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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한국경제 | 청년 실업률 5%로 낮추자] 혁신 중기에 일자리 5만 개 만들고 정부는 연봉 절반 부담

[리셋, 한국경제 | 청년 실업률 5%로 낮추자] 혁신 중기에 일자리 5만 개 만들고 정부는 연봉 절반 부담

창업 생태계 혁신, 서비스업 활성화 시급...갈라파고스 규제 풀고 점진적 퇴직제도 도입해야



세계 경제에 봄볕이 들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일본 등 선진국 경제는 완연한 회복세고, 일부를 제외하면 신흥국 경기 지표도 개선되고 있다. 문제는 따스한 봄바람이 한국만 비켜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수출이 좋아지고, 기업 실적도 나아지고 있지만 일시적 현상이 아닌지 의문이 든다.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는 구조적 리스크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바꿔야 한다. 무엇을 바꿀까. 중앙일보·JTBC는 올 초부터 경제·정치·외교 등 13개 분과를 꾸려 ‘리셋코리아’를 운용해 왔다. 원로그룹과 워킹그룹이 머리를 맞대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정책 의제를 도출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새 정부 출범에 맞춰 ‘리셋코리아 경제편’을 총정리한다. 새 정부가 귀를 기울이기를 기대한다. - 편집자
3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최근 6개월 인턴으로 중견기업에 들어간 이모(27)씨는 “대졸 직후 실업자가 안 되고 일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만으로도 가슴이 뛴다”고 말했다. 대학 졸업 후 3년간 세 회사를 비정규직으로 전전하다 올 초부터 독서실에서 책과 씨름하고 있는 한모(26·여)씨는 “월세 내고 생활비 쓰면 남는 게 없는 비정규직으로는 미래가 없다고 생각해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체감 청년 실업률 20%대
한국의 청년들이 아찔한 고용절벽 앞에 서 있다. 대학을 졸업해도 정규 취업은커녕 인턴조차 될까 말까 한 극심한 취업난에 내몰리고 있다. 이런 현실은 청년 실업률(15~29세)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지난해 청년 실업률은 현재 방식의 통계가 작성된 이후 가장 높은 9.8%를 기록했다. 아직도 일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은 43만5000명에 이른다. 취업준비생 62만 명을 포함하면 체감실업률은 20%대로 치솟는다. 청년 다섯 중 한 명꼴로 실업자로 방치돼 있다는 의미다. 청년 일자리 불임 현상은 연평균 성장률 2%대로 주저앉은 한국 경제의 체력 저하를 비추는 거울이다. 이종화 고려대 교수는 “성장이 둔화되면 일자리도 줄어 든다”며 “이런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한국은 젊은 층의 3포(연애·결혼·출산 포기)나 N포 현상 고착화를 피할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시민 주열매씨는 “청년들이 취업으로 좌절하지 않는 나라를 꿈꾼다”고 말했다. 황병준씨는 “취업 한파가 완화되길 바란다”고 했으며 오영섭씨는 “청년 실업이 100% 해소되는 원년이 되길 바란다”고 소망했다.

