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의 장막 다시 드리워지나
철의 장막 다시 드리워지나
러시아 정부는 오래 전부터 다수 국가주의 정당과 정치인들을 지원하며 유럽을 분할 정복하려 애써 왔다. 적어도 이제 헝가리는 EU의 가치·원칙·규칙에 대한 저항의 심장부가 됐다 지난 4월 8일, 봄인데도 여전히 공기가 차가웠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도나우강 주위로 수만 명이 운집해 영웅의 연설을 들으려고 밤 늦게까지 기다렸다. 마침내 자정께 그가 모습을 드러내자 그들은 열광했다. “우리가 승리했습니다.” 빅토르 오르반 총리가 선언했다. “헝가리를 수호할 기회가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오르반 총리가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역사적인 4선에 성공하고 의회에서 압도적 다수 의석을 확보했다. 오르반 총리는 철저하게 반이민 캠페인을 펼치면서 유럽연합(EU)을 ‘제국’으로 비난했다. 대다수 유권자의 반응이 좋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그를 지지했다. 푸틴 대통령은 10여년 동안 자신의 권력을 총동원해 오르반 총리의 성공을 도왔다. 오르반 총리는 유럽 대륙 전반에 걸쳐 자기 브랜드의 분열적인 반EU 정서를 퍼뜨려왔다. 러시아 관영 통신사 RT는 그 과정을 “유럽의 오르반화”라며 칭송했다.
러시아는 오래 전부터 스페인의 카탈루냐 분리주의자로부터 영국 브렉시트(EU 탈퇴) 운동가 등의 단체들을 후원하면서 EU를 분할하고 약화시키려 애써 왔다. 크렘린은 프랑스의 극우 국가주의 정당 국민전선에 융자를 제공하고 자신들의 프로파간다 채널을 이용해 발트해 연안의 러시아 소수민족 박해와 관련해 가짜 뉴스를 퍼뜨렸다. 부다페스트 기반 싱크탱크 폴리티컬 캐피털에 따르면 러시아 발 악성 댓글, 트위터 봇, 소셜미디어 위장계정이 동원돼 이민자의 범죄를 부풀리고 “타블로이드 신문의 음모론 패키지에서 친크렘린 스토리를 퍼뜨렸다.” 이웃 체코 공화국에선 지난 2월 친러시아 포퓰리스트인 밀로스 제만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했다. 친EU 성향의 경쟁 후보 지리 드라호스가 아동성애자이며 공산주의 협력자라고 비난하는 조직적인 흑색선전에 희생된 뒤였다. 그런 스토리의 출처는 대부분 약 30개의 체코 웹사이트였다. 모두 모스크바와 관련된 사이트라고 프라하 기반 싱크탱크 유러피언 밸류스가 운영하는 단체 크렘린 워치가 밝혔다. 친푸틴 동조자를 지원해 유럽 전역에 걸쳐 의혹과 불화의 씨앗을 심어 EU 당국이 우크라이나 같은 곳에 대한 러시아의 침공을 집단적으로 제재하기 힘들게 만들려는 노림수다.
크렘린은 분명 유럽의 다수 국가주의 정당과 정치인을 도우려 애썼다. 그러나 오르반에 대한 후원은 규모와 범위 면에서 전례 없는 수준이었다. 프로파간다뿐 아니라 가스 공급 계약 특혜, 수십억 달러 융자, 전략적인 투자, 폭력적인 극우 혐오단체에 대한 은밀한 후원이 잇따랐다. 그리고 적어도 크렘린으로선 큰 보상을 받았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과 우크라이나 동부의 반군 지원 여파로 다른 EU 국가들이 러시아를 멀리할 때도 오르반은 유럽에서 푸틴 지지 행보를 멈추지 않았다. 그는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목청 높여 반대했으며 다른 EU 지도자들이 푸틴 대통령을 규탄하려는 시점에 수시로 부다페스트에서 그를 맞이했다. 또한 러시아 스타일의 정실 자본주의 신흥재벌 엘리트들을 등용하고, 충성스러운 사업가들을 동원해 반체제 뉴스 매체를 인수하고, 비정부기구(NGOs)와 시민사회 단체의 활동을 제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크렘린으로선 무엇보다도 헝가리가 EU의 자유민주주의적 가치·원칙·규칙에 대해 확대되는 저항의 심장부가 된 것이 의미심장했다.영국 옥스퍼드대학 허트포드 칼리지의 정치경제학자 윌 허튼 교수는 “보수적 국가주의의 세계적인 부상이 우리 시대 최대의 위협 요소”라며 “유럽은 국가주의의 가장 어두운 악령을 다시 마주한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분명 유럽(또는 미국)에서 일고 있는 포퓰리스트적인 반동의 배후는 아니다. 그러나 크렘린은 얼싸 좋다하며 그것을 이용한다. 그리고 적어도 오르반의 헝가리에선 그 전략이 먹힌다.
