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상류 문화 흔드는 ‘복수의 화신’
중상류 문화 흔드는 ‘복수의 화신’
트럼프는 워싱턴 정가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올바름’ 추구하는 주류 문화도 무너뜨린다 지난 미국 대선 기간에 유출된 2005년 NBC 방송의 연예 프로그램 ‘액세스 할리우드’ 테이프에 도널드 트럼프가 “당신이 스타라면 여성들의 XX를 움켜쥘 수 있다”라고 말하는 음성이 담겨 엄청난 파문이 일었다. 진보적인 언론의 압도적인 견해에선 대선에서 트럼프 후보의 다른 모든 문화적 신성모독이 그를 무너뜨리지 못한다고 해도 여성비하적 성희롱 언급만은 그를 끌어내려야 마땅했다. 그러나 실제론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가 버젓이 대통령이 됐다는 사실은 문화적 확실성이 대다수 언론과 문화계의 생각보다 훨씬 취약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20여 년 동안 미국 사회는 섹스와 성별, 인종과 다문화 사회와 관련해 말하는 방식을 엄격히 규제했다. 힐난조로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좀 더 포괄적으로는 ‘진보적 관점(liberal point of view)’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으로 그런 사회관이 일대 위기를 맞았다.
지금 진보 매체 등 미국의 문화계 주류는 충격에 휩싸였다. 그런 상황은 좀 더 신중하고 규제되며 ‘올바르게’ 수정된 세계의 발전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는 두려움을 반영한다. 막말을 뻔뻔스럽게 쏟아내는 백인 남성이 재등장했다는 공포심이다. 돈 많고 입심 좋고 자기중심적인 트럼프 만큼 위협적이고 복고적인 백인 남성의 상징을 찾기는 힘들다.
문화적 규범도 정치적 규범만큼이나 미국 사회에서 널리 먹혀들지 않는다. 실제로 트럼프를 지지하는 미국인도 상당수에 이른다. 앞서 언급한 그의 음담패설 같은 것은 문화의 다양성과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는 코스모폴리탄에게 큰 충격을 안겼지만 많은 미국인에겐 대수롭지 않은 일로 치부됐다. 어쩌면 그런 것이 미국의 일상적 현실일지 모른다. 미디어가 세분화되면서 그 사이사이에 생겨난 틈새를 열정적인 미디어 소비자의 갖가지 견해가 메운다. 그에 따라 미디어로선 더 폭넓고 도달하기 어려운 대중을 상대로 아이디어를 전달할 필요성이 줄어든다. 그런 대중은 갈수록 많아져가는 스포츠 중계로 만족해야 하는 한편 고급 패션 소비자는 자신의 관심사가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다.
본능적으로든 교묘한 계획에 의해서든 선거운동에서 트럼프 후보는 낙태와 동성 결혼에 반대하는 보수파의 가부장적인 전쟁을 ‘교양 있는 미국인의 정치적 경건함’에 맞서는 훨씬 더 원색적인 전투로 바꿔놓았다. 그가 미국의 중상류 문화에 대한 복수의 화신을 자처한 것이다. ‘예의 바르고 무력한 집단’ 대(對) ‘불손하고 본능이 강한 집단’의 대결이었다.
트럼프 후보에겐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경계심과 의심이 많고, 마음 터놓 고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해 세상을 잘 모르는 사람으로 비쳐졌다. 실제로 그녀는 유세장에서 기껏해야 수백 명을 모았지만 트럼프 후보는 수만 명을 끌어들였다. 트럼프 후보는 자신을 ‘헐뜯는’ 언론을 맹렬히 공격함으로써 자신의 말과 표현력, 대중과의 소통 능력이 언론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
공화당 경선에서 대통령후보 지명이 확실시된 직후 트럼프는 예비선거 후보자 첫 토론회에서 자신의 참석으로 시청률이 거의 10배로 늘었을 때 곧바로 승리를 확신했다고 말했다. “대중에겐 언론보다 내가 훨씬 더 재미있다”고 그는 장담했다.문화계 주류에 얽매여 그들의 규범과 관심사를 대변하는 언론이 진짜가 아니라 자신이 진품이라는 뜻이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CNN은 꺼져라”는 구호를 외쳤다. CNN은 진정성 없고 특정 계층에 맹종한다는 이유로 미국인 대다수의 비난을 샀지만 갑자기 트럼프 지지자들이 그렇게 치고 나온 건 뜻밖이었다. 그러자 진보주의자들은 그것을 언론의 자유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였고, 트럼프 후보 측은 언론이 진정한 표현의 자유를 억누른다고 봤다.
