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모델링 규제 하나둘 풀리고 있지만] 재건축 ‘구원투수’로 나오긴 아직…
[리모델링 규제 하나둘 풀리고 있지만] 재건축 ‘구원투수’로 나오긴 아직…
낡은 집을 재단장하고 싶다면 방법은 두 가지다. ‘헐고 다시 짓는 재건축’이나 ‘고치고 늘려서 계속 쓰는 리모델링’이다. 정부가 리모델링 관련 규제를 하나둘 풀고 있다. 이명박 전 정부가 재건축 중심이었다면 현 정부는 정권 초기부터 리모델링 활성화 방안을 유지하며 관련 규제를 풀고 있다. 2014년 4월 리모델링 수직증축을 최대 3개층까지 허용했고 가구 수 증가 허용범위도 10%에서 15%로 확대했다. 최근엔 아파트 리모델링 허가기준을 완화했다. 아파트단지 전체 리모델링을 위해 필요한 동별 동의 요건을 3분의 2 이상에서 2분의 1 이상으로 완화했다. 특정 동이 반대해 리모델링이 좌초되지 않도록 규제를 풀었다. 다만, 전체 소유자의 5분의 4 이상 동의 요건은 유지한다.
허가 단계도 간편해진다. 지금은 사업계획 승인을 받은 뒤 별도로 리모델링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앞으로는 사업계획 승인신청 시 함께 처리할 수 있어 사업 속도가 빨라진다.
재건축의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리모델링이다. 낡은 집에 새집으로 바꾼다는 점은 재건축과 같지만 다른 점이 많다. 재건축은 낡은 집을 완전히 허물고 새로 짓는다. 10개 동을 5개로 줄일 수 있고 집 모양도 자유롭게 설계할 수 있다. 동쪽을 바라보던 거실 전면으로 남쪽으로 바꿀 수 있다. 리모델링은 뼈대는 유지하고 재단장하는 방식이다. 5개 동이라면 5개 동이 그대로 유지되고 향을 바꾸기 어렵다.
재건축은 지은 지 30년이 지나야 하지만 리모델링은 15년만 지나면 된다. 재건축은 전체 가구수의 60% 이상을 전용 85㎡이하 중소형으로 지어야 하고 임대주택 건립 기준(증가 용적률의 50%)도 있다. 도로나 공원, 녹지를 조성하는 부지는 정부에 무상으로 내놓는 기부채납을 해야 한다. 리모델링은 이런 제약이 없다. 대신 가구수는 15%만 늘일 수 있고 층수는 3개층, 크기는 이전 전용면적의 30~40%까지만 늘일 수 있다.
정부가 관련 규제를 잇따라 푸는데 리모델링 시장이 좀처럼 활성화하지 않는 데는 사업성이 작용한다. 국토부에 따르면 전국에 리모델링을 할 수 있는 아파트(2015년 12월 말 기준)는 20만5211동(준공 15년 이상)이지만 리모델링을 추진 중인 아파트는 35개 동뿐이다. 결국 돈이 문제다. 아직까지 사업성이 재건축만 못하다. 주민들이 살 집 외에 여유분(일반분양물량)을 많이 지으면 이 여유분을 팔아 사업비에 보탤 수 있다. 예컨대 400가구짜리 아파트가 460가구로 탈바꿈할 경우 여유분 60가구를 가구당 3억원에 판다면 180억원의 사업비를 확보할 수 있다. 재건축은 일반분양물량에 별다른 제한이 없어 사업성이 좋은 편이지만 리모델링은 다르다. 가구수 제한이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리모델링을 하려면 일반 분양을 감안해도 가구당 평균 1억~2억원이 더 필요하다. 공사비만 드는 게 아니다. 공사에 걸리는 2~3년 동안 주민들은 살 집의 전세금과 이사 비용을 부담하고 생활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건설사가 전세금의 일부를 대출받을 수 있도록 알선하지만 어차피 이자 비용은 주민 몫이다. 집값 상승기에는 큰 부담이 아닐 수도 있다. 리모델링에 투자한 돈보다 집값이 더 많이 올라 차익을 기대할 수 있어서다. 하지만 지금 같은 주택시장 침체기에는 주민들이 거액을 들여 집을 고치기엔 부담이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2011년 5월 리모델링한 서울 도곡동 S아파트 84㎡형(이하 공급면적)은 가구당 1억5000만원의 비용이 들었다. 리모델링 전 4억원이던 아파트값은 준공 5년이 지난 현재 6억6000만원이 됐다. 비용을 제하고 1억원 정도 남았다.