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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가 좌우할 쿠르디스탄의 운명

석유가 좌우할 쿠르디스탄의 운명

이라크 쿠르드 자치정부의 분리독립과 관련된 분쟁 중재 노력은 석유의 지정학적 측면 신중히 고려해야
지난 9월 이라크 아르빌에서 분리독립 투표가 종료된 후 자동차를 타고 쿠르드 깃발을 흔드는 시민. / 사진 : AP-NEWSIS
중동의 안정을 도모하려는 미국의 노력은 10년 이상 수많은 복잡한 문제에 발목이 잡혀 있다.

지난 9월 25일 이라크 쿠르드 자치정부(KRG) 지역에서 실시된 분리독립 찬반 투표도 그런 문제 중 하나다(결과는 압도적인 찬성이었다).

투표의 갑작스러운 강행과 그곳을 둘러싼 관련국들의 지정학적 움직임은 이 지역에서 미국이 극복해야 할 새로운 도전을 제기한다. 현재의 상황은 미국이 아무리 노련한 외교관을 내세워도 이 지역의 중요한 석유·천연가스 자산의 최종 분배와 관할권을 둘러싼 분쟁을 막는 데 번번히 실패했다는 사실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이라크의 쿠르드족 지역이 독립국가의 전제 조건을 갖췄다는 주장은 설득력 있다. 1920년 체결된 세브르 조약(제1차 세계대전 종전 후 프랑스의 세브르에서 연합국과 오스만 제국 사이에 조인된 강화조약)은 쿠르드족이 거주하는 이라크 북부 쿠르디스탄에 쿠르드 독립 국가를 세운다는 구상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이를 대체한 1923년의 로잔 조약엔 이런 내용이 빠지고 인위적 영토 구획에 의해 쿠르디스탄이 분할돼 터키·이란·이라크·시리아·아르메니아의 영토 일부로 강제 귀속됐다. 유전을 가진 강력한 쿠르디스탄이란 국가를 원치 않았던 서구와 자국 영토의 4분의 1이 잘려나가야 하는 터키의 강력한 반대로 쿠르드 독립안이 결국 무산된 것이다.

그러나 이제 KRG의 분리독립 투표로 인해 복잡한 변수가 더 많이 생겼다. 전문가들은 KRG의 투표 강행으로 이어진 복잡한 정치 상황을 분석하며 미국이 이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를 두고 갖가지 이론을 제시할 것이다. 그러나 분리독립 투표로 인해 발생하는 분쟁을 중재하려는 노력은 무엇보다 이 위기의 석유 지정학적 측면을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

문제는 이라크가 KRG 지역에서 터키를 통해 수출하는 석유(하루 50만~60만 배럴)가 세계 시장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점만이 아니다. 지금의 상황에선 그 정도 물량은 시간이 걸릴진 모르지만 궁극적으로 어떤 식으로든 대체될 수 있다.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오래 전부터 영유권을 다퉈온 지역에 위치한 키르쿠크 유전을 두고 대화를 통한 국제적인 해결을 위한 노력이 시도되기도 전에 정치·군사적 ‘사건’과 지역 지정학적 합종연횡의 변화가 최종 처리를 강요하게 되는 위험한 전례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키르쿠크 유전을 둘러싼 지역은 아랍인과 쿠르드족, 투르크멘족 등 다양한 민족집단이 거주한다. 일부 추정에 따르면 투르크멘족은 역사적으로 이라크 전체 인구의 약 8%를 차지했다. 그러나 사담 후세인이 이라크를 통치하는 동안 이 지역의 ‘아랍화(Arabization)’가 강요되면서 복잡한 민족 구성의 비율이 상당히 달라졌다. 이라크의 바트당 정권이 유전 지역을 더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실시한 정책의 결과였다. 이 지역은 1980년대 이라크 전체의 산유량인 하루 200만~250만 배럴 중 약 100만 배럴을 생산했다. 키르쿠크 유전의 석유 매장량은 약 90억 배럴로 추정된다.

그러다가 급진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2014년 이 지역의 석유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고 그해 6월 이곳에서 IS의 공격을 막던 이라크군의 방어선이 무너지면서 쿠르드족 페슈메르카 민병대가 개입해 유전 지역 대부분을 장악했다.
지난해 7월 이라크 키르쿠크의 바이하산 유전이 IS의 공격을 받아 연료탱크가 폭발했다. / 사진 : XINHUA-NEWSIS
키르쿠크 지역의 유전에서 생산되는 석유는 하루 약 40만 배럴로 그중 16만 배럴은 바바·잠부르·카바즈 유전에서 나온다. 그 3곳의 유전은 과거 이라크 국영업체 노스 오일이 관리했다.

