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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수의 ‘돈이 되는 茶 이야기’] 대운하 따라 중국 전역에 퍼진 ‘차(茶)’

[서영수의 ‘돈이 되는 茶 이야기’] 대운하 따라 중국 전역에 퍼진 ‘차(茶)’

수문제 이후 차 문화 확산 … 중국인과 불가분의 관계로 엮여
1. 수나라를 세운 문제. / 2. 경항대운하의 지류.
수(隋)나라는 후한(後漢)말기에 일어난 황건적의 난으로 시작된 혼란과 분열을 종식시키고 남북조시대를 통합해 405년 만에 중국 대륙을 통일했다. 수나라를 창업한 문제(文帝,541~604)는 중국 내몽고 자치구에 있는 음산산맥(陰山山脈)의 천연요새 무천진 분지를 중심으로 발호한 강력한 군사 집단인 관롱집단의 군벌출신이다. 문제는 양견(楊堅)이라는 한(漢)족의 성을 딴 이름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선비족(鮮卑族)출신으로, 원래의 성씨는 보륙여(普六茹)다. 대륙의 혼란 상태에 마침표를 찍은 명군으로 평가받는 문제는 중국 역사상 아내를 가장 무서워 해 조신한 황제로도 유명하다.

수나라 문제는 황제가 된 직후 자신이 비참하게 죽는 악몽을 꿨다. 두통과 악몽에 시달리는 문제에게 한 스님이 차를 마실 것을 권했다. 스님이 말한 차를 구해 달여 마신 문제는 두통이 사라지고 악몽에서도 벗어났다. 그날 이후 문제는 차를 가까이 두고 상비약처럼 수시로 음용했다. 문제를 따라 신하들도 차를 즐겨 마시기 시작했다.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사람들이 차를 찾기 시작했다. 상당수의 사람은 좋은 차를 문제에게 바치면 벼슬을 할 수 있다는 풍문을 듣고 좋은 차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됐다. “춘추와 주역을 공부하느니 황제에게 차를 바치고 벼슬길에 빨리 올라 재물을 모아라”는 세태 비판의 말이 회자했다.

수나라를 세운 문제와 수나라를 망하게 한 양제(煬帝,569~618)가 국운을 걸고 역점 사업으로 건설한 경항대운하(京杭大運河)는 1794km에 달한다. 북경을 기점으로 천진, 하북성, 산동성, 강소성과 절강성, 항주까지 이어주는 세계에서 가장 긴 경항대운하는 황하(黃河)와 장강(長江) 등 중국 5대 수계를 연결한다. 수나라는 강남 일대의 풍부한 물산을 대량 수송하는 동시에 군사적으로 강남을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게 됐다. 경항대운하의 기나긴 수로를 따라 차는 쌀과 더불어 중국 남쪽의 지역문화에서 대륙 전체로 확대 재생산된다.

수나라 이전에는 지역 특산물에 불과했던 차가 경항대운하를 통해 중국인의 삶과 역사에서 불가분의 관계로 완전히 엮이게 된다. 중국 문명의 시작과 동일선상에 있는 차는 중국의 남쪽지역에서 자생하거나 재배되어 약(藥)으로 출발해 건강 음료로 인식됐다. 하지만 술 문화가 주류였던 중국 북쪽지역은 차 마시는 행위를 비웃을 정도로 차 문화의 불모지대였다. 남북조시대의 북위에서는 차를 유제품의 노예라는 뜻으로 낙노(酪奴)라 부르며 차를 마시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희롱하기도 했다. 심지어 물난리에 비유해 차를 수액(水厄)이라고 폄하했다. 북방에서 무시당하던 차가 문제의 차 사랑 덕분에 ‘차가 물 만난 세상’이 됐다.
 경항대운하 타고 강남에서 대륙 전체로 퍼져
3. 중국의 차산. / 4. 항주 뇌봉탑의 야경.
수나라는 3대를 못 넘긴 단명 왕조였지만 중국 역사를 넘어 세계적으로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대규모 토목공사인 경항대운하를 단기간에 완공시켰다. 문제는 식량 공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584년 우문개(宇文愷)에게 명을 내려 장안 남동쪽에 건설한 수나라의 수도 대흥성(大興城)에서 동관(潼關)까지 120km에 이르는 광통거(廣通渠)를 건설했다. 진나라 후주를 공략하기 위한 남벌 계획의 일환으로 587년 문제의 명을 받은 우문개는 춘추시대 오왕(吳王) 부차(夫差)가 제(齊)나라 공격을 위해 만든 한구를 보수해 재개통했다. 거듭되는 대규모 토목공사에 들어가는 과다한 세금과 강제 인력 동원에 백성들의 원성이 높아지면서 문제는 대운하 건설을 일단 중지했다.

