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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동 걸린 소아마비 퇴치 운동

제동 걸린 소아마비 퇴치 운동

세계적인 근절 노력이 목표 달성을 앞둔 시점에서 백신 공급 문제로 차질 빚어
파키스탄 카라치에서 소아마비 예방접종을 받는 어린이. 파키스탄에선 잘못된 정보와 정치적 폭력사태로 소아마비 퇴치 노력이 차질을 빚었다.
소아마비는 폴리오 바이러스가 신경계를 감염시켜 발생하는 전염성 질환이다. 소아마비를 근절하려는 국제운동이 1988년 시작된 이래 전 세계에서 25억 명(거의 전부가 어린이였다)이 예방 접종을 받았다. 2000년까지 소아마비를 지구상에서 완전히 없애겠다는 목표는 16년 이상 달성이 지연됐지만 그래도 상당히 근접하고 있다. 이런 노력으로 이제 소아마비는 전 세계에서 3개국에서만 발생하는 질병으로 억제됐고 2020년까지는 완전 퇴치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최근 갑자기 새로운 변수가 등장했다. 백신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세계보건기구(WHO),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유니세프, 국제로터리클럽,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이 참여하는 이 국제운동은 올해 주사용 소아마비 백신(IPV) 1억1000만 도즈(1회 투약분)를 공급 받을 예정이었지만 2개 제약사로부터 그 절반밖에 공급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유니세프의 샤넬 홀 공급 담당 국장은 “구체적인 이유를 듣진 못했지만 뭔가 백신 생산을 가로막는 것 같다”며 “2018년이 돼야 필요한 물량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세계 100개국 이상이 그 백신에 의존한다. 물량이 확보되지 않으면 소아마비 근절 운동은 탄력을 잃게 된다. 많은 어린이가 예방 접종을 받지 못하면 새로운 소아마비 유행이 나타날 수 있다고 관계자들은 우려한다.

소아마비 백신 전략은 복잡하지만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렇다. 1950년대 이후 두 가지 소아마비 백신이 나왔다. 하나는 조나스 솔크가 개발한 IPV로 죽은 바이러스를 이용해 면역 반응을 일으키는 방식이다. 다른 하나는 앨버트 세이빈이 개발한 경구용 백신(OPV)으로 살아 있지만 병원성이 약화된 바이러스를 사용해 같은 효과를 낸다.

선진국은 IPV를 채택했지만 다른 지역에선 소아마비 퇴치 운동이 시작되면서 OPV를 선택했다. OPV가 유리한 점이 많기 때문이었다. 구입과 투여 비용이 낮고 의료 훈련을 받지 않은 자원봉사자가 투여를 감독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백신을 이용하는 OPV는 죽은 바이러스를 사용하는 IPV가 할 수 없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수동 면역을 말한다. OPV 백신을 경구 투여한 아이의 체내에서 바이러스가 증식할 수 있고, 이것이 배설을 통해 환경으로 유입되면 음식물을 통해 그 바이러스가 다른 사람에게 들어가 면역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뜻이다.

이 같은 증식과 확산 능력은 효율성이 높지만 의도치 않은 부작용도 수반한다. 병원성이 약화된 바이러스가 독성 강한 변종으로 진화하면 예방이 아니라 감염을 일으킬 수 있다. 지난해 전 세계에서 소아마비 발병이 74건으로 줄었을 때 그중 32건은 ‘백신에서 유래된’ 바이러스가 일으킨 것으로 확인됐다.

그런 사례의 재발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소아마비 퇴치 국제운동 본부는 지난해 4월 OPV를 사용하는 국가에서 백신의 종류를 바꿨다. 이전에는 폴리오 바이러스 1∼3형 전부의 약화된 종을 사용했지만 새 백신에는 1형과 3형 바이러스만 포함시켰다. 2형 바이러스는 1999년 이래 자연환경에서 완전히 소멸된 것으로 판단됐고 나머지 두 가지 형태의 바이러스보다 독성 강한 변종으로 진화할 가능성이 더 컸기 때문이었다.

