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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트윗도 대통령기록물?

트럼프의 트윗도 대통령기록물?

막말과 오타로 문제돼 삭제되거나 수정된 그의 글도 책임을 묻거나 후세 위해 보관돼야 한다는 지적 나와
아메리카온라인(AOL)의 PC용 인스턴트 메신저 AIM이 이 세상에서 사라질 수 있다면 트위터에도 그런 일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또 만약 트위터가 없어진다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기록물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까?

한때 AIM은 세계의 디지털 통신을 지배했다. 2001년 전체 인터넷 사용자가 1억4000만 명이었을 때 AIM 사용자는 1억 명에 이르렀다. 온라인에 접속한 사람의 71%가 AIM을 사용했다는 얘기다. 오늘날 전체 온라인 접속자 32억 명 중 페이스북 사용자는 20억 명이다(62.5%). 그처럼 왕년에 AIM은 페이스북보다 훨씬 영향력이 컸던 디지털 통신 플랫폼이었다.

그래서 AIM의 종말이 더욱 비상한 관심을 끈다. AOL은 AIM의 서비스를 12월 15일까지만 제공한다고 발표했다. AOL을 인수한 버라이즌이 거의 맥박도 잡히지 않는 AIM의 생명유지 장치를 떼어낸다는 뜻이다. 기술 산업의 ‘안락사’인 셈이다.

우리는 흔히 막연하게 페이스북·구글·트위터, 또는 새로 떠오르는 슬랙 등 오늘날의 거대한 디지털 통신 플랫폼이 이 세상 끝까지 우리 곁에 남아 있으리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AIM의 소멸을 보면 우리는 다른 플랫폼도 얼마든지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기술은 끊임없이 변한다. 우리의 습관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늘 새로운 뭔가를 찾아 계속 이동한다. 그러다 보면 오래 전 세계를 지배했던 플랫폼이 서글퍼 보이기 시작한다. 과거 인기 있었던 나이트클럽이 지금은 초라한 열성팬 몇몇 외엔 텅 빈 채 언제 문을 닫을지 고민하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 잘 나가는 모든 SNS에도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고, 또 언젠가는 반드시 종말을 맞을 것이다.

우리는 디지털 플랫폼이 이전에도 사그라드는 것을 목격했다. SNS 초창기에 선풍을 일으킨 프렌드스터(Friendster)는 말레이시아를 기반으로 하는 소셜게임 플랫폼으로 개조돼 한때 아시아에서 그런데로 성공을 거뒀지만 지금은 ‘휴식을 취하는 중’(프렌드스터 웹사이트에 그렇게 나와 있다)이다. 그러나 AIM처럼 중요한 의미를 갖던 플랫폼이 완전히 사라진 적은 없었다. 따라서 AIM의 종말을 지켜보면 디지털 시대의 통신과 그것이 남길 유산에 관한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특히 지금 미국에선 대통령이 ‘트위터의 대가’이기 때문이다.우리가 디지털 플랫폼을 사용할 때 과연 어떤 것이 그냥 연기처럼 사라져야 하고 어떤 것이 역사(또는 사법 당국)를 위해 보존돼야 할까? 그 답은 대화(conversation)와 서신(correspondence) 사이의 미묘한 차이에 놓여 있을지 모른다. 인류 대다수에게 대화의 수명은 아주 짧다. 입을 통해 나오는 말은 공기를 통해 이동한 뒤 상대방의 귀로 들어가 그 말을 들은 사람의 기억에만 보존된다. 그래도 전혀 문제가 없다. 그것이 우리가 수천 년 동안 의사소통을 해온 방식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미국 국립기록물보관소는 트럼프 대통령이 삭제하거나 수정하는 트윗도 보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사진:TWITTER
그렇다면 우리가 온라인 메신저의 대화창에 입력해 주고받는 메시지도 대화일까? 스냅챗의 공동창업자 에반 스피겔은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는 처음부터 스냅챗을 ‘남아 있지 않는’ 대화를 위한 플랫폼으로 내세웠다. 스냅챗으로 친구와 주고받은 메시지는 전부 곧바로 사라진다. 술집에서 친구와 만나 수다를 떨 때와 마찬가지다. 주고받는 메시지를 저장하거나 마케팅을 위한 데이터 수집에 사용되지 않도록 만들었다는 뜻이다. 스피겔은 과거 어느 인터뷰에서 “스냅챗은 누군가 엿볼 수 있다는 섬뜩함이 없는 서비스를 지향한다”고 말했다. 원래 누드 사진을 보내기 위해 사용된 앱을 만든 사람이 하는 말치고는 좀 기이하게 들리지만 말이다.

