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 늙어 봤어?
젊은이, 늙어 봤어?
16세기 초 스페인 탐험가 폰세 데 레온은 청춘의 샘을 찾는 정복자로 세월을 허비했다. 그보다는 노화의 영향을 보여주는 데 힘썼다면 더 생산적이었을 것이다. 적어도 브랜 페런(62)은 그렇게 말한다.
페런은 노화의 영향을 모의 체험하는 ‘노화복’을 발명했다. 이른바 ‘젠워스 R70i 노화체험(Genworth R70i Aging Experience)’이다. 지난 6월 29일 미국 콜로라도주의 애스펀 아이디어 페스티벌에서 페런, 젠워스 보험사, 그리고 여배우 안젤라 바셋이 공개했다. 청년층 사이에서 노화와 고령자 돌봄에 관한 담론에 불을 지피는 계기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페런은 디즈니 이매지니어링(Disney Imagineering)의 연구개발 팀장 출신이다. 디즈니 영화사와 테마파크의 ‘마법을 연출하는’ 작업을 담당하는 디자인 팀이다. 그는 이상주의자 아티스트 부모 밑에서 자랐다. 부모 중 1명이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현기증’에서 악몽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페런은 16세 때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MIT에 들어갔다. 25세 때는 영화업계에 뛰어들어 특수효과 회사를 차렸다. 1980년 영화 ‘상태개조(Altered States)’의 환각을 유발하는 피날레를 구상했다. 월리엄 허트가 인간 근육조직의 정전기 도형(electrostatic diagram)으로 변신하는 장면이다(팝그룹 아바가 부른 ‘Take On Me’의 악명 높은 뮤직 비디오도 이 장면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1987년 ‘흡혈식물 대소동(Little Shop of Horrors)’으로 아카데미 시각효과상을 수상했다. 뉴욕타임스는 한때 그를 ‘기술계의 신동(technological whiz kid)’으로 불렀다. 지금은 흰 턱수염을 기른 마법사에 더 가까워 보인다.
노화체험복은 페런의 최신 발명품이다. 캡틴 아메리카(슈퍼 히어로 만화 캐릭터) 같은 복장을 하고 할아버지로 변신하는 셈이다. 모든 관절 부위에 금속 경첩과 볼트가 달려 있다. 뻣뻣하고 움직이기 어려운 효과를 주려는 목적이다. 헬멧은 시력 약화, 청력 상실, 인지 퇴화 현상을 연출한다. 맞춤 소프트웨어와 내장 카메라로 ‘노화’를 실시간 체험할 수 있다. 착용자의 팔 움직임을 제한해 관절염 증상을 느끼게 한다. 헬멧 착용자의 귀에 들리는 날카롭고 커다랗게 울리는 소음이 말하고 듣기 어렵게 만든다.
애스펀에서 그 옷을 입어 봤다. 트레이닝복 같은 내복에 몸을 끼워 넣었다(노인들은 정말 내복을 좋아하는구나!). 검은색 수영모를 꼼꼼하게 썼다. 내가 꼼짝 못하고 서 있는 동안 어플라이드 마인즈(페런의 회사)의 진행요원 2명이 커크 선장(SF 드라마 ‘스타 트렉’의 우주선 선장) 유의 시계를 내 손목에 채운다. 심장박동을 모니터하기 위해서다.
“‘로건의 탈출(Logan’s Run)’을 본 적 있소?” 내가 물었다. 진행요원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회전목마(Carrousel)’ 탈 준비가 된 느낌이었다(영화에선 인간이 30세까지만 살 수 있으며 그 다음에는 ‘회전목마’라는 재탄생 의식을 치러야 한다).
