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의 대항마로 떠오른 사나이
푸틴의 대항마로 떠오른 사나이
부패척결 운동가인 알렉세이 나발니는 러시아 전역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이끌지만 크렘린이 내년 대선 출마 허용할지는 의문 지난 4월 10일 오후 잔뜩 찌푸린 하늘 아래 북부 모스크바의 구치소 앞으로 군중이 몰려들었다. 러시아의 야권 지도자이자 반부패 운동가인 알렉세이 나발니(40)가 또 한번의 구류를 끝내고 출소하는 날이었다. 주로 야권 운동가와 언론인인 그들은 나발니의 격정적인 연설을 기대했다.
그러나 나발니도 보이지 않고 연설도 들리지 않았다. 러시아 당국이 약 15㎞ 떨어진 다른 구치소로 나발니를 은밀하게 이감했다가 그곳에서 출소시켰기 때문이었다. 그의 언론 노출과 연설을 막으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나발니는 혼자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야 했다.
나발니의 지지자들에겐 당국의 그런 은밀한 조치가 정치인으로서 그의 전국적인 지명도가 갈수록 높아진다는 표시와 다름 없다. 아울러 내년 대선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몰아낼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고 여겨지는 유일한 인물이 나발니라는 간접적인 인정이기도 했다. 물론 나발니가 출마할 수 있다면 말이다.
실제로 푸틴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이 겁먹을 만한 상황이다. 지난 3월 26일 나발니는 수년 만에 최대 규모의 반정부 시위를 주최했다. 러시아 전역의 약 100개 도시와 마을에서 수만 명이 경찰의 집회 금지령을 무시하고 시위를 벌였다. 폭동진압 경찰이 강경 진압에 나섰다. 모스크바에서만 나발니를 포함해 1000명 이상이 체포됐다. 나발니는 경찰의 집회 금지령에 불복한 혐의로 즉심에 넘겨져 15일 구류 처분을 받았다.
이번 시위의 초점은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가 국영 은행과 재벌 사업가로부터 10억 달러(약 1조1400억원) 이상의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이었다. 유튜브에서 1700만 건 이상의 열람을 기록한 동영상에서 나발니는 메드베데프 총리가 불법 자금으로 의심스런 자선단체를 통해 요트와 고급 저택 등 부동산을 매입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서민들은 그 동영상을 보고 격분했다.
2014년 크림반도 합병과 관련해 서방이 부과한 제재 등으로 러시아 경제가 맥을 추지 못하면서 그들은 생계가 갈수록 어려워진다고 느낀다. 현재 러시아인 약 2300만 명(인구의 약 16%)이 빈곤선 아래서 생활한다. 최근 러시아 고등경제대학의 발표에 따르면 러시아인의 41%는 먹고 입는 문제로 고통당한다.
크렘린은 나발니가 제기한 메드베데프 총리의 부정축재 의혹에 논평하지 않았다. 러시아 연방 의회도 진상조사를 거부했다. 메드베데프 총리는 몇 주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의혹을 부인했다. “그들은 나와 내 지인, 또 내가 들어보지도 못한 사람들에 대해 헛소리를 떠벌린다. 이 선동적인 동영상은 사적인 후원자의 지원을 받아 제작됐다. 여기에는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의도가 개입됐다.” 그는 크렘린 정책에 따라 나발니를 실명으로 거명하지 않았다. “당신들이 말하는 인물(나발니)은 공개적으로 ‘그들 모두는 나쁜 사람들이다. 나를 대통령으로 뽑아달라’며 사람들이 거리에 나오도록 선동한다.”
하지만 크렘린이 나발니의 이름을 거명하지 않아도 그의 존재감은 갈수록 커진다. 모스크바의 정치 분석가 드미트리 오레슈킨은 “나발니가 메드베데프 총리를 표적으로 삼은 것은 반부패 운동가로서 그의 전국적인 인지도를 높여줄 것”이라고 논평했다.
