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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규 DGB금융지주회장

박인규 DGB금융지주회장

지방 금융시장의 패권을 놓고 경쟁이 치열하다. 특히 BNK·DGB·JB금융지주의 ‘몸집 불리기’가 화제다. 최근 DGB금융지주가 인수·합병에 잇따라 실패하자 시장의 시선도 차가워지고 있다. 하지만 박인규 회장은 ‘탄탄함’과 ‘신중함’을 되려 무기로 삼고 있었다.
“또 다른 회사를 알아봐야 하나? 휴우…” 2014년 11월, 서울 서대문에 있는 우리아비바생명 본사 건물의 사무실 곳곳이 술렁이고 있었다. DGB금융그룹(이하 DGB금융)이 우리아비바생명을 인수하기로 하면서 설계사들의 탄식과 한숨이 곳곳에서 새어 나왔다. 단순히 DGB금융에 팔려서가 아니었다. 불신이 생각보다 뿌리깊은 이유가 있었다. 우리금융이 민영화 방안으로 NH금융에 매각된 이후 100여 명의 설계사를 희망퇴직 형태로 내보낸 기억이 ‘트라우마’가 된 탓이었다. 게다가 NH금융이 인수 3개월 만에 재매각에 나서자 임원을 중심으로 아예 독립판매법인을 새로 세워 회사를 나가는 일이 심심치 않게 벌어졌다. 실제 1400여 명에 달했던 설계사는 1년 만에 400여 명 가까이 줄어 있었다. 하지만 DGB금융 품에 안긴 다음부터 우리아비바생명 분위기는 크게 달라졌다. 무엇보다 박인규(62) DGB금융 회장의 잦은 방문 덕분이었다. 예고도 없이 서대문 본사를 갑작스럽게 방문하는 일이 늘었고, 방문해서는 건물 층층이 들러서 직원들과 악수하고 덕담을 건네는 일이 잦아졌다. 그 전까지는 회장이 직접 계열사 지점을 자주 찾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2년 새 두 번이나 주인이 바뀐 우리아비바생명 조직이 받은 상처가 얼마나 컸겠나? 설계사들을 비롯한 우리아비바생명 직원부터 DGB생명으로 감싸 안아야 했다. ‘동심동덕’(同心同德·한마음 한 뜻으로 같은 목표를 향해 다 같이 힘쓰고 노력하다)이 생각보다 대단하다.” 박 회장이 한 말은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우리아비바생명은 DGB생명으로 간판을 바꿔 찬 출범 첫해 흑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당기 순이익만 190억원. 지난 2014년 261억원의 적자결산에서 인수 첫해에 흑자결산으로 전환한 것이다. 처음으로 보험업에 진출한 지방은행 입장에서는 의미 있는 쾌거였다.

하지만 DGB금융은 우리아비바생명 이외에 이렇다 할 인수·합병(M&A)을 성사시키지 못했다. 지난 2013년 저축은행을 시작으로 총 7~8차례 금융사 인수에 도전했지만 대부분 중도에 포기하거나 최종인수자로 선택받지 못했다. 특히 우리은행 민영화 과정에서 경남은행 인수전에 패한 것이 상처가 컸다. 당시 BNK금융(현 부산은행 지주사)은 경남은행 인수를 계기로 공격적인 M&A와 해외진출을 연이어 성공시키며 총자산 100조 원을 돌파했다. 어깨를 나란히 하던 DGB금융지주를 따돌린 셈이다. JB금융지주도 광주은행을 안으며 총자산을 40조원 가까이 늘려 올해 총자산 51조원을 달성한 DGB금융지주를 바짝 뒤쫓는 모양새다. 최근엔 칸서스자산운용 인수도 칸서스가 조성한 펀드에 소송이 휘말리면서 중간에 무산됐다. 금융지주 가운데 유일하게 자산운용사가 없는 DGB금융으로서는 다소 마음이 급해졌을 법도 하다. 하지만 박 회장은 이에 손사래부터 쳤다.