직원들이 모의체험 절차에 따라 청색 또는 적색 빛을 내는 구속 전기자(armatures, 자기극에 접촉하는 작고 부드러운 쇳조각)로 나를 묶었다. 곧바로 몸이 무거워졌다. “나이가 들면 뚱뚱해진다”고 페런이 덧붙였다. “프로젝트의 리서치 목적으로 이렇게 살찐 게 아니다.” 그가 내 헬멧의 눈 가리개를 조정해 준 뒤 나는 모의체험의 숲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시야협착(tunnel vision, 시야가 좁아지는 현상)의 밀실공포증과 녹내장의 흐릿함 속으로.
헤드폰을 조절하는 사운드보드 단추를 패런이 만지작거리더니 동요 ‘Mary Had a Little Lamb’을 암송하라고 했다. 잡음 때문에 정신 집중이 되지 않았다. 천천히 신중하게 전체 가사를 어렵게 읊어 내려갔다. 나중에 가서야 어느 부분에서든 혀 꼬부라진 소리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구경꾼들이 재미있어 하며 웃는 동안 나는 러닝머신에 올라가 워킹 하려 했다. 페런이 내 관절 기어를 관절염 모드로 전환했다. 갑자기 심장정지가 일어난 듯 모의체험이 중단됐다. 시연의 일부가 아니었다. 노화 체험복의 배터리가 나간 것이다.
잠시 동안 공포가 엄습했다. 페런이 새 배터리를 찾지 못해 이 장치 속에 영원히 갇히게 된다면? 이 말도 안 되게 볼품없는 의상으로 묻히게 된다면? 다행히 진행요원들이 나를 꺼내줬다.
마이클 아이스너도 그 옷을 입느냐고 페런에게 물었다. 그가 다니던 디즈니의 아이스너 전 회장도 이 페스티벌에 참석했다. 그는 큭큭 웃으며 말했다. “아이스너는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안 하겠다’더라. 그는 노인이 된 느낌을 왜 알고 싶어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단순히 페런 같은 노인용 의상은 아니다. 젊은 사람을 위한 옷이기도 하다.
“여섯 살인 내 딸은 흡연이 건강에 해롭다는 사실을 안다. 해롭다고 가르친 적은 전혀 없는 데도 말이다”고 로스앤젤레스의 자택에서 저녁식사를 하며 페런이 말했다. “진짜 과제는 어떻게 하면 노화 과정을 똑같은 감수성, 대화, 전반적인 이해를 이끌어 내느냐는 점이다. 답은 간단하지 않다. 사람마다 다르다.”
여느 자존심 강한 과학자와 마찬가지로 그의 상의 주머니에는 펜이 가득 꽂혀 있다. 여느 돈 많은 과학자처럼 집 안에 고고학 유물이 가득하다. 캘리포니아주 남부에 있는 그의 자택은 화석, 우주 유물, 암호해독기(Enigma machines), 그리고 갖가지 형태·크기·빛깔의 광석이 빽빽이 들어차 있다. “화성 인류학자라면 페런을 납치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만하다”고 그의 친구 마샬 브리크먼이 말했다. ‘애니 홀(Annie Hall)’을 포함해 여러 편의 영화에서 우디 앨런과 같이 작업했던 시나리오 작가다.
페런의 만찬 식탁 한가운데는 커다란 수정구슬이 놓여 있다. 그의 큰 자랑거리다. 이런 유의 전형적인 형석 결정은 약 1억5000만~2억 년 전인 쥐라기의 산물이다. 최대 1000만 년에 걸쳐 자라난다. 하지만 이 수정구슬은 몇 달 전 실험실에서 탄생했다.
페런에겐 미래 예측이 단순한 취미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는 2000년 디즈니를 나와 ‘어플라이드 마인즈’를 창업했다. 버뱅크 소재의 본사는 제임스 본드 영화 속 Q(신무기 개발 전문가)의 연구소와 윌리 웡카(영화 ‘초콜릿 천국’의 캐릭터)의 초콜릿 공장을 기술적으로 결합한 모양새다. 어떤 모습인지 기사에 쓸 수 없게 할 만큼 철저한 비밀주의다.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어플라이드 마인즈는 내게 비공개 동의서에 서명을 요구했다. “위험해 보이면 위험한 것”이라고 시설견학을 시작하면서 페런이 내게 경고했다. “손대지 마시오.”
