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브라질 어디로 가나] 국가원수 없이 열리는 첫 올림픽 맞을 수도
[혼돈의 브라질 어디로 가나] 국가원수 없이 열리는 첫 올림픽 맞을 수도
브라질이 대혼란이다. 의회가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절차에 들어간 가운데 경제도 엉망이다. 지카바이러스와 신종플루 등 전염병도 확산하고 있다. 올해 8월5~21일로 예정된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이 제대로 열릴지 의문을 갖는 사람이 늘고 있다.
전·현직 대통령 사면초가: 브라질 경제는 한마디로 먹구름이다. 브라질 중앙은행이 올해 성장률을 -3.5%로 전망했다. 현재의 브라질 상황으로 볼 때 더욱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 국내총생산(GDP) 세계 7위의 브라질이 흔들리면 세계 경제에도 상당한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87%의 높은 지지율 속에 퇴임했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71, 2003~2010년 재임) 전 대통령이 부패 스캔들에 휩싸인 가운데 지우마 호세프(69) 대통령은 탄핵 위기를 넘어 퇴출 초읽기에 들어갔다. 호세프는 첫 임기 재임 중이던 2014년 차기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전의 재정 적자를 감추기 위해 국영 은행의 돈을 끌어다 썼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일종의 국가 재정 분식회계인 셈이다. 호세프는 이 선거에서 승리해 현재 재임하고 있다.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불안한 브라질에서 열리는 리우 올림픽이 세계인의 축제가 될 가능성이 갈수록 작아지고 있다. 열리더라도 분위기가 엉망일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최소한 국가 원수 없이 열리는 첫 올림픽이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더구나 막바지 준비와 대회 진행도 불안해질 가능성이 크다. 심각한 소두증을 유발하는 것으로 확인된 지카바이러스에다 신종플루까지 창궐하고 있으니 관객은 물론 선수들 사이에서도 보이코트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 리우 올림픽의 흥행 전망이 먹구름일 수밖에 없다.
특히 가장 큰 문제는 정치적인 혼란이다. 호세프 대통령은 탄핵을 당하든지, 설사 빠져나오더라도 리더십에 직격탄을 맞고 ‘식물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크다. 브라질 하원은 지난 4월 17일 재적 513명 중 367명의 찬성으로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을 통과시켰다. 탄핵안이 하원을 통과했다고 탄핵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브라질 헌법상 대통령 탄핵은 하원 본회의에서 통과된 후 상원으로 넘어간다. 상원은 5월 중 탄핵 심리에 들어갈 것인지에 대한 표결을 실시할 예정인데 재적 81명 중 과반 찬성이면 심리가 시작된다. 상원이 탄핵 심리를 하기로 가결하면 일단 호세프 대통령은 직무 정지 상태가 되고 미셰우 테메르 부통령이 권한 대행을 맡게 된다. 테메르는 브라질 최대 정당인 민주운동당(PMDB) 대표다. PMDB는 지난 3월 호세프가 이끄는 노동자당(PT)과의 연립정부에서 탈퇴했다.
상원은 180일 간 심리를 진행한 후 탄핵 본표결에 들어가는데 재적 3분의 2가 찬성하면 탄핵이 이뤄진다. 호세프 대통령이 탄핵되면 테메르 부통령이 대통령 직을 공식 승계한 뒤 2018년 12월31일까지 잔여 임기 동안 집권하게 된다. 탄핵 심리 여부를 묻는 표결이 5월 중 상원에서 가결되면 브라질은 8월5일~21일 개최되는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대통령이 없는 상태에서 치르게 된다. 더구나 180일 간의 심리 후 호세프의 탄핵이 이뤄지면 브라질은 혼돈의 상태에 빠지게 된다.
설사 상원에서 180일 간 심리 후 탄핵을 부결하거나 아예 탄핵 심리를 하지 않기로 하더라도 호세프는 정치적으로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브라질 일간 에스타도 상파울로는 ‘상원에서 탄핵안이 부결되더라도 호세프 리더십은 치명상을 입었다’며 ‘정치적 불확실성을 해소할 방법을 조속히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호세프가 탄핵을 당하거나 스스로 물러나더라도 브라질은 쉽게 안정을 찾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호세프를 권좌에서 밀어낸다고 해서 브라질의 정치적인 혼란이 정리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 그만큼 상황이 그리 녹록하지 않다. 전임자인 루이스 룰라 다시우바 전 대통령이나 테메르 부통령을 비롯한 주요 정치인의 상당수가 현재 뇌물 수수 혐의를 받고 있는 등 리더십과 도덕성에 상처를 입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AP통신은 “브라질은 마땅한 대안도 없는 상황에서 호세프 탄핵 찬성파와 반대파로 나뉘어 민심 분열이 가속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브라질이 표류한다고 덕 볼 나라도 없다.
