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 돼지, 암’ 욕설의 과학
‘물고기, 돼지, 암’ 욕설의 과학
강렬한 감정을 효과적이고 상징적으로 전달해주는 표출 수단… 욕설의 심층 연구로 뇌에 관한 많은 것 알 수 있어 미국 캘리포니아대학(샌디에이고 캠퍼스)의 인지과학 교수 벤저민 버겐은 욕설에 관한 책을 쓰려고 사전 조사를 하면서 그런 걸 왜 연구하려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다른 고상한 주제도 많은데 왜 하필 상스러움과 비속함, 욕설에 관해 책을 쓰려 하는가? 인지과학자로서 그의 대답은 이렇다. “욕설은 단순히 우리가 뭔가에 머리를 세게 부딪치거나 다른 운전자가 갑자기 앞에 끼어들 때 내뱉는 상스런 표현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특히 학자들은 욕설이 우리 뇌의 작동 원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한다.
지난 9월 발간된 버겐 교수의 책 제목이 ‘우리 언어와 뇌, 우리 자신에 관해 욕설이 알려주는 모든 것(What the F: What Swearing Reveals About Our Language, Our Brains, and Ourselves)’이라는 사실에서 욕설이 진지한 과학적 탐구의 대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과학자들은 우리가 왜 어떻게 욕설을 사용하는지 연구함으로써 뇌에서 언어가 형성되는 부위와 욕설이 우리의 심리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다.
1950년대만 해도 욕설 연구는 섹스 연구와 같은 부류로 인식됐다. 논란 많고 부도덕한 면을 다룬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세태와 사고방식이 달라지면서 욕설 연구에 대한 거부감도 줄어들었다. 이 분야에서 그동안 확인된 가장 흥미롭고 중요한 사실 중 하나는 말이 만들어지는 뇌 부위가 한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버겐 교수는 “우리 뇌에서 말을 만들어내는 조립라인은 두 개”라고 설명했다.
과학자들은 뇌 손상이나 신경퇴행성 질환이 심한 환자를 관찰하면서 그런 점을 확인했다. 자주 인용되는 사례가 19세기의 뇌졸중 환자다. 그 환자는 뇌에 손상을 입어 언어를 생성하고 이해하는 능력을 잃었다(실어증으로 불린다). 그러나 욕은 할 수 있어 툭하면 민망한 단어를 내뱉았다. 더구나 그가 신부였기에 더욱 안타까웠다.
투렛증후군 환자도 뇌에서 언어가 생성되는 부위가 한곳이 아니라는 증거를 보여준다. 투렛증후군은 유전성 신경질환으로 틱장애(특별한 이유 없이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나 목, 어깨, 몸통 등의 신체 일부분을 아주 빠르고 반복적으로 움직이거나 이상한 소리를 낸다)가 특징이다. 환자 10명 중 1명에게 이런 틱장애는 욕설이나 공격적인 말(예를 들어 “넌 못생겼어”)로 나타난다. ‘강박적 외설증(coprolalia)’으로 불리는 이 증상은 원치 않거나 부적절한 행동을 억제하는 뇌 부위인 ‘기저핵’의 오작동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일상적인 말은 좌뇌의 표면과 가까운 부위에서 생성된다. 이 대뇌 피질(회백질) 부위는 사고와 행동 같은 높은 수준의 사고과정을 관장한다. 버겐 교수는 “대뇌 피질은 아주 정교하고 복잡한 구조”라고 설명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을 대표하는 기능이 거기서 나온다.”
그와 대조적으로 욕설은 뇌의 훨씬 깊은 곳에서 생성된다. 진화론적으로 말하자면 더 오래됐고 더 원시적인 부위라고 버겐 교수는 설명했다. 이 부위는 대부분 우뇌의 감정 센터인 변연계에 위치한다.