어플라이드 마인즈의 가장 유명한 발명품은 아마도 메타웹(Metaweb)일 성싶다. 구글 검색에서 문장을 완성하는 온라인 시스템이다. 회사가 진행하는 정부 프로젝트 중 다수가 비밀이지만 페런은 몇 가지 예외를 보여준다. 가상현실 돔형 구조물, 우주진운(dust clouds) 속을 비행하는 조종사용 시각 장치, 완전 컬러로 작동하는 야간투시 시스템(디지털 시대 미국 의회 도서관용의 시초 모델), 현실세계의 군용 아이언맨 복장 등이다. 페런이 최근에 선보인 카이러밴(KiraVan)도 언론의 화제를 모았다. 여섯 살 딸을 태우고 세계일주를 하기 위해 개발한 바퀴 6개짜리 사륜 오토바이(all-terrain vehicle)다.
페런은 노화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직접 목격했다. 모친과 장모 모두 24시간 요양이 필요한 상태다. 고령의 집안 어른을 돌보면서 개인적으로 이 프로젝트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한다.
지난해 PR 업체 PMK·BNC가 어플라이드 마인즈에 보험사 젠워스 파이낸셜을 소개했다. 그 뒤 젠워스 파이낸셜은 의학보다 스토리텔링을 강조하는 프로젝트를 어플라이드 마인즈에 의뢰했다. 미국 사회가 고령자 돌보기에 관한 논의를 기피한다는 사실을 젠워스 파이낸셜이 절감했다고 페런은 전한다. “사람들이 노화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논하려 할 것”이라고 젠워스 파이낸셜 간부인 재니스 루베라가 말했다.
영화배우 안젤라 바셋도 개인적인 이유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최근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고 요즘은 시어머니를 돌본다. 고모가 루게릭 병으로 피폐한 삶을 영위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자신도 최근 장기요양보험에 가입했다. 프로젝트에 “전적으로 공감했다. 상생의 길이라고 생각했다”고 바셋은 말했다. 그녀는 1994년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고(‘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에서 티나 터너를 연기했다), 미드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American Horror Story)’에 출연 중이다(가슴 3개를 가진 자웅동체 데저레이 듀프리 역). 애스펀 메도스 리조트에서 아몬드 한 접시를 앞에 놓고 인터뷰를 했다. “건강을 지키려 애쓴다”고 그녀가 말했다. 56세지만 적어도 10년은 젊어 보인다. 노화 체험복의 음향 버전만 체험해 봤다고 한다. “눈에 이상이 생긴 줄 알고 정말 식겁했다. 라식 수술을 했기 때문이다.” 처음 노화 과정을 간접 체험할 수 있다는 말을 페런에게서 듣고는 ‘아, 농담하는구나. 속지 말아야지’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로 당혹스런 경험이었다”고 그녀가 말했다.
미국 인구의 70% 이상이 65세에 이르면 일정 형태의 장기요양이 필요해진다. 2050년에는 85세 이상 인구 수가 2배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여전히 청춘의 샘을 찾는 사람들도 있다. 실리콘밸리는 인간 불멸을 성취해 사실상 ‘죽음을 치유하는’ 연구를 후원한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의 말마따나 “까다로운 문제”일 뿐이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노화는 피할 수 없다”고 페런이 냉소적으로 말한다. “모두가 죽을 확률이 높다. 안전하게 일종의 양다리 베팅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일단 세상에 태어나면 그 다음은 시기의 문제일 뿐이다.” 아니라고? 그럼 편할 대로 생각하시오.