오르반이 원래부터 모스크바 편인 건 아니었다. 그는 반러시아·반공산주의, 자유주의 반체제 인사로 정치 경력의 첫발을 내디뎠다. 1988년 헝가리계 미국인 금융가 조지 소로스에게 편지를 써보내 옥스퍼드대학 학자금 지원을 요청했다(소로스는 훗날 오르반의 가장 큰 적이 됐다). 최근 헝가리 언론이 발굴해낸 그 편지에서 청년 오르반은 ‘시민 사회의 부활’을 연구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학자금을 지원받았으며 공산주의 몰락 후 귀국하자마자 대학생 중심의 친자유시장 정당 피데스 설립에 참여했다. 당시의 많은 동유럽 자유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오르반은 EU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면 헝가리가 경제난을 극복하고 러시아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믿었다.
2004년 EU가 헝가리와 기타 중부유럽 국가들을 받아들이면서 오르반의 꿈은 실현됐다. 부다페스트 지역 출판인 타마스 파르카스는 초기 피데스를 지지했지만 훗날 환멸을 느껴 등을 돌렸다. 그는 “일단 유럽의 일원이 되면 우리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리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특히 구세대와 농촌지역에는 자신의 모든 문제를 정부에 의지하는 삶에 익숙한 사람이 많았다. ‘우리가 아무 일 안하고 가만히 앉아 있어도 브뤼셀 당국이 알아서 부자로 만들어줄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대신 국경개방과 자유무역은 경기가 침체된 동안 해외에서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헝가리 젊은이들의 대규모 두뇌유출을 촉발했다. 유럽의 최빈국 개발을 목표로 보조금과 후원금 형태로 지급되는 EU 지원금이 2016년 헝가리 국내총생산(GDP)의 4% 가까이 차지했다. 헝가리는 오늘날 EU 자금의 최대 순 수혜국으로 꼽힌다. 연간 45억 유로를 받으면서 EU의 연간 예산에 기여하는 돈은 10억 유로도 안 된다.
동시에 헝가리는 EU에서 가장 부패한 나라 중 하나가 됐다. 반부패 NGO 국제투명성기구(TI)에 따르면 수뢰와 공직자 횡령에서 불가리아에 이어 2위에 올랐다. 출판인 파르카스는 “사람들은 EU가 무임승차가 아님을 깨닫고는 크게 분노했다”며 “그들은 모든 문제가 자신들이 아니라 외부인 탓이라고 말하는 정치인에게 표를 몰아주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2008년 10월까지만 해도 러시아의 조지아 침공 이후 당시 헝가리 야당 지도자이던 오르반은 러시아를 규탄했다. 그는 기자들에게 “조지아에서 일어난 일은 냉전 종식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며 “현재 러시아가 보여주는 이런 원시적인 무력정책은 유럽에선 20년 동안 유례가 없었다”고 말했다. 에이프럴 폴리 당시 헝가리 주재 미국 대사는 오르반이 구미 관계를 중시하며 “러시아와 극좌파의 생존과 복귀”를 헝가리에 대한 최대 위협으로 믿는다고 워싱턴 정부에 보고했다. 폭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국 국무부 전문 내용이다. 폴리는 ‘오르반이 천사는 아니지만 이 문제에선 천사 편’이라고 썼다.
그러나 오르반은 훗날 2010년 총선을 앞두고 선거운동을 하면서 대중영합적이고 외국인혐오적인 공약이 유권자에게 먹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동시에 오르반의 오랜 측근인 지외르지 마톨치 경제 보좌관(현 헝가리 중앙은행장)은 그의 자유주의적인 세계관이 시대착오적이라고 그를 설득했다. 독립적인 헝가리 언론 그룹 디렉트 36의 한 대규모 조사 프로젝트에 따르면 마톨치는 떠오르는 동방이 곧 서방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 실세는 물론 주도적인 정치 모델이 되리라고 오르반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2009년 11월 오르반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날아가 푸틴 대통령과 회동하고 다음 달 베이징으로 건너가 당시 중국 국가주석이던 시진핑을 만났다. 오르반은 분명 두 사람에게서 깊은 인상을 받은 듯했다. 그는 곧 러시아와 중국을 대표적인 모델로 거론하면서 개종자 같은 열정으로 헝가리의 “국가적인 토대 위에 비자유주의적 국가”를 건설하겠다고 선언했다. 메릴랜드 대학 정치학과 블라디미르 티스마네누 교수는 오르반을 가리켜 “사회주의 언론인에서 파시스트 독재자로 변신한 베니토 무솔리니” 같다고 평했다. “그는 자유주의 전통과 거기에서 다원주의가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안다. 그는 시민사회 출신이면서 그것을 파멸시키려 안간힘을 쓴다. 그는 과거와의 단절이 올바른 선택이라는 확신을 가지려 애쓰는 변절자다.” 2010년 4월 오르반은 자신의 새로운 국가주의적 정강을 기반으로 선거운동을 벌인 뒤 총리로 선출됐다.
푸틴 대통령도 분명 오르반에게서 또는 적어도 그의 국가주의적 가치에 대한 갑작스러운 열정의 파괴적 가능성에 그 못지 않게 깊은 인상을 받은 듯했다. 문제는 그의 인화성 강한 메시지가 전파되도록 러시아가 어떻게 도울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 답은 곧 명백해졌다. 총리에 오른 오르반은 그해 11월 러시아를 다시 찾아가 푸틴 대통령과 회동했다. 거기서 두 사람은 러시아 지도자 푸틴 대통령만이 해결할 수 있는 골치 아픈 문제를 논의했다. 앞서 2009년 헝가리 최대 석유회사 몰의 21.1% 지분을 러시아 국유 에너지 대기업 수르구트네프테가스가 인수했었다. 오르반의 전임자 정부는 러시아의 주주 권리 행사를 막아 이고르 세친 러시아 부총리를 분노케 했다. 위키리크스 전문에 따르면 세친이 몰의 CEO에게 “당신의 싸움 상대는 수르구트네프테가스뿐 아니라 기업들에 없는 도구를 가진 러시아 국가도 있다”고 위협했다고 미국 대사관이 워싱턴에 보고했다.
