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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정점은 완전무결한 복종”

“행복의 정점은 완전무결한 복종”

샤를리 엡도는 이슬람 예언자 모하메드를 풍자하는 만평을 실었다가 테러를 당했다. ‘복종’은 샤를리 엡도 테러로 12명이 사망한 지난 1월 7일 프랑스에서 출간됐다.
지난 1월 7일, 무장 괴한 2명이 프랑스 언론사 샤를리 엡도에 침입해 12명을 사살했다. 이슬람 극단주의자였던 테러범들은 아랍어로 “신은 위대하다”고 외치며 범행을 저질렀다. 샤를리 엡도가 예언자 무함마드를 모독했다는 이유에서다. 풍자 만평이 전문인 샤를리 엡도는 무함마드가 나체로 엎드려 있거나 휠체어에 앉아 있는 그림 등 이슬람 풍자 만평을 종종 실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샤를리 엡도의 만평이 표현의 자유를 넘었다는 주장과 테러범들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주장 사이에 격론이 일었다.

같은 날 저녁 프랑스에선 무슬림을 둘러싼 또 하나의 논쟁적 작품이 출간됐다. 소설가 미셸 우엘벡의 신간 ‘복종’이다. 이 소설은 2022년 프랑스에서 이슬람 정당이 집권에 성공한 가상의 미래를 그렸다. 샤를리 엡도 테러로 충격에 휩싸였던 프랑스는 이 소설이 출간되자 또 한차례 발칵 뒤집어졌다. 무슬림의 위협을 잘 묘사했다는 호평과 극우적 이슬람 혐오주의라는 비판이 엇갈렸다. 우엘벡은 과거 한 인터뷰에서 “이슬람은 멍청한 종교”라고 말했던 이력이 있었기에 이슬람 혐오주의라는 비판이 한층 설득력을 얻었다. 그는 테러 공격을 우려해 모든 공식 일정을 취소하고 한동안 잠적했다.

민주주의의 본산 프랑스에서 이슬람 정당이 집권한다는 소재는 자못 자극적이다. 공교롭게도 출간일과 겹친 샤를리 엡도 테러 탓에 더 그렇게 보인다. 그래서인지 홍보를 맡은 출판사나 비평에 나선 언론사는 하나 같이 이 지점에 주목했다. 7월 출간된 한국어판을 봐도 그렇다. 뒷 표지를 보면 ‘소르본대학의 여학생들은 히잡을 두른다’ ‘교수들은 일부다처제를 받아들인다’는 문구가 빨갛게 강조돼 있다. 이런 문구보다 작품의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은 것은 뒷 표지 맨 하단에 실린 슈피겔의 서평 한 줄이다. “‘복종’이 진정으로 자극하는 것은 이슬람에 대한 두려움이라기보다 한 사회가 자유를 향한 투쟁의 전통과 작별하며 자발적으로 도달한 자포자기에 대한 두려움이다.”

‘자포자기’는 이 소설을 관통하는 핵심 개념이다. 세간에 알려진 내용과 달리 ‘복종’의 주요 관심사는 이슬람도, 정치도 아니다. 이슬람 정당의 집권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이나 암투를 기대하는 독자라면 크게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의 주인공 프랑수아는 정치와 아무 상관없을 뿐더러 정치에 별 관심조차 없다. 내용의 상당 부분은 정치가 아니라 프랑수아의 내면 묘사에 할애됐다. 개인주의 프랑스 사회에서 삶의 의미를 잃고 자포자기한 프랑수아가 이슬람 개종을 통해 새로운 삶을 꿈꾸는 과정이 주된 골자다. 이슬람 정당의 집권 과정, 집권 이후 사회의 모습은 철저히 관찰자적 입장으로 일관하는 프랑수아의 시선을 통해 윤곽만 드러날 뿐이다.
 공허한 지식인 통해 본 프랑스 사회의 자화상
프랑수아는 소르본대학 교수다. 19세기 프랑스 소설가 조리스-카를 위스망스에 관해선 세계 최고의 권위자로 꼽힌다. 학문적 역량을 인정받는 데다 경제적으로도 부족함이 없다. 그럼에도 그의 삶은 공허하다. 박사 논문을 발표한 직후 “내 인생의 정점이었을 시절이 끝났다”고 느낀 이래로 프랑수아는 어디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다. “정점”을 지난 프랑수아의 유일하다시피 한 낙은 “해마다 상대를 바꿔가며 학부 여학생들과 잠자리를” 갖는 것뿐이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학부생 여자친구 미리암에게 작별을 고한 뒤로 “이것마저 끝”에 도달하자 그의 삶은 자포자기 상태가 된다. “이제 나는 실연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대답은 필시 극복하지 못하리라는 것이었다.” 여기까지나 초반부 몇 장의 내용이다.