트럼프는 지난해 12월 주요 언론인들과의 비공식 면담에서도 온갖 독설을 쏟아 낸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그는 제프 저커 CNN 사장에게 “나는 당신의 네트워크를 혐오한다”며 “CNN 조직원은 모두 거짓말쟁이로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책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식통은 “30~40명의 언론인이 모인 큰 회의실에서 트럼프는 ‘거짓말쟁이가 모인 방’ ‘기만적이고 부정한 미디어’라는 표현을 여러 차례 사용했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인은 저커 사장을 지목해 비난한 뒤 이름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NBC 여성 기자”와 “힐러리가 졌다고 흐느낀 기자” 등 현장에 있던 언론인들이 충분히 인식할 만한 인물들에 대한 독설을 쏟아냈다.
적어도 국민 다수가 실질적이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소재를 문화가 다루지 않을 경우엔 신중하고 질서 정연하고 미리 정해진 각본을 따르는 문화가 그처럼 공격의 대상이 된다. 공격 받는 문화 옹호론자들은 그것을 ‘계몽’ 자체에 대한 사악한 공격으로 받아들인다.
특히 그들은 트럼프 선거대책본부의 핵심 인물로 백악관 ‘수석 전략가’로 내정된 스티브 배넌을 시대에 역행하는 ‘두려운’ 백인 남성으로 파악한다. 비(非)트럼프 문화는 그를 인종차별주의자, 여성혐오자, 반 유대주의자로서 주제 넘게 나서는 위협으로만 바라본다[그는 반세계화, 반이민, 반유대주의, 반이슬람, 반페미니즘, 백인 우월주의를 표방하는 ‘대안 우파(alt-right)’의 사령관격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리 오래 되지 않은 과거에 배넌은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인물이었다. 심지어 근로계층 출신으로 군복무를 마치고 결혼을 세 번하고 먹고 살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일할 때는 존경도 받을 만했다. 그러나 그는 주류 세계에선 늘 불편했다. 주류의 일원이 되길 원하면서도 그 세계를 폭파하고 싶어 했다. 전형적인 미국 남성의 이야기다. 공화당 정치는 그런 고군분투한 사람들로 가득하다.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의 선거 전략가였던 리 애트워터, 로저 에일스 전 폭스뉴스 회장, 공화당 선거 전문가였던 칼 로브 등. 그들은 모두 뛰어난 인물이었지만 진보적 감성을 짓밟은 사람으로 전락해 버렸다.
실제로 이번 미국 대선은 진보파가 언제나 승리한다고만 생각했던 성(性)전쟁의 판세를 역전시켰다. 트럼프 후보는 세월이 바뀌어도 달라지지 않았고 오랫동안 목소리를 잃었던 원시적인 미국 남성에게 “내가 기꺼이 당신들의 대변인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물론 트럼프 후보의 갑작스런 부상이 뜻하는 바는 그 자신이 사라지지도 달라지지도 않았으며 다만 끼워주지 않아 나서지 못했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중상류 문화에서 자리 잡지 못하고 가끔씩 이성의 적이나 스캔들의 대상이 되면서 과거의 자신을 잃어버렸다.
진보 언론은 직장 내 상습 성희롱을 일삼은 것으로 알려진 로저 에일스 전 폭스뉴스 회장을 사악한 백인 남성의 상징으로 찍어내 퇴출시키는 데 일조했지만 미국은 여성의 ‘그곳’을 움켜잡은 남자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문화 주류는 모호성이나 뉘앙스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현실적 속사정에 관심이 없다. 그런 한편 미국 사회의 대부분은 문화 주류와 소통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들의 위선만 보게 된다.
지금은 새로운 좌와 새로운 우가 있다. 왼쪽엔 끊임없이 올바른 행동과 표현의 정통성을 주창하는 집단이 자리한다. 그들은 극단적으로 사회의 문화적 개조까지 들먹인다. 오른쪽엔 상대를 도발해 히스테리적인 반응을 유도하는 급진적인 선동가들이 있다. 그들은 좌익의 자의식과 소심함을 조롱한다. 과거 좌익이 우익을 조롱하던 것과 마찬가지다.
