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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검사의 함정

특별검사의 함정

‘리크게이트’ 때처럼 원래 표적 벗어나 과용 부리면 국가적 재앙 불러… 트럼프-러시아 커넥션 수사 맡은 로버트 뮬러 특검도 그런 점 명심해야
리크게이트 때 임명된 패트릭 피츠제럴드 특검(오른쪽)은 프로답게 수사를 진행했지만 어쩌면 그 역시 과용했을지 모른다. / 사진·NEWSIS
어설픈 자전거 배달원인 체하는 법원 집행관이 식당에서 나오는 누군가에게 갑자기 다가가 소환장을 전달한다. 영화나 TV에선 대개 그런 식이다. 그러나 2004년 나의 경우엔 전혀 그처럼 극적이지 않았다. 당시 나는 지금과는 다른 공화당 백악관(조지 W. 부시 대통령)을 위협하는 특별검사의 수사 한 가운데 있었다.

그때 나는 먼저 미국 연방수사국(FBI)으로부터 정중한 전화를 받았다. 시사주간지 타임의 백악관 특파원으로 일할 때 내가 공동 집필한 기사와 관련해 몇 가지 질문에 답해줄 수 있느냐는 내용이었다. 나는 거부했다. FBI는 우리 잡지 모회사인 타임의 법률고문과 상의 끝에 소환장을 변호사에게 팩스로 전달했다. 아주 시시하게 말이다.

그러나 그 뒤에 일어난 일은 절대 시시하지 않았다. 나는 1년 이상 법정에서 타임과 함께 검사 측과 싸웠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기밀누설 스캔들(흔히 ‘리크게이트’라고 한다)에서 취재원과의 대화 내용을 밝히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 사건이 그렇게 불린 것은 전직 CIA 비밀요원 밸러리 플레임의 신분이 노출됐기 때문이다. 이라크전을 앞둔 2003년 7월 조셉 윌슨 전 이라크 대리대사가 “백악관이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관련 정보를 조작했다”고 폭로하자 부시 정부의 고위 관리들이 CIA 비밀요원이던 윌슨의 부인이던 플레임의 신분을 언론에 흘렸다.

비밀요원의 신분을 누출한 것이 중죄에 해당되며 미국의 안보에 피해를 주고 인명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주장되는 사건이었다. 사실 내가 직접 플레임의 신분을 누출한 건 아니었다. 그 일은 내가 이 사건에 관한 기사를 쓰기 전에 일어났다. 하지만 부시 백악관의 정치고문 칼 로브가 내게 그녀가 CIA 비밀요원이라는 사실을 알려줬다.

우리의 항소는 1년 이상 걸렸고 대법원까지 갔다. 그러나 대법원은 취재원 비밀유지 특권(변호사와 의사, 성직자의 권리와 유사하다) 때문에 취재원에 불리한 증언을 해선 안 된다는 우리의 논거를 들어주지 않았다. 한 항소 재판에서 나는 메모장에 ‘완전히 망했다’고 썼다. 결국 나는 대배심 앞에 서서 증언을 해야 했다.

리크게이트는 4년 동안 미국 정가를 휩쓸었고, 딕 체니 부통령의 비서실장이던 I 루이스 ‘스쿠터’ 리비가 그와 관련된 위증과 사법방해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나는 리비 전 비서실장의 재판에도 증인으로 불려갔다. 그는 부시 대통령의 사면령으로 징역형은 면했지만 한때 막강하던 참모에서 중죄 전과자로 전락했고 변호사 자격증까지 잃었다.

나는 취재원을 보호하기 위해 감옥에 갈 용의가 있었다. 다행히도 나의 취재원이던 리비와 로브가 비밀유지 조건으로 그들이 한 말에 관해 내가 증언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그것으로 끝날 줄 알았지만 그 뒤에도 나는 뉴욕타임스 신문의 1면에 상당히 오랫동안 이름이 올랐다. 심지어 워싱턴 D.C.의 연방법원 앞에서 CNN과 생방송으로 인터뷰도 했다.

