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난봉꾼 왕세자와 천사 공주

난봉꾼 왕세자와 천사 공주

태국의 왕위 승계 두고 불안 커져…총리는 서열 1위 와치랄롱꼰 왕세자 즉위 선언했지만 국민은 시린톤 공주 선호해
시린톤 공주는 오랫동안 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성 중 한 명으로 오빠인 와치랄롱꼰 왕세자와 대조를 이룬다.
태국 국왕으로 70년 동안 재위한 푸미폰 아둔야뎃의 서거 소식이 전해진 지난 10월 13일, 태국 전체는 슬픔에 잠겼다. 푸미폰 국왕은 ‘살아있는 부처’로 불렸다. 정치적으로도 노련했으며, 연중 200일 이상을 지방에서 보낼 정도로 ‘백성’과 가까웠다. 격동의 시대에 태국을 인도하며 통합을 상징했던 ‘국부’ 푸미폰 국왕이 향년 88세로 서거하면서 6700만 인구의 태국은 정치적으로 불확실한 상황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마하 와치랄롱꼰(64) 왕세자는 국왕 서거 이후 바로 왕위를 물려받지 않고 부왕을 애도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태국 정부에 자신의 국왕 추대 절차를 미뤄달라고 요청했다. 왕세자가 그동안 국민의 신망을 받지 못했던 터라 왕위 계승에 문제가 생긴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전부터 신망 높은 푸미폰 국왕의 둘째 딸 마하 짜끄리 시린톤(61) 공주가 즉위할 가능성이 잠시 점쳐지기도 했다. 그녀는 과연 어떤 인물일까?

태국 국민은 시린톤 공주를 ‘쁘라텝’이라고 부른다. ‘천사 공주’란 뜻이다. 그녀는 1955년 출생으로 결혼하지 않고 미술에 열정을 보이고 부왕의 역점 사업인 개발계획에 헌신했다.

시린톤 공주는 오랫동안 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성 중 한 명이다. 그런 점에서 그녀는 푸미폰 국왕의 외아들로 오빠인 와치랄롱꼰 왕세자와 대조를 이룬다. 와치랄롱꼰 왕세자는 1972년 20세에 푸미폰 국왕의 후계자로 지명됐다. 그러나 태국 국민 다수가 그를 싫어한다. 바람둥이라는 평판 때문이다. 2007년엔 그의 세 번째 부인으로 웨이트리스 출신인 스리라슴이 끈 팬티만 입고 그의 애완견 생일을 축하하는 동영상이 인터넷으로 퍼지면서 그에 대한 반감은 더 커졌다.

입헌군주제가 도입되기 이전인 1924년에 제정된 태국의 왕실법에는 국왕만이 왕자 가운데서 후계자를 지명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었다. 그러나 1974년 개헌에서 왕위 계승 관련 규정에 공주도 국왕의 정치 자문단인 추밀원의 추천과 의회 승인 절차를 거쳐 왕위 승계자가 될 수 있다는 조항이 추가됐다. 물론 이 규정은 왕세자 또는 명백한 후계자가 없을 경우에만 적용되지만 태국 국민 다수는 시린톤 공주가 왕위를 계승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푸미폰 국왕의 장녀인 그녀의 언니 우본랏 랏차칸야(65) 공주는 평민인 외국인과 결혼해 왕위를 계승할 자격을 잃었기 때문이었다.2010년 폭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국 기밀 외교전문에 따르면 과거와 현재의 군사정권 지도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시린톤 공주가 태국의 왕위를 계승할 타당한 선택으로 인정된 듯했다. 공개된 전문에서 태국의 고위 관리들이 시린톤 공주의 왕위 계승 가능성을 논의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거기서 싯디 사베트실라 공군 대장은 “만약 왕세자가 사망한다면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어쩌면 시린톤 공주가 왕위를 계승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인용됐다.