소설은 프랑수아가 유일한 삶의 낙을 잃어버린 이 시점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후엔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프랑수아의 모습이 이어진다. 헤어진 여자친구 미리암을 다시 만나보고, 파리 외곽의 한 도시에 살아보기도 하고, 여러 매춘부와 관계를 갖고, 위스망스처럼 수도원에 들어가기도 하지만 그 어떤 것도 프랑수아의 공허함을 채워주지 못한다. 상황은 되려 악화된다. 나이가 들면서 육체는 점차 쇠락하고 미래의 삶에선 기대할 일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다. 모국 이스라엘로 돌아간 미리암은 다른 남자를 만났다며 프랑수아에게 완전한 이별을 고한다. 10년 넘도록 연락을 끊고 지내던 부모의 사망소식이 잇따라 전해진다. 연말연시에 “처음으로 단 한 통의 카드도” 받지 못하는 대목에서 프랑수아의 공허함은 절정에 달한다. “예기치 못하게 울컥한 나는 끝 모를 오열을 터트렸다.”

프랑수아가 방황하는 사이 이슬람 정당 집권은 착실히진행된다. 2022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 1차 투표에서 극우 정당 국민전선 후보와 이슬람 정당 이슬람박애당 후보가 결선 투표로 진출한다. 이슬람박애당의 후보 모하메드 벤 아베스는 극우 정당의 집권을 우려하는 사회당과 연정하면서 결선투표에서 국민전선을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된다. 소르본대학은 이슬람 대학이 되고, 일부다처제가 허용되며, 거리에서 여성의 노출도 줄어든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제한됨에 따라 실업률이 줄어들고, 아랍 국가에서 흘러 들어오는 거액의 자금으로 인해 국부가 늘어난다. 모로코와 터키의 유럽연합 가입이 확실시되면서 유럽은 과거와 같은 제국의 모습을 갖춰간다.

현실적인 미래상은 아니다. 가까운 시일 내에 이슬람 정당이 집권할 가능성은 무척 낮고, 설령 그렇게 된다 해도 유럽인이 일부다처제를 받아들이거나 여성의 사회 진출을 제한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터키의 유럽연합 가입도 불투명한 현 시점에서 모로코의 유럽연합 가입은 그야말로 상상력의 산물이다. 때문에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나오지만, 애초에 그럴 듯한 미래를 묘사하는 것은 우엘벡의 의도가 아닌 만큼 그런 비판은 적절치 않다. 우엘벡조차 한 인터뷰에서 “아주 현실적인 이야기는 아니다”고 인정했다. 비현실적임에도 자극적인 전개를 택한 이유는 “대중 시장을 향한 내 안의 본능” 때문이라고 그는 답했다.
 이슬람으로 실현하는 ‘가족 판타지’
소설 속 이슬람은 철저히 도구로서 기능한다. 삶의 의미를 잃고 자포자기한 프랑수아가 “두 번째 삶의 기회”를 맞이하는 도구다. 프랑수아는 전통적인 가족 질서를 옹호한다. 그가 꼽는 위스망스 최고의 소설은 ‘결혼생활’이다. 여기서 묘사되는 “오래된 부부의 미지근한 행복”을 그는 사랑한다. “여자들이 직접 채소며 고기를 사서 다듬고 손질하여 뭉근한 불에서 몇 시간씩 스튜를 졸이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여자한테 투표권을 주고, 남자와 똑같은 교육을 받게 하고, 똑같은 직업을 갖게 하는 것 따위”는 “좋은 생각이라고 여겨 본 적이 단 한번도” 없다.

