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의 경영의 정석(11) 해운·조선산업 몰락 어떻게 볼 것인가?
김동호의 경영의 정석(11) 해운·조선산업 몰락 어떻게 볼 것인가?
한국 해운·조선산업 몰락의 비극은 경제의 기본인 수요·공급 룰을 지키지 않은데서 비롯됐다. 경영의 기본을 지키지 않으면 어느 기업이나 어느 산업이나 이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수요와 공급은 경제 원리의 기본이다. 수요가 넘치면 대박을 터뜨리고, 공급 과잉이 발생하면 가격 폭락으로 쪽박을 찬다. 이런 원리를 피해나갈 기업은 어디에도 없다. 서비스 한 번, 제품 한 개의 가격이 수천억 원에 달하는 해운과 조선 산업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이들 업종은 수요를 잘못 예측하면 한 방에 훅 간다. 서비스나 제품의 가격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해운·조선산업 몰락의 비극도 경영의 기본인 수요·공급 룰을 지키지 않은데서 비롯됐다. 경영의 기본을 지키지 않으면 어느 기업이나 어느 산업이나 이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39년간 아시아 해운강자로 군림해온 한진해운이 지난해 연말 불과 석 달 만에 공중분해됐다. 삼일회계법인은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 중인 한진해운을 청산하는 게 존속하는 것보다 더 낫다는 실사보고서를 지난해 12월12일 서울중앙지법에 제출했다. 한진해운의 청산가치는 1조8000억원이고 존속가치는 9000억원으로 산정된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6위 대형 해운사가 몰락하는 과정은 너무 허무했다. 기업의 방심과 정부의 무능이 빚어 낸 참사라고 할 수 있다. 먼저 기업의 방심부터 살펴보자. 잘못된 경영권 이전이 불행의 씨앗이었다. 전문성이 없는 사람이 경영권을 잡았다.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이다. 그는 한진해운이 본격적으로 기울기 시작하던 지난해 5월,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의 조사를 받았다. 앞서 4월6일, 한진해운의 외부 컨설턴트와 통화한 뒤 14차례에 걸쳐 자신과 두 딸이 갖고 있던 주식 전량을 팔아치운 것이 조사의 발단이 됐다. 검찰은 그의 사무실과 자택 등 7~8곳을 압수수색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회사 내부에서는 이미 4월 초 자율협약(채권단 공동관리) 신청 방침이 정해져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최 전 회장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주식을 팔았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한 행동을 했다는 얘기다. 금융위원회는 최 전 회장과 두 딸이 보유했던 지분 처분을 통해 회피한 손실액을 10억 원 가량으로 추산했다. 자율협약 이후 폭락이 불 보듯 뻔한 주식을 미리 팔아치워 골치 아픈 기업 경영에서 발을 빼려 했다면 경영 부실로 회사가 위기에 빠지자 단물만 빼고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도덕적 해이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침몰 중인 세월호를 버리고 떠난 이준석 선장의 행위와 다를 바 없다. 내부 정보를 모르는 선량한 투자자는 한진해운이 자율협약에 들어가자 주가 폭락으로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실제 한진해운 주가는 자율협약 직후 40% 가량 폭락했다.
최 전 회장은 남편인 조수호 전 한진해운 회장이 2006년 별세하면서 물려받은 주식의 상속세를 내려고 받은 대출 상환을 위해 주식을 팔았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오비이락(烏飛梨落)이라는 항변이었다. 하지만 오너가 경영하던 회사가 좌초 위기에 직면하자 주식을 처분한 것을 정상이라고 볼 사람은 없다.
한진해운 경영이 좌초하게 된 직접적 원인은 잘못된 수요예측에서 비롯됐다. 해운 물량이 증가하고 화물운임이 오를 것으로 예상한 한진해운은 수요 증가에 대비해 과도하게 비용을 지불하고 용선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시장은 정반대로 갔다.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세계 경기가 둔화되면서 국제 물동량이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엄청나게 높게 계약한 용선료가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실어나를 화물은 없는데 부르는 대로 돈을 주고 계약한 용선료가 발목을 잡기 시작한 것이다.
