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강도 개혁 예고한 김병원 농협중앙회 회장] 거대한 농협 조직에 메스 댄다
[고강도 개혁 예고한 김병원 농협중앙회 회장] 거대한 농협 조직에 메스 댄다
229만 명에 달하는 회원에 자산 432조원. 31개 계열사에 임직원 수 8만8000명. 재계 1위 삼성그룹(자산 351조원)도 따라가지 못하는 거대한 기업이 한국에 있다. 바로 농협중앙회다. 전국 곳곳에서 농민이 만든 자활 조직에서 싹튼 농협은 이제 농축산물 생산·유통에서 은행·증권·보험까지 아우르는 거대 조직으로 컸다.
이런 ‘공룡’ 농협은 지금 기로에 서있다. 뿌리였던 농민 조합원은 고령화로 빠르게 줄고 있고 유통·금융 부문은 다른 민간기업과 힘겹게 수익률 경쟁 중이다. 8년 만에 등장한 새로운 수장인 김병원(63) 농협중앙회 회장이 직면한 과제다. 김병원 회장은 2008년 농협 회장에 올라 한 차례 연임하며 지난 2월까지 자리를 지킨 최원병 전 농협 회장의 뒤를 이었다. 김 회장은 지난 1월 13일 간선 방식의 농협 대의원 선거에서 당선됐다. 선거 이후 김 회장에겐 특별한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첫 호남’ 회장이다. 김 회장은 1953년 전남 나주에서 태어났다. 1978년 농협에 입사한 이후 38년 동안 ‘농협맨’으로 지냈다. 나주 남평농협 13~15대 조합장을 지낸 김 회장은 2011년 농협 회장 선거에 처음 도전했다. ‘3수’ 끝의 당선이었다. 김 회장은 경기도 출신의 이성희(67) 전 낙생농협(성남) 조합장과 결선 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229만 조합원을 대표하는 농협 회장 자리에 올랐다.
농협법이 바뀌면서 김 회장은 연임할 수 없다. 임기는 4년 단임이다. 4년이란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농협을 개혁해야 하는 어려운 숙제가 그의 앞에 놓여있다. 김 회장은 3월 21일 세종시를 찾아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김 회장은 숙제부터 얘기했다. “농협에 몸담으면서 농업·농촌의 절박한 현실을 많이 경험했다. 그래서 농협의 부족한 점과 해결해야 할 숙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회장으로서 임기 4년을 8년처럼 부지런히 현장을 다니며 부족한 부문을 채워 나가고 숙제를 하나씩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겠다.”
김 회장은 비대한 조직부터 손질하겠다고 밝혔다. 농협은 농산물 생산과 유통을 맡은 경제지주, 은행·보험·증권을 아우르는 금융지주의 두 축으로 이뤄져 있다. 두 개 지주를 농협중앙회가 관장하는 구조다. 2012년 농협 개혁의 일환으로 ‘신경(신용과 경제사업) 분리’가 이뤄졌지만 오히려 조직과 인원이 불어났다. 이에 김 회장은 “사업구조 개편 이후 비대해진 조직과 인력을 슬림화하고 여기서 생기는 여유 인력은 농업인과 농축협 지원에 투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열악한 농축협에 대한 맞춤형 컨설팅을 강화해 작지만 튼튼한 강소농협으로 성장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농협의 주인은 물론 농민이다. 김 회장은 “농업의 부가가치를 확대해 농가 소득 증대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농협금융은 협동조합 수익센터로써 제 기능을 다해 중앙회의 재무구조를 탄탄하게 만들고 농업인에 대한 안정적 지원이 가능토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창조경제 농업지원센터를 설립해 스마트팜 육성과 농업의 6차 산업화를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희미해지는 농협의 정체성 확립도 김 회장의 고민거리다. “농민이 275만 명이라고 하는데 전체 국민의 5.5% 밖에 안 된다”며 “농협 이용자의 68%가 비조합원인 만큼 국민의 농협을 만드는 데 모든 역량을 바치겠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협동조합 이념교육 강화를 통한 정체성 확립이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였기 때문에 농협이념중앙교육원을 개원했다”고 설명했다. 큰 개혁도 중요하지만 작은 개혁도 필요하다. 김 회장은 ‘탈(脫)권위’에 관심이 많다. 김 회장은 “많은 사람이 지금도 농협 안에 관료주의적인 문화가 있다는 얘기를 한다”며 “농협이 변신해야 한다고 하는데 커다란 것보다 작은 것부터 잘못된 관행을 하나씩 없애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엘리베이터 의전을 없앴다는데.
