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메이저 대회 행운의 우승 베스트 10] 골프의 신이 점지한 자는 따로 있다
[골프 메이저 대회 행운의 우승 베스트 10] 골프의 신이 점지한 자는 따로 있다
골프 대회에서, 그중에서도 메이저 대회에서의 우승은 실력만으로 가능한 것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가끔 천운도 따라야 한다. 상대방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통해서 손쉽게 트로피를 쟁취하기도 한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흑인 선수 재키 로빈슨을 발굴하고 대성시킨 브루클린 다저스(현 LA 다저스)의 전설적인 단장 브랜치 재키의 명언도 되새길 필요가 있다. ‘행운은 그것을 계획한 사람에게만 찾아온다(Luck is the residue of design)’. 얼마 전 끝난 마스터스에서 잉글랜드의 대니 윌렛은 3타차의 성적으로 우승했다. ‘골든보이’로 대회 2연패가 예상되던 조던 스피스의 12번 홀 쿼드러풀 보기가 너무나 의외의 참사지만, 그렇다고 해서 윌렛의 플레이가 평가절하될 수는 없다. 여러 메이저 대회에서 짜릿하면서도 행운 가득한 우승 베스트 10을 소개한다.
1위. 프레드 커플스(1992년 마스터스): 1992년 프레드 커플스는 세계 랭킹 1위에 올라 마스터스에 출전했다. 출중한 기량을 보인 커플스는 마지막 날 아멘코너의 한 가운데 파3 12번 홀에서 행운의 여신을 만난다. 톰 와이스코프가 13타를 치기도 한 홀이다. 올해 마스터스에서 조던 스피스가 무려 7타를 친 이 홀에서 커플스의 티샷 역시 짧았다. 십중 팔구는 그런 경사에서 굴러 내려와 래(Rae)의 개울물 속으로 매몰차게 퐁당 빠진다. 하지만 커플스의 볼은 잠깐 구르더니 경사지에 멈춰 섰다. 얇은 잔디 잎의 스크럼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상황이었으나, 의외로 볼은 커플스가 와서 세컨드 샷을 할 때까지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홀에서 업-다운으로 파를 지켜낸 커플스는 마스터스 첫 승을 노리던 레이몬드 플로이드를 2타차로 제치고 13언더파로 그린재킷을 처음 입었다. 여느 때 같은 상황이라면 그 홀에서 벌타를 받고 드롭존에서 3타째를 쳐야 했으니 그린재킷의 주인공은 바뀌었을 상황이었다.
2위. 리 잰슨(1998년 US오픈): 리 잰슨은 1998년 샌프란시스코의 올림픽클럽에서 열린 US오픈에서 페인 스튜어트와 피말리는 한 타 승부를 벌이고 있었다. 스튜어트의 마지막 홀 버디 퍼팅이 홀컵을 돌아나오는 바람에 한 타 앞선 잰슨이 그대로 통산 2승째를 거두었다. 하지만 실은 그날 5번 홀에서 징조가 보였다. 그린 뒤에 있는 큰 나무 구석에 잰슨의 볼이 박혀 있었다. 찍어 누르듯이 한 칩샷이었는데 볼은 신기하게도 쑥 튀어오르더니 나무를 탈출해 홀컵에 들어갔다. 12번 홀에서는 스튜어트가 친 볼이 페어웨이 한 가운데를 잘 갈랐다. 하지만 막상 볼이 놓인 지점에 가보니 커다란 디봇에 모래가 깔려 있는 곳이었다. 기막히게 잘 친 샷이 하필이면 디봇 안에 놓여 있었다. 흔히들 디봇을 ‘세상에서 가장 작은 해저드’라고도 한다. 스튜어트가 한 샷은 그린을 놓쳤고 그 홀 스코어는 보기가 됐다. 그린 브레이크가 까다로웠지만 잰슨은 그 홀에서 선두로 뛰어오른 후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
3위. 타이거 우즈(2000년 PGA챔피언십): 타이거 우즈는 타이거 슬램을 달성하는 세 번째 관문이었던 2000년 8월 켄터키 루이빌의 발할라 골프장에서 열린 PGA챔피언십에서 저니맨 밥 메이를 만나 연장전 3홀 플레이오프에 들어갔다. 연장 마지막 홀이던 18번 홀에서 티샷이 훅이 나면서 페어웨이 왼쪽으로 날아갔다. 볼은 나무를 맞히는가 싶더니 TV중계 카메라에서 사라졌고, 잠시 후에 카트 패스로 바운스됐다. 다행히 칠 수 있는 위치로 굴러간 후 멈췄다. 한 타 앞서 있지만 위기에 빠질 수도 있었던 우즈는 이 홀에서 파를 잡으면서 결국 한 타차로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당시 나뭇가지나 갤러리 중 누군가에게 맞고 도로 들어왔을 수도 있고, 혹은 골프의 신이 볼을 안으로 던졌을 수도 있겠지만 미스터리로 남았다.