외신들도 비관적인 전망 일색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호세프가 탄핵 여부와 무관하게 브라질 정국은 안정되기 힘들다’라고 전망하고 ‘최악의 인플레이션, 대량 실업을 불러온 브라질의 허약한 경제 체질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대대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다: 룰라 집권 전 브라질은 희망이 없어 보였다. 빈부격차가 커지는 가운데 브라질 사회의 근본적인 모순이 나아질 조짐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브라질은 2만6000명 정도의 대농장주들이 전체 토지의 46%를 차지하고 있는 소수 부호의 나라다. 상당수 농민은 농민들은 대농장화와 군부통치 시절 시작된 산업화로 대도시 빈민이 됐다. 여기에 아마존을 비롯한 전국적인 국토개발로 근거지를 잃은 사람도 적지 않다. 이들을 빈곤층에서 탈출시키는 것이 정권의 지상목표가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2003년 노동자 출신의 룰라가 첫 좌파 대통령에 올라 경제부흥을 이루면서 브라질은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룰라는 신자유정책을 따른다고 경제 불개입주의를 천명했던 전임 카르도주 보수당 정권과 달리 성장촉진계획(PAC)을 비롯한 정부가 개입하는 경제성장 정책을 추구했다. 그 결과 2010년 7%라는 놀라운 성장률을 기록할 수 있었다. 룰라 집권기 브라질은 외채의 덫에 걸린 남미의 제3세계 국가에서 세계 경제무대의 당당한 일원이 됐다. 2014년 월드컵, 2016년 리우 올림픽 등이 이 시기의 자신감을 바탕으로 유치한 국제 행사다.
룰라는 사회적으로는 빈곤 퇴치를 핵심 정책으로 삼아 이를 위한 공공부조 정책과 최저임금 인상 정책을 추진했다. 그 결과 3000만 명이 빈곤층을 탈출했으며 2003년 1억300만이던 중산층이 2009년 1억5200만 명으로 50% 늘어났다. 가난한 계층에게 기본적인 사회보장을 해주면서 ‘사회적 연대를 기반으로 하는 공동체 경제’를 추구한 결과다. 2011년 1월 후계자인 호세프가 대통령을 맡아 룰라의 정책을 계승하고 있다. 문제는 연립정부 내부의 갈등과 권력 투쟁을 매끄럽게 처리하지 못한 점이다. 브라질의 상황은 전형적으로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다민족·다문화 장점 못 살리고 빈부격차 만연: 브라질은 굴곡이 많은 남미에서도 독특한 나라다. 인구가 2억이 넘어 남미에서 가장 큰 나라인데, 남미대륙에서 유일하게 스페인어가 아닌 포르투갈어를 쓴다. 포르투갈은 신대륙 발견에 앞장서서 초기에 식민지 개척에 나선 국가다. 스페인과 경쟁적으로 식민지 정복에 나섰는데 아메리카 대륙에는 브라질만 식민지로 보유했다.
브라질은 사실 오랜 세월을 두고 전 세계에서 이민을 받았다. 현재 브라질은 세계 최대의 다민족·다문화 국가의 하나다. 미국과 달리 인종차별의 잔혹한 역사나 전통이 별로 없어 문명사적으로 이상적인 다문화 국가로도 불린다. 인종의 용광로라기보다 피부색에 개의치 않고 서로 공존하는 자유로운 인종평등 사회로 분석된다.