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는 “같은 기간 주변 아파트 시세도 올랐기 때문에 리모델링을 위한 비용이나 불편을 감안하면 1억원의 차익이 나도 사실상 의미가 없다는 평도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 분당신도시 행운공인중개 관계자는 “젊은층은 리모델링에 관심이 많은 편이지만 나이 든 주민들은 가구당 1억원씩이나 내고 리모델링을 하는 것에 소극적”이라며 “리모델링을 하면 최소한 주민들이 낸 돈 이상으로 집값이 올라야 하는데 요즘 같은 시기에는 장담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다. 아직까지는 사업성 때문에 재건축 선호도가 높지만 앞으로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다. 사업성이 좋은 저층 단지가 거의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층이 낮을수록 일반분양 물량을 많이 지을 수 있어 주민들이 내야 하는 비용이 줄어들어 사업성이 좋다. 또 재건축을 하려면 지은 지 30년이 넘어야 하고 안전진단에서 위험하다는 판정을 받아야 하는데 1990년 이후 지은 아파트는 내진설계 기준이 강화된 뒤여서 안전진단에서 낮은 등급을 받기 쉽지 않다. 리모델링이 재건축 대신 ‘구원투수’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아직까지 풀어야 숙제가 적지 않다. 세금 문제가 있다. 수직 증축으로 리모델링 후 주소(동·호수)가 달라지면 신규 취득으로 봐 취득세 등을 내야 할 수도 있다. 리모델링 후 주소는 같은데 집이 넓어지면 커진 면적에 대해서만 취득세를 낸다. 수직 증축은 최대 3개 층으로 마무리됐지만 수평 증축이 남아 있다. 내력벽(건축물 무게를 지탱할 수 있도록 설계된 벽)문제다. 정부는 내력벽 철거 비중을 10%로 고수하고 있지만 건설 업계는 집을 넓히기 위해서는 내력벽을 20%까지 철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는 내력벽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각 가구의 앞뒤 현관이나 발코니를 거실이나 방으로 넓힐 수 있는 게 고작이다. 국토부는 리모델링할 때 건물 하중을 버티고 있는 내력벽을 철거해 햇빛이 들어오는 방향에 방을 한개 더 증축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내력벽 철거 규제가 완화되면 60~85㎡대 소형 아파트를 좌우로 늘릴 수 있게 된다. 최근 분양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3~4베이(Bay·창가 쪽으로 붙어 있는 거실이나 방의 수가 3~4개)’ 아파트를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김이탁 국토부 주택정비과장은 “내력벽 일부 철거가 허용되면 옆으로 붙어 있는 가구가 합쳐져 1베이가 2베이로, 2베이가 3베이로 확대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현주 기자 chj80@joongang.co.kr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명박 정부 '재건축', 박근혜 정부 '리모델링'에 초점
재건축의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리모델링이다. 낡은 집에 새집으로 바꾼다는 점은 재건축과 같지만 다른 점이 많다. 재건축은 낡은 집을 완전히 허물고 새로 짓는다. 10개 동을 5개로 줄일 수 있고 집 모양도 자유롭게 설계할 수 있다. 동쪽을 바라보던 거실 전면으로 남쪽으로 바꿀 수 있다. 리모델링은 뼈대는 유지하고 재단장하는 방식이다. 5개 동이라면 5개 동이 그대로 유지되고 향을 바꾸기 어렵다.
재건축은 지은 지 30년이 지나야 하지만 리모델링은 15년만 지나면 된다. 재건축은 전체 가구수의 60% 이상을 전용 85㎡이하 중소형으로 지어야 하고 임대주택 건립 기준(증가 용적률의 50%)도 있다. 도로나 공원, 녹지를 조성하는 부지는 정부에 무상으로 내놓는 기부채납을 해야 한다. 리모델링은 이런 제약이 없다. 대신 가구수는 15%만 늘일 수 있고 층수는 3개층, 크기는 이전 전용면적의 30~40%까지만 늘일 수 있다.