4위. 잭 니클러스(1970년 브리티시오픈): 메이저 대회 18승의 위업을 기록한 잭 니클러스에게서 행운의 힘이 작용한 대회를 굳이 하나 뽑는다면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에서 열린 1970년의 브리티시오픈이다. 당시 이 대회는 US오픈처럼 동타일 경우 18홀 연장전 방식을 시행하고 있었다. 잭 니클러스가 정규 대회를 마치고 나니 5언더파 283타였다. 하지만 한 타차 선두였던 더그 샌더스가 마지막 홀에서 45cm 거리에서 파 퍼팅을 놓치면서 스리퍼트를 해 니클러스와 동타가 되면서 연장전에 들어가야 했다. 이튿날 두 선수의 플레이오프 경기가 속개되었고 치열한 승부를 벌였으나 마지막 홀에서 니클러스는 샌더스를 한 타차로 누르고 클라렛 저그를 번쩍 들어올렸다. 샌더스는 정규 대회에서 45cm 거리의 퍼트를 넣지 못한 뒤로 한동안 공황상태에 빠졌다.
5위. 닉 팔도(1989년 마스터스): 닉 팔도는 마스터스에서 그린재킷을 세 번이나 입었다. 그중 두 번은 상대방의 불행을 통한 반사이익 때문이라고도 한다. 1996년은 호주의 그렉 노먼이 마지막 날 6타차 선두에서 출발했으나 라운드를 78타로 마쳤을 때는 팔도에 한참이나 뒤져 있었다. 그날 노먼은 컨디션이 최악이었다. 반면, 최고의 컨디션이었던 팔도는 마지막 라운드에서 5언더파 67타를 쳤다. 이렇듯 96년은 본인이 잘 친 덕이지만, 1989년의 첫 우승은 아무래도 운의 덕을 봤다. 최종 합계 5언더파로 스콧 호크와 10번 홀에서 연장전 첫 홀을 시작했다. 이때 호크는 고작 75cm 거리에서 우승 버디 퍼트를 놓쳤다. 남자 골프 메이저 역사상 가장 짧은 우승 퍼팅 실수였다. 호크는 “당시에 총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게 다행”이라고 털어놨을 정도로 멘탈이 붕괴되는 상황을 겪었다. 팔도는 18번 홀에서 이어진 두 번째 플레이오프 홀에서 7m 버디를 성공시키면서 그린재킷을 차지했다.
6위. 폴 로리(1999년 브리티시오픈): 마지막 날에 선두와 10타나 벌어져 있으면 우승은 감히 꿈도 꿀 수 없다. 1999년 카누스티에서 열린 브리티시오픈에 출전한 스코틀랜드의 폴 로리가 그랬다. 3라운드 지나 마지막 날의 선두는 프랑스인 장 방 드 벨드였다. 마지막 홀까지 벨드는 3타차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이제 클라렛 저그는 벨드가 따놓은 상황. 하지만 18번 홀에서 러프와 개천에 빠지기를 반복한 벨드는 결국 트리플 보기를 적어내고 만다. 벨드의 최종 타수는 6오버파 290타로 폴 로리, 저스틴 레너드와 연장전을 벌여야 했다. 이미 기진맥진하고 혼이 반쯤이나 나간 프랑스 선수를 로리가 제치기란 너무나도 쉬웠다. 세계 랭킹 159위인 로리는 브리티시오픈 사상 처음으로 최종 예선전을 거쳐 출전권을 얻어 정상에 오른 선수였다. 그 우승으로 인해 세계 랭킹은 111계단 뛰어 48위가 되었다. 그해 11월로 유러피언투어 풀시드 기한 만료 위기에 몰렸던 로리는 우승 한방으로 인생 역전 드라마를 썼다. 하지만 이후 로리에게 우승 행운은 더 없었다.
