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사 90년 유한양행 이정희 사장
창사 90년 유한양행 이정희 사장
포브스코리아는 한국경영사학회와 공동으로 올해 ‘한국의 기업가정신을 찾아서’ 시리즈를 진행한다. 한국 대표 기업들의 창업 주역들을 연구해온 학자들이 기업의 창업주와 대표를 직접 만나 도전과 혁신으로 기업을 일궈낸 기업가정신을 재조명해 어려움에 빠진 경제공동체의 회생에 기여하고자 하는 목적이다. 5월호는 한국의 기업가정신을 대표하는 유한양행이다. 환절기다. 수면 장애와 만성 피로로 체내 리듬이 망가지기 쉬운 때다. 지친 우리 몸 속 리듬을 깨우는 비타민제 가운데 널리 알려진 알약이 바로 ‘삐콤·씨’다. 반백년 넘게 이어온 유한양행의 효자 상품이다. 삐콤·씨가 온가족의 영양제로서 널리 사랑받아 온 배경에는 좋은 제품을 생산해 국민의 건강에 기여한다는 유한양행의 기업철학이 있다.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한국의 기업가정신을 대표하는 고 유일한(柳一韓) 박사가 1926년 미국에서 귀국해 창업한 유한양행이 6월 20일이면 창사 90주년을 맞는다.
지난 4월 14일 오후, 한국 기업사 연구의 권위자인 서문석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가 이정희(65) 유한양행 사장을 찾았다. 서문석(50) 교수는 한국 기업사 연구의 원로로 1974년에 『기업가 유일한에 관한 연구』를 진행한 고 황명수 교수의 제자다. 당시 황 교수가 주도한 연구는 고 유일한 창업주에 대한 국내 최초의 학술적 연구였을 정도로 선도적이었다. 현재 한국경영사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서 교수는 유한양행의 기업가정신을 조명하는 포브스코리아의 이번 기획과 관련해 자문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고, 인터뷰 요청에도 기꺼이 응했다.
서문석 -
제가 수업시간에 한국의 기업가정신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유한양행을 자주 이야기합니다. ‘한국 자본주의에 이런 기업이 있다는 건 행운이다’고 말이죠. 저 자신이 기업사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유일한 창업주의 기업가정신이 어떻게 지금의 유한양행에 스며들어 있는지 직접 눈으로 보고 듣고 싶었습니다. 오늘 이 사장님을 뵈러 오면서도 사장실에 유일한 창업주의 사진이 어디에 어떻게 걸려 있을까. 그게 무척 궁금했는데, 바로 의자 뒤에 걸려있군요.(웃음)
이정희 - 그렇습니다. 골치 아픈 일이나 안 풀리는 일이 있을 때 뒤로 돌아서 앉으면 바로 보이도록 의자 뒤에 걸어놓고 있습니다.(웃음) 아시다시피 유한양행은 오너가 없는 전문경영인 체제입니다. 그래서 어려운 일이 생길 때는 늘 직원들이랑 의논하고 이사진과 협의해 결론을 내는데, 그래도 답이 안 나올 때가 있어요. 그 때 유일한 박사의 사진을 들여다보면 답이 딱 나옵니다.(웃음) 예를 들어 이사회가 열리면 갑론을박이 길어지잖습니까! 그때 의견이 갈리고 해답이 난망하면 ‘유일한 박사님이 계셨다면 어떻게 했겠느냐?’, ‘이게 유일한 정신에 맞느냐?’ 그런 질문을 던집니다. 그러면 답이 저절로 나옵니다. 우리 1650명 임직원들 모두가 그렇게 ‘유일한 정신’으로 살고 있습니다. 유일한 박사님은 돌아가셨지만 아직도 우리 회사의 재판관입니다. 한국 기업가정신의 표상인 유일한이 세운 (주)유한양행은 창업주 유일한의 이름을 딴 유한(柳韓)과 세계로 통한다는 뜻의 양행(洋行)을 합친 말이다. 유한양행의 상징인 ‘버들표’는 유 박사의 성에서 착안해 만든 것이다. 유한양행은 지배구조상 개인 소유 기업이 아닌 공익기업에 가깝다. 최대주주는 유한재단(공익재단)과 유한학원(교육사업) 등이다. 창업주 유일한은 생전에 “기업의 소유주는 사회이다. 단지 그 관리를 개인이 할 뿐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정희 사장은『위대한 선각자 유일한 박사』라는 소책자를 손수 엮어서 사람들에게 선물할 정도로 창업주의 경영철학과 기업가정신을 평생동안 소중히 간직하고 발전시켜 왔다. 그는 지난 38년의 회사 생활을 통해 ‘유한맨’이라는 것을 늘 대내외에 자랑스게 밝혀온 기업인이기도 하다.
이정희 사장께서는 유일한 박사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인 1978년에 입사하셨지요. 입사 직후 회사 분위기나 창업주에 대한 인상은 어떠했는지요?