양쪽 모두에 각각의 진영을 옹호하는 SNS 게릴라 세력이 존재한다. 문화 주류는 학계와 좌익 밀레니엄 세대 편이다. 그들이 아무리 이상해 보여도 어쩔 수 없다. 사실 그게 자연스럽다. 새로운 트럼프 세력은 새로운 우익이 새로운 좌익을 분노케 하도록 부추긴다. 파시스트, 백인 우월주의자, 페미니스트 반대자, 성전환 혐오자 모두가 좌익의 적이다. 좌익은 도발당할수록 더 똘똘 뭉쳐 좌편향 문화에 속하는 누구라도 미리 정해진 규칙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만든다.한때 경쾌한 가십 사이트였던 ‘고커 미디어’는 말년에 가서 새로운 좌익 윤리의 엄격한 집행자로 변신했다. 독선적이고 밀레니엄 세대를 지향하면서 탈페미니스트를 표방했다. 거기선 가장 전통적인 성행위를 제외한 모든 섹스를 저급하고 타락한 것으로 봤다. 결국 고커 미디어는 프로레슬러 헐크 호건의 섹스 테이프를 공개했다가 거액의 소송에 휘말려 파산했다. 고커 미디어로부터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폭로된 적이 있는 실리콘밸리 거물 벤처투자자로 트럼프를 지지한 피터 틸이 당시 호건의 소송비용을 댄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됐다.
배심원은 고커 미디어가 호건의 섹스 테이프를 공개한 것이 사생활 침해라고 평결했다. 하지만 그렇게 결정한 배심원도 트럼프의 음담패설 발언이 담긴 테이프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 있다. 지금 같은 ‘관대한’ 사회에선 누가 어느 쪽에 서는지가 희한하게 뒤바뀔 수 있다. 구 세계가 갑자기 신세계보다 인간의 약점을 더 잘 이해하게 된 것이다.
잡지 배너티페어의 편집장 그레이든 카터는 언제나 새로운 시대정신을 잘 읽어 낸다. 그는 트럼프를 계속 비난했지만 어느 순간 수십 년에 걸친 미국 사회의 정치적 올바름이 반발을 살 수 밖에 없다고 인정했다. 배너티페어는 중상류층의 문화 취향과 태도에 배치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신중하게 편집되는 잡지로 알려졌기 때문에 더욱 주목할 만한 선언이었다. 카터 편집장이 문화의 변화를 미리 알아차린 게 분명하다.
진보적인 식도락 우월주의와 실제 주방이나 요리사의 정통성을 아우르려고 애쓰는 ‘스타 셰프’ 앤서니 보뎅은 얼마 전 자신의 브랜드를 강조하며 트럼프 대열에 올라서려고 애썼다. “나는 신을 두려워 하고 총을 좋아하는 미국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좋은 미국인이 너무나 많다. 그들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하려는 일을 한다. 생계를 꾸리며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을 돌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특권의식을 가진 좌익은 자기 만족을 위해 반대파로서의 분노만 계속 표출한다. 그래봤자 그들은 민심을 얻지 못한다.”
위의 두 사례 모두에서 요점은 정치라기보다(카터 편집장과 요리사 보뎅은 여전히 진보주의자다) 전문가들의 경고로 받아들일 수 있다. 언론은 추세에 저항할 때보다 추세를 반영할 때 더 잘 기능한다. 사람들은 현 추세를 충실히 전하는 언론을 선호하게 마련이다.
미국에 가득한 방대하고 터무니없는 아이디어는 언제나 중요한 문화적 주제였다. 성자와 죄인의 카니발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하나 같이 괴상한 편견을 갖고 독특한 방식으로 미국적인 삶의 무질서를 나타낸다. 결국 트럼프의 ‘무질서한 미국’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지 못한 언론과 문화계 지도자들이 그런 트럼프의 미국을 중앙무대로 올려놓는 데 일조했다. 모든 미국인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말하고 그들을 전체 이야기의 일부로 녹여 넣지 못했다는 뜻이다. 지금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누군가 그 이야기를 잘할 수 있기를 바란다. - 마이클 울프 뉴스위크 기자
[ 필자는 미국 주요 매체에 기고하는 저술가이자 언론인이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지난 20여 년 동안 미국 사회는 섹스와 성별, 인종과 다문화 사회와 관련해 말하는 방식을 엄격히 규제했다. 힐난조로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좀 더 포괄적으로는 ‘진보적 관점(liberal point of view)’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으로 그런 사회관이 일대 위기를 맞았다.
