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모바일 게임산업, 갈라파고스 신세?] 개성은 사라지고 대작에만 목매
[한국 모바일 게임산업, 갈라파고스 신세?] 개성은 사라지고 대작에만 목매
한국은 세계가 인정하는 게임 강국이다. PC·온라인 분야에서 한국 개발자의 역량은 초일류로 꼽히며, 프로젝트 경험이 풍부하고, 기획력도 뛰어나다. 솜씨 좋은 개발자들은 미국·유럽의 유명 개발사로 옮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국은 PC·온라인 분야에서 미국·유럽·중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세계 4강으로 꼽힌다. 시장 규모 역시 작지 않다. 리서치 전문업체 뉴주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전체 게임산업 규모는 미국·중국·일본·독일·영국에 이어 세계 6위 규모다. 사용자 한 명이 게임에 지출하는 액수는 1인당 연 79달러로 일본(120달러)을 제외하고 세계에서 가장 많다.
한국은 1980~90년대만 해도 개발능력이 사실상 ‘제로’인 게임산업의 변방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국내에서 인터넷·PC의 보급이 빨라졌고, 같은 시기 세계적으로 PC 게임의 인기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세계 게임산업의 강국으로 거듭났다. 과거 일본 회사들이 만든 콘솔·아케이드 게임을 즐기던 어린이들이 성인으로 성장해 PC·인터넷 환경에 적응, 양질의 게임을 양산하기 시작했다. 특히 한국 게임산업은 리니지로 대표되는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의 개념을 확산시키는가 하면 포트리스 등 새로운 형태의 캐주얼 게임을 내놓으며, 세계 시장의 트렌드를 주도했다. 국가 간, 기업 간 기술 편차가 줄고, 중국이 빠르게 성장하며 한국 게임산업의 위상이 예전만 못하지만 여전히 PC·온라인 게임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꼽힌다. 글로벌 모바일 시장에서는 얘기가 다르다. 이상할 정도로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공장에서 찍어낸 듯 판에 박힌 게임에, 새로울 것 없는 시스템, 빈약한 콘텐트, 사용자를 울리는 확률 아이템 판매 등으로 외면을 받고 있다. 이미 질적인 측면에서 후발 국가인 중국에 뒤쳐졌으며, 단기 수익에 급급한 나머지 글로벌 트렌드도 제대로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 많은 독립 게임회사들이 고사하며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게임은 찾아볼 수 없고, 촘촘한 과금제도를 갖춘 중독성 높은 게임만 즐비하다.
지난해 국내 모바일 게임 시장의 규모는 2조4000억원 정도로 미국·일본·중국에 이어 세계 4위권이었다. 그러나 내년부터는 시장 규모가 축소될 전망이라 규모 경쟁에서도 밀릴 것으로 보인다. 단기간에 빨리 성장한 만큼 성장의 한계도 빨리 맞은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세계 시장을 넘봐야 하지만, 지금 같은 게임으로는 경쟁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가다.
“게임은 실험정신으로 시작해 실험정신으로 끝난다.” 게임 업계 관계자들로부터 쉽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게임산업은 새로운 시스템과 아이디어를 통해 진화하며, 선두에 선 회사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워크래프트와 스타크래프트·디아블로·월드오브워크래프트 등 실험성 높은 게임을 잇따라 히트 시키며 세계 굴지의 게임회사로 성장한 미국의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국내 모바일 게임 회사들은 중독성·과금제도에만 연연해왔다. 이에 따라 글로벌 트렌드와는 다른 성장 경로를 겪었다. 일각에서는 한국을 모바일 게임산업의 갈라파고스라고 혹평하기도 한다. 왜 그렇게 됐을까. 많은 전문가가 국내 모바일 게임이 카카오톡을 기반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카카오톡은 모바일 메신저로서의 네트워크 효과를 강화하기 위해 모바일 게임을 활용했다. 게임이 카카오톡 사용자의 유대관계를 강화하고, 강화된 네트워크는 다시 모바일 게임의 수익을 확충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실제로 애니팡·드래곤플라이트 같은 모바일 게임은 카카오톡 환경 속에서 대히트를 쳤고, 카카오톡 사용자를 늘리는 한편,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그러나 게임 수가 많아지며 사용자들이 분산되기 시작하고, 카카오톡의 마케팅 효과가 줄면서 자본력이 취약한 독립 개발사들은 하나둘 퇴출됐다. 남은 곳은 넷마블·넥슨 같은 대형사뿐이다.
