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워싱턴주 와인

워싱턴주 와인

미국에서 워싱턴주 와인의 가장 큰 장점은 뛰어난 맛과 향, 그리고 합리적인 가격이다. 소위 가성비(가격 대비 맛과 향)가 높다. 평균 10달러(약 1만2000원)면 괜찮은 와인을 마실 수 있다. 20달러가 넘어가면 꽤 수준 높은 와인에 손을 댈 수 있다.
한국에서는 와인을 통상 특별한 날에 마시는 술로 여긴다. 식사 때 와인을 접하거나 일주일에 두세 병을 마시는 경우는 극소수 마니아층 뿐이다. 그럼에도 국내 와인 시장의 성장세는 꾸준히 이어진다. 2000년 이후 와인 매출은 매년 전년 대비 두 자릿수 증가세를 이어간다. 와인 수출국 입장에서 볼 때 이런 한국의 와인 시장은 매력적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2010년 2만 달러를 돌파하고 올해 3만 달러에 근접하면서 본격적인 와인 대중화가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감이다.

한국의 와인 대중화를 가로막는 애로점은 몇 가지로 압축된다. 신맛·쓴맛이 강해 한국인의 주식인 매운 음식과 잘 어울리지 않는 점부터 저가 와인은 ‘달고 맛이 없다’는 비난까지 가세한다. 무엇보다 가장 큰 걸림돌은 비싼 가격이다. 대형 할인점에서도 저렴해야 한 병당 1만원은 줘야 한다. 그럭저럭 괜찮은 향과 맛을 지닌 와인은 3~4만원을 훌쩍 넘어선다. 더구나 레스토랑에서 음식과 곁들여 마시려면 5만원 이상이기 십상이다. 조금 알려진 와인을 찾으면 10만원대로 점프한다. 더구나 슈퍼마켓이나 편의점에서 1000원, 음식점에선 5000원이면 마실 수 있는 소주라는 강력한 경쟁주가 존재한다.

이처럼 가격 접근성이 떨어지는 기존 와인의 단점을 극복할만한 새로운 대안이 미국 서북부에 위치한 워싱턴주 와인이다. 워싱턴주 와인의 가장 큰 장점은 균일한 품질을 기본으로 뛰어난 맛과 향, 그리고 합리적인 가격이다. 소위 가성비(가격대비 맛과 향)가 높다. 미국에서 평균 10달러(약 1만2000원)면 괜찮은 와인을 마실 수 있다. 20달러가 넘어가면 꽤 수준 높은 와인에 손을 댈 수 있다. 50달러(약 6만원) 이상이면 최고급이다. 이런 가격 경쟁력 때문에 워싱턴주 와인은 미국에서 ‘매일 마시는 와인’에 우뚝 섰다. 한국에서도 5만원 전후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워싱턴주 와인이 속속 선보인다.
 미국의 힘 ‘기술+자본’으로 재조명
워싱턴주 레드 마운틴 AVA에 위치한 헤지스 와이너리에서 레드와인 품종인 까베르네 소비뇽이 햇살을 받으며 익어가고 있다.
워싱턴주 와인이 역사는 짧지만 급부상한 이유는 세 가지다. 철저히 계산된 과학적 농법과 이를 뒷받침하는 수준 높은 학문, 대규모 첨단시설 투자와 자본력이다. 속 깊이 들여다보면 미국의 강점이 와인에 그대로 녹아 있다. 세계 최강인 첨단 과학기술과 자본, 거대한 천혜의 땅덩어리와 기후 등 ‘아메리칸 파워’를 느낄 수 있다. 사막에 물을 대는 첨단 관개(灌漑) 기술을 바탕으로 천혜의 와인 재배지(떼루아)로 탈바꿈한 워싱턴주 와인의 경쟁력을 분석해봤다.

워싱턴주 8곳에 산재한 850여 개 와이너리의 크기를 합치면 대략 161㎢(4만acre)에 달한다. 서울 면적(약 605㎦)으로 비교해보면 몇 개 구를 합친 크기다. 이에 따라 워싱턴주는 2006년 미국 최대의 와인 산지인 캘리포니아주 다음으로 올라섰다. 이런 규모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워싱턴주 와인에 대한 인식은 지금까지 캘리포니아·오리곤 주에 비해 크게 못 미쳤다.

