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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지 말고 고쳐 쓰는 게 이익

짓지 말고 고쳐 쓰는 게 이익

리모델링은 건물을 완전히 부수고 대지부터 새로 조성하는 재건축과 달리 건물 뼈대를 비롯한 일부를 남겨두고 고치는 방식이다. 아파트 리모델링 사업 추진의 발목을 잡던 각종 규제가 최근 잇따라 풀리면서 리모델링 시장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리모델링 성공 사례로 꼽히는 서울 청담동 래미안 로이뷰 아파트 전경. 2014년 준공했으며 수직증축 없이 수평증축으로만 리모델링됐다.
서울 지하철 7호선 청담역 14번 출구로 나와 영동대교 방면으로 5분쯤 걷다 보면 오른편에 ‘ㄱ자’ 형태의 한 동짜리 아파트가 눈에 들어온다. 2014년 준공 된 청담 래미안로이뷰다. 이 아파트는 원래 지은 지 20년이 넘은 두산아파트였다. 주차장 부족 등을 이유로 리모델링 공사를 한 것이다. 공사기간 2년을 포함해 조합 설립부터 4년여 만에 사업을 끝냈다. 가구수는 177가구로 종전과 똑같지만, 주택 크기가 전용면적 85㎡에서 110㎡로 30% 커졌다. 1층엔 필로티(건축물을 기둥만 세우고 비워둔 형태) 구조가 적용돼 건물 높이도 한 층 높아졌다. 주차장은 모두 지하에 넉넉히 들어섰고 지상은 공원 등으로 조성됐다. 피트니스센터·골프연습실·독서실 같은 커뮤니티시설도 갖추고 있다. 단지 앞에서 만난 주민 박모(51)씨는 “예전에 비해 집이 넓어진 것은 물론이고 건물 외관과 조경도 고급스러워져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내력벽 일부 철거 허용 등 규제 완화 잇따라
앞으로 이런 아파트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그간 아파트 리모델링 사업 추진의 발목을 잡던 각종 규제가 최근 잇따라 풀렸기 때문이다. 부동산 업계는 이로 인해 리모델링 시장이 한껏 살아날 것으로 보고 있다. 재건축과 리모델링 방식을 놓고 저울질하던 중층(15층 내외) 아파트 단지 중 일부가 리모델링으로 눈을 돌릴 것이란 기대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전국 리모델링 대상 단지는 전체 아파트의 절반 가까운 460만 가구에 달한다. 대상 단지는 대부분 10층 이상 중층 아파트로, 저층 아파트에 비해 대지 지분율이 낮아 재건축할 경우 추가분담금(입주 때 추가로 내는 돈)이 많고 사업성이 떨어진다.

아파트 리모델링은 재건축 견제 역할을 위해 2000년대 초 제도화됐다. 당시 정부는 집값 급등을 이끌던 재건축에 쏠린 수요를 분산시키기 위해 2003년 주택법에 리모델링 제도를 도입했다. 집을 헐고 다시 짓는 대신 고쳐서 계속 쓰자는 것이다. 이후 활성화 방안이 잇따랐다. 2005년 정부는 기존 전용면적의 30%까지 증축할 수 있게 했다. 이른바 수평증축이다. 리모델링 방식은 크게 건물 앞뒤와 좌우를 넓히는 수평증축, 층수를 높이는 수직증축으로 분류된다. 2007년엔 리모델링 허용 연한을 준공 후 20년에서 15년으로 단축했다. 이에 리모델링이 가능한 아파트가 크게 늘면서 사업성 문제가 불거졌다. 리모델링은 기존 골조만 유지하고 사실상 집을 새로 짓는 방식이라 비용이 만만치 않다. 새 아파트 공사비의 80~90% 수준으로 3.3㎡당 500만원대다.

