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vs KAI 회계부정 공방] 수사에 몸 낮춘 KAI 법정서는 다를 수도
[검찰 vs KAI 회계부정 공방] 수사에 몸 낮춘 KAI 법정서는 다를 수도
회계·방산 전문가들 “검찰 주장 무리수” ... 수리온 프로젝트 관련 감사원 감사결과도 뒤집혀 지난 10월 17일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 수리온 상륙 기동헬기와 T-50 고등훈련기가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이곳에서 열린 아덱스(ADEX) 즉 ‘서울 국제항공우주 및 방위산업전시회’ 개막 시범 비행을 위해서였다. 그동안 시범 비행의 선두주자는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의 몫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생산한 국산헬기와 고등훈련기가 첫 테이프를 끊었다.
이를 지켜본 KAI 임직원들의 마음은 참으로 복잡했을 듯하다. 감사원은 수리온을 결함투성이 헬기로 규정했다. 군 전력화 중단을 요구하기까지 했다. 수리온을 양산하면서 KAI가 547억원의 부당 이득을 챙겼다고도 밝혔다. 방위사업청은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라 KAI에게 대금을 일부 지급하지 않았고, 회사는 소송을 냈다. 감사 결과로 보면 수리온은 결함과 부당 이득으로 점철된 헬기다. 그런데 버젓이 문재인 대통령과 해외 국방부 고위 관계자들의 박수를 받으며 시범 비행에 나섰다. T-50은 검찰 수사에 따르면 원가(原價) 사기 비행기다. KAI가 원가를 부풀려 방위사업청에 납품한 고등훈련기다. 지난 2011년 KAI는 국산 비행기 사상 최초로 해외 수출(인도네시아) 계약을 했다. 이후 여러 나라에 수출했다. 검찰은 인도네시아 수출 가격보다 방사청 납품가격이 높았기 때문에 원가를 속였다고 판단했다. 정부를 상대로 원가 사기를 친 T-50에 대해 문 대통령은 “10년 간 23억 달러 이상 해외에서 판매됐다”며 “고등훈련기 성능과 가격 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치켜세웠다. KAI 고위 관계자들에게는 “17조원 규모 미국 고등 훈련기 프로젝트를 꼭 수주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미 훈련기 프로젝트는 국내 방산 업계에서는 물론 세계적 관심사다. KAI는 록히트마틴과 손잡고 보잉 컨소시엄(보잉+사브)과 치열한 수주경쟁을 벌이고 있다. 만약 KAI가 이 프로젝트를 따낸다면 납품가격은 어느 정도나 될까. 해외 수출 물꼬를 트기 위해 인도네시아에 전략적으로 특별히 싸게 공급했다는 KAI의 설명은 검찰에 먹히지 않았다. 검찰이 공개적으로 인도네시아 가격이 정상가격이라고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덱스 개막 일주일 전 검찰은 KAI에 대한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제목은 ‘KAI 회계부정 사건 중간 수사결과’다. 이로 보건대, 검찰이 생각하는 사건 포인트는 분식회계다.
발표자료에 따르면 KAI의 회계부정은 크게 두 가지다. 협력업체에 지급한 선급금을 이용해 4년 반 동안 매출과 이익을 크게 부풀렸다. 또 하나는 원가 부풀리기다. 그러나 검찰 발표 직후부터 회계 업계나 방산 업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법정에서 다툼의 여지가 큰 사안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간단하게 가상의 예를 들어보면 이렇다. KAI 협력 업체 가운데 한화테크윈이 있다. 미국 GE의 기술 지원을 받아 항공엔진을 만드는 곳이다. KAI가 T-50 10대를 만들어 방사청에 납품하기로 했다. 그리고 한화테크윈에 엔진 10대를 발주했다. KAI처럼 수주해 오랫동안 제작·납품하는 기업은 이른바 ‘진행기준’으로 매출과 이익을 산정한다. KAI는 방사청으로부터 총 100억원(프로젝트 총매출)을 받기로 했다. 납품 기간은 3년이다. 그렇다면 해마다 사업 진행률에 따라 당기 매출을 인식하면 된다. 예컨대 첫 해 사업 진행률이 40%라면 프로젝트 총매출의 40%에 해당하는 40억원이 첫 해의 매출이 된다. 둘째 해 진행률이 30%라면 매출은 30억원이 되는 식이다.