또 카카오톡이 매출 증대를 위해 수익성 높은 게임을 개발할 것을 요구, 단기 성과 위주의 게임이 쏟아진 측면도 있다. 카카오톡은 퍼블리셔로서 수수료 명목으로 개발사 매출의 21%를 가져간다. 이런 상황 속에서 모바일 게임의 다양성은 차츰 저해됐고, 결국엔 글로벌 경쟁력 실종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한 게임회사 기획자는 “모바일 게임산업은 사용자들의 요구보다는 카카오톡의 필요에 의해 키워진 측면이 강하다”며 “개발사들이 리스크를 기피하면서 아이디어보다는 대작 위주로, 장기 성과보다는 단기 수익성에 집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환경에서 나온 게임이 세븐나이츠·영웅의군단·불멸의전사 등과 같은 소위 ‘노가다 RPG’ 게임이다. 이들 게임은 캐릭터의 육성, 아이템 수집에 초점을 맞춰 많은 시간을 투자하게 했다. 난이도를 높여 사용자의 몰입도도 키웠다. 그리고 일·주·월 단위 보상을 통해 지속적인 접속을 유도했다. 이렇게 설계된 게임 속에 캐릭터의 성장과 각종 아이템, 여러 옵션 등 과금 제도를 도입해 사용자들의 지출을 끌어냈다. 또 확률 아이템을 판매해 사용자의 사행심도 자극했다. 이 같은 방법으로 모바일 RPG 게임들은 출시 이후 항상 높은 매출 순위를 기록 중이다. 이들 게임의 인터넷 커뮤니티를 살펴보면 캐릭터 육성을 위해 수백만원을 썼다는 사용자들의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게임은 사용자에게 캐릭터 육성의 부담과 과금 스트레스를 줘 장기간 인기를 끌기 어렵다. 또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출·퇴근 등 짧은 시간에 즐기는 모바일 게임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모바일 게임 이용 정도와 관련한 설문조사를 보면 여성(68.9%)이 남성(41.8%)보다 모바일 게임을 더욱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모바일 환경은 RPG보다는 퍼즐에 더욱 적합하다는 방증이다. 실제로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클래시 오브 클랜·퍼즐앤드래곤·몬스터스트라이크·디즈니썸썸·캔디크러시사가 등의 게임은 퍼즐 요소가 강하고 시간이 많이 소요되지 않는다. 가장 성공한 모바일 게임으로 꼽히는 클래시 오브 클랜의 경우 시뮬레이션 게임인데도 시간이 적게 든다는 점에서 여전히 인기가 높다. 한 모바일 게임 개발자는 “해외의 유명 게임은 기본적으로 무과금 유저를 기반으로 제작하는데 비해, 한국은 과금을 중심으로 콘텐트를 만든다”며 “광적인 게임 환경을 만들면 매출이 빨리 늘지만, 콘텐트를 빨리 소진시킬 수 있고 해외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현재 글로벌 시장에서 히트 친 한국산 모바일 게임도 모두의마블(넷마블)·낚시의신·홈런배틀3D(컴투스) 등 서머너저워(컴투스)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캐주얼 게임이다. 윤형섭 상명대 게임학과 교수는 “한국은 게임회사의 과금 정책 등의 문제로 글로벌 시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해 산업 경쟁력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국내 개발사들은 국내에서 발매한 게임이 실패하면 먼저 중국을 찾는 경우가 많다. 중국은 한국과 게임 문화가 비슷한데, 사용자들의 눈높이는 낮아 흥행에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시장 규모가 막대하기 때문에 최소한 개발비는 뽑을 수 있다고 자신한다. 이 때문에 PC·온라인 게임의 경우 국내 출시 이후 3개월~1년의 시차를 두고 중국에 출시하는 것이 일반화됐다. 그러나 모바일 게임의 경우 상황이 역전됐다. 한국이 플랫폼과 단기 수익 문제로 헤매고 있는 사이 중국 모바일 게임산업은 양적·질적 측면에서 비약적인 성장을 이뤘다. 선도자와 추격자의 위치가 뒤바뀌었다. 최근 국내 모바일 게임 회사들이 속속 중국 진출 계획을 밝혔지만, 비관적인 전망이 앞서는 이유다.