지금 그때 이야기를 꺼낸 것은 지난해 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선출한 미국 대선에서 러시아의 개입 의혹과 관련해 현재 특별검사가 임명돼 진행 중인 수사처럼 그때도 특별검사가 리크게이트를 수사했기 때문이다. 리크게이트 때의 경험에 비춰 볼 때 나는 이번 특검의 수사가 상당히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칫하면 이 소용돌이에 휩쓸린 인사들만이 아니라 미국 전체가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는 타임이 그 엄청난 변호 비용을 댔기 때문에 운이 좋은 편이었다. 타임은 미국 최고의 변호사들을 고용했다. 언론의 자유를 보장한 미국 수정헌법 1조와 관련된 사건을 맡아 유명해진 플로이드 에이브럼스와 레이건 정부에서 법무차관을 지낸 테드 올슨(동성결혼 합법화 변론으로 대법원을 설득했다)이 대표적이었다. 타임은 나를 위해 화이트칼라 범죄 전문 변호사도 붙여줬다. 그러나 특별검사의 수사 대상이 되거나 나처럼 수사에 필요한 증인이 된 사람 중 다수는 재정적으로 파산하고 경력도 망칠 수 있다. 내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심적인 피해는 컸다. 특히 당시 여섯 살이던 아들에게 그 사건을 설명해야 하는 것이 너무도 가슴 아팠다.

그래도 개인적인 어려움은 어느 정도 감수할 수 있다. 그러나 특검 수사가 원래의 표적을 넘어서서 범법자를 찾아 계속 자가발전하면 국가 전체도 고통 받는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트럼프-러시아 커넥션 수사에선 ‘강직하다’는 칭찬이 자자한 로버트 뮬러 전 FBI 국장이 특별검사로 임명돼 우려가 덜 하지만 그래도 우리 모두 그런 점을 명심해야 한다. 신망 높은 법집행 전문가도 특별검사에 임명됐을 때 무리한 수사를 한 사례가 없지 않다.

트럼프-러시아 커넥션에 대한 수사를 이해하려면 워터게이트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 1972년 6월 러처드 닉슨 대통령의 재선을 위해 활동하던 집단이 워싱턴 D.C.의 워터게이트 빌딩에 있는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침입해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됐다. 워싱턴포스트 신문의 잇따른 특종 보도로 파문이 확산됐고, 결국 아치볼드 콕스가 특별검사에 임명돼 사건을 수사했다. 콕스 특검은 백악관 집무실 대화 내용이 녹음된 테이프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백악관에 녹음 테이프 복사본을 제출하라고 요구했지만 거부당했다. 그러면서 ‘토요일 밤의 대학살’이 시작됐다.

닉슨 대통령은 1973년 10월 20일 토요일 엘리엇 리처드슨 법무장관한테 특검 해임을 지시했다. 리처드슨 장관은 이를 거부하며 사임했다. 닉슨 대통령은 빌 러클즈하우스 부장관에게 특검 해임을 명령했으나 그 역시 이를 거부하고 사임했다. 그러자 닉슨 대통령은 로버트 보크 송무차관에게 명령해 결국 특검을 해임시켰다.