정부는 2012년 다시 증축 범위를 최대 40%로 확대하고 가구수 증가와 일반분양을 기존 주택 수의 10%까지 허용했다. 이어 일반분양분을 15%로 늘렸고 업계 안팎의 요구를 반영해 수직증축도 할 수 있게 했다. 수직증축은 아파트 건물 위로 최대 3개 층(14층 이하는 2개 층)을 더 올리고,가구수를 이전보다 15%까지 늘려 짓는 공사 방식이다. 1000가구 규모의 단지는 리모델링으로 최대 150가구까지 더 지을 수 있는 셈이다. 이 조치로 리모델링 아파트 조합원은 조합 1가구당 사업비 부담을 30%가량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업계는 분석했다. 늘어난 주택을 일반분양으로 팔아 리모델링 공사비에 보탤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정부는 수직증축 리모델링 공사 때 가구 간 내력벽(건물 무게를 지탱하도록 설계된 벽) 일부 철거를 허용하기로 하고 관련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그동안은 아파트 앞뒤로만 확장할 수 있었지만, 앞으론 내력벽을 일부 헐어 좌우로도 확장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는 얘기다. 국토부 관계자는 “내력벽 일부 철거가 가능해지면 옆으로 붙어 있는 가구가 합쳐져 1베이(Bay·창가 쪽으로 붙어 있는 거실이나 방의 수)가 2베이로, 2베이가 3베이로 확대될 수 있다”며 “채광·통풍 등이 개선된 평면 설계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토부는 조만간 안전진단 기준 개정에 착수하고 이르면 다음 달 말부터 시행할 방침이다.

주민 동의 요건도 완화했다. 현행 주택법에 따르면 공동주택을 리모델링하려면 전체 구분 소유자 5분의 4 이상과 동별 구분 소유자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동별로 이해관계가 엇갈리다 보니 대다수 동은 찬성인데 한두 동만 반대하는 경우가 많아 전체 사업이 좌초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앞으론 이 가운데 동별 동의 요건을 3분의 2 이상에서 2분의 1 이상으로 완화하기로 했다. 리모델링하지 않는 단지 내 상가와 복리시설 소유자에게 동의를 받아야 할 필요가 없어지는 셈이다. 세금 문제도 나아졌다. 올 초 행정자치부는 리모델링으로 집을 넓힌 조합원에게 부여되는 취득세 부과 기준과 관련, 늘어나는 면적에만 과세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와 건설사들은 이런 흐름을 반영해 리모델링 사업에 힘쓰고 있다. 서울시는 공동주택과 안에 ‘서울시 리모델링 지원센터’를 설치할 예정이다. 초기 사업비 분석을 위한 컨설팅을 지원한다. 분당신도시를 두고 있는 경기도 성남시는 일찍부터 리모델링 업무를 전담하는 ‘리모델링 지원센터’를 만들어 운영 중이다. 포스코건설은 그린리모델링 사업그룹을, 쌍용건설은 리모델링 전담팀을 각각 운영하고 있다. 특히 포스코건설은 5월 초 분당 무지개마을 4단지의 리모델링 시공사로 선정되면서 수직증축 리모델링 수주 단지를 7개로 늘렸다.

리모델링은 기본적으로 재건축보다 사업속도가 빠르다. 추진 절차가 간소하고 인허가 기간이 짧아서다. 공사기간도 재건축의 3분의 2 정도에 불과하다. 재건축과 달리 임대주택을 짓지 않아도 되고 사업부지의 일부를 공공시설 용지로 무상으로 내놓는 기부채납을 하지 않아도 된다. 소형 평형 의무비율도 따로 없다. 용적률(사업부지 대비 지상건축 연면적 비율) 제한이 덜하고 사업 가능 연한도 짧다. 재건축은 지은 지 30년이 지나야 가능하지만 리모델링은 15년만 넘으면 된다.
 리모델링 추진 단지 집값 상승 현실로
서울시가 최근 관내 4136개 단지를 전수조사한 결과, 170여 개 단지가 수직·수평증축 리모델링에 적합한 것으로 나타났다. 권역별로는 강남·서초·송파 등 동남권 76개 단지, 노원·강북·도봉 등 동북권 48개 단지, 강서·관악·구로 등 서남권 30개 단지 등이다. 개별 단지별로는 강남구 개포동의 대청, 대치 2단지, 우성9차 등이 수직증축을 추진 중이고, 용산구 이촌동 현대아파트, 개포동 우성 9차 등은 수평증축을 계획하고 있다. 경기권에서는 분당과 평촌 등 1기 신도시 내 아파트가 주목을 받고 있다. 사업 추진이 가장 빠른 분당신도시의 경우 정자동 한솔마을 5단지, 느티마을 3·4단지, 야탑동 매화마을 1단지, 구미동 무지개마을 등 6개 단지가 리모델링 시범단지로 선정돼 있다.

