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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익의 ‘한국 경제 구하기’(8)] 디플레이션 파이터가 절실하다

[김영익의 ‘한국 경제 구하기’(8)] 디플레이션 파이터가 절실하다

가계·기업은 자금잉여 주체... 정부가 나서 미래 생산성 높이도록 돈 써야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골프장 예약률이 떨어지고 문을 닫는 고급 식당도 하나둘 나오고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이는 한국 경제에 다가올 디플레이션을 미리 반영한 것이고, 시차를 두고 디플레이션 압력을 더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민간 부문이 위축되고 있기 때문에 정책당국은 좀 더 적극적인 재정·통화정책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국 경제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가 잠재능력 이하로 성장하고 있다. 쉽게 말해서 경제 전체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산업에서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고 있는 상태다. 그래서 미국 등 주요 선진국은 과감한 재정·통화정책으로 수요를 부양했다. 그러나 아직도 각국의 실제 국내총생산(GDP)이 잠재 GDP 이하로 성장하면서 디플레이션 압력이 존재한다. 여기다가 선진 주요국 정부 부채가 크게 늘어나 재정으로 경기를 부양하는 데 한계에 도달했으며, 장기간 초저금리가 지속되면서 금리가 소비나 투자에 미치는 영향도 줄어들고 있다.
 기업 구조조정과 가계 소비심리 위축
초과 공급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공급 측면에서 구조조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산업은 존재하지만, 그 산업 내에 기업 수는 갈수록 줄어들 것이다. 최근 한진해운의 구조조정에서 우리는 냉엄한 현실을 목격하고 있다. 기업의 구조조정은 필연적으로 투자 및 고용 감소를 초래해, 가계의 근로소득을 줄이고 소비를 더 위축시킬 것이다.

여기다가 우리 가계의 부실 정도는 최근으로 올수록 더 심각해지고 있다. 예를 들면 가계(비영리단체 포함)부채가 가처분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00년 78%에서 지난해에는 170%로 급증했다. 특히 가계부채는 2002년부터 큰 폭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그래프 참조]. 당시 부채가 크게 늘어난 것은 주로 다음 세 가지 때문이었다. 우선 경제위기 동안 구조조정을 겪은 기업의 이익이 증가했으나, 이들은 투자를 상대적으로 줄였다. 기업의 은행 자금 수요가 감소한 것이다. 다음으로 가계가 저금리에 적응하지 못했다. 1998년 한 때 20%를 넘어섰던 은행의 대출금리가 2002년에는 6~7%로 떨어졌다. 기업의 자금 수요 둔화로 은행은 가계 대출을 증가시킬 수밖에 없었다. 가계는 갑자기 낮아진 금리로 은행 돈을 빌려 소비를 늘렸고 주식과 부동산을 구입했다. 이에 따라 은행의 대출 중 기업 비중은 1998년 71%에서 2002년 52%로 급락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가계 비중은 같은 기간 29%에서 48%로 급증했다. 마지막으로 정부의 내수 부양정책도 가계 부채 증가에 기여했다. 2001년 ‘9·11 테러’로 세계 경제가 위축되면서 수출이 감소하자 우리 정부는 금리 인하 등으로 소비를 부양했다.

이와 같은 요인으로 가계부채가 급증하기 시작했으며, 그 이후 가계의 소비 여력이 줄어들고 있다. 2003년 1분기에서 올해 2분기까지 실질 민간소비 증가율이 평균 2.4%로 경제성장률(3.6%)을 훨씬 밑돌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물론 가계가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린 결과, 가계의 자금잉여가 늘어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2015년 개인의 자금잉여가 99조원으로 규모로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 한 해 동안 개인들이 금융회사에 저축한 돈이 빌려 쓴 돈보다 그만큼 많았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개인의 연간 소득 중 47%를 상위 10%가 가져갈 만큼 소득분배의 불균형이 심각하다. 금융자산을 많이 가진 부자들의 소비 여력이 큰 상황인데, 김영란법 등으로 인해 이들의 소비심리가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도입 초기인 올해 4분기에 소비 위축 현상이 경제 각 분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날 전망이다.