나발니는 대규모 시위 주최로 이미 유명해졌다. 모스크바의 독립적인 여론조사기관 레바다 첸트르에 따르면 러시아인의 38%가 시위를 지지했으며, 67%는 고위급 인사의 부정부패에 푸틴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 중요한 점은 러시아인의 10%가 내년 3월 대선에서 나발니를 찍겠다고 밝힌 사실이다. ‘나라를 무너뜨리려는 외국의 꼭두각시’라고 비난 받을 때만 국영 언론에서 거명되는 정치인이 벌써 그 정도의 국민 지지를 받는다는 사실은 상황이 심각하다는 뜻이다.나발니는 수십 년 전부터 부정부패를 비난해왔지만 2011년 12월 총선 이후 푸틴 대통령의 3기 집권을 규탄하는 야권 시위를 이끌며 인지도가 크게 높아졌다. 당시 푸틴 대통령이 이끄는 통합러시아당에 유리하도록 선거가 조작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모스크바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그 후 나발니는 2013년 모스크바 시장 선거에 출마해 30%에 가까운 득표율을 올렸다. 정권의 통제를 받는 것으로 추정되는 주류 언론의 철저한 외면과 후원금 부족 속에서도 정치 역량을 입증하며 진정한 ‘푸틴의 대항마’로 떠오른 것이었다.
나발니는 그런 체제 도전으로 수차례 수감되는 고초를 겪었다. 2013년엔 사기죄(그는 정치적으로 조작된 사건이라고 항변했다)로 5년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그의 지지자들이 경찰의 경고를 무시하고 의회 밖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이자 바로 다음날 석방됐다. 항소심에서 그는 집행유예로 감형 받았다. 2014년엔 그의 동생 올레그 나발니가 부패 혐의로 징역 3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나발니는 당국이 자신에게 재갈을 물리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그는 법정 밖에서 “내 동생이 인질로 잡혔다”며 격분했다.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나발니의 분노는 서서히 러시아 전역으로 널리 전염됐다. 크렘린은 최근의 반정부 시위에 대비하지 못한 듯했다. 2011~12년 시위는 수도 모스크바에 국한됐고 대부분 나이 많은 중류층 시민들이 주축이었다. 그러나 올봄의 시위는 러시아 전역에서 벌어졌으며 젊은 세대의 많은 지지를 얻었다(그들은 푸틴 시대 이전의 삶을 거의 모른다).
러시아 제2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사는 학생 옐레나(18, 정치 문제에 관해 솔직히 말하기 위해 성은 밝히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는 “대다수 성인과 달리 우리는 국영 TV가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뉴스를 접한다”고 말했다. “국영 TV가 당국의 검열을 받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내가 아는 성인 대다수는 상황을 바꿔 보려는 생각을 포기했다. 하지만 우리에겐 앞으로 언젠가는 정상적인 국가에서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
나발니와 그의 지지자들도 비슷한 희망을 갖는다. 그들은 크렘린이 나발니를 대통령 후보로 받아들이도록 압력을 가하기 위해 러시아 전국에 수십 개의 선거운동 사무실을 열었다. 나발니는 단 3개월만에 공공 기부로 2630만 루블(약 5억3000만원)을 선거자금으로 확보했으며 7만5000명 이상이 자신의 선거운동을 돕는 자원봉사자로 등록했다고 말했다.
벌써부터 나발니의 선거운동은 현대 러시아에서 전례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과 달리 러시아에선 대선 후보가 일반적으로 선거일 몇 달 전에 선거운동을 시작한다. 푸틴 대통령은 국정 운영에 바빠 선거운동에 할애할 시간이 없다며 2000년 정권을 잡은 이래 유세에 거의 나서지 않았다. 또 그는 TV 중계든 다른 방식이든 후보자 토론에서 상대 후보에 맞선 적도 없다.
그러나 나발니가 대선 후보로 등록하려면 상당한 장애물을 극복해야 한다. 크렘린 보좌관 출신으로 지금은 푸틴 대통령 비판자로 돌아선 글레브 파블로프스키는 뉴스위크에 “크렘린은 나발니를 선거에서 멀리 떼어 놓으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발니는 예측 불가능한 인물로 푸틴 대통령의 만만치 않은 상대가 될 것이다.”