7위. 벤 호건(1950년 US오픈): 집념의 선수 아이콘인 벤 호건은 1949년에 끔찍한 자동차 충돌 사고로 전신이 망가졌다. 하지만 16개월 후 극적으로 재활에 성공, 펜실베이니아 아드모어 메리온 골프장에서 열린 1950년 US오픈을 영웅적인 우승 스토리로 만들었다. 당시 본 게임을 마치자 7오버파 287타로 로이드 맹그럼, 조지 파지오와 세 명이 플레이오프 18홀을 나가게 됐다. 16번 홀까지 벤 호건은 맹그럼에 한 타 앞섰다. 그린에 올라갔을 때 맹그럼은 볼을 집어든 후 무심결에 볼 위에 붙은 벌레를 떼어냈다. 하지만 당시 골프룰에서는 그린에서도 볼을 닦지 못하도록 했고, 이를 위반하면 2벌타를 부과했다. 맹그럼은 졸지에 선두와 세 타차로 벌어졌고, 마음이 편안해진 호건이 17번 홀에서 버디를 추가하면서 4타차 우승을 거두게 된다. 지금은 그린에서 볼을 들고 닦아도 된다.
8위. 밥 골비(1968년 마스터스): 밥 골비는 1968년 마스터스의 마지막 라운드 후반을 아주 잘 쳤다. 12, 13번 홀에서 버디를 잡고 15번 홀에서는 이글을 잡고 4라운드를 6언더파 66타로 마친 결과 최종합계 11언더 277타였다. 골비는 당연히 아르헨티나의 로베르토 디 비센조와의 연장전을 예상했다. 생애 처음의 메이저 연장전이었으니 많이 떨렸으리라. 비센조는 남미에서는 무수한 우승을 거둔 최고의 골퍼이자 전년도 브리티시오픈 우승자였다. 그 순간 비센조에게 날벼락이 떨어졌다. 이날 7언더파 65타를 쳤으나 스코어를 한 타 더 적어넣었기 때문이다. 파4 17번 홀에서 버디를 잡았으나 마커였던 토미 아론이 잘못 계산해 파로 적은 스코어카드를 냈고, 비센조는 아무 생각없이 사인을 하고 만다. 골프룰상 더 많은 타수에 사인하면 그걸로 끝이다. 뒤늦게 깨달았지만 만시지탄이었다. 연장전 없이 그린재킷을 입은 골비는 이후 대회에서 우승이 없었지만, 비센조는 그 대회에서 참혹한 경험을 한 뒤로도 꾸준히 우승을 쌓아 PGA투어에서 8승, 생애 총 230승의 위업을 남겼다.
9위. 데이비드 톰스(2001년 PGA챔피언십): PGA투어 13승을 거둔 데이비드 톰스는 지난 2001년 애틀란타 애슬레틱클럽에서 열린 PGA챔피언십 마지막 홀에서 레이업을 하고 업앤다운을 성공시켜 15언더파 265타로 우승했다. 필 미켈슨을 한 타 차로 이긴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인데, 톰스는 3라운드 파3 15번 홀에서 홀인원을 하면서 우승을 예감했을 법하다. 톰스는 243야드로 세팅된 이 홀에서 5번 우드를 잡고 쳤다. 볼이 그린을 두 번 튕겨 깃발에 부딪치더니 수직으로 떨어지면서 홀인원이 됐다. 골프 경기에서 볼이 깃대에 맞아 속도가 죽고 주변에 떨어지는 일은 있지만, 맞은 뒤에 홀컵에 들어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심지어 그 볼에는 깃대의 노란 잉크도 묻어 있었다고 한다.
10위. 대런 클라크(2011년 브리티시오픈): 북아일랜드 출신의 베테랑이자 올해 라이더컵 유럽팀 단장인 대런 클라크는 지난 2011년 잉글랜드 로열세인트조지스에서 열린 브리티시오픈에서 처음으로 메이저 대회 우승컵을 올렸다. 마지막 날 클라크가 9번 홀 왼쪽 러프에서 친 낮은 어프로치 샷이 그린에 50야드 앞에 놓인 큰 폿 벙커로 향했다. 거기에 빠진다면 탈출하는 데만 한두 타를 더 까먹어야 할 판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불규칙 바운드 때문인지 지면에서 튀어오른 볼이 그린으로 올라갔다. 클라크는 자신도 겸연쩍은 듯 미소를 지으면서 그 홀에서 투 퍼트로 파를 지켜 선두를 유지했다. 결국 필 미켈슨과 더스틴 존슨을 3타 차이로 제치고 5언더파 275타로 처음으로 클라렛 저그를 품에 안았다. 그는 이런 식의 ‘아일랜드식 행운(Luck of the Irish)’을 종종 경험하는 운 좋은 선수이기도 하다.