그렇다면 진행기준에서는 사업 진행률이 중요하다. 진행률은 이 프로젝트의 총예정원가 대비 당기에 투입한 원가의 비율로 계산한다. T-50 프로젝트에 들어갈 총예정원가가 80억원으로 예상된다고 하자. 첫 해에 실제로 32억원이 투입됐다. 그러면 진행률은 40%다. 첫 해 매출이 40억원, 투입원가는 32억 원이니까 이익은 8억원으로 계산된다.
이런저런 가변 요소들을 배제하면,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진행기준 회계에서는 당기투입원가가 증가하면 진행률이 높아진다. 진행률이 높아지면 당기매출이 증가한다. 진행률이 높아지면 원가증가분보다 매출증가분이 더 크기 때문에 이익이 늘어난다
KAI 협력 업체에 대한 선급금은 무엇이 문제였을까. KAI는 과거에는 협력 업체에 선급금을 지급하면 선급금 전액을 프로젝트 원가에 바로 반영했다. 예를 들어 한화테크윈으로부터 엔진 10대(총 10억원)를 발주한 후 선급금으로 3억원을 지급했다. 그러면 이 3억원을 프로젝트 당기원가에 바로 반영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올해 금융감독원은 KAI에 대한 감리 과정에서 선급금을 협력 업체의 진행율에 맞춰 원가반영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그래서 KAI는 국내 부품 협력 업체들로부터 자체 진행률 자료를 다 제출받았다. KAI가 한화테크윈으로부터 엔진제작 진행률에 대한 자료를 받아보니 진행률이 50%라고 하자. 그렇다면 선급금으로 5억원을 줬더라도 그 절반인 2억 5000만원만 프로젝트 당기원가에 반영해야 한다. 원가반영금액이 감소하면 진행율도 낮아진다. 따라서 매출인식금액도 감소한다. KAI는 모든 국내 협력 업체들로부터 진행률 자료를 수거해 과거 선급금 회계처리를 모두 수정했다.
또 하나, 프로젝트 총예정원가에 대한 회계처리 방법도 바꿨다. 과거에는 해마다 프로젝트들에 대한 리스크를 회사가 주관적으로 적극 반영했다. 이익을 보수적으로(낮게) 인식해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리스크가 가시적으로 명확하게 드러날 때 즉시 반영하는 식으로 변경했다. 이렇게 해서 2013년~2016년, 그리고 2017년 상반기 재무제표를 모두 수정했다. 그리고 외부감사인인 삼일회계법인의 재감사를 거쳐 과거 재무제표에 대한 정정공시를 했다. 수정 후 누적 매출은 소폭 줄었지만 이익은 오히려 늘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수정 전 누계 매출은 10조 3329억원이지만, 수정 후 정정매출은 10조2979억원이다. 과거 재무제표에서는 4년 반 동안 350억원이 많이 계상됐다. 수정 전 누계 영업이익은 8864억원이지만, 수정 후에는 9599억원으로 정정됐다. 과거 재무제표에서는 영업이익이 오히려 734억원이 적게 계상됐다. 순이익도 427억원 적게 계상됐다.