중앙일보·JTBC가 낡은 제도와 관행을 개혁하려고 시작한 리셋 코리아는 시민마이크를 운영해 왔다. 지난해 12월 31일부터 올해 2월 초까지 시민마이크에는 일자리에 대한 청년 목소리가 분출했다. 경제 이슈의 대부분은 일자리와 관련돼 있었다. 절망과 분노가 묻어났다. 허재혁씨는 “인턴제도가 헛짓이라고 확신한다. 기업에는 돈 낭비, 구직자에게는 시간 낭비가 된다”고 썼다. 김연서씨는 “인턴 확대 같은 거 말고 진짜 제대로 된 직장을 갖게 해 줄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자신을 ‘철현’이라고 밝힌 한 시민은 “나는 열정페이는 대한민국의 미래인 청년들에게 주는 부당한 처사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김용성씨는 “나는 열정페이 청년들의 열정이 존경스럽지만 임금은 제대로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성세대로 보이는 김행자씨는 “청춘들도 일을 하면 그에 따른 정당한 대가가 필요하다”고 의견을 올렸다. 김해윤씨는 “나의 인생은 인턴으로 시작해 그 끝이 안 보인다”며 “정규직 채용을 따내지 못하면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며, 청년들은 대한민국의 현실에 대해 인내하고 그저 순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청년들이 그토록 갈망하는 일자리가 왜 원하는 만큼 늘어나지 않는지, 무엇이 일자리 창출을 가로막고 있는지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두 곳을 르포했다. 앞으로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할수록 일자리 창출을 기대할 수 있는 벤처밸리 한 곳과 서비스산업 현장 한 곳이다. 먼저 경기도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를 48시간 밀착 취재했다. 벤처기업 초기 단계인 스타트업부터 벤처기업까지 1500여 개 기업이 입주해 있는 벤처밸리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어떤 걸림돌이 창업을 가로막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입주 업체 간 정보 교환이 활발하고 정부의 기술·금융·수출지원 제도를 원스톱으로 쉽게 활용하면서 폭발적인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이런 기대가 무너지는 데는 48시간도 필요하지 않았다.

대다수 입주 업체는 비효율적인 정부 지원 체계와 한국식 갈라파고스 규제 앞에 가로막혀 악전고투하고 있었다. 정부가 각종 지원책을 내놓고는 있지만 공무원의 경험 부족과 시행착오로 스타트업 생태계를 왜곡하기도 했다. 핀테크업체 엔에스 비욘드의 서원일 대표는 “멘토링 교육과 기업설명회, 경진대회 참석 등 관(官) 주도 행사에 대표이사 참석을 요구하다 보니 스타트업 기업 상당수가 10명도 안 되는 인원에 공동 대표를 여럿 두고 있다”고 말했다. 김주일 코어사이트 대표는 “매출 목표, 비전, 경쟁력 등을 설명하는 정부 표준 양식 서류는 40~50여 장으로 거의 책 한 권 분량에 달한다”며 “첫 심사 때만이 아니라 매번 이만큼의 서류를 요구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서류작업 전담 직원을 따로 두는 곳도 있다”고 토로했다. 억지춘향 격으로 참석해야 하는 기관 주도 멘토링 교육은 이틀 동안 만난 창업자들이 가장 많이 개선을 요구한 사항이다. 아직 창업 동아리 수준인 곳부터 전문 기술인력이 모인 곳까지 획일적인 교육이 이뤄져 효과가 없어서다. 한 참가자는 “차라리 멘토링에 드는 비용으로 회계·세무·해외 진출 등 필요할 때 맞춤형 컨설팅을 받게 해 줬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일자리의 70%를 공급하고 있는 서비스산업은 여전히 규제가 걸림돌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줬다. 2014년 7월 합법화된 푸드트럭의 현주소가 그랬다. 푸드트럭은 작은 트럭을 개조해 간식용 음식을 판매하는 특수자동차다. 음식점 개점보다 창업 비용이 저렴해 20대 창업자의 관심이 크다. 주변 상권 잠식과 위생 우려 때문에 반대 의견이 많았지만 우여곡절 끝에 합법화되면서 지난해 9월까지 개조된 푸드트럭은 1000대를 넘어섰다. 그러나 합법적으로 운영되는 푸드트럭은 지난해 말 282대에 그치고 있다. 김치버스를 운영하는 류시형(35) 대표는 해외를 누비며 성공한 경험을 토대로 한국에 왔는데 트럭 규격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영업 허가를 못 받았다”며 “현재 허용하는 1.5t 트럭은 다양한 메뉴를 갖추기 어렵고 전문성도 살릴 수 없다”고 말했다. 2년째 멈춰서 있는 그의 김치버스는 엔진을 빼고 건축물로 허가받아 영업을 하고 있다.