경영이 어려워지자 정부가 뒤늦게 한진해운 문제를 살피기 시작했다. 한진해운에 이어 현대상선까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하자 정부는 대규모 자본 확충과 구조조정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이미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단계였지만 자구노력에 적극적이었던 현대상선은 회생의 기회를 잡았고, 오너조차 주식을 처분한 한진해운은 회생 불능에 빠졌다. 대마불사(大馬不死ㆍtoo big to fail)는 통하지 않았다. 공급과잉이 심각해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해운·조선·철강·유화·건설 등 5대 산업이 모두 위기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어느 한 기업을 살리는 것은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한진해운은 국내 기업의 해상 수출길을 책임져왔기 때문에 설마 채권단이 지원을 끊고 법정관리의 늪으로 밀어넣고 정부가 이를 용인할까 했지만 결국 법정관리를 피할 수 없었다. 파장은 일파만파로 확산됐다. 법정관리 신청 하루 만에 컨테이너선 41척과 벌크선 4척 등 총 45척의 선박이 세계 곳곳에서 압류되거나 항만 출입이 금지됐다. 한진해운이 운영하는 98척의 절반이 억류되면서 하루 아침에 국적선사 1위 회사가 세계 주요 항만에서 손발이 묶이면서 국가 수출경쟁력이 휘청거리게 됐다.
상황은 심각했다. 한국을 떠난 수출 한국의 선박이 전 세계 주요 항만에 꽁꽁 묶였다. 한국 상품을 실은 한진해운 선박은 중국 샤먼·상하이·닝보, 스페인 발렌시아, 미국 사바나·롱비치· 캐나다 프린스루퍼트, 싱가포르, 일본 요코하마, 호주 시드니, 독일 함부르크에 이르기까지 세계 도처에서 오도 가도 못했다. 어렵게 입항해도 하역작업을 거부당해 장기간 정박 대기 상태로 있어야 했다. 당시 한진해운이 집계한 ‘선박 억류 현황’에 따르면 이들 선박에 실린 화물량은 12만TEU(1TEU는 20피트 길이 컨테이너 1개)였다. 금액으로는 140억 달러(약 15조원)어치의 화물이 세계 바다를 떠돌았다.
설상가상으로 한진해운이 속한 해운동맹은 한진해운 화물을 싣지 않기로 하면서 물류 혼란을 부채질했다. 이 여파로 일시적으로 배를 구하지 못하자 운임이 50% 가량 폭등하기도 했다. 해양수산부는 ‘해운·항만 물류 비상대책반’을 구성해 수출입화물 비상운송대책회의를 열었지만 조기에 사태를 수습하지 못했다. 삼성전자는 해상 물동량의 43~45%, LG전자는 20%를 한진해운을 통해 운송해 왔으니 한국의 수출 맥박은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정부가 평소 적절한 산업 구조조정 타이밍을 놓쳐 국가 기간산업이 무너진 것도 문제인데, 어설픈 대처로 물류대란을 일으켜 국제적으로 나라 망신을 시킨 것이다. 한진해운 사태가 국제 이슈가 된 이유는 한진해운 화물의 90%가 중국·미국을 비롯한 외국 물품으로 드러나면서다. 수습책이 시도되기는 했으나 효과는 없었다. 당시 서울중앙지법 파산부가 한진해운이 ㈜한진에 매각하기로 했던 ‘아시아 8개 영업 노선’에 대해 영업권 이전 금지 명령을 내려 한진해운의 불안 확산 차단에 나섰다. 미국은 상무부 차관보급을 한국에 급파해 사태 수습에 나섰고, 미 법원은 한진해운 선박에 대한 압류금지 조치를 승인했다. 삼성전자는 하역비를 직접 낼 테니 화물이 억류되지 않게 해달라고 미국 파산법원에 요청하는 등 자구책을 폈다.치밀한 사후 대책 없이 한진해운을 법정관리에 덜컥 밀어 넣은 뒤 혼란을 수습하지 못한 대가는 컸다. 한진해운 붕괴로 한국은 2016년 연말에는 앞서 같은 해 9월 한진해운 법정관리 이전과 비교했을 때 전체 컨테이너 수송능력(선복량) 59%를 상실했다. 토종 해운이 반 토막 나자 중국·유럽 선사들만 반사이익을 보며 ‘치킨게임’ 승자로 떠올랐다. 국적선사를 잃은 화주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해외 선사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상대적으로 외국과 거래 능력이 적은 중소기업은 짐을 수송할 선사 찾기에 더 어려움을 겪었다.
