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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차르’인가 ‘레임덕’인가

‘21세기 차르’인가 ‘레임덕’인가

러시아 대선에서 4선에 성공한 푸틴, 중국 시진핑 주석처럼 영구 집권의 길 마련할지가 관건
지난 3월 18일 러시아 대선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76%가 넘는 득표율을 기록하며 압승을 거둬 4선에 성공했다. / 사진:AP-NEWSIS
선거 한참 전부터 러시아의 집권여당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대승’을 당연시했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 3월 18일 러시아인은 투표소에 나가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4번째 임기에 재선출했다. 러시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개표 결과 발표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76%가 넘는 득표율을 기록하며 압승을 거뒀다. 이로써 푸틴은 ‘24년 집권’의 길을 열었다. 그러면서 일각에선 그가 ’21세기의 차르’로 영구 집권을 꿈꾸는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다.

이번 러시아 대선에서 엄밀히 말하자면 그의 경쟁 상대가 있긴 했다. 푸틴 외에 7명의 후보가 나섰다. 그중엔 34세의 리얼리티 TV 스타 출신도 있었다(그녀는 “돈이 손에 들어오면 의상 구입에 전부 다 쓴다”고 말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TV 매체는 거의 전부 엄격한 크렘린의 통제 아래 있고, 반부패 운동가이자 영향력 큰 야권 지도자인 알렉산드르 나발니는 출마를 금지당해 푸틴 외에는 어느 후부도 10% 이상의 지지를 얻지 못할 것으로 예상됐다.

실제로 푸틴 대통령은 인기가 매우 높다. 아울러 그의 정부 전체는 그가 현실보다 더 대단한 인물로 보이도록 만들기 위해 언제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태세가 돼 있다.

바로 거기에 역설이 있다. 한편으로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의 민주적 절차를 ‘관리’할 권리가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한다.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는 민주주의의 과시적 요소를 유지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쓴다. 겉보기라도 형식은 갖춰야 한다는 의지가 강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가 지금까지 지지해온 바로 그 헌법이 규정하는 제한에 따라 그에겐 이번 선거가 마지막이 돼야 한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푸틴 대통령을 ‘신’에 견주며 “정치적 올림포스 신전의 지도자”라고 불렀다. 하지만 러시아 헌법이 3연임을 허용하지 않아 푸틴 대통령은 6년이라는 긴 임기를 남겨두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보면 이미 ‘레임덕’이 돼버린 상황이다.
지난 3월 3일 모스크바의 루즈니키 스타디움에 모여 러시아 국가를 제창하는 푸틴 대통령 지지자들. / 사진:AP-NEWSIS
푸틴은 이전에도 똑같은 장애물을 우회한 적 있다. 2000년 처음 대통령에 선출된 그는 4년 임기를 연임했다. 당시 러시아 헌법이 허용한 한계였다. 두 번째 임기가 끝나가자 그가 물러나기로 동의할지 아니면 헌법에 저항해 권좌를 계속 유지할지를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졌다.

푸틴은 그 두 방안을 전부 외면하고 절묘하게도 제3의 길을 택했다. 그는 당시 총리였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를 대통령으로 지지하기로 했다. 자신이 총리가 되는 조건이었다. 자신의 개인적인 힘을 섬뜩할 정도로 확신할 뿐더러 놀라울 정도로 장기적인 정치 비전을 가진 사람만이 선택할 수 있는 도박이었다.

당시 대다수 정치 전문가는 법률가 출신인 메드베데프가 대통령에 취임하면 푸틴과 거리를 둘 것이라고 추측했다. 메드베데프는 젊고 현대적이며 좀 더 민주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그는 트위터와 페이스북 계정을 개설하고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사용했다. 2010년 미국을 국빈으로 방문했을 땐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함께 햄버거 가게에 들러서 그곳 손님들과 악수한 뒤 오바마와 감자튀김을 나눠 먹기도 했다.

그러나 푸틴은 막후에서 계속 실권을 휘둘렀다. 특히 메드베데프가 향후 대통령 임기를 4년에서 6년으로 연장하는 헌법 개정을 추진한 데서 푸틴의 영향력이 확연히 느껴졌다. 메드베데프가 대통령 임기를 마친 2012년 푸틴은 다시 그 자리를 되찾았다. 겉보기로는 민주주의 원칙을 전혀 위반하지 않고 기발하게 임기를 연장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그런 ‘미끼 전략’은 한 번은 몰라도 두 번은 성공하기 어렵다. 이제 푸틴은 마지막 남은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나면 71세가 된다. 1인자 자리를 양보하고 보조 역할을 맡기엔 나이가 너무 많다. 말을 잘 듣는 대리인을 찾기도 힘들다. 대통령에서 내려온 뒤 총리를 계속 맡아온 메드베데프가 또다시 고분고분 협조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도 없다.