또 러시아 법에 따르면 형사 처벌을 받은 사람은 공직 출마를 할 수 없다. 그러나 헌법은 수감 중인 사람만 출마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나발니는 헌법에 따라 자신에게 출마 자격이 있다고 주장한다. 아무튼 선거관리위원회가 오는 12월 그의 출마 자격을 결정할 것이다. 그러나 선거관리위원회는 러시아의 국가기관으로 지금까지 정권에 불편한 인물의 입후보를 막는 성향을 보여왔다.한편 지방 정부도 나발니의 유세를 환영하지 않는다. 서부 시베리아의 톰스크에선 나발니 선거운동 자원봉사자들이 집에 갇히는 사건이 발생했다. 정체 불명의 괴한들이 수성연질발포폼으로 그들의 현관문을 봉하고 차량의 타이어를 찢었다. 나발니는 체격 좋은 경호원을 고용했지만 러시아 중부 지방을 방문하는 동안 두 차례나 공격 받았다. 한번은 크렘린 지지자가 그의 얼굴에 녹색 물감을 뿌렸고, 또 한번은 코사크족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그를 공격했다.
나발니는 이런 장애물과 국영 언론의 검열, 선거 조작의 가능성을 고려할 때 푸틴 대통령이 선거에서 절대 지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본다. 하지만 나발니가 선거운동을 계속하는 것은 크렘린을 강하게 압박하기 위해서다. 그는 뉴스위크에 “진정한 정치적 경쟁을 허용하지 않는다면 푸틴은 다른 방법에 의해 권좌에서 쫓겨나게 될 것”이라며 “내가 볼 때 그는 선거가 아닌 강압적인 방법으로 쫓겨나는 상황을 자초하려고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한다”고 말했다.
나발니는 ‘러시아의 도널드 트럼프’라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그는 그런 지적에 발끈하지만 실제로 나발니는 뻔뻔해 보일 정도로 고립주의자이자 이민반대론자다. 그는 최근 지지자들에게 “우린 서방과 돈독한 관계를 구축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의 외교정책은 국내에서 시작된다. 우린 러시아에 정상적인 도로를 건설한 다음에야 군사력을 걱정할 것이다. 또 시리아의 아사드 대통령 정권을 지원하기 전에 먼저 러시아 국민의 연금과 최소임금을 올릴 것이다.”
나발니는 2012년까지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국수주의자와 극우 급진주의자들의 연례 행사인 ‘러시아 행진’에 거의 매년 참석했다. 2013년엔 러시아 남부의 한 도시에서 체첸인 추방을 촉구하는 시위대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또 북캅카스와 중앙아시아 출신자들과 관련해 모욕적인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근년 들어 나발니는 이민반대 표현의 수위를 낮춰 러시아 진보파의 보편적인 지지를 받는다. 그러나 일부 반체제 성향을 가진 러시아인은 푸틴 대통령에 반대하더라도 나발니의 편에 설 순 없다는 입장이다. 에이즈 퇴치 운동가인 아니야 사랑은 “나발니가 러시아에 매우 중요한 부패척결 운동을 펼치지만 그의 정치 프로그램은 국수주의·포퓰리즘과 무분별한 슬로건이 그 바탕”이라고 말했다.“그를 지지하는 사람은 절박한 상황에 놓여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절박하든 않든 나발니는 대규모 군중을 거리 시위에 동원할 능력을 가진 몇 안 되는 러시아 정치인 중 한 명이다. 그는 그 힘을 계속 사용할 생각이다. 최근의 구류에도 뜻을 굽히지 않은 그는 6월 12일 ‘러시아의 날’ 공휴일에 전국적인 시위를 또 다시 촉구했다.
나발니는 지난 4월 12일 온라인에 올린 동영상에서 푸틴 대통령과 메드베데프 총리를 지칭하며 이렇게 말했다. “러시아 국민이 러시아의 날에 러시아 국기를 들고 거리에 나설 권리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당신들의 목적은 이 나라 러시아를 당신들의 개인 지갑으로 변모시키려는 것이 틀림없다.”