처음엔 저도 ‘뭐 이런 회사가 다 있나?’ 참 특이한 회사라고 생각했죠.(웃음) 지금도 그렇지만 회사에 들어오면 신입사원들에게 처음에 노트 한권을 딱 줍니다. 유한양행을 창립한 이유가 당시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무지·기아·질병 등 3대 적을 물리치기 위함이었다는 것, 일제강점기 때 ‘건강한 국민, 병들지 아니한 국민만이 주권을 누릴 수 있다’는 애국사상으로 세운 제약회사이니까 확고한 국가관을 가지고 좋은 약을 만들어 판매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두 번째, ‘정직이 유한의 영원한 전통이 되어야 한다’는 유일한 박사의 어록을 인용하며 정직을 강조합니다. 기업이 정직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돈 벌어서 세금을 많이 내야 한다고 말하면 신입사원들이 다 웃지요. 그때나 지금이나 세금 많이 내야 한다고 직원들을 독려하는 회사가 어디 있겠습니까!(웃음) 세 번째, ‘기업에서 얻은 이익은 그 기업을 키워준 사회에 다 환원해야 한다’고 교육합니다. 지금은 이게 상식이 됐지만 우리는 90년 전부터 그것을 실천해왔습니다.
창업 초기 뿐만 아니라 이 사장께서 신입사원이었던 1970년대도 유한양행은 뭐가 달라도 확실히 달랐군요.
그렇습니다. 제가 막 입사했을 때 지점장님들이나 선배님들이 하나같이 하는 얘기가 ‘너 정말 좋은 회사 들어왔다’고 그래요. 저희 자랑 같지만 유한양행엔 세 가지가 없습니다. 우선 지역차별, 학력차별이 없습니다. 그 직원이 경상도인지 전라도인지 충청도인지 안 따집니다. SKY대학을 나왔는지, 지방에 있는 대학을 나왔는지 그런 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참고로 저는 지방대학을 나왔습니다. 사장할 사람을 뽑는데도, 입사해서 무슨 업무를 주로 했는지, 엘리트 코스를 밟았는지를 따지는 게 없습니다. 예전엔 주로 재무 분야에서 일한 분들이 사장을 맡았습니다. 지금은 영업 쪽이 많습니다. 저도 영업을 했습니다. 그렇게 당대의 흐름에 따라갑니다.
또 하나, 지금 회사 내에 유일한 박사님의 친인척이 한 명도 없습니다. 71년 유 박사님이 77살로 돌아가시기 3년 전쯤에 아드님을 미리 회사에서 내보냈고, 그 전에 당신의 친인척도 다 내보냈답니다. 그래서 다른 임원이 ‘이건 역차별 아니냐? 능력 있는 사람도 있는데...’ 그랬더니 유 박사님이 ‘내가 만약에 이대로 놔두고 죽으면 이 회사는 아들 편, 뭐 조카 편, 누구 편, 누구 편 해서 이 회사가 과연 얼마나 지탱하겠느냐. 그건 아니다. 그래서 내보낸다.’ 그러셨답니다. 제가 그런 증언을 생존자 분들께 다 들었습니다.
그리고 유일한 박사님은 직원들에 대한 사랑이 정말 각별하신 분이었다고 합니다. 제가 입사하던 그 때도 직원 자녀의 학자금을 대학교까지 다 지원해주었습니다. 자녀가 몇 명이건 대학 등록금까지 지원해주는 회사는 반 세기 전에는 생각도 못할 일입니다. 이런 경영철학을 가진 회사이기에 유한양행에 입사해서 1년 정도 지나면 누구나 유일한 정신에 딱 젖게 됩니다. 그리고 4~5년만 지나면 스스로 ‘나는 유한맨이다’ 하는 얘기를 하고 다닙니다. 이정희 사장의 말처럼 유한양행이 창업 90년을 맞는 지금까지도 가장 큰 성장동력의 하나로 꼽는 것이 바로 직원들의 ‘공동체의식’이다. 현재 유한양행은 75년 노조 설립 이후 단 한차례의 노사분규가 없다. 유한양행의 노사관계는 독특하기까지 하다. 사내에서는 흔히 노사라는 표현대신 ‘노노(勞勞)관계’라고 말한다. 경영진부터 말단사원까지 모두가 노동자, 동등한 회사의 주인이라는 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노조원이든 아니든 유한양행의 모든 직원은 회사의 주주이자 종업원이라는 의식이 공고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 창업주가 선택한 종업원 지주제가 그러한 공동체 의식을 견고히 하는 데 매우 중요한 제도적 역할을 했다. 국내 유수의 대기업들보다도 20~30년을 앞서간 유한양행의 종업원 지주제와 지배구조는 70년대에 이르러 그 꽃을 피우게 된다. 1958년에 공로주 배분 및 자사주 취득 허용 등을 통해 사실상의 종업원 지주제를 도입한 유한양행은 1973년에는 완성된 형태의 ‘사원지주제’를 채택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74년에는 당시 977명이 회사의 주식을 소유한 사원이자 ‘주주’가 된다. 유한양행이 명실상부하게 사원들이 경영하는 공익기업의 기틀을 다지게 된 것이다.
말씀을 듣고 보니 유한양행의 저력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됩니다. 유한양행 직원들은 이미 입사 때부터 하나부터 열까지 유일한 박사의 각오와 철학이 내면에 스며들수 밖에 없는 구조이군요.
유한양행은 제가 입사했던 30여년 전에도 굉장히 앞서가는 회사였습니다. 제가 입사해서 바로 전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제가 대구 출신인데, 연고도 없는 전주로 가게 됐어요. 회사에 갔더니 제 책상에 A4용지 크기의 바인더가 놓여 있더라고요, 지금으로 치면 이게 매뉴얼이에요. 유한양행의 직원으로서의 업무수칙, 영업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노하우라든지 이런 내용이 자세하게 담겨 있었습니다. 당시에도 그렇게 직원교육이 확실했습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제가 요즘 직원 교육에 더 신경을 쓰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창업이후 벌써 90년입니다. 사람이 바뀌어도 이것만큼은 바뀌지 않는다는 유한양행의 정신이 있는가요?
