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찬의 G(글로벌)와 I(나)사이 HR(15)
김기찬의 G(글로벌)와 I(나)사이 HR(15)
최고경영자를 비롯한 경영진이 흔히 범하는 실수가 “다른 사람도 이런 생각을 하겠지”라는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공감의 과정이 생략된다. 리더십과 인적자원관리, 인사시스템 등 사람을 중시하는 현대 경영학의 토대는 바로 공감이다. 비행기로 수송하는 공산품은 대체로 부피가 작고, 가격이 높다. 반도체나 휴대전화, 전자제품이 그렇다. 의약품이나 살아있는 생물도 마찬가지다. 이런 제품은 배송 시간 단축이 매출과 직결된다. 배로 수송히면 소금기에 오염되고, 흔들릴 경우 파손과 같은 사태가 빚어질 수 있다. 제품을 생산된 당시의 모습과 성능 그대로 소비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항공운송을 고집하게 된다. 최근엔 의류가 항공운송 상품의 대열에 합류했다. 오염이나 파손의 문제는 물론 없다. 그런데 파리나 밀라노, 뉴욕에서 발표한 최신 의상이 다음날이면 바로 서울에 등장한다. 유행만큼 시간에 민감한 게 없다는 얘기다. 비싼 항공료를 지불하더라도 서두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류 드라마에 나온 의상은 곧장 화물기에 실려 전세계로 향하는 경우가 많다. 조금만 늦으면 짝퉁이 판을 치고, 진품이 끼어들 공간이 좁아진다. 심지어 의류는 화물기에 실릴 때 반도체 못지않은 최고의 포장상태를 유지한다. 가죽옷은 접지도 않는다. 양복을 보관하듯 한 벌씩 포장해 단독 컨테이너에 싣는다. 항공업계로서도 의류는 효자상품이다. 오죽하면 대한항공은 2011년 7월부터 스페인 북동부의 공업도시인 사라고사에 주 2회 화물기를 띄우기 시작했다. 세계적인 여성 패션브랜드인 ‘자라’의 모기업인 패션그룹 인디텍스의 물류센터가 있어서다. 이곳을 거점으로 유럽, 중동, 아시아를 잇는 패션 운송망을 선점했다. 북아프리카를 겨냥한 교두보까지 마련했다. 의류가 항공화물 운송에 포함될 도로 바야흐로 글로벌 시장은 속도전의 시대로 변했다. 예전엔 상품을 만들어 풀어놓으면 소비자가 선택하는 식이었다. 경쟁사보다 좀 늦게 출시해도 광고로 호기심을 자극하고 구매하도록 유도하면 어느정도 효과를 봤다. 하지만 이젠 단순히 풀어놓기만 해서는 승산이 없다. 출시도 하기 전에 인터넷과 모바일을 통해 금방 상품의 특성과 모양이 공개되는 시대다. 신형 휴대폰은 발표하기도 전에 외형이 인터넷에 떠돌고, 기능에 대한 분석까지 곁들여진다. 이런 분석은 희한하게 대체로 맞아 떨어진다. 분석조차 빠른 세상인 셈이다. 이런 현상은 남보다 일찍 소유하려는 욕구가 강하기 때문에 나타난다. 역으로 포기하는 성향도 덩달아 빨라진다. 스피드형 소유욕을 자극하고, 충족시켜야 제품이 팔리는 시대라는 얘기다.
속도전이 됐든, 모방할 수 없는 독특함을 갖춘 신상품이 됐든,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이런 경쟁이야말로 혁신의 원천이다. 따지고 보면 의류의 항공운송은 배송차원에서의 혁신이라고 할 수 있는 셈이다. 경영의 기본은 살아남기다. 살아남으려면 혁신은 필수다. 그런 면에서 혁신은 경영의 본질이라고 할 만하다. 그렇다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혁신을 하려면 리더가 제대로 판단하고, 구성원을 끌고 가면 되는 것일까. 아니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의견을 수렴하는 게 혁신의 속도를 오히려 높일 수 있는 것일까. 전자의 경우가 맞는 사례도 수두룩하고, 후자를 적용해 성공한 경우도 많다. 어느 게 정답이라고 할 수 없다. 다만 전자든 후자든 성공한 혁신에는 딱 한가지가 중요한 요소로 자리하고 있다. 공감이다. 공감없는 혁신은 없다.