40여 년 전 욕설 연구를 시작한 심리학자 겸 언어학자 티머시 제이 교수는 “놀라움과 좌절, 분노와 행복, 두려움 등 강렬한 감정을 표현하는 언어가 욕설”이라고 말했다. “욕설은 분출 욕구를 충족시킨다. 내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아주 효과적이고 상징적으로 전달해준다. 다른 동물은 서로 물거나 할퀴지만 인간은 경멸을 표출하기 위해 욕설을 퍼부을 수 있다. 신체적으로 그런 감정을 표출할 필요가 없다.” 물론 그런 욕설을 듣는 사람의 원시적인 신체 반응을 막을 방법은 없다. 특히 술집 같은 곳에서 상대에게 욕했을 때가 그렇다.
욕설은 세계의 모든 언어에 존재한다. 미국 인디애나대학 언어학 교수로 최근 ‘욕설 찬양론(In Praise of Profanity)’을 펴낸 마이클 애덤스는 “특정 욕구를 일반적인 말로는 표현할 수 없지만 욕설로는 가능한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제이 교수에 따르면 평균으로 볼 때 우리의 일상 어휘 중 0.5%(200단어 마다 1개 꼴)가 욕설이다.
욕설은 다른 용도도 있다. 연인들은 상대를 성적으로 유혹하는 수단으로, 운동선수와 군인은 동지애를 형성하기 위해, 권력을 가진 사람은 우월성을 재확인하기 위해 욕설을 내뱉는다. 애덤스 교수는 욕설이 축하의 표현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모든 단어가 그렇듯이 욕설의 의미도 시대와 문화,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스와 로마 시대, 아니 그 훨씬 전부터 욕설이 있었지만 사람들이 모욕적으로 생각하는 대상은 세월이 흐르면서 달라졌다. 애덤스 교수는 “중세 사람들 사이에선 섹스나 배설물에 관한 이야기가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여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당시 신을 모독하는 말은 심적 부담이 아주 컸다. 그래서 그게 욕설이 됐다.”
또 요즘 영어권 사람은 신성모독적인 단어인 ‘damn’이라는 말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그러나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나왔던 시절 클라크 게이블이 연기한 주인공 레트 버틀러가 “Frankly my dear, I don’t give a damn(솔직히 말해 난 쥐뿔도 신경 쓰지 않소)”라고 말하자 관객과 여주인공 스칼릿 오하라는 큰 충격을 받았다.
버겐 교수에 따르면 그 이후로 신성모독은 가장 모욕적이고 충격적인 욕설에서 서서히 벗어났다. “요즘은 비방이 가장 나쁜 욕설이다.” 그는 일반적으로 욕설은 4가지로 나뉜다고 설명했다. 종교, 섹스, 배설물, 경멸적 비방 중 어느 하나와 관련된다는 뜻이다. 대부분은 본능적으로 큰 충격을 주지 않지만 성별이나 인종, 성정체성을 모욕하는 비방은 큰 타격이 될 수 있다.
아울러 문화에 따라 모독으로 생각하는 대상도 다를 수 있다. 칠레에선 ‘물고기’가 모독과 관련 있다(‘물고기와 xx하라’는 욕설이 있다). 이탈리아는 ‘돼지’를, 네덜란드인은 ‘암에 걸려버려라’고 욕한다.
우리는 욕설이 감정을 조절하는 뇌 부위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지만 욕설을 들었을 때도 바로 그 부위에서 처리되는 듯하다. 언어와 인지를 연구하는 저명한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 하버드대학 교수는 “우리가 금기시되는 말을 들으면 위협을 감지하는 뇌 부위인 편도체가 활성화된다는 증거가 있다”고 설명했다.
과학자들은 욕설이 미치는 영향을 더 깊이 파헤치려 한다. 특히 그들은 비방과 모욕적인 말이 상대방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탐구하는 데 관심이 크다. 예를 들어 그들은 중학생이 급우들로부터 욕설을 많이 들을 때 사회적 불안감이 더 커지는지 알아볼 계획이다.