신임 총리 오르반은 모스크바와 대결 양상은 어떻게든 피하기를 원했다. 대신 그는 수르구트네프테가스가 가진 몰의 지분을 헝가리가 인수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렇게 하면 오르반이 몰에 대한 통제권을 주장하는 데뿐 아니라 국내 정치적으로도 도움이 된다. 헝가리 최고 부자 중 한 명인 산도르 차니는 최대 은행장 겸 몰의 부사장이었다. 몰을 국가에서 인수하면 오르반이 차니의 영향력을 억제하고 나아가 오르반이 헝가리의 에너지 시장을 통제하는 길을 닦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그러려면 러시아 석유업계의 파수견인 세친 부총리가 지분을 포기해야 한다. 그것은 푸틴 대통령의 관점에선 이익과 지정학적 이해 간의 선택이었다. 후자가 선택 받았다. 2011년 4월 모스크바가 갖고 있던 몰의 지분이 헝가리 정부의 손으로 넘어갔다. 오르반이 푸틴 대통령에게 넣은 다음 청탁은 헝가리 가스 거래 업체 MET 문제였다. 원래 몰이 창업했지만 오르반이 총리에 오를 무렵엔 소유구조가 불투명했다. MET는 서방 공급업체들뿐 아니라 러시아 가스 대기업 가즈프롬과 가스 조달계약을 체결했다. 2011년 서방의 가스 공급가가 러시아산보다 더 낮았다. MET의 중간 거래상들이 가즈프롬과 장기 계약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면 훨씬 더 큰 이익을 올릴 수 있었다. ‘부패 리서치 센터 부다페스트’의 한 조사에 따르면 오르반 정부가 내린 일련의 결정으로 MET는 서방에서 받는 물량을 늘려 회사에 수십억 달러의 순익을 안겨줬다. 무엇보다도 소비자에게 공급되는 가스·전력 요금을 낮춰 오르반에 대한 유권자의 호감도가 더 높아질 수 있었다.
가즈프롬은 기꺼이 그 대가를 지불했다. 그 러시아 업체는 MET와 이른바 의무인수 계약(take-or-pay agreement)을 체결했다. 이론상 MET가 사용하든 않든 구입하기로 계약한 가스 전량의 대금을 지불해야 하는 조건이다. 그리고 독일 에너지 업체 E.ON이 계약을 이행하지 않았을 때는 거세게 항의했으면서도 MET의 계약 불이행에는 침묵을 지켰다. 그 결정으로 러시아는 수십억 달러를 날렸다. 그러나 이번에도 정치적으로 보상받았다. 낮은 에너지 가격이 2014년 오르반의 재선 성공에서 큰 변수로 작용했다.
비슷한 시기에 러시아는 원자력 에너지에서도 오르반을 정치적으로 돕기로 결정했다. 헝가리 정부는 헝가리 중부 팍스 인근에 공산주의 시대 발전소와 함께 가동할 새 원자로 2기의 건설을 계획했다. 미국 원전 업체 웨스팅하우스, 프랑스 에너지 업체 아레바, 그리고 한국과 일본의 납품업체들이 입찰에 참여하려 팍스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2013년 8월 오르반은 러시아의 국유 원자력 에너지 업체 로사톰 대표를 비밀리에 만났다. 그 회동 결과는 2014년 1월 푸틴 대통령과 오르반이 모스크바에서 발표할 때까지 공개되지 않았지만 오르반 총리는 공개 입찰을 거치지 않고 팍스 확장 프로젝트를 로사톰에 맡기기로 합의했다. 그 결정에는 한 가지 결정적인 요인이 작용했다. 러시아 정부가 오르반에게 100억 유로의 융자를 제시한 것이다. 수년래 헝가리에서 단연 최대 규모의 투자였다. 팍스 원자로 계약에 관한 비밀 협상이 진행되고 있을 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례 없는 수준의 이민 물결이 유럽 국경으로 몰려들었다. 이민위기는 유럽의 가장 저명한 지도자들 사이에 논란과 심도 있는 성찰을 촉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수석 전략가였던 스티브 배넌은 지난 3월 워싱턴 연설에서 “새로운 정치현실은 좌파 VS 우파가 아니라 세계주의자 VS 국가주의자 간의 대립”이라고 말했다. 2013년 오르반은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반세계주의 전도사로 떠올랐다. 그는 틈만 나면 EU 정부 엘리트들을 조롱하며 크렘린에 기쁨을 안겨줬다.