그러나 콕스의 후임인 리언 자워스키 특검이 대법원을 설득해 닉슨 백악관에 그 테이프를 제출토록 했다. 녹음된 대화 내용에서 닉슨 대통령의 사법 방해가 확실하다는 것이 입증됐다. 녹음 테이프에 따르면 1972년 백악관 대변인 론 지글러가 워싱턴포스트의 폭로 기사를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서 발생한 ‘삼류 절도사건’으로 일축한 지 며칠 뒤 닉슨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FBI는 “이 사건에서 손 떼라”고 말하라고 지시했다. 그로써 탄핵이 뻔해지자 닉슨은 더 버티지 못하고 하야했다.
최근 트럼프-러시아 커넥션 수사를 맡은 로버트 뮬러 특검(가운데)은 FBI 국장 재직 때 현직 대통령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아 신망이 높았다. / 사진·ZHANG JUN-XINHUA-NEWSIS
그 뒤 의회는 다시는 대통령이 특별검사를 해임하지 못하도록 장치를 마련하려고 고심했다. 그 결과가 1978년 제정된 공직자윤리법이었다. 법무부의 지휘를 받지 않는 ‘독립적 지위를 가진 특별검사’를 워싱턴 D.C.의 연방 항소법원 소속 판사 3명이 뽑는 것으로 규정한 법이었다. 그렇게 임명된 특검은 대통령에 의해 해임될 우려 없이 전적인 재량권을 갖고 수사에 임할 수 있었다.

몇몇 특별검사는 위임 받은 그 막대한 권한을 현명하게 사용했다. 예를 들어 레이건 정부 시절 방산업체 뇌물 수수에 관한 수사는 예리하고 명쾌하게 진행돼 기소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 수사를 맡은 특검은 현명하게도 놀라운 자제력을 보였다. 예를 들어 에드윈 미즈 법무장관을 포토라인에 세우라는 정치적인 압력에 굴하지 않고 재량권을 발휘해 그를 기소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특검들은 막대한 예산과 재량권으로 무모한 수사를 벌였다는 비난을 샀다.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 이란-콘트라 사건(미국 인질을 석방시키기 위해 이란에 무기를 공급한 스캔들)을 수사한 로렌스 월시 특별검사는 1992년 대선을 며칠 앞두고 캐스퍼 와인버거 전 국방장관을 위증 혐의로 기소했다. 그런 기소는 선거를 막판에 흔들어 공화당 대통령후보로 지명된 조지 H. W. 부시 부통령의 약진을 저지하려는 의도로 널리 인식됐다. 그러나 결국 그 기소는 공소시효 만료로 어이없이 기각됐다.

특검의 권한을 남용한 가장 끔찍한 사례는 케네스 스타였다. 그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아칸소 주에서 정치적으로 상승세를 타던 1970년대 그와 부인 힐러리 클린턴이 연루된 화이트워터 토지 거래 사건을 수사했다. 1992년 미국 대선과 클린턴 백악관 초기에 그들의 당시 투자가 도마에 올랐다. 연방 기관의 수사와 의회의 조사에선 클린턴 대통령의 불법행위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재닛 리노 당시 법무장관은 정치적 압력에 떠밀려 특별검사 임명을 연방 항소법원에 요청했다. 법원은 시행 착오 끝에 스타를 특검으로 임명했다.

스타 특검은 훌륭한 법률 전문가였지만 검사 경험이 없었다. 그런 사실이 그의 큰 약점이었다. 그는 클린턴 부부의 부동산 거래에서 한참 벗어나 광범위한 수사를 무리하게 밀어붙였다. 비판자들은 그를 빅트로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자베르 경감에 견줬다. 오로지 철두철미한 법집행에만 몰두해 빵 한 덩어리를 훔친 주인공 장발장을 수십 년 동안 끈질기게 뒤쫓는 인물이다. 하지만 자베르는 적어도 도난당한 빵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스타 특검은 클린턴 백악관의 법률고문이던 빈스 포스터의 자살 사건까지 파고들었고, 화이트워터 스캔들과 아무런 관련 없는 당시 아칸소 현직 주지사를 사건과 무관한 우편사기 혐의로 구속했다.

또 그는 아칸소 주정부 직원이던 폴라 존스가 빌 클린턴의 주지사 시절에 제기한 성희롱 사건에도 천착했다. 그 와중에 한 보수주의 행동가가 존스와 관련된 클린턴의 증언에 모니카 르윈스키에 관한 질문을 슬쩍 심었다. 백악관 인턴이었던 모니카 르윈스키가 1995~1996년 클린턴 대통령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고 말한 녹음파일에 관한 질문이었다. 클린턴은 1998년 1월 폴라 존스가 제기한 성추문 소송에서 “모니카 르윈스키와 성관계를 맺었느냐?”는 질문에 답변을 얼버무렸다. 그 위증이 결국 탄핵으로 이어졌다.

