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A투어 주요 프로의 옛 직업] 한 때는 눈물 젖은 빵 좀 먹었죠
[PGA투어 주요 프로의 옛 직업] 한 때는 눈물 젖은 빵 좀 먹었죠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면서 골프의 꿈을 키운 선수가 제임스 한 외에도 제법 있다. 골프를 할 수만 있다면 어떤 일을 해서라도 선수가 되겠다는 각오를 키운 선수들은 생명력이 길다. 주니어와 대학 골프 선수를 통한 엘리트 코스를 통하지 않고, 다른 직업에 종사하다가 미국 PGA투어라는 세계 최고 무대에 오른 선수는 누구일까? 그들이 어떤 일을 하면서 챔피언의 꿈을 키웠는지 업종별로 나눠봤다.
세일즈맨 | 리치 빔, 빌 룬드, 스콧 매카론:

빌 룬드(42)는 1998년 네바다라스베이거스대학(UNLV)팀 주장으로 내셔널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일궜다. 처음엔 유망주로 프로 생활을 호기롭게 시작했으나 2005년 투어 카드를 잃었다. 룬드는 골프를 그만두고 라스베이거스로 가서 스폰서십 세일즈로 집을 파는 부동산거래소 일을 시작했다. 1년 반 동안 일했지만 자신의 적성이 아닌 듯 성과는 미미했다. 마지막 기회로 여기며 다시 시작한 골프로 2008년 2부투어인 내이션와이드투어 카드를 얻었고, 2010년 터닝스톤리조트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스콧 매카론(51) 역시 1988년 UCLA 졸업 후 프로 데뷔 전까지 4년 동안 가족이 하던 의류 사업을 도왔다. “옷은 정말 잘 팔았다”고 자평하는 매카론은 “회사 사정이 여의치 않게 되면서 나는 프로 골퍼가 되어야 했다”고 말했다. 매카론은 1996년 3월 오늘날의 취리히클래식에서 첫승을 올렸고 이후 PGA투어에서 통산 3승을 거두고 1200만 달러의 상금을 벌었다.
화이트 칼라 | 패드레이그 해링턴, 폴 고이도스, 우디 오스틴:
화이트칼라 출신의 골퍼도 제법 있다. 메이저 3승을 일군 아일랜드 출신의 패드레이그 해링턴(46)은 회계사였다. 24세에 프로에 데뷔하기 전에는 아마추어 골퍼이면서 회계사 일을 병행했다. 숫자와 계산에 밝은 전직 회계사여서인지 프로가 되고 나서도 상금과 수입 관련한 재테크와 세금 납부는 스스로 하는 골퍼다. PGA투어에서 역대 2승을 쌓았고, 2010년 존디어클래식 마지막 라운드에서 한 라운드 최저타(59타) 기록을 세운 폴 고이도스(52)는 한동안 캘리포니아의 고등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일했다. “골프를 하는 것보다 인생살이가 몇 배는 더 고되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다”고 고이도스는 말한다. 어느 대회에서 끓어오르는 분노 때문에 퍼터를 부러뜨리기도 한 다혈질인 우디 오스틴(52)은 은행 직원이었다. 골프 대회장에서는 다혈질을 가진 오스틴은 템파에 있는 GTE 연방신협의 창구 직원으로 8년 간 근무한 경력이 있다.
육체 노동자 | 비제이 싱, 부 위클리, 윌 매킨지:

군인 | 톰 휘트니, 오빌 무디, 통차이 자이디: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톰 휘트니(26)는 현재 PGA투어 3부 리그인 라틴아메리카PGA투어를 뛰고 있다. 하지만 이전 4년 간 그는 와이오밍 치엔의 FE워런 공군기지에서 대륙간 탄도미사일 담당 사관이었다. 대통령 명령이 떨어지면 즉각 ICBM을 발사해야 하는 임무라 항상 대기하고 훈련하는 게 일상이었다. 비록 최전선은 아니었지만 전쟁을 가정한 생활을 해야 했다. 휘트니는 미국 공군 골프대회에서 세 번을 우승했고, 지난 2012년엔 세계 군인 골프대회에서 우승했다. 전역한 후 올 1월에 열린 라틴아메리카투어 퀄리파잉에서는 2위로 통과해 선수로 필드를 누비고 있다. 주한미군으로 14년 간 복무한 오빌 무디(1933~2008)는 1967년에 전역했다. 그리곤 미국으로 돌아와 고향에서 선수로의 꿈을 키워 2년 후인 1969년 메이저대회인 US오픈에서 우승했다. 무디는 그린키퍼였던 부친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골프를 접했다. 오클라호마대학 골프팀에 진학해 몇 주를 보내다 군에 입대했다. 미군 골프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골프광인 미 8군 사령관에게 차출돼 한국에 왔다. 태국의 롭부리에서 태어난 통차이 자이디(49)는 골프장 뒤에 위치한 2층 목조 가옥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 집엔 주방이나 수세식 화장실, 샤워 시설이 없었다. 어린 시절 뛰어난 축구선수였으나 운동 중에 발에 나무 꼬챙이가 박히는 부상을 당하면서 축구의 꿈을 접었다. 대신 16세에 고향집 뒤에 있던 태국 군용 골프코스를 몰래 찾아 버려진 5번 아이언 헤드를 대나무에 연결해 골프를 시작했다. 통차이는 1989년 스무 살에 태국 국왕 군대에 입대했으며 낙하산 부대원으로 근무했다. 군생활을 통해 강한 정신력과 체력을 갖게 됐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통차이는 1999년 프로 데뷔 전에 아마추어 골퍼로 다섯 차례 우승했다. 그는 아시안투어에서 13승, 유러피언투어 7승을 차지했다.
골프 업계 | 양용은, 이안 폴터, 프레드 펑크:

캐디 | 앙헬 카브레라, 파비앙 고메즈:
남미 출신 선수는 골프장 인근에 살던 캐디 출신이 제법 있다. 아르헨티나의 앙헬 카브레라(48)는 돈을 벌기 위해 열 살 때부터 코르도바에서 캐디를 했다. 어깨 너머로 골프를 배우고 실력을 키워 유러피언투어로 올라갔고, 2007년부터 미국 PGA투어를 뛰면서 3승을 거뒀다. 미국에 진출한 2007년엔 US오픈을, 2009년엔 마스터스에서 2승을 거뒀다. 아르헨티나의 파비앙 고메즈(38) 역시 산전수전 겪고 오늘날에 이르렀다. 그는 하루 캐디피 20달러를 받고 일했고 돈을 더 벌기 위해서는 잔디까지 깎아야 했다. 스무 살이 넘어 선수가 됐다. 30대 중반인 2011년에야 고메즈는 PGA정규 투어를 밟았고, 지난해 세인트주드클래식과 올해 소니오픈에서 2승을 쌓았다.
- 남화영 헤럴드스포츠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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