지금 진보 매체 등 미국의 문화계 주류는 충격에 휩싸였다. 그런 상황은 좀 더 신중하고 규제되며 ‘올바르게’ 수정된 세계의 발전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는 두려움을 반영한다. 막말을 뻔뻔스럽게 쏟아내는 백인 남성이 재등장했다는 공포심이다. 돈 많고 입심 좋고 자기중심적인 트럼프 만큼 위협적이고 복고적인 백인 남성의 상징을 찾기는 힘들다.
문화적 규범도 정치적 규범만큼이나 미국 사회에서 널리 먹혀들지 않는다. 실제로 트럼프를 지지하는 미국인도 상당수에 이른다. 앞서 언급한 그의 음담패설 같은 것은 문화의 다양성과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는 코스모폴리탄에게 큰 충격을 안겼지만 많은 미국인에겐 대수롭지 않은 일로 치부됐다. 어쩌면 그런 것이 미국의 일상적 현실일지 모른다. 미디어가 세분화되면서 그 사이사이에 생겨난 틈새를 열정적인 미디어 소비자의 갖가지 견해가 메운다. 그에 따라 미디어로선 더 폭넓고 도달하기 어려운 대중을 상대로 아이디어를 전달할 필요성이 줄어든다. 그런 대중은 갈수록 많아져가는 스포츠 중계로 만족해야 하는 한편 고급 패션 소비자는 자신의 관심사가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다.
본능적으로든 교묘한 계획에 의해서든 선거운동에서 트럼프 후보는 낙태와 동성 결혼에 반대하는 보수파의 가부장적인 전쟁을 ‘교양 있는 미국인의 정치적 경건함’에 맞서는 훨씬 더 원색적인 전투로 바꿔놓았다. 그가 미국의 중상류 문화에 대한 복수의 화신을 자처한 것이다. ‘예의 바르고 무력한 집단’ 대(對) ‘불손하고 본능이 강한 집단’의 대결이었다.
트럼프 후보에겐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경계심과 의심이 많고, 마음 터놓 고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해 세상을 잘 모르는 사람으로 비쳐졌다. 실제로 그녀는 유세장에서 기껏해야 수백 명을 모았지만 트럼프 후보는 수만 명을 끌어들였다. 트럼프 후보는 자신을 ‘헐뜯는’ 언론을 맹렬히 공격함으로써 자신의 말과 표현력, 대중과의 소통 능력이 언론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
공화당 경선에서 대통령후보 지명이 확실시된 직후 트럼프는 예비선거 후보자 첫 토론회에서 자신의 참석으로 시청률이 거의 10배로 늘었을 때 곧바로 승리를 확신했다고 말했다. “대중에겐 언론보다 내가 훨씬 더 재미있다”고 그는 장담했다.문화계 주류에 얽매여 그들의 규범과 관심사를 대변하는 언론이 진짜가 아니라 자신이 진품이라는 뜻이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CNN은 꺼져라”는 구호를 외쳤다. CNN은 진정성 없고 특정 계층에 맹종한다는 이유로 미국인 대다수의 비난을 샀지만 갑자기 트럼프 지지자들이 그렇게 치고 나온 건 뜻밖이었다. 그러자 진보주의자들은 그것을 언론의 자유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였고, 트럼프 후보 측은 언론이 진정한 표현의 자유를 억누른다고 봤다.
트럼프는 지난해 12월 주요 언론인들과의 비공식 면담에서도 온갖 독설을 쏟아 낸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그는 제프 저커 CNN 사장에게 “나는 당신의 네트워크를 혐오한다”며 “CNN 조직원은 모두 거짓말쟁이로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책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식통은 “30~40명의 언론인이 모인 큰 회의실에서 트럼프는 ‘거짓말쟁이가 모인 방’ ‘기만적이고 부정한 미디어’라는 표현을 여러 차례 사용했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인은 저커 사장을 지목해 비난한 뒤 이름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NBC 여성 기자”와 “힐러리가 졌다고 흐느낀 기자” 등 현장에 있던 언론인들이 충분히 인식할 만한 인물들에 대한 독설을 쏟아냈다.