딱 한 가지만 꼽으라면, 유일한 박사님이 강조했던 ‘정직’을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 회사에서는 거짓말하면 많이 혼납니다. 유일한 박사는 철저히 정도경영을 통해 기업이윤을 추구했습니다. 창립 초기 영업망 구축을 위해 만주지역을 둘러보고 왔던 한 임원이 당시 유일한 사장에게 마약중독자들이 많이 늘고 있던 상황을 전하며 헤로인·모르핀 제제가 많이 팔리니 유한도 그 제품을 제조 판매하자고 건의했다고 합니다. 유일한 박사는 이때 불같이 화를 내며 그 임원에게 사표를 쓰라는 불호령을 내렸다지요. 국민의 건강을 지킨다는 제약업자들이 국민 건강을 좀먹어가며 돈을 벌어서는 안된다는 신념이었죠.
저 역시 취임이후 늘 임직원들에게 정직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기업인이라면 국가에 대해, 사회에 대해 거짓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약속한 것은 지켜야 합니다. 회사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실수로 잘못을 저지른 것에 대해선 관대하게 대하지만 고의적인 실수는 덮어두지 않습니다. 우리 회사에서는 ‘저 사람은 정직하지 않은 사람이다’ 이러면 그것을 아주 큰 욕으로 생각합니다.
기업가정신의 요체는 ‘혁신’에 있습니다. 유일한 창업주의 혁신은 어떤 것이고 그 기반은 무엇이라고 보고 계십니까?
유일한 박사의 혁신경영은 당시 신약품개발을 위한 연구·개발(R&D), 그리고 창조적 기업가정신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유일한 박사의 삶 자체가 혁신적인 삶이었습니다. 9살 어린 나이에 도미해서 미시간대학을 졸업하고, GE에 근무했다가 이건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해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듭니다. 라초이(La Choy Co.)라는 식품회사를 친구와 함께 설립했는데, 잘 되던 그 회사를 친구에게 넘겨주고 귀국합니다. 친구가 깜짝 놀라서 왜 귀국하려고 하느냐고 물으니까 ‘돈도 중요하지만 나는 내 조국에 돌아가서 할 일이 있다. 그러니까 네가 정리해 달라.’고 했답니다. 당시 유일한 박사가 귀국할 때 가지고 온 돈이 50만불이었다고 합니다. 지금 돈으로 환산해보면 엄청나게 큰 돈이죠. 1925년, 귀국할 그때가 만 30세 정도밖에 안되는 나이거든요. 아마 당시에 대한민국 제일의 부자였을 겁니다. 국가관과 애국애족의 마음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는 얘기죠.
유일한 선생은 탁월한 사업가였습니다. 사실은 ‘양행’이라는 이름 자체가 개화기의 종합무역회사거든요. 그래서 당시에 어업, 자동차, 화장품 등 다양하게 사업을 하셨어요. 그런점에서 저는 지금의 유한양행 사업분야가 제약 부문에 너무 머물러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혁신을 도모하되 혁신을 이뤄가는 절차는 타당하고 점진적이어야 합니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유한양행은 오너가 없기 때문에 중요 현안에 대해 임직원들이 모두 협의해서 결정합니다. 합리적으로 일처리가 이뤄지니까 잘못된 결정이 일어날 확률은 적지만 기업이 진취적으로 나아가는 데는 조금 어려움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제가 사장 취임 이후 바꾼 게 하나 있는데, 예년에 비해 이사회를 자주 개최하고 있습니다. 평소에 집행이사들과 자주 의논을 하고, 긴급한 현안에 대해 최종적인 의사결정이 필요할 때는 정식 이사회를 열어서 결정합니다. 또 하나, 저는 대주주 분들에게 회사 상황을 자세히 보고해서 회사 경영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유한양행은 1대 주주가 유한재단이고, 유한학원이 2대 주주입니다. 제가 이 분들을 모시고 매분기마다 회사의 경영 상태에 대해서 자세히 보고를 드리고 있습니다. 중요 사안에 대해 전보다 자주 보고를 받게 되니 그 대주주 분들도 저를 믿고 혁신을 추진하는데 힘을 보태주고 계십니다.
창업주의 혁신정신을 이어받아 경영혁신을 추진하고 계신 것으로 압니다. 유한양행을 영속가능한 글로벌기업으로 만들기 위해 어떤 혁신안을 갖고 계시는지요?
제가 지난해 4월 취임사에서 강조한 것이 있어요. 무엇보다 ‘직원들이 행복한 회사를 만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직원들이 행복해야 고객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유한양행의 가장 소중한 자산은 임직원입니다. 저는 직원 스스로가 일터에서 보람있고,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을 때 업무에 최선의 결과를 낳을 수 있고, 이것이 기업의 경영혁신과 새로운 가치장출을 낳을 수 있다는 강한 믿음으로 행복한 회사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를 위한 큰 두 축이 직원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환경과 제도의 개선, 그리고 회사의 영속적인 성장 역량 확보를 위한 사업구조의 고도화와 다변화입니다. 직원들과의 열린 소통을 중시하는 다양한 채널을 확보하기 위해 사원운영위원회, 홍보위원회, 연구위원회, 신제품 출품 전략 위원회를 운영해서 건의사항이 있을 시에는 해당부서의 빠른 검토 후 바로 제도와 방편을 개선하는 피드백 시스템도 마련했습니다.