한진해운은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의 셰르파’같은 존재였다. 2015년 국내 수출액 73%가 해상 운송을 통해 이뤄졌다. 이 가운데 한진해운은 전국 항만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컨테이너 화물 6.6%를 도맡아 처리했다. 전국 수출입 컨테이너 76%가 몰리는 부산항에서는 전체 물량의 9.3%를 한진해운이 날랐다. 이런 혼란을 겪으면서도 정부는 무능력을 드러냈다. 시장원리에 의해 기업이 진입하고 퇴출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한진해운은 국가 기간산업이라는 점에서 죽이는 것보다 살리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 한진해운 청산은 단순히 일개 기업 퇴출이 아니라 39년간 국내 해운 역사를 써온 산업의 몰락이라고 봐야 한다. 기업이 경영을 실패하면 시장원리에 따라 청산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수출의 짐꾼 같은 존재가 붕괴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해운산업은 대표적인 망(네트워크)산업이기 때문에 해외 업체와의 제휴도 불가피하다. 경쟁하면서도 협력하는 관계를 유지하는 특수한 업종이다. 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해운동맹인데, 한국은 여기서도 배제됐다. 한진해운 청산 가능성과 현대상선의 2M 조건부 가입으로 글로벌 해운동맹에 정식 가입된 토종 해운사는 단 한 곳도 없게 됐다는 얘기다. 한 때 아시아 2위 해운강국이었던 한국 해운산업 몰락의 현주소다.
한국은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기 전만 해도 양대 해운동맹을 주도했다. 그러나 한진해운은 법정관리로 종전 해운동행(CKYHE)에서 탈락했다. 현대상선은 지난해 12월11일 세계 최대 해운동맹인 2M(머스크·MSC)과 미주·유럽 노선에서 선복매입과 선복교환을 조건으로 하는 3년 기간의 ‘2M+H 전략적 협력’을 체결했다. 이는 당초 현대상선이 목표로 했던 정식회원이 아니라 준회원 자격의 공동영업이다. 정회원들끼리는 선복 및 터미널 공유나 수익배분이 이뤄지지만 협력사는 이것이 제한된다.
2M 회원사인 머스크와 MSC는 글로벌 1, 2위 해운사로 글로벌 시장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데 비해 현대상선의 시장 점유율은 2%에 그치는 것이 현실이다. 한진해운은 글로벌 순위가 6위였으나 법정관리 이후 24위로 추락했다. 이러한 상황을 종합하면 정부의 산업정책과 구조조정 정책은 100% 실패작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해운업계 관계자들은 한국 정부가 “바다를 버렸다”고 자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는 마치 임진왜란 와중이던 1597년 칠전량해전에서 조선 수군이 왜군에 대패한 뒤 삼도수군통제사로 복귀한 이순신 장군에게 선조가 “수군을 폐하고 육군으로 통합하라”고 명했을 때를 연상시킨다. 이순신은 “아직 12척의 배가 남았다”며 명량해전을 준비했는데, 이는 바다를 내어주면 조선이 망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해운과 관련해 두 번의 실책을 했다. 첫째는 평소 해운산업을 챙겨보지 못해 구조조정에 이르게 했다는 점이다. 둘째는 구조조정 과정에서의 실책이다. 경쟁국 역시 해운산업의 위기를 맞았지만 대응이 달랐다. 공직기강이 확고했기 때문에 어설프게 해운업을 시장원리대로 맡겨야 한다고 하지 않았다. 경쟁국의 수습안은 명료하다. 정부가 지원해서 일단 살리고 본 뒤 구조조정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글로벌 최강자 머스크는 이때를 오히려 기회로 삼아 사상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에 합의했다. 머스크가 독일 함부르크쥐드를 삼키면 세계 컨테이너시장 점유율이 18.6%로 수직상승한다. 일본 3대 해운사도 컨테이너 부문 합병을 결정했다. 자국 양대 선사 합병을 검토하던 대만 정부는 저금리 대출 등 금융 지원 패키지를 마련하기로 했다. 경쟁국의 이런 움직임에 견주어봐도 한국 정부의 대응은 틀렸다.