리모델링 기대감에 몸값이 뛴 아파트가 많다. 일부 단지는 수직증축이 전면 허용된 지난 2년 전에 비해 아파트값이 20% 넘게 오르기도 했다. 현재 리모델링 추진위원회 단계에 있는 서울 성동구 옥수동 극동아파트가 대표적이다. 2014년 4월까지만 해도 3억8000만원 선이던 전용 68㎡형 시세가 5억~5억3000만원대로 올라섰다. 2년 새 1억2000만원 이상 오른 셈이다. 서울에서 리모델링을 추진 중인 광진구 광장동 워커힐과 강서구 가양동 한강, 강남구 개포동 대치·대청, 서초구 잠원동 한신로얄·잠원동아 아파트도 적게는 5000만원, 많게는 1억원 가량 올랐다. 옥수동 A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수직증축이 허용된 이후 기대감이 높게 반영된 것은 사실”이라며 “특히 최근 1년 사이 조합 설립을 위한 동의 요건도 충족된 분위기고, 주택 수요자 간 손바뀜도 많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경기도도 사정도 비슷하다. 추진위 단계인 성남시 정자동 정든우성 아파트는 2년여 만에 집값이 평균 20% 넘게 올랐다. 군포시 세종주공6단지와 수원시 동신3차, 안양시 목련대우·선경 등도 최소 2000만원, 많게는 6000만원쯤 시세가 뛰었다.

하지만 최근 시장 분위기는 비교적 무덤덤한 편이다. 분당 야탑동 B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지난 1~2년 간 집값 상승은 리모델링에 대한 기대감보다 전반적인 시장 호황 영향이 크다”며 “요즘은 리모델링 관련 문의가 별로 없는 편”이라고 말했다. 고양시 일산동구 백석동 W공인중개업소 대표는 “리모델링을 추진하겠다고 나서는 단지를 찾아보기 힘들다”며 “사업성이 불확실하단 점 때문에 리모델링에 반대하는 주민이 많다”고 전했다. 서울에선 재건축과 리모델링을 두고 고민에 빠진 단지가 적지 않다.
 강남3구와 신도시 급매물 유리
최근 강남권을 중심으로 재건축 시장 분위기가 뜨거운데다 재건축 연한이 30년으로 줄면서 ‘좀 더 기다렸다가 사업성이 좋은 재건축을 추진하자’는 의견이 힘을 받는 분위기다. 1986년 입주한 서울 서초구 반포동 반포미도1차는 리모델링을 검토했다가 재건축 연한 완화로 내년이면 조건을 채우게 되자 재건축으로 돌아섰다. 15층 짜리 광진구 광장동 워커힐아파트도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주민의 재건축 요구가 거센 상황이다.