소비 중심으로 우리 경제가 잠재능력 이하로 성장하면서 물가상승률도 낮아지고 있다. 한국은행은 정부와 협의해 중기(보통 3년) 물가안정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그 기준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인데, 최근 실제 물가상승률이 목표치를 밑돌고 있다. 2013~15년 물가상승률 목표를 2.5~3.5%로 설정했는데, 지난 3년 동안 실제 물가상승률은 연평균 1.1%로 목표치 하한 선에도 접근하지도 못했다. 또한 2016~18년 소비자물가 상승률 목표치를 2%로 제시하고 통화정책을 운용하고 있는데, 올해 들어 8월까지 물가상승률은 0.7%에 그쳤다. 국내외 수요 부진으로 내년에도 물가상승률이 2%에 이를 가능성은 작다.

실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6개월 연속 물가안정 목표를 상 하로 0.5%포인트 벗어나면 한국은행 총재가 기자간담회 등을 통해 물가안정 목표와의 괴리 원인,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경로, 물가안정 목표 달성을 위한 통화신용정책 운용 방향을 국민에게 직접 설명해야 한다. 이후에도 물가 목표를 상하 0.5%포인트 벗어나는 상황이 지속되면 3개월마다 후속 설명 책임을 이행해야 한다. 상반기 월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8~1.3%로 목표치 2%에서 0.5%포인트 이상 아래로 벗어나자 한은 총재는 지난 7월에 기자간담회를 열어 물가안정 목표제 운용 상황을 설명했다. 올해 7~9월에도 물가상승률이 더 낮아져 한국은행은 총재는 10월에 같은 자리에 서게 될 것이다. 내년에도 역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5% 이하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언론에서 한은 총재를 자주 보게 될 전망이다.
 디플레이션 조짐 점점 두드러져
정책당국은 디플레이션 파이터로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 각 경제 주체 행위를 보면 정부가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경제 주체는 크게 가계·기업·정부·해외 부문으로 나눌 수 있다. 우선 가계는 저축의 주체이다. 개개인으로 보면 은행에 저축한 돈보다 빌린 돈이 더 많은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가계 전체로 보면 가계는 자금 잉여 주체이다. 가계는 근로소득을 포함한 각종 소득으로 소비하고 남은 부분을 저축하게 된다. 최근으로 올수록 우리 가계의 한계소비성향이 낮아지고 저축은 늘고 있다. 통계청의 분기별 ‘가계동향’에 따르면 가계의 평균소비성향(소비지출이 처분가능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10년 75.3%를 정점으로 계속 낮아지고 있다. 2016년 1분기에는 평균소비성향이 69.2%로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했던 2005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와 달리 저축은 늘고 있다. 한국은행의 국민계정 통계를 보면, 2002년 3.9%까지 떨어졌던 가계 저축률이 2015년에는 8.1%로 올라갔다. 급속하게 진행되는 인구고령화, 수명 연장과 더불어 미래 경제에 대한 불안 심리로 가계가 저축을 늘리고 있는 것이다. 특히 고용의 지속성 여부에 대한 불안이 소비심리를 더 위축시키고 있다.

갈수록 가계 저축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머지않아 기업도 자금잉여 주체가 될 가능성이 크다. 기업은 일반적으로 금융회사에서 돈을 빌리거나(간접금융), 증권시장에서 주식 혹은 채권 발행(직접금융)을 통해 자금을 조달해서 투자한다. 그래서 기업은 자금 부족 주체라 한다. 그런데 기업의 자금 부족액이 경제 규모에 비해서 줄어드는 추세가 지속되고 있다. 한국은행이 분기별로 발표하는 자금순환에 따르면 기업의 자금부족액/명목 GDP 비율이 2008년 4분기에는 9.1%였으나 2016년 1분기에는 1.0%로 크게 하락했다. 우리 기업이 지난 1분기 현재 508조원의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을 만큼 투자처가 많지 않다는 의미이다. 이런 추세로 가면 적어도 3년 이내에 기업이 가계처럼 자금잉여 주체로 전환할 가능성이 크다.

