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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발투수제 없애야 야구가 산다

선발투수제 없애야 야구가 산다

마운드엔 더 적게 서는데 몸값은 올라…투수는 개인보다 팀 승리를 위해 자주 교체돼야
LA 다저스가 선발투수 클레이튼 커쇼 (이번 시즌 3460만 달러를 받는다)에게 지급하는 돈이면 구원투수 여러 명을 스카웃할 수 있다.
미국 프로야구의 선발투수는 ‘일인자’요 ‘종결자’이자 ‘승자’다. LA 다저스의 좌완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이번 시즌 3460만 달러를 받는다)를 비롯해 메이저리그에서 몸값이 최고인 선수 6명 중 5명이 선발투수다. 올 시즌 그들은 각각 2500만 달러 이상을 거머쥔다.

선발투수가 될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직업은 없다. 메이저리그 구단은 전부 선발투수 5명을 로테이션으로 운영한다. 따라서 선발투수는 적어도 실제 게임에선 5일에 한 번 이상은 출전하지 않는다. 4일을 그냥 앉아서 쉰다는 뜻이다.

게다가 매 시즌 갈수록 선발투수가 던지는 이닝 수가 줄어든다. 구단이 그들의 ‘너무도 귀중한’ 어깨를 보호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프로야구 최고의 에이스이며 명예의 전당에 오를 후보 1순위인 커쇼는 지난해 빅리그에서 233이닝을 던졌다. 선발투수 동료들에 비해 많이 던진 편이지만 1876년 야구 기록이 시작된 이래 최다 이닝을 던진 투수 중 가장 적다. 1980년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스티브 칼턴이 300이닝을 던진 마지막 선발투수였다. 그전엔 미국 프로야구 역사를 통틀어 최다 이닝 투수가 277이닝보다 적게 던진 경우가 10시즌에 불과했다.

일은 더 적게 하는데 몸값은 더 비싸진다. 도가 지나칠 정도다. 어느 정도가 돼야 단장이나 감독이 더 나은 방법을 찾으려고 고심하게 될까? 한 구단이 연간 약 1458이닝(162게임X9)의 경기를 치른다면 그중 최대 16%(커쇼의 경우에 해당한다)의 이닝만 마운드에 서는 선발투수에게 그토록 많은 연봉을 줘야 할까? 더 나은 방법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메이저리그 구원투수 출신으로 투수 코치를 지낸 톰 하우스(69)는 “5∼10년 안에 투수들은 한번 등판해서 최대 45개의 공을 던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한 주에 2∼3번 등판할 것이다. 투수 전원이 그렇게 된다. 전략적으로, 경제적으로, 또 컨디션 조절과 선수의 어깨·팔 보호 차원에서 볼 때 그 정도가 이상적이다.”

야구통계의 바이블로 통하는 2007년 책 ‘통계로 하는 야구(The Book: Playing the Percentages in Baseball)’에서 공동 저자인 톰 탱고는 “게임이 진행될수록 타자가 선발투수보다 훨씬 유리해진다’고 말했다. 45만 회 이상의 등판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한 게임에서 투수를 처음 대면한 타자는 가중 출루율(wOBA)이 .345였다. 같은 경기에서 같은 투수를 두 번 또는 세 번 마주했을 때는 wOBA가 각각 .354, 3.62로 높아졌다. 타자는 투수에게 익숙해질수록 훨씬 유리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투수를 자주 교체하는 게 방어 전략이 돼야 하지 않을까?

야구 순수주의자들이 적절한 체인지업으로 타자를 무력화시키는 투수를 칭찬한다면 아예 투수를 체인지업으로 사용하는 감독은 더 많은 찬사를 받아야 마땅하지 않을까? 예를 들어 당신이 다양한 투수를 거느린 감독이라고 상상해 보라. 몇 명은 강속구에, 한두 명은 변화구에 능하다. 그렉 매덕스 같은 볼 컨트롤의 귀재, 너클볼이 장기인 투수 등. 상대 팀 타자들이 한 게임에서 매번 그런 다양한 투수를 새롭게 만나도록 라인업을 구성하면 든든한 방어가 되지 않을까?