리모델링 사업성은 공사비와 일반 분양가, 주변 아파트 시세에 달려 있다. 공사비는 어디든 비슷하다. 분양가와 주변 시세는 지역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업계에 따르면 분양가가 3.3㎡당 1800만원 이상 돼야 수익성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일반분양 가격이 높으면 분양 수입이 많아 가구별로 부담해야 할 분담금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예컨대 공급면적 109㎡형 270가구를 126㎡형 310가구로 수직증축하는 서울 신정동 쌍용아파트의 경우 일반분양분(40가구)의 3.3㎡당 분양가가 2000만원에서 2100만원으로 오르면 가구당 분담금이 500만원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상언 유엔알컨설팅 대표는 “리모델링 후 넓어진 새 아파트값이 종전보다 2억원 이상 오르면 가구당 분담금을 내고도 이익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주변 시세가 비싸면 리모델링 후 새 아파트가 된 데 따른 가격 상승폭이 크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기존 아파트값이 높은 강남3구(서초·강남·송파구)와 수도권 1기 신도시인 분당·평촌 등이 사업에 유리하다고 입을 모은다. 부동산정보업체의 한 관계자는 “투자를 고려한다면 아파트 시세가 높은 지역을 고르되 리모델링 대상 아파트는 시세보다 싼 급매물을 구입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수직증축 리모델링을 추진하고 있는 경기 성남 분당신도시 무지개마을 4단지 아파트 전경. 지상 최고 25층 563가구는 리모델링을 통해 지상 최고 28층 647가구로 만들어진다. 오른쪽은 리모델링 후 조감도.
 수익성 예측 어려워…안전성 우려도
건축 규모를 결정하는 용적률(사업부지 대비 지상건축 연면적 비율)도 중요하다. 현재 아파트의 용적률과 리모델링 후 용적률 차이가 클수록 일반분양분이 늘어 분양 수입이 늘기 때문이다. 업계는 대개 용적률 200%를 기준으로 사업성이 갈릴 것으로 보고 있다. 박합수 KB국민은행 도곡스타PB센터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기존 용적률이 180% 이하라면 재건축이 유리하지만 200% 이상이라면 리모델링이 낫다”고 말했다. 전용 85㎡가 넘는 중대형 주택형은 가구분리형 아파트로 배치하면 수익성을 높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전용 133㎡를 30% 늘려 173㎡로 커진 아파트를 두 가구로 분리하고 작은 가구를 임대하는 식이다. 새 집을 얻는 것은 물론 임대수익까지 올릴 수 있는 셈이다.

그러나 리모델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우선 수익성을 예측하기 어렵다. 앞서 청담 래미안로이뷰의 경우 리모델링 전인 2009년 9억원 선이던 시세가 집이 30% 커진 새 아파트로 바뀌면서 15억원까지 올랐다. 리모델링 공사비로 2억9000만원 정도 들어간 점을 감안하면 3억1000만원을 번 셈이다. 문제는 이처럼 수평증축 성공 사례는 있지만 수직증축 허용 이후엔 성공 사례가 없다는 점이다. 골조를 그대로 남겨두기 때문에 주택형을 설계하는 데 제약이 많은 데다 일반분양 물량이 현재 가구 수 대비 15%여서 분담금을 줄이는 데도 한계가 있다. 김지은 주택산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리모델링 사업 규제가 많이 풀리긴 했지만, 재건축에 비해 여전히 사업성이 떨어진다”며 “사업성을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현재 분양면적이 제한돼 있어 수익성이 나아지기 어렵다”며“현재 기존 주택 전용면적의 30%(85㎡ 미만 40%)까지 증축할 수 있는데, 이를 푸는 게 하나의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안전성 문제에 대한 지적도 여전히 많다. 한 대형건설업체 관계자는 “위로 3개 층까지 더 올릴 수 있는 수직증축에다 내력벽을 일부 철거할 경우 보강 공사를 한다고 해도 뼈대가 튼튼하지 못하면 하중을 버틸 수 있는 힘이 부족할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반면 권 교수는 “요즘 건설사들이 뛰어난 구조보강 기술·공법을 갖추고 있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규정 NH투자증권 부동산연구위원은 “진짜 돈이 되고 주거환경이 좋아지는지, 안전성은 확보되는지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성공 사례가 나오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 황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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