“농협에 사실 권위주의적인 사고가 깔려있다. 전에 회장이 정문에 내리면 경비원 4명이 90도 각도로 인사를 하고 엘리베이터를 잡아줬다. 어찌 보면 권위주의적인 출근이다. 그래서 요즘 출근할 때 지하 2층으로 간다. 지상 1층으로 가면 경비들이 90도로 인사하니까 지하 2층으로 간다. 경비에게도 목례만 하라고 한다. 나한테 그렇게 공손하게 대할 필요가 뭐 있나. (출근할 때) 비서실장이 내려올 필요도 없고 회장실 앞에서 목례만 하라고 했다. 내가 엘리베이터를 못 찾나, 길을 모르나. 임원 엘리베이터도 모든 직원이 같이 타라고 했다. 농민의 순수함과 회장의 권위주의적인 태도는 맞지 않다.”
4년 임기 동안 협동조합 정신을 살리기 쉽지 않을 듯하다.
“협동조합 이념이 가슴에 없다면 그 무엇도 되지 않는다고 확신한다. 2대 8 ‘파레토 법칙’이라고 있다. 2를 해내면 8이 따라 이뤄진다는 의미다. 물론 4년 임기 동안 20%를 끌고 가는 건 어려울 거다. 2% 부족한 18%를 달성하겠다. 농민 소득을 위해 존재한다는 농협의 가치를 보여줘야 한다.”
경제지주는 선거 때의 공약 대로 폐지하나.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께 2017년에 (경제지주가 공식 출범하는) 법을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해보고 농민을 위한 경제지주, 지역농협을 위한 경제지주가 되면 더 크게 발전시키겠다. 만에 하나 회원 농협에게도 도움이 안 되고, 농민에게도 도움이 안 되면 그때 재고해봐야 하지 않겠나. (선거 때도) 무작정 폐지론을 주장한 건 아니었다. 일단 시도를 해보고 농민과 지역농협에 도움이 되는 조직이면 더 키워야 하고 만약 아니라면 제도 개선을 해야 한다.”
그럼 중앙회가 경제지주에 사업 이관을 마무리하고 내년에 경제지주가 출범하나.
“그렇다. 앞으로 회원농협과 (경제지주 간) 경쟁 관계를 어떻게 할지가 중요하다.”
신용사업(금융)과 경제사업(농산물 생산·판매)을 분리하는 사업 구조 재편 과정에서 11조원의 빚이 늘었다. 어떻게 갚을 계획인가.
“11조원 중 4조5000억원을 (정부 지원금으로) 갖고 왔다. 그걸 상환하는 시기(2017년 2월)가 다가오고 있다. 상환 연기를 요청할 수 있다. 그러나 자구 노력이 먼저다. 사업 분리 이후 조직이 방대해진 건 사실이다. 이중적인 조직을 통폐합하는 등 농협 직원들과 자구 노력을 하겠다.”
자구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직원들 일자리 문제가 생길 수 있을 텐데.
“일자리보다 중요한 게 노동 생산성이다. 한 사람이 관리해도 되는 일을 둘이 하고 있다면 나머지 한 사람은 현장 사업부서에 가서 일해야 한다. 관리조직을 좀 더 슬림하게 만들고 사업 조직을 키워나는 형태로 만들어 나가겠다.”
농협 회장 부정 선거 의혹을 검찰이 수사하고 있다.