오르반은 1848년 합스부르크 왕가에 대한 헝가리 혁명을 기념하는 휴일에 대규모 지지 군중 앞에서 기독교 유럽과 헝가리가 대이민 물결에 맞서 “문명 투쟁”을 벌인다고 말했다. 그 이민 물결은 말썽꾼들과 “국제 투기꾼들의 후원을 받는 NGOs” 네트워크가 일으켰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제 투기꾼 중 한 명으로 자신의 옛 후원자이자 유대인인 소로스를 지목했다(소로스는 부다페스트의 많은 시민사회 단체와 대학 한 곳을 후원한다). 그러면서 반유대주의의 경계를 위태롭게 넘나드는 용어를 구사했다. 베테랑 해외 통신원이자 부다페스트 주민인 아담 레보는 “그의 발언을 두고 1930년대의 불쾌한 기억을 떠오르게 하는 조잡하고 혐오스럽고 심지어 인종차별을 넘나드는 전술로 보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서방의 자유주의 금기에 도전하는 아이디어들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통했다. 주권, 통제가 이뤄지는 국경, 공통된 역사·문화의 중요성, 국가적인 단결의식 등이다.”
그러나 난민과 이민에 대한 오르반의 집요한 공격이 국내뿐 아니라 중부 유럽 전반적으로 먹혀드는 것으로 드러났다. 세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와 호르스트 제호퍼 독일 내무장관 모두 이민에 관한 그의 강경 메시지를 앵무새처럼 되뇌며 공개적으로 그를 귀빈으로 맞았다. 피데스의 발라스 히드베기 대변인은 “같은 결론에 도달하는 유럽 정치 지도자가 갈수록 늘어난다”며 “빅토르 오르반이 옳다”고 말했다.
오르반은 또한 푸틴 대통령의 전략을 일부 베꼈다. 과거 독립적인 기관들에 자신의 지지자들을 채워 넣고 부패를 통해 자신과 한통속이 된 패거리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방식이다. 의회 과반수 의석을 동원해 검찰·감사원·언론 등 헝가리 정부와 사회의 과거 독립적인 조직들을 피데스의 휘하로 끌어들였다. EU는 크게 분노했다. 유럽의회의 브렉시트 협상대표 가이 베르호프스타트는 지난 3월 “연합의 가치에 서명했으면서도 모든 가치를 위반했다”고 말했다. “EU 자금은 원하면서도 우리의 가치는 원치 않는다.” 한편 소로스는 푸틴 대통령을 본받아 헝가리를 ‘마피아 국가’로 만든다고 오르반을 비판해 왔다. EU도 그들의 보조금이 오르반의 친구·친지들의 배를 불리는 데 흘러들고 있다는 광범위한 증거를 찾아냈다.
하지만 오르반과 크렘린의 우정이 정말로 빛을 보기 시작한 건 2014년 3월이었다. 소속불명의 군복 차림을 한 러시아 병력이 크림 반도를 침공했을 때였다. 그 일로 푸틴 대통령은 대다수 유럽 지도자들 사이에서 제멋대로 행동하는 이웃에서 왕따 신세로 전락했다. 그런 처지는 2014년 7월 우크라이나 동부 상공에서 말레이시아 항공 보잉 여객기가 러시아군의 부크(Buk) 지대공 미사일을 이용하는 반군에 격추당했을 때 더 분명해졌다. EU와 미국 모두 여러 차례 갈수록 강도 높은 제재를 가했다. 대다수 러시아 기업들이 국제신용도 상향조정에서 제외되고 푸틴 대통령의 핵심 가신들이 서방에서 자산을 보유할 수 없게 됐다. EU의 제재에는 회원국 전체의 만장일치 찬성이 필요했다. 오르반은 러시아의 전통 우방인 그리스, 키프러스와 함께 제재에 회의적이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이끄는 대규모 외교노력으로 두 나라가 입장을 바꿨다. 협상 내용을 잘 아는 한 EU 외교관은 익명을 요구하며 “때로는 그들이 쓰는 돈을 누가 내는지 상기시켜 줘야 한다”며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단합된 유럽 전선을 형성해야 한다는 메르켈 총리의 입장은 단호하다”고 말했다.
오르반은 언제나 제재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일 뿐 아니라 러시아를 집단적으로 규탄하려는 EU의 시도를 외면했다. 오르반은 2017년 2월 부다페스트의 합동기자회견에서 “서유럽은 극히 반러시아적인 태도와 정책을 갖고 있다”며 “다자주의 시대가 막을 내린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헝가리를 러시아의 “중요하고 믿음직한 파트너”라고 부르며 맞장구쳤다. EU 정부가 러시아를 불량국가로 낙인 찍으려는 시점에 중부 유럽을 방문해 환영받는 것은 커다란 외교적 자산이다. 지난해 푸틴 대통령이 방문했을 때 게자 제스젠스키 전 헝가리 외무장관은 “푸틴은 자신에게 믿음직한 좋은 친구가 있음을 NATO와 EU에 과시하려 한다”며 “헝가리는 동맹 내의 트로이 목마”라고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에 말했다.
하지만 오르반이 제재 문제를 두고 EU 정부에 전면적으로 반항하지 못하는 한 가지 요인이 있다. 대다수 헝가리 유권자는 푸틴 대통령의 보수적인 세계관에 동정적일지 모르지만 특히 오르반의 핵심 지지기반인 구세대 중 많은 사람이 여전히 러시아를 1956년 헝가리 민선정부를 탄압한 식민지 세력으로 여긴다. 따라서 잉글랜드 솔즈베리에서 러시아군 정보장교 출신인 세르게이 스크리팔의 암살기도 이후 지난 3월 23개국이 160여 명의 러시아 외교관을 추방했을 때 헝가리도 한 명을 추방했다.
