 지금의 롯데그룹을 일궈냈다.
롯데그룹의 랜드마크인 잠실롯데월드도 신 총괄회장의 기업보국의 소산이다. 지난 84년 신 총괄회장은 “롯데월드를 통해 한국의 관광산업은 문화유산 등 있는 것을 보여주는 단계에서 볼거리를 만들어서 제공하는 수준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며 잠실 롯데월드 사업을 지시한다. 당시 롯데 임직원들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일부 아파트를 제외하고는 허허벌판이었던 잠실벌에 대형 호텔과 백화점, 놀이시설을 짓는 것이 과연 사업성이 있겠느냐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신 총괄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이 대목에서 신격호 총괄회장과 함께 잠실 일대를 돌아다니며 투자지역을 물색하던 전직 간부의 증언을 들어보자. 신격호 총괄회장은 재계에서도 부동산을 보는 안목이 뛰어난 기업가로 꼽힌다. 보유한 부동산도 상당하다. 지난해 기준으로 롯데그룹이 소유하고 있는 토지자산은 10조원이 넘는다. 신 회장은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도 늘 고속도로변이나 철도변, 그리고 시가지의 대로변을 눈여겨본다. 지금 롯데월드타워가 조성되는 잠실 일대도 80년대 초반에 이미 그 가치에 주목했다고한다. 당시 신 회장이 잠실 땅 매입을 지시하자 그룹의 임원들 몇몇은 내심 걱정을 많이 했다. “대개 도시가 동쪽으로 발전하잖아요. 해 뜨는 방향이죠. 그런데 잠실은 동쪽이 산으로 막혔잖아요. 발전할 가능성이 없다고 봤죠. 그런데 신 회장은 생각이 달랐어요. ‘아니야, 남쪽이 발전할거야.’ 결과적으로 맞아 떨어졌지요. 역시 보는 눈이 다르시더라고요.” 한 간부의 증언이다.
신 총괄회장은 80년대부터 잠실 땅의 가치에 대해 확신을 가졌던 듯하다. “지금은 허허벌판이지만 오픈을 하고 1년만 지나면 교통 체증이 생길 정도로 상권이 발달할거야.” 이처럼 ‘상권은 창조하는 것’이라는 신 총괄회장의 생각은 적중했다. 그의 예상대로 잠실 사거리는 교통체증을 유발할 정도로 상권이 발달하게 됐다.
롯데는 사업하면서 빚이 없는 기업으로 손꼽힌다. 세간에서는 현금이 많은 재벌이라고도 한다. 이 역시 신격호 회장의 오랜 소신에서 기인한다. “기업인은 회사가 성공할 때나 실패할 때 모두 자신의 책임으로 돌려야 합니다. 정부와 국민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됩니다.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면 신중해지고 보수적이 되지요. 사업에 책임을 지다 보니 열심히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까 빚을 많이 쓰지 않게 된 것입니다.” 보수적인 태도는 실패 확률을 줄인다. 신 총괄회장이 뛰어드는 사업마다 실패하는 사업이 없고, “적어도 롯데와 거래하면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원칙이 업계에서 유지되는 것도 이 같은 신중한 경영방식 때문이다. 신 총괄회장은 또, 성과가 적은 직원은 철저한 교육을 통해 성과를 올리도록 하고 사원복지로 보완하는 관리를 통해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기업을 만들어내는 경영능력이 탁월하다고 한다.
경영사학자들은 신격호 총괄회장에게서 나타나는 기업가정신으로 하면 된다는 특유의 정열적 태도를 꼽는다. 정열에 관한 한 신격호 회장은 젊은이 못지않다. 백수(白壽)를 바라보는 지금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기업 경영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오늘 할 일과 내일 할 일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궁리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다. 그의 정열과 감수성은 지병처럼 깊다.
“베르테르는 그의 여인 샤롯데에 대한 사랑에 있어 정열 그 자체였습니다. 그 정열 때문에 그는 즐거웠고 때로는 슬펐으며 그 정열 속에 자신의 생명을 불사를 수 있었습니다. 일 할 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정열이 있으면 어떠한 어려운 일이라도 즐겁게 이겨낼 수 있지만, 정열이 없으면 흥미도 없어지고 일의 능률도 없어집니다. 경영자의 정열과 직원 모두의 정열이 하나의 총체로 나타날 때 그 회사는 큰 발전이 기약 됩니다.” 신 총괄회장이 임직원들에게 강조한 ‘경영어록’ 중 한 대목이다.
신 총괄회장이 설립한 롯데제과, 롯데칠성음료, 호텔롯데, 롯데쇼핑, 롯데월드 등이 모두 동종 업계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고 업계를 선도해 나가고 있는 것도 신 총괄회장의 젊은이같은 정열의 소산이다. 신 총괄회장은 이러한 열정과 기업보국의 기업가정신을 인정받아 1995년 관광산업 분야에서는 최초로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영산(靈山) 신(辛) 씨 집안인 신격호 총괄회장 일가의 핏속에는 뜨거운 기업인의 기질이 너나없이 흐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현재 신 회장의 형제 등도 대부분 기업인이다. 롯데그룹을 일군 신 총괄회장이 장남이고, 3남 신춘호 씨는 농심그룹 창업자다. 5남 신준호는 유제품 기업인 푸르밀 회장으로 있고, 여동생 신정희 씨도 동화면세점 사장으로 있다.