욕설은 여전히 많은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 예를 들어 버겐 교수의 어머니는 아들이 쓴 책을 아직 다 읽지 않았다. 그러나 욕설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길 기대할 순 없다. 그러기엔 욕설이 우리 문화에 너무도 깊이 뿌리박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대다수는 가끔씩 욕설을 내뱉는다. “욕을 한마디도 하지 않는 사람은 진짜 드물다”고 버겐 교수는 말했다.
- 샌디 옹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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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발간된 버겐 교수의 책 제목이 ‘우리 언어와 뇌, 우리 자신에 관해 욕설이 알려주는 모든 것(What the F: What Swearing Reveals About Our Language, Our Brains, and Ourselves)’이라는 사실에서 욕설이 진지한 과학적 탐구의 대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과학자들은 우리가 왜 어떻게 욕설을 사용하는지 연구함으로써 뇌에서 언어가 형성되는 부위와 욕설이 우리의 심리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다.
1950년대만 해도 욕설 연구는 섹스 연구와 같은 부류로 인식됐다. 논란 많고 부도덕한 면을 다룬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세태와 사고방식이 달라지면서 욕설 연구에 대한 거부감도 줄어들었다. 이 분야에서 그동안 확인된 가장 흥미롭고 중요한 사실 중 하나는 말이 만들어지는 뇌 부위가 한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버겐 교수는 “우리 뇌에서 말을 만들어내는 조립라인은 두 개”라고 설명했다.
과학자들은 뇌 손상이나 신경퇴행성 질환이 심한 환자를 관찰하면서 그런 점을 확인했다. 자주 인용되는 사례가 19세기의 뇌졸중 환자다. 그 환자는 뇌에 손상을 입어 언어를 생성하고 이해하는 능력을 잃었다(실어증으로 불린다). 그러나 욕은 할 수 있어 툭하면 민망한 단어를 내뱉았다. 더구나 그가 신부였기에 더욱 안타까웠다.
투렛증후군 환자도 뇌에서 언어가 생성되는 부위가 한곳이 아니라는 증거를 보여준다. 투렛증후군은 유전성 신경질환으로 틱장애(특별한 이유 없이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나 목, 어깨, 몸통 등의 신체 일부분을 아주 빠르고 반복적으로 움직이거나 이상한 소리를 낸다)가 특징이다. 환자 10명 중 1명에게 이런 틱장애는 욕설이나 공격적인 말(예를 들어 “넌 못생겼어”)로 나타난다. ‘강박적 외설증(coprolalia)’으로 불리는 이 증상은 원치 않거나 부적절한 행동을 억제하는 뇌 부위인 ‘기저핵’의 오작동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일상적인 말은 좌뇌의 표면과 가까운 부위에서 생성된다. 이 대뇌 피질(회백질) 부위는 사고와 행동 같은 높은 수준의 사고과정을 관장한다. 버겐 교수는 “대뇌 피질은 아주 정교하고 복잡한 구조”라고 설명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을 대표하는 기능이 거기서 나온다.”
그와 대조적으로 욕설은 뇌의 훨씬 깊은 곳에서 생성된다. 진화론적으로 말하자면 더 오래됐고 더 원시적인 부위라고 버겐 교수는 설명했다. 이 부위는 대부분 우뇌의 감정 센터인 변연계에 위치한다.
40여 년 전 욕설 연구를 시작한 심리학자 겸 언어학자 티머시 제이 교수는 “놀라움과 좌절, 분노와 행복, 두려움 등 강렬한 감정을 표현하는 언어가 욕설”이라고 말했다. “욕설은 분출 욕구를 충족시킨다. 내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아주 효과적이고 상징적으로 전달해준다. 다른 동물은 서로 물거나 할퀴지만 인간은 경멸을 표출하기 위해 욕설을 퍼부을 수 있다. 신체적으로 그런 감정을 표출할 필요가 없다.” 물론 그런 욕설을 듣는 사람의 원시적인 신체 반응을 막을 방법은 없다. 특히 술집 같은 곳에서 상대에게 욕했을 때가 그렇다.