러시아에 대한 EU 제재는 6개월마다 갱신된다. 그리고 오르반은 반EU 주장을 펼치면서도 2014년 이후 지금까지 모든 투표에서 EU 정부의 노선에 순종했다. 헝가리 정부 대변인 졸탄 코박스는 “우리의 결정이나 정책에서 우리가 러시아나 푸틴 대통령에 다른 어떤 서방 국가보다 더 가깝다고 말할 수 있는 요소는 하나도 없다”고 주장했다.
푸틴 대통령은 오르반이 더 많이 지지해주기를 바랄지도 모른다. 그러나 크렘린의 10여 년에 걸친 베팅이 보여주듯 러시아는 장기전을 펼칠 각오가 돼 있다. 그들의 투자는 이미 배당을 받기 시작했다. 지난 4월 총선에서 오르반의 압승은 보수적 국가주의가 헝가리에 확고히 뿌리내리고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제재로 경제규모가 스페인보다 작아진 러시아는 경제적으로는 EU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군사적으로도 최근 푸틴 대통령이 차세대 핵군비와 크렘린의 국방비 지출을 대폭 늘렸다고 말하지만 미국의 지원을 받는 NATO 동맹이 여전히 러시아에 대해 상당한 우위를 점한다. 그러나 프로파간다 면에서는 푸틴 대통령을 따를 자가 없다. 그는 EU가 해체된다면 내부적인 문제가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는 듯하다.
- 오언 매튜스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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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반 총리가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역사적인 4선에 성공하고 의회에서 압도적 다수 의석을 확보했다. 오르반 총리는 철저하게 반이민 캠페인을 펼치면서 유럽연합(EU)을 ‘제국’으로 비난했다. 대다수 유권자의 반응이 좋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그를 지지했다. 푸틴 대통령은 10여년 동안 자신의 권력을 총동원해 오르반 총리의 성공을 도왔다. 오르반 총리는 유럽 대륙 전반에 걸쳐 자기 브랜드의 분열적인 반EU 정서를 퍼뜨려왔다. 러시아 관영 통신사 RT는 그 과정을 “유럽의 오르반화”라며 칭송했다.
러시아는 오래 전부터 스페인의 카탈루냐 분리주의자로부터 영국 브렉시트(EU 탈퇴) 운동가 등의 단체들을 후원하면서 EU를 분할하고 약화시키려 애써 왔다. 크렘린은 프랑스의 극우 국가주의 정당 국민전선에 융자를 제공하고 자신들의 프로파간다 채널을 이용해 발트해 연안의 러시아 소수민족 박해와 관련해 가짜 뉴스를 퍼뜨렸다. 부다페스트 기반 싱크탱크 폴리티컬 캐피털에 따르면 러시아 발 악성 댓글, 트위터 봇, 소셜미디어 위장계정이 동원돼 이민자의 범죄를 부풀리고 “타블로이드 신문의 음모론 패키지에서 친크렘린 스토리를 퍼뜨렸다.”
헝가리의 변절자
크렘린은 분명 유럽의 다수 국가주의 정당과 정치인을 도우려 애썼다. 그러나 오르반에 대한 후원은 규모와 범위 면에서 전례 없는 수준이었다. 프로파간다뿐 아니라 가스 공급 계약 특혜, 수십억 달러 융자, 전략적인 투자, 폭력적인 극우 혐오단체에 대한 은밀한 후원이 잇따랐다. 그리고 적어도 크렘린으로선 큰 보상을 받았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과 우크라이나 동부의 반군 지원 여파로 다른 EU 국가들이 러시아를 멀리할 때도 오르반은 유럽에서 푸틴 지지 행보를 멈추지 않았다. 그는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목청 높여 반대했으며 다른 EU 지도자들이 푸틴 대통령을 규탄하려는 시점에 수시로 부다페스트에서 그를 맞이했다. 또한 러시아 스타일의 정실 자본주의 신흥재벌 엘리트들을 등용하고, 충성스러운 사업가들을 동원해 반체제 뉴스 매체를 인수하고, 비정부기구(NGOs)와 시민사회 단체의 활동을 제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크렘린으로선 무엇보다도 헝가리가 EU의 자유민주주의적 가치·원칙·규칙에 대해 확대되는 저항의 심장부가 된 것이 의미심장했다.영국 옥스퍼드대학 허트포드 칼리지의 정치경제학자 윌 허튼 교수는 “보수적 국가주의의 세계적인 부상이 우리 시대 최대의 위협 요소”라며 “유럽은 국가주의의 가장 어두운 악령을 다시 마주한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분명 유럽(또는 미국)에서 일고 있는 포퓰리스트적인 반동의 배후는 아니다. 그러나 크렘린은 얼싸 좋다하며 그것을 이용한다. 그리고 적어도 오르반의 헝가리에선 그 전략이 먹힌다.