신 총괄회장의 기업가정신을 누가 물려받을까? 재계의 오랜 관심사항이었던 롯데그룹의 후계구도도 최근 결론이 났다. 지난 7월 15일은 훗날 롯데그룹의 역사에 한 획이 그어진 날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 롯데 홀딩스가 정기이사회를 통해 참석한 이사 전원의 찬성으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대표이사로 선임한 것이다. 한국 재계와 언론은 롯데그룹의 승계 구도가 신동빈 회장으로 확정된 것으로 해석했다. 일본 롯데까지 총괄하게 된 신동빈 회장은 이날 오후 주요 계열사 사장단회의를 통해 “이사회의 결정을 겸허하고 엄숙하게 받아들인다”며 “앞으로 신격호 총괄회장의 뜻을 받들어 한국과 일본의 롯데사업을 모두 책임지는 자세로 최선을 다하는 한편 리더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겠다”고 밝혔다고 한다. 포브스코리아는 신동빈 회장의 기업가정신을 조명하고 롯데그룹의 경영전략을 듣기 위해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신 회장의 일정 등 여러 이유로 이뤄지지 못했다.
신동빈 회장은 신격호 총괄회장의 기업인 피를 그대로 물려받은 기업가로 알려져 있다. 한 전직 임원의 증언이다. “어느 때인가 직원들은 일과 끝나면 다 퇴근하는데, 신동빈 회장은 자주 늦게 다니고 그러더랍니다. 신 총괄회장이 ‘어딜 그렇게 늦게 다니느냐?’고 했더니 ‘아버지처럼 일하느라 저녁도 안 먹고 그러느라고 늦었습니다’라고 대답하더랍니다. 그렇게 열심히 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 신 총괄회장의 열정적인 기업가정신을 이어받았다고 봐야죠.”
신동빈 회장은 신격호 총괄회장과 모친 시게미츠 하츠코의 차남이다. 신동주(61) 전 일본롯데 사장이 친형이다. 형을 제치고 한국과 일본의 롯데그룹 경영자가 된 데는 그만한 열정과 노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신동빈 회장의 경영능력은 실적으로 증명된다. 신동빈 회장은 2011년 2월, 롯데그룹 정기임원 인사에서 국내 재계 5위 그룹의 회장에 취임했다. 1997년 부회장 승진 이후 14년 만이었고, 1990년 호남석유화학 상무로 롯데그룹에 참여한 지 21년 만이었다. 신 회장은 1955년 일본에서 태어나 아오야마 가쿠인(靑山學院)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한 전문경영인 출신이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마치고 81년부터 88년 2월까지 일본 노무라증권의 런던지점에서 일하며 국제 금융 감각을 키웠다. 롯데가 아닌 다른 회사에서 평사원으로 먼저 근무하게 한 것은 경험과 겸손을 배울 수 있도록 한 신격호 총괄회장의 배려인 동시에 일종의 경영 수업이었다고 한다. 신 회장은 이때를 선진 기업들의 재무관리와 국제금융 시스템을 피부로 접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신 회장은 2004년 10월 롯데 정책본부 본부장 취임을 시작으로 그룹 경영의 전면에 나서게 된다. 평소 차분하고 말수가 적은 것으로 알려진 신 회장이지만 사업적으로는 도전적이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 2006년 롯데쇼핑을 한국과 영국 증권시장에 성공적으로 상장시켰고, 하이마트, 말레이시아 타이탄케미칼, 중국 대형마트 타임스 등 국내외에서 30여 건의 크고 작은 M&A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면서 그룹의 핵심역량을 강화했다. 지난해에는 숙원사업이었던 맥주 시장에도 성공적으로 진출했고. 올해는 ‘KT렌탈’ 인수를 통해 렌터카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처럼 해외진출과 M&A를 통한 적극적인 경영활동으로 인해 신 회장이 정책본부장에 취임할 당시인 2004년 23조이던 그룹 매출은 2013년 83조원을 넘어섰다. 경기침체와 내수부진 속에서 이뤄낸 성과다.
