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에 도는 신나치주의 열병
동유럽에 도는 신나치주의 열병
마리안 코틀레바는 슬로바키아 극우 정당 ‘우리의 슬로바키아’ 당을 이끈다. 그는 신나치주의자답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꼭두각시였던 국가 민병대의 군복을 즐겨 입는다. 또 서방 민주주의와 유럽연합(EU),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반대하고, 동유럽의 집시족을 혐오하며, 유대인 수만 명을 죽음의 나치 수용소로 보낸 슬로바키아의 가톨릭 신부이자 전시 지도자였던 요세프 티소를 존경한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유럽 정치엔 극단주의자들이 잇따라 등장했다. 그동안 그들은 대부분 주변부에서 소음을 일으켰을 뿐 실질적인 영향력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코틀레바 대표는 이제 더 이상 비주류가 아니다. 지난 3월 5일 총선에서 그의 당은 20만 명 이상(투표권을 처음 행사한 유권자의 23% 포함)의 지지로 득표율 8%를 올려 의회 150석 중 14석을 차지했다.
코틀레바 대표가 이끄는 당이 처음으로 의회에 진출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서유럽은 충격에 휩싸였다.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분리된 뒤 1993년 독립한 슬로바키아는 그동안 EU의 성공 사례 중 하나로 일컬어졌다. 2009년 유로화를 도입하면서 견실한 경제성장을 이뤘고(지난해 성장률 3.7%) 소비가 살아나면서 외국인 투자가 증가했다.
슬로바키아에서 극우 신나치 세력의 등장을 로베르트피코 총리 탓으로 돌리는 사람이 많다. 좌익 포퓰리스트인 피코는 이민자와 난민의 입국을 가로막았다. 그는 슬로바키아를 무슬림의 유입으로부터 보호하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사실 슬로바키아는 발칸 반도를 통과해 독일로 가려는 난민이 선호하는 경로에 있지 않으며 그곳에 정착하려는 난민도 거의 없다. 심지어 피코 총리는 시리아 내전을 피해 탈출한 난민 중 기독교인만 선별해 200명만 받겠다고 선언했다.
코틀레바 대표는 미국 공화당의 유력한 대선 주자 도널드 트럼프의 선거운동을 본떠 반이민 정서를 부추기며 슬로바키아 정계의 주류를 향한 서민의 분노를 최대한 이용한다. 슬로바키아 수도 브라티슬라바에 있는 싱크탱크 중앙유럽정책연구소의 밀란 니치 소장은 “유일하게 그의 당만이 기존 정치판에 반기를 든다”고 설명했다. “정계의 신뢰도가 최악이다. 유권자들은 정치인 전부가 썩었다고 생각한다.” 분석가들은 동·중부 유럽에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본다. 1990년대(지금 돌이켜보면 평온한 시절로 느껴진다)엔 옛 소련권 주민들이 희망에 부풀었다. 그들은 EU에 가입하면 닭고기를 배불리 먹고 동독산 서민차 트라반트 대신 폴크스바겐이나 BMW 또는 메르세데스 벤츠까지도 몰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옛 소련권 국가들은 EU 가입으로 안정을 찾았지만 동시에 그 자리에서 새로운 형태의 정실 자본주의가 싹텄다. 곧바로 정치인들은 EU 본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눈 먼 자금을 친구나 측근에게 빼돌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면서 부패가 만연한다. 국제투명성기구가 지난해 발표한 부패인식지수(CPI)에 따르면 헝가리와 슬로바키아의 순위가 과거 부패로 악명 높던 나미비아·르완다 또는 사우디보다 낮다. 동시에 국가 지도자들은 새로운 종류의 ‘관리 민주주의(managed democracy)’를 추구한다. 투표는 자유롭고 공정하지만 시민권을 보장해야 하는 사법부와 언론 등의 독립 기관들은 정치적 입김에 좌우되는 특이한 상황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헝가리는 지난해 일요일 상점 영업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헝가리사회당 의원 요제프 니아코는 지난 2월 말 일요일 상점 영업 금지에 관한 찬반 투표의 설문서를 제출하려고 부다페스트의 선거관리위원회에 갔다. 그러나 난폭한 스킨헤드족이 그를 가로막았다. 선거위원회는 그 대신 집권여당 청년민주동맹(피데스) 소속인 전 시장의 아내가 제출한 설문서를 접수했다. 니아코 의원은 AP 통신에 “그들이 나를 협박했다”며 “내가 설문서를 접수하려 했지만 그들이 가로막으며 나를 떠밀어냈다”고 말했다.