- GOGO LIDZ NEWSWEEK 기자 / 번역 차진우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페런은 노화의 영향을 모의 체험하는 ‘노화복’을 발명했다. 이른바 ‘젠워스 R70i 노화체험(Genworth R70i Aging Experience)’이다. 지난 6월 29일 미국 콜로라도주의 애스펀 아이디어 페스티벌에서 페런, 젠워스 보험사, 그리고 여배우 안젤라 바셋이 공개했다. 청년층 사이에서 노화와 고령자 돌봄에 관한 담론에 불을 지피는 계기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페런은 디즈니 이매지니어링(Disney Imagineering)의 연구개발 팀장 출신이다. 디즈니 영화사와 테마파크의 ‘마법을 연출하는’ 작업을 담당하는 디자인 팀이다. 그는 이상주의자 아티스트 부모 밑에서 자랐다. 부모 중 1명이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현기증’에서 악몽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페런은 16세 때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MIT에 들어갔다. 25세 때는 영화업계에 뛰어들어 특수효과 회사를 차렸다. 1980년 영화 ‘상태개조(Altered States)’의 환각을 유발하는 피날레를 구상했다. 월리엄 허트가 인간 근육조직의 정전기 도형(electrostatic diagram)으로 변신하는 장면이다(팝그룹 아바가 부른 ‘Take On Me’의 악명 높은 뮤직 비디오도 이 장면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1987년 ‘흡혈식물 대소동(Little Shop of Horrors)’으로 아카데미 시각효과상을 수상했다. 뉴욕타임스는 한때 그를 ‘기술계의 신동(technological whiz kid)’으로 불렀다. 지금은 흰 턱수염을 기른 마법사에 더 가까워 보인다.
노화체험복은 페런의 최신 발명품이다. 캡틴 아메리카(슈퍼 히어로 만화 캐릭터) 같은 복장을 하고 할아버지로 변신하는 셈이다. 모든 관절 부위에 금속 경첩과 볼트가 달려 있다. 뻣뻣하고 움직이기 어려운 효과를 주려는 목적이다. 헬멧은 시력 약화, 청력 상실, 인지 퇴화 현상을 연출한다. 맞춤 소프트웨어와 내장 카메라로 ‘노화’를 실시간 체험할 수 있다. 착용자의 팔 움직임을 제한해 관절염 증상을 느끼게 한다. 헬멧 착용자의 귀에 들리는 날카롭고 커다랗게 울리는 소음이 말하고 듣기 어렵게 만든다.
애스펀에서 그 옷을 입어 봤다. 트레이닝복 같은 내복에 몸을 끼워 넣었다(노인들은 정말 내복을 좋아하는구나!). 검은색 수영모를 꼼꼼하게 썼다. 내가 꼼짝 못하고 서 있는 동안 어플라이드 마인즈(페런의 회사)의 진행요원 2명이 커크 선장(SF 드라마 ‘스타 트렉’의 우주선 선장) 유의 시계를 내 손목에 채운다. 심장박동을 모니터하기 위해서다.
“‘로건의 탈출(Logan’s Run)’을 본 적 있소?” 내가 물었다. 진행요원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회전목마(Carrousel)’ 탈 준비가 된 느낌이었다(영화에선 인간이 30세까지만 살 수 있으며 그 다음에는 ‘회전목마’라는 재탄생 의식을 치러야 한다).
직원들이 모의체험 절차에 따라 청색 또는 적색 빛을 내는 구속 전기자(armatures, 자기극에 접촉하는 작고 부드러운 쇳조각)로 나를 묶었다. 곧바로 몸이 무거워졌다. “나이가 들면 뚱뚱해진다”고 페런이 덧붙였다. “프로젝트의 리서치 목적으로 이렇게 살찐 게 아니다.” 그가 내 헬멧의 눈 가리개를 조정해 준 뒤 나는 모의체험의 숲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시야협착(tunnel vision, 시야가 좁아지는 현상)의 밀실공포증과 녹내장의 흐릿함 속으로.