저는 미래를 준비하는 큰 축이 인재양성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인재 양성 교육에 있어서만은 비용과 자원을 아끼지 않습니다. 올해도 작년 예산의 두 배 이상을 교육예산에 투여할 예정입니다. 우선 우리 내부의 소프트웨어를 강화하기 위해 유한양행 연구소 옆에 비어있는 7층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연수원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미래 영속 성장의 또 다른 축으로 사업구조의 고도화와 다각화를 적극 추진해 가고 있습니다. 신규 사업 검토를 위한 미래전략실을 신설하고 신규 사업의 타당성을 검토하기 위한 컨설팅을 통해 미래 먹거리 발굴에 속도를 높여가고 있습니다.
유한양행이 좋은 약을 많이 만들어왔지만, 근래 R&D에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아쉬움을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저는 제약회사가 신약을 개발하지 않으면 제약회사라고 볼 수 없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 신념을 가진 제가 사장을 맡았기에 앞으로 신약개발과 R&D 투자가 우리 시대의 소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웃음)
유한양행은 회사 이미지도 좋고, 예산도 많아서 충분히 신약개발에 투자할 수 있는 충분한 여건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장으로서 R&D를 통한 신성장 동력 발굴을 위해 연구개발 혁신에 몰두하도록 지원을 강화했습니다. 바이오니아, 제넥신 등 바이오벤처에 2015년부터 5건의 지분 투자를 통해 원천기술 확보와 R&D파이프라인 확대를 도모하고 있지요. 올 3월에는 미국의 항체 신약 전문기업인 소렌토와 JV(조인트벤처, joint Venture) ‘이뮨온시아’를 설립해 면역항암제 개발에 나서는 등, 혁신적인 R&D 투자를 활성화해 글로벌 제약사로의 발돋움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유한양행은 지난해 연구비만 720억 정도를 투자했습니다. 당장은 신약 연구 투자에 힘을 쏟게 되면 임상 비용도 많이 들고, 영업 이익이 줄겠죠. 하지만 그렇게 4~5년 정도 지나면 우리가 만드는 신약이 전체 매출의 3분의 1 정도는 점유하지 않을까 하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런 저런 일들을 하느라 지난해 1년 동안에 평상시 10년 정도 쓸 돈을 다 썼던 것 같네요(웃음)
지금도 많은 분들이 유한양행에 대해서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정희 사장께서 주도하는 경영혁신이 더 기대가 됩니다.
과찬이십니다. 올해 우리 회사 매출이 1조2000억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지금까지 유한양행이 쭉 해왔던 것처럼 기업의 좋은 이미지를 사회에 전파하는 것도 좋지만, 성장과 영업 쪽으로도 좋은 성과를 내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저는 유한양행이 글로벌 기업이 되는 데 주춧돌을 놓는 사람에 불과합니다. 혁신적인 R&D 투자를 통해 우리가 만든 신약이 국내외 환자분들에게 치료제로 쓰여서 국민 건강에 봉사하는 때가 반드시 올 것으로 저는 확신합니다. 그렇게 해서 유한양행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다면 우리가 그 분야의 또 하나의 롤모델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저희는 앞으로 제약회사 본연의 성장에 매진하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한국 땅에서 기업하는 많은 분들이 ‘전문경영인으로 해도 이렇게 잘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좀 더 강하게 느끼는 날이 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감사합니다.
- 대담 서문석 교수·글 나권일 기자·사진 전민규 기자 서문석 교수와 김성수 경희대 명예교수 등 한국경영사학회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유한양행의 창업주 유일한(1895~1971)은 대표적인 ‘한국형 기업가’로 꼽힌다. 좋은 제품을 만들어 나라에 보국하고, 그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는 사회적 공헌에 대한 리더십을 일찍부터 가져왔다. 유일한의 기업가정신은 첫째, 애국애족에서 잘 나타난다. 기업을 키워 일자리를 만들어 나라에 기여하고 기업활동으로 벌어들인 돈을 정직하게 납세하겠다는 의지, 그리고 남는 재산은 기업을 키워준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신념이 확고했다. 또 이를 종업원지주제와 주식 기증, 전문경영인제도 도입 등으로 평생을 통해 실천했다.
애국애족·납세보국·인재제일주의·사회적 책임시대를 앞서간 그의 인재제일주의 정신도 빼놓을 수 없다. 미국에서 사업에 성공해 고국으로 돌아온 유일한 박사는 연희전문학교로부터 교수초빙을 받았으나 이를 거절했다. 그리고는 제대로 된 교육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자금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기업을 일으켰다. 이후 회사가 성장기를 지나 안정기에 접어들 무렵인 1954년. 그는 본격적인 기업이윤의 사회환원을 실천한다. 사재를 들여 ‘고려공과기술학교’를 세웠고, 1961년에는 한국직업학원, 64년에는 유한공업고등학교, 66년에는 유한중학교를 설립하여 교육사업을 꾸준하게 펼쳤다. 이는 지금의 유한대학으로 이어졌다.