인구 비율도 독특하다. 브랑쿠라고 불리는 백인이 47.7%라 가장 많지만 파르두라고 불리는 혼혈인, 또는 갈색인종도 43.13%로 비슷한 비율이다. 육안으로 보면 브라질 유명 축구 선수의 상당수는 여기에 해당한다. 호나우두·호나우지뉴·네이마르 등이 여기에 속한다. 카카 같은 백인 선수도 있다. 뿐만아니라 네그루라고 불리는 흑인이 7.61%이고, 노랗다 또는 황인종이라는 뜻의 아마렐루로 불리는 동아시아계도 0.43%가 있다. 일본과 한국에서 이민을 많이 간 나라이기도 하다. 일본의 프로레슬러로 1976년 프로권투 챔피언 무함마드 알리와 대결해서 유명해진 안토니오 이노키도 브라질 이민 출신으로 귀국해 일본에서 활동해왔다. 참의원도 지내고 북한도 방문하면서 유명해진 인물이다. 일본 이름은 이노키 간지라고 하는데 어릴 때 가난 때문에 고향 오키나와를 떠나 브라질로 이민을 떠났다가 한국계 레슬링 선수 역도산의 추천으로 일본으로 귀국해 활동했다.
세계 7위의 경제대국이라고 하지만, 인구가 2억이나 되다 보니 1인당 GDP는 1만 달러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국가 지원, 사회적 연대, 경제개발 등으로 빈부격차를 상당히 줄였는데도 여전히 빈민이 많고 이들의 정치적 위세도 대단하다. 이들은 지난 월드컵을 앞두고 100억 달러가 넘는 개최 비용을 가난구제에 쓰라고 격렬한 사위를 벌였다.
식민지배에서 부패하고 무능한 군사정권으로: 브라질의 역사는 질곡의 연속이었다. 이 나라의 근대사는 1500년 포르투갈인이 들어오면서 시작됐다. 그 전에 브라질 땅에는 주목할만한 문명이나 국가 조직이 없었다. 브라질에 정착한 포르투갈인은 값비싼 염료 무역으로 부를 쌓았다. 브라질이라는 이름 자체가 유럽에서 고가로 팔리던 붉은색 염료를 채취할 수 있는 ‘파우 브라질’이라는 나무에서 비롯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염료 채취가 시들해지자 사탕수수, 금광, 커피 등 주로 농산물, 광산물 위주로 산업이 발달했다.
이 나라의 역사는 놀라운 사건으로 가득하다. 가장 독특한 사건이 전 세계 식민지 중 유일하게 본국 수도를 유치했다는 점이다. 포르투갈 왕국은 19세기 들어 영국과 동맹이었다. 교역을 통해 상호 상당한 이익을 취했다. 일부 영국인들은 포르투갈에 정착해 포트와인 와이너리를 운영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코크번’을 비롯한 영어 브랜드의 포르투갈산 명문 포트와인은 바로 이들의 후손이 만들고 있는 제품이다. 포트와인은 포도주에 다량의 설탕을 넣고 후숙해 포도주의 향과 맛, 그리고 알코올 도수를 강화한 40도짜리 술이다. 포트(Port)라는 술 종류 이름 자체가 포르투갈의 포르투 지방에서 나온 것이다. 포르투갈이라는 나라 이름도 바로 이 포르투에서 유래했다.
영국과 숙적이던 프랑스의 나폴레옹 황제의 입장에선 포르투갈은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다. 그 결과 1808년 프랑스가 스페인을 거쳐 포르투갈을 침공했다. 그러자 포르투갈 왕실은 모두가 깜짝 놀랄 결정을 했다. 수도를 리스본에서 대서양 건너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로 임시 이전한 것이다. 식민지로 수도를 옮긴 것은 세계사에서 전례가 없는 일이다. 당시 포르투갈 군주는 정신질환을 앓던 마리아 1세(1734~1816, 재위 1777~1816) 여왕이었는데 아들 주앙(1767~1826)이 1799년부터 섭정왕자로서 통치하고 있었다.
주앙은 영국이 나폴레옹을 물리치자 본국으로 귀환했다. 하지만 나폴레옹이 엘바 섬을 탈출하자 또 다시 대서양을 건넜다. 1815년에는 아예 나라 이름을 ‘포르투갈-브라질-알가르베스 연합왕국’으로 바꾸고 리우데자네이루를 정식 수도로 삼았다(알가르베스는 포르투갈 남부지방). 브라질은 식민지가 아닌 연합왕국의 중심지가 됐다. 주앙은 1816년 어머니인 여왕이 세상을 떠나자 브라질에서 연합왕국의 국왕 주앙 6세로 즉위했다.