청년 일자리 위축은 세계적 현상이다. 하지만 주요국은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도약의 계기로 삼고 있다. 미국 국민이 좌충우돌하는 도널드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택한 것도 일자리를 만들라는 명령이다. 일본이 일손 부족을 겪을 정도로 취업이 잘되는 것도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의 세 번째 화살인 구조개혁 시도가 기업의 투자 심리를 되살린 덕분이다. 일본의 유효구인배율은 지난해 1.43을 기록했다. 기업 100곳은 신규 근로자를 확보하지만 43곳은 새로운 일손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대졸자의 취업률은 97%에 달한다.

중국이 경제대국이 된 것도 강력한 경제 리더십의 결과다. 2000년 장쩌민 국가주석이 발표한 ‘3개 대표론’은 공산당이 노동자·농민뿐 아니라 지식인·자본가의 근본이익을 대변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중국은 이제 과실을 거두고 있다. 대졸 창업자가 연 300만 명씩 쏟아져 나오고, 벤처기업이 장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신싼반(新三板)’ 상장기업은 1만 개에 달해 한국 전체 상장사의 다섯 배에 이를 정도로 창업 열기가 뜨겁다. 지난해 대졸자 취업률은 90.6%였다.

리셋코리아 경제 분과는 시민들의 이런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창업 생태계를 혁신하고 서비스산업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또한 “일을 하고 싶다”는 청년들의 꿈과 희망에 부응하기 위한 실행과제로 리셋 코리아 경제분과는 모두 5개를 제시했다. 이종화 고려대 교수를 비롯한 경제분과 위원들은 “큰 틀에서 보면 경제는 일자리·양극화·성장이 모두 연결돼 있다”며 “청년 실업부터 풀어야 경제 회복의 실마리를 마련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5개 실행과제가 체계적으로 실행되면 창업생태계를 강화하고 서비스산업을 활성화해 청년이 가고 싶은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의견을 모았다. 구체적인 제안은 다음과 같다.

과제 1 | “정부는 규제 프리 샌드박스 제공”
지난해 11월 한 대학 캠퍼스에서 열린 일자리 박람회.
이런 환경을 만들려면 정부와 민간의 역할이 명확히 구분돼야 한다. 강영재 코이스라시드파트너십(KSP) 공동대표는 “정부의 역할은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스타트업 기업이 성장하도록 창업생태계를 만들어주는 것이고, 이 안에서 혁신과 일자리가 늘어나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지원하기 위해 정부는 수많은 진흥원을 만들어왔다. 하지만 정부의 지원에 기업이 의존하고 종속되면서 성과가 떨어지고 있다. 그래서 ‘진흥원 공화국’ ‘정부동물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강 대표는 “아이들 놀이터처럼 규제 프리 샌드박스를 만들어 이 안에서는 마음껏 놀도록 하고 대표자 연대보증 같은 제도를 폐지해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가 형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제 2 | “창업 기업에 민간투자 확대”경기 불황 속에 지난해 정부와 민간의 국내 벤처기업 투자는 2조1503억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내 경기가 바닥을 기는 상황에서도 양질의 스타트업 기업이 꾸준히 늘어난 결과다. 하지만 효율성은 떨어진다. 정부 주도로 벤처기업에 자금을 제공하는 모태펀드까지 조성돼 있지만 정부의 기술평가 능력이 떨어져 정부 지원 자금만 따내는 좀비벤처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조성욱 서울대 교수는 “민간 투자가 원활하게 이뤄져야 비로소 창업생태계가 활성화될 수 있다”며 “혁신 창업 기업에 대한 정보가 투명하게 시장에 공급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과제 3 | “신규 산업 진입 완전 자유화”창업가의 시장 진입도 훨씬 자유로워져야 한다. 한국은 교육 수준이 높아 변화에 빨리 적응하고 일자리를 만들 기회도 많다.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규제 공화국이다. 김윤이 뉴로어소시에이츠 대표는 “신성장산업에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은데 규정에 없는 것을 하려면 공무원의 고민도 깊어진다”며 “혁신생태계를 도우려는 공무원 경력에도 도움을 주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갈라파고스식 규제는 결국 4차 산업과 공유경제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한국 기업만 글로벌 시장에서 도태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박정수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핀테크업체 ‘8%’가 대부업체로 등록하고 금융·산업 분리정책에 묶여 인터넷은행이 출범하지 못하는 것은 모두 서비스산업에 대한 규제 때문”이라며 “원칙적으로 규제를 하지 않는 네거티브 시스템이 확산돼야 청년들이 가고 싶어 하는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과제 4 | “임금피크제와 점진적 퇴직제도”이같이 창업생태계와 서비스산업을 활성화해 일자리를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2%대 저성장 구조에서는 한계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이를 보완하려면 취업 기회를 배분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홍기석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임금피크제 도입을 촉진하고 점진적 퇴직제도를 도입해 여기서 확보한 재원으로 청년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점진적 퇴직제도는 임금피크에 도달한 근로자의 근로시간을 25~75% 수준으로 줄여 나가면서 임금을 줄이는 것으로, 여기서 확보된 재원으로 청년 고용을 확대할 수 있는 제도다. 독일·스웨덴·일본은 정년을 연장하면서 이 제도를 받아들여 장년의 노후 보장과 청년 일자리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 잡기에 성공하고 있다.