그 다음날 아침 경찰은 러시아 전역에서 반(反)푸틴 운동가들의 집을 급습했다.
나발니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그는 “그들을 계속 강하게 압박하자”고 외쳤다.
- 마크 베네츠 뉴스위크 기자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그러나 나발니도 보이지 않고 연설도 들리지 않았다. 러시아 당국이 약 15㎞ 떨어진 다른 구치소로 나발니를 은밀하게 이감했다가 그곳에서 출소시켰기 때문이었다. 그의 언론 노출과 연설을 막으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나발니는 혼자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야 했다.
나발니의 지지자들에겐 당국의 그런 은밀한 조치가 정치인으로서 그의 전국적인 지명도가 갈수록 높아진다는 표시와 다름 없다. 아울러 내년 대선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몰아낼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고 여겨지는 유일한 인물이 나발니라는 간접적인 인정이기도 했다. 물론 나발니가 출마할 수 있다면 말이다.
실제로 푸틴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이 겁먹을 만한 상황이다. 지난 3월 26일 나발니는 수년 만에 최대 규모의 반정부 시위를 주최했다. 러시아 전역의 약 100개 도시와 마을에서 수만 명이 경찰의 집회 금지령을 무시하고 시위를 벌였다. 폭동진압 경찰이 강경 진압에 나섰다. 모스크바에서만 나발니를 포함해 1000명 이상이 체포됐다. 나발니는 경찰의 집회 금지령에 불복한 혐의로 즉심에 넘겨져 15일 구류 처분을 받았다.
이번 시위의 초점은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가 국영 은행과 재벌 사업가로부터 10억 달러(약 1조1400억원) 이상의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이었다. 유튜브에서 1700만 건 이상의 열람을 기록한 동영상에서 나발니는 메드베데프 총리가 불법 자금으로 의심스런 자선단체를 통해 요트와 고급 저택 등 부동산을 매입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서민들은 그 동영상을 보고 격분했다.
2014년 크림반도 합병과 관련해 서방이 부과한 제재 등으로 러시아 경제가 맥을 추지 못하면서 그들은 생계가 갈수록 어려워진다고 느낀다. 현재 러시아인 약 2300만 명(인구의 약 16%)이 빈곤선 아래서 생활한다. 최근 러시아 고등경제대학의 발표에 따르면 러시아인의 41%는 먹고 입는 문제로 고통당한다.
크렘린은 나발니가 제기한 메드베데프 총리의 부정축재 의혹에 논평하지 않았다. 러시아 연방 의회도 진상조사를 거부했다. 메드베데프 총리는 몇 주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의혹을 부인했다. “그들은 나와 내 지인, 또 내가 들어보지도 못한 사람들에 대해 헛소리를 떠벌린다. 이 선동적인 동영상은 사적인 후원자의 지원을 받아 제작됐다. 여기에는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의도가 개입됐다.” 그는 크렘린 정책에 따라 나발니를 실명으로 거명하지 않았다. “당신들이 말하는 인물(나발니)은 공개적으로 ‘그들 모두는 나쁜 사람들이다. 나를 대통령으로 뽑아달라’며 사람들이 거리에 나오도록 선동한다.”
하지만 크렘린이 나발니의 이름을 거명하지 않아도 그의 존재감은 갈수록 커진다. 모스크바의 정치 분석가 드미트리 오레슈킨은 “나발니가 메드베데프 총리를 표적으로 삼은 것은 반부패 운동가로서 그의 전국적인 인지도를 높여줄 것”이라고 논평했다.