접수된 설문서는 표현이 모호해 일요일 영업을 원하는 사람들의 뜻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었다. 일요일 휴업은 인기가 없어 제대로 찬반 투표를 실시하면 정부가 질 수밖에 없다.
헝가리 언론은 니아코 의원을 가로막은 스킨헤드족이 프로축구단 페렌바로스와 관련 있다고 보도했다. 페렌바로스의 구단주 가보르 쿠바토프는 집권여당 피데스당의 부대표다. 그러나 페렌바로스 축구단이나 피데스당은 그들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의 온라인 뉴스매체 ‘만디네르’의 겔레르트 라즈차니 기자는 니아코 의원의 봉변을 두고 “헝가리 민주주의를 조롱한 처사”라고 불렀다. 좌익 성향 블로그 헝가리 스펙트럼의 데바 발로그는 “치욕의 날”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헝가리인은 결코 놀랄 일이 아니라는 반응을 보였다. 부다페스트에 있는 싱크탱크 ‘정책해법’의 공동 소장 타마스 보로스는 “그런 일이 조만간 일어나리라 예상했다”고 말했다. “그런 전술은 발칸 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헝가리 정치 시스템이 서방이 아니라 발칸 국가들과 닮았다는 뜻이다.”
헝가리 정부 관리들은 그런 지적을 일축한다. 그들은 헝가리의 민주주의가 활기 넘치며 언론과 개인의 자유가 보장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2014년 7월 우익 성향의 총리 빅토르 오르반이 한 연설은 ‘개방된’ 정부가 얼마나 오래 갈지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헝가리가 민주 국가이지만 개인적 자유는 제한돼야 한다고 선언하며 성공한 국가의 사례로 권위 체제인 러시아·중국·터키를 들었다. 피데스당 소속의 유럽의회 의원 기오리기 쇼플린은 오르반 총리의 연설이 오해를 불렀다고 말했다. 민주주의를 거부한 게 아니라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에 대한 거부라는 얘기였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혼합은 이제 김이 다 빠졌다. 다른 민주주의도 많다. 사회 민주주의, 기독교 민주주의도 민주주의 패밀리에 속한다.”
아무튼 오르반 총리의 연설은 희한하게도 이웃나라 폴란드 정부의 환영을 받았다. 지난해 10월 폴란드 보수당 ‘법과 정의(PiS)’는 총선에서 승리한 뒤 헌법재판소를 무력화하는 등 사법부의 독립을 침해하고 언론을 장악하기 위한 일련의 입법 조치를 단행했다. 야로슬라프 카친스키 PiS 대표는 2011년 총선에서 패한 뒤 “폴란드에 헝가리 같은 정권이 들어설 날이 올 것”이라고 선언한 인물이었다. 실제로 그 예언이 실현되면서 카친스키 대표는 폴란드의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가 됐다.
카친스키 대표는 헝가리의 오르반 총리처럼 자신의 임무가 정치 시스템을 개조해 공산주의 몰락으로 시작된 일을 마무리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아직도 국가 기관을 지배하는 공산주의 시절의 네트워크를 청산하겠다는 뜻이다. 카친스키 대표를 지지하는 정치인들은 헌법재판소와 관료 조직, 국영 방송을 차례로 굴복시켰다. 그에 따라 정보기관, 바르샤바 증권거래소, 국영 기업들의 책임자가 교체됐다.
폴란드의 카친스키 대표와 헝가리의 오르반 총리는 한목소리로 무슬림 난민 수용에 반대한다. 지난해 10월 카친스키 대표는 무슬림 난민이 “기생충과 병균을 옮긴다”는 막말로 파문을 일으켰다. 오르반 총리는 지난 1월 폴란드를 방문해 카친스키 대표와 함께 폴란드-슬로바키아 국경의 게스트하우스에서 6시간을 보내며 난민 유입 반대입장을 다졌다. 바르샤바 소재 싱크탱크 공공문제연구소의 필립 파즈데르스키는 “헝가리에서 일어난 일의 영향으로 폴란드도 방향을 바꿨다”고 말했다.