- 남화영 헤럴드스포츠 편집부장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1위. 프레드 커플스(1992년 마스터스): 1992년 프레드 커플스는 세계 랭킹 1위에 올라 마스터스에 출전했다. 출중한 기량을 보인 커플스는 마지막 날 아멘코너의 한 가운데 파3 12번 홀에서 행운의 여신을 만난다. 톰 와이스코프가 13타를 치기도 한 홀이다. 올해 마스터스에서 조던 스피스가 무려 7타를 친 이 홀에서 커플스의 티샷 역시 짧았다. 십중 팔구는 그런 경사에서 굴러 내려와 래(Rae)의 개울물 속으로 매몰차게 퐁당 빠진다. 하지만 커플스의 볼은 잠깐 구르더니 경사지에 멈춰 섰다. 얇은 잔디 잎의 스크럼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상황이었으나, 의외로 볼은 커플스가 와서 세컨드 샷을 할 때까지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홀에서 업-다운으로 파를 지켜낸 커플스는 마스터스 첫 승을 노리던 레이몬드 플로이드를 2타차로 제치고 13언더파로 그린재킷을 처음 입었다. 여느 때 같은 상황이라면 그 홀에서 벌타를 받고 드롭존에서 3타째를 쳐야 했으니 그린재킷의 주인공은 바뀌었을 상황이었다.
2위. 리 잰슨(1998년 US오픈): 리 잰슨은 1998년 샌프란시스코의 올림픽클럽에서 열린 US오픈에서 페인 스튜어트와 피말리는 한 타 승부를 벌이고 있었다. 스튜어트의 마지막 홀 버디 퍼팅이 홀컵을 돌아나오는 바람에 한 타 앞선 잰슨이 그대로 통산 2승째를 거두었다. 하지만 실은 그날 5번 홀에서 징조가 보였다. 그린 뒤에 있는 큰 나무 구석에 잰슨의 볼이 박혀 있었다. 찍어 누르듯이 한 칩샷이었는데 볼은 신기하게도 쑥 튀어오르더니 나무를 탈출해 홀컵에 들어갔다. 12번 홀에서는 스튜어트가 친 볼이 페어웨이 한 가운데를 잘 갈랐다. 하지만 막상 볼이 놓인 지점에 가보니 커다란 디봇에 모래가 깔려 있는 곳이었다. 기막히게 잘 친 샷이 하필이면 디봇 안에 놓여 있었다. 흔히들 디봇을 ‘세상에서 가장 작은 해저드’라고도 한다. 스튜어트가 한 샷은 그린을 놓쳤고 그 홀 스코어는 보기가 됐다. 그린 브레이크가 까다로웠지만 잰슨은 그 홀에서 선두로 뛰어오른 후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
3위. 타이거 우즈(2000년 PGA챔피언십): 타이거 우즈는 타이거 슬램을 달성하는 세 번째 관문이었던 2000년 8월 켄터키 루이빌의 발할라 골프장에서 열린 PGA챔피언십에서 저니맨 밥 메이를 만나 연장전 3홀 플레이오프에 들어갔다. 연장 마지막 홀이던 18번 홀에서 티샷이 훅이 나면서 페어웨이 왼쪽으로 날아갔다. 볼은 나무를 맞히는가 싶더니 TV중계 카메라에서 사라졌고, 잠시 후에 카트 패스로 바운스됐다. 다행히 칠 수 있는 위치로 굴러간 후 멈췄다. 한 타 앞서 있지만 위기에 빠질 수도 있었던 우즈는 이 홀에서 파를 잡으면서 결국 한 타차로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당시 나뭇가지나 갤러리 중 누군가에게 맞고 도로 들어왔을 수도 있고, 혹은 골프의 신이 볼을 안으로 던졌을 수도 있겠지만 미스터리로 남았다.