그런데 이번 검찰수사 결과에서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매출을 5358억원이나 부풀렸고, 순이익 역시 465억원 과대계상했다는 것이 검찰 발표 내용이다. 왜 회사 및 삼일회계법인의 재감사 결과와 검찰조사 결과 간 차이가 이렇게까지 크게 날까. 검찰은 KAI와 삼일회계법인이 올해 변경 적용한 선급금 회계처리방식(협력 업체 진행률 조사방식)조차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선급금을 ‘입고기준’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예를 들어보자. 한화테크윈이 엔진을 최종 완성해 KAI에게 납품한 대수, 즉 입고물량만을 프로젝트원가에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엔진 2대를 납품받았다면 KAI는 대당 1억원씩 총 2억원만을 원가처리해야 맞다는 이야기다. 과거 처리방식(원가 5억원 반영)과 정정진행률방식(2억5000만원) 간에는 2억 5000만원의 차이가 발생한다. 하지만 검찰 말대로 입고기준으로 하면 과거 처리방식과 입고기준 간에 3억원의 차이가 난다. 입고기준으로 하면 그만큼 프로젝트 진행률이 더 떨어지기 때문에 매출인식금액도 더 줄어들어야 한다. 검찰은 KAI의 과거 방식과 입고기준 간 차이를 고려해 5358억원의 매출과 465억원의 이익 부풀리기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다.
회계 업계와 방산 업계 전문가들 가운데는 이 점에 대해 쉽게 수긍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협력 업체의 생산라인에 걸쳐있는 재공품이나 대기 중인 원자재에도 선급금이 투입됐을 터인데, 완성납품물량 기준으로만 진행률을 산정하는 것이 타당한가? 이들은 의문을 제기한다. 검찰은 전임 하성용 사장이 경영 실적을 과시해 자신의 위상을 강화하고 공적 기업을 사유화하려는 목적에서 매출 조작을 자행했다고 밝혔다.
최근 수년 간 KAI의 연간 매출은 2조5000억원~3조원대에 이른다. 검찰 발표액을 적용하면 KAI는 연간 1000억원 남짓(5% 안팎)의 매출을 조작했다. 연간 영업이익은 2000억~3000억원 수준이다. 검찰 발표를 대입하면 연간 100여억원(5% 안팎)의 이익을 부풀린 셈이 된다. 이 정도 수준의 분식회계로 경영실적을 과대포장하고 공적 기업을 사유화하려 했겠느냐는 지적이 있다.
T-50 고등훈련기 원가 부풀리기 역시 재판이 진행되면 KAI와 검찰 간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할 가능성이 크다. KAI는 2011년 인도네시아와 최초로 T-50 해외 수출 계약을 했다. 사상 처음으로 국산 항공기를 수출하는 기록을 세웠다. 완성기를 인도한 것은 2013년. 방산 전문가들에 따르면, 당시 KAI는 론치 커스터머(launch customer) 즉 최초의 해외 발주자를 잡기 위해 엄청나게 공을 들이고 있었다. 가격 경쟁력이 급선무라고 보고 국내외 협력 업체들에게 부품가격을 최대한 낮춰줄 것을 요청했다. 이윤을 거의 안 남기는 수준으로 수출하더라도 일단 첫 물꼬를 트면 추가 발주나 다른 국가에 대한 수출로 이익을 낼 수 있다는 것이 경영진의 판단이었다. 전문가들은 기본적으로 국내 방산원가와 수출원가는 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방산가격은 옵셋(offset) 프로그램이나 워런티(품질보증) 기간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A국 정부가 B국의 C기업에 건설이나 방산 프로젝트를 발주할 때 C기업에게 기술 이전, 교육훈련, 관련 시설 제공, 고용 창출과 같은 형식의 역투자를 요구하는데, 이게 옵셋 프로그램이다. 옵셋이나 워런티 내용에 따라 공급가격은 달라진다. T-50 인도네시아 수출분은 옵셋이나 워런티 부담이 적어 공급가격이 낮아진 측면도 있다고 한다. 또한 이윤없이 수출하더라도 T-50 프로젝트에서 발생하는 고정비(일반 관리 인력 인건비 등) 부담을 경감시키는 효과도 고려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한마디로 인도네시아 저가 수출은 추가 수출과 수출국 다변화로 미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이야기다. 전문가들은 “인도네시아를 상대로 KAI가 싸게 공급했다기보다는 국내외 부품 협력 업체들이 KAI에게 싸게 공급해 준 것이며, KAI는 가격 경쟁력을 기반으로 수출을 성사시킨 셈”이라고 설명했다.