명백한 근거는 조선업에 적용한 이중잣대다. 정부는 한진그룹이 경영 정상화를 위한 의지가 약하다고 보고 추가로 유동성을 지원하지 않고 시장원리대로 방향을 잡았다. 한진해운은 자산을 팔고 사업을 매각해 2013년 제시했던 자구계획안(2조4683억원)의 109%를 달성했다. 그러나 채권단은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봤고 정부는 법정관리를 허용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이와 대조적이다. 자구계획 이행률이 28%(1조5000억원)였던 대우조선해양에는 추가 지원을 약속한 것이다. 대우조선해양 채권단인 KDB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은 지난해 11월 대우조선해양에 추가로 2조8000억원의 자본을 확충하기로 했다.
자금의 성격도 달랐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에는 총 2조6868억원을 지원했지만 모두 단기 유동성이었다. 단기 유동성 지원책은 기업의 체질을 바꾸거나 근본적으로 구조조정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없다. 실질적으로 모르핀에 불과해 구조조정을 오히려 늦추고 방해하는 부작용이 적지 않다. 반면 조선업 지원은 과감했다. 대우조선해양에는 폭포수처럼 4조2000억원을 쏟아부었다. 게다가 이 중 2조원은 유상증자나 출자전환으로 투입됐다. 이같이 해운업와 조선업에 대한 잣대가 틀린 것은 구조조정의 원칙을 무너뜨리고 정부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는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이 실패의 반면교사라면 일본은 성공의 교본이 되고 있다. 일본은 기업이 파산 상태에 이르기 전 여유가 있을 때 선제적 구조조정 체제를 가동해왔다. 노사관계도 훨씬 순조롭고 그 결과 인력 감축의 폭이 작아진다. 그 결과 일본 조선업은 부활의 날개를 펴고 있다. 세계 조선·해운 분석 기관인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3위인 일본의 2016년 6월 말 기준 수주잔량은 2210만 CGT(표준화물 환산톤수)를 기록하며, 세계 2위 한국(2508만 CGT)을 바짝 추격했다. 산업 구조조정이 효율적으로 이뤄지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김동호 - 중앙일보 논설위원. 경제와 산업에 관한 칼럼과 사설을 쓰고 매주 목요일 페이스북 라이브를 진행하고 있다. 쓴 책으로 『소니가 삼성에 따라잡힌 이유는』, 『대통령 경제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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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년간 아시아 해운강자로 군림해온 한진해운이 지난해 연말 불과 석 달 만에 공중분해됐다. 삼일회계법인은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 중인 한진해운을 청산하는 게 존속하는 것보다 더 낫다는 실사보고서를 지난해 12월12일 서울중앙지법에 제출했다. 한진해운의 청산가치는 1조8000억원이고 존속가치는 9000억원으로 산정된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6위 대형 해운사가 몰락하는 과정은 너무 허무했다. 기업의 방심과 정부의 무능이 빚어 낸 참사라고 할 수 있다. 먼저 기업의 방심부터 살펴보자. 잘못된 경영권 이전이 불행의 씨앗이었다. 전문성이 없는 사람이 경영권을 잡았다.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이다. 그는 한진해운이 본격적으로 기울기 시작하던 지난해 5월,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의 조사를 받았다. 앞서 4월6일, 한진해운의 외부 컨설턴트와 통화한 뒤 14차례에 걸쳐 자신과 두 딸이 갖고 있던 주식 전량을 팔아치운 것이 조사의 발단이 됐다.