보수주의자였던 주앙 6세는 1820년 본국에서 자유주의자 혁명이 일어나자 급거 귀국했다. 돌아가서 진압하기 위해서였다. 브라질에 남아 섭정을 맡은 아들 페드루는 부왕과 달랐다. 자유주의의 물결에 긍정적이었다. 게다가 브라질의 엘리트 계층은 이미 독자 국가를 세울 준비가 돼 있었다. 페드루는 이들과 함께 1822년 독립을 선언하고 브라질 제국을 세워 초대 황제에 올랐다. 자유주의를 옹호했던 브라질 초대 황제는 의회를 만들고 입헌군주제를 받아들였으며 1824년에는 헌법도 반포했다. 브라질은 남미 대륙에서 처음으로 군주국으로 독립한 것은 물론 ‘제국’이라는 이름을 붙인 유일한 나라가 됐다. 1825년 본국의 주앙 6세도 마지못해 독립을 승인했다. 이로써 브라질은 아무런 외교적 문제없이 순조롭게 독립국이 됐다. 브라질 제국은 2대 69년 간 유지됐다. 브라질 제국을 전복시킨 것은 파워엘리트의 한 축을 이루던 군인들이었다. 이들은 1889년 군사쿠데타로 브라질 제국을 무너뜨리고 ‘브라질 합중공화국’을 새롭게 세웠다. 브라질 최초의 공화국이다. 이 이름은 1967년 브라질 연방공화국으로 바뀌어 지금에 이른다.
바르가스의 개발독재에서 중도 좌파 집권으로: 두고두고 남미를 괴롭힌 쿠데타와 군부독재는 이렇게 브라질에서 시작됐다. 1930년 쿠데타로 집권한 제툴리우 바르가스(1882~1954)는 브라질 군부독재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현재의 브라질 국가 형태의 기본 틀을 만든 인물이 바로 바르가스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는 30~45년 대통령을 지내면서 경제성장을 이뤄 인기가 높았다. 이를 통해 ‘국가 주도의 독재적 경제발전 우선주의’라는 브라질 체제의 특성을 이뤘다. 바르가스는 브라질을 상징하는 축구와 삼바 축제로 국민 통합을 시도했다.
바르가스는 극좌와 극우 모두의 공격을 받았다. 1935년 공산주의자, 1938년 파시스트가 쿠데타를 시도했다. 결국 1945년 또 다른 쿠데타로 밀려났다.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는 말처럼 됐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바르가스는 오뚜기였다. 1950년 브라질 역사상 최초로 치러진 민주선거에서 민선 1호 대통령에 당선한 것이다. 경제성장과 축구, 삼바로 상징되는 바르가스의 시대를 그리워한 브라질 국민이 그만큼 많았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바르가스는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다. 1954년 경제난과 측근 비리로 사임 압박을 받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파란이 많기는 브라질이나 바르가스나 매한가지다. 1964년 또 쿠데타가 발생해 민정이 무너지고 카스텔로 브랑코 장군이 집권했다. 브랑코의 군부독재는 무능했으며 비도덕적이었다. 결국 국민의 외면 속에 무너졌다. 1985년 민정 이양이 이뤄졌고 우파의 집권이 이어졌다.
2003년 노동자 출신의 룰라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첫 좌파 정권을 이뤘다. 그는 전임 바르도주 정권이 짜놓은 경제개발 계획을 극빈층을 줄이는 방향으로 조금 수정한 후 계속 추진했다. 중도 좌파 행보다. 실용 정치일 수도 있다. 국민만 잘 살게 된다면 이데올로기는 유보할 수 있다는, 브라질판 ‘백묘 흑묘’ 정치로 평가할 수도 있다. 그 결과 극빈층도 줄이고 경제 부흥도 이룰 수 있었다. 그의 재임 중 브라질의 경제 규모는 세계 6위로 올라갔다. 2011년부터는 후계자인 호세프가 바통을 이어 받았다. 하지만 지금 탄핵 정국에 이르면서 브라질은 앞이 보지 않는 절망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브라질 역사를 살펴보면 정치가 경제 정책을 제대로 뒷받침할 때 제대로 된 경제발전과 빈민층 감소가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정치가 경제·사회 발전은 도외시하고 오로지 권력 투쟁으로 치닫는 상황이다. 그 결과는 올해 안에 드러난다. 2016년 리우 올림픽이 어떻게 치러지고 브라질 경제가 어떻게 될지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브라질은 21세기 정치의 반면교사가 될 것인가.