나발니는 대규모 시위 주최로 이미 유명해졌다. 모스크바의 독립적인 여론조사기관 레바다 첸트르에 따르면 러시아인의 38%가 시위를 지지했으며, 67%는 고위급 인사의 부정부패에 푸틴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 중요한 점은 러시아인의 10%가 내년 3월 대선에서 나발니를 찍겠다고 밝힌 사실이다. ‘나라를 무너뜨리려는 외국의 꼭두각시’라고 비난 받을 때만 국영 언론에서 거명되는 정치인이 벌써 그 정도의 국민 지지를 받는다는 사실은 상황이 심각하다는 뜻이다.나발니는 수십 년 전부터 부정부패를 비난해왔지만 2011년 12월 총선 이후 푸틴 대통령의 3기 집권을 규탄하는 야권 시위를 이끌며 인지도가 크게 높아졌다. 당시 푸틴 대통령이 이끄는 통합러시아당에 유리하도록 선거가 조작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모스크바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그 후 나발니는 2013년 모스크바 시장 선거에 출마해 30%에 가까운 득표율을 올렸다. 정권의 통제를 받는 것으로 추정되는 주류 언론의 철저한 외면과 후원금 부족 속에서도 정치 역량을 입증하며 진정한 ‘푸틴의 대항마’로 떠오른 것이었다.
나발니는 그런 체제 도전으로 수차례 수감되는 고초를 겪었다. 2013년엔 사기죄(그는 정치적으로 조작된 사건이라고 항변했다)로 5년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그의 지지자들이 경찰의 경고를 무시하고 의회 밖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이자 바로 다음날 석방됐다. 항소심에서 그는 집행유예로 감형 받았다. 2014년엔 그의 동생 올레그 나발니가 부패 혐의로 징역 3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나발니는 당국이 자신에게 재갈을 물리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그는 법정 밖에서 “내 동생이 인질로 잡혔다”며 격분했다.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나발니의 분노는 서서히 러시아 전역으로 널리 전염됐다. 크렘린은 최근의 반정부 시위에 대비하지 못한 듯했다. 2011~12년 시위는 수도 모스크바에 국한됐고 대부분 나이 많은 중류층 시민들이 주축이었다. 그러나 올봄의 시위는 러시아 전역에서 벌어졌으며 젊은 세대의 많은 지지를 얻었다(그들은 푸틴 시대 이전의 삶을 거의 모른다).
러시아 제2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사는 학생 옐레나(18, 정치 문제에 관해 솔직히 말하기 위해 성은 밝히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는 “대다수 성인과 달리 우리는 국영 TV가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뉴스를 접한다”고 말했다. “국영 TV가 당국의 검열을 받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내가 아는 성인 대다수는 상황을 바꿔 보려는 생각을 포기했다. 하지만 우리에겐 앞으로 언젠가는 정상적인 국가에서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
나발니와 그의 지지자들도 비슷한 희망을 갖는다. 그들은 크렘린이 나발니를 대통령 후보로 받아들이도록 압력을 가하기 위해 러시아 전국에 수십 개의 선거운동 사무실을 열었다. 나발니는 단 3개월만에 공공 기부로 2630만 루블(약 5억3000만원)을 선거자금으로 확보했으며 7만5000명 이상이 자신의 선거운동을 돕는 자원봉사자로 등록했다고 말했다.
벌써부터 나발니의 선거운동은 현대 러시아에서 전례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과 달리 러시아에선 대선 후보가 일반적으로 선거일 몇 달 전에 선거운동을 시작한다. 푸틴 대통령은 국정 운영에 바빠 선거운동에 할애할 시간이 없다며 2000년 정권을 잡은 이래 유세에 거의 나서지 않았다. 또 그는 TV 중계든 다른 방식이든 후보자 토론에서 상대 후보에 맞선 적도 없다.
그러나 나발니가 대선 후보로 등록하려면 상당한 장애물을 극복해야 한다. 크렘린 보좌관 출신으로 지금은 푸틴 대통령 비판자로 돌아선 글레브 파블로프스키는 뉴스위크에 “크렘린은 나발니를 선거에서 멀리 떼어 놓으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발니는 예측 불가능한 인물로 푸틴 대통령의 만만치 않은 상대가 될 것이다.”