검찰은 그러나 국내 공급가격이 높았다는 이유로, 방사청을 속여 원가를 부풀렸다고 판단했다. 2012년~2017년 상반기까지 6년 반 동안 부풀린 원가로 편취한 금액이 129억원이다. 연 20억원 수준이다. 원가 부풀리기가 있었다면 편취금액의 최대 수혜자는 협력 업체다. KAI는 정말로 연 20억원을 편취할 목적으로 원가 부풀리기를 했을까. 언뜻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이다. 지난 10월 23일 서울중앙지법에서는 방사청을 상대로 KAI가 제기했던 물품대금 청구소송에 대한 1심 판결이 있었다. KAI가 협력 업체를 이용해 547억원의 부당 이득을 챙겼다는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라 방사청은 KAI에게 수리온 헬기 양산대금을 일부 정산하지 않았다. 1심 판결은 감사원 감사 결과의 타당성을 판단하는 자리였다. 법원은 KAI의 손을 들어줬다. 감사 결과가 뒤집힌 것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수리온 헬기 개발 및 양산에 참여한 협력 업체 A사가 있다. A사는 자신이 맡은 부품에 대해 개발 투자를 한다. 개발한 부품은 양산단계에서 KAI에 납품한다. KAI는 양산기간에 걸쳐 A사로부터 부품 100개를 2만원에 납품받는다. 이 2만원이라는 가격에는 A사가 부품개발에 투입한 개발비용이 포함돼 있다. 그러니까 A사는 개발에 들어간 비용을 이렇게 납품 단계에서 KAI로부터 보전받는다.
그럼, 수리온 프로젝트 총괄 업체인 KAI의 입장에서 보자. 방사청은 프로젝트 총원가(개발 및 양산과 관련한 총원가)에 일정 이윤을 더해서 KAI에게 원가보상을 해주는 식으로 거래한다. 예를 들어 수리온 프로젝트라면 총원가(크게 봐서 제조원가+판매관리비)에 적정마진(예컨대 10%)을 붙인 금액을 방사청이 지급한다는 이야기다. KAI는 A사 부품을 사는 데 들어간 2만원을 자신의 제조원가 항목에 산입한다. 방사청이 정한 방산원가보상규칙에 따른 것이다. 이 2만원 가운데 일정 비율(예를 들어 5%인 1000원)을 KAI는 자신의 판매관리비에다 추가로 얹는다. 이렇게 계산한 총원가(제조원가+판관비)에 방사청이 보장하는 일정 이윤을 붙인 금액을 KAI는 지급받는다.
KAI는 왜 제조원가(협력 업체로부터 매입한 부품구매비용)의 일정 비율을 다시 판매관리비에다 추가하는 것일까. A사로부터 납품받은 부품에 결함이 생겨 양산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1차적으로 양산 총괄 업체인 KAI가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양산이 지연되면 그에 대한 지체 비용 또한 KAI 부담이다. 리스크를 떠안고 관리하는 대가를 보상받는 셈이다. 이런 방산원가산정과 보상규칙은 방사청 규정에 따른 것이고, KAI와 방사청이 법률 검토 등을 거쳐 합의한 것이다. 그런데 감사원이 이것을 문제 삼았다. A사가 부품값으로 2만 원만 받게 처리하면 될 것을 왜 KAI가 제조원가에 반영하고 다시 일정 비율을 판관비에 추가 포함하느냐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21개 협력 업체와의 거래에서 540억원을 부당하게 방사청으로부터 받아냈다는 것이 감사 결과였다. 법원은 그러나 KAI가 방사청과 합의한 계약방식이 옳다고 판단했다. 양산에 대한 KAI의 책임과 권한을 인정한 셈이다.