- 채인택 중앙일보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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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직 대통령 사면초가: 브라질 경제는 한마디로 먹구름이다. 브라질 중앙은행이 올해 성장률을 -3.5%로 전망했다. 현재의 브라질 상황으로 볼 때 더욱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 국내총생산(GDP) 세계 7위의 브라질이 흔들리면 세계 경제에도 상당한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87%의 높은 지지율 속에 퇴임했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71, 2003~2010년 재임) 전 대통령이 부패 스캔들에 휩싸인 가운데 지우마 호세프(69) 대통령은 탄핵 위기를 넘어 퇴출 초읽기에 들어갔다. 호세프는 첫 임기 재임 중이던 2014년 차기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전의 재정 적자를 감추기 위해 국영 은행의 돈을 끌어다 썼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일종의 국가 재정 분식회계인 셈이다. 호세프는 이 선거에서 승리해 현재 재임하고 있다.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불안한 브라질에서 열리는 리우 올림픽이 세계인의 축제가 될 가능성이 갈수록 작아지고 있다. 열리더라도 분위기가 엉망일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최소한 국가 원수 없이 열리는 첫 올림픽이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더구나 막바지 준비와 대회 진행도 불안해질 가능성이 크다. 심각한 소두증을 유발하는 것으로 확인된 지카바이러스에다 신종플루까지 창궐하고 있으니 관객은 물론 선수들 사이에서도 보이코트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 리우 올림픽의 흥행 전망이 먹구름일 수밖에 없다.
특히 가장 큰 문제는 정치적인 혼란이다. 호세프 대통령은 탄핵을 당하든지, 설사 빠져나오더라도 리더십에 직격탄을 맞고 ‘식물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크다. 브라질 하원은 지난 4월 17일 재적 513명 중 367명의 찬성으로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을 통과시켰다. 탄핵안이 하원을 통과했다고 탄핵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브라질 헌법상 대통령 탄핵은 하원 본회의에서 통과된 후 상원으로 넘어간다. 상원은 5월 중 탄핵 심리에 들어갈 것인지에 대한 표결을 실시할 예정인데 재적 81명 중 과반 찬성이면 심리가 시작된다. 상원이 탄핵 심리를 하기로 가결하면 일단 호세프 대통령은 직무 정지 상태가 되고 미셰우 테메르 부통령이 권한 대행을 맡게 된다. 테메르는 브라질 최대 정당인 민주운동당(PMDB) 대표다. PMDB는 지난 3월 호세프가 이끄는 노동자당(PT)과의 연립정부에서 탈퇴했다.
상원은 180일 간 심리를 진행한 후 탄핵 본표결에 들어가는데 재적 3분의 2가 찬성하면 탄핵이 이뤄진다. 호세프 대통령이 탄핵되면 테메르 부통령이 대통령 직을 공식 승계한 뒤 2018년 12월31일까지 잔여 임기 동안 집권하게 된다. 탄핵 심리 여부를 묻는 표결이 5월 중 상원에서 가결되면 브라질은 8월5일~21일 개최되는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대통령이 없는 상태에서 치르게 된다. 더구나 180일 간의 심리 후 호세프의 탄핵이 이뤄지면 브라질은 혼돈의 상태에 빠지게 된다.
설사 상원에서 180일 간 심리 후 탄핵을 부결하거나 아예 탄핵 심리를 하지 않기로 하더라도 호세프는 정치적으로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브라질 일간 에스타도 상파울로는 ‘상원에서 탄핵안이 부결되더라도 호세프 리더십은 치명상을 입었다’며 ‘정치적 불확실성을 해소할 방법을 조속히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호세프가 탄핵을 당하거나 스스로 물러나더라도 브라질은 쉽게 안정을 찾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호세프를 권좌에서 밀어낸다고 해서 브라질의 정치적인 혼란이 정리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 그만큼 상황이 그리 녹록하지 않다. 전임자인 루이스 룰라 다시우바 전 대통령이나 테메르 부통령을 비롯한 주요 정치인의 상당수가 현재 뇌물 수수 혐의를 받고 있는 등 리더십과 도덕성에 상처를 입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AP통신은 “브라질은 마땅한 대안도 없는 상황에서 호세프 탄핵 찬성파와 반대파로 나뉘어 민심 분열이 가속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브라질이 표류한다고 덕 볼 나라도 없다.