“자산운용사 매물이 나온 시장은 마치 포장이 잘 된 상품을 보기 좋게 진열해 놓은 백화점 같다. 물건이 뭔지 뜯어보고 살펴봐야 하지 않겠나. 백화점처럼 산 물건이 문제가 생기면 반품이라도 쉬워야 하는데 기업 M&A가 어디 그런가”라며 박 회장은 웃었다. 현대자산 운용과 KDB생명, 아주캐피탈 등 잇따른 인수 중단에 대해 말이 많지만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는 뜻도 전했다. 자산운용사 인수에 대해 들은 얘기가 많은 듯, 이어진 그의 설명에도 한껏 힘이 들어갔다. “매도자가 제시한 금액에 다 살 수 없는 노릇이고, 우리도 나름 가격 기준이 있어서 최종 유찰된 것이다. 남들이 한다고 우리가 계속 인수액 규모만 키울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나? DGB 금융이 우리아비바생명을 인수한 지 딱 1년 됐다. DGB 캐피탈도 올해로 출범 5년 차다. 바로 지금 DGB금융을 더 탄탄하게 만들고 인수에 나서야하지 않겠나?”
 우리아비바생명 인수 첫 해에 흑자 전환 이뤄
DGB금융이 ‘늦깎이’라는 불안한 시선에도 소위 ‘박 회장표 뚝심’을 발휘하는 이유가 있었다. 은행원 출신치고 그는 입사가 늦다. 대구상고를 졸업해서 대구은행에 바로 온 동기들보다 8년이나 늦게 들어왔다. 과수원 집 아들로 비교적 유복하게 살았던 박 회장은 상고 졸업 후 재수해서 영남대학교에 입학했다. ROTC(학군단)를 마치고 군 생활을 3년 한 뒤 은행에 입사했으니 그의 고교동기가 한순간에 직속 상사가 되는 순간을 맞이한 것은 당연했다. “1년 재수, 대학 4년, 군생활 3년. 동기와 시차가 8년이었다. 처음에 방황하다가 은행을 떠나겠다고 다짐한 적도 있었다. 그러다 '대구은행의 귀신이 되겠다!'는 결심으로 마음을 다잡은 게 입행 후 2년이 지나서였다”며 박 회장은 당시를 떠올렸다. “그때부터 퇴근이고 뭐고 생각하지 않고 업무를 찾아서 일했다. 지점에서 인사도 크게 하고, 고객을 만나러 현장에 발이 닳도록 다녔다. 오죽하면 부대장이 지점을 방문해서 재입대를 제안했겠나?(웃음)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자연스레 대리가 되고, 차장이 되더니 기회가 오더라”고 말했다.

그 같은 노력이 쌓이고 쌓여 박 회장은 지난 2014년 제2대 DGB금융지주 회장 겸 제11대 DGB대구은행장으로 취임했다. 하지만 박인규 회장이 DGB금융지주 조직의 정점에 서기까지는 또 한 번의 위기가 있었다. 박 회장은 은행 내에서 소위 ‘엘리트 코스’를 차곡차곡 밟아온 임원이었다. 서울분실장, 전략금융본부 부행장보에 이어 대구은행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마케팅그룹장 겸 공공금융본부장을 거쳐 지원그룹장(부행장)을 역임했다. 모두가 말하는 차기 회장이자 행장감이었지만, 2012년 별안간 그룹내 인력관리 자회사인 대경TMS 대표이사로 발령을 받게 된다. 다른 시중은행과 달리 DGB금융은 금융지주 역사가 짧아 자회사 임원이 지주은행으로 돌아온 선례가 없었기 때문에 ‘고별인사’로 보는 시선이 컸다. “주변에서 다들 ‘박인규는 이제 끝났구나’라는 말이 내 귀에 들릴 정도였다. 친구들마저 위로주를 사주겠다고 하더라.(웃음) 하지만 나는 ‘끝이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은행도 8년이나 늦게 들어왔는데 뭐. 더 돌아가도 괜찮았다.(웃음) 오히려 사람들을 더 만나고 더 열심히 일했다”고 했다.

