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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의 봄날은 갔다

월가의 봄날은 갔다

금융 대기업과 헤지펀드, AI 기반 시스템으로 전환…고액 연봉의 트레이더 실업 위기 맞아
인간 트레이더와 헤지펀드 매니저의 앞날이 어두운 이유는 상당 부분 그들이 인간이라는 데 있다.
인공지능(AI)이 300만 트럭 기사 일자리를 집어삼킨다는 우려가 지난 1년 사이 미국 사회를 휩쓸었다. 알고 보니 그보다 더 상황이 급해진 멸종위기종은 람보르기니 자동차를 구입하고 별장 파티에 엘튼 존을 초청가수로 부를 수 있는 월스트리트 트레이더와 헤지펀드 매니저들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AI 만세’를 외쳐야 할까?

골드만삭스 같은 금융 대기업과 최대 헤지펀드 중 다수가 모두 AI 기반 시스템으로 전환하고 있다. 시장 트렌드 예측과 주식거래 성능이 사람보다 더 우수한 시스템이다. 수년 동안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 같던 AI가 곧 천장이 무너져 내린 듯 업계를 뒤덮을 기세라고 뉴욕 기반 AI 투자자이자 미국 경쟁력 위원회 선임 고문인 마크 미네비치가 말했다. 고액연봉 트레이더들이 문 닫는 공장 근로자들처럼 사정없이 길거리로 쫓겨날 참이다. 미네비치 고문은 “사실상 월스트리트의 정신이 타격을 입게 된다”며 “뉴욕에 일대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의 센티언트와 홍콩의 아이디야 같은 스타트업이 이들 AI 트레이딩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2014년 골드만삭스는 AI 기반 트레이딩 플랫폼 ‘켄쇼’에 투자하고 도입하기 시작했다. 스타트업 헤지펀드 월넛 알고리즘스는 처음부터 AI 기반으로 운영되도록 개발됐다. 별난 사업방식으로 악명높은 헤지펀드 업체 브릿지워터 어소시에이츠는 사실상 독자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AI 시스템 개발팀을 구성했다. 과거 TV 퀴즈쇼 ‘제퍼디!’에서 우승한 IBM 왓슨 컴퓨터 개발을 이끌었던 데이비드 페루치가 그 팀을 이끈다.

AI 트레이딩 소프트웨어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흡수해 세상 흐름을 파악한 뒤 주식·채권·원자재 그리고 기타 금융투자상품에 관해 예측한다. 서적·트윗·뉴스·금융데이터·실적통계·국제통화정책 심지어 NBC 방송 코미디쇼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 풍자까지 글로벌 동향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하면 무엇이든 소화할 수 있다. AI는 지치는 법 없이 24시간 내내 최신 정보를 계속 주시하면서 항상 학습해 예측의 완벽성을 기할 수 있다.

AI를 이용하는 23개 헤지펀드를 모니터한 리서치 업체 유레카헤지의 보고서에선 이들 펀드의 실적이 사람에 의지하는 펀드를 능가했다. 고도의 통계 모델을 수립하는 박사 수학자들인 퀀트(Quants)는 지난 10년 동안 헤지펀드의 총아였다. 하지만 그들은 과거 데이터를 분석해 시장 트렌드를 예측할 수 있는 모델을 개발한다. AI도 그것이 가능하지만 그 뒤로도 최신 데이터를 보고 배워 계속 모델을 개선해 나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퀀트 모델들이 정적인 의학 교과서라면 AI 학습 기계들은 최신 리서치에 정통한 현업 의사인 셈이다. 어느 쪽이 더 나은 진단을 내릴까? 유레카헤지의 보고서는 “과거 데이터에 기초한 검증을 통해 구축한 트레이딩 모델은 실시간으로 좋은 성과를 올리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말한다.

인간 트레이더와 헤지펀드 매니저들의 앞날이 어두운 이유는 상당 부분 그들이 인간이라는 데 있다. 센티언트의 공동창업자로 애플의 인공지능 비서 시리 개발에 참여했던 바백 호드잿은 “인간에겐 의식적·무의식적인 편견과 감수성이 있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 인간이 실수하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는 데이터와 통계만 기준으로 삼는 것보다 그런 인간의 직감과 논리에 의존하는 것이 더 무섭다.”

그렇다면 다가오는 AI 버스를 마주하게 될 금융계 종사자들은 어떤 일을 겪게 될까? 비즈니스 정보 업체 코울리션 디벨로프먼트(Coalition Development)에 따르면 12대 투자은행의 판매·트레이딩·조사 담당자의 평균 보수는 50만 달러다. 수백만 달러의 소득을 올리는 트레이더가 많다. 업계 조사에 따르면 10억 달러 이상의 소득을 올린 헤지펀드 매니저도 5명이었다. 시급 8달러의 패스트푸드 근로자를 로봇으로 대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연봉 100만 달러(시간 당 500달러)의 트레이더를 감원한다면 얼마나 절감되겠는가?