한진해운, 잘못된 경영권 이전이 불행의 씨앗
최 전 회장은 남편인 조수호 전 한진해운 회장이 2006년 별세하면서 물려받은 주식의 상속세를 내려고 받은 대출 상환을 위해 주식을 팔았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오비이락(烏飛梨落)이라는 항변이었다. 하지만 오너가 경영하던 회사가 좌초 위기에 직면하자 주식을 처분한 것을 정상이라고 볼 사람은 없다.
한진해운 경영이 좌초하게 된 직접적 원인은 잘못된 수요예측에서 비롯됐다. 해운 물량이 증가하고 화물운임이 오를 것으로 예상한 한진해운은 수요 증가에 대비해 과도하게 비용을 지불하고 용선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시장은 정반대로 갔다.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세계 경기가 둔화되면서 국제 물동량이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엄청나게 높게 계약한 용선료가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실어나를 화물은 없는데 부르는 대로 돈을 주고 계약한 용선료가 발목을 잡기 시작한 것이다.
경영이 어려워지자 정부가 뒤늦게 한진해운 문제를 살피기 시작했다. 한진해운에 이어 현대상선까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하자 정부는 대규모 자본 확충과 구조조정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이미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단계였지만 자구노력에 적극적이었던 현대상선은 회생의 기회를 잡았고, 오너조차 주식을 처분한 한진해운은 회생 불능에 빠졌다. 대마불사(大馬不死ㆍtoo big to fail)는 통하지 않았다. 공급과잉이 심각해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해운·조선·철강·유화·건설 등 5대 산업이 모두 위기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어느 한 기업을 살리는 것은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한진해운은 국내 기업의 해상 수출길을 책임져왔기 때문에 설마 채권단이 지원을 끊고 법정관리의 늪으로 밀어넣고 정부가 이를 용인할까 했지만 결국 법정관리를 피할 수 없었다. 파장은 일파만파로 확산됐다. 법정관리 신청 하루 만에 컨테이너선 41척과 벌크선 4척 등 총 45척의 선박이 세계 곳곳에서 압류되거나 항만 출입이 금지됐다. 한진해운이 운영하는 98척의 절반이 억류되면서 하루 아침에 국적선사 1위 회사가 세계 주요 항만에서 손발이 묶이면서 국가 수출경쟁력이 휘청거리게 됐다.
상황은 심각했다. 한국을 떠난 수출 한국의 선박이 전 세계 주요 항만에 꽁꽁 묶였다. 한국 상품을 실은 한진해운 선박은 중국 샤먼·상하이·닝보, 스페인 발렌시아, 미국 사바나·롱비치· 캐나다 프린스루퍼트, 싱가포르, 일본 요코하마, 호주 시드니, 독일 함부르크에 이르기까지 세계 도처에서 오도 가도 못했다. 어렵게 입항해도 하역작업을 거부당해 장기간 정박 대기 상태로 있어야 했다. 당시 한진해운이 집계한 ‘선박 억류 현황’에 따르면 이들 선박에 실린 화물량은 12만TEU(1TEU는 20피트 길이 컨테이너 1개)였다. 금액으로는 140억 달러(약 15조원)어치의 화물이 세계 바다를 떠돌았다.