1969년에는 자신의 외아들이 아닌 전문경영인에게 회사를 넘겼고, 1971년 타계한 뒤에는 전 재산을 ‘한국사회 및 교육원조 신탁기금’(현 유한재단)에 기부했다. 훗날 딸인 유재라 여사도 숨을 거두며 가지고 있던 유한양행의 주식과 재산 모두를 유한재단에 기부했다. 부의 세습이 당연시 되는 오늘의 상황에서 유일한과 그의 자녀들이 보여준 행동은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가정신의 표상이 됐다. 이정희 사장은 영남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1978년 5월 유한양행에 입사해 병원영업과 마케팅, 유통사업부를 거쳐 2009년 3월부터 경영관리본부장을 맡았다. 타고난 성실과 친화력을 바탕으로 경영 관리본부장 직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과정에서 회사 전반 업무를 고루 경험했다고 한다. 특히 유한양행이 제약업계 최초로 정년연장 및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데 중추적 역할을 수행해 고용안정과 노사 협력 강화에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미래 성장 동력’ 창출에 주력부사장을 거쳐 지난해 4월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한 이정희 사장은 유한양행이 제약업계의 숙원이었던 1조 매출을 첫 달성한 만큼 올해는 회사의 ‘미래 성장 동력’ 창출이라는 또 다른 ‘시대적 소명’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사장은 올해 경영 목표를 도전과 미래 창조로, 경영지표는 Integrity & Progress로 정하고 사장실 문을 열자마자 눈에 쏙 들어오도록 액자로 만들어 걸어놓았다. 이 사장 개인의 생각이 아니라 유일한 박사가 내건 모토를 계승해 발전시킨 것이라고 했다. 유한 기업정신의 핵심인 Integrity는 청렴, 정직, 성실을 뜻하고, Progress는 개선, 혁신, 진보를 뜻한다. 정직과 성실을 바탕으로 미래에 도전함으로써 영속기업으로 발전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이 대표는 올해 전년대비 10% 수준의 성장을 경영목표로 설정했다. 특히 미래성장을 위한 R&D투자를 매출액 대비 10% 수준으로 대폭 확대해 나간다는 목표를 세워두고 있다. 이를 위해 유일한 창업주의 기업가정신을 계승한 윤리·정도경영, 직원행복경영, 열린소통경영, 인재개발경영, 미래창조경영, 혁신R&D경영을 내걸고 혁신을 주도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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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4일 오후, 한국 기업사 연구의 권위자인 서문석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가 이정희(65) 유한양행 사장을 찾았다. 서문석(50) 교수는 한국 기업사 연구의 원로로 1974년에 『기업가 유일한에 관한 연구』를 진행한 고 황명수 교수의 제자다. 당시 황 교수가 주도한 연구는 고 유일한 창업주에 대한 국내 최초의 학술적 연구였을 정도로 선도적이었다. 현재 한국경영사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서 교수는 유한양행의 기업가정신을 조명하는 포브스코리아의 이번 기획과 관련해 자문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고, 인터뷰 요청에도 기꺼이 응했다.
서문석 -
제가 수업시간에 한국의 기업가정신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유한양행을 자주 이야기합니다. ‘한국 자본주의에 이런 기업이 있다는 건 행운이다’고 말이죠. 저 자신이 기업사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유일한 창업주의 기업가정신이 어떻게 지금의 유한양행에 스며들어 있는지 직접 눈으로 보고 듣고 싶었습니다. 오늘 이 사장님을 뵈러 오면서도 사장실에 유일한 창업주의 사진이 어디에 어떻게 걸려 있을까. 그게 무척 궁금했는데, 바로 의자 뒤에 걸려있군요.(웃음)
이정희 - 그렇습니다. 골치 아픈 일이나 안 풀리는 일이 있을 때 뒤로 돌아서 앉으면 바로 보이도록 의자 뒤에 걸어놓고 있습니다.(웃음) 아시다시피 유한양행은 오너가 없는 전문경영인 체제입니다. 그래서 어려운 일이 생길 때는 늘 직원들이랑 의논하고 이사진과 협의해 결론을 내는데, 그래도 답이 안 나올 때가 있어요. 그 때 유일한 박사의 사진을 들여다보면 답이 딱 나옵니다.(웃음) 예를 들어 이사회가 열리면 갑론을박이 길어지잖습니까! 그때 의견이 갈리고 해답이 난망하면 ‘유일한 박사님이 계셨다면 어떻게 했겠느냐?’, ‘이게 유일한 정신에 맞느냐?’ 그런 질문을 던집니다. 그러면 답이 저절로 나옵니다. 우리 1650명 임직원들 모두가 그렇게 ‘유일한 정신’으로 살고 있습니다. 유일한 박사님은 돌아가셨지만 아직도 우리 회사의 재판관입니다.
“유일한 창업회장이 지금도 회사의 재판관”
이정희 사장께서는 유일한 박사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인 1978년에 입사하셨지요. 입사 직후 회사 분위기나 창업주에 대한 인상은 어떠했는지요?