적어도 국민 다수가 실질적이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소재를 문화가 다루지 않을 경우엔 신중하고 질서 정연하고 미리 정해진 각본을 따르는 문화가 그처럼 공격의 대상이 된다. 공격 받는 문화 옹호론자들은 그것을 ‘계몽’ 자체에 대한 사악한 공격으로 받아들인다.
특히 그들은 트럼프 선거대책본부의 핵심 인물로 백악관 ‘수석 전략가’로 내정된 스티브 배넌을 시대에 역행하는 ‘두려운’ 백인 남성으로 파악한다. 비(非)트럼프 문화는 그를 인종차별주의자, 여성혐오자, 반 유대주의자로서 주제 넘게 나서는 위협으로만 바라본다[그는 반세계화, 반이민, 반유대주의, 반이슬람, 반페미니즘, 백인 우월주의를 표방하는 ‘대안 우파(alt-right)’의 사령관격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리 오래 되지 않은 과거에 배넌은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인물이었다. 심지어 근로계층 출신으로 군복무를 마치고 결혼을 세 번하고 먹고 살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일할 때는 존경도 받을 만했다. 그러나 그는 주류 세계에선 늘 불편했다. 주류의 일원이 되길 원하면서도 그 세계를 폭파하고 싶어 했다. 전형적인 미국 남성의 이야기다. 공화당 정치는 그런 고군분투한 사람들로 가득하다.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의 선거 전략가였던 리 애트워터, 로저 에일스 전 폭스뉴스 회장, 공화당 선거 전문가였던 칼 로브 등. 그들은 모두 뛰어난 인물이었지만 진보적 감성을 짓밟은 사람으로 전락해 버렸다.
실제로 이번 미국 대선은 진보파가 언제나 승리한다고만 생각했던 성(性)전쟁의 판세를 역전시켰다. 트럼프 후보는 세월이 바뀌어도 달라지지 않았고 오랫동안 목소리를 잃었던 원시적인 미국 남성에게 “내가 기꺼이 당신들의 대변인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물론 트럼프 후보의 갑작스런 부상이 뜻하는 바는 그 자신이 사라지지도 달라지지도 않았으며 다만 끼워주지 않아 나서지 못했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중상류 문화에서 자리 잡지 못하고 가끔씩 이성의 적이나 스캔들의 대상이 되면서 과거의 자신을 잃어버렸다.
진보 언론은 직장 내 상습 성희롱을 일삼은 것으로 알려진 로저 에일스 전 폭스뉴스 회장을 사악한 백인 남성의 상징으로 찍어내 퇴출시키는 데 일조했지만 미국은 여성의 ‘그곳’을 움켜잡은 남자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문화 주류는 모호성이나 뉘앙스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현실적 속사정에 관심이 없다. 그런 한편 미국 사회의 대부분은 문화 주류와 소통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들의 위선만 보게 된다.
지금은 새로운 좌와 새로운 우가 있다. 왼쪽엔 끊임없이 올바른 행동과 표현의 정통성을 주창하는 집단이 자리한다. 그들은 극단적으로 사회의 문화적 개조까지 들먹인다. 오른쪽엔 상대를 도발해 히스테리적인 반응을 유도하는 급진적인 선동가들이 있다. 그들은 좌익의 자의식과 소심함을 조롱한다. 과거 좌익이 우익을 조롱하던 것과 마찬가지다.