설상가상으로 한진해운이 속한 해운동맹은 한진해운 화물을 싣지 않기로 하면서 물류 혼란을 부채질했다. 이 여파로 일시적으로 배를 구하지 못하자 운임이 50% 가량 폭등하기도 했다. 해양수산부는 ‘해운·항만 물류 비상대책반’을 구성해 수출입화물 비상운송대책회의를 열었지만 조기에 사태를 수습하지 못했다. 삼성전자는 해상 물동량의 43~45%, LG전자는 20%를 한진해운을 통해 운송해 왔으니 한국의 수출 맥박은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정부가 평소 적절한 산업 구조조정 타이밍을 놓쳐 국가 기간산업이 무너진 것도 문제인데, 어설픈 대처로 물류대란을 일으켜 국제적으로 나라 망신을 시킨 것이다. 한진해운 사태가 국제 이슈가 된 이유는 한진해운 화물의 90%가 중국·미국을 비롯한 외국 물품으로 드러나면서다. 수습책이 시도되기는 했으나 효과는 없었다. 당시 서울중앙지법 파산부가 한진해운이 ㈜한진에 매각하기로 했던 ‘아시아 8개 영업 노선’에 대해 영업권 이전 금지 명령을 내려 한진해운의 불안 확산 차단에 나섰다. 미국은 상무부 차관보급을 한국에 급파해 사태 수습에 나섰고, 미 법원은 한진해운 선박에 대한 압류금지 조치를 승인했다. 삼성전자는 하역비를 직접 낼 테니 화물이 억류되지 않게 해달라고 미국 파산법원에 요청하는 등 자구책을 폈다.치밀한 사후 대책 없이 한진해운을 법정관리에 덜컥 밀어 넣은 뒤 혼란을 수습하지 못한 대가는 컸다. 한진해운 붕괴로 한국은 2016년 연말에는 앞서 같은 해 9월 한진해운 법정관리 이전과 비교했을 때 전체 컨테이너 수송능력(선복량) 59%를 상실했다. 토종 해운이 반 토막 나자 중국·유럽 선사들만 반사이익을 보며 ‘치킨게임’ 승자로 떠올랐다. 국적선사를 잃은 화주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해외 선사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상대적으로 외국과 거래 능력이 적은 중소기업은 짐을 수송할 선사 찾기에 더 어려움을 겪었다.
한진해운은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의 셰르파’같은 존재였다. 2015년 국내 수출액 73%가 해상 운송을 통해 이뤄졌다. 이 가운데 한진해운은 전국 항만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컨테이너 화물 6.6%를 도맡아 처리했다. 전국 수출입 컨테이너 76%가 몰리는 부산항에서는 전체 물량의 9.3%를 한진해운이 날랐다. 이런 혼란을 겪으면서도 정부는 무능력을 드러냈다. 시장원리에 의해 기업이 진입하고 퇴출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한진해운은 국가 기간산업이라는 점에서 죽이는 것보다 살리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 한진해운 청산은 단순히 일개 기업 퇴출이 아니라 39년간 국내 해운 역사를 써온 산업의 몰락이라고 봐야 한다. 기업이 경영을 실패하면 시장원리에 따라 청산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수출의 짐꾼 같은 존재가 붕괴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해운산업은 대표적인 망(네트워크)산업이기 때문에 해외 업체와의 제휴도 불가피하다. 경쟁하면서도 협력하는 관계를 유지하는 특수한 업종이다. 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해운동맹인데, 한국은 여기서도 배제됐다. 한진해운 청산 가능성과 현대상선의 2M 조건부 가입으로 글로벌 해운동맹에 정식 가입된 토종 해운사는 단 한 곳도 없게 됐다는 얘기다. 한 때 아시아 2위 해운강국이었던 한국 해운산업 몰락의 현주소다.
한국은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기 전만 해도 양대 해운동맹을 주도했다. 그러나 한진해운은 법정관리로 종전 해운동행(CKYHE)에서 탈락했다. 현대상선은 지난해 12월11일 세계 최대 해운동맹인 2M(머스크·MSC)과 미주·유럽 노선에서 선복매입과 선복교환을 조건으로 하는 3년 기간의 ‘2M+H 전략적 협력’을 체결했다. 이는 당초 현대상선이 목표로 했던 정식회원이 아니라 준회원 자격의 공동영업이다. 정회원들끼리는 선복 및 터미널 공유나 수익배분이 이뤄지지만 협력사는 이것이 제한된다.