가계 저축이 늘고 있는 가운데 기업마저 자금잉여 주체가 되면 은행은 자금 운용에 심각한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은행은 돈이 들어오면 그걸 가계와 기업에 대출해주거나 유가증권에 투자하게 된다. 유가증권은 대부분 주식과 채권으로 구성된다. 가계와 더불어 기업이 은행에 빌려 쓴 돈보다 저축한 돈이 더 많아지면, 은행은 유가증권 투자를 늘릴 것이다. 은행의 보수적 자금 운용 성향을 고려하면 은행은 주식보다는 채권을 훨씬 더 많이 살 전망이다. 가계 저축률 증가와 기업의 투자율 감소로 국민경제 전체적으로 자금이 남아도는 상황에서 은행이 채권을 사면 시장금리는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세계 각국의 환율전쟁 이어져
금리 하락은 가계의 순이자소득(=수취이자-지급이자) 감소를 초래한다. 가계 전체적으로는 금융자산이 부채보다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금리 하락에 따라 우리나라 가계의 순이자소득이 2000년에 20조 4130억원으로 정점을 기록한 후 줄기 시작해 2015년에는 1379억원에 이르렀다. 한편 금리가 하락하면 보험회사의 역마진이 심화되면서, 많은 보험사가 시장에서 사라질 수 있다. 이 역시 고용 불안심리를 키워 소비 위축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GDP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인 소비와 투자가 위축되는 상황에서 김영란법이 시행됐다. 3만원 이하의 식사, 5만원 이하의 선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생산성을 크게 증대시키거나 비용을 줄여야 한다. 단기적으로 생산성이 향상되기 어렵다는 것을 가정하면 생산자들은 비용 절감으로 대응할 것이다. 많은 생산요소가 더 저렴해지면서 물가 하락에 기여할 것이다.

가계와 더불어 기업이 자금잉여 주체로 등장하면 경제의 다른 부문은 적자 주체가 돼야 한다. 그것이 정부이고 해외 부문이다. 우선 정부가 자금 부족 주체가 될 것이다. 앞으로 정부는 적자 예산을 편성할 수밖에 없고, 적자 폭 혹은 GDP 대비 적자 비율은 계속 증가할 것이다. 문제는 정부가 미래의 생산성 향상을 위해 돈을 얼마나 잘 쓰는가에 달려 있다. 일본에서는 1990년대 들어 이런 상황이 나타나면서 정부가 대규모로 지출을 늘렸으나 경제도 회복시키지 못하고 정부만 부실해졌다.

정부와 더불어 해외 부문이 가계와 기업의 자금잉여를 활용하게 될 것이다. 가계 소비와 기업 투자 부진으로 수입이 줄면서 우리나라는 최근 1000억 달러가 넘는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이 정도 흑자라면 원화가치가 큰 폭 상승했을 것이다. 그러나 경상수지 흑자로 들어온 달러가 해외직접투자나 증권투자를 통해 거의 대부분 나가고 있다. 그래서 경상수지가 GDP의 7%가 넘을 정도로 흑자를 내고 있는데도 환율이 안정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 각국이 자국의 디플레이션을 국외로 수출하기 위해서 돈을 더 풀어 통화가치를 떨어뜨렸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한국은행이 이들보다 더 적극적이지 않는 한,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를 바탕으로 원화가치가 상승하면서 국내 소비 부진으로 야기된 디플레이션 압력을 더 심화시킬 전망이다.

김영익 - 서강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대신증권·하나대투증권에서 리서치센터장을 역임했고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소장을 거쳤다. 2010년 한국창의투자자문 리서치대표로 자리를 옮겨 ‘랩 어카운트’ 투자 열풍을 일으켰다. [3년 후 미래] [이기는 기업과 함께 가라] [컴퓨터를 활용한 경제 분석 길잡이] [프로로 산다는 것]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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