오르반이 원래부터 모스크바 편인 건 아니었다. 그는 반러시아·반공산주의, 자유주의 반체제 인사로 정치 경력의 첫발을 내디뎠다. 1988년 헝가리계 미국인 금융가 조지 소로스에게 편지를 써보내 옥스퍼드대학 학자금 지원을 요청했다(소로스는 훗날 오르반의 가장 큰 적이 됐다). 최근 헝가리 언론이 발굴해낸 그 편지에서 청년 오르반은 ‘시민 사회의 부활’을 연구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학자금을 지원받았으며 공산주의 몰락 후 귀국하자마자 대학생 중심의 친자유시장 정당 피데스 설립에 참여했다. 당시의 많은 동유럽 자유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오르반은 EU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면 헝가리가 경제난을 극복하고 러시아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믿었다.
2004년 EU가 헝가리와 기타 중부유럽 국가들을 받아들이면서 오르반의 꿈은 실현됐다. 부다페스트 지역 출판인 타마스 파르카스는 초기 피데스를 지지했지만 훗날 환멸을 느껴 등을 돌렸다. 그는 “일단 유럽의 일원이 되면 우리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리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특히 구세대와 농촌지역에는 자신의 모든 문제를 정부에 의지하는 삶에 익숙한 사람이 많았다. ‘우리가 아무 일 안하고 가만히 앉아 있어도 브뤼셀 당국이 알아서 부자로 만들어줄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대신 국경개방과 자유무역은 경기가 침체된 동안 해외에서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헝가리 젊은이들의 대규모 두뇌유출을 촉발했다. 유럽의 최빈국 개발을 목표로 보조금과 후원금 형태로 지급되는 EU 지원금이 2016년 헝가리 국내총생산(GDP)의 4% 가까이 차지했다. 헝가리는 오늘날 EU 자금의 최대 순 수혜국으로 꼽힌다. 연간 45억 유로를 받으면서 EU의 연간 예산에 기여하는 돈은 10억 유로도 안 된다.
동시에 헝가리는 EU에서 가장 부패한 나라 중 하나가 됐다. 반부패 NGO 국제투명성기구(TI)에 따르면 수뢰와 공직자 횡령에서 불가리아에 이어 2위에 올랐다. 출판인 파르카스는 “사람들은 EU가 무임승차가 아님을 깨닫고는 크게 분노했다”며 “그들은 모든 문제가 자신들이 아니라 외부인 탓이라고 말하는 정치인에게 표를 몰아주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2008년 10월까지만 해도 러시아의 조지아 침공 이후 당시 헝가리 야당 지도자이던 오르반은 러시아를 규탄했다. 그는 기자들에게 “조지아에서 일어난 일은 냉전 종식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며 “현재 러시아가 보여주는 이런 원시적인 무력정책은 유럽에선 20년 동안 유례가 없었다”고 말했다. 에이프럴 폴리 당시 헝가리 주재 미국 대사는 오르반이 구미 관계를 중시하며 “러시아와 극좌파의 생존과 복귀”를 헝가리에 대한 최대 위협으로 믿는다고 워싱턴 정부에 보고했다. 폭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국 국무부 전문 내용이다. 폴리는 ‘오르반이 천사는 아니지만 이 문제에선 천사 편’이라고 썼다.
그러나 오르반은 훗날 2010년 총선을 앞두고 선거운동을 하면서 대중영합적이고 외국인혐오적인 공약이 유권자에게 먹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동시에 오르반의 오랜 측근인 지외르지 마톨치 경제 보좌관(현 헝가리 중앙은행장)은 그의 자유주의적인 세계관이 시대착오적이라고 그를 설득했다. 독립적인 헝가리 언론 그룹 디렉트 36의 한 대규모 조사 프로젝트에 따르면 마톨치는 떠오르는 동방이 곧 서방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 실세는 물론 주도적인 정치 모델이 되리라고 오르반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2009년 11월 오르반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날아가 푸틴 대통령과 회동하고 다음 달 베이징으로 건너가 당시 중국 국가주석이던 시진핑을 만났다.
날아간 수십억 달러의 이익
푸틴 대통령도 분명 오르반에게서 또는 적어도 그의 국가주의적 가치에 대한 갑작스러운 열정의 파괴적 가능성에 그 못지 않게 깊은 인상을 받은 듯했다. 문제는 그의 인화성 강한 메시지가 전파되도록 러시아가 어떻게 도울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 답은 곧 명백해졌다. 총리에 오른 오르반은 그해 11월 러시아를 다시 찾아가 푸틴 대통령과 회동했다. 거기서 두 사람은 러시아 지도자 푸틴 대통령만이 해결할 수 있는 골치 아픈 문제를 논의했다. 앞서 2009년 헝가리 최대 석유회사 몰의 21.1% 지분을 러시아 국유 에너지 대기업 수르구트네프테가스가 인수했었다. 오르반의 전임자 정부는 러시아의 주주 권리 행사를 막아 이고르 세친 러시아 부총리를 분노케 했다. 위키리크스 전문에 따르면 세친이 몰의 CEO에게 “당신의 싸움 상대는 수르구트네프테가스뿐 아니라 기업들에 없는 도구를 가진 러시아 국가도 있다”고 위협했다고 미국 대사관이 워싱턴에 보고했다.