그런 프랑수아가 이슬람에 매료되는 건 자연스런 귀결이다. 프랑수아는 새로 취임한 소르본 이슬람대학 총장 르디제의 집을 방문해서 그의 여러 아내들을 만난다. “요리를 위해서는 마흔 살짜리 아내를, 다른 것을 위해서는 열다섯 살짜리 아내를 둔 삶”은 프랑수아의 마음을 사로 잡는다. 마크 릴라 컬럼비아대학 교수가 뉴욕리뷰오브북스에서 올바르게 지적했듯이 이슬람 가정을 향한 프랑수아의 환상은 이는 여러 여성을 거느리는 하렘보다는 일종의 “가족 로맨스”에 가깝다. 아내가 남편을 존중하고, 여러 아이들에 둘러싸여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는 화목하고 안정된 가정. 다수 여성이 참정권과 직업을 갖고 동거와 이혼, 무자녀 세대가 일상적인 현대 프랑스에선 이루기 힘든 판타지다. 위스망스가 기독교 개종을 통해 방탕한 삶과 염세주의를 극복하듯이 프랑수아는 이슬람 개종으로 공허한 삶을 채우려 한다.
 “유럽 국가들은 영혼 없는 육체”
저자 미셸 우엘백은 과거 한 인터뷰에서 “이슬람은 멍청한 종교”라고 말해 논란을 빚었다.
결국 이 소설에서 이슬람이 상징하는 것은 전통적 가치관의 복권이다. 르디제는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사회가 종교를 버리고 개인주의를 극도로 추구한 끝에 유럽을 위대하게 만들었던 정신을 모두 잃어버렸다고 열변을 토한다. “기독교 없이 유럽의 국가들은 영혼 없는 육체에 불과합니다…유럽 전역에 무정부주의와 허무주의의 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폭력 선동, 모든 도덕률에 대한 거부의 움직임이 일었습니다.” 과거 유럽인의 생활양식과 사고방식, 도덕률을 규정하던 기독교가 힘을 잃으면서 그 어떤 숭고한 가치보다 개인의 쾌락만을 좇는 사회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인류 문명사의 최고봉”이던 유럽이 오늘날 쇠락한 이유다. 기독교의 부흥이 어려워진 이상 유럽이 옛 영광을 찾을 길은 하나뿐이다. 막대한 인구와 종교적 에너지를 갖춘 이슬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소설에 이슬람 혐오라는 비판을 제기하는 건 무의미하다. 우엘벡은 당초 프랑수아가 기독교로 개종하는 내용을 구상했다가 유럽 내 이슬람 인구 확산을 보면서 생각을 바꿨다. 이슬람이 아니라 기독교라 해도 핵심 주제에 큰 차이는 없다는 의미다. 우엘벡에게 중요한 건 이념이 아니라 인구다. 유럽인의 출산율은 갈수록 줄어들지만 이슬람 문화권의 인구는 빠르게 늘어난다. “이념은 인구 통계에 비하면 그다지 영향력이 없다”고 우엘벡은 한 인터뷰에서 지적했다. 세속적 다원주의를 지지하는 유럽인이 줄어드는 동시에 이슬람적 가치를 따르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무게추는 자연히 이슬람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

“인간 행복의 정점은 완전무결한 복종에 있다”고 르디제는 말한다. 유럽 사회는 신정을 거부하고 세속주의적 정교분리 사회를 택하면서 복종 대신 자유를 택했다. 그 결과 가정 파괴로 인해 소외와 고독이 만연하고, 염세주의와 허무주의의 텅 빈 공간을 물질만능주의로 메우기 급급한 시대가 도래했다. 복종이 답일까? 아직은 동의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 듯하다. 문제는 대안 역시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복종’은 그 간극을 소름끼치도록 날카롭게 겨냥한다.

- 이기준 뉴스위크 한국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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