그러나 이제 쿠르드족이 키르쿠크 지역 전체를 통제하면서 이 석유생산 자산이 장기적으로 어떻게 될지 불확실한 상황에 놓였다.

KRG는 오랫동안 말뿐이 아니라 행동으로도 키르쿠크 유전의 지배권을 주장했다. 엑슨모빌을 포함한 미국 석유회사들은 키르쿠크 내부와 주변 등 분쟁 중인 지역의 유전을 개발하기 위해 KRG와 탐사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그들의 지배권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그중에서 엑슨모빌이 KRG로부터 석유탐사를 승인 받은 바시카 구역이 IS에 점령당했다. 그 이래 엑슨모빌은 정치적·지질학적 어려움 둘 다를 감안해 이라크 북부의 여러 석유탐사 구역을 포기했다.

이라크 정부는 북부, 특히 키르쿠크 유전 지대가 이라크 중앙정부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이데르 알아바디 이라크 총리는 어쩔 수 없이 그 문제에 명운을 걸었다. 이제 그가 KRG 지역과 그 외 안바르·바스라 같은 석유·천연가스 생산 지역에 분리독립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할 수 없다면 이라크는 분열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라크 의회는 알아바디 총리에게 관할권을 다투는 지역에 보안군을 파견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최근 이 지역의 석유채굴 관할권을 재확보하려는 이라크 석유부는 IS가 퇴각하며 불지른 니네베 유전을 즉시 복구할 것을 노스 오일에 지시했다.

한편 터키는 지난 수년 동안 KRG의 석유·천연가스 산업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면서 수출 운송로를 제공했다. 그러나 최근 터키 내부의 정치 상황이 변하면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그런 입장을 취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지난 3월 터키 야당 민족주의행동당(MHP)의 데블렛 바흐첼리 대표는 이라크의 영토보전이 터키의 국가안보에 필수적이라며 키르쿠크의 영유권을 주장했다. “역사적으로 키르쿠크는 터키의 영토였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가장 영광스러운 터키 지역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KRG의 분리독립 투표에 좀 더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그는 KRG가 투표를 강행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며 경제 제재를 시사하는 데 그쳤다.
KRG의 분리독립 투표 직후 터키와 이라크군은 쿠르드 자치지역 부근인 터키 실로피에서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 사진 : AP-NEWSIS
물론 경고 차원에서 터키는 KRG 지역과 인접한 국경지대에서 이라크와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하지만 터키 정부는 KRG의 ‘생명줄’ 격인 터키의 세이한과 쿠르디스탄 인근 키르쿠크를 잇는 송유관을 폐쇄함으로써 쿠르드족의 석유 수출을 차단하겠다고 선언했으면서도 지금까지 그 위협을 실행에 옮기진 않았다. 그 수출이 터키 경제에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지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던 러시아도 최근 키르쿠크 유전의 장기적인 관할권을 둘러싼 논란에 뛰어들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측근으로 미국의 제재 대상에 지목된 이고르 세친이 운영하는 러시아 국영 석유회사 로스네프트는 KRG와 대규모 에너지 협력을 위한 협상에 속도를 내고 있다.

양측의 거래엔 키르쿠크 유전의 지분 확보, 키르쿠크와 세이한을 잇는 송유관 확장을 위한 투자, KRG 지역과 터키·유럽을 연결하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건설 등이 포함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6월 로스네프트는 KRG 지역의 5개 탐사 구역을 확보하고 하루 30만 배럴의 석유를 생산하는 계약을 위한 양해각서에 서명했다. KRG는 과거 노스 오일이 사업하던 지역을 포함해 아바나·바바·쿠르말라 유전의 개발도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스네프트는 재정난에 처한 KRG를 돕기 위해 30억 달러에 이르는 자본을 투입하는 백기사 역할도 맡았다. 여러 원유 무역회사들에 선불로 판매한 석유 대금 10억 달러에서 비롯된 부채를 갚아주기 위해서다. 글렌코어·비톨·트라피구라·페트라코 같은 회사들이 향후 석유 판매 대금을 바탕으로 KRG 재정에 차관을 제공했다. 그 석유는 스페인·그리스·독일·이탈리아·크로아티아에 수출됐다.

KRG의 연간 원유 판매 수입은 약 80억 달러로 추정된다. KRG의 석유 수출을 막으면 이처럼 많은 이해 당사자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은 국내·국제적 압력으로 어려운 입장에 처했다.

KRG 석유 문제에 로스네프트가 개입함으로써 KRG의 미래에 관한 협상은 더욱 복잡해졌다. 거기엔 러시아의 의도가 깔려 있다. KRG가 분리독립 투표를 강행함으로써 시리아의 쿠르드족이 평화협상에 협력할 인센티브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러시아 정부는 시리아의 평화협상을 회피할 편리한 구실을 갖게 됐다.