“개별 사안이다. 사업은 사업 대로 하고, 그건 그거 대로 가고. 그것 때문에 (농협 운영에) 발목 잡히는 건 아니다.”
- 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김병원 - 1953년 전남 나주 출생으로 광주농업고와 광주대를 졸업했고 전남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8년 농협에 입사해 남평농협 전무와 조합장(3선), NH농협무역 대표, 농협양곡 대표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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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공룡’ 농협은 지금 기로에 서있다. 뿌리였던 농민 조합원은 고령화로 빠르게 줄고 있고 유통·금융 부문은 다른 민간기업과 힘겹게 수익률 경쟁 중이다. 8년 만에 등장한 새로운 수장인 김병원(63) 농협중앙회 회장이 직면한 과제다. 김병원 회장은 2008년 농협 회장에 올라 한 차례 연임하며 지난 2월까지 자리를 지킨 최원병 전 농협 회장의 뒤를 이었다. 김 회장은 지난 1월 13일 간선 방식의 농협 대의원 선거에서 당선됐다. 선거 이후 김 회장에겐 특별한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첫 호남’ 회장이다. 김 회장은 1953년 전남 나주에서 태어났다. 1978년 농협에 입사한 이후 38년 동안 ‘농협맨’으로 지냈다. 나주 남평농협 13~15대 조합장을 지낸 김 회장은 2011년 농협 회장 선거에 처음 도전했다. ‘3수’ 끝의 당선이었다. 김 회장은 경기도 출신의 이성희(67) 전 낙생농협(성남) 조합장과 결선 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229만 조합원을 대표하는 농협 회장 자리에 올랐다.
농협법이 바뀌면서 김 회장은 연임할 수 없다. 임기는 4년 단임이다. 4년이란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농협을 개혁해야 하는 어려운 숙제가 그의 앞에 놓여있다. 김 회장은 3월 21일 세종시를 찾아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김 회장은 숙제부터 얘기했다. “농협에 몸담으면서 농업·농촌의 절박한 현실을 많이 경험했다. 그래서 농협의 부족한 점과 해결해야 할 숙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회장으로서 임기 4년을 8년처럼 부지런히 현장을 다니며 부족한 부문을 채워 나가고 숙제를 하나씩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겠다.”
김 회장은 비대한 조직부터 손질하겠다고 밝혔다. 농협은 농산물 생산과 유통을 맡은 경제지주, 은행·보험·증권을 아우르는 금융지주의 두 축으로 이뤄져 있다. 두 개 지주를 농협중앙회가 관장하는 구조다. 2012년 농협 개혁의 일환으로 ‘신경(신용과 경제사업) 분리’가 이뤄졌지만 오히려 조직과 인원이 불어났다. 이에 김 회장은 “사업구조 개편 이후 비대해진 조직과 인력을 슬림화하고 여기서 생기는 여유 인력은 농업인과 농축협 지원에 투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열악한 농축협에 대한 맞춤형 컨설팅을 강화해 작지만 튼튼한 강소농협으로 성장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농협의 주인은 물론 농민이다. 김 회장은 “농업의 부가가치를 확대해 농가 소득 증대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농협금융은 협동조합 수익센터로써 제 기능을 다해 중앙회의 재무구조를 탄탄하게 만들고 농업인에 대한 안정적 지원이 가능토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창조경제 농업지원센터를 설립해 스마트팜 육성과 농업의 6차 산업화를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희미해지는 농협의 정체성 확립도 김 회장의 고민거리다. “농민이 275만 명이라고 하는데 전체 국민의 5.5% 밖에 안 된다”며 “농협 이용자의 68%가 비조합원인 만큼 국민의 농협을 만드는 데 모든 역량을 바치겠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협동조합 이념교육 강화를 통한 정체성 확립이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였기 때문에 농협이념중앙교육원을 개원했다”고 설명했다. 큰 개혁도 중요하지만 작은 개혁도 필요하다. 김 회장은 ‘탈(脫)권위’에 관심이 많다. 김 회장은 “많은 사람이 지금도 농협 안에 관료주의적인 문화가 있다는 얘기를 한다”며 “농협이 변신해야 한다고 하는데 커다란 것보다 작은 것부터 잘못된 관행을 하나씩 없애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엘리베이터 의전을 없앴다는데.