전문가들은 그 전략이 리스크가 있다고 인정했다. 2형 폴리오 바이러스가 다시 등장하거나 누군가의 체내에 남아 있는 2형 백신 바이러스가 변이를 일으켜 환경으로 침투할 경우 2형 소아마비가 유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리스크는 2형 바이러스를 빼고 제조한 새로운 OPV와 함께 IPV도 한 차례 투여하는 전략으로 제거할 수 있다. IPV에는 1∼3형 바이러스가 모두 포함되며 죽은 백신이기 때문에 증식되지 않는다.

그런 기발한 전략이 효과를 내고 있지만 현재 IPV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차질이 빚어졌다. CDC에서 소아마비 퇴치운동을 이끄는 소아과 전문의 스티븐 코치 박사는 “IPV가 공급되지 않는 나라에서 지난해 5월 이후 출생한 아이는 2형 소아마비 바이러스에 면역력이 없다”고 설명했다. “IPV 공급이 원활해야 그 아이들에게 추가 접종을 할 수 있다. 그전까지는 백신에서 유래된 소아마비 유행이 발생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소아마비 퇴치 국제운동 본부는 백신 부족에 대처하기 위해 OPV를 사용하는 국가들을 유행 발생 위험에 따라 분류해 접종 우선순위를 정한다. 그에 따라 자연환경에 폴리오 바이러스가 남아 있는 3개국(아프가니스탄·나이지리아·파키스탄)이 IPV를 가장 많이 공급 받는다. 위험이 낮아 아래쪽 순위에 있는 국가는 공급 상황이 개선될 때까지 IPV를 제공 받지 않을 것이다. 다른 제약사들은 2019년부터 소아마비 퇴치 국제운동에 백신을 공급할 수 있다.

IPV 공급에 차질을 빚은 두 제약사는 네덜란드의 빌트호벤 바이올로지컬(인도 최대의 백신 제조사 인도혈청연구소가 2012년 인수했다)과 프랑스의 사노피 파스퇴르다. 빌트호벤 바이올로지컬은 논평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사노피 파스퇴르의 북미 홍보 책임자 애슐리 코스는 이메일 성명을 통해 백신 부족은 인정했지만 이유를 설명하진 않았다.

WHO의 미셸 자프란 소아마비 퇴치 담당 국장은 지난해 4월 OPV 백신 교체 전부터 IPV 공급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밝혔다. “WHO의 면역 자문관들은 백신에서 2형 바이러스를 제외하는 것의 혜택이 리스크보다 훨씬 크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교체 이래 IPV 공급이 더 줄었다. IPV를 전혀 공급 받지 못하는 나라가 29개국이나 된다.”

WHO는 공급되는 백신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각국에 IPV의 ‘소량 도즈’ 주사를 권장한다. 소량의 백신을 근육이 아니라 피하에 주사하는 까다로운 방법이다. 그런 주사에는 별도의 교육이 필요하며, 백신 제조 당시 인가되지 않은 방법이기 때문에 일부 국가들은 그런 방식을 꺼린다.

기존의 면역 프로그램에 주사용 백신을 추가하는 전략은 쉬운 일이 아니다. 공급 부족으로 해당 국가들이 지금까지 해오던 IPV 접종을 중단하면 유행을 촉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수십억 달러가 투입됐고 자원봉사자도 수백만 명이 동원된 소아마비 퇴치 운동의 평판도 나빠질 것이라고 관계자들은 우려한다.

자프란 국장은 “여러 나라를 직접 찾아가 왜 IPV 백신을 공급 받지 못하는지 설득해야 한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우린 최선의 효과를 고려해 모든 나라에 IPV를 도입하도록 권했지만 지금은 백신을 충분히 공급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그런 좌절도 있지만 연구자들은 소아마비 퇴치가 가능하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백신 교체 결정으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리스크가 생겼다. 그 리스크를 돌파하려면 약간의 운이 필요하다. 하지만 전염병을 상대할 때 운은 믿을 게 못 된다.

- 매린 매케나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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