외신들도 비관적인 전망 일색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호세프가 탄핵 여부와 무관하게 브라질 정국은 안정되기 힘들다’라고 전망하고 ‘최악의 인플레이션, 대량 실업을 불러온 브라질의 허약한 경제 체질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대대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다: 룰라 집권 전 브라질은 희망이 없어 보였다. 빈부격차가 커지는 가운데 브라질 사회의 근본적인 모순이 나아질 조짐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브라질은 2만6000명 정도의 대농장주들이 전체 토지의 46%를 차지하고 있는 소수 부호의 나라다. 상당수 농민은 농민들은 대농장화와 군부통치 시절 시작된 산업화로 대도시 빈민이 됐다. 여기에 아마존을 비롯한 전국적인 국토개발로 근거지를 잃은 사람도 적지 않다. 이들을 빈곤층에서 탈출시키는 것이 정권의 지상목표가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2003년 노동자 출신의 룰라가 첫 좌파 대통령에 올라 경제부흥을 이루면서 브라질은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룰라는 신자유정책을 따른다고 경제 불개입주의를 천명했던 전임 카르도주 보수당 정권과 달리 성장촉진계획(PAC)을 비롯한 정부가 개입하는 경제성장 정책을 추구했다. 그 결과 2010년 7%라는 놀라운 성장률을 기록할 수 있었다. 룰라 집권기 브라질은 외채의 덫에 걸린 남미의 제3세계 국가에서 세계 경제무대의 당당한 일원이 됐다. 2014년 월드컵, 2016년 리우 올림픽 등이 이 시기의 자신감을 바탕으로 유치한 국제 행사다.
룰라는 사회적으로는 빈곤 퇴치를 핵심 정책으로 삼아 이를 위한 공공부조 정책과 최저임금 인상 정책을 추진했다. 그 결과 3000만 명이 빈곤층을 탈출했으며 2003년 1억300만이던 중산층이 2009년 1억5200만 명으로 50% 늘어났다. 가난한 계층에게 기본적인 사회보장을 해주면서 ‘사회적 연대를 기반으로 하는 공동체 경제’를 추구한 결과다. 2011년 1월 후계자인 호세프가 대통령을 맡아 룰라의 정책을 계승하고 있다. 문제는 연립정부 내부의 갈등과 권력 투쟁을 매끄럽게 처리하지 못한 점이다. 브라질의 상황은 전형적으로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다민족·다문화 장점 못 살리고 빈부격차 만연: 브라질은 굴곡이 많은 남미에서도 독특한 나라다. 인구가 2억이 넘어 남미에서 가장 큰 나라인데, 남미대륙에서 유일하게 스페인어가 아닌 포르투갈어를 쓴다. 포르투갈은 신대륙 발견에 앞장서서 초기에 식민지 개척에 나선 국가다. 스페인과 경쟁적으로 식민지 정복에 나섰는데 아메리카 대륙에는 브라질만 식민지로 보유했다.
브라질은 사실 오랜 세월을 두고 전 세계에서 이민을 받았다. 현재 브라질은 세계 최대의 다민족·다문화 국가의 하나다. 미국과 달리 인종차별의 잔혹한 역사나 전통이 별로 없어 문명사적으로 이상적인 다문화 국가로도 불린다. 인종의 용광로라기보다 피부색에 개의치 않고 서로 공존하는 자유로운 인종평등 사회로 분석된다.
인구 비율도 독특하다. 브랑쿠라고 불리는 백인이 47.7%라 가장 많지만 파르두라고 불리는 혼혈인, 또는 갈색인종도 43.13%로 비슷한 비율이다. 육안으로 보면 브라질 유명 축구 선수의 상당수는 여기에 해당한다. 호나우두·호나우지뉴·네이마르 등이 여기에 속한다. 카카 같은 백인 선수도 있다. 뿐만아니라 네그루라고 불리는 흑인이 7.61%이고, 노랗다 또는 황인종이라는 뜻의 아마렐루로 불리는 동아시아계도 0.43%가 있다. 일본과 한국에서 이민을 많이 간 나라이기도 하다. 일본의 프로레슬러로 1976년 프로권투 챔피언 무함마드 알리와 대결해서 유명해진 안토니오 이노키도 브라질 이민 출신으로 귀국해 일본에서 활동해왔다. 참의원도 지내고 북한도 방문하면서 유명해진 인물이다. 일본 이름은 이노키 간지라고 하는데 어릴 때 가난 때문에 고향 오키나와를 떠나 브라질로 이민을 떠났다가 한국계 레슬링 선수 역도산의 추천으로 일본으로 귀국해 활동했다.