기업가의 피는 물려받았지만 두 부자의 경영스타일은 다르다. 부친인 신 총괄회장이 부동산에 관심을 쏟았다면 신동빈 회장은 달라진 글로벌 환경에 대응해 자신의 전공인 최신 금융기법으로 그룹의 활로를 열고 있다. 실제 신동빈 회장은 탁월한 국제금융 감각의 소유자다. 몇 가지 사례가 있다. 그리스 재정위기가 잠잠해진 것 같았던 2011년 상반기, 신 회장은 임원들에게 그리스와 유럽의 상황이 더 나빠질 수 있다며 미리 자금을 확보해 둘 것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롯데쇼핑은 전환사채 발행을 추진했고 약 1조의 자금 조달에 성공했다. 그것도 5년 만기인 달러화 표시 CB의 표면 이자율은 0%. 엔화 표시 CB의 경우는 -0.25%의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CB의 만기 이자율이 마이너스라는 것은 만기 때 투자자에게 원금보다 덜 준다는 의미다. 이 거래는 각계의 호평을 받으며 홍콩의 금융 전문매체 가 2011년도 ‘BEST EQUITYLINKED DEAL’로 선정하기도 했다. 이보다 앞서 신 회장은 2007년 가을부터 미국 서브 프라임 사태가 알려진 것보다 심각하게 번져갈 것이라며 정확히 예측, 2008년 초부터 운영자금을 미리 확보할 것을 지시했다. 이에 호텔롯데를 비롯한 계열사들이 우량한 조건으로 외화표시 회사채를 발행했다. 이후 글로벌 금융 위기로 기업들의 자금난이 심화되었지만 롯데 계열사들은 미리 확보한 운영자금 덕에 비교적 무난하게 글로벌 금융 사태에 대처할 수 있었다고 한다.
신 회장의 이러한 국제 금융 감각은 2006년 주력 계열사인 롯데쇼핑의 상장 과정에서도 나타났다. 당시 풍부한 현금이 있는데 왜 이런저런 간섭을 받을 수 있는 상장을 하느냐는 내부의 목소리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신 회장은 결국 상장을 이끌어 냈다. 런던과 서울에서의 동시 상장을 통해 확보한 3조5000억원의 자금은 이후 롯데의 활발한 인수합병의 시드머니가 되었다. 신 회장은 취임 이후 유통분야의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프리미엄 아울렛, 복합쇼핑몰과 같은 신업태를 선보이며 유통부문의 신규 수요를 창출하는데도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롯데그룹에 따르면, 신동빈 회장이 최근 가장 큰 기대를 하는 것이 옴니채널 전략이다. 옴니채널 전략이란, 온라인·오프라인·모바일 등 소비자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쇼핑 채널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고객 입장에서 마치 하나의 매장을 이용하는 것처럼 느끼도록 매장의 쇼핑환경과 사용자 경험을 융합하는 것을 말한다. 롯데는 국내·온오프라인 모든 채널을 보유하고 있어 옴니채널 전략에 유리한 입장이다. 이에 따라 신 회장이 직접 매달 관련 회의를 직접 주재하며 계열사들을 독려하고 있다고 한다.
석유화학 부문은 롯데그룹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신 회장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투자를 강화하고 있는 분야 중 하나다. 신 회장은 1990년부터 석유화학 경영에 참여해 나프타 분해공장 증설을 주도하여 그동안 외부조달에 의존하던 원료의 안정적 공급을 확보했다. 또한 현금흐름 경영과 투명경영으로 호남석유화학을 유화업계 최고의 재무 상태와 경쟁력을 갖춘 회사로 만들었다. 2012년에는 호남석유화학과 케이피케미칼을 합병해 롯데케미칼을 성공적으로 출범시켜 석유화학을 명실공히 롯데그룹의 양대 축으로 성장시켰다. 롯데케미칼은 2010년 동남아시아의 대표적 석유화학 회사인 말레이시아 타이탄을 인수한 데 이어 유럽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확보하고 올해는 북미 셰일가스를 활용한 에탄크래커 공장 건설도 추진하고 있다.
신 회장은 식품부문의 국내 시장 성장이 한계에 다다르자 해외 시장 개척을 식품 부문 성장의 대안으로 제시하는 등 글로벌경영으로 기업가정신을 실천하고 있다. 2007년에 베트남에 진출한 롯데제과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꾸준히 시장 규모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2010년에는 베트남과 인도, 러시아에 현지 생산 공장이 완공돼 더욱 다양한 영업 전략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롯데칠성음료도 2010년에 필리핀의 펩시 공장을 인수하며 글로벌 종합 음료회사로 도약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2009년 1월에는 두산으로부터 소주 ‘처음처럼’을 생산하고 있는 주류부문을 인수해 종합 주류 회사로 발돋움했다. 지난해 4월에는 ‘클라우드’를 출시하며 맥주 시장에 돌풍을 일으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롯데그룹의 지난해 매출 81조원 가운데 해외 매출이 11조원으로 한국과 일본을 넘어 글로벌기업으로 도약해가고 있다. 그동안 외부 행사 참여를 자제하며 내실을 다지던 신동빈 회장이 사회공헌 차원에서 활발한 대외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도 최근 들어 달라진 행보다. 지난해 11월 대한스키협회 20대 회장에 취임해 대폭적인 지원을 약속했고, 2008년부터 민간 차원에서 아시아와 미국의 교류를 주도하는 아시아소사이어티 코리아센터 회장직도 수행하고 있다. 지난 6월에는 집안끼리 오랜 친분을 이어온 동갑내기 친구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회동하는 등 국제적 명사이자 한일 양국을 오가는 거물급 기업인으로서의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롯데그룹의 2세 승계시대를 맞아 신동빈 호가 이끄는 재계 5위 롯데그룹 도약의 발판은 롯데월드타워의 완공이 될 것으로 보인다. 롯데월드타워는 신 총괄회장이 터를 잡았고 신 회장이 그룹의 역량을 총동원해 마무리 하고 있는 롯데그룹의 숙원사업이다. 건설공사 과정에서 신동빈 회장에게 몇 차례 어려운 고비가 있었지만 잘 돌파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신 총괄회장 역시 각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금도 잠실 롯데월드타워&몰에 수시로 들러 사업 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5월에도 현장을 예고 없이 방문해 롯데월드타워 공사 진행 상황과 롯데월드몰 운영 현황을 살폈다. 롯데월드타워 79층 공사 현장에도 직접 올라가 철저한 안전시공을 강조하는 등 고령의 연세에도 두 시간에 거쳐 곳곳을 둘러봤다고 한다.