스포츠 전문방송 ESPN의 선임 야구 분석가 팀 커크지언은 “조 디마지오(뉴욕 양키스의 강타자로 활약했다)가 1941년 56게임 연속 안타를 기록했을 때 그 게임들에서 그가 몇 명의 투수를 상대했는지 아는가?”라고 물었다. “55명이었다. 2009년 라이언 지머만이 30게임 연속 안타를 쳤을 때 그는 90명의 투수를 상대했다. 상대하는 투수가 많아질수록 안타를 치기가 어려워진다는 뜻이다.”

일반적인 메이저리그 구단은 출전 가능 선수 명단에 12∼13명의 투수를 포함시킨다. 그중 5명은 선발투수, 1명은 마무리투수다. 중간 계투에 동원되는 구원투수가 절반 이상이라는 얘기다. 야구의 전통적 사고방식으로 보면 선발투수가 6회까지 타점 3점 이내로 막고 중간 계투를 이어간 다음 9회에 마무리투수를 투입하는 게 이상적이다. 하지만 그 이유가 뭘까?

하우스는 “야구란 새로운 것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지휘하는 ‘실패의 게임’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늘 해온 대로 하고 싶어 한다.”

누구도 의식하지 못한다 해도 경기는 대부분 그렇게 흘러간다. 뉴욕 양키스는 지난봄 ‘타점 0’을 목표로 하는 라인업 구성으로 야구계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구원투수 델린 베턴시스, 앤드루 밀러, 아롤디스 채프먼이 각각 7, 8, 9회를 던졌다. 지금까지 채프먼과 밀러는 ERA(평균 자책점, 방어율)가 2.0 미만이고 2명 모두 WHIP(이닝 당 출루 허용률)이 1.00 이하다. 그 정도면 엘리트 수준이다. ESPN의 분석가 커크지언은 “선발투수에 의존하는 과거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기 힘든 게 야구”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톰 하우스의 예측이 틀렸다는 게 아니다. 내년은 아니라도 언젠가는 그의 예측대로 될 것이다.”

뉴욕 브루클린의 그린우드 공동묘지 북쪽 끝 다이아몬드(야구장 베이스라인을 뜻하며 각 코너에 화강암 베이스가 박혀 있다) 형태로 만든 묘 아래 헨리 채드윅이 묻혀 있다. ‘야구의 아버지’로 알려졌던 채드윅은 선수가 아니라 야구 전문기자였지만 미국 야구 역사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이었다. 그는 ‘박스 스코어’(선수들의 성적, 타율, 방어율, 포지션 등을 알려주는 일람표)를 고안했고, ‘K’로 삼진을 표시했으며, 타율 개념도 처음 도입했고, 베이스히트(안타)·더블 플레이(병살)·베이스 온 볼스(볼 넷 출루)·에러(실책)·싱글(1루타)·펑고(야수가 수비 연습을 할 수 있도록 배트로 쳐준 타구) 등 숱한 야구 용어도 만들어냈다.

1884년 채드윅은 야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통계를 창안했다. 투수의 승패 기록(pitcher’s win-loss record)이다. 사실 21세기 야구의 첨단 빅데이터 분석 세계에서 투수의 승패 기록이 ERA나 WHIP보다 그의 가치를 더 잘 평가한다고 생각하는 야구 전문가는 별로 없다. 투수의 승패 기록이 그처럼 별 가치가 없는 데도 희한하게 투수의 300승 기록은 야구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수 있는 보증 수표로 인정 받는다. 또 아메리칸리그와 내셔널리그 둘 다 그해의 최우수 투수에게 사이 영 상을 수여한다. 1890년부터 22년간 메이저리그 815경기에 선발 출장, 개인 통산 ‘최다승’인 511승을 거둔 전설적인 투수를 기념하는 상이다.