세계 7위의 경제대국이라고 하지만, 인구가 2억이나 되다 보니 1인당 GDP는 1만 달러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국가 지원, 사회적 연대, 경제개발 등으로 빈부격차를 상당히 줄였는데도 여전히 빈민이 많고 이들의 정치적 위세도 대단하다. 이들은 지난 월드컵을 앞두고 100억 달러가 넘는 개최 비용을 가난구제에 쓰라고 격렬한 사위를 벌였다.
식민지배에서 부패하고 무능한 군사정권으로: 브라질의 역사는 질곡의 연속이었다. 이 나라의 근대사는 1500년 포르투갈인이 들어오면서 시작됐다. 그 전에 브라질 땅에는 주목할만한 문명이나 국가 조직이 없었다. 브라질에 정착한 포르투갈인은 값비싼 염료 무역으로 부를 쌓았다. 브라질이라는 이름 자체가 유럽에서 고가로 팔리던 붉은색 염료를 채취할 수 있는 ‘파우 브라질’이라는 나무에서 비롯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염료 채취가 시들해지자 사탕수수, 금광, 커피 등 주로 농산물, 광산물 위주로 산업이 발달했다.
이 나라의 역사는 놀라운 사건으로 가득하다. 가장 독특한 사건이 전 세계 식민지 중 유일하게 본국 수도를 유치했다는 점이다. 포르투갈 왕국은 19세기 들어 영국과 동맹이었다. 교역을 통해 상호 상당한 이익을 취했다. 일부 영국인들은 포르투갈에 정착해 포트와인 와이너리를 운영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코크번’을 비롯한 영어 브랜드의 포르투갈산 명문 포트와인은 바로 이들의 후손이 만들고 있는 제품이다. 포트와인은 포도주에 다량의 설탕을 넣고 후숙해 포도주의 향과 맛, 그리고 알코올 도수를 강화한 40도짜리 술이다. 포트(Port)라는 술 종류 이름 자체가 포르투갈의 포르투 지방에서 나온 것이다. 포르투갈이라는 나라 이름도 바로 이 포르투에서 유래했다.
영국과 숙적이던 프랑스의 나폴레옹 황제의 입장에선 포르투갈은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다. 그 결과 1808년 프랑스가 스페인을 거쳐 포르투갈을 침공했다. 그러자 포르투갈 왕실은 모두가 깜짝 놀랄 결정을 했다. 수도를 리스본에서 대서양 건너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로 임시 이전한 것이다. 식민지로 수도를 옮긴 것은 세계사에서 전례가 없는 일이다. 당시 포르투갈 군주는 정신질환을 앓던 마리아 1세(1734~1816, 재위 1777~1816) 여왕이었는데 아들 주앙(1767~1826)이 1799년부터 섭정왕자로서 통치하고 있었다.
주앙은 영국이 나폴레옹을 물리치자 본국으로 귀환했다. 하지만 나폴레옹이 엘바 섬을 탈출하자 또 다시 대서양을 건넜다. 1815년에는 아예 나라 이름을 ‘포르투갈-브라질-알가르베스 연합왕국’으로 바꾸고 리우데자네이루를 정식 수도로 삼았다(알가르베스는 포르투갈 남부지방). 브라질은 식민지가 아닌 연합왕국의 중심지가 됐다. 주앙은 1816년 어머니인 여왕이 세상을 떠나자 브라질에서 연합왕국의 국왕 주앙 6세로 즉위했다.