한 가지가 더 있다. 수리온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에어포스 헬리콥터사에게 기술료가 지급됐다. 기술료는 방산원가규칙에 따라 제조원가 항목에 산입된다. 이것 역시 마찬가지다. KAI는 기술료 가운데 일정 비율을 판매관리비에 포함시켰다. 기술 이전 과정과 기술관리에 대한 책임이 온전히 KAI에게 있기 때문이다. 감사원은 이에 대해서도 역시 기술료만 보상하면 되는데, 판관비에도 추가로 얹는 것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법원은 그러나 이 역시 KAI의 주장이 옳다고 판단했다.
KAI의 장성섭 부사장은 지난 10월 19일 서울공항 아덱스 행사장에서 열린 ‘2017 항공기 포럼’에서 그간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개발 초기 일부 결함 때문에 방산비리 업체로 낙인 찍힌 것에 대해 참담한 심정이었다고 말했다. 수리온 헬기가 감사원 감사 결과 때문에 졸지에 ‘깡통헬기’급으로 추락한 것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는 그러나 검찰수사 결과와 관련해서는 몸을 낮췄다. 그는 “검찰 수사결과를 존중하고 투명경영 체계를 갖추겠다”며 “그동안과 관행이 맞는지 다시 확인하고 고쳐나가겠다”고 밝혔다. 서울공항에서 언급한 검찰수사에 대한 평가는 이랬다. 그러나 막상 재판정에서는 달라질 것이다. 회계부정에 대한 KAI의 입장은 강경해질 가능성이 있다. 적어도 회계부정에서만큼은 검찰과 각을 세울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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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지켜본 KAI 임직원들의 마음은 참으로 복잡했을 듯하다. 감사원은 수리온을 결함투성이 헬기로 규정했다. 군 전력화 중단을 요구하기까지 했다. 수리온을 양산하면서 KAI가 547억원의 부당 이득을 챙겼다고도 밝혔다. 방위사업청은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라 KAI에게 대금을 일부 지급하지 않았고, 회사는 소송을 냈다. 감사 결과로 보면 수리온은 결함과 부당 이득으로 점철된 헬기다. 그런데 버젓이 문재인 대통령과 해외 국방부 고위 관계자들의 박수를 받으며 시범 비행에 나섰다. T-50은 검찰 수사에 따르면 원가(原價) 사기 비행기다. KAI가 원가를 부풀려 방위사업청에 납품한 고등훈련기다. 지난 2011년 KAI는 국산 비행기 사상 최초로 해외 수출(인도네시아) 계약을 했다. 이후 여러 나라에 수출했다. 검찰은 인도네시아 수출 가격보다 방사청 납품가격이 높았기 때문에 원가를 속였다고 판단했다. 정부를 상대로 원가 사기를 친 T-50에 대해 문 대통령은 “10년 간 23억 달러 이상 해외에서 판매됐다”며 “고등훈련기 성능과 가격 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치켜세웠다. KAI 고위 관계자들에게는 “17조원 규모 미국 고등 훈련기 프로젝트를 꼭 수주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대통령도 극찬한 수리온·T-50 고등훈련기
아덱스 개막 일주일 전 검찰은 KAI에 대한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제목은 ‘KAI 회계부정 사건 중간 수사결과’다. 이로 보건대, 검찰이 생각하는 사건 포인트는 분식회계다.
발표자료에 따르면 KAI의 회계부정은 크게 두 가지다. 협력업체에 지급한 선급금을 이용해 4년 반 동안 매출과 이익을 크게 부풀렸다. 또 하나는 원가 부풀리기다. 그러나 검찰 발표 직후부터 회계 업계나 방산 업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법정에서 다툼의 여지가 큰 사안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간단하게 가상의 예를 들어보면 이렇다. KAI 협력 업체 가운데 한화테크윈이 있다. 미국 GE의 기술 지원을 받아 항공엔진을 만드는 곳이다. KAI가 T-50 10대를 만들어 방사청에 납품하기로 했다. 그리고 한화테크윈에 엔진 10대를 발주했다. KAI처럼 수주해 오랫동안 제작·납품하는 기업은 이른바 ‘진행기준’으로 매출과 이익을 산정한다. KAI는 방사청으로부터 총 100억원(프로젝트 총매출)을 받기로 했다. 납품 기간은 3년이다. 그렇다면 해마다 사업 진행률에 따라 당기 매출을 인식하면 된다. 예컨대 첫 해 사업 진행률이 40%라면 프로젝트 총매출의 40%에 해당하는 40억원이 첫 해의 매출이 된다. 둘째 해 진행률이 30%라면 매출은 30억원이 되는 식이다.