워싱턴주 와인의 매력은 균일한 품질과 다양성에 있다. 전 세계 주요 와인 생산국에서 재배하는 10여 가지 주요 포도 품종을 모두 겸비해 독특한 스타일의 와인을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이다.

저명한 음식·와인 전문 매거진 의 레이 아이슬 편집장은 “워싱턴주 콜럼비아 밸리에서 생산하는 까베르네 소비뇽은 캘리포니아 나파밸리 최고의 까베르네 소비뇽과 필적할만한 품질을 지녔지만 가격은 반값”이라며 “워싱턴주 와인이 재조명 받을 이유가 충분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세계 유명 와이너리의 경험과 기술을 접목하고 독창적인 블렌딩을 통해 새로운 맛에 도전하는 점도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쉽지 않은 워싱턴 만의 매력이다.

시애틀 부근 우드빌에 위치한 워싱턴주를 대표하는 와이너리인 샤또 생 미셸(Chateau Ste. Michelle)은 1998년 이탈리아의 레드 와인의 명가 안티노리와 합작해 콜 솔라레(Col Solare)를 선보인 바 있다. 병당 75달러 가격으로 미국 특급 와인으로 평가받는다. 아울러 1999년에는 독일 최고 수준의 리슬링을 브렌딩한 닥터 루젠(Dr. Loosen)과 합작했다. 20달러 가격에 에로이카 리슬링을 내놓아 단숨에 고급 화이트 와인 반열에 들어섰다. 현재 샤또 생 미셸은 세계 최대의 리슬링 와인 생산자이기도 하다.

생 미셸의 데이비드 로젠탈 화이트 와인 매니저는 “생 미셀은 거대 자본을 바탕으로 첨단 설비를 갖추고 균일한 품질의 와인을 대량으로 생산하면서 데일리 와인의 대표주자가 됐다”며 “최근에는 50달러 이상의 고급 와인 메이킹으로 발걸음을 넓히고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주는 1860년대부터 독일·이탈리아 이민자들이 와인을 생산했지만 자급자족을 위한 소규모 농가들이 많았다. 상업용으로 포도를 재배한 것은 1960년대부터다. 서서히 와인 단지의 규모를 키워가다 1970년대 획기적인 전기를 맞는다. 첨단 관개 시설을 확보하고 과학기술을 접목하면서 빠른 속도로 포도를 재배하는 빈야드 확장이 이루어졌다. 1974년 워싱턴와인협회(WWI)가 발족하면서 워싱턴주 와이너리에 대한 세부 규정이 생기고 품질 평가단계가 도입됐다.

1980년대 미국에는 부드러운 레드 와인 바람이 불면서 메를로 품종이 인기를 끌었다. 메를로를 대량 재배하던 워싱턴주 와이너리는 때 맞춰 워싱턴와인위원회(WWC)를 발족했다. 그러면서 대량 판매를 위한 와인 옥션을 시작했고 미국 전역에 워싱턴주 와인의 숨겨진 가치를 알린 계기가 됐다. 1990년대에는 미국 북서부 지역인 오리곤·워싱턴·아이다호주의 와인 수출을 수출을 지원하는 북서부와인연합(Northwest Wine Coalition)이 설립되면서 수출도 본격화했다.

헤지스 와이너리의 설립자인 톰 헤지스는 “서로 상대방을 공격하고 헐뜯으며 경쟁한 것이 아니라 워싱턴주 와인이라는 전체 브랜드를 키우기 위해 협회와 수출 지원단체를 설립해 품질관리 기법 등을 공유하면서 협력한 게 도약의 배경”이라고 설명한다. WWC 애벌리 던 마케팅 담당은 “워싱턴주 와인은 와인 재배 학문과 첨단 과학기술의 결합으로 균일한 품질에 수준 높은 와인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고 있다”며 “미국과 해외에서 호평이 이어져 앞으로 한 단계 가격 상승할 잠재력이 충분하다”고 강조한다.