중국 모바일 게임산업의 강점은 무엇보다도 방대한 콘텐츠와 이를 뒷받침할 막대한 자금력, 사용자 수다. 통상 게입업계에서는 한 게임의 동시접속자 수가 1만~2만명(온라인게임 기준)이면 안정적으로 콘텐츠를 유지하면서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한다. 이를 토대로 전체 인구의 1%가 실시간으로 모바일 게임을 즐긴다고 가정하면 한국은 50만명이 동시 접속해 게임을 즐기며, 수익을 올리는 게임은 25~50개 정도라고 추산할 수 있다. 인구 13억5500만명인 중국의 경우 1355만명이 모바일 게임을 동시에 접속하며, 약 650~1300개의 게임이 수익을 내고 있다고 계산할 수 있다. 중국은 한국보다 26배나 많은 종류의 콘텐츠가 유통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단순 비교는 다소 무리일 수 있으나, 중국에서 더욱 다양한 종류의 게임이 출시된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지난해 10월부터 8개월간 중국에서 출시된 모바일 게임 수는 약 3400개. 하루에 14개의 신작 게임이 쏟아진 셈이다. 3400개 게임 중에서 살아남는 게임은 91%에 해당하는 300개 정도다. 중국은 이 정도 규모의 게임을 소화해 줄 막대한 배후수요를 갖고 있다. 여기에 텐센트와 산다 등 대형 게임 유통회사들이 독립 개발사들에 수천만~수억원대의 개발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는 점도 중국 모바일 게임 산업을 강하게 만들고 있다. 중국의 모바일 게임 시장은 올해 61억 달러를 기록할 전망인 가운데, 내년 77억 달러를 달성하며 미국(73억 달러)을 제치고 세계 1위 시장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국내 개발사들도 중국 시장 공략을 지상목표로 삼고 올 들어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포화상태에 다다른 국내 시장에서 벗어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넷마블게임즈의 방준혁 의장이 이례적으로 간담회까지 자청했을 정도다. 그러나 중국 시장의 허들은 높다. 세계 각국의 게임이 몰리다 보니 시장에 진입하는 일부터 어렵다. 중국은 구글의 플레이스토어가 없다. 국내 게임 회사들이 중국에 진출하려면 현지 퍼블리셔의 앱스토어에 입점해야 한다. 그런데 텐센트의 앱스토어의 경우 계약 전 내부 테스트부터 계약 여부까지 총 7단계로 구성될 정도로 심사 과정이 험난하다. 국내에서 쿠키런으로 큰 성공을 거둔 데브시스터즈의 경우 지난해 중국 진출을 위해 중국 퍼블리셔 텐센트와 계약을 했지만, 올 초 텐센트의 비공개 테스트를 넘지 못하며 결국 관계를 정리하는 수모를 겪었다. 한국 모바일 게임의 중국 진출 소식은 끊이지 않지만 뚜렷한 성적을 거뒀다는 소식은 아직까지 들리지 않는다. 넷마블이 최근 중국 진출을 선언하면서, 퍼블리셔로 텐센트가 아닌 넷이즈를 선택한 이유도 이 같은 험난한 검증 과정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오히려 국내 모바일 게임 회사는 중국 개발사의 공세를 더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중국 모바일 게임이 국내에서 히트를 치기 시작하면서, 중국 대작 게임의 국내 상륙 준비가 잇따르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뮤 오리진이다. 뮤는 과거 국내 개발사인 웹젠이 개발해 PC에서 대히트를 쳤던 온라인 게임인데, 중국의 개발사 천마신공이 라이센스를 사들여 모바일 버전으로 바꿔 한국으로 역수출했다. 뮤 오리진은 중국 개발사의 실력을 알 수 있는 게임이라는 평가다. 독특한 전투 시스템으로 국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탑오브탱커 역시 중국에서 왔다. 이 밖에도 대만 시장 2위를 기록한 바 있는 크로우가 출격 준비를 마치는 등 10개의 중국 게임이 한국 시장을 노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닌텐도를 비롯한 일본의 전통 있는 개발사가 속속 모바일 시장 진출을 선언하고 신작 출시를 서두르고 있다. 일반적으로 모바일은 PC나 콘솔보다 성능이 떨어지기 때문에 아이디어나 좋은 시나리오, 스토리텔링이 있는 게임이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넥슨 등 국내 개발사들은 스트리트파이터 등 일본의 대표적인 게임의 판권을 사와 모바일 버전으로 바꿔 흥행에 성공한 바 있다. 그러나 앞으로 일본 개발사가 직접 나선다면 국내 개발사에게는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한국 모바일 게임산업이 여러 난관을 극복하려면 게임 시장의 다양성을 회복하는 일이 선결 과제라는 분석이다. 