대다수 팬은 야구 역사에서 개인 통산 가장 낮은 ERA를 기록한 메이저리그 투수였던 에드 월시를 잘 모른다. 그만큼 관심을 받지 못했다는 얘기다. 그는 사이 영과 같은 시대에 뛴 투수로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스핏볼(투수가 구도를 변화시키기 위해 공에 침을 발라 던지는 투구로 지금은 금지된다)의 달인으로 이름을 떨쳤고 ERA 1.82로 은퇴했다. 월시는 자신의 최고 시즌이었던 1908년 화이트삭스 투수로 464이닝을 던져 ERA 1.40, 40승 15패를 기록했다. 몇 년 뒤 월시는 화이트삭스 감독에게 어깨 회복을 위해 1년을 쉬도록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는 결국 팔을 못 쓰게 돼 통산 195승으로 경력을 마감했다. 월시는 야구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고 개인 통산 최저 ERA 기록을 세웠지만 그의 이름은 야구 전통의 안개 속에서 서서히 사라졌다.

월시는 아메리칸리그 역사에서 더블헤더(하루에 동일한 팀들이 계속해서 두 경기를 치르는 것) 두 경기 모두를 승리한 적이 두 차례나 되는 유일한 투수였다. 그가 몇 이닝이라도 다른 투수와 교체했더라면 어깨를 보호해 더 오래 활동하면서 더 널리 유명해졌을 것이다. 또 투수는 개인보다 팀 승리를 위해 자주 교체되는 게 더 낫다.미국 야구연구협회의 로리 코스텔로 위원은 “1986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감독이었던 척 태너가 선발 없는 투수 로테이션을 처음 시도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선발투수들이 자신의 승패 기록에 불리하다고 불평하는 바람에 지속되지 못했다.”

108년만에 월드시리즈 우승 노리는 시카고 컵스를 이끄는 조 매든 감독. 그는 수비 시프트 등 혁신적인 전략을 과감히 도입했다.
태너 감독이 깨달았듯이 때론 투수가 마운드에 서기 전부터 감독에게 반항한다. 게다가 팬만이 아니라 투수도 ERA보다는 채드윅의 투수 승패 기록을 이해하기가 더 쉽다고 생각한다. 또 선발투수는 5이닝 이상을 던져야 승리투수가 될 수 있어 감독은 은연 중에 그런 승리에 맞춰 전략을 짠다.

늘 그렇듯이 혁신적인 발상이 나왔을 때 그것이 더 나은 아이디어란 사실보다는 비용 대비 효과가 크기 때문에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 하우스는 “만약 구단주가 감독에게 1억 달러짜리 투수가 부상자 명단에 올라 시즌을 그냥 보내는 게 말이 되느냐고 따진다면 어떻게 될까?”라고 물었다(예를 들어 뉴욕 양키스는 2005∼2008년 칼 파바노에게 4000만 달러를 지급했지만 그는 4시즌 동안 26경기에만 선발투수로 출장했다).

메이저리그에서 현재 더그아웃을 차지하는 가장 혁신적인 인물은 시카고 컵스의 감독 조 매든이다. 그는 수비 시프트(타자의 타격 성향에 따라 타구가 가장 많이 날아가는 방향으로 모든 야수의 수비 자리를 옮기는 수비 진형)를 일상적인 전략으로 확립했으며 시카고 컵스의 실적을 최고로 올리고 있다. 만약 매든 감독이 시카고 컵스를 108년만에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끌 수 있다면 그건 분명히 ‘혁신의 승리’로 기록될 것이다.

하우스는 “선발을 따로 두지 않는 투수 로테이션이 성공하려면 시카고 컵스의 조 매든 같은 감독과 테오 엡스타인 같은 단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물론 에이스 투수를 이런 개념에 따르도록 설득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팀이 승리한다면 사정은 다르다. 매든 감독의 수비 시프트와 마찬가지다. 한 팀이 혁신적인 전술로 승승장구하면 그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혁신이 표준이 된다.”

야구 전통주의자나 순수주의자들에겐 ‘꼼수’로 들릴지 모르지만 선발투수제를 폐지하는 것이 경제적으로나 전략적으로 타당성이 있다고 본다. 그럴 경우 타자에겐 완전히 새로운 장애물이 될 것이다.

- 존 월터스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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