처음엔 저도 ‘뭐 이런 회사가 다 있나?’ 참 특이한 회사라고 생각했죠.(웃음) 지금도 그렇지만 회사에 들어오면 신입사원들에게 처음에 노트 한권을 딱 줍니다. 유한양행을 창립한 이유가 당시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무지·기아·질병 등 3대 적을 물리치기 위함이었다는 것, 일제강점기 때 ‘건강한 국민, 병들지 아니한 국민만이 주권을 누릴 수 있다’는 애국사상으로 세운 제약회사이니까 확고한 국가관을 가지고 좋은 약을 만들어 판매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두 번째, ‘정직이 유한의 영원한 전통이 되어야 한다’는 유일한 박사의 어록을 인용하며 정직을 강조합니다. 기업이 정직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돈 벌어서 세금을 많이 내야 한다고 말하면 신입사원들이 다 웃지요. 그때나 지금이나 세금 많이 내야 한다고 직원들을 독려하는 회사가 어디 있겠습니까!(웃음) 세 번째, ‘기업에서 얻은 이익은 그 기업을 키워준 사회에 다 환원해야 한다’고 교육합니다. 지금은 이게 상식이 됐지만 우리는 90년 전부터 그것을 실천해왔습니다.
창업 초기 뿐만 아니라 이 사장께서 신입사원이었던 1970년대도 유한양행은 뭐가 달라도 확실히 달랐군요.
그렇습니다. 제가 막 입사했을 때 지점장님들이나 선배님들이 하나같이 하는 얘기가 ‘너 정말 좋은 회사 들어왔다’고 그래요. 저희 자랑 같지만 유한양행엔 세 가지가 없습니다. 우선 지역차별, 학력차별이 없습니다. 그 직원이 경상도인지 전라도인지 충청도인지 안 따집니다. SKY대학을 나왔는지, 지방에 있는 대학을 나왔는지 그런 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참고로 저는 지방대학을 나왔습니다. 사장할 사람을 뽑는데도, 입사해서 무슨 업무를 주로 했는지, 엘리트 코스를 밟았는지를 따지는 게 없습니다. 예전엔 주로 재무 분야에서 일한 분들이 사장을 맡았습니다. 지금은 영업 쪽이 많습니다. 저도 영업을 했습니다. 그렇게 당대의 흐름에 따라갑니다.
또 하나, 지금 회사 내에 유일한 박사님의 친인척이 한 명도 없습니다. 71년 유 박사님이 77살로 돌아가시기 3년 전쯤에 아드님을 미리 회사에서 내보냈고, 그 전에 당신의 친인척도 다 내보냈답니다. 그래서 다른 임원이 ‘이건 역차별 아니냐? 능력 있는 사람도 있는데...’ 그랬더니 유 박사님이 ‘내가 만약에 이대로 놔두고 죽으면 이 회사는 아들 편, 뭐 조카 편, 누구 편, 누구 편 해서 이 회사가 과연 얼마나 지탱하겠느냐. 그건 아니다. 그래서 내보낸다.’ 그러셨답니다. 제가 그런 증언을 생존자 분들께 다 들었습니다.
그리고 유일한 박사님은 직원들에 대한 사랑이 정말 각별하신 분이었다고 합니다. 제가 입사하던 그 때도 직원 자녀의 학자금을 대학교까지 다 지원해주었습니다. 자녀가 몇 명이건 대학 등록금까지 지원해주는 회사는 반 세기 전에는 생각도 못할 일입니다. 이런 경영철학을 가진 회사이기에 유한양행에 입사해서 1년 정도 지나면 누구나 유일한 정신에 딱 젖게 됩니다. 그리고 4~5년만 지나면 스스로 ‘나는 유한맨이다’ 하는 얘기를 하고 다닙니다.
경영진부터 말단사원까지 동등한 회사의 주인
말씀을 듣고 보니 유한양행의 저력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됩니다. 유한양행 직원들은 이미 입사 때부터 하나부터 열까지 유일한 박사의 각오와 철학이 내면에 스며들수 밖에 없는 구조이군요.
유한양행은 제가 입사했던 30여년 전에도 굉장히 앞서가는 회사였습니다. 제가 입사해서 바로 전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제가 대구 출신인데, 연고도 없는 전주로 가게 됐어요. 회사에 갔더니 제 책상에 A4용지 크기의 바인더가 놓여 있더라고요, 지금으로 치면 이게 매뉴얼이에요. 유한양행의 직원으로서의 업무수칙, 영업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노하우라든지 이런 내용이 자세하게 담겨 있었습니다. 당시에도 그렇게 직원교육이 확실했습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제가 요즘 직원 교육에 더 신경을 쓰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창업이후 벌써 90년입니다. 사람이 바뀌어도 이것만큼은 바뀌지 않는다는 유한양행의 정신이 있는가요?
딱 한 가지만 꼽으라면, 유일한 박사님이 강조했던 ‘정직’을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 회사에서는 거짓말하면 많이 혼납니다. 유일한 박사는 철저히 정도경영을 통해 기업이윤을 추구했습니다. 창립 초기 영업망 구축을 위해 만주지역을 둘러보고 왔던 한 임원이 당시 유일한 사장에게 마약중독자들이 많이 늘고 있던 상황을 전하며 헤로인·모르핀 제제가 많이 팔리니 유한도 그 제품을 제조 판매하자고 건의했다고 합니다. 유일한 박사는 이때 불같이 화를 내며 그 임원에게 사표를 쓰라는 불호령을 내렸다지요. 국민의 건강을 지킨다는 제약업자들이 국민 건강을 좀먹어가며 돈을 벌어서는 안된다는 신념이었죠.