신임 총리 오르반은 모스크바와 대결 양상은 어떻게든 피하기를 원했다. 대신 그는 수르구트네프테가스가 가진 몰의 지분을 헝가리가 인수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렇게 하면 오르반이 몰에 대한 통제권을 주장하는 데뿐 아니라 국내 정치적으로도 도움이 된다. 헝가리 최고 부자 중 한 명인 산도르 차니는 최대 은행장 겸 몰의 부사장이었다. 몰을 국가에서 인수하면 오르반이 차니의 영향력을 억제하고 나아가 오르반이 헝가리의 에너지 시장을 통제하는 길을 닦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그러려면 러시아 석유업계의 파수견인 세친 부총리가 지분을 포기해야 한다. 그것은 푸틴 대통령의 관점에선 이익과 지정학적 이해 간의 선택이었다. 후자가 선택 받았다. 2011년 4월 모스크바가 갖고 있던 몰의 지분이 헝가리 정부의 손으로 넘어갔다. 오르반이 푸틴 대통령에게 넣은 다음 청탁은 헝가리 가스 거래 업체 MET 문제였다. 원래 몰이 창업했지만 오르반이 총리에 오를 무렵엔 소유구조가 불투명했다. MET는 서방 공급업체들뿐 아니라 러시아 가스 대기업 가즈프롬과 가스 조달계약을 체결했다. 2011년 서방의 가스 공급가가 러시아산보다 더 낮았다. MET의 중간 거래상들이 가즈프롬과 장기 계약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면 훨씬 더 큰 이익을 올릴 수 있었다. ‘부패 리서치 센터 부다페스트’의 한 조사에 따르면 오르반 정부가 내린 일련의 결정으로 MET는 서방에서 받는 물량을 늘려 회사에 수십억 달러의 순익을 안겨줬다. 무엇보다도 소비자에게 공급되는 가스·전력 요금을 낮춰 오르반에 대한 유권자의 호감도가 더 높아질 수 있었다.
가즈프롬은 기꺼이 그 대가를 지불했다. 그 러시아 업체는 MET와 이른바 의무인수 계약(take-or-pay agreement)을 체결했다. 이론상 MET가 사용하든 않든 구입하기로 계약한 가스 전량의 대금을 지불해야 하는 조건이다. 그리고 독일 에너지 업체 E.ON이 계약을 이행하지 않았을 때는 거세게 항의했으면서도 MET의 계약 불이행에는 침묵을 지켰다. 그 결정으로 러시아는 수십억 달러를 날렸다. 그러나 이번에도 정치적으로 보상받았다. 낮은 에너지 가격이 2014년 오르반의 재선 성공에서 큰 변수로 작용했다.
비슷한 시기에 러시아는 원자력 에너지에서도 오르반을 정치적으로 돕기로 결정했다. 헝가리 정부는 헝가리 중부 팍스 인근에 공산주의 시대 발전소와 함께 가동할 새 원자로 2기의 건설을 계획했다. 미국 원전 업체 웨스팅하우스, 프랑스 에너지 업체 아레바, 그리고 한국과 일본의 납품업체들이 입찰에 참여하려 팍스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2013년 8월 오르반은 러시아의 국유 원자력 에너지 업체 로사톰 대표를 비밀리에 만났다. 그 회동 결과는 2014년 1월 푸틴 대통령과 오르반이 모스크바에서 발표할 때까지 공개되지 않았지만 오르반 총리는 공개 입찰을 거치지 않고 팍스 확장 프로젝트를 로사톰에 맡기기로 합의했다. 그 결정에는 한 가지 결정적인 요인이 작용했다. 러시아 정부가 오르반에게 100억 유로의 융자를 제시한 것이다. 수년래 헝가리에서 단연 최대 규모의 투자였다.
푸틴의 전략
오르반은 1848년 합스부르크 왕가에 대한 헝가리 혁명을 기념하는 휴일에 대규모 지지 군중 앞에서 기독교 유럽과 헝가리가 대이민 물결에 맞서 “문명 투쟁”을 벌인다고 말했다. 그 이민 물결은 말썽꾼들과 “국제 투기꾼들의 후원을 받는 NGOs” 네트워크가 일으켰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제 투기꾼 중 한 명으로 자신의 옛 후원자이자 유대인인 소로스를 지목했다(소로스는 부다페스트의 많은 시민사회 단체와 대학 한 곳을 후원한다). 그러면서 반유대주의의 경계를 위태롭게 넘나드는 용어를 구사했다.
믿을 만한 좋은 친구
그러나 난민과 이민에 대한 오르반의 집요한 공격이 국내뿐 아니라 중부 유럽 전반적으로 먹혀드는 것으로 드러났다. 세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와 호르스트 제호퍼 독일 내무장관 모두 이민에 관한 그의 강경 메시지를 앵무새처럼 되뇌며 공개적으로 그를 귀빈으로 맞았다. 피데스의 발라스 히드베기 대변인은 “같은 결론에 도달하는 유럽 정치 지도자가 갈수록 늘어난다”며 “빅토르 오르반이 옳다”고 말했다.