부친인 신 총괄회장의 관심이 이렇게 특별한 만큼 신회장 부자가 내년 말 월드타워 114층으로 집무실을 옮기겠다고 발표한 것은 당연한 수순으로 보인다. 예정대로라면 내년 말 123층(555m)의 롯데월드타워가 완공돼 한국 최고층 빌딩에 자리 잡은 두 부자가 각자의 집무실에서 글로벌롯데를 경영하게 된다. 그때가 되면 대한민국 유통 넘버원을 넘어 아시아 톱10의 글로벌 기업을 목표로 삼은 신격호·신동빈 두 부자의 기업가정신이 경기 침체로 실의에 빠져있는 한국 경제에 보탬이 되는 상황을 기대해도 좋을 듯 하다.
- 포브스코리아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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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그룹은 소공동 롯데호텔과 잠실 롯데월드타워& 몰(잠실 제2롯데월드의 공식명칭) 등 국내 7곳과 해외 5곳을 포함 총 12곳에서 면세점을 운영하고 있다. 백화점과 면세점은 그룹 주력사업의 기함(旗艦)인 만큼 다른 그룹사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국내 백화점 업계 1위인 롯데백화점 임직원들이 비상경영을 선언하고 새벽 같이 일어나 매일 오전 7시에 회의를 갖고 내수 부진을 타개하기 위한 묘책을 짜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된다고 믿고 열심히 하면 이뤄지기 마련이다.” 롯데그룹 임직원들이라면 입사 이후 흔히 듣게 되는 말이다.
롯데백화점은 지금 경기침체에 따른 내수 부진으로 위기의 터널 한가운데를 통과하고 있다. 기업가정신은 평상시보다는 위기극복의 과정에서 나타난다. 바로 며칠 전인 7월 10일, 롯데그룹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서울시내 신규 면세점 경쟁에서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그룹의 임직원들은 크게 개의치 않는 눈치다. 그룹 관계자는 “면세점 사업은 초기 투자비용이 만만치 않고, 고객들을 응대하는 오랜 노하우와 고도의 서비스 정신이 필요한 사업”이라며 시장 진입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면세점 업종에서 쌓은 롯데의 관록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은근한 자신감이 느껴졌다.
신동빈 회장, 한국과 일본롯데 ‘원톱’부상
신동빈 회장은 현재 롯데그룹 위기돌파의 선두에 있다. 앞서 롯데백화점의 임원들이 비상경영체제로 돌입한 것도 신 회장이 7월 초 사장단 회의에서 “변화의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선제적 대응 능력을 키워 달라”고 주문한 뒤 나온 실행파일 중 하나다.
경영학자들에 따르면, 위기가 왔을 때 정면 돌파하는 것은 롯데그룹 창업주 일가에게 공통으로 나타나는 기업가정신이다. 신격호 회장은 사업을 벌여서 실패한 게 하나도 없는 기업가라고 한다. 그 비결이 뭘까?
롯데그룹 기업가정신을 연구한 민승기(71) 박사는 다음과 같은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1961년 신 총괄회장은 일본가정에서 손님 접대용 센베이 과자가 초콜릿으로 대체될 기미가 보이자 초콜릿 생산을 결단한다. 초콜릿 산업은 과자 사업 중에서는 중공업이라고 일컬어진다. 그만큼 제조방법이 까다롭다. 신 총괄회장은 유럽에서 최고의 기술자와 시설을 들여와 초콜릿 시장에 뛰어든다. 그런데 초콜릿이 생각처럼 잘 팔리지 않았다. 오히려 재고만 가득 쌓였다. 그러자 신 총괄회장이 혼자서 한 달간 배낭 하나 메고 일본의 초콜릿 매장을 다 돌아다닌 끝에 그 원인을 찾아냈다. 문제는 의외로 간단했다. 신 회장이 가게마다 찾아가서 롯데 초콜릿을 달라고 했는데, 롯데 초콜릿을 내놓는 가게가 없더라는 것. 있어도 다른 제품 뒤에 가려져 있었다고 한다. 생산은 잘되고 있는데, 판매 파트에서 적극적인 공략이 부족했던 것이다.