사실은, 하춘수 전 DGB행장이 일부러 한 조치였다고 한다. 내심 마음에 뒀던 후임자가 극한 상황에서 어떻게 처신하고 행동하는지를 보고 싶었던 것이다. 오히려 웃으며 더 열심히 일하는 박 회장을 본 하 전 행장은 임기 만료 1년을 앞두고 자진용퇴를 결정했다. 박 회장은 내친김에 자산운용사 인수 건도 같은 맥락에서 봐주길 원했다. “먼저 하지 않았다고 해서 능력이 부족하다고 평가절하했다면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올라올 수 없었다.”

 직원 사기 중요시, 자율·소통·격려로 이끌어
이어 그는 “회사 인수에 큰돈을 쓰는 일인데 ‘신중함’은 몇 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했다. ‘고객 돈을 지키겠다는 의지’라는 말도 거듭 강조했다. 인수 이슈보다 지금 ‘잘’하는 사업을 더 봐달라는 얘기였다. 대구은행에서 DGB금융으로 이름을 바꾼 후 순항하고 있지만, 박 회장은 “지역민과 직원의 애행심(愛行心) 때문에 탄탄한 자본력과 기본기를 갖출 수 있었다”며 공을 돌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인수합병이슈와 무관하게 DGB금융만의 ‘선택과 집중형’ 전략을 밀고 나가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지역 곳곳을 꼼꼼하게 살피는 지역밀착형 영업은 대구뿐만 아니라 어느 지역에서도 통하는 비법이다. 발로 뛰며 고객을 찾아다니는 데 우리를 마다할 곳이 있겠나?”

DGB금융이 지역금융그룹의 한계를 벗어나겠다는 출발점은 거창하지 않았다. 특히 DGB금융에는 ‘사람’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인수 무산 소식이 언론을 달굴 때마다 박 회장이 가장 신경 쓴 것은 직원들의 사기였다. “직원을 만나는 자리에서 항상 말한다. 절대 기죽지 말라고. 다른 회사를 인수하든 새로 차리든 우리는 얼마든지 우리만의 방식으로 갈 수 있다. 의욕을 가지고 활기차게만 일해달라고 거듭 강조했다.”

박 회장은 일화 하나를 꺼냈다. 회장 자리에 오르기 전인 2008년 얘기였다. 그가 포항지역을 아우르는 환동해본부장을 역임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 전국에 있는 대구은행 7개 본부 중 환동해본부가 반기(半期) 내내 꼴찌를 했다. 직원들의 빗발치는 건의에 그가 지점장들을 불러모았다. 불려온 지점장들은 ‘엄청 깨지겠구나’하는 생각에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하지만 박 회장은 실적이나 업무 얘기는 일절 꺼내지 않았고, 싫은 내색도 안 했다. 그는 “골프는 잘 다녀왔는지, 가족은 잘 지내는지, 지난주 회식했다는데 나도 부르지 그랬냐?며 수다를 떨었다. 그 말만 하고 다들 일하러 가시라고 기분 좋게 돌려보냈다”고 했다. 이심전심, 그 마음을 알았을까. 그 해 3·4분기 환동해본부의 카드와 방카슈랑스(은행 내 보험판매) 실적은 급상승했다. 전체 7개 본부 중 1등을 차지했다. 꼴찌의 반란이 일어난 셈이다. 박 회장은 그 이유에 대해 “(깨지지 않아서) 지점장도 기분이 좋고, 그 지점도 밝아지니 고객에게 더 잘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그는 오랜 은행생활을 통해 ‘직원들이 신바람 나게 일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줘야 하고, 이를 돕는 사람들이 지점장이다’라는 나름의 철학을 갖게 됐다고 했다. 이런 덕분일까? DGB금융의 총자산은 지난해보다 24% 넘게 늘었다. 당기순이익이 30% 가까이 오른 금융지주는 DGB금융이 유일했다. 회장 취임 후 내친김에 계열사 사장단에도 힘을 실어줬다. ‘선집행·후보고’ 하라며 권한을 내어주었고, 기간과 범위만 정해주고 새로운 사업 구상을 마음껏 해보라고 멍석도 깔아 주었다. 박 회장은 “우리 인력이 가진 에너지와 능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이들이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하는 게 내 몫이다. 직원이 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고 발로 뛰어야, 더 많은 고객에게 수익을 돌려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1% 초저금리 시대에 수익내기 한층 어려워진 환경을 극복하려는 박 회장의 타개책이기도 했다.