아무튼 스냅챗은 대화의 비밀을 보장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AIM도 주고 받는 메시지를 대화로 취급하는 쪽을 지향했다. 물론 주고 받는 메시지를 사용자가 자신의 PC에 저장할 수는 있었지만(당시엔 우리가 스마트폰이 아니라 컴퓨터에서만 채팅을 했다) AOL은 자사 서버에 그 데이터를 보관하지 않았다. 따라서 AIM이 서비스를 중단하면 지금까지 거기서 이뤄졌던 모든 대화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게 된다. 예를 들자면 2001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AIM을 사용해 딕 체니 부통령과 농담을 주고 받았는지 알 길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서신은 감성의 측면에서 대화와 다르다. 이전엔 주로 편지를 의미했다. 대화보다 좀 더 신중하고 의도적이다. 그런 메시지는 서랍이든, 공공 도서관이든 데이터 센터든 어디든지 보관될 수 있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페이스북은 우리가 입력하는 모든 것(메신저로 주고 받는 내용만이 아니라 댓글도 포함된다)을 ‘대화’로 취급하지 않는다. 모든 문자 메시지가 저장되고 분석된다는 의미다. 페이스북의 인공지능(AI)은 그 데이터를 사용해 사용자의 습관과 취향을 파악하고 광고주가 표적을 정하도록 돕는다. 우리 사회에 등장한 새로운 기술이다. 지금 우리는 그런 서비스가 과연 괜찮은지 갈수록 심각하게 고민한다.

우리가 대통령에 관해 얘기할 때 특히 그 차이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대통령이 서신을 이용할 때 그 내용은 일반적인 대화와 완전히 달리 취급된다. 미국의 경우 1978년 제정된 대통령기록물법(Presidential Records Act,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관련 범죄 증거를 인멸할 수 없도록 의회가 통과시켰다)은 대통령이 재임 중 쓰거나 창작한 모든 것을 보관해야 한다고 엄격히 규정한다.

만약 미국의 차기 대통령이 트럼프와 달리 트위터 외에 다른 앱도 사용할 줄 안다면 무엇이 사라지는 대화로 간주되고 무엇이 보존돼야 할까? 예를 들어 어떤 미국 대통령이 국무장관에게 스냅챗으로 영국의 테레사 메이 총리를 토끼로 묘사하는 패러디 사진을 보여준다고 치자. 스냅챗을 사용했기 때문에 정상적이라면 그 내용은 보관되지 않고 사라진다. 그러나 대통령의 메시지이기 때문에 그것도 기록으로 남겨야 하지 않을까? 이제 정책 입안자들은 그런 점을 결정해야 할 것이다.미국 정부는 대규모 디지털 플랫폼이 국가안보에 필수적인지도 따져봐야 한다. 지금 AIM은 사용자가 약 100만 명으로 줄었다. 커피를 끓여 내리는 기계나 회전식 다이얼 전화기처럼 AIM을 아쉬워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한번 생각해보라. 만약 러시아나 중국이 주요 미국 SNS 플랫폼을 인수한다면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할 것인가?

AIM의 소멸을 생각하면 우리는 지금 인기 있는 SNS도 얼마든지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 사진:AP-NEWSIS
페이스북의 기업가치가 하락한다면(지금 우리는 페이스북이 미국을 망치고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어쩌면 러시아의 올리가르히(국가의 후원을 받는 신흥재벌)가 그 플랫폼을 인수할지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러시아가 그 데이터에서 찾을 수 있는 저명인사들의 치부를 상상해보라. 한참 논란 많았던 트럼프 대통령의 ‘골든 샤워’ 테이프 정도는 촌스러워 보일 것이다(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기 전 러시아 호텔에서 매춘부들을 불러 추잡한 행동을 한 동영상을 러시아 정부가 갖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지만 트럼프는 트위터를 통해 ‘가짜뉴스’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걱정은 중국이 트위터를 사들여 서비스 중단을 위협함으로써 트럼프 정부 전체를 굴복시킬지 모른다는 것이다. 트위터가 인수 불가능할 정도로 비싼 것도 아니다. 트위터의 기업가치는 157억 달러다. 세계 반도체 시장 4위 브로드컴이 3위 업체 퀄컴을 인수하겠다며 제시한 1050억 달러에 비하면 별 것 아니다.

디지털 역사가 사라질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고려하면 보존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강해질 수밖에 없다. 미국 드레이크대학의 지적재산법 교수 숀타비아 존슨은 “트윗이 동맹 파기나 새로운 정책 등의 반응을 일으키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면 미국 역사는 그 기록을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3월 미국 국립기록물보관소의 데이비드 페레이로 소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삭제하거나 수정하는 트윗도 보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다음날인 지난 1월 21일 트위터에 “제45대 미국 대통령으로 위대한 미국인들을 섬기게 되어 영광(I am honered to serve you, the great American People. as your 45th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라는 글을 남겼다. 문장 중 단어 ‘honered’는 맞춤법이 틀린 채였다. 곧이어 ‘honored’라고 수정했지만 이를 둘러싼 지적이 이어지자 아예 그 글 자체를 삭제해 버렸다. 다른 예로 그는 지난 3월 그는 트위터에서 자신이 독재자인양 정적에 대한 수사를 촉구했다가 곧 삭제했다. “낸시 펠로시 하원 원내대표는 러시아와 긴밀한 관계에 있으면서도 거짓말을 했다. 이에 난 민주당의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에 이어 그녀에 대한 수사도 요구한다(I hear by demand a second investigation, after Schumer, of Pelosi for her close ties to Russia, and lying about it).” 여기서도 ‘hereby’를 ‘hear by’로 틀리게 적었다.

SNS 플랫폼들이 앞으로 어떻게 되든 미래 세대는 지금보다 더 훌륭한 지도자를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위안을 준다.

- 케빈 메이니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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