아울러 러시아는 터키에 압력을 가할 수단도 마련했다. 터키는 KRG와 에너지 부문에서 협력함으로써 러시아 의존도를 줄이려 한다. 지난 수년 동안 터키 정부는 KRG의 석유·천연가스 수출경로가 되기 위해 재정과 기술을 지원했다. 그러나 마수드 바르자니 KRG 수반이 터키에 과도하게 의존함으로써 치러야 하는 대가가 너무 큰 것으로 드러났다. 따라서 KRG는 터키보다 러시아에 석유자산을 판매하면 이라크를 포함한 중동 국가들이 KRG에 대한 제재를 추진하려 할 때 유엔 안보리에서 러시아의 지지를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쿠르드족의 석유 수출을 차단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지금까지 그 위협을 실행에 옮기진 않았다. / 사진 : AP-NEWSIS
이처럼 꼬일대로 꼬인 지정학적 문제를 풀려면 정교한 기술과 인내심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상황이 이란 쪽에 불리하게 돌아가면 이란은 페슈메르가의 키르쿠크 지배에 맞서기 위해 현지 시아파 민병대를 지원할 수 있다.

이란도 나름대로 우려가 크다. 자국에 거주하는 쿠르드족이 670만 명으로 이란 전체 인구의 거의 10%에 육박한다. KRG의 분리독립 투표에 가장 먼저 거부반응을 보인 나라도 이란이었다. 이란은 KRG의 수도격인 아르빌로 오가는 모든 항공편 운항을 중단하고 KRG와의 국경을 폐쇄했다.

다시 말해 러시아는 로스네프트를 통해 쿠르드족 문제와 관련해 터키와 이란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수단을 확보했다. 또 앞으로 러시아는 터키만이 아니라 남부 유럽의 주요 국가들에 대한 석유·천연가스 수출에서도 과거의 역할을 되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터키·이란·시리아와 인접한 산유 지대로서 키르쿠크가 갖는 전략적 요소는 남수단이나 리비아 군벌에 의한 국소적 군사행동을 촉발한 경제적 갈등 요소보다 훨씬 중요하다. 영유권 분쟁이 벌어지는 다른 산유 지역의 관계자들도 키르쿠크의 운명을 예의 주시한다. 그들은 자신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는 단서를 찾기 위해 KRG를 향한 미국과 유엔의 대응을 면밀히 살필 것이다. 미국은 국가 기능을 상실한 지역에서 석유 판매 수입을 적절히 분배하기 위한 어려운 셔틀 외교를 오랫동안 미뤄왔다.

그 결과 리비아를 비롯해 여러 지역에서 상황이 악화됐다. 이제 KRG의 분리독립 운동을 계기로 앞으로 지속가능한 선례를 만들기 위해 미국이 노력을 배가해야 할 시점이다. 이라크 재건 초기에 현지의 석유 수입을 지역적인 인구 규모에 따라 분배한다는 원칙은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거부됐다. 개인적인 견해지만 그 때문에 이라크의 국가 정체성을 재확립하려는 전체적인 실험이 실패한 듯하다.

KRG와 이라크 정부가 실행가능한 방안을 찾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선 석유자원 관리와 수입분배 문제가 완전히 해결돼야 한다. 그 과정은 최종 검토 결과에 따라 배당금이나 현재의 수입분배 방식을 지속하는 것이 포함된 구속력 있는 협상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석유 자산의 관할권을 둘러싼 분쟁을 외교적으로 만족스럽게 해결하지 못한 결과 지금까지 이 지역의 모든 사람이 피해를 입었다. 중동 전역의 민병대는 산유 지대만 장악하면 정부의 권위에 도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지금까지 그런 분쟁의 과정에서 시리아와 예멘, 리비아의 석유·천연가스 산업이 붕괴했다.

이제 미국은 키르쿠크의 미래 결정에서 좀 더 적극적인 외교를 펼쳐야 한다. 그래야 과거보다 더 나은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 미국이 외교적인 노력과 시간을 충분히 투자하면 이라크와 KRG만이 아니라 석유 수입과 유전 관할권을 둘러싸고 분쟁이 벌어지는 중동의 다른 지역에도 장기적으로 혜택이 돌아갈 수 있다.

키르쿠크의 미래가 외교적으로, 평화적으로 결정된다면 다른 산유 지대도 생산적인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평화적으로 현명한 해결책을 찾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얘기가 아니라 그런 방향으로 추구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는 뜻이다.



※ [필자는 미국 외교협회(CFR) 에너지 안보·기후변화 프로그램 책임자다. 이 글은 CFR 웹사이트에 먼저 실렸다.]- 에이미 마이어스 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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