국내 모바일 게임이 그래픽과 과금제도에 매몰되기보다는 아이디어와 대중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이례적으로 한국의 모바일 게임 시장에 대해 다루고 “한국의 게임은 고화질 그래픽을 구사한 액션게임에 과도하게 치우쳐 있으며, 이는 전 세계 이용자들의 기반을 스스로 제한시킬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 모바일 게임이 대작화와 현란한 그래픽에 승부를 걸다 보니 특정 취향을 가진 사용자들에게 쏠리게 됐고, 사용자가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있다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단순한 구조와 그래픽의 캐주얼 게임이 국내 게임 회사들의 확장성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다. 물론 국내 모바일 게임 사용자가 미국·중국·일본 등 경쟁국에 비해 적다는 환경적 한계는 존재한다. 이 때문에 개발사들은 대작 게임에 선택과 집중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더불어 엔젤투자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통상 하나의 게임을 성공시키려면 3번 이상의 시도가 필요한데, 창업투자에 돈줄이 말라 회사를 유지할 만한 여건이 안 된다는 것이다. 정부·유관기관의 정책 자금 역시 성과가 보장되지 않으면 지원을 꺼리는 탓에 실질적인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설명이다. 게임 업계 관계자는 “2000년대 초반 온라인 게임이 성장한 배경에는 시장에 자금이 넘친 덕도 있다”며 “중국과 독일 정부가 사무실 무상 임대나 세제 지원을 통해 게임 회사를 끌어오는 노력을 하는 것을 우리 당국도 배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개발사들이 마케팅 다원화와 글로벌 진출에 초점을 맞춘 게임 개발 등 전략적 차원의 접근도 필요하다는 조언도 나온다. 한국 모바일 게임산업을 질적으로 성장시키려면 이전의 성장모델과는 과감히 결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모바일 게임은 다양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구조”라며 “다양한 아이디어를 가진 수많은 회사가 나올 수 있는 환경부터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 김유경 기자 kim.yukyoung@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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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1980~90년대만 해도 개발능력이 사실상 ‘제로’인 게임산업의 변방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국내에서 인터넷·PC의 보급이 빨라졌고, 같은 시기 세계적으로 PC 게임의 인기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세계 게임산업의 강국으로 거듭났다. 과거 일본 회사들이 만든 콘솔·아케이드 게임을 즐기던 어린이들이 성인으로 성장해 PC·인터넷 환경에 적응, 양질의 게임을 양산하기 시작했다. 특히 한국 게임산업은 리니지로 대표되는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의 개념을 확산시키는가 하면 포트리스 등 새로운 형태의 캐주얼 게임을 내놓으며, 세계 시장의 트렌드를 주도했다. 국가 간, 기업 간 기술 편차가 줄고, 중국이 빠르게 성장하며 한국 게임산업의 위상이 예전만 못하지만 여전히 PC·온라인 게임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꼽힌다.
실험정신은 실종되고, 단기 성과에만 급급
지난해 국내 모바일 게임 시장의 규모는 2조4000억원 정도로 미국·일본·중국에 이어 세계 4위권이었다. 그러나 내년부터는 시장 규모가 축소될 전망이라 규모 경쟁에서도 밀릴 것으로 보인다. 단기간에 빨리 성장한 만큼 성장의 한계도 빨리 맞은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세계 시장을 넘봐야 하지만, 지금 같은 게임으로는 경쟁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가다.
“게임은 실험정신으로 시작해 실험정신으로 끝난다.” 게임 업계 관계자들로부터 쉽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게임산업은 새로운 시스템과 아이디어를 통해 진화하며, 선두에 선 회사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워크래프트와 스타크래프트·디아블로·월드오브워크래프트 등 실험성 높은 게임을 잇따라 히트 시키며 세계 굴지의 게임회사로 성장한 미국의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국내 모바일 게임 회사들은 중독성·과금제도에만 연연해왔다. 이에 따라 글로벌 트렌드와는 다른 성장 경로를 겪었다. 일각에서는 한국을 모바일 게임산업의 갈라파고스라고 혹평하기도 한다.