오르반은 또한 푸틴 대통령의 전략을 일부 베꼈다. 과거 독립적인 기관들에 자신의 지지자들을 채워 넣고 부패를 통해 자신과 한통속이 된 패거리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방식이다. 의회 과반수 의석을 동원해 검찰·감사원·언론 등 헝가리 정부와 사회의 과거 독립적인 조직들을 피데스의 휘하로 끌어들였다. EU는 크게 분노했다. 유럽의회의 브렉시트 협상대표 가이 베르호프스타트는 지난 3월 “연합의 가치에 서명했으면서도 모든 가치를 위반했다”고 말했다. “EU 자금은 원하면서도 우리의 가치는 원치 않는다.” 한편 소로스는 푸틴 대통령을 본받아 헝가리를 ‘마피아 국가’로 만든다고 오르반을 비판해 왔다. EU도 그들의 보조금이 오르반의 친구·친지들의 배를 불리는 데 흘러들고 있다는 광범위한 증거를 찾아냈다.
하지만 오르반과 크렘린의 우정이 정말로 빛을 보기 시작한 건 2014년 3월이었다. 소속불명의 군복 차림을 한 러시아 병력이 크림 반도를 침공했을 때였다. 그 일로 푸틴 대통령은 대다수 유럽 지도자들 사이에서 제멋대로 행동하는 이웃에서 왕따 신세로 전락했다. 그런 처지는 2014년 7월 우크라이나 동부 상공에서 말레이시아 항공 보잉 여객기가 러시아군의 부크(Buk) 지대공 미사일을 이용하는 반군에 격추당했을 때 더 분명해졌다. EU와 미국 모두 여러 차례 갈수록 강도 높은 제재를 가했다. 대다수 러시아 기업들이 국제신용도 상향조정에서 제외되고 푸틴 대통령의 핵심 가신들이 서방에서 자산을 보유할 수 없게 됐다. EU의 제재에는 회원국 전체의 만장일치 찬성이 필요했다. 오르반은 러시아의 전통 우방인 그리스, 키프러스와 함께 제재에 회의적이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이끄는 대규모 외교노력으로 두 나라가 입장을 바꿨다. 협상 내용을 잘 아는 한 EU 외교관은 익명을 요구하며 “때로는 그들이 쓰는 돈을 누가 내는지 상기시켜 줘야 한다”며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단합된 유럽 전선을 형성해야 한다는 메르켈 총리의 입장은 단호하다”고 말했다.
오르반은 언제나 제재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일 뿐 아니라 러시아를 집단적으로 규탄하려는 EU의 시도를 외면했다. 오르반은 2017년 2월 부다페스트의 합동기자회견에서 “서유럽은 극히 반러시아적인 태도와 정책을 갖고 있다”며 “다자주의 시대가 막을 내린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헝가리를 러시아의 “중요하고 믿음직한 파트너”라고 부르며 맞장구쳤다. EU 정부가 러시아를 불량국가로 낙인 찍으려는 시점에 중부 유럽을 방문해 환영받는 것은 커다란 외교적 자산이다. 지난해 푸틴 대통령이 방문했을 때 게자 제스젠스키 전 헝가리 외무장관은 “푸틴은 자신에게 믿음직한 좋은 친구가 있음을 NATO와 EU에 과시하려 한다”며 “헝가리는 동맹 내의 트로이 목마”라고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에 말했다.
하지만 오르반이 제재 문제를 두고 EU 정부에 전면적으로 반항하지 못하는 한 가지 요인이 있다. 대다수 헝가리 유권자는 푸틴 대통령의 보수적인 세계관에 동정적일지 모르지만 특히 오르반의 핵심 지지기반인 구세대 중 많은 사람이 여전히 러시아를 1956년 헝가리 민선정부를 탄압한 식민지 세력으로 여긴다. 따라서 잉글랜드 솔즈베리에서 러시아군 정보장교 출신인 세르게이 스크리팔의 암살기도 이후 지난 3월 23개국이 160여 명의 러시아 외교관을 추방했을 때 헝가리도 한 명을 추방했다.
러시아에 대한 EU 제재는 6개월마다 갱신된다. 그리고 오르반은 반EU 주장을 펼치면서도 2014년 이후 지금까지 모든 투표에서 EU 정부의 노선에 순종했다. 헝가리 정부 대변인 졸탄 코박스는 “우리의 결정이나 정책에서 우리가 러시아나 푸틴 대통령에 다른 어떤 서방 국가보다 더 가깝다고 말할 수 있는 요소는 하나도 없다”고 주장했다.
푸틴 대통령은 오르반이 더 많이 지지해주기를 바랄지도 모른다. 그러나 크렘린의 10여 년에 걸친 베팅이 보여주듯 러시아는 장기전을 펼칠 각오가 돼 있다. 그들의 투자는 이미 배당을 받기 시작했다. 지난 4월 총선에서 오르반의 압승은 보수적 국가주의가 헝가리에 확고히 뿌리내리고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제재로 경제규모가 스페인보다 작아진 러시아는 경제적으로는 EU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군사적으로도 최근 푸틴 대통령이 차세대 핵군비와 크렘린의 국방비 지출을 대폭 늘렸다고 말하지만 미국의 지원을 받는 NATO 동맹이 여전히 러시아에 대해 상당한 우위를 점한다. 그러나 프로파간다 면에서는 푸틴 대통령을 따를 자가 없다. 그는 EU가 해체된다면 내부적인 문제가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는 듯하다.
- 오언 매튜스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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