4위. 잭 니클러스(1970년 브리티시오픈): 메이저 대회 18승의 위업을 기록한 잭 니클러스에게서 행운의 힘이 작용한 대회를 굳이 하나 뽑는다면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에서 열린 1970년의 브리티시오픈이다. 당시 이 대회는 US오픈처럼 동타일 경우 18홀 연장전 방식을 시행하고 있었다. 잭 니클러스가 정규 대회를 마치고 나니 5언더파 283타였다. 하지만 한 타차 선두였던 더그 샌더스가 마지막 홀에서 45cm 거리에서 파 퍼팅을 놓치면서 스리퍼트를 해 니클러스와 동타가 되면서 연장전에 들어가야 했다. 이튿날 두 선수의 플레이오프 경기가 속개되었고 치열한 승부를 벌였으나 마지막 홀에서 니클러스는 샌더스를 한 타차로 누르고 클라렛 저그를 번쩍 들어올렸다. 샌더스는 정규 대회에서 45cm 거리의 퍼트를 넣지 못한 뒤로 한동안 공황상태에 빠졌다.
5위. 닉 팔도(1989년 마스터스): 닉 팔도는 마스터스에서 그린재킷을 세 번이나 입었다. 그중 두 번은 상대방의 불행을 통한 반사이익 때문이라고도 한다. 1996년은 호주의 그렉 노먼이 마지막 날 6타차 선두에서 출발했으나 라운드를 78타로 마쳤을 때는 팔도에 한참이나 뒤져 있었다. 그날 노먼은 컨디션이 최악이었다. 반면, 최고의 컨디션이었던 팔도는 마지막 라운드에서 5언더파 67타를 쳤다. 이렇듯 96년은 본인이 잘 친 덕이지만, 1989년의 첫 우승은 아무래도 운의 덕을 봤다. 최종 합계 5언더파로 스콧 호크와 10번 홀에서 연장전 첫 홀을 시작했다. 이때 호크는 고작 75cm 거리에서 우승 버디 퍼트를 놓쳤다. 남자 골프 메이저 역사상 가장 짧은 우승 퍼팅 실수였다. 호크는 “당시에 총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게 다행”이라고 털어놨을 정도로 멘탈이 붕괴되는 상황을 겪었다. 팔도는 18번 홀에서 이어진 두 번째 플레이오프 홀에서 7m 버디를 성공시키면서 그린재킷을 차지했다.
6위. 폴 로리(1999년 브리티시오픈): 마지막 날에 선두와 10타나 벌어져 있으면 우승은 감히 꿈도 꿀 수 없다. 1999년 카누스티에서 열린 브리티시오픈에 출전한 스코틀랜드의 폴 로리가 그랬다. 3라운드 지나 마지막 날의 선두는 프랑스인 장 방 드 벨드였다. 마지막 홀까지 벨드는 3타차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이제 클라렛 저그는 벨드가 따놓은 상황. 하지만 18번 홀에서 러프와 개천에 빠지기를 반복한 벨드는 결국 트리플 보기를 적어내고 만다. 벨드의 최종 타수는 6오버파 290타로 폴 로리, 저스틴 레너드와 연장전을 벌여야 했다. 이미 기진맥진하고 혼이 반쯤이나 나간 프랑스 선수를 로리가 제치기란 너무나도 쉬웠다. 세계 랭킹 159위인 로리는 브리티시오픈 사상 처음으로 최종 예선전을 거쳐 출전권을 얻어 정상에 오른 선수였다. 그 우승으로 인해 세계 랭킹은 111계단 뛰어 48위가 되었다. 그해 11월로 유러피언투어 풀시드 기한 만료 위기에 몰렸던 로리는 우승 한방으로 인생 역전 드라마를 썼다. 하지만 이후 로리에게 우승 행운은 더 없었다.