헤드폰을 조절하는 사운드보드 단추를 패런이 만지작거리더니 동요 ‘Mary Had a Little Lamb’을 암송하라고 했다. 잡음 때문에 정신 집중이 되지 않았다. 천천히 신중하게 전체 가사를 어렵게 읊어 내려갔다. 나중에 가서야 어느 부분에서든 혀 꼬부라진 소리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구경꾼들이 재미있어 하며 웃는 동안 나는 러닝머신에 올라가 워킹 하려 했다. 페런이 내 관절 기어를 관절염 모드로 전환했다. 갑자기 심장정지가 일어난 듯 모의체험이 중단됐다. 시연의 일부가 아니었다. 노화 체험복의 배터리가 나간 것이다.
잠시 동안 공포가 엄습했다. 페런이 새 배터리를 찾지 못해 이 장치 속에 영원히 갇히게 된다면? 이 말도 안 되게 볼품없는 의상으로 묻히게 된다면? 다행히 진행요원들이 나를 꺼내줬다.
마이클 아이스너도 그 옷을 입느냐고 페런에게 물었다. 그가 다니던 디즈니의 아이스너 전 회장도 이 페스티벌에 참석했다. 그는 큭큭 웃으며 말했다. “아이스너는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안 하겠다’더라. 그는 노인이 된 느낌을 왜 알고 싶어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단순히 페런 같은 노인용 의상은 아니다. 젊은 사람을 위한 옷이기도 하다.
“여섯 살인 내 딸은 흡연이 건강에 해롭다는 사실을 안다. 해롭다고 가르친 적은 전혀 없는 데도 말이다”고 로스앤젤레스의 자택에서 저녁식사를 하며 페런이 말했다. “진짜 과제는 어떻게 하면 노화 과정을 똑같은 감수성, 대화, 전반적인 이해를 이끌어 내느냐는 점이다. 답은 간단하지 않다. 사람마다 다르다.”
여느 자존심 강한 과학자와 마찬가지로 그의 상의 주머니에는 펜이 가득 꽂혀 있다. 여느 돈 많은 과학자처럼 집 안에 고고학 유물이 가득하다. 캘리포니아주 남부에 있는 그의 자택은 화석, 우주 유물, 암호해독기(Enigma machines), 그리고 갖가지 형태·크기·빛깔의 광석이 빽빽이 들어차 있다. “화성 인류학자라면 페런을 납치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만하다”고 그의 친구 마샬 브리크먼이 말했다. ‘애니 홀(Annie Hall)’을 포함해 여러 편의 영화에서 우디 앨런과 같이 작업했던 시나리오 작가다.
페런의 만찬 식탁 한가운데는 커다란 수정구슬이 놓여 있다. 그의 큰 자랑거리다. 이런 유의 전형적인 형석 결정은 약 1억5000만~2억 년 전인 쥐라기의 산물이다. 최대 1000만 년에 걸쳐 자라난다. 하지만 이 수정구슬은 몇 달 전 실험실에서 탄생했다.
페런에겐 미래 예측이 단순한 취미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는 2000년 디즈니를 나와 ‘어플라이드 마인즈’를 창업했다. 버뱅크 소재의 본사는 제임스 본드 영화 속 Q(신무기 개발 전문가)의 연구소와 윌리 웡카(영화 ‘초콜릿 천국’의 캐릭터)의 초콜릿 공장을 기술적으로 결합한 모양새다. 어떤 모습인지 기사에 쓸 수 없게 할 만큼 철저한 비밀주의다.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어플라이드 마인즈는 내게 비공개 동의서에 서명을 요구했다. “위험해 보이면 위험한 것”이라고 시설견학을 시작하면서 페런이 내게 경고했다. “손대지 마시오.”
어플라이드 마인즈의 가장 유명한 발명품은 아마도 메타웹(Metaweb)일 성싶다. 구글 검색에서 문장을 완성하는 온라인 시스템이다. 회사가 진행하는 정부 프로젝트 중 다수가 비밀이지만 페런은 몇 가지 예외를 보여준다. 가상현실 돔형 구조물, 우주진운(dust clouds) 속을 비행하는 조종사용 시각 장치, 완전 컬러로 작동하는 야간투시 시스템(디지털 시대 미국 의회 도서관용의 시초 모델), 현실세계의 군용 아이언맨 복장 등이다. 페런이 최근에 선보인 카이러밴(KiraVan)도 언론의 화제를 모았다. 여섯 살 딸을 태우고 세계일주를 하기 위해 개발한 바퀴 6개짜리 사륜 오토바이(all-terrain vehicle)다.