최근 DGB금융이 관심 있게 보는 시장은 동남아시아다. DGB금융의 차세대 먹거리를 찾아야 하는 중요한 시점에서 해외 시장으로 보폭을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해외시장에 눈을 돌리다보면 대구·경북지역민에 소홀해지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박 회장은 단호하게 말했다. “아무리 우리가 대구·경북지역민을 위한다고 해도 수익을 내기 위해 시야를 국·내외로 넓히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한국 기준금리가 1%라면 동남아 일부 지역은 15%에 달하는 곳도 많다. 순마진(NIM)만 5%나 거둘 수 있다는 얘기”라고도 했다.
 라오스 코라오그룹과 아세안지역 진출 발판 다져
실제 사례도 있을까? 마침 인터뷰 전날인 3월 30일, DGB금융과 라오스 최대 민간기업인 코라오 그룹이 아세안 지역 사업 협력을 위한 업무제휴를 체결했다. 오세영 회장이 이끄는 코라오 그룹과 인도차이나반도를 중심으로 아세안 지역 비즈니스구축에 뛰어들기로 한 것이다. 코라오 그룹에 대출도 결정했다. 물론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코라오 그룹이 라오스 경제의 10%를 차지하는 만큼 대출 규모도 상당했기 때문이다.

박 회장은 코라오 그룹의 실태를 눈으로 확인해야 했다. “대구은행 핀테크센터 Fium(피움) 등을 구축하기 위해 직원들을 유럽·일본 등으로 수없이 보냈다. 코라오건도 마찬가지였다. 직원들이 제대로 가서 확인하겠다는데 막을 이유가 없었다. 부행장과 실무자 모두를 현지로 두 번이나 보냈다.”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코라오 현장을 보고, 아직도 성장에 목마른 동남아시장은 DGB금융의 새로운 수익처가 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코라오 그룹은 주력 업종인 자동차를 비롯해 전자유통·금융·레저 등 다양한 분야의 사업을 라오스·베트남·중국까지 넓힐 참이다. DGB금융도 코라오 그룹과 다방면에서 적극적으로 교류에 나설 계획이다.

“미국 시티은행도 처음에는 미국 뉴욕주의 한 지방은행이었습니다. 이제는 세계 일류 은행이지 않습니까? 대구 달구벌의 DGB가 ‘Do Good Better’의 이니셜로 인식되는 글로벌 뱅크로 발돋움할 날이 곧 올 겁니다.” 한참 추진 중인 글로벌 사업을 늘어놓던 박 회장의 원대한 포부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박 회장은 지난해 초 주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일이 찾아가 설득한 끝에 15년 만에 유상증자를 성공시켰다. 경남은행 인수에는 실패했지만, NH농협금융지주로부터 옛 우리아비바생명을 인수해 DGB생명으로 제대로 착근하게 했다. 박인규 DGB금융지주 회장은 실패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다져진 지금의 ‘탄탄함’이 더 큰 기회를 잡을 수 있는 힘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 글 김영문 기자·사진 오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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