그렇다면 진행기준에서는 사업 진행률이 중요하다. 진행률은 이 프로젝트의 총예정원가 대비 당기에 투입한 원가의 비율로 계산한다. T-50 프로젝트에 들어갈 총예정원가가 80억원으로 예상된다고 하자. 첫 해에 실제로 32억원이 투입됐다. 그러면 진행률은 40%다. 첫 해 매출이 40억원, 투입원가는 32억 원이니까 이익은 8억원으로 계산된다.
이런저런 가변 요소들을 배제하면,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진행기준 회계에서는 당기투입원가가 증가하면 진행률이 높아진다. 진행률이 높아지면 당기매출이 증가한다. 진행률이 높아지면 원가증가분보다 매출증가분이 더 크기 때문에 이익이 늘어난다
KAI 협력 업체에 대한 선급금은 무엇이 문제였을까. KAI는 과거에는 협력 업체에 선급금을 지급하면 선급금 전액을 프로젝트 원가에 바로 반영했다. 예를 들어 한화테크윈으로부터 엔진 10대(총 10억원)를 발주한 후 선급금으로 3억원을 지급했다. 그러면 이 3억원을 프로젝트 당기원가에 바로 반영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올해 금융감독원은 KAI에 대한 감리 과정에서 선급금을 협력 업체의 진행율에 맞춰 원가반영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그래서 KAI는 국내 부품 협력 업체들로부터 자체 진행률 자료를 다 제출받았다. KAI가 한화테크윈으로부터 엔진제작 진행률에 대한 자료를 받아보니 진행률이 50%라고 하자. 그렇다면 선급금으로 5억원을 줬더라도 그 절반인 2억 5000만원만 프로젝트 당기원가에 반영해야 한다. 원가반영금액이 감소하면 진행율도 낮아진다. 따라서 매출인식금액도 감소한다. KAI는 모든 국내 협력 업체들로부터 진행률 자료를 수거해 과거 선급금 회계처리를 모두 수정했다.
또 하나, 프로젝트 총예정원가에 대한 회계처리 방법도 바꿨다. 과거에는 해마다 프로젝트들에 대한 리스크를 회사가 주관적으로 적극 반영했다. 이익을 보수적으로(낮게) 인식해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리스크가 가시적으로 명확하게 드러날 때 즉시 반영하는 식으로 변경했다. 이렇게 해서 2013년~2016년, 그리고 2017년 상반기 재무제표를 모두 수정했다. 그리고 외부감사인인 삼일회계법인의 재감사를 거쳐 과거 재무제표에 대한 정정공시를 했다. 수정 후 누적 매출은 소폭 줄었지만 이익은 오히려 늘었다.
검찰의 전혀 다른 잣대
그런데 이번 검찰수사 결과에서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매출을 5358억원이나 부풀렸고, 순이익 역시 465억원 과대계상했다는 것이 검찰 발표 내용이다. 왜 회사 및 삼일회계법인의 재감사 결과와 검찰조사 결과 간 차이가 이렇게까지 크게 날까. 검찰은 KAI와 삼일회계법인이 올해 변경 적용한 선급금 회계처리방식(협력 업체 진행률 조사방식)조차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선급금을 ‘입고기준’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예를 들어보자. 한화테크윈이 엔진을 최종 완성해 KAI에게 납품한 대수, 즉 입고물량만을 프로젝트원가에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엔진 2대를 납품받았다면 KAI는 대당 1억원씩 총 2억원만을 원가처리해야 맞다는 이야기다. 과거 처리방식(원가 5억원 반영)과 정정진행률방식(2억5000만원) 간에는 2억 5000만원의 차이가 발생한다. 하지만 검찰 말대로 입고기준으로 하면 과거 처리방식과 입고기준 간에 3억원의 차이가 난다. 입고기준으로 하면 그만큼 프로젝트 진행률이 더 떨어지기 때문에 매출인식금액도 더 줄어들어야 한다. 검찰은 KAI의 과거 방식과 입고기준 간 차이를 고려해 5358억원의 매출과 465억원의 이익 부풀리기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다.