민 박사의 말이다. “회장이 한 달간 행방불명됐으니 회사는 난리가 났겠죠. 어느날 신 회장이 임원들 앞에 나타나서 ‘걱정하지 마라’ 그러더랍니다.” 신 회장은 어떤 해결방법을 찾았을까? 신 회장은 매장 근처의 동네 아주머니들을 하루 4시간씩 파트타임으로 고용하도록했다. 그리고는 일반 마트나 가게마다 다니면서 롯데 초콜렛을 가게에 잘 진열해주도록 매장 주인을 적극적으로 공략하는 역할을 맡겼다. 대대적인 홍보도 병행했다. 초콜릿 기술을 전해준 스위스의 초콜릿 기술자를 일본에 모셔다가 CF 광고를 찍고 인기 배우를 내세워 적극적인 홍보를 병행했다. 그런 노력 끝에 매장에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던 롯데 초콜릿이 일본인들이 너도나도 찾는 최고 상품이 됐다. 이후 초콜릿 사업은 롯데가 종합식품으로 부상하는 밑거름이 된다. 캔디, 비스킷, 아이스크림, 청량음료 부문에도 진출해 성공을 거둔 것이다. “매사를 그런 열성과 노력으로 했기 때문에 신격호 회장의 사업은 하나도 실패한 게 없다”는 것이 민승기 박사의 분석이다.
경영수완이 아버지 못지않은 신동빈 회장도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는 적극적인 파이터 스타일이다. 내수경기 침체 등으로 거의 모든 기업이 투자와 고용을 줄이고 있는 상황에서 신 회장은 2018년까지 매출을 두 배로 늘리고 아시아 톱10 기업에 오르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이에 따라 롯데그룹은 올해 사상 최대 규모인 7조5000억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투자액 5조7000억원보다 30% 이상 늘어난 수치다. 올해 채용 인원도 지난해보다 늘어난 1만5800명으로 정했다. 신동빈 회장은 사석에서 “고용을 줄여 이윤을 지키려는 것은 기업의 존재가치를 부정하는 행위”라며 더 많은 일자리 창출을 약속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만들어내는 역발상의 도전정신이 두 부자의 공통점임을 알 수 있다.
‘계수 관리의 달인’ 신격호 총괄회장
2010년 청림출판에서 출간한 임종원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의 저서 『롯데와 신격호, 도전하는 열정에는 국경이 없다』의 한 대목에는 ‘계수 관리로 경영의 이면까지 꿰뚫는’ 신격호 회장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신격호 회장은 늘 작은 수첩을 가지고 다니며 수시로 메모를 한다. 수첩에는 깨알 같은 글씨들과 수치가 적혀 있다. 임원진의 보고를 받을 때에도 늘 수첩을 먼저 챙긴다. 현장의 목소리나 직원들의 보고 내용은 인내심을 갖고 끝까지 들으며 핵심 내용을 기록한다. 그가 한국과 일본 롯데를 오가면서 가장 중시하는 것이 각 계열사의 브리핑이다. 그의 방문 일정은 브리핑에서 시작한다. 이때 모든 계열사의 경영 현황에 대해 주요 내용과 계수들을 적어가며 이를 기억한다. 이후 이러한 계수 변화에 대해 철저하게 분석하는 것이다.
어떤 상품의 매출액 또는 영업이익 등이 줄었다면, 그 원인이 무엇인지 그 뿌리까지 확인해 들어간다. 이와는 반대로 어떤 상품의 매출액이 크게 올라갔다면, 다른 상품이었으면 어땠을지, 또 그 이유는 무엇인지까지 확인한다. 예를 들어 백화점 매장에서 판매하는 사과의 당도가 경쟁사 백화점보다 낮다면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매입 과수원에서부터 매입절차, 유통과정까지 파고들어가 문제점을 찾은 후 이를 해결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확실한 계수 관리에 근거하여 이루어진다. 청년과 같은 열정 뒤에는 엄격한 자기관리, 철저한 사업 구상과 메모를 통한 철저한 분석이 있었기에 오늘의 롯데가 있을 수 있었다.”