골드만삭스는 자동화가 트레이더들에게 얼마나 큰 타격을 줄 수 있는지 보여준다. 2000년 뉴욕의 주식거래 부서 소속 트레이더가 600명이었다. 오늘날 그 사업부에 남은 증권 트레이더는 2명이며 나머지 업무는 소프트웨어가 담당한다. 그리고 이는 골드만삭스에 AI가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전의 일이다. 켄쇼의 대니얼 내들러 CEO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10년 뒤에는 골드만삭스 직원 수가 지금보다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주요 금융업체의 모든 트레이딩 부서에 같은 변화가 예상된다.
AI는 지치는 법 없이 24시간 내내 최신 정보를 계속 주시하면서 항상 학습해 예측의 완벽성을 기할 수 있다.
영화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에 묘사된 부류의 사람들을 위해 울어줄 사람은 미국에 많지 않다. 하지만 AI의 이 같은 급부상은 여러 모로 막대한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 그것이 뉴욕의 고급 부동산에 미치는 영향을 상상해 보라. 해변가의 고급 여름 별장에 나붙을 ‘팝니다’ 사인을 생각해 보라. 고급 유통업체들이 2000달러짜리 정장과 파운드 당 5900달러짜리 흰송로버섯의 판매 감소를 어떻게 이겨낼까? 어쩌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트레이더들의 일자리가 멕시코로 넘어갔다고 생각해 그것을 미국으로 되찾아 와야 한다고 주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미네비치 고문은 똑똑한 사람들이 금융계를 벗어나 다른 거의 모든 분야로 퍼져나가면 나쁜 점보다 좋은 점이 더 많다고 본다. 미국의 최고 인재들 중 상당수가 월스트리트 트레이딩과 헤지펀드 운용 업계로 빨려 들어갔다. 100만 달러 연봉을 받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길이었다. 톱 10 비즈니스 스쿨 출신자 중 약 3분의 1이 금융분야로 진출한다. 헬스케어 업종을 선택하는 비율은 보통 5% 선에 그친다. 에너지나 제조업 진출자 비율은 더 낮다. 그리고 매년 비영리단체 취업자 수는 두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다.

미국 사회는 대부분 거기서 이기주의를 본다. 시장 유동성과 금융투자 상품 같은 것들도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일단의 그룹에 그렇게 많은 돈을 지급하는 거라면 한 번 충전에 1600㎞를 달리는 전기차, 또는 채식주의자용의 건강한 킬바사 소시지 또는 기내에서 아기가 울지 않게 하는 기술 개발자들에게 쓰는 편이 나을지 모른다. 다수 대중에 가시적인 혜택을 주는 기술의 발명가들 말이다.

미네비치 고문은 “이들 우수 인재 중 일부는 IT 스타트업으로 이직하거나 AI 플랫폼, 자율주행차, 또는 에너지 기술 개발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현재로선 정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IT 업계에 고도로 숙련된 전문가들이 부족한 데다 트럼프 대통령의 입국제한 강화 시대를 맞아 그런 인력이 고갈될 수 있다고 항상 불안해 하기 때문이다. MBA 엘리트가 월스트리트를 떠나지만 뉴욕에 머문다면 “뉴욕이 IT 분야에서 실리콘밸리의 경쟁자가 될지도 모른다”고 메니비치 고문은 덧붙인다.

헤지펀드 기업들이 더는 자신들에게 눈독을 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수학 박사들이 알게 되면 대신 기후변화 모델 수립이나 체내 암세포 행태 연구에 뛰어들 수도 있다. 국가안보국(NSA)은 웹사이트에서 “우리의 가장 어려운 신호 정보와 정보 보안 문제를 담당할 수학자들을 적극 물색 중”이라고 밝혔다. 수학 천재들이 테러범 체포를 도울 수도 있다! 진보파들 체포일지도 모르지만.

NSA에서 수학자가 받는 연봉은 10만 달러 안팎이다. 헤지펀드 연봉에 비하면 라이프스타일이 크게 떨어진다. 하지만 적어도 트레이더와 퀀트에게는 선택지가 있다. AI로 위협받는 트럭 기사나 기타 근로자들보다는 형편이 훨씬 낫다.

AI 머신의 금융업 점령에는 또 한 가지 혜택이 있다. 아이디야의 과학연구 책임자 벤 고어첼은 자신의 기계에 사람이 개입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모두 죽는다 해도 거래는 계속될 것”이라고 언젠가 말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이 핵무기 암호를 꺼내 들고 발사 단추를 누르더라도 최소한 국민 일부는 계속 연금펀드에서 높은 수익을 올리게 된다.

- 케빈 메이니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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