저 역시 취임이후 늘 임직원들에게 정직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기업인이라면 국가에 대해, 사회에 대해 거짓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약속한 것은 지켜야 합니다. 회사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실수로 잘못을 저지른 것에 대해선 관대하게 대하지만 고의적인 실수는 덮어두지 않습니다. 우리 회사에서는 ‘저 사람은 정직하지 않은 사람이다’ 이러면 그것을 아주 큰 욕으로 생각합니다.
혁신형 리더십 보여준 창업주 계승하려 노력해
기업가정신의 요체는 ‘혁신’에 있습니다. 유일한 창업주의 혁신은 어떤 것이고 그 기반은 무엇이라고 보고 계십니까?
유일한 박사의 혁신경영은 당시 신약품개발을 위한 연구·개발(R&D), 그리고 창조적 기업가정신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유일한 박사의 삶 자체가 혁신적인 삶이었습니다. 9살 어린 나이에 도미해서 미시간대학을 졸업하고, GE에 근무했다가 이건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해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듭니다. 라초이(La Choy Co.)라는 식품회사를 친구와 함께 설립했는데, 잘 되던 그 회사를 친구에게 넘겨주고 귀국합니다. 친구가 깜짝 놀라서 왜 귀국하려고 하느냐고 물으니까 ‘돈도 중요하지만 나는 내 조국에 돌아가서 할 일이 있다. 그러니까 네가 정리해 달라.’고 했답니다. 당시 유일한 박사가 귀국할 때 가지고 온 돈이 50만불이었다고 합니다. 지금 돈으로 환산해보면 엄청나게 큰 돈이죠. 1925년, 귀국할 그때가 만 30세 정도밖에 안되는 나이거든요. 아마 당시에 대한민국 제일의 부자였을 겁니다. 국가관과 애국애족의 마음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는 얘기죠.
유일한 선생은 탁월한 사업가였습니다. 사실은 ‘양행’이라는 이름 자체가 개화기의 종합무역회사거든요. 그래서 당시에 어업, 자동차, 화장품 등 다양하게 사업을 하셨어요. 그런점에서 저는 지금의 유한양행 사업분야가 제약 부문에 너무 머물러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혁신을 도모하되 혁신을 이뤄가는 절차는 타당하고 점진적이어야 합니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유한양행은 오너가 없기 때문에 중요 현안에 대해 임직원들이 모두 협의해서 결정합니다. 합리적으로 일처리가 이뤄지니까 잘못된 결정이 일어날 확률은 적지만 기업이 진취적으로 나아가는 데는 조금 어려움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제가 사장 취임 이후 바꾼 게 하나 있는데, 예년에 비해 이사회를 자주 개최하고 있습니다. 평소에 집행이사들과 자주 의논을 하고, 긴급한 현안에 대해 최종적인 의사결정이 필요할 때는 정식 이사회를 열어서 결정합니다. 또 하나, 저는 대주주 분들에게 회사 상황을 자세히 보고해서 회사 경영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유한양행은 1대 주주가 유한재단이고, 유한학원이 2대 주주입니다. 제가 이 분들을 모시고 매분기마다 회사의 경영 상태에 대해서 자세히 보고를 드리고 있습니다. 중요 사안에 대해 전보다 자주 보고를 받게 되니 그 대주주 분들도 저를 믿고 혁신을 추진하는데 힘을 보태주고 계십니다.
창업주의 혁신정신을 이어받아 경영혁신을 추진하고 계신 것으로 압니다. 유한양행을 영속가능한 글로벌기업으로 만들기 위해 어떤 혁신안을 갖고 계시는지요?
제가 지난해 4월 취임사에서 강조한 것이 있어요. 무엇보다 ‘직원들이 행복한 회사를 만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직원들이 행복해야 고객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유한양행의 가장 소중한 자산은 임직원입니다. 저는 직원 스스로가 일터에서 보람있고,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을 때 업무에 최선의 결과를 낳을 수 있고, 이것이 기업의 경영혁신과 새로운 가치장출을 낳을 수 있다는 강한 믿음으로 행복한 회사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를 위한 큰 두 축이 직원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환경과 제도의 개선, 그리고 회사의 영속적인 성장 역량 확보를 위한 사업구조의 고도화와 다변화입니다. 직원들과의 열린 소통을 중시하는 다양한 채널을 확보하기 위해 사원운영위원회, 홍보위원회, 연구위원회, 신제품 출품 전략 위원회를 운영해서 건의사항이 있을 시에는 해당부서의 빠른 검토 후 바로 제도와 방편을 개선하는 피드백 시스템도 마련했습니다.
저는 미래를 준비하는 큰 축이 인재양성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인재 양성 교육에 있어서만은 비용과 자원을 아끼지 않습니다. 올해도 작년 예산의 두 배 이상을 교육예산에 투여할 예정입니다. 우선 우리 내부의 소프트웨어를 강화하기 위해 유한양행 연구소 옆에 비어있는 7층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연수원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미래 영속 성장의 또 다른 축으로 사업구조의 고도화와 다각화를 적극 추진해 가고 있습니다. 신규 사업 검토를 위한 미래전략실을 신설하고 신규 사업의 타당성을 검토하기 위한 컨설팅을 통해 미래 먹거리 발굴에 속도를 높여가고 있습니다.