계수에 밝다는 것은 사업가로서 장점이 아닐 수 없다. 신 총괄회장의 기업가로서 출발은 1940년대 초반, 일본에서 껌 사업으로 돈을 벌던 때부터 시작됐다. 이 무렵에도 청년 신격호의 사업 감각은 타고났다고 할 정도로 뛰어났다고 한다. 하나의 사례를 들어보자. 그는 어른들을 위한 추잉껌이 아니라 어린이를 겨냥했다. 풍선껌을 작은 대나무 대롱 끝에 대고 불 수 있도록 풍선껌과 대나무 대롱을 함께 포장했다. 당시에는 변변한 장난감이 없던 터라 롯데의 풍선껌은 그야말로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껌이라는 상품 자체가 식품이라기보다는 심심한 입을 즐겁게 해주는 장난감이라는 제품의 핵심가치를 간파한 것이다. 이벤트와 미디어로 소비자의 눈길을 끌어당긴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껌 포장 안에 추첨권을 놓고 당첨된 사람에게 1천만 엔을 준다는 광고를 내놓기도 했다. 결과는 롯데 껌을 사기 위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상점 앞에 길게 줄을 서게 만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기발한 마케팅 기법을 고안해내고 자신 있게 밀어붙인 사람은 바로 신 총괄회장 본인이었다. 신 총괄회장의 천재적 마케팅 감각은 경영학 강의와 교재에서 도움을 받았다기보다는 그의 타고난 감수성과 창의성에서 나온 것이다. 1948년, 신 총괄회장이 자본금 100만 엔과 종업원 10명으로 법인사업체를 만들 때 대문호 괴테의 명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여주인공 이름에서 롯데라는 이름을 따왔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얘기다.
기업보국으로 기업가정신을 실천하다
롯데제과를 기반으로 탄생한 한국의 롯데그룹은 1970년대에 롯데칠성음료와 롯데삼강으로 국내 최대 식품기업으로 발전했으며 롯데호텔과 롯데쇼핑을 설립해 국내 유통·관광 산업의 현대화 토대를 구축했다. 신 총괄회장은 이후 호남석유화학(현 롯데케미칼)과 롯데건설 등으로 국가 기간산업에도 본격 진출해 지금의 롯데그룹을 일궈냈다.
롯데그룹의 랜드마크인 잠실롯데월드도 신 총괄회장의 기업보국의 소산이다. 지난 84년 신 총괄회장은 “롯데월드를 통해 한국의 관광산업은 문화유산 등 있는 것을 보여주는 단계에서 볼거리를 만들어서 제공하는 수준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며 잠실 롯데월드 사업을 지시한다. 당시 롯데 임직원들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일부 아파트를 제외하고는 허허벌판이었던 잠실벌에 대형 호텔과 백화점, 놀이시설을 짓는 것이 과연 사업성이 있겠느냐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신 총괄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이 대목에서 신격호 총괄회장과 함께 잠실 일대를 돌아다니며 투자지역을 물색하던 전직 간부의 증언을 들어보자. 신격호 총괄회장은 재계에서도 부동산을 보는 안목이 뛰어난 기업가로 꼽힌다. 보유한 부동산도 상당하다. 지난해 기준으로 롯데그룹이 소유하고 있는 토지자산은 10조원이 넘는다.
허허벌판 잠실 땅 매입한 타고난 부동산 안목
신 총괄회장은 80년대부터 잠실 땅의 가치에 대해 확신을 가졌던 듯하다. “지금은 허허벌판이지만 오픈을 하고 1년만 지나면 교통 체증이 생길 정도로 상권이 발달할거야.” 이처럼 ‘상권은 창조하는 것’이라는 신 총괄회장의 생각은 적중했다. 그의 예상대로 잠실 사거리는 교통체증을 유발할 정도로 상권이 발달하게 됐다.
롯데는 사업하면서 빚이 없는 기업으로 손꼽힌다. 세간에서는 현금이 많은 재벌이라고도 한다. 이 역시 신격호 회장의 오랜 소신에서 기인한다. “기업인은 회사가 성공할 때나 실패할 때 모두 자신의 책임으로 돌려야 합니다. 정부와 국민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됩니다.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면 신중해지고 보수적이 되지요. 사업에 책임을 지다 보니 열심히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까 빚을 많이 쓰지 않게 된 것입니다.” 보수적인 태도는 실패 확률을 줄인다. 신 총괄회장이 뛰어드는 사업마다 실패하는 사업이 없고, “적어도 롯데와 거래하면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원칙이 업계에서 유지되는 것도 이 같은 신중한 경영방식 때문이다. 신 총괄회장은 또, 성과가 적은 직원은 철저한 교육을 통해 성과를 올리도록 하고 사원복지로 보완하는 관리를 통해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기업을 만들어내는 경영능력이 탁월하다고 한다.
경영사학자들은 신격호 총괄회장에게서 나타나는 기업가정신으로 하면 된다는 특유의 정열적 태도를 꼽는다. 정열에 관한 한 신격호 회장은 젊은이 못지않다. 백수(白壽)를 바라보는 지금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기업 경영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오늘 할 일과 내일 할 일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궁리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다. 그의 정열과 감수성은 지병처럼 깊다.
“베르테르는 그의 여인 샤롯데에 대한 사랑에 있어 정열 그 자체였습니다. 그 정열 때문에 그는 즐거웠고 때로는 슬펐으며 그 정열 속에 자신의 생명을 불사를 수 있었습니다. 일 할 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정열이 있으면 어떠한 어려운 일이라도 즐겁게 이겨낼 수 있지만, 정열이 없으면 흥미도 없어지고 일의 능률도 없어집니다. 경영자의 정열과 직원 모두의 정열이 하나의 총체로 나타날 때 그 회사는 큰 발전이 기약 됩니다.” 신 총괄회장이 임직원들에게 강조한 ‘경영어록’ 중 한 대목이다.