EU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가 사법기관과 언론의 독립성을 저해하는 일부 회원국을 막기 위해 애쓴다. 그러나 전례 없는 영역이라 별 효과가 없다. 유럽 정부 간 협력기구인 유럽평의회의 자문기관 ‘법을 통한 민주주의를 위한 유럽위원회’는 보고서에서 폴란드 PiS의 헌법재판소 무력화는 ‘법치와 민주주의 시스템의 기능’에 위협이 된다고 지적했다. 법치에 대한 위협이 만족할만한 수준으로 개선되지 않으면 EU 집행위는 조약 7조에 의거해 EU 기관이나 제도에서 해당 국가의 투표권을 박탈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런 조치는 취해진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기대할 수 없는 형편이다. 한편 폴란드 정부는 급진적 개혁에 필요한 국민의 권한을 위임 받았다고 주장한다(PiS는 폴란드에서 1991년 공산주의가 몰락하고 정치 시스템이 달라진 이래 처음으로 절대 다수 의석을 차지한 정당이다). 독일 외교협회의 율리안 라폴트 연구원은 독일 정부가 폴란드의 ‘우클릭’을 우려한다고 말했다. “폴란드는 독일의 중요한 파트너였다. 그러나 정부가 바뀌고 반독일 정서가 팽배하면서 양국 관계가 껄끄러워졌다. 독일 정책 전문가들은 폴란드 정부가 헌법재판소를 무력화하고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을 비판하는 동시에 그들이 자유선거로 선출된 정부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보수 정치인들은 중·동부 유럽이 퇴보한다는 지적에 반박한다. 헝가리의 쇼플린 의원은 “요세프 니아코 의원의 사건은 결코 용납할 수 없지만 우발적인 일이었다”고 말했다. “진짜 문제는 서유럽 국가들이 자국의 정치 문제에서 국민의 주의를 돌리기 위해 중·동부 유럽의 특정 나라가 극단주의로 치닫는다고 야단법석을 떨며 비난한다는 사실이다.”
그는 또 중·동부 유럽의 단점을 계속 들추는 것은 문화적 제국주의라고 덧붙였다. “서유럽 국가들은 국민에게 자국이 완벽하진 않지만 동쪽에 있는 나라들을 한번 보라며 이렇게 말한다. ‘헝가리 같은 나라들은 정말 형편없다. 그런 나라에 살지 않는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헝가리는 실제가 아니라 그들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나라다.”
얼마 전 폴란드의 안드레이 두다 대통령은 폴란드계 미국인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역사가 얀 그로스에게 수여된 훈장을 박탈하라고 요구하는 편지를 2000통 이상 받았다. 그로스가 무엇을 잘못했단 말인가? 그는 홀로코스트 당시 폴란드가 나치와 결탁했으며 전쟁 동안 폴란드인이 독일인보다 유대인을 더 많이 학살했다고 주장했다. 헝가리의 보로스 소장은 “이 지역에 신나치주의 열병이 돌고 있다”며 우려해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정치 엘리트를 믿지 않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그들은 극단주의로 눈을 돌린다.”
- 애덤 르보어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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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후 유럽 정치엔 극단주의자들이 잇따라 등장했다. 그동안 그들은 대부분 주변부에서 소음을 일으켰을 뿐 실질적인 영향력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코틀레바 대표는 이제 더 이상 비주류가 아니다. 지난 3월 5일 총선에서 그의 당은 20만 명 이상(투표권을 처음 행사한 유권자의 23% 포함)의 지지로 득표율 8%를 올려 의회 150석 중 14석을 차지했다.
코틀레바 대표가 이끄는 당이 처음으로 의회에 진출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서유럽은 충격에 휩싸였다.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분리된 뒤 1993년 독립한 슬로바키아는 그동안 EU의 성공 사례 중 하나로 일컬어졌다. 2009년 유로화를 도입하면서 견실한 경제성장을 이뤘고(지난해 성장률 3.7%) 소비가 살아나면서 외국인 투자가 증가했다.
슬로바키아에서 극우 신나치 세력의 등장을 로베르트피코 총리 탓으로 돌리는 사람이 많다. 좌익 포퓰리스트인 피코는 이민자와 난민의 입국을 가로막았다. 그는 슬로바키아를 무슬림의 유입으로부터 보호하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사실 슬로바키아는 발칸 반도를 통과해 독일로 가려는 난민이 선호하는 경로에 있지 않으며 그곳에 정착하려는 난민도 거의 없다. 심지어 피코 총리는 시리아 내전을 피해 탈출한 난민 중 기독교인만 선별해 200명만 받겠다고 선언했다.