카카오톡 덕에 웃고 카카오톡 탓에 울어
또 카카오톡이 매출 증대를 위해 수익성 높은 게임을 개발할 것을 요구, 단기 성과 위주의 게임이 쏟아진 측면도 있다. 카카오톡은 퍼블리셔로서 수수료 명목으로 개발사 매출의 21%를 가져간다. 이런 상황 속에서 모바일 게임의 다양성은 차츰 저해됐고, 결국엔 글로벌 경쟁력 실종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한 게임회사 기획자는 “모바일 게임산업은 사용자들의 요구보다는 카카오톡의 필요에 의해 키워진 측면이 강하다”며 “개발사들이 리스크를 기피하면서 아이디어보다는 대작 위주로, 장기 성과보다는 단기 수익성에 집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환경에서 나온 게임이 세븐나이츠·영웅의군단·불멸의전사 등과 같은 소위 ‘노가다 RPG’ 게임이다. 이들 게임은 캐릭터의 육성, 아이템 수집에 초점을 맞춰 많은 시간을 투자하게 했다. 난이도를 높여 사용자의 몰입도도 키웠다. 그리고 일·주·월 단위 보상을 통해 지속적인 접속을 유도했다. 이렇게 설계된 게임 속에 캐릭터의 성장과 각종 아이템, 여러 옵션 등 과금 제도를 도입해 사용자들의 지출을 끌어냈다. 또 확률 아이템을 판매해 사용자의 사행심도 자극했다. 이 같은 방법으로 모바일 RPG 게임들은 출시 이후 항상 높은 매출 순위를 기록 중이다. 이들 게임의 인터넷 커뮤니티를 살펴보면 캐릭터 육성을 위해 수백만원을 썼다는 사용자들의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게임은 사용자에게 캐릭터 육성의 부담과 과금 스트레스를 줘 장기간 인기를 끌기 어렵다. 또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출·퇴근 등 짧은 시간에 즐기는 모바일 게임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모바일 게임 이용 정도와 관련한 설문조사를 보면 여성(68.9%)이 남성(41.8%)보다 모바일 게임을 더욱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모바일 환경은 RPG보다는 퍼즐에 더욱 적합하다는 방증이다. 실제로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클래시 오브 클랜·퍼즐앤드래곤·몬스터스트라이크·디즈니썸썸·캔디크러시사가 등의 게임은 퍼즐 요소가 강하고 시간이 많이 소요되지 않는다. 가장 성공한 모바일 게임으로 꼽히는 클래시 오브 클랜의 경우 시뮬레이션 게임인데도 시간이 적게 든다는 점에서 여전히 인기가 높다. 한 모바일 게임 개발자는 “해외의 유명 게임은 기본적으로 무과금 유저를 기반으로 제작하는데 비해, 한국은 과금을 중심으로 콘텐트를 만든다”며 “광적인 게임 환경을 만들면 매출이 빨리 늘지만, 콘텐트를 빨리 소진시킬 수 있고 해외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현재 글로벌 시장에서 히트 친 한국산 모바일 게임도 모두의마블(넷마블)·낚시의신·홈런배틀3D(컴투스) 등 서머너저워(컴투스)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캐주얼 게임이다. 윤형섭 상명대 게임학과 교수는 “한국은 게임회사의 과금 정책 등의 문제로 글로벌 시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해 산업 경쟁력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중국에 역전…수출 전망도 불투명
중국 모바일 게임산업의 강점은 무엇보다도 방대한 콘텐츠와 이를 뒷받침할 막대한 자금력, 사용자 수다. 통상 게입업계에서는 한 게임의 동시접속자 수가 1만~2만명(온라인게임 기준)이면 안정적으로 콘텐츠를 유지하면서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한다. 이를 토대로 전체 인구의 1%가 실시간으로 모바일 게임을 즐긴다고 가정하면 한국은 50만명이 동시 접속해 게임을 즐기며, 수익을 올리는 게임은 25~50개 정도라고 추산할 수 있다. 인구 13억5500만명인 중국의 경우 1355만명이 모바일 게임을 동시에 접속하며, 약 650~1300개의 게임이 수익을 내고 있다고 계산할 수 있다. 중국은 한국보다 26배나 많은 종류의 콘텐츠가 유통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단순 비교는 다소 무리일 수 있으나, 중국에서 더욱 다양한 종류의 게임이 출시된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지난해 10월부터 8개월간 중국에서 출시된 모바일 게임 수는 약 3400개. 하루에 14개의 신작 게임이 쏟아진 셈이다. 3400개 게임 중에서 살아남는 게임은 91%에 해당하는 300개 정도다. 중국은 이 정도 규모의 게임을 소화해 줄 막대한 배후수요를 갖고 있다. 