2M 회원사인 머스크와 MSC는 글로벌 1, 2위 해운사로 글로벌 시장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데 비해 현대상선의 시장 점유율은 2%에 그치는 것이 현실이다. 한진해운은 글로벌 순위가 6위였으나 법정관리 이후 24위로 추락했다. 이러한 상황을 종합하면 정부의 산업정책과 구조조정 정책은 100% 실패작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해운업계 관계자들은 한국 정부가 “바다를 버렸다”고 자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는 마치 임진왜란 와중이던 1597년 칠전량해전에서 조선 수군이 왜군에 대패한 뒤 삼도수군통제사로 복귀한 이순신 장군에게 선조가 “수군을 폐하고 육군으로 통합하라”고 명했을 때를 연상시킨다. 이순신은 “아직 12척의 배가 남았다”며 명량해전을 준비했는데, 이는 바다를 내어주면 조선이 망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적절한 산업 구조조정 타이밍을 놓친 정부의 실책
글로벌 최강자 머스크는 이때를 오히려 기회로 삼아 사상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에 합의했다. 머스크가 독일 함부르크쥐드를 삼키면 세계 컨테이너시장 점유율이 18.6%로 수직상승한다. 일본 3대 해운사도 컨테이너 부문 합병을 결정했다. 자국 양대 선사 합병을 검토하던 대만 정부는 저금리 대출 등 금융 지원 패키지를 마련하기로 했다. 경쟁국의 이런 움직임에 견주어봐도 한국 정부의 대응은 틀렸다.
명백한 근거는 조선업에 적용한 이중잣대다. 정부는 한진그룹이 경영 정상화를 위한 의지가 약하다고 보고 추가로 유동성을 지원하지 않고 시장원리대로 방향을 잡았다. 한진해운은 자산을 팔고 사업을 매각해 2013년 제시했던 자구계획안(2조4683억원)의 109%를 달성했다. 그러나 채권단은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봤고 정부는 법정관리를 허용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이와 대조적이다. 자구계획 이행률이 28%(1조5000억원)였던 대우조선해양에는 추가 지원을 약속한 것이다. 대우조선해양 채권단인 KDB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은 지난해 11월 대우조선해양에 추가로 2조8000억원의 자본을 확충하기로 했다.
자금의 성격도 달랐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에는 총 2조6868억원을 지원했지만 모두 단기 유동성이었다. 단기 유동성 지원책은 기업의 체질을 바꾸거나 근본적으로 구조조정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없다. 실질적으로 모르핀에 불과해 구조조정을 오히려 늦추고 방해하는 부작용이 적지 않다. 반면 조선업 지원은 과감했다. 대우조선해양에는 폭포수처럼 4조2000억원을 쏟아부었다. 게다가 이 중 2조원은 유상증자나 출자전환으로 투입됐다. 이같이 해운업와 조선업에 대한 잣대가 틀린 것은 구조조정의 원칙을 무너뜨리고 정부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는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이 실패의 반면교사라면 일본은 성공의 교본이 되고 있다. 일본은 기업이 파산 상태에 이르기 전 여유가 있을 때 선제적 구조조정 체제를 가동해왔다. 노사관계도 훨씬 순조롭고 그 결과 인력 감축의 폭이 작아진다. 그 결과 일본 조선업은 부활의 날개를 펴고 있다. 세계 조선·해운 분석 기관인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3위인 일본의 2016년 6월 말 기준 수주잔량은 2210만 CGT(표준화물 환산톤수)를 기록하며, 세계 2위 한국(2508만 CGT)을 바짝 추격했다. 산업 구조조정이 효율적으로 이뤄지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김동호 - 중앙일보 논설위원. 경제와 산업에 관한 칼럼과 사설을 쓰고 매주 목요일 페이스북 라이브를 진행하고 있다. 쓴 책으로 『소니가 삼성에 따라잡힌 이유는』, 『대통령 경제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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