코틀레바 대표는 미국 공화당의 유력한 대선 주자 도널드 트럼프의 선거운동을 본떠 반이민 정서를 부추기며 슬로바키아 정계의 주류를 향한 서민의 분노를 최대한 이용한다. 슬로바키아 수도 브라티슬라바에 있는 싱크탱크 중앙유럽정책연구소의 밀란 니치 소장은 “유일하게 그의 당만이 기존 정치판에 반기를 든다”고 설명했다. “정계의 신뢰도가 최악이다. 유권자들은 정치인 전부가 썩었다고 생각한다.” 분석가들은 동·중부 유럽에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본다. 1990년대(지금 돌이켜보면 평온한 시절로 느껴진다)엔 옛 소련권 주민들이 희망에 부풀었다. 그들은 EU에 가입하면 닭고기를 배불리 먹고 동독산 서민차 트라반트 대신 폴크스바겐이나 BMW 또는 메르세데스 벤츠까지도 몰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옛 소련권 국가들은 EU 가입으로 안정을 찾았지만 동시에 그 자리에서 새로운 형태의 정실 자본주의가 싹텄다. 곧바로 정치인들은 EU 본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눈 먼 자금을 친구나 측근에게 빼돌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면서 부패가 만연한다. 국제투명성기구가 지난해 발표한 부패인식지수(CPI)에 따르면 헝가리와 슬로바키아의 순위가 과거 부패로 악명 높던 나미비아·르완다 또는 사우디보다 낮다. 동시에 국가 지도자들은 새로운 종류의 ‘관리 민주주의(managed democracy)’를 추구한다. 투표는 자유롭고 공정하지만 시민권을 보장해야 하는 사법부와 언론 등의 독립 기관들은 정치적 입김에 좌우되는 특이한 상황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헝가리는 지난해 일요일 상점 영업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헝가리사회당 의원 요제프 니아코는 지난 2월 말 일요일 상점 영업 금지에 관한 찬반 투표의 설문서를 제출하려고 부다페스트의 선거관리위원회에 갔다. 그러나 난폭한 스킨헤드족이 그를 가로막았다. 선거위원회는 그 대신 집권여당 청년민주동맹(피데스) 소속인 전 시장의 아내가 제출한 설문서를 접수했다. 니아코 의원은 AP 통신에 “그들이 나를 협박했다”며 “내가 설문서를 접수하려 했지만 그들이 가로막으며 나를 떠밀어냈다”고 말했다.
접수된 설문서는 표현이 모호해 일요일 영업을 원하는 사람들의 뜻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었다. 일요일 휴업은 인기가 없어 제대로 찬반 투표를 실시하면 정부가 질 수밖에 없다.
헝가리 언론은 니아코 의원을 가로막은 스킨헤드족이 프로축구단 페렌바로스와 관련 있다고 보도했다. 페렌바로스의 구단주 가보르 쿠바토프는 집권여당 피데스당의 부대표다. 그러나 페렌바로스 축구단이나 피데스당은 그들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의 온라인 뉴스매체 ‘만디네르’의 겔레르트 라즈차니 기자는 니아코 의원의 봉변을 두고 “헝가리 민주주의를 조롱한 처사”라고 불렀다. 좌익 성향 블로그 헝가리 스펙트럼의 데바 발로그는 “치욕의 날”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헝가리인은 결코 놀랄 일이 아니라는 반응을 보였다. 부다페스트에 있는 싱크탱크 ‘정책해법’의 공동 소장 타마스 보로스는 “그런 일이 조만간 일어나리라 예상했다”고 말했다. “그런 전술은 발칸 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헝가리 정치 시스템이 서방이 아니라 발칸 국가들과 닮았다는 뜻이다.”
헝가리 정부 관리들은 그런 지적을 일축한다. 그들은 헝가리의 민주주의가 활기 넘치며 언론과 개인의 자유가 보장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2014년 7월 우익 성향의 총리 빅토르 오르반이 한 연설은 ‘개방된’ 정부가 얼마나 오래 갈지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헝가리가 민주 국가이지만 개인적 자유는 제한돼야 한다고 선언하며 성공한 국가의 사례로 권위 체제인 러시아·중국·터키를 들었다. 피데스당 소속의 유럽의회 의원 기오리기 쇼플린은 오르반 총리의 연설이 오해를 불렀다고 말했다. 민주주의를 거부한 게 아니라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에 대한 거부라는 얘기였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혼합은 이제 김이 다 빠졌다. 다른 민주주의도 많다. 사회 민주주의, 기독교 민주주의도 민주주의 패밀리에 속한다.”
아무튼 오르반 총리의 연설은 희한하게도 이웃나라 폴란드 정부의 환영을 받았다. 지난해 10월 폴란드 보수당 ‘법과 정의(PiS)’는 총선에서 승리한 뒤 헌법재판소를 무력화하는 등 사법부의 독립을 침해하고 언론을 장악하기 위한 일련의 입법 조치를 단행했다. 야로슬라프 카친스키 PiS 대표는 2011년 총선에서 패한 뒤 “폴란드에 헝가리 같은 정권이 들어설 날이 올 것”이라고 선언한 인물이었다. 실제로 그 예언이 실현되면서 카친스키 대표는 폴란드의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가 됐다.