보수주의자였던 주앙 6세는 1820년 본국에서 자유주의자 혁명이 일어나자 급거 귀국했다. 돌아가서 진압하기 위해서였다. 브라질에 남아 섭정을 맡은 아들 페드루는 부왕과 달랐다. 자유주의의 물결에 긍정적이었다. 게다가 브라질의 엘리트 계층은 이미 독자 국가를 세울 준비가 돼 있었다. 페드루는 이들과 함께 1822년 독립을 선언하고 브라질 제국을 세워 초대 황제에 올랐다. 자유주의를 옹호했던 브라질 초대 황제는 의회를 만들고 입헌군주제를 받아들였으며 1824년에는 헌법도 반포했다. 브라질은 남미 대륙에서 처음으로 군주국으로 독립한 것은 물론 ‘제국’이라는 이름을 붙인 유일한 나라가 됐다. 1825년 본국의 주앙 6세도 마지못해 독립을 승인했다. 이로써 브라질은 아무런 외교적 문제없이 순조롭게 독립국이 됐다. 브라질 제국은 2대 69년 간 유지됐다. 브라질 제국을 전복시킨 것은 파워엘리트의 한 축을 이루던 군인들이었다. 이들은 1889년 군사쿠데타로 브라질 제국을 무너뜨리고 ‘브라질 합중공화국’을 새롭게 세웠다. 브라질 최초의 공화국이다. 이 이름은 1967년 브라질 연방공화국으로 바뀌어 지금에 이른다.
바르가스의 개발독재에서 중도 좌파 집권으로: 두고두고 남미를 괴롭힌 쿠데타와 군부독재는 이렇게 브라질에서 시작됐다. 1930년 쿠데타로 집권한 제툴리우 바르가스(1882~1954)는 브라질 군부독재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현재의 브라질 국가 형태의 기본 틀을 만든 인물이 바로 바르가스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는 30~45년 대통령을 지내면서 경제성장을 이뤄 인기가 높았다. 이를 통해 ‘국가 주도의 독재적 경제발전 우선주의’라는 브라질 체제의 특성을 이뤘다. 바르가스는 브라질을 상징하는 축구와 삼바 축제로 국민 통합을 시도했다.
바르가스는 극좌와 극우 모두의 공격을 받았다. 1935년 공산주의자, 1938년 파시스트가 쿠데타를 시도했다. 결국 1945년 또 다른 쿠데타로 밀려났다.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는 말처럼 됐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바르가스는 오뚜기였다. 1950년 브라질 역사상 최초로 치러진 민주선거에서 민선 1호 대통령에 당선한 것이다. 경제성장과 축구, 삼바로 상징되는 바르가스의 시대를 그리워한 브라질 국민이 그만큼 많았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바르가스는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다. 1954년 경제난과 측근 비리로 사임 압박을 받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파란이 많기는 브라질이나 바르가스나 매한가지다. 1964년 또 쿠데타가 발생해 민정이 무너지고 카스텔로 브랑코 장군이 집권했다. 브랑코의 군부독재는 무능했으며 비도덕적이었다. 결국 국민의 외면 속에 무너졌다. 1985년 민정 이양이 이뤄졌고 우파의 집권이 이어졌다.
2003년 노동자 출신의 룰라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첫 좌파 정권을 이뤘다. 그는 전임 바르도주 정권이 짜놓은 경제개발 계획을 극빈층을 줄이는 방향으로 조금 수정한 후 계속 추진했다. 중도 좌파 행보다. 실용 정치일 수도 있다. 국민만 잘 살게 된다면 이데올로기는 유보할 수 있다는, 브라질판 ‘백묘 흑묘’ 정치로 평가할 수도 있다. 그 결과 극빈층도 줄이고 경제 부흥도 이룰 수 있었다. 그의 재임 중 브라질의 경제 규모는 세계 6위로 올라갔다. 2011년부터는 후계자인 호세프가 바통을 이어 받았다. 하지만 지금 탄핵 정국에 이르면서 브라질은 앞이 보지 않는 절망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브라질 역사를 살펴보면 정치가 경제 정책을 제대로 뒷받침할 때 제대로 된 경제발전과 빈민층 감소가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정치가 경제·사회 발전은 도외시하고 오로지 권력 투쟁으로 치닫는 상황이다. 그 결과는 올해 안에 드러난다. 2016년 리우 올림픽이 어떻게 치러지고 브라질 경제가 어떻게 될지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브라질은 21세기 정치의 반면교사가 될 것인가.
- 채인택 중앙일보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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