여기에 텐센트와 산다 등 대형 게임 유통회사들이 독립 개발사들에 수천만~수억원대의 개발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는 점도 중국 모바일 게임 산업을 강하게 만들고 있다. 중국의 모바일 게임 시장은 올해 61억 달러를 기록할 전망인 가운데, 내년 77억 달러를 달성하며 미국(73억 달러)을 제치고 세계 1위 시장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국내 개발사들도 중국 시장 공략을 지상목표로 삼고 올 들어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포화상태에 다다른 국내 시장에서 벗어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넷마블게임즈의 방준혁 의장이 이례적으로 간담회까지 자청했을 정도다. 그러나 중국 시장의 허들은 높다. 세계 각국의 게임이 몰리다 보니 시장에 진입하는 일부터 어렵다. 중국은 구글의 플레이스토어가 없다. 국내 게임 회사들이 중국에 진출하려면 현지 퍼블리셔의 앱스토어에 입점해야 한다. 그런데 텐센트의 앱스토어의 경우 계약 전 내부 테스트부터 계약 여부까지 총 7단계로 구성될 정도로 심사 과정이 험난하다. 국내에서 쿠키런으로 큰 성공을 거둔 데브시스터즈의 경우 지난해 중국 진출을 위해 중국 퍼블리셔 텐센트와 계약을 했지만, 올 초 텐센트의 비공개 테스트를 넘지 못하며 결국 관계를 정리하는 수모를 겪었다. 한국 모바일 게임의 중국 진출 소식은 끊이지 않지만 뚜렷한 성적을 거뒀다는 소식은 아직까지 들리지 않는다. 넷마블이 최근 중국 진출을 선언하면서, 퍼블리셔로 텐센트가 아닌 넷이즈를 선택한 이유도 이 같은 험난한 검증 과정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오히려 국내 모바일 게임 회사는 중국 개발사의 공세를 더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중국 모바일 게임이 국내에서 히트를 치기 시작하면서, 중국 대작 게임의 국내 상륙 준비가 잇따르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뮤 오리진이다. 뮤는 과거 국내 개발사인 웹젠이 개발해 PC에서 대히트를 쳤던 온라인 게임인데, 중국의 개발사 천마신공이 라이센스를 사들여 모바일 버전으로 바꿔 한국으로 역수출했다. 뮤 오리진은 중국 개발사의 실력을 알 수 있는 게임이라는 평가다. 독특한 전투 시스템으로 국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탑오브탱커 역시 중국에서 왔다. 이 밖에도 대만 시장 2위를 기록한 바 있는 크로우가 출격 준비를 마치는 등 10개의 중국 게임이 한국 시장을 노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닌텐도를 비롯한 일본의 전통 있는 개발사가 속속 모바일 시장 진출을 선언하고 신작 출시를 서두르고 있다. 일반적으로 모바일은 PC나 콘솔보다 성능이 떨어지기 때문에 아이디어나 좋은 시나리오, 스토리텔링이 있는 게임이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넥슨 등 국내 개발사들은 스트리트파이터 등 일본의 대표적인 게임의 판권을 사와 모바일 버전으로 바꿔 흥행에 성공한 바 있다. 그러나 앞으로 일본 개발사가 직접 나선다면 국내 개발사에게는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한국 모바일 게임산업이 여러 난관을 극복하려면 게임 시장의 다양성을 회복하는 일이 선결 과제라는 분석이다. 국내 모바일 게임이 그래픽과 과금제도에 매몰되기보다는 아이디어와 대중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이례적으로 한국의 모바일 게임 시장에 대해 다루고 “한국의 게임은 고화질 그래픽을 구사한 액션게임에 과도하게 치우쳐 있으며, 이는 전 세계 이용자들의 기반을 스스로 제한시킬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 모바일 게임이 대작화와 현란한 그래픽에 승부를 걸다 보니 특정 취향을 가진 사용자들에게 쏠리게 됐고, 사용자가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있다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단순한 구조와 그래픽의 캐주얼 게임이 국내 게임 회사들의 확장성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다.
자금·제도적 지원 통해 새 성장경로 찾아야
- 김유경 기자 kim.yukyoung@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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