회계 업계와 방산 업계 전문가들 가운데는 이 점에 대해 쉽게 수긍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협력 업체의 생산라인에 걸쳐있는 재공품이나 대기 중인 원자재에도 선급금이 투입됐을 터인데, 완성납품물량 기준으로만 진행률을 산정하는 것이 타당한가? 이들은 의문을 제기한다. 검찰은 전임 하성용 사장이 경영 실적을 과시해 자신의 위상을 강화하고 공적 기업을 사유화하려는 목적에서 매출 조작을 자행했다고 밝혔다.
최근 수년 간 KAI의 연간 매출은 2조5000억원~3조원대에 이른다. 검찰 발표액을 적용하면 KAI는 연간 1000억원 남짓(5% 안팎)의 매출을 조작했다. 연간 영업이익은 2000억~3000억원 수준이다. 검찰 발표를 대입하면 연간 100여억원(5% 안팎)의 이익을 부풀린 셈이 된다. 이 정도 수준의 분식회계로 경영실적을 과대포장하고 공적 기업을 사유화하려 했겠느냐는 지적이 있다.
T-50 고등훈련기 원가 부풀리기 역시 재판이 진행되면 KAI와 검찰 간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할 가능성이 크다. KAI는 2011년 인도네시아와 최초로 T-50 해외 수출 계약을 했다. 사상 처음으로 국산 항공기를 수출하는 기록을 세웠다. 완성기를 인도한 것은 2013년. 방산 전문가들에 따르면, 당시 KAI는 론치 커스터머(launch customer) 즉 최초의 해외 발주자를 잡기 위해 엄청나게 공을 들이고 있었다. 가격 경쟁력이 급선무라고 보고 국내외 협력 업체들에게 부품가격을 최대한 낮춰줄 것을 요청했다. 이윤을 거의 안 남기는 수준으로 수출하더라도 일단 첫 물꼬를 트면 추가 발주나 다른 국가에 대한 수출로 이익을 낼 수 있다는 것이 경영진의 판단이었다.
방사청과 법률 검토 거친 내용인데…
한마디로 인도네시아 저가 수출은 추가 수출과 수출국 다변화로 미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이야기다. 전문가들은 “인도네시아를 상대로 KAI가 싸게 공급했다기보다는 국내외 부품 협력 업체들이 KAI에게 싸게 공급해 준 것이며, KAI는 가격 경쟁력을 기반으로 수출을 성사시킨 셈”이라고 설명했다.
검찰은 그러나 국내 공급가격이 높았다는 이유로, 방사청을 속여 원가를 부풀렸다고 판단했다. 2012년~2017년 상반기까지 6년 반 동안 부풀린 원가로 편취한 금액이 129억원이다. 연 20억원 수준이다. 원가 부풀리기가 있었다면 편취금액의 최대 수혜자는 협력 업체다. KAI는 정말로 연 20억원을 편취할 목적으로 원가 부풀리기를 했을까. 언뜻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이다. 지난 10월 23일 서울중앙지법에서는 방사청을 상대로 KAI가 제기했던 물품대금 청구소송에 대한 1심 판결이 있었다. KAI가 협력 업체를 이용해 547억원의 부당 이득을 챙겼다는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라 방사청은 KAI에게 수리온 헬기 양산대금을 일부 정산하지 않았다. 1심 판결은 감사원 감사 결과의 타당성을 판단하는 자리였다. 법원은 KAI의 손을 들어줬다. 감사 결과가 뒤집힌 것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수리온 헬기 개발 및 양산에 참여한 협력 업체 A사가 있다. A사는 자신이 맡은 부품에 대해 개발 투자를 한다. 개발한 부품은 양산단계에서 KAI에 납품한다. KAI는 양산기간에 걸쳐 A사로부터 부품 100개를 2만원에 납품받는다. 이 2만원이라는 가격에는 A사가 부품개발에 투입한 개발비용이 포함돼 있다. 그러니까 A사는 개발에 들어간 비용을 이렇게 납품 단계에서 KAI로부터 보전받는다.