망해가던 회사에서 전세계를 휘어잡는 회사로 우뚝선 유니클로의 혁신이 그걸 잘 보여준다. 유니클로에선 매장의 얘기가 곧바로 연구파트와 마케팅, 최고경영진까지 전달된다. 리더가 끌고 가는 게 아니라 상품을 고객에게 판매하는 현장의 목소리가 상품의 트렌드 변화를 이끈다는 얘기다. 위에서 속도를 지휘하는 게 아니라 아래에서 속도를 끌어올리는 시스템이다.
1980년대 나이키는 육상선수 출신 디자이너를 채용해 성공가도를 열었다. 제품 하나하나에 신발과 유니폼을 생명처럼 여기는 사람과 기업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반대 상황도 있다. 삼성전자의 갤럭시 노트7이 대표적이다. 갤럭시 노트7은 속도전의 전형이다. 혁신을 기반으로 한 상품인데 잘못된 혁신으로 고꾸라졌다. 소비자의 마음은 잘 읽었다. 좀 더 기발하고 사용하기 편한, 그러면서 디자인도 좋은 상품을 원하는 소비자의 욕구를 꿰뚫었다. 그러나 제품을 만드는 직원의 마음을 읽지 못했다. 아이폰을 비롯한 글로벌 휴대폰 회사와의 무한 경쟁에 이기기 위해 직원을 출시 시한에 쫓기게 했다. 윗선의 다그침에 출시일은 맞췄는데, 그게 대형 사고로 이어졌다.
기업의 성장전략을 컨설팅하는 점프 어소시에이츠를 설립한 데브 팻나이크(Dev Patnaik)는 미국 스탠포드대학에서 ‘니드 파인딩(need finding)’이란 수업을 진행하며, 학생에게 늘 ‘가죽구두 프로젝트(Moccasins project)’라는 과제를 냈다. 미국 인디언의 지혜를 벤치마킹한 수업과제다. 상대방의 가죽구두를 신고 1마일 이상 걷기 전에는 상대에 대한 평가를 하지 말라는 뜻이 담겨 있다. 팻나이크는 자신과 전혀 다른 사람과 시간을 보내면서 그들의 처지가 되라는 주문을 했다. 학생들은 외국인 노동자가 되기도 하고, 자동차 영업사원을 경험하기도 했다. 휠체어에 의지한 장애인이 되기도 하고, 남·녀의 성을 바꿔 살기도 했다. 팻나이크는 “다른 사람의 경험을 들여다보고, 그들이 겪은 상황을 우리 자신에게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이 모든 사람에게 있다. 우리가 그 능력을 활용할 수 있다면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던 놀라운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고경영자를 비롯한 경영진이 흔히 범하는 실수가 “다른 사람도 이런 생각을 하겠지”라는 착각에 빠지는 거다. 공감의 과정이 생략된다. 스스로 공감을 조작하기 때문이다.
때론 자신이 다 아는 듯한 우월감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각 부서에서 올라온 보고서를 하나하나 검토하다 보면 모든 업무를 다 파악한 듯한 늪에 빠질 수 있다. 각 부서장은 자신이 맡고 있는 부서의 업무를 보고하고, 대책을 내놓게 마련이다. 그러나 최고경영자는 다른 부서의 보고서도 봤으니 다른 해석을 내놓을 수 있다. 나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자신이 아주 뛰어난 듯 착각에 빠지기 딱 좋다. 이런 상황에 빠지면 혁신의 출발점인 직원과의 공감은 기대하기 힘들다. 스스로 생각에 갇혀 경영정책을 밀어붙이고, 그걸 혁신으로 포장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80여 년 전 데일 카네기(Dale Carnegie)는 “다른 사람이 너에게 관심을 갖도록 하려면 당신이 먼저 그 사람에 대해 진심어린 관심을 가져라”라고 했다(『인간관계론』). 리더십과 인적자원 관리, 인사시스템 등 사람을 중시하는 현대 경영학의 토대, 그게 공감이다.
김기찬 - 중앙일보 라이팅에디터·고용노동선임기자. 고려대에서 경영학 석사를 하고, 코리아텍에서 박사과정을 마쳤다. 한국인사관리학회 부회장(산학협동)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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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클로와 나이키의 혁신 사례
속도전이 됐든, 모방할 수 없는 독특함을 갖춘 신상품이 됐든,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이런 경쟁이야말로 혁신의 원천이다. 따지고 보면 의류의 항공운송은 배송차원에서의 혁신이라고 할 수 있는 셈이다. 경영의 기본은 살아남기다. 살아남으려면 혁신은 필수다. 그런 면에서 혁신은 경영의 본질이라고 할 만하다. 그렇다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혁신을 하려면 리더가 제대로 판단하고, 구성원을 끌고 가면 되는 것일까. 아니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의견을 수렴하는 게 혁신의 속도를 오히려 높일 수 있는 것일까. 전자의 경우가 맞는 사례도 수두룩하고, 후자를 적용해 성공한 경우도 많다. 어느 게 정답이라고 할 수 없다. 다만 전자든 후자든 성공한 혁신에는 딱 한가지가 중요한 요소로 자리하고 있다. 공감이다. 공감없는 혁신은 없다.