정부가 관련 규제를 잇따라 푸는데 리모델링 시장이 좀처럼 활성화하지 않는 데는 사업성이 작용한다. 국토부에 따르면 전국에 리모델링을 할 수 있는 아파트(2015년 12월 말 기준)는 20만5211동(준공 15년 이상)이지만 리모델링을 추진 중인 아파트는 35개 동뿐이다. 결국 돈이 문제다. 아직까지 사업성이 재건축만 못하다. 주민들이 살 집 외에 여유분(일반분양물량)을 많이 지으면 이 여유분을 팔아 사업비에 보탤 수 있다. 예컨대 400가구짜리 아파트가 460가구로 탈바꿈할 경우 여유분 60가구를 가구당 3억원에 판다면 180억원의 사업비를 확보할 수 있다. 재건축은 일반분양물량에 별다른 제한이 없어 사업성이 좋은 편이지만 리모델링은 다르다. 가구수 제한이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리모델링을 하려면 일반 분양을 감안해도 가구당 평균 1억~2억원이 더 필요하다. 공사비만 드는 게 아니다. 공사에 걸리는 2~3년 동안 주민들은 살 집의 전세금과 이사 비용을 부담하고 생활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건설사가 전세금의 일부를 대출받을 수 있도록 알선하지만 어차피 이자 비용은 주민 몫이다. 집값 상승기에는 큰 부담이 아닐 수도 있다. 리모델링에 투자한 돈보다 집값이 더 많이 올라 차익을 기대할 수 있어서다. 하지만 지금 같은 주택시장 침체기에는 주민들이 거액을 들여 집을 고치기엔 부담이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2011년 5월 리모델링한 서울 도곡동 S아파트 84㎡형(이하 공급면적)은 가구당 1억5000만원의 비용이 들었다. 리모델링 전 4억원이던 아파트값은 준공 5년이 지난 현재 6억6000만원이 됐다. 비용을 제하고 1억원 정도 남았다.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는 “같은 기간 주변 아파트 시세도 올랐기 때문에 리모델링을 위한 비용이나 불편을 감안하면 1억원의 차익이 나도 사실상 의미가 없다는 평도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 분당신도시 행운공인중개 관계자는 “젊은층은 리모델링에 관심이 많은 편이지만 나이 든 주민들은 가구당 1억원씩이나 내고 리모델링을 하는 것에 소극적”이라며 “리모델링을 하면 최소한 주민들이 낸 돈 이상으로 집값이 올라야 하는데 요즘 같은 시기에는 장담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다.
내력벽 철거 비중 늘리면 다양한 평면 만들 수 있어
하지만 아직까지 풀어야 숙제가 적지 않다. 세금 문제가 있다. 수직 증축으로 리모델링 후 주소(동·호수)가 달라지면 신규 취득으로 봐 취득세 등을 내야 할 수도 있다. 리모델링 후 주소는 같은데 집이 넓어지면 커진 면적에 대해서만 취득세를 낸다. 수직 증축은 최대 3개 층으로 마무리됐지만 수평 증축이 남아 있다. 내력벽(건축물 무게를 지탱할 수 있도록 설계된 벽)문제다. 정부는 내력벽 철거 비중을 10%로 고수하고 있지만 건설 업계는 집을 넓히기 위해서는 내력벽을 20%까지 철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는 내력벽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각 가구의 앞뒤 현관이나 발코니를 거실이나 방으로 넓힐 수 있는 게 고작이다. 국토부는 리모델링할 때 건물 하중을 버티고 있는 내력벽을 철거해 햇빛이 들어오는 방향에 방을 한개 더 증축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내력벽 철거 규제가 완화되면 60~85㎡대 소형 아파트를 좌우로 늘릴 수 있게 된다. 최근 분양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3~4베이(Bay·창가 쪽으로 붙어 있는 거실이나 방의 수가 3~4개)’ 아파트를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김이탁 국토부 주택정비과장은 “내력벽 일부 철거가 허용되면 옆으로 붙어 있는 가구가 합쳐져 1베이가 2베이로, 2베이가 3베이로 확대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현주 기자 chj80@joongang.co.kr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1147회 로또 1등 ‘7, 11, 24, 26, 27, 37’…보너스 ‘32’
2러 루블, 달러 대비 가치 2년여 만에 최저…은행 제재 여파
3“또 올랐다고?”…주유소 기름값 6주 연속 상승
4 정부, 사도광산 추도식 불참키로…日대표 야스쿠니 참배이력 문제
5알렉스 웡 美안보부좌관 지명자, 알고 보니 ‘쿠팡 임원’이었다
61조4000억원짜리 에메랄드, ‘저주받은’ 꼬리표 떼고 23년 만에 고향으로
7“초저가 온라인 쇼핑 관리 태만”…中 정부에 쓴소리 뱉은 생수업체 회장
8美공화당 첫 성소수자 장관 탄생?…트럼프 2기 재무 베센트는 누구
9자본시장연구원 신임 원장에 김세완 이화여대 교수 내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