페런은 노화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직접 목격했다. 모친과 장모 모두 24시간 요양이 필요한 상태다. 고령의 집안 어른을 돌보면서 개인적으로 이 프로젝트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한다.
지난해 PR 업체 PMK·BNC가 어플라이드 마인즈에 보험사 젠워스 파이낸셜을 소개했다. 그 뒤 젠워스 파이낸셜은 의학보다 스토리텔링을 강조하는 프로젝트를 어플라이드 마인즈에 의뢰했다. 미국 사회가 고령자 돌보기에 관한 논의를 기피한다는 사실을 젠워스 파이낸셜이 절감했다고 페런은 전한다. “사람들이 노화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논하려 할 것”이라고 젠워스 파이낸셜 간부인 재니스 루베라가 말했다.
영화배우 안젤라 바셋도 개인적인 이유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최근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고 요즘은 시어머니를 돌본다. 고모가 루게릭 병으로 피폐한 삶을 영위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자신도 최근 장기요양보험에 가입했다. 프로젝트에 “전적으로 공감했다. 상생의 길이라고 생각했다”고 바셋은 말했다. 그녀는 1994년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고(‘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에서 티나 터너를 연기했다), 미드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American Horror Story)’에 출연 중이다(가슴 3개를 가진 자웅동체 데저레이 듀프리 역). 애스펀 메도스 리조트에서 아몬드 한 접시를 앞에 놓고 인터뷰를 했다. “건강을 지키려 애쓴다”고 그녀가 말했다. 56세지만 적어도 10년은 젊어 보인다. 노화 체험복의 음향 버전만 체험해 봤다고 한다. “눈에 이상이 생긴 줄 알고 정말 식겁했다. 라식 수술을 했기 때문이다.” 처음 노화 과정을 간접 체험할 수 있다는 말을 페런에게서 듣고는 ‘아, 농담하는구나. 속지 말아야지’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로 당혹스런 경험이었다”고 그녀가 말했다.
미국 인구의 70% 이상이 65세에 이르면 일정 형태의 장기요양이 필요해진다. 2050년에는 85세 이상 인구 수가 2배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여전히 청춘의 샘을 찾는 사람들도 있다. 실리콘밸리는 인간 불멸을 성취해 사실상 ‘죽음을 치유하는’ 연구를 후원한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의 말마따나 “까다로운 문제”일 뿐이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노화는 피할 수 없다”고 페런이 냉소적으로 말한다. “모두가 죽을 확률이 높다. 안전하게 일종의 양다리 베팅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일단 세상에 태어나면 그 다음은 시기의 문제일 뿐이다.” 아니라고? 그럼 편할 대로 생각하시오.
- GOGO LIDZ NEWSWEEK 기자 / 번역 차진우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성과, 그리고 능력’...현대차그룹, ‘대표이사·사장단’ 인사 단행
2트럼프, 법무차관에 '성추문 입막음 돈 지금' 사건 변호인 지명
3휠라홀딩스, 주주환원에 ‘진심’...자사주 추가 취득·3년 연속 특별배당
4삼성전자 노사 10개월 만에 잠정합의안 도출...임금 5.1% 인상 안
5트럼프, 보훈장관에 '콜린스' 내정…첫 탄핵 변호한 '충성파'
6'디타워 돈의문' 9000억원에 팔렸다
7민주당 ‘상법 개정’ 움직임…재계 “기업 성장 의지 꺾는 정책”
8파월 발언에 '비트코인' 상승세 멈췄다
9금성백조, ‘화성 비봉 금성백조 예미지 2차’ 모델하우스 15일 오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