7위. 벤 호건(1950년 US오픈): 집념의 선수 아이콘인 벤 호건은 1949년에 끔찍한 자동차 충돌 사고로 전신이 망가졌다. 하지만 16개월 후 극적으로 재활에 성공, 펜실베이니아 아드모어 메리온 골프장에서 열린 1950년 US오픈을 영웅적인 우승 스토리로 만들었다. 당시 본 게임을 마치자 7오버파 287타로 로이드 맹그럼, 조지 파지오와 세 명이 플레이오프 18홀을 나가게 됐다. 16번 홀까지 벤 호건은 맹그럼에 한 타 앞섰다. 그린에 올라갔을 때 맹그럼은 볼을 집어든 후 무심결에 볼 위에 붙은 벌레를 떼어냈다. 하지만 당시 골프룰에서는 그린에서도 볼을 닦지 못하도록 했고, 이를 위반하면 2벌타를 부과했다. 맹그럼은 졸지에 선두와 세 타차로 벌어졌고, 마음이 편안해진 호건이 17번 홀에서 버디를 추가하면서 4타차 우승을 거두게 된다. 지금은 그린에서 볼을 들고 닦아도 된다.
8위. 밥 골비(1968년 마스터스): 밥 골비는 1968년 마스터스의 마지막 라운드 후반을 아주 잘 쳤다. 12, 13번 홀에서 버디를 잡고 15번 홀에서는 이글을 잡고 4라운드를 6언더파 66타로 마친 결과 최종합계 11언더 277타였다. 골비는 당연히 아르헨티나의 로베르토 디 비센조와의 연장전을 예상했다. 생애 처음의 메이저 연장전이었으니 많이 떨렸으리라. 비센조는 남미에서는 무수한 우승을 거둔 최고의 골퍼이자 전년도 브리티시오픈 우승자였다. 그 순간 비센조에게 날벼락이 떨어졌다. 이날 7언더파 65타를 쳤으나 스코어를 한 타 더 적어넣었기 때문이다. 파4 17번 홀에서 버디를 잡았으나 마커였던 토미 아론이 잘못 계산해 파로 적은 스코어카드를 냈고, 비센조는 아무 생각없이 사인을 하고 만다. 골프룰상 더 많은 타수에 사인하면 그걸로 끝이다. 뒤늦게 깨달았지만 만시지탄이었다. 연장전 없이 그린재킷을 입은 골비는 이후 대회에서 우승이 없었지만, 비센조는 그 대회에서 참혹한 경험을 한 뒤로도 꾸준히 우승을 쌓아 PGA투어에서 8승, 생애 총 230승의 위업을 남겼다.
9위. 데이비드 톰스(2001년 PGA챔피언십): PGA투어 13승을 거둔 데이비드 톰스는 지난 2001년 애틀란타 애슬레틱클럽에서 열린 PGA챔피언십 마지막 홀에서 레이업을 하고 업앤다운을 성공시켜 15언더파 265타로 우승했다. 필 미켈슨을 한 타 차로 이긴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인데, 톰스는 3라운드 파3 15번 홀에서 홀인원을 하면서 우승을 예감했을 법하다. 톰스는 243야드로 세팅된 이 홀에서 5번 우드를 잡고 쳤다. 볼이 그린을 두 번 튕겨 깃발에 부딪치더니 수직으로 떨어지면서 홀인원이 됐다. 골프 경기에서 볼이 깃대에 맞아 속도가 죽고 주변에 떨어지는 일은 있지만, 맞은 뒤에 홀컵에 들어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심지어 그 볼에는 깃대의 노란 잉크도 묻어 있었다고 한다.
10위. 대런 클라크(2011년 브리티시오픈): 북아일랜드 출신의 베테랑이자 올해 라이더컵 유럽팀 단장인 대런 클라크는 지난 2011년 잉글랜드 로열세인트조지스에서 열린 브리티시오픈에서 처음으로 메이저 대회 우승컵을 올렸다. 마지막 날 클라크가 9번 홀 왼쪽 러프에서 친 낮은 어프로치 샷이 그린에 50야드 앞에 놓인 큰 폿 벙커로 향했다. 거기에 빠진다면 탈출하는 데만 한두 타를 더 까먹어야 할 판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불규칙 바운드 때문인지 지면에서 튀어오른 볼이 그린으로 올라갔다. 클라크는 자신도 겸연쩍은 듯 미소를 지으면서 그 홀에서 투 퍼트로 파를 지켜 선두를 유지했다. 결국 필 미켈슨과 더스틴 존슨을 3타 차이로 제치고 5언더파 275타로 처음으로 클라렛 저그를 품에 안았다. 그는 이런 식의 ‘아일랜드식 행운(Luck of the Irish)’을 종종 경험하는 운 좋은 선수이기도 하다.
- 남화영 헤럴드스포츠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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