유한양행이 좋은 약을 많이 만들어왔지만, 근래 R&D에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아쉬움을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저는 제약회사가 신약을 개발하지 않으면 제약회사라고 볼 수 없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 신념을 가진 제가 사장을 맡았기에 앞으로 신약개발과 R&D 투자가 우리 시대의 소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웃음)
유한양행은 회사 이미지도 좋고, 예산도 많아서 충분히 신약개발에 투자할 수 있는 충분한 여건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장으로서 R&D를 통한 신성장 동력 발굴을 위해 연구개발 혁신에 몰두하도록 지원을 강화했습니다. 바이오니아, 제넥신 등 바이오벤처에 2015년부터 5건의 지분 투자를 통해 원천기술 확보와 R&D파이프라인 확대를 도모하고 있지요. 올 3월에는 미국의 항체 신약 전문기업인 소렌토와 JV(조인트벤처, joint Venture) ‘이뮨온시아’를 설립해 면역항암제 개발에 나서는 등, 혁신적인 R&D 투자를 활성화해 글로벌 제약사로의 발돋움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유한양행은 지난해 연구비만 720억 정도를 투자했습니다. 당장은 신약 연구 투자에 힘을 쏟게 되면 임상 비용도 많이 들고, 영업 이익이 줄겠죠. 하지만 그렇게 4~5년 정도 지나면 우리가 만드는 신약이 전체 매출의 3분의 1 정도는 점유하지 않을까 하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런 저런 일들을 하느라 지난해 1년 동안에 평상시 10년 정도 쓸 돈을 다 썼던 것 같네요(웃음)
신약개발과 R&D 투자가 당면한 소명
지금도 많은 분들이 유한양행에 대해서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정희 사장께서 주도하는 경영혁신이 더 기대가 됩니다.
과찬이십니다. 올해 우리 회사 매출이 1조2000억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지금까지 유한양행이 쭉 해왔던 것처럼 기업의 좋은 이미지를 사회에 전파하는 것도 좋지만, 성장과 영업 쪽으로도 좋은 성과를 내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저는 유한양행이 글로벌 기업이 되는 데 주춧돌을 놓는 사람에 불과합니다. 혁신적인 R&D 투자를 통해 우리가 만든 신약이 국내외 환자분들에게 치료제로 쓰여서 국민 건강에 봉사하는 때가 반드시 올 것으로 저는 확신합니다. 그렇게 해서 유한양행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다면 우리가 그 분야의 또 하나의 롤모델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저희는 앞으로 제약회사 본연의 성장에 매진하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한국 땅에서 기업하는 많은 분들이 ‘전문경영인으로 해도 이렇게 잘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좀 더 강하게 느끼는 날이 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감사합니다.
- 대담 서문석 교수·글 나권일 기자·사진 전민규 기자
[박스기사] 대한민국 기업가정신의 표상 - 유일한 유한양행 창업주의 기업가정신
애국애족·납세보국·인재제일주의·사회적 책임시대를 앞서간 그의 인재제일주의 정신도 빼놓을 수 없다. 미국에서 사업에 성공해 고국으로 돌아온 유일한 박사는 연희전문학교로부터 교수초빙을 받았으나 이를 거절했다. 그리고는 제대로 된 교육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자금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기업을 일으켰다. 이후 회사가 성장기를 지나 안정기에 접어들 무렵인 1954년. 그는 본격적인 기업이윤의 사회환원을 실천한다. 사재를 들여 ‘고려공과기술학교’를 세웠고, 1961년에는 한국직업학원, 64년에는 유한공업고등학교, 66년에는 유한중학교를 설립하여 교육사업을 꾸준하게 펼쳤다. 이는 지금의 유한대학으로 이어졌다.
1969년에는 자신의 외아들이 아닌 전문경영인에게 회사를 넘겼고, 1971년 타계한 뒤에는 전 재산을 ‘한국사회 및 교육원조 신탁기금’(현 유한재단)에 기부했다. 훗날 딸인 유재라 여사도 숨을 거두며 가지고 있던 유한양행의 주식과 재산 모두를 유한재단에 기부했다. 부의 세습이 당연시 되는 오늘의 상황에서 유일한과 그의 자녀들이 보여준 행동은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가정신의 표상이 됐다.
[박스기사] 유한양행 경영혁신 주도하는 이정희 사장의 경영철학
‘미래 성장 동력’ 창출에 주력부사장을 거쳐 지난해 4월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한 이정희 사장은 유한양행이 제약업계의 숙원이었던 1조 매출을 첫 달성한 만큼 올해는 회사의 ‘미래 성장 동력’ 창출이라는 또 다른 ‘시대적 소명’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사장은 올해 경영 목표를 도전과 미래 창조로, 경영지표는 Integrity & Progress로 정하고 사장실 문을 열자마자 눈에 쏙 들어오도록 액자로 만들어 걸어놓았다. 이 사장 개인의 생각이 아니라 유일한 박사가 내건 모토를 계승해 발전시킨 것이라고 했다. 유한 기업정신의 핵심인 Integrity는 청렴, 정직, 성실을 뜻하고, Progress는 개선, 혁신, 진보를 뜻한다. 정직과 성실을 바탕으로 미래에 도전함으로써 영속기업으로 발전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이 대표는 올해 전년대비 10% 수준의 성장을 경영목표로 설정했다. 특히 미래성장을 위한 R&D투자를 매출액 대비 10% 수준으로 대폭 확대해 나간다는 목표를 세워두고 있다. 이를 위해 유일한 창업주의 기업가정신을 계승한 윤리·정도경영, 직원행복경영, 열린소통경영, 인재개발경영, 미래창조경영, 혁신R&D경영을 내걸고 혁신을 주도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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