망해가던 회사에서 전세계를 휘어잡는 회사로 우뚝선 유니클로의 혁신이 그걸 잘 보여준다. 유니클로에선 매장의 얘기가 곧바로 연구파트와 마케팅, 최고경영진까지 전달된다. 리더가 끌고 가는 게 아니라 상품을 고객에게 판매하는 현장의 목소리가 상품의 트렌드 변화를 이끈다는 얘기다. 위에서 속도를 지휘하는 게 아니라 아래에서 속도를 끌어올리는 시스템이다.
1980년대 나이키는 육상선수 출신 디자이너를 채용해 성공가도를 열었다. 제품 하나하나에 신발과 유니폼을 생명처럼 여기는 사람과 기업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반대 상황도 있다. 삼성전자의 갤럭시 노트7이 대표적이다. 갤럭시 노트7은 속도전의 전형이다. 혁신을 기반으로 한 상품인데 잘못된 혁신으로 고꾸라졌다. 소비자의 마음은 잘 읽었다. 좀 더 기발하고 사용하기 편한, 그러면서 디자인도 좋은 상품을 원하는 소비자의 욕구를 꿰뚫었다. 그러나 제품을 만드는 직원의 마음을 읽지 못했다. 아이폰을 비롯한 글로벌 휴대폰 회사와의 무한 경쟁에 이기기 위해 직원을 출시 시한에 쫓기게 했다. 윗선의 다그침에 출시일은 맞췄는데, 그게 대형 사고로 이어졌다.
기업의 성장전략을 컨설팅하는 점프 어소시에이츠를 설립한 데브 팻나이크(Dev Patnaik)는 미국 스탠포드대학에서 ‘니드 파인딩(need finding)’이란 수업을 진행하며, 학생에게 늘 ‘가죽구두 프로젝트(Moccasins project)’라는 과제를 냈다. 미국 인디언의 지혜를 벤치마킹한 수업과제다. 상대방의 가죽구두를 신고 1마일 이상 걷기 전에는 상대에 대한 평가를 하지 말라는 뜻이 담겨 있다. 팻나이크는 자신과 전혀 다른 사람과 시간을 보내면서 그들의 처지가 되라는 주문을 했다. 학생들은 외국인 노동자가 되기도 하고, 자동차 영업사원을 경험하기도 했다. 휠체어에 의지한 장애인이 되기도 하고, 남·녀의 성을 바꿔 살기도 했다. 팻나이크는 “다른 사람의 경험을 들여다보고, 그들이 겪은 상황을 우리 자신에게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이 모든 사람에게 있다. 우리가 그 능력을 활용할 수 있다면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던 놀라운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혁신의 출발점은 직원과의 공감
때론 자신이 다 아는 듯한 우월감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각 부서에서 올라온 보고서를 하나하나 검토하다 보면 모든 업무를 다 파악한 듯한 늪에 빠질 수 있다. 각 부서장은 자신이 맡고 있는 부서의 업무를 보고하고, 대책을 내놓게 마련이다. 그러나 최고경영자는 다른 부서의 보고서도 봤으니 다른 해석을 내놓을 수 있다. 나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자신이 아주 뛰어난 듯 착각에 빠지기 딱 좋다. 이런 상황에 빠지면 혁신의 출발점인 직원과의 공감은 기대하기 힘들다. 스스로 생각에 갇혀 경영정책을 밀어붙이고, 그걸 혁신으로 포장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80여 년 전 데일 카네기(Dale Carnegie)는 “다른 사람이 너에게 관심을 갖도록 하려면 당신이 먼저 그 사람에 대해 진심어린 관심을 가져라”라고 했다(『인간관계론』). 리더십과 인적자원 관리, 인사시스템 등 사람을 중시하는 현대 경영학의 토대, 그게 공감이다.
김기찬 - 중앙일보 라이팅에디터·고용노동선임기자. 고려대에서 경영학 석사를 하고, 코리아텍에서 박사과정을 마쳤다. 한국인사관리학회 부회장(산학협동)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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