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의 섬’ 제주
‘미식의 섬’ 제주
제주의 미식문화가 급격하게 달라지고 있다. 갈치조림·돔베고기·고등어회·몸국 등 비슷비슷한 메뉴를 팔던 제주가 더 이상 아니다. 청담동 닮은 파인 다이닝도 맛볼 수 있다. 최근 2~3년 사이 제주에는 다양한 식재료를 활용해 좀 더 과감한 실험을 하는 고급 식당들이 등장했다. ‘스시효’ 출신 임덕현 셰프가 2014년 제주시 오라동에 문을 연 ‘스시호시카이’는 제주를 대표하는 스시집으로 자리 잡았다. 워낙 사람이 많이 몰리는 통에 금~일요일은 식사 시간을 1, 2부로 나눠 운영할 정도다. 제주가 고향인 임덕현 셰프는 “남들이 못 쓰는 재료를 쓸 때 쾌감을 느낀다. 신선한 고등어뱃살이나 옥돔을 스시로 만들 수 있는 건 국내에선 제주밖에 없다”고 말했다.
2013년 제주시 한림읍에 문을 연 ‘모디카’는 제주를 대표하는 이탈리아 레스토랑이다. 이탈리아 요리학교 알마(ALMA)를 졸업한 이성우 오너셰프가 문어·달치 등 제주산 식재료로 만든 이탈리아 파인다이닝을 선보이고 있다. 이성우 셰프는 “제주도에 2~3일만 머물러도 음식이 단조롭게 느껴지는데, 괜찮은 이탈리아 레스토랑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 시작했다"며 “몸통에 검정 동그란 무늬가 있는 달치는 제주에서 많이 나는 생선으로, 지중해에서 나는 잔도르와 비슷해 이탈리아 요리에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2015년 해비치호텔 안에 문을 연 프렌치 파인다이닝 ‘밀리우’는 코스 가격이 8만9000원부터지만 금~일요일엔 예약 없이 자리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성황이다. 처음 오픈할 당시 “과연 손님이 있을까”라는 우려 섞인 시선을 받았다는 게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될 정도로 인기다.
이같은 파인다이닝 붐을 타고 서울 청담동에서나 볼 법한 고급 디저트 가게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르코르동블루 숙명아카데미 출신 박진선 셰프가 서귀포에 연 ‘더 심플’은 오후 3시면 빵을 살 수 없을 만큼 인기다.
제주도가 향토음식 일변도인 다른 숱한 지역과 차별화할 수 있던 이유는 사람이다. 2006년 저비용항공 취항으로 제주도를 찾는 관광객이 더 늘었다. 2010년 이후엔 아예 제주로 터전을 옮기는 이주민도 늘었다. 2009년 56만 명이던 제주 인구는 2010년 이주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2016년 현재 66만 명을 넘어섰다. 제주를 찾는 외부인이 늘면서 자연스레 새로운 요리에 대한 수요로 이어졌다. 이재천 해비치호텔 총주방장은 “제주를 제 집 드나들듯 자주 찾는 사람이 늘면서 향토음식을 넘어선 새로운 음식을 원하는 욕구가 커졌다”며 “셰프들도 이를 만족시키고자 노력하면서 미식 수준이 올라갔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파인 다이닝 흐름에는 제주만의 다양한 식재료가 한몫했다. 제주도는 바다와 산에서 나는 신선한 식재료를 활용해 고급 요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고 있다. 싱싱한 해산물뿐 아니라 말·흑우·흑돼지 같은 육류도 풍부하다. 따뜻한 기후 덕에 신선한 채소도 사시사철 즐길 수 있다. 특히 메밀·고사리·표고버섯은 전국에서 제주산을 최고로 칠 만큼 품질이 뛰어나다. 찾는 사람, 만드는 사람이 함께 만나면 수준 높은 미식세계가 만들어지는 법이다. 파인 다이닝 저변이 탄탄하게 자리 잡으면서 과거의 제주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초특급 이벤트도 가능해졌다. 지난 5월20일, 서귀포시 해비치호텔 그랜드 볼룸에서는 서울에서도 보기 드문 화려한 갈라디너가 성황리에 열렸다. 일본에서 2015년 36세의 최연소로 미쉐린(미슐랭) 3스타를 받은 ‘코하쿠’의 고이즈미 고지 셰프와 2013년 중식 셰프로는 가장 어린 나이인 38세에 미쉐린 3스타를 받은 아우 앨버트 홍콩 라이선F&B 총주방장, 서울 ‘두레유’의 유현수 오너셰프, 가로수길 디저트 카페 ‘소나’의 성현아 오너셰프, 그리고 이 호텔 이재천 총주방장이 갈라디너를 준비했다. 1인당 25만원이라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350석이 매진될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
외국 셰프들도 제주도의 식재료에 매료돼 감탄을 금치 못했다. 폴란드의 모던 퀴진 대표주자로 꼽히는 알렉산더 바론(34)은 “제주도엔 그 어떤 나라에서도 보기 힘들 만큼 신선한 해산물이 다양할뿐더러 말린 생선 등 재료 다루는 방법도 인상적이다”고 말했다. 바론은 폴란드 고유의 식재료에 김치 발효를 접목시켜 자신의 레스토랑에서 ‘김치’라는 메뉴를 내놓을 정도로 한국을 사랑하는 셰프다. 그의 김치는 고춧가루 듬뿍 넣은 한국식 빨간 김치는 아니지만 고추냉이나 겨자씨 등으로 맵고 알싸한 맛을 내 인기다. 바르샤바에서 ‘쏠레츠44’를 운영하는 바론셰프는 2014년 프랑스의 레스토랑 가이드 고에미요(Gault-Millau) 폴란드 편에서 올해의 젊은 셰프로 선정될 정도로 폴란드 셰프의 대표주자다. 미식의 섬 제주를 찾는 외국 셰프들의 발길이 늘 수 밖에 없다.