그럼, 수리온 프로젝트 총괄 업체인 KAI의 입장에서 보자. 방사청은 프로젝트 총원가(개발 및 양산과 관련한 총원가)에 일정 이윤을 더해서 KAI에게 원가보상을 해주는 식으로 거래한다. 예를 들어 수리온 프로젝트라면 총원가(크게 봐서 제조원가+판매관리비)에 적정마진(예컨대 10%)을 붙인 금액을 방사청이 지급한다는 이야기다. KAI는 A사 부품을 사는 데 들어간 2만원을 자신의 제조원가 항목에 산입한다. 방사청이 정한 방산원가보상규칙에 따른 것이다. 이 2만원 가운데 일정 비율(예를 들어 5%인 1000원)을 KAI는 자신의 판매관리비에다 추가로 얹는다. 이렇게 계산한 총원가(제조원가+판관비)에 방사청이 보장하는 일정 이윤을 붙인 금액을 KAI는 지급받는다.
KAI는 왜 제조원가(협력 업체로부터 매입한 부품구매비용)의 일정 비율을 다시 판매관리비에다 추가하는 것일까. A사로부터 납품받은 부품에 결함이 생겨 양산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1차적으로 양산 총괄 업체인 KAI가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양산이 지연되면 그에 대한 지체 비용 또한 KAI 부담이다. 리스크를 떠안고 관리하는 대가를 보상받는 셈이다. 이런 방산원가산정과 보상규칙은 방사청 규정에 따른 것이고, KAI와 방사청이 법률 검토 등을 거쳐 합의한 것이다.
검찰 수사결과 존중한다지만…
한 가지가 더 있다. 수리온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에어포스 헬리콥터사에게 기술료가 지급됐다. 기술료는 방산원가규칙에 따라 제조원가 항목에 산입된다. 이것 역시 마찬가지다. KAI는 기술료 가운데 일정 비율을 판매관리비에 포함시켰다. 기술 이전 과정과 기술관리에 대한 책임이 온전히 KAI에게 있기 때문이다. 감사원은 이에 대해서도 역시 기술료만 보상하면 되는데, 판관비에도 추가로 얹는 것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법원은 그러나 이 역시 KAI의 주장이 옳다고 판단했다.
KAI의 장성섭 부사장은 지난 10월 19일 서울공항 아덱스 행사장에서 열린 ‘2017 항공기 포럼’에서 그간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개발 초기 일부 결함 때문에 방산비리 업체로 낙인 찍힌 것에 대해 참담한 심정이었다고 말했다. 수리온 헬기가 감사원 감사 결과 때문에 졸지에 ‘깡통헬기’급으로 추락한 것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는 그러나 검찰수사 결과와 관련해서는 몸을 낮췄다. 그는 “검찰 수사결과를 존중하고 투명경영 체계를 갖추겠다”며 “그동안과 관행이 맞는지 다시 확인하고 고쳐나가겠다”고 밝혔다. 서울공항에서 언급한 검찰수사에 대한 평가는 이랬다. 그러나 막상 재판정에서는 달라질 것이다. 회계부정에 대한 KAI의 입장은 강경해질 가능성이 있다. 적어도 회계부정에서만큼은 검찰과 각을 세울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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