또 러시아 법에 따르면 형사 처벌을 받은 사람은 공직 출마를 할 수 없다. 그러나 헌법은 수감 중인 사람만 출마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나발니는 헌법에 따라 자신에게 출마 자격이 있다고 주장한다. 아무튼 선거관리위원회가 오는 12월 그의 출마 자격을 결정할 것이다. 그러나 선거관리위원회는 러시아의 국가기관으로 지금까지 정권에 불편한 인물의 입후보를 막는 성향을 보여왔다.한편 지방 정부도 나발니의 유세를 환영하지 않는다. 서부 시베리아의 톰스크에선 나발니 선거운동 자원봉사자들이 집에 갇히는 사건이 발생했다. 정체 불명의 괴한들이 수성연질발포폼으로 그들의 현관문을 봉하고 차량의 타이어를 찢었다. 나발니는 체격 좋은 경호원을 고용했지만 러시아 중부 지방을 방문하는 동안 두 차례나 공격 받았다. 한번은 크렘린 지지자가 그의 얼굴에 녹색 물감을 뿌렸고, 또 한번은 코사크족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그를 공격했다.
나발니는 이런 장애물과 국영 언론의 검열, 선거 조작의 가능성을 고려할 때 푸틴 대통령이 선거에서 절대 지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본다. 하지만 나발니가 선거운동을 계속하는 것은 크렘린을 강하게 압박하기 위해서다. 그는 뉴스위크에 “진정한 정치적 경쟁을 허용하지 않는다면 푸틴은 다른 방법에 의해 권좌에서 쫓겨나게 될 것”이라며 “내가 볼 때 그는 선거가 아닌 강압적인 방법으로 쫓겨나는 상황을 자초하려고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한다”고 말했다.
나발니는 ‘러시아의 도널드 트럼프’라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그는 그런 지적에 발끈하지만 실제로 나발니는 뻔뻔해 보일 정도로 고립주의자이자 이민반대론자다. 그는 최근 지지자들에게 “우린 서방과 돈독한 관계를 구축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의 외교정책은 국내에서 시작된다. 우린 러시아에 정상적인 도로를 건설한 다음에야 군사력을 걱정할 것이다. 또 시리아의 아사드 대통령 정권을 지원하기 전에 먼저 러시아 국민의 연금과 최소임금을 올릴 것이다.”
나발니는 2012년까지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국수주의자와 극우 급진주의자들의 연례 행사인 ‘러시아 행진’에 거의 매년 참석했다. 2013년엔 러시아 남부의 한 도시에서 체첸인 추방을 촉구하는 시위대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또 북캅카스와 중앙아시아 출신자들과 관련해 모욕적인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근년 들어 나발니는 이민반대 표현의 수위를 낮춰 러시아 진보파의 보편적인 지지를 받는다. 그러나 일부 반체제 성향을 가진 러시아인은 푸틴 대통령에 반대하더라도 나발니의 편에 설 순 없다는 입장이다. 에이즈 퇴치 운동가인 아니야 사랑은 “나발니가 러시아에 매우 중요한 부패척결 운동을 펼치지만 그의 정치 프로그램은 국수주의·포퓰리즘과 무분별한 슬로건이 그 바탕”이라고 말했다.“그를 지지하는 사람은 절박한 상황에 놓여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절박하든 않든 나발니는 대규모 군중을 거리 시위에 동원할 능력을 가진 몇 안 되는 러시아 정치인 중 한 명이다. 그는 그 힘을 계속 사용할 생각이다. 최근의 구류에도 뜻을 굽히지 않은 그는 6월 12일 ‘러시아의 날’ 공휴일에 전국적인 시위를 또 다시 촉구했다.
나발니는 지난 4월 12일 온라인에 올린 동영상에서 푸틴 대통령과 메드베데프 총리를 지칭하며 이렇게 말했다. “러시아 국민이 러시아의 날에 러시아 국기를 들고 거리에 나설 권리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당신들의 목적은 이 나라 러시아를 당신들의 개인 지갑으로 변모시키려는 것이 틀림없다.”
그 다음날 아침 경찰은 러시아 전역에서 반(反)푸틴 운동가들의 집을 급습했다.
나발니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그는 “그들을 계속 강하게 압박하자”고 외쳤다.
- 마크 베네츠 뉴스위크 기자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