수나라 문제는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명군답게 군주민수(君舟民水)의 이치를 깨달아 중국 최초로 과거제도와 균전제를 실시해 기존 상류층을 견제하면서 한편으로 격앙된 민심을 다스렸다. 국내 대학 교수들이 2016년 한해를 규정하는 사자성어로 선정하기도 한 군주민수는 순자(荀子)의 [왕제(王制)] 편에 나오는 성어로 ‘백성은 물, 임금은 배이니 강물은 배를 뜨게 하지만 강물이 화가 나면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수나라 문제는 나라를 안정시켰다고 판단해 커다란 실책을 범하고 만다. 598년 6월 다섯째 아들을 시켜 30만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 원정을 시도했지만 태풍과 전염병으로 패퇴했다. 문제는 고구려 원정 실패를 서곡으로 참담한 비극으로 접어든다. 문제는 태자로 책봉된 둘째 아들 양광(楊廣)을 폐하고 국정 철학인 유교사상에 따라 장남인 양용(楊勇)을 태자로 복권하려 했지만 이미 양광의 수족이 된 신하들의 만류와 음모로 실패했다. 604년 문제는 양광의 심복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양용도 양광의 근위장인 우문지급에게 교살당했다. 살부살형(殺父殺兄)의 패륜을 저지르며 604년 8월 수나라 2대 황제에 오른 양제는 618년 4월 죽임을 당할 때까지 15년에 걸친 혹독한 정치로 중국 최악의 암군(暗君)으로 기록된다.

수나라 2대 황제로 등극한 양제가 첫 번째로 한 일은 아버지의 애첩 선화부인(宣華夫人)을 범하고 후궁으로 삼은 것이다. 문제가 백성의 어려움을 감안해 중단한 경항대운하 공사를 양제는 바로 재개했다. 대운하 건설은 부녀자까지 동원하는 무리수를 두며 4단계로 이뤄졌다. 양제는 만리장성을 능가하는 대규모 토목공사를 6년 만에 완성시켰다. 대운하 건설에 많은 사람이 죽고 희생당한 사실을 무시한 양제는 고구려 침공을 세 번이나 시도하다가 압제를 벗어나려는 농민 저항과 반란의 소용돌이에 휩싸인다. 618년 양제는 반란군도 아닌 부하 장수에게 목이 매달려 죽으며 수나라의 멸망을 가져왔다. 수나라는 고구려 원정 실패와 무리한 대운하공사로 38년 만에 사라지고 당(唐)나라가 중원을 차지했다. 강남의 특산물로서 황실과 귀족만이 누리던 귀한 차는 운하를 타고 북상했다. 차와 함께 강남의 차 문화와 차 도구들도 중국 전역에 확산하며 대중화됐다.

서영수 - 1956년생으로 1984년에 데뷔한 대한민국 최연소 감독 출신. 미국 시나리오 작가조합 정회원. 1980년 무렵 보이차에 입문해 중국 윈난성 보이차 산지를 탐방하는 등 차 문화에 조예가 깊다. 중국 CCTV의 특집 다큐멘터리 [하늘이 내린 선물 보이차]에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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