2009년에는 세계적인 권위의 에서 워싱턴주 까베르네 소비뇽을 ‘Number one wine of the year’로 선정한 바 있다. 왈라왈라 밸리는 워싱턴주의 고급 와인 생산지로 유명하다. 이 지역에 위치한 레꼴 와이너리 킴 볼랜더 수출담당 매니저는 “1981년 19개의 와이너리에 불과했지만 30여 년만에 850개가 넘는 와이너리가 들어섰다”며 “레꼴의 주요 수출국 가운데 하나가 한국”이라고 말했다.
 천혜의 자연에 첨단기술 접목
워싱턴주를 대표하는 와이너리인 샤또 생 미셸의 첨단 와인양조 시설. 거대 자본을 결집한 첨단 설비 덕분에 균일한 품질의 맛과 향이 좋은 와인을 합리적인 가격에 내놓는다.
워싱턴 주는 각종 농작물이 자라기 좋은 천혜의 기후다. 체리와 사과로 대표되는 과일은 과즙이 풍부하고 당도가 뛰어나다. 농작물로는 감자·양파·아스파라거스·밀 등이 유명하다. 워싱턴주의 가장 큰 도시인 시애틀은 두 산맥에 둘러싸여 있다. 동쪽에 위치한 것이 올림픽, 서쪽이 캐스케이드 산맥이다. 이 두 산맥은 동쪽 태평양에서 불어온 습한 기후를 막아준다. 이른바 ‘레인 섀도우 이펙트(Rain Shadow Effect)’다. 태평양에서 불어온 습기를 잔뜩 먹은 구름은 올림픽산맥의 봉우리에 걸려 대량의 강우(연간 340㎝)를 기록한다. 이어 시애틀(연간 96㎝)을 거쳐 캐스케이드 산맥에 마지막 습기(연간 213㎝)를 뿌린다.

주요 와인 재배지인 동부 워싱턴주는 연간 극소량(약 25㎝)의 비가 내려 와인 재배에 최적의 토양으로 탈바꿈한다. 한국이 와인 재배에 맞지 않는 것이 바로 기후다. 포도가 성장할 한여름과 수확할 늦여름에 습하면서 비가 온다.

시애틀은 구릉지대와 울창한 삼림, 바다와 접한 호수가 연속된다. 시애틀에서 북서 방향으로 자동차로 세 시간을 달려 캐스케이드 산맥을 넘어서면 어느 순간 포도밭과 각종 과수원들이 출현한다. 기후도 확 바뀐다. 건조하고 황량한 사막과 비슷한 풍경이 펼쳐진다. 포도가 숙성하려면 건조한 기후뿐 아니라 당도를 끌어올리기 위한 햇빛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동부 워싱턴주는 연중 약 300일 동안 구름이 끼지 않는 맑은 날씨다. 평균 17시간에 이르는 일조량까지 갖춰 적절한 당도를 유지하는데 최적이다. 이처럼 당도가 풍부하다 보니 알코올 함량이 높다. 레드는 14∼14.5도, 화이트 샤도네이는 13도에 달한다. 또 사막 지역이라 일교차까지 커 포도에 적당한 산도까지 유지해준다.

강우량이 연간 30㎝도 채 안 되는 사막인데 포도 재배에 꼭 필요한 물은 어떻게 조달할까. 해결책은 미국의 첨단 관개(Irrigation) 농법이다. 동부 워싱턴주를 관통하는 콜롬비아강이 물을 공급하는 젖줄이다. 캐스케이드 산맥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합쳐진 콜롬비아강은 미국에서 15번째(1950㎞)로 길다. WWC 도우 마샬 해외마케팅 담당 매니저는 “워싱턴주의 건조한 기후는 포도가 성장할 여름과 수확기인 초가을에 해로운 비를 방지해줄 뿐 아니라 각종 병충해로부터 포도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며 “콜롬비아강에서 끌어온 물과 첨단 관개 기술로 사막지대가 최적의 와인 생산지로 변모했다”고 소개한다.

복잡한 법규로 관개를 엄격히 통제하는 프랑스ㆍ이탈리아 등과 달리 워싱턴주 와이너리들은 관개를 이용해 포도에 적당한 수분을 완벽하게 공급해 원하는 수준의 포도 숙성도를 이끌어낼 수 있다. 이 지역에 기반을 둔 세계적인 물 관련 기업인 넬슨의 첨단 장비가 그 핵심이다.