카친스키 대표는 헝가리의 오르반 총리처럼 자신의 임무가 정치 시스템을 개조해 공산주의 몰락으로 시작된 일을 마무리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아직도 국가 기관을 지배하는 공산주의 시절의 네트워크를 청산하겠다는 뜻이다. 카친스키 대표를 지지하는 정치인들은 헌법재판소와 관료 조직, 국영 방송을 차례로 굴복시켰다. 그에 따라 정보기관, 바르샤바 증권거래소, 국영 기업들의 책임자가 교체됐다.
폴란드의 카친스키 대표와 헝가리의 오르반 총리는 한목소리로 무슬림 난민 수용에 반대한다. 지난해 10월 카친스키 대표는 무슬림 난민이 “기생충과 병균을 옮긴다”는 막말로 파문을 일으켰다. 오르반 총리는 지난 1월 폴란드를 방문해 카친스키 대표와 함께 폴란드-슬로바키아 국경의 게스트하우스에서 6시간을 보내며 난민 유입 반대입장을 다졌다. 바르샤바 소재 싱크탱크 공공문제연구소의 필립 파즈데르스키는 “헝가리에서 일어난 일의 영향으로 폴란드도 방향을 바꿨다”고 말했다.
EU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가 사법기관과 언론의 독립성을 저해하는 일부 회원국을 막기 위해 애쓴다. 그러나 전례 없는 영역이라 별 효과가 없다. 유럽 정부 간 협력기구인 유럽평의회의 자문기관 ‘법을 통한 민주주의를 위한 유럽위원회’는 보고서에서 폴란드 PiS의 헌법재판소 무력화는 ‘법치와 민주주의 시스템의 기능’에 위협이 된다고 지적했다. 법치에 대한 위협이 만족할만한 수준으로 개선되지 않으면 EU 집행위는 조약 7조에 의거해 EU 기관이나 제도에서 해당 국가의 투표권을 박탈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런 조치는 취해진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기대할 수 없는 형편이다. 한편 폴란드 정부는 급진적 개혁에 필요한 국민의 권한을 위임 받았다고 주장한다(PiS는 폴란드에서 1991년 공산주의가 몰락하고 정치 시스템이 달라진 이래 처음으로 절대 다수 의석을 차지한 정당이다). 독일 외교협회의 율리안 라폴트 연구원은 독일 정부가 폴란드의 ‘우클릭’을 우려한다고 말했다. “폴란드는 독일의 중요한 파트너였다. 그러나 정부가 바뀌고 반독일 정서가 팽배하면서 양국 관계가 껄끄러워졌다. 독일 정책 전문가들은 폴란드 정부가 헌법재판소를 무력화하고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을 비판하는 동시에 그들이 자유선거로 선출된 정부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보수 정치인들은 중·동부 유럽이 퇴보한다는 지적에 반박한다. 헝가리의 쇼플린 의원은 “요세프 니아코 의원의 사건은 결코 용납할 수 없지만 우발적인 일이었다”고 말했다. “진짜 문제는 서유럽 국가들이 자국의 정치 문제에서 국민의 주의를 돌리기 위해 중·동부 유럽의 특정 나라가 극단주의로 치닫는다고 야단법석을 떨며 비난한다는 사실이다.”
그는 또 중·동부 유럽의 단점을 계속 들추는 것은 문화적 제국주의라고 덧붙였다. “서유럽 국가들은 국민에게 자국이 완벽하진 않지만 동쪽에 있는 나라들을 한번 보라며 이렇게 말한다. ‘헝가리 같은 나라들은 정말 형편없다. 그런 나라에 살지 않는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헝가리는 실제가 아니라 그들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나라다.”
얼마 전 폴란드의 안드레이 두다 대통령은 폴란드계 미국인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역사가 얀 그로스에게 수여된 훈장을 박탈하라고 요구하는 편지를 2000통 이상 받았다. 그로스가 무엇을 잘못했단 말인가? 그는 홀로코스트 당시 폴란드가 나치와 결탁했으며 전쟁 동안 폴란드인이 독일인보다 유대인을 더 많이 학살했다고 주장했다. 헝가리의 보로스 소장은 “이 지역에 신나치주의 열병이 돌고 있다”며 우려해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정치 엘리트를 믿지 않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그들은 극단주의로 눈을 돌린다.”
- 애덤 르보어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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