“농협에 사실 권위주의적인 사고가 깔려있다. 전에 회장이 정문에 내리면 경비원 4명이 90도 각도로 인사를 하고 엘리베이터를 잡아줬다. 어찌 보면 권위주의적인 출근이다. 그래서 요즘 출근할 때 지하 2층으로 간다. 지상 1층으로 가면 경비들이 90도로 인사하니까 지하 2층으로 간다. 경비에게도 목례만 하라고 한다. 나한테 그렇게 공손하게 대할 필요가 뭐 있나. (출근할 때) 비서실장이 내려올 필요도 없고 회장실 앞에서 목례만 하라고 했다. 내가 엘리베이터를 못 찾나, 길을 모르나. 임원 엘리베이터도 모든 직원이 같이 타라고 했다. 농민의 순수함과 회장의 권위주의적인 태도는 맞지 않다.”
4년 임기 동안 협동조합 정신을 살리기 쉽지 않을 듯하다.
“협동조합 이념이 가슴에 없다면 그 무엇도 되지 않는다고 확신한다. 2대 8 ‘파레토 법칙’이라고 있다. 2를 해내면 8이 따라 이뤄진다는 의미다. 물론 4년 임기 동안 20%를 끌고 가는 건 어려울 거다. 2% 부족한 18%를 달성하겠다. 농민 소득을 위해 존재한다는 농협의 가치를 보여줘야 한다.”
경제지주는 선거 때의 공약 대로 폐지하나.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께 2017년에 (경제지주가 공식 출범하는) 법을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해보고 농민을 위한 경제지주, 지역농협을 위한 경제지주가 되면 더 크게 발전시키겠다. 만에 하나 회원 농협에게도 도움이 안 되고, 농민에게도 도움이 안 되면 그때 재고해봐야 하지 않겠나. (선거 때도) 무작정 폐지론을 주장한 건 아니었다. 일단 시도를 해보고 농민과 지역농협에 도움이 되는 조직이면 더 키워야 하고 만약 아니라면 제도 개선을 해야 한다.”
그럼 중앙회가 경제지주에 사업 이관을 마무리하고 내년에 경제지주가 출범하나.
“그렇다. 앞으로 회원농협과 (경제지주 간) 경쟁 관계를 어떻게 할지가 중요하다.”
신용사업(금융)과 경제사업(농산물 생산·판매)을 분리하는 사업 구조 재편 과정에서 11조원의 빚이 늘었다. 어떻게 갚을 계획인가.
“11조원 중 4조5000억원을 (정부 지원금으로) 갖고 왔다. 그걸 상환하는 시기(2017년 2월)가 다가오고 있다. 상환 연기를 요청할 수 있다. 그러나 자구 노력이 먼저다. 사업 분리 이후 조직이 방대해진 건 사실이다. 이중적인 조직을 통폐합하는 등 농협 직원들과 자구 노력을 하겠다.”
자구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직원들 일자리 문제가 생길 수 있을 텐데.
“일자리보다 중요한 게 노동 생산성이다. 한 사람이 관리해도 되는 일을 둘이 하고 있다면 나머지 한 사람은 현장 사업부서에 가서 일해야 한다. 관리조직을 좀 더 슬림하게 만들고 사업 조직을 키워나는 형태로 만들어 나가겠다.”
농협 회장 부정 선거 의혹을 검찰이 수사하고 있다.
“개별 사안이다. 사업은 사업 대로 하고, 그건 그거 대로 가고. 그것 때문에 (농협 운영에) 발목 잡히는 건 아니다.”
- 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김병원 - 1953년 전남 나주 출생으로 광주농업고와 광주대를 졸업했고 전남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8년 농협에 입사해 남평농협 전무와 조합장(3선), NH농협무역 대표, 농협양곡 대표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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