과제 5 | “정부가 임금 지원하는 일자리를”
극심한 청년 실업 해소를 위해 단기적으로는 파격적인 방안이 필요하다는 제안도 나왔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는 “정부가 선발해 임금과 연금을 지원해주고 혁신형 성장 기업에 근무하는 청년 일자리 5만 개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당분간 일자리를 만들 곳은 고용의 88%를 책임지고 있는 중소기업밖에 없으며, 이 중에서 혁신 성장 중소기업에 필요한 연구개발(R&D)과 글로벌 마케팅 수행 업무에 투입하자는 것이다. 중소기업이 경쟁력을 갖추려면 기술을 개발하고 해외시장을 개척해야 하는데 중소기업 자력으로 이 두 가지를 이루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같은 실행과제는 피할 수 없는 도전이다. 첨단화·기계화의 영향으로 일자리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제조업과 달리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하면 혁신형 기업과 서비스산업에서 일자리가 창출될 수밖에 없어서다. 결국 고용절벽에서 탈출하려면 기업가 정신을 옭아매는 한국식 갈라파고스 규제를 해소하고, 실물경제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는 공공부문의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 리셋 코리아 경제분과의 일자리 위기에 대한 진단과 처방이다.

지금은 비상 시기인 만큼 단기적으로는 정부도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정부가 청년 5만 명을 선발해 혁신형 중소기업에서 일하도록 하고 연봉의 절반을 최대 2000만원 한도에서 지원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예산은 1조원이다. 재원은 중견기업 참여가 저조한 청년인턴 지원과 고용장려금 규모를 대폭 축소하는 등 올해 일자리 예산 17조5000억원을 구조조정해 조달하면 된다. 재정을 쓰지만 민간에 인력을 공급한다는 점에서 공무원 증원 공약과는 다르다. 이런 식으로 일자리 20만 개를 만들면 청년 실업률은 지금의 절반 수준으로 낮출 수 있다.

한편 리셋 코리아 경제분과는 대학교수, 벤처기업가, 연구기관 연구위원 등 9명으로 구성됐다. 토론에서 위원들은 가계부채·주택 문제와 같은 민생경제, 국가부채와 복지 비용 충당을 위해 손질이 필요한 재정과 세제 개혁, 계층 사다리 복구를 위한 양극화 해소 문제, 핀테크 발전에 따른 금융산업 선진화 등을 리셋 코리아의 핵심 과제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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