신 총괄회장이 설립한 롯데제과, 롯데칠성음료, 호텔롯데, 롯데쇼핑, 롯데월드 등이 모두 동종 업계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고 업계를 선도해 나가고 있는 것도 신 총괄회장의 젊은이같은 정열의 소산이다. 신 총괄회장은 이러한 열정과 기업보국의 기업가정신을 인정받아 1995년 관광산업 분야에서는 최초로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영산(靈山) 신(辛) 씨 집안인 신격호 총괄회장 일가의 핏속에는 뜨거운 기업인의 기질이 너나없이 흐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현재 신 회장의 형제 등도 대부분 기업인이다. 롯데그룹을 일군 신 총괄회장이 장남이고, 3남 신춘호 씨는 농심그룹 창업자다. 5남 신준호는 유제품 기업인 푸르밀 회장으로 있고, 여동생 신정희 씨도 동화면세점 사장으로 있다.
신 총괄회장의 기업가정신을 누가 물려받을까? 재계의 오랜 관심사항이었던 롯데그룹의 후계구도도 최근 결론이 났다. 지난 7월 15일은 훗날 롯데그룹의 역사에 한 획이 그어진 날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 롯데 홀딩스가 정기이사회를 통해 참석한 이사 전원의 찬성으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대표이사로 선임한 것이다. 한국 재계와 언론은 롯데그룹의 승계 구도가 신동빈 회장으로 확정된 것으로 해석했다. 일본 롯데까지 총괄하게 된 신동빈 회장은 이날 오후 주요 계열사 사장단회의를 통해 “이사회의 결정을 겸허하고 엄숙하게 받아들인다”며 “앞으로 신격호 총괄회장의 뜻을 받들어 한국과 일본의 롯데사업을 모두 책임지는 자세로 최선을 다하는 한편 리더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겠다”고 밝혔다고 한다. 포브스코리아는 신동빈 회장의 기업가정신을 조명하고 롯데그룹의 경영전략을 듣기 위해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신 회장의 일정 등 여러 이유로 이뤄지지 못했다.
신동빈 회장은 신격호 총괄회장의 기업인 피를 그대로 물려받은 기업가로 알려져 있다. 한 전직 임원의 증언이다.
부친의 기업가정신 빼닮은 신동빈 회장
신동빈 회장은 신격호 총괄회장과 모친 시게미츠 하츠코의 차남이다. 신동주(61) 전 일본롯데 사장이 친형이다. 형을 제치고 한국과 일본의 롯데그룹 경영자가 된 데는 그만한 열정과 노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신동빈 회장의 경영능력은 실적으로 증명된다. 신동빈 회장은 2011년 2월, 롯데그룹 정기임원 인사에서 국내 재계 5위 그룹의 회장에 취임했다. 1997년 부회장 승진 이후 14년 만이었고, 1990년 호남석유화학 상무로 롯데그룹에 참여한 지 21년 만이었다. 신 회장은 1955년 일본에서 태어나 아오야마 가쿠인(靑山學院)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한 전문경영인 출신이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마치고 81년부터 88년 2월까지 일본 노무라증권의 런던지점에서 일하며 국제 금융 감각을 키웠다. 롯데가 아닌 다른 회사에서 평사원으로 먼저 근무하게 한 것은 경험과 겸손을 배울 수 있도록 한 신격호 총괄회장의 배려인 동시에 일종의 경영 수업이었다고 한다. 신 회장은 이때를 선진 기업들의 재무관리와 국제금융 시스템을 피부로 접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신 회장은 2004년 10월 롯데 정책본부 본부장 취임을 시작으로 그룹 경영의 전면에 나서게 된다. 평소 차분하고 말수가 적은 것으로 알려진 신 회장이지만 사업적으로는 도전적이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 2006년 롯데쇼핑을 한국과 영국 증권시장에 성공적으로 상장시켰고, 하이마트, 말레이시아 타이탄케미칼, 중국 대형마트 타임스 등 국내외에서 30여 건의 크고 작은 M&A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면서 그룹의 핵심역량을 강화했다. 지난해에는 숙원사업이었던 맥주 시장에도 성공적으로 진출했고. 올해는 ‘KT렌탈’ 인수를 통해 렌터카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처럼 해외진출과 M&A를 통한 적극적인 경영활동으로 인해 신 회장이 정책본부장에 취임할 당시인 2004년 23조이던 그룹 매출은 2013년 83조원을 넘어섰다. 경기침체와 내수부진 속에서 이뤄낸 성과다.