클린턴은 하원 전체 투표에서 탄핵안이 의결돼 벼랑 끝에 몰렸지만 상원에서 부결돼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했다. 그런 파동을 겪은 의회는 특별검사 임명을 규정한 공직자윤리법이 소멸되는 1998년 그 법을 연장하지 않았다. 스타도 나중에 자신에게 특검 권한을 위임해준 그 법이 “위헌 가능성이 있고 구조적으로 건전하지 못하다”고 인정했다.

공직자윤리법의 효력이 소멸되자 의회는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의 콕스의 경우처럼 법무부가 특검을 임명하는 예전의 시스템으로 돌아갔다. 2003년 시작된 리크게이트에서도 그랬다. 당시 워싱턴포스트의 보수파 칼럼니스트 로버트 노박이 자신의 칼럼에서 플레임이 CIA 비밀요원임을 공개했다. CIA가 발끈하며 법무부에 수사를 요청했다.

부시 정부 내부에서 플레임이 CIA 비밀요원이었다는 비밀을 누설한 것은 순전히 복수심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2002년 이라크전 직전 CIA는 플레임의 남편으로 전직 대사인 윌슨을 아프리카 중서부 국가 니제르에 파견했다.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이 핵무기 제조를 위해 ‘옐로케이크’로 불리는 우라늄 원광석을 구입하고 있다는 영국 측의 주장을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윌슨은 현지에서 아무런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이라크 침공의 명분을 찾던 부시 정부는 아프리카-후세인 커넥션을 계속 부풀렸다. 2003년 7월 윌슨은 부시 정부가 이라크 전쟁을 위해 정보를 왜곡한다고 신문에서 폭로했다. 그 보복으로 곧 그의 아내 플레임의 신분이 누설됐다.

민주당은 수사 대상인 정부가 수사를 진행할 수 없다며 특별검사를 임명하라고 부시 백악관을 압박했다. 법무장관이 사퇴하자 특검 임명은 법무 부장관의 몫이 됐다. 당시 법무 부장관은 제임스 코미였다. 코미는 그 후 FBI 국장을 맡아 최근 트럼프-러시아 커넥션 수사를 지휘하던 도중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해임됐다. 그 논란 많은 해임으로 이제 뮬러가 특검에 임명됐다.

리크게이트의 특검으로 임명된 패트릭 피츠제럴드는 프로답게 수사를 진행했고 너그러운 면도 있었다. 그는 사건에 휘말린 주디스 밀러 뉴욕타임스 기자와 내가 장기간 항소를 추진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그러나 어쩌면 그 역시 과용했을지 모른다. 피츠제럴드 특검은 신속히 플레임의 신분 누설자를 밝혀냈지만 악의가 없다며 기소하지 않기로 결론지었다. 그렇다면 그때 수사를 종료했어야 했다. 그러나 피츠제럴드 특검은 NBC 방송의 팀 러서트를 비롯해 기자 수십 명을 증인으로 법정에 세운 뒤 리비 전 부통령 비서실장만 기소했다. 리크게이트의 범죄 사실이 없다고 판단했다면 위증과 허위 진술에 관한 기소를 위해 나라 전체를 그토록 시끄럽게 만들고 그토록 많은 비용을 쓸 필요가 있었을까?

구속을 각오했던 나로선 그 질문에 편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물론 뮬러 특검의 수사가 트럼프 진영의 러시아 내통자를 밝혀낼 수 있다면 훌륭한 업적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 무관한 표적을 공략하기 위해 ‘보물찾기’에 나선다면? 제발 그런 혼란만은 없기를 바랄 뿐이다.

- 매튜 쿠퍼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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