양쪽 모두에 각각의 진영을 옹호하는 SNS 게릴라 세력이 존재한다. 문화 주류는 학계와 좌익 밀레니엄 세대 편이다. 그들이 아무리 이상해 보여도 어쩔 수 없다. 사실 그게 자연스럽다. 새로운 트럼프 세력은 새로운 우익이 새로운 좌익을 분노케 하도록 부추긴다. 파시스트, 백인 우월주의자, 페미니스트 반대자, 성전환 혐오자 모두가 좌익의 적이다. 좌익은 도발당할수록 더 똘똘 뭉쳐 좌편향 문화에 속하는 누구라도 미리 정해진 규칙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만든다.한때 경쾌한 가십 사이트였던 ‘고커 미디어’는 말년에 가서 새로운 좌익 윤리의 엄격한 집행자로 변신했다. 독선적이고 밀레니엄 세대를 지향하면서 탈페미니스트를 표방했다. 거기선 가장 전통적인 성행위를 제외한 모든 섹스를 저급하고 타락한 것으로 봤다. 결국 고커 미디어는 프로레슬러 헐크 호건의 섹스 테이프를 공개했다가 거액의 소송에 휘말려 파산했다. 고커 미디어로부터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폭로된 적이 있는 실리콘밸리 거물 벤처투자자로 트럼프를 지지한 피터 틸이 당시 호건의 소송비용을 댄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됐다.
배심원은 고커 미디어가 호건의 섹스 테이프를 공개한 것이 사생활 침해라고 평결했다. 하지만 그렇게 결정한 배심원도 트럼프의 음담패설 발언이 담긴 테이프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 있다. 지금 같은 ‘관대한’ 사회에선 누가 어느 쪽에 서는지가 희한하게 뒤바뀔 수 있다. 구 세계가 갑자기 신세계보다 인간의 약점을 더 잘 이해하게 된 것이다.
잡지 배너티페어의 편집장 그레이든 카터는 언제나 새로운 시대정신을 잘 읽어 낸다. 그는 트럼프를 계속 비난했지만 어느 순간 수십 년에 걸친 미국 사회의 정치적 올바름이 반발을 살 수 밖에 없다고 인정했다. 배너티페어는 중상류층의 문화 취향과 태도에 배치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신중하게 편집되는 잡지로 알려졌기 때문에 더욱 주목할 만한 선언이었다. 카터 편집장이 문화의 변화를 미리 알아차린 게 분명하다.
진보적인 식도락 우월주의와 실제 주방이나 요리사의 정통성을 아우르려고 애쓰는 ‘스타 셰프’ 앤서니 보뎅은 얼마 전 자신의 브랜드를 강조하며 트럼프 대열에 올라서려고 애썼다. “나는 신을 두려워 하고 총을 좋아하는 미국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좋은 미국인이 너무나 많다. 그들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하려는 일을 한다. 생계를 꾸리며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을 돌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특권의식을 가진 좌익은 자기 만족을 위해 반대파로서의 분노만 계속 표출한다. 그래봤자 그들은 민심을 얻지 못한다.”
위의 두 사례 모두에서 요점은 정치라기보다(카터 편집장과 요리사 보뎅은 여전히 진보주의자다) 전문가들의 경고로 받아들일 수 있다. 언론은 추세에 저항할 때보다 추세를 반영할 때 더 잘 기능한다. 사람들은 현 추세를 충실히 전하는 언론을 선호하게 마련이다.
미국에 가득한 방대하고 터무니없는 아이디어는 언제나 중요한 문화적 주제였다. 성자와 죄인의 카니발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하나 같이 괴상한 편견을 갖고 독특한 방식으로 미국적인 삶의 무질서를 나타낸다. 결국 트럼프의 ‘무질서한 미국’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지 못한 언론과 문화계 지도자들이 그런 트럼프의 미국을 중앙무대로 올려놓는 데 일조했다. 모든 미국인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말하고 그들을 전체 이야기의 일부로 녹여 넣지 못했다는 뜻이다. 지금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누군가 그 이야기를 잘할 수 있기를 바란다. - 마이클 울프 뉴스위크 기자
[ 필자는 미국 주요 매체에 기고하는 저술가이자 언론인이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하늘길도 꽁꽁’ 대설에 항공기 150편 결항
2‘이재명 아파트’도 재건축된다…1기 선도지구 발표
3코스피로 이사준비…에코프로비엠, 이전상장 예비심사 신청
4‘3000억원대 횡령’ 경남은행 중징계….“기존 고객 피해 없어”
5수능 2개 틀려도 서울대 의대 어려워…만점자 10명 안팎 예상
6중부내륙철도 충주-문경 구간 개통..."문경서 수도권까지 90분 걸려"
7경북 서남권에 초대형 복합레저형 관광단지 들어서
8LIG넥스원, 경북 구미에 최첨단 소나 시험시설 준공
9“내 버스 언제오나” 폭설 퇴근대란에 서울 지하철·버스 증회 운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