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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내세균이 기분도 좌우한다

장내세균이 기분도 좌우한다

우리 몸의 모든 부위만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느낌에도 영향 미친다는 증거 발견돼
장내세균은 뇌부터 뼈까지 우리 몸의 모든 부분과 관련돼 있으며 심지어 생각과 기분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 사진:GETTY IMAGES BANK
우리 장내에 서식하는 미생물(박테리아) 군집은 참으로 놀랍다. 뇌부터 뼈까지 우리 몸의 모든 부분만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느낌, 심지어 체중을 줄이려는 결심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수조 마리로 구성된 이 미생물군의 세계를 생물학자들은 ‘마이크로바이오타(microbiota)’라고 부른다. 이 미생물군은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과 마시는 음료를 소화시키는 소화관 속에 서식한다. 그래서 흔히 ‘장내세균’이라고 칭한다.

우리는 이런 장내세균이 비만부터 정신병, 심장병에 이르기까지 우리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해왔다. 예를 들어 이런 미생물은 우리가 어떤 음식을 먹고 싶어 하고 우리 몸이 어떻게 지방을 축적하는지에 개입해 비만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최근의 장내세균 연구에서 우리는 이 박테리아군이 우리의 신경계만이 아니라 전혀 예상치 않았던 골수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지 확인하고자 했다. 장내세균과 우리 몸의 여러 부위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을 정확히 이해하면 다양한 질병의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식도·위·소장·대장·결장을 아우르는 소화관은 우리 몸을 외부 세계로부터 보호하는 제1차 방어선이자 그 사이의 가장 넓은 인터페이스다. 아기가 태어나면 인간으로서의 삶에 환경과 음식이 영향을 미치는 첫 관문이 바로 이 소화관이다. 따라서 장내세균은 평생 동안 우리 몸의 면역체계를 발전시키고 유지하는 데 기여함으로써 인간의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과학자들은 처음엔 장내세균을 비교적 단순한 유기체로 생각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장내세균은 지문처럼 사람마다 다르고 아주 복잡하다.

소화관에 서식하는 세균만 해도 몸 전체의 세포보다 더 많다. 이 거대한 미생물의 세계엔 유전자를 전부 합치면 사람에게 존재하는 유전자보다 150배나 많은 박테리아 종이 서식한다. 연구에 따르면 장내세균은 인간이 출현하기 전부터 존재했고 유인원에서 인간이 분리되는 진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건강한 박테리아는 장내에서 면역체계와 활발하게 상호작용한다. 질병을 일으키는 세균 사이에 장벽을 세워주고 음식물 섭취를 통한 감염을 막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 면역체계가 몸을 보호하도록 준비할 수 있게 도와주기도 한다. 그러나 장내세균의 배합이 잘못되면 소화계와 면역체계, 정신건강에 관련된 여러 질병과 심지어 비만도 일으킬 수 있다.

장내세균은 음식물을 소화시키기 위해 매우 열심히 일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건강에 필수적인 영양소와 비타민을 방출한다. 영양분이 풍부한 환경에서 존재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기 위해 지불하는 대가다. 과학자들은 우리 몸과 장내세균 사이에 이뤄지는 이런 공생관계의 여러 면을 탐구한다. 최근의 연구 결과는 장내세균의 다양성과 풍부함이 지방 축적의 방식을 규정하고, 소화 호르몬과 혈당 수치를 조절하며, 심지어 우리가 선호하는 음식 종류와도 상관된 것을 보여준다.

그런 특성은 우리가 식습관을 바꾸기가 그토록 어려운 이유를 설명해준다. 몇몇 연구는 장내세균이 특별히 선호하는 식품이 있으며, 또 다른 박테리아와 먹이를 두고 경쟁하는 데 유리하도록 도와주는 식품을 우리가 먹고 싶어 하는 욕구도 생성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뇌와 장내세균 사이의 연관성에 관한 증거도 늘어나고 있다. 컴퓨터의 주처리 장치에 해당하는 뇌는 모든 생리적인 변수를 조절한다. 감염과 질병에 대한 보호망인 면역체계도 거기에 포함된다.

모든 면역세포는 골수에서 만들어진다. 우리의 이전 연구에 따르면 고혈압의 여러 결과 중 하나인 골수 염증의 증가는 뇌의 직접적인 지시에 따라 이뤄진다. 소화관도 면역체계의 전투 준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골수의 면역세포가 뇌와 소화관 사이에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우리는 바로 그 답을 찾으려 했다. 우리는 새로운 실험쥐 모델을 사용해 자연적으로 생성된 쥐의 골수를 유전자가 변형된 쥐의 골수로 교체했다. 교체된 골수는 ‘베타 아드레날린 수용체’로 불리는 특정 분자가 제거된 것이었다. 골수를 뇌의 신경 신호에 덜 예민하게 만든기 위해서였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뇌와 면역체계 사이의 소통이 장내세균을 어떻게 변형시키는지 조사할 수 있었다.

이 새로운 실험쥐 모델을 연구함으로써 우리는 신경계(뇌의 지시를 받는다)가 골수 면역세포와 직접 소통함으로써 장내세균 구성을 바꿀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뇌가 뼈와 ‘대화’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장내세균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이 실험에 근거해 골수를 교체한 쥐의 혈액에서 발견되는 염증세포가 일반 쥐보다 더 적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소화관에 침투해 박테리아 환경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면역세포가 더 적다는 뜻이다. 따라서 뇌와 골수 사이의 소통을 억제함으로써 우리는 소화관 내부의 염증 반응이 줄어들고 장내세균 군집이 더 ‘건강하고’ 더 다양하게 변한 것을 발견했다.

이 모든 것은 소화관 속의 염증 유전자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통해 조절되는 듯하다. 그러나 우리 몸과 장내세균 사이의 상호작용은 아주 복잡하기 때문에 그들의 긴밀한 소통이 정확히 어떻게 이뤄지는지 알려면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이런 이해가 체중 증가를 막아줄 수도 있다. 장내세균과 면역체계가 비만에서 맡는 중요한 역할 때문이다.

우리의 이번 연구 결과는 면역 관련 질병만이 아니라 면역억제와 관련된 치료에도 시사점을 준다. 면역억제요법은 장내세균에 영향을 미쳐 소화나 정신건강에서 원치 않는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심혈관계 질병의 경우 이런 억제된 염증 반응이 오히려 이로울 수 있다. 우리의 실험쥐 모델에서 혈압을 낮추는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장내세균과 정신건강 사이의 연관성이 최근 더욱 명확해졌다는 사실이다. 특히 일부 연구는 장내세균이 뇌의 스트레스·불안 경로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시사했다. 기분과 행동이 긍정적으로나 부정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뜻이다. 그에 따라 ‘사이코바이오틱스(psychobiotics)’라고 부르는 새로운 종류의 치료제가 곧 등장할 전망이다.

그러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처럼 장내 세균의 구성을 인위적으로 바꾸면 좋은지 나쁜지 확실히 이해하기 위해선 이 복잡한 상호작용을 더욱 철저히 연구해야 한다. 건강과 질병에서 장내세균에 개입해 긍정적인 효과를 끌어내려면 이런 지식이 필수적이다.

- 야센카 주브세비치, 크리스토퍼 마르티뉴익



※ [필자들은 플로리다대학 교수다. 이 글은 온라인 매체 컨버세이션에 먼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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