물론 푸틴은 마음만 먹으면 중국의 예를 따를 수 있다. 지난 3월 11일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는 국가주석의 임기를 ‘2기 10년’으로 제한하는 조항을 삭제한 헌법 개정안을 압도적 찬성 다수로 가결했다. 3연임 금지 조항을 뺀 개헌안 채택으로 시진핑 국가주석 겸 당 총서기는 장기에 걸쳐 정권을 이어갈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이번 중국의 개정 헌법은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에 이어 세 번째로 시진핑 주석의 이름을 얹은 ‘지도 사상’을 명기해 그의 권위와 위상을 한껏 높여 ‘1인 체제’를 다질 수 있게 했다. 이로써 집단지도 체제와 10년마다 지도부 교대의 틀을 만든 덩샤오핑의 유지가 반영된 1982년 제정 헌법은 사실상 시진핑이 독단적으로 만든 ‘시진핑 헌법’으로 바뀌었다. 시 주석은 중국을 세계를 이끌 ‘막강한 국가’로 만드는 ‘중국몽’의 실현을 위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개헌 취지를 설명했다. 이제 시 주석은 당·정·군을 완전히 장악해 ‘시 황제’ 시대를 예고했다.
러시아 야당 좌파전선은 푸틴 대통령이 압승한 이번 대선 결과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 사진:AP-NEWSIS
그와 비슷하게 푸틴 대통령도 러시아를 위한 자신의 비전을 노골적으로 밝혀왔고 ‘강하고 위대한 러시아’를 만들려면 정치적 안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선거를 앞두고 ‘강한 대통령, 강한 러시아’라는 푸틴의 선거운동 슬로건이 러시아 전역의 광고판에 나붙었다. 얼마 전 방영된 푸틴 찬양 다큐멘터리 ‘세계질서 2018’도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은 중국의 시 주석보다 민주주의의 과시적 요소를 유지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 서방 분석가들은 푸틴이 민주적 정치 절차에 쏟는 노력을 보면서 혼란스러워 한다. 그런 절차를 언제든 막후에서 조종할 수 있다는 비민주적인 아이디어와 공존하기 때문이다. 선거운동을 엄격히 통제하고 영향력 큰 야권 지도자의 입에 재갈을 물렸을 뿐 아니라 국민의 일치단결을 보여주기 위해 투표율이나 결과가 과장됐을 수도 있지만 아무튼 푸틴 대통령은 언제나 “러시아와 러시아 국민의 이익을 지키는 등불”이 되겠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언제나 이런 주장을 선거라는 민주적인 절차와 연결시켰다. 아무리 연출된 볼거리라고 해도 말이다.

그러나 시 주석에 대한 러시아 언론의 공식 반응을 보면 크렘린은 만약 푸틴 대통령이 헌법의 임기 제한을 없애는 결정을 내린다고 해도 그 역시 독재적이 아니라 민주적으로 보이도록 노력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러시아 국영 RIA 통신은 시 주석에 관한 기사에서 ‘한 사람의 손에 권력이 과도하게 집중되는 현상’을 예방하는 주석임기 제한을 폐기하기로 한 결정에 관해 유감의 뜻을 비치는 듯했다. 그러나 그 기사는 곧이어 시 주석의 목표가 역사적 발전의 중요한 시점에서 국가를 보호하는 것이라고 논했다. 또 친정부 성향의 신문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는 시 주석이 ‘개인적 야심’에서가 아니라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그런 결정을 내렸다고 옹호했다.

RIA 통신은 또 러시아를 중국에 견주며 지도자의 권력 강화는 탐욕스러운 엘리트층의 부패를 척결할 필요성에 의해 정당화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 기사에 따르면 러시아와 중국은 둘 다 엘리트층 부패의 급속한 증가, 스스로 ‘아무도 건드릴 수 없다’고 생각하는 파벌들의 부상, ‘조국보다 서방이 더 좋다’고 느끼는 부유층의 증가와 싸운다.

푸틴은 불평하는 엘리트층을 상대로 ‘큰일당하지 않으려면 내 말을 잘 따르라’고 쉽게 ‘설득하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알려졌다. 미국 마이애미대학의 캐런 다위샤부터 프린스턴대학의 스티븐 코트킨까지 저명한 러시아 전문 학자들은 푸틴 대통령이 현재 막강하고 일사불란한 ‘도둑정치’를 이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러시아 현지에서 나오는 이런 언론 보도는 크렘린이 부유층의 충성심을 두고 불안해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미국 언론인들은 푸틴 대통령에 대한 반대의 조짐을 풀뿌리에서 찾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러시아에선 중대한 정치적 변화가 언제나 위(지배층)에서부터 시작됐다는 사실을 잘 잊는다.

예를 들어 1917년 2월의 러시아 혁명도 민중 봉기가 아니라 귀족 엘리트층 집단이 무능한 니콜라이 2세보다 동생이 낫다고 판단하고 그를 설득해 하야시키려는 시도에서부터 발생했다. 역사의 절묘한 아이러니 중 하나에서 그 동생은 선거를 통하지 않은 권력을 단호히 거부했다. 그에 따라 로마노프 왕조를 보존하기 위해 필사적이던 귀족들이 뜻하지 않게도 오히려 그 왕조의 종말을 부르게 됐다. 소련의 붕괴도 당시 연방 아래 있던 러시아의 대통령인 보리스 옐친이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의 지도자들을 몰래 만나 소비에트연방과 그 지도자인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기로 결정한 뒤 이뤄졌다.

시 주석의 개헌에 관한 크렘린의 반응은 러시아의 유력한 부유층에 막후 음모를 꾸미지 말라고 경고하는 느낌이 강하다. 그들 중 일부는 실제로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대선 직전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의 독자 다수는 온라인 댓글에서 중국의 주석임기 제한 폐지 결정을 지지했다. 한 은퇴자는 이렇게 적었다. ‘우리도 이제 그렇게 해야 할 때가 됐다. 푸틴 외에 다른 후보가 선거에서 승리한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다. 그들은 미국의 꼭두각시로 우리 나라를 미국에 갖다 바칠 것이다.’

- 신시아 후퍼



※ [필자는 미국 홀리크로스대학 역사학 부교수다. 이 글은 온라인 매체 컨버세이션에 먼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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