욕설은 세계의 모든 언어에 존재한다. 미국 인디애나대학 언어학 교수로 최근 ‘욕설 찬양론(In Praise of Profanity)’을 펴낸 마이클 애덤스는 “특정 욕구를 일반적인 말로는 표현할 수 없지만 욕설로는 가능한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제이 교수에 따르면 평균으로 볼 때 우리의 일상 어휘 중 0.5%(200단어 마다 1개 꼴)가 욕설이다.
욕설은 다른 용도도 있다. 연인들은 상대를 성적으로 유혹하는 수단으로, 운동선수와 군인은 동지애를 형성하기 위해, 권력을 가진 사람은 우월성을 재확인하기 위해 욕설을 내뱉는다. 애덤스 교수는 욕설이 축하의 표현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모든 단어가 그렇듯이 욕설의 의미도 시대와 문화,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스와 로마 시대, 아니 그 훨씬 전부터 욕설이 있었지만 사람들이 모욕적으로 생각하는 대상은 세월이 흐르면서 달라졌다. 애덤스 교수는 “중세 사람들 사이에선 섹스나 배설물에 관한 이야기가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여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당시 신을 모독하는 말은 심적 부담이 아주 컸다. 그래서 그게 욕설이 됐다.”
또 요즘 영어권 사람은 신성모독적인 단어인 ‘damn’이라는 말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그러나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나왔던 시절 클라크 게이블이 연기한 주인공 레트 버틀러가 “Frankly my dear, I don’t give a damn(솔직히 말해 난 쥐뿔도 신경 쓰지 않소)”라고 말하자 관객과 여주인공 스칼릿 오하라는 큰 충격을 받았다.
버겐 교수에 따르면 그 이후로 신성모독은 가장 모욕적이고 충격적인 욕설에서 서서히 벗어났다. “요즘은 비방이 가장 나쁜 욕설이다.” 그는 일반적으로 욕설은 4가지로 나뉜다고 설명했다. 종교, 섹스, 배설물, 경멸적 비방 중 어느 하나와 관련된다는 뜻이다. 대부분은 본능적으로 큰 충격을 주지 않지만 성별이나 인종, 성정체성을 모욕하는 비방은 큰 타격이 될 수 있다.
아울러 문화에 따라 모독으로 생각하는 대상도 다를 수 있다. 칠레에선 ‘물고기’가 모독과 관련 있다(‘물고기와 xx하라’는 욕설이 있다). 이탈리아는 ‘돼지’를, 네덜란드인은 ‘암에 걸려버려라’고 욕한다.
우리는 욕설이 감정을 조절하는 뇌 부위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지만 욕설을 들었을 때도 바로 그 부위에서 처리되는 듯하다. 언어와 인지를 연구하는 저명한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 하버드대학 교수는 “우리가 금기시되는 말을 들으면 위협을 감지하는 뇌 부위인 편도체가 활성화된다는 증거가 있다”고 설명했다.
과학자들은 욕설이 미치는 영향을 더 깊이 파헤치려 한다. 특히 그들은 비방과 모욕적인 말이 상대방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탐구하는 데 관심이 크다. 예를 들어 그들은 중학생이 급우들로부터 욕설을 많이 들을 때 사회적 불안감이 더 커지는지 알아볼 계획이다.
욕설은 여전히 많은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 예를 들어 버겐 교수의 어머니는 아들이 쓴 책을 아직 다 읽지 않았다. 그러나 욕설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길 기대할 순 없다. 그러기엔 욕설이 우리 문화에 너무도 깊이 뿌리박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대다수는 가끔씩 욕설을 내뱉는다. “욕을 한마디도 하지 않는 사람은 진짜 드물다”고 버겐 교수는 말했다.
- 샌디 옹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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