- 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13년 제주시 한림읍에 문을 연 ‘모디카’는 제주를 대표하는 이탈리아 레스토랑이다. 이탈리아 요리학교 알마(ALMA)를 졸업한 이성우 오너셰프가 문어·달치 등 제주산 식재료로 만든 이탈리아 파인다이닝을 선보이고 있다. 이성우 셰프는 “제주도에 2~3일만 머물러도 음식이 단조롭게 느껴지는데, 괜찮은 이탈리아 레스토랑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 시작했다"며 “몸통에 검정 동그란 무늬가 있는 달치는 제주에서 많이 나는 생선으로, 지중해에서 나는 잔도르와 비슷해 이탈리아 요리에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관광객 늘며 유학파 셰프들 과감한 실험
이같은 파인다이닝 붐을 타고 서울 청담동에서나 볼 법한 고급 디저트 가게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르코르동블루 숙명아카데미 출신 박진선 셰프가 서귀포에 연 ‘더 심플’은 오후 3시면 빵을 살 수 없을 만큼 인기다.
제주도가 향토음식 일변도인 다른 숱한 지역과 차별화할 수 있던 이유는 사람이다. 2006년 저비용항공 취항으로 제주도를 찾는 관광객이 더 늘었다. 2010년 이후엔 아예 제주로 터전을 옮기는 이주민도 늘었다. 2009년 56만 명이던 제주 인구는 2010년 이주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2016년 현재 66만 명을 넘어섰다. 제주를 찾는 외부인이 늘면서 자연스레 새로운 요리에 대한 수요로 이어졌다. 이재천 해비치호텔 총주방장은 “제주를 제 집 드나들듯 자주 찾는 사람이 늘면서 향토음식을 넘어선 새로운 음식을 원하는 욕구가 커졌다”며 “셰프들도 이를 만족시키고자 노력하면서 미식 수준이 올라갔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파인 다이닝 흐름에는 제주만의 다양한 식재료가 한몫했다. 제주도는 바다와 산에서 나는 신선한 식재료를 활용해 고급 요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고 있다. 싱싱한 해산물뿐 아니라 말·흑우·흑돼지 같은 육류도 풍부하다. 따뜻한 기후 덕에 신선한 채소도 사시사철 즐길 수 있다. 특히 메밀·고사리·표고버섯은 전국에서 제주산을 최고로 칠 만큼 품질이 뛰어나다.
“흥미로운 식재료 많아” 외국인 셰프도 매료
외국 셰프들도 제주도의 식재료에 매료돼 감탄을 금치 못했다. 폴란드의 모던 퀴진 대표주자로 꼽히는 알렉산더 바론(34)은 “제주도엔 그 어떤 나라에서도 보기 힘들 만큼 신선한 해산물이 다양할뿐더러 말린 생선 등 재료 다루는 방법도 인상적이다”고 말했다. 바론은 폴란드 고유의 식재료에 김치 발효를 접목시켜 자신의 레스토랑에서 ‘김치’라는 메뉴를 내놓을 정도로 한국을 사랑하는 셰프다. 그의 김치는 고춧가루 듬뿍 넣은 한국식 빨간 김치는 아니지만 고추냉이나 겨자씨 등으로 맵고 알싸한 맛을 내 인기다. 바르샤바에서 ‘쏠레츠44’를 운영하는 바론셰프는 2014년 프랑스의 레스토랑 가이드 고에미요(Gault-Millau) 폴란드 편에서 올해의 젊은 셰프로 선정될 정도로 폴란드 셰프의 대표주자다. 미식의 섬 제주를 찾는 외국 셰프들의 발길이 늘 수 밖에 없다.
- 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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