‘태국 국민의 친선 대사’로 임명된 적도 있는 시린톤 공주는 중국 베이징대학에서 유학했으며 태국 왕실에서 중국 정부와 가장 가까운 사이로 인정 받는다. 왕좌가 빈 날 바로 즉위했던 푸미폰 국왕과 달리 그의 아들 와치랄롱꼰 왕세자는 애도와 왕위 계승 결심에 시간이 필요하다고 고집했다. 그 후 잠시 시린톤 공주의 왕위 계승 가능성이 소문으로 나돌았다. 그러나 쁘라윳 찬-오차 태국 총리는 불안감을 잠재우려는 듯 와치랄롱꼰 왕세자가 즉위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지난 10월 18일 기자들에게 “왕위 승계와 관련해선 그 누구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며 와 치랄롱꼰 왕세자의 즉위 절차를 헌법과 관련 법에 따라 조만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의 리스크 분석 컨설팅 회사인 베리스크 메이플크로프트의 선임 분석가 라이언 에린은 “군부가 왕위 승계 절차를 바꾸려 하면 나라 전체가 불안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푸미폰 국왕은 생전에 와치랄롱꼰 왕세자를 후계자로 지명했다. 그를 여동생으로 대체하려는 시도는 국왕의 유언을 위배하는 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

- 바수데반 스리다란 아이비타임즈 기자
 [박스기사] 34조원 유산 남긴 ‘거부 국왕’ - 푸미폰 국왕이 물려준 재산은 부동산과 주식, 보석이 대부분
2012년 85세 생일을 맞아 가족과 함께 왕궁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낸 푸미폰 국왕(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왕족 중 한 명이었던 푸미폰 아둔야뎃 태국 국왕이 남긴 재산은 약 300억 달러(34조원)로 추정된다. 주식과 토지, 545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등으로 구성된 그의 유산은 여러 왕실 가족이 상속받을 예정이다.

주요 상속인 중 한 명은 당연히 와치랄롱꼰 왕세자다. 하지만 그는 부왕과 달리 국민의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다. 푸미폰 국왕은 갈등하는 정당들의 협력을 도모하고 통합을 이끌며 국민의 존경을 한몸에 받았지만 와치랄롱꼰 왕세자는 2006년 쿠데타로 축출된 탁신 친나왓 전 총리와 개인적으로 가깝고 각종 스캔들로 악명 높은 ‘플레이보이’로 알려졌다.

푸미폰 국왕의 둘째 딸 마하 짜끄리 시린톤 공주도 부왕이 생전에 모은 재산 중 일부를 물려 받을 것이다. 그 외 그의 아내와 다른 두 자녀, 수많은 손주도 상속 대상이다.

푸미폰 국왕의 소득 대부분은 토지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 전문지 포브스의 추정에 따르면 수도 방콕에 있는 땅 13.5㎢와 나머지 전국 각지의 땅 53.5㎢가 그의 소유였다. 그 땅에서 나온 임대료 소득은 2010년 기준으로 약 8000만 달러였다. 푸미폰 국왕이 소유한 토지 중 일부에는 주택과 상가, 호텔, 정부 청사도 포함됐다. 태국 왕실의 투자와 재산을 관리하는 왕실재산관리국(CPB)은 2012년 포브스에 4만 건 이상의 임대 계약서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푸미폰 국왕은 부동산 소득 외 시암 은행의 지분 23.69%, 태국의 산업화를 견인해온 시암 시멘트 그룹의 지분 31.6%를 주식으로 보유했다. 그 가치는 70억 달러 이상으로 추산된다. 또 태국 왕실 가족은 왕궁의 유지와 보수, 생활비, 경호에 드는 돈을 공공 자금에서 지급 받는다. 물론 푸미폰 국왕이 남긴 재산에 비하면 그 정도는 푼돈이다.

- 해리엇 싱클레어 아이비타임즈 기자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트럼프 2기 앞두고…美, TSMC에 최대 9.2조원 보조금 확정

2종로학원 “서울대 의예 294점·경영 285점…눈치작전 불가피”

3의대생 단체 "내년에도 대정부 투쟁"…3월 복학 여부 불투명

4‘5만 전자’ 탈출할까…삼성전자, 10조원 자사주 매입

5하나은행도 비대면 대출 ‘셧다운’…“연말 가계대출 관리”

6 삼성전자, 10조원 규모 자사주 매입 “주주가치 제고”

7미래에셋증권, ‘아직도 시리즈’ 숏츠 출시…“연금 투자 고정관념 타파”

8대출규제 영향에…10월 전국 집값 상승폭 축소

9“하루 한 팩으로 끝”...농심, 여성 맞춤형 멀티비타민 출시

실시간 뉴스

1트럼프 2기 앞두고…美, TSMC에 최대 9.2조원 보조금 확정

2종로학원 “서울대 의예 294점·경영 285점…눈치작전 불가피”

3의대생 단체 "내년에도 대정부 투쟁"…3월 복학 여부 불투명

4‘5만 전자’ 탈출할까…삼성전자, 10조원 자사주 매입

5하나은행도 비대면 대출 ‘셧다운’…“연말 가계대출 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