도우 매니저는 “넬슨의 첨단장비를 이용, 포도나무에 물이 한두 방울씩 떨어지는 드립 또는 스프링클러를 설치해 물을 주는 시간이나 양을 과학적으로 계산하는 방법으로 포도나무의 스트레스를 조절하면서 포도의 숙성도를 이끌어낸다”고 설명한다.

지형은 1만5000여 년 전 빙하기 시대의 영향을 받은 협곡 등이 대부분이다. 모래와 바위로 이뤄진 충적토와 빙하기 때 침식한 해저토양(Seabed Soil) 혹은 화산토(Volcanic Soil) 등 다양하다. 시애틀 근교 우드빌에 위치한 베츠 와이너리의 스티브 그리슬 판매 총괄은 “여러 암석들이 모여 축적된 각종 미네랄 성분이 풍부한 질감과 깊은 맛을 낸다”고 강조했다.



※ 워싱턴주 AVA(American Viticultural Area) : 프랑스가 와인 산지를 구분하고 와인 제조를 통제하는 AOC(Appellation d‘Origine Controlee)가 있다면 미국은 AVA로 와인 산지를 구분한다. 각각의 AVA는 그 산지만의 독특한 기후ㆍ토양을 지니고 있다. 현재 총 11곳으로 구분되는 워싱턴 주의 AVA 가운데 동부 지역 8개 AVA는 사막과 같은 건조한 기후특성을 지녀 메를로, 까베르네 소비뇽, 시라 등의 레드 와인 품종이 강세다. 화이트 와인은 리슬링과 샤도네이가 대표적이다.
 [박스기사] 한국과 인연 깊은 앤드류 윌 와이너리
한국에 고급 워싱턴 와인으로 알려진 와이너리로는 ‘앤드류 윌’이 대표적이다. 앤드류 윌은 1989년에 전직 소믈리에 출신인 크리스 카마르다에 의해 설립된 연간 6000병 정도를 생산하는 소규모 와이너리다. 권위 있는 와인평론가 로버트 파커는 ‘워싱턴주의 우수한(outstanding) 와이너리’로 선정하기도 했다. 미국 최고의 메를로 와인 생산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와이너리 이름은 아들(Will)과 조카(Andrew)의 이름을 따서 지었

다. 카마르다는 아들 윌을 한국에서 입양해 현재 와이너리 후계자로 키우고 있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그의 와이너리에는 한국의 천하대장군 같은 토속 문화재들이 가득하다 카마르다는 “워싱턴 동부의 야키마 밸리의 레드 마운틴 AVA에서 메를로와 까베르네 소비뇽으로 브렌딩을 한다”며 “요즘에는 카베르네 프랑을 90% 이상 사용하는 레드 와인도 만들고 있다”고 말한다.

앤드류 윌을 대표하는 ‘소렐라’는 한국에서 인기가 높다. 이태리어로 누이(또는 여동생)를 의미한다. 이 와인은 1994년 작고한 누이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다. 입 안 가득 퍼지는 블랙 체리, 블랙 베리와 삼나무향, 달콤하게 느끼는 스파이시한 향이 지속적이며, 깔끔한 뒷맛의 여운이 오래가는 와인이다. 가격은 80∼100달러로 고가 와인에 속한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까딱하면 돈 못 받아...‘돌연 폐업’ 상조업계 괜찮나

2비트코인 주춤, 기우였나…9만1천 달러선 회복

3성폭력 재판 중인데…협박에 미성년자 간음까지

4"이 돼지 해고해라" 트럼프에 욕설 날린 여배우 역풍

5 ‘인간 샤넬’ 지드래곤, 억소리 나는 독보적 패션

6헤드헌터가 말하는 'AI 시대'에 살아남는 인재 조건 3가지

7“사망보험금, 자녀에게 분할 지급할게요”…보험청구권 신탁의 필요성

8강남 그린벨트 해제, 그리고 한은 총재의 파격 제안

9백종원의 더본코리아 상장이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 전하는 메시지

실시간 뉴스

1까딱하면 돈 못 받아...‘돌연 폐업’ 상조업계 괜찮나

2비트코인 주춤, 기우였나…9만1천 달러선 회복

3성폭력 재판 중인데…협박에 미성년자 간음까지

4"이 돼지 해고해라" 트럼프에 욕설 날린 여배우 역풍

5 ‘인간 샤넬’ 지드래곤, 억소리 나는 독보적 패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