기업가의 피는 물려받았지만 두 부자의 경영스타일은 다르다. 부친인 신 총괄회장이 부동산에 관심을 쏟았다면 신동빈 회장은 달라진 글로벌 환경에 대응해 자신의 전공인 최신 금융기법으로 그룹의 활로를 열고 있다. 실제 신동빈 회장은 탁월한 국제금융 감각의 소유자다. 몇 가지 사례가 있다. 그리스 재정위기가 잠잠해진 것 같았던 2011년 상반기, 신 회장은 임원들에게 그리스와 유럽의 상황이 더 나빠질 수 있다며 미리 자금을 확보해 둘 것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롯데쇼핑은 전환사채 발행을 추진했고 약 1조의 자금 조달에 성공했다. 그것도 5년 만기인 달러화 표시 CB의 표면 이자율은 0%. 엔화 표시 CB의 경우는 -0.25%의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CB의 만기 이자율이 마이너스라는 것은 만기 때 투자자에게 원금보다 덜 준다는 의미다. 이 거래는 각계의 호평을 받으며 홍콩의 금융 전문매체
신 회장의 이러한 국제 금융 감각은 2006년 주력 계열사인 롯데쇼핑의 상장 과정에서도 나타났다. 당시 풍부한 현금이 있는데 왜 이런저런 간섭을 받을 수 있는 상장을 하느냐는 내부의 목소리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신 회장은 결국 상장을 이끌어 냈다. 런던과 서울에서의 동시 상장을 통해 확보한 3조5000억원의 자금은 이후 롯데의 활발한 인수합병의 시드머니가 되었다.
유통과 석유화학을 그룹의 양대 축으로
석유화학 부문은 롯데그룹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신 회장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투자를 강화하고 있는 분야 중 하나다. 신 회장은 1990년부터 석유화학 경영에 참여해 나프타 분해공장 증설을 주도하여 그동안 외부조달에 의존하던 원료의 안정적 공급을 확보했다. 또한 현금흐름 경영과 투명경영으로 호남석유화학을 유화업계 최고의 재무 상태와 경쟁력을 갖춘 회사로 만들었다. 2012년에는 호남석유화학과 케이피케미칼을 합병해 롯데케미칼을 성공적으로 출범시켜 석유화학을 명실공히 롯데그룹의 양대 축으로 성장시켰다. 롯데케미칼은 2010년 동남아시아의 대표적 석유화학 회사인 말레이시아 타이탄을 인수한 데 이어 유럽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확보하고 올해는 북미 셰일가스를 활용한 에탄크래커 공장 건설도 추진하고 있다.
신 회장은 식품부문의 국내 시장 성장이 한계에 다다르자 해외 시장 개척을 식품 부문 성장의 대안으로 제시하는 등 글로벌경영으로 기업가정신을 실천하고 있다. 2007년에 베트남에 진출한 롯데제과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꾸준히 시장 규모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2010년에는 베트남과 인도, 러시아에 현지 생산 공장이 완공돼 더욱 다양한 영업 전략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롯데칠성음료도 2010년에 필리핀의 펩시 공장을 인수하며 글로벌 종합 음료회사로 도약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2009년 1월에는 두산으로부터 소주 ‘처음처럼’을 생산하고 있는 주류부문을 인수해 종합 주류 회사로 발돋움했다. 지난해 4월에는 ‘클라우드’를 출시하며 맥주 시장에 돌풍을 일으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롯데그룹의 지난해 매출 81조원 가운데 해외 매출이 11조원으로 한국과 일본을 넘어 글로벌기업으로 도약해가고 있다.
유통 넘버원에서 글로벌 롯데로 도약
롯데그룹의 2세 승계시대를 맞아 신동빈 호가 이끄는 재계 5위 롯데그룹 도약의 발판은 롯데월드타워의 완공이 될 것으로 보인다. 롯데월드타워는 신 총괄회장이 터를 잡았고 신 회장이 그룹의 역량을 총동원해 마무리 하고 있는 롯데그룹의 숙원사업이다. 건설공사 과정에서 신동빈 회장에게 몇 차례 어려운 고비가 있었지만 잘 돌파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신 총괄회장 역시 각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금도 잠실 롯데월드타워&몰에 수시로 들러 사업 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5월에도 현장을 예고 없이 방문해 롯데월드타워 공사 진행 상황과 롯데월드몰 운영 현황을 살폈다. 롯데월드타워 79층 공사 현장에도 직접 올라가 철저한 안전시공을 강조하는 등 고령의 연세에도 두 시간에 거쳐 곳곳을 둘러봤다고 한다.
부친인 신 총괄회장의 관심이 이렇게 특별한 만큼 신회장 부자가 내년 말 월드타워 114층으로 집무실을 옮기겠다고 발표한 것은 당연한 수순으로 보인다. 예정대로라면 내년 말 123층(555m)의 롯데월드타워가 완공돼 한국 최고층 빌딩에 자리 잡은 두 부자가 각자의 집무실에서 글로벌롯데를 경영하게 된다. 그때가 되면 대한민국 유통 넘버원을 넘어 아시아 톱10의 글로벌 기업을 목표로 삼은 신격호·신동빈 두 부자의 기업가정신이 경기 침체로 실의에 빠져있는 한국 경제에 보탬이 